004 전역복(2)
첫째 날, 한율은 매직 미사일만 사용했다.
둘째 날, 한율은 다수의 블러드 울프와 만나면 매직 미사일만으로 토벌하기 어렵다는 것을 깨닫고 던전 입구에서 석궁을 구입했다. 총기를 구입하고 싶었지만, 가격이 비싸기도 하고 비싼 총알 때문에 석궁을 보조 무기로 선택한 것이다.
석궁을 든 채 움직인 한율은 트리니를 발견하자마자 석궁을 조준하며 주문을 외웠다.
석궁은 보조 무기.
주 무기는 마법이다.
“매직 미사일.”
푸욱! 콰앙!
관통 후 폭발!
하지만 블러드 울프와는 다르게 일부만 파괴되었다.
한율은 꿈틀거리던 나무뿌리가 빠른 속도로 쇄도하자 황급히 방아쇠를 당기며 뒤로 물러섰다.
쉬이익!
위력은 매직 미사일과 비교하면 이쑤시개에 불과하다.
하지만 푸른빛이 일렁이는 부분, 즉 약점을 노리고 발사할 경우, 충분히 위협적인 무기가 된다.
한율은 잠시 멈칫한 나무뿌리가 자신이 아닌 화살을 막기 위해 본체 주변으로 물러나자 다시 주문을 외웠다.
푸욱! 콰앙!
또 한 번 관통 후 폭발.
“두 번이라.”
블러드 울프와는 달리 매직 미사일을 두 번이나 사용해야 했다.
하지만 트리니의 사체에서 마석을 확보한 한율은 웃었다.
이름: D급 마석(15).
설명: 마나를 품은 D급 마석.
첫 사냥부터 D급 마석.
“좋아. 운이 좋아.”
***
“운이!”
쉬이익!
“좋기는! 개뿔!”
푸부북!
“내 인생이! 그렇지!”
황급히 바닥을 굴러 나무뿌리를 피한 한율이 방아쇠를 당겼다.
한율은 지원 시스템 중에 ‘상태창’이라는 지원 시스템이 있다면 ‘운’ 스탯이 마이너스일 거라고 확신했다.
비기너럭인지, 첫 끗발이 개 끗발인지, 첫 사냥부터 D급 마석을 획득하더니 3시간 만에 E급 마석을 세 개나 확보할 수 있었다.
과연 블러드 울프보다 상위 몬스터다웠다.
문제는 그 이후 트리니 세 마리와 동시에 조우하는 불운을 맞이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것들을 모두 사냥하려면 매직 미사일을 총 여섯 번 사용해야 한다.
마나?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집중력이 문제가 되었다.
한율은 공격을 피하며 주문을 외울 수 있을 정도로 마법에 익숙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방금도 매직 미사일이 헛되이 허공으로 날아가 버렸다.
“칫!”
황급히 영창을 멈춘 한율이 다시 옆으로 몸을 던졌다.
바닥을 구르며 흙이 입에 들어가고 전역복이 엉망이 되었지만, 외관에 신경 쓰기엔 상황이 너무 나빴다.
한율이 다시 매직 미사일을 사용했다.
하지만 이번 마나 화살 역시 빗나가며 가까이 있는 트리니 나무뿌리에 꽂혔다.
푸욱! 콰앙!
바로 눈앞에서 일어난 폭발에 흙이 튀었다.
양팔로 얼굴을 가린 채 바닥을 구른 한율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다시 주문을 외웠다.
거리는 충분하다.
“매직 미사일!”
자신도 모르게 큰 목소리로 외친 한율이 마나 화살을 날렸고, 머리 위에 생성된 마나 화살이 앞으로 날아가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생성된 마나 화살은 한 발이 아닌 두 발.
콰과광!
동시에 일어난 폭발이 트리니 두 마리를 흔적도 남기지 않고 없애 버렸다.
“어? 어 씹! 말도 안 되지만!”
다시 옆으로 몸을 굴려 나무뿌리를 피한 한율이 다시 주문을 외웠고, 마지막에 가서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매! 직! 미사일!”
쉬이익! 쉬이익!
또 한 발이 아닌 두 발.
“기합에 따라 강해지나?”
작은 목소리로 영창하면 한 발, 큰 소리로 영창하면 두 발.
콰아앙!
착각일 거라고 생각하지만 파괴력이 높아진 것 같았다.
“…….”
사체는 남아 있다. 하지만 나무뿌리는 땅에 축 늘어졌고, 약점이라 불리는 푸른빛이 일렁이는 나무껍질도 빛을 잃어버렸다.
“……시부럴.”
한율이 마지막 트리니까지 토벌했다는 것을 깨닫자 대자로 뻗어 하늘을 올려다봤다.
“존나게 힘드네.”
정면에서 세 마리와 조우했다면 도망쳤을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 찾아온 불운은 양옆에 트리니 두 마리가 잠들어 있다는 것도 모른 채 전방에 눈을 뜨고 있는 트리니만 발견했다는 것이다.
불운이 아니라 실수다?
아니다.
트리니는 낮에 활동하는 주행성 몬스터.
대낮에 잠드는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낮부터 잠들어 있는 트리니는 열 마리 중 한 마리에 불과했다.
“차라리 쏘고 튀고 쏘고 튀고를 반복하는 게 나았을까?”
매직 미사일을 막기 위해 나무뿌리가 본체를 보호해 두 발이 아닌 세 발, 네 발을 날려야겠지만, 안전은 확보할 수 있다.
문제는 효율이 낮다는 것이다.
“에휴.”
이제는 습관처럼 한숨을 내쉰 한율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석을 뱉어냈는지 확인하기 위해 죽상을 한 채 걸음을 옮긴 그는 바로 트리니의 사체가 있던 장소에 떨어진 물건을 확인하고 환하게 웃었다.
“그래도 좋네.”
마석이 무려 두 개나 떨어져 있었다.
그중 하나는 자원 마석이라 불리는 푸른 마석, 다른 하나는 섭취용 마석으로 추측되는 백색 마석.
“음? 섭취용 마석이 백색이 맞나?”
PC방에서 열심히 정보를 모았건만 떠오르지 않았다. 한율은 고개를 갸웃하며 마석을 주었다.
이내 마석을 손에 쥐기가 무섭게 나타난 설명창을 확인하고 눈을 끔뻑였다.
{장비 강화 마석을 흡수합니다. 사용자의 장비를 강화합니다.}
“……엉?”
‘강화하겠습니까?’가 아닌 ‘강화합니다.’
예상도 못 한 상황에 잠시 침묵할 때, 백색 마석이 그대로 녹아내려 군복에 스며들었다.
집으로 돌아가면 바로 벗어 던질 군복에 자연스럽게 스며든 것이다.
“……슬마.”
설마.
에이, 말도 안 돼.
“가, 감정.”
이름: 대한민국 육군 군복(30) / 귀속.
설명: 장비 강화 마석을 흡수한 대한민국 육군 군복.
효과: 피해 5% 감소.
“…….”
장비 강화 마석.
백만 원부터 시작한다는 강화 마석.
게임이 아닌 현실이기 때문인지, 선택이 아닌 접촉 시 사용하게 되는 마석.
백석 마석이 드롭 될 가능성을 고려해 헌터들은 상자를 준비하고, 준비해 둔 상자를 이용해 백색 마석을 회수한다.
“허, 허허허. 허허허허허.”
운이 좋다. 장비 강화 마석을 획득했으니까.
운이 나쁘다. 하필 전역복이 장비 강화 마석을 흡수했으니까.
“시벌.”
장비 강화 마석을 구했다.
“내 돈!”
사용했지만.
줍기 전에 감정을 해야 한다는 헌터들의 조언을 떠올리며 한율은 머리를 쥐어뜯었다.
***
5일.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한율에게 5일은 매우 짧은 시간이었다.
“제대로 거래하고 싶었지만, 시간이 부족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백색 마석이 장비 강화 마석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면 제대로 거래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헌터들이 흔히 하는 실수로 인해 사용하고 말았다.
이름: 삼엽초(30).
설명: 마나를 흡수하고 자란 영초.
효과: 신체 강화(0~3%).
이름: 신비의 함박꽃나무(20).
설명: 각성자의 기운을 흡수하고 탄생한 영초.
효과: 마나량 최대치 상승(0~2%).
마석을 판매하고 구입한 영초는 두 가지, 남은 80은 마석으로 대체했다.
[레스트: 이해합니다. 노력하셨군요.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크흑!”
정말 고생했다.
“이 빚은 반드시 갚겠습니다.”
[레스트: 괜찮습니다. 마석은 우리 쪽에서도 다양한 방식으로 사용하니 빚으로 생각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 그런가요? 그럼 다음에도?”
나타나지 않는 메시지창.
아무리 기다려도 나타나지 않는 메시지창.
“하, 하하. 농담입니다. 농담.”
[레스트: 그거 다행이군요. 아예 거래를 끊어 버릴까 심각하게 고민했는데.]
“하, 하하하.”
[레스트: 하하하. 농담입니다. 차원 거래는 저에게도 필요한 것이니까요. 그럼 바로 다음 거래를 시작해 볼까요?]
“……조금 쉬었다가 거래해도 문제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레스트: 하긴, 지금까지 계속 고생했으니. 일반 거래와 기술 거래를 동시에 준비해야 하는 한율 님에게는 무리가 있겠죠.]
레스트와는 다르다. 자신은 마법서를 거래하기 위해 상품을 준비해야 하고, 기술 거래를 위한 상품을 준비해야 한다.
뭔가 너무 억울하다는 느낌을 받아 스킬창을 째려보던 한율이 주문한 아이스 카페라테를 마셨다.
[레스트: 그래도 이번에는 영초가 아닌 다른 물건이 필요하니 빨리 거래를 했으면 합니다.]
영초가 아닌 다른 상품?
물건은 지역에 따라 가치가 달라진다.
하지만 차원 거래는 고정된 가치로 거래가 진행된다.
“……필요한 거라도 있으신가요?”
[레스트: 예. 지금 상단 호위 의뢰를 하고 있는데, 상황이 조금 나빠서 말입니다.]
“어. 그렇다면.”
상대방이 물건을 원한다. 즉, 기술 거래까지 포함하지는 못하겠지만 일반 거래의 가치는 필요한 상품을 대량으로 구입해 교환하는 것으로 거래할 수 있지 않을까.
“원하시는 물건으로 마법서를 구입할 수 있을까요? 부족한 가치는 저번처럼 화폐로 충당하고.”
[레스트: 예. 대량으로, 긴급히 필요해서 말입니다.]
드르륵!
한율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있는 힘껏 남은 라테를 흡입한 뒤에 밖으로 나와 아주 작은 목소리로, 하지만 아주 당당하게 말했다.
“거래하죠. 제가 원하는 마법은 방어 마법입니다.”
[레스트: 감사합니다. 제가 원하는 것은 독입니다.]
타악.
원래 거래라는 게 이런 건가?
왜 갈수록 더 어려워지는 느낌이 드는 걸까?
카페를 나오기가 무섭게 걸음을 멈췄다. 아주 자신만만하게 제안한 것과는 달리 이어 말하지 못한 그는 잠깐의 고민 끝에 다시 물었다.
“독이요?”
[레스트: 예. 맹독이 필요합니다. 이왕이면 부식 효과를 지닌 맹독이 필요합니다. 분말도 상관없지만, 액체가 더 좋습니다.]
“…….”
[레스트: 아, 이왕이면 마약도 준비해 주시겠습니까?]
“…….”
[레스트: 한율 님? 한율 님? 흐음, 역시 차원과 차원을 잇는 능력이라 불안정한가.]
***
계룡대, 어느 흡연장.
“병장님.”
“왜.”
“그 인터넷에 떠도는 소문 있지 않습니까.”
“억울한 군저씨?”
군인들 사이에서는 매우 유명한 이야기다.
피식 실소를 터트린 병장 청년이 담배를 입으로 가져가며 묻자 상병 청년 또한 큭큭 웃고 대답했다.
“예. 억울한 군저씨 말입니다. 그거 우리 분대장, 아니 한 형 맞습니까?”
“맞아. 푸하하하!”
진짜 억울할 것이다. 전역 당일에 능력을 각성했으니까.
문 앞까지 배웅을 나섰던 현 분대장이 배를 움켜쥔 채로 웃음을 터트렸다.
“저도 웃기기는 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우리 분대장, 아니 한 형, 정말 괜찮을까요?”
한율 분대장을 좋아하는 사람은 많았다.
그 또한 실전에 투입되는 현실에 의해 많은 사람들처럼 무척 힘들어했다.
하지만 진급을 하면서, 지켜야 할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그는 달라지기 시작했다.
후임들에게 선임들의 무거움이 전해지지 않도록 의도적으로라도 미소를 지었고, 헌터와 함께한다고 해도 위험한 것이 분명함에도 참가하지 않아도 되는 작전에 참가해 후임들을 보살폈다.
“뭐, 한 형이라면 괜찮겠지. 가장 문제가 되는 실전경험이 상당하잖냐.”
평범한 헌터가 아니다. 군인 신분이기는 했지만, 일단 일반 헌터와는 다르게 실전을 겪었다.
각성한 능력으로 몬스터를 토벌하는 것이 아닌 화기를 사용한 전투였지만 실질적으로 싸워봤다는 경험은 무시하지 못한다.
게다가 언제 출동이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전역을 앞두고 있더라도 꾸준히 훈련을 받아야 한다.
“스으읍, 후우우. 그래도…….”
담배를 한 모금 들이마신 현 분대장이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상병 청년도 그를 따라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역시…….”
“역시 힘들겠죠?”
“아니, 존나 웃겨. 푸하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