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 전역복(1)
대전, 도안숲 공원에 나타난 게이트.
브레이크 현상이 일어나도 쉽게 진압할 수 있다고 판단, 헌터들의 육성을 위해 핵을 파괴하지 않고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E급 게이트.
타악.
버스에서 내린 한 청년이 도안숲 공원 입구에 생성된 검은 공간, 게이트를 바라봤다.
“……음? 군인?”
“전역자 같은데? 전역 마크잖아. 저거.”
“어? 그 사람 아냐? 인터넷에 나온.”
“아아, 전역과 동시에 각성했다는?”
“헐! 그냥 헛소문이라 생각했는데. 진심 불쌍하다.”
귓속을 파고드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순간적으로 표정 관리에 실패할 뻔한, 갓 전역한 따끈따끈한 군인 아저씨가 힐끔 자신의 옷차림을 살폈다.
사복?
없다. 모든 짐을 택배로 부쳤다. 지갑 하나만 달랑 들고 부대를 나왔는데 다른 옷이 어디 있겠는가.
돈?
없다. 전역 전날, 후임들을 위해 아슬아슬하게 교통비만 남기고 가진 돈을 전부 써서 파티를 열었는데, 돈이 어디 있겠는가.
“하아…….”
대전에 도착하자마자 시청에 들러 임시 헌터 신분증을 발급받은 군인 아저씨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게이트를 바라보았다.
“집에는 언제 가려나.”
남은 시간은 5일.
남은 가치는 130.
전역을 명받고 군인 아저씨에서 그냥 아저씨가 된 지 하루.
한율은 군복을 입은 채로 게이트를 찾았다.
***
게이트에 대해 알려진 것은 많지 않다.
하지만 계속된 연구 끝에 밝혀낸 사실이 몇 가지 있는데, 그중 하나는 게이트의 핵을 파괴해도 게이트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게이트의 핵을 파괴하면?
게이트는 닫힌다.
다만 1시간 뒤에 다시 열린다.
또 게이트의 핵을 파괴하면?
마찬가지다.
하지만 게이트에서 등장하는 몬스터가 줄어든다.
게이트마다 다르지만 5회 이상, 게이트의 핵을 파괴하면 그제야 게이트가 사라진다.
두 번째로 계속된 연구 끝에 밝혀낸 사실은 마석이다.
헌터로 각성하면 흔히 마나, 또는 기(氣)라는 이능의 기운을 보관할 수 있는 장소가 육체에 생긴다.
각성한 초능력도 이 이능의 기운을 소모해서 사용하는데, 이 이능의 기운을 보관하는 공간을 넓히는 효과가 있는 마석이 존재한다.
사용 방법?
간단하다. 삼키면 된다.
그렇다면 복용 마석과 자원 마석의 구분은 어떻게 할까?
이 또한 간단하다. 지원 시스템, 감정을 사용하면 된다.
“자원 마석도 팔고, 복용 마석도 판다.”
귀하디 귀한 복용 마석은 섭취하는 것이 좋다.
하지만 한율은 군인 아저씨에서 빚쟁이로 직업이 바뀐 상태다.
5일 안에 130의 가치를 맞추지 못한다면?
차원 거래는 봉인되고, 매직 미사일만 사용할 수 있는 마법사가 되어 정식으로 헌터 등록을 해야 했다.
“스으읍, 후우!”
깊게 심호흡을 한 한율이 다시 걸음을 옮겼다.
타악, 화아악!
게이트 내부로 발을 디디기가 무섭게 변화하는 시야.
한율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거대한 평야, 그리고 저 멀리 보이는 숲을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신기하다?
과거와는 달리 몬스터라는 적이 존재하기 때문에 현대의 군인들은 대다수가 실전을 경험한다. 그래서 한율에게 게이트의 세계는 큰 감흥을 주지 못했다.
헌터로서의 시작이라는 생각보다 먼저 빚이 머릿속을 맴돌기도 했고 말이다.
“군인?”
“군인이 왜?”
활을 든 헌터가 있었고, 검을 든 헌터가 있었다. 건틀릿, 도끼 등등 제각기 자신의 능력에 맞는 무기를 쥐고 있던 헌터들이 한율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아, 인터넷에서 봤는데 전역 날 각성한 사람이 있대.”
“헐!”
“와, 개불쌍하다.”
3년간 뺑……. 3년간 복무를 하고 제대했는데, 전역 당일 병역 면제 혜택을 받은 헌터가 되었다.
누군가는 웃음을 터트렸고, 누군가는 불쌍하다는 시선으로 바라봤다. 또 누군가는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한율에게 다가가려고 했다.
하지만 한율의 행동이 먼저였다.
저벅, 저벅, 저벅.
한율은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안전 지역이라 불리는 입구에서 멀어졌다.
“솔플?”
“인터넷 보면 어제 각성했다고 하던데.”
“야야, 구경하러 가자. 구경하러.”
수군거리던 헌터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제까지만 해도 군인 아저씨였다는 것, 그리고 개인플레이를 할 수 있는 각성자라는 사실이 호기심을 심어 준 것이다.
민폐는 아니다.
적정 거리를 두고 따라오는 이들은 위험 발생 시 도움을 주기도 하니 구경꾼이 헌터라면 그들의 행동은 민폐가 아니었다.
뭐, 낯가림이 심하다면야 민폐가 될 수도 있겠지만.
하지만 헌터들의 관심 대상, 한율은 다른 이유로 미소를 그렸다.
‘좋아.’
차원 거래라는 능력은 감춰야 한다.
즉, 사람들이 자신이 각성한 능력을 차원 거래가 아닌 마법이라고 착각해야 하니 목격자가 많은 것은 오히려 바라던 일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짜증이 나지?’
분명 원하는 대로 시선을 모았지만, 이상하게 짜증이 난다.
“일단 집중하자.”
한율이 잡생각을 지우고 다시 게이트에 집중했다.
도안숲 E급 게이트.
출현 몬스터는 평야를 떠도는 붉은빛 털을 가진 블러드 울프, 숲속에 자리 잡은 살아 있는 나무라 불리는 트리니, 마지막으로 핵을 지키는 고블린.
크르릉!
안전 지역에서 멀어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평야를 떠돌아다니던 블러드 울프가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홱 돌렸다.
블러드 울프 한 마리.
한율이 게이트에 들어설 때와 마찬가지로 깊게 심호흡을 하고 주문을 외웠다.
“원거리 능력!”
“오! 부럽다!”
근접 전투 능력을 각성한 이들은 전투훈련을 거듭해야 하기 때문에 원거리 전투 능력자들을 부러워하고, 원거리 전투 능력자들은 아무리 훈련을 해도 근접 전투 능력자들의 신체능력을 따라잡지 못해 근접 전투 능력자들을 부러워한다.
근접 전투 능력자들은 탄성을 흘리면서, 원거리 능력자들은 호기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한율의 머리 위에 생성된 푸른 화살을 바라봤다.
크아아앙!
잠도 자지 않고 마나 호흡법을 외우고 매직 미사일을 반복 영창해서 시전 속도를 높였다.
또한, 매직 미사일만 습득해 다른 주문과 헷갈릴 일도 없다.
“매직 미사일.”
영창을 마치기가 무섭게 머리 위에 생성된 푸른 화살이 정면에서 달려오는 블러드 울프에게 날아갔다.
쉬이익!
푸욱!
“……음?”
“관통형인가 본데.”
“그러게. 그런데 저 능력으로 개인플레이는 어렵지 않나?”
“군인이었잖아. 훈련을 받…….”
헌터들이 의문을 가지 채로 다시 동료들과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한율도 마찬가지였다. 폭발형 마법인 매직 미사일이 블러드 울프의 육체에 박혀 그도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로 블러드 울프를 바라봤다.
“분명 폭발형 마법이라고 하셨는…….”
콰앙!
뒤늦게 블러드 울프의 육체에 박힌 매직 미사일이 폭발했다.
“…….”
한율이 침묵했다.
“…….”
헌터들도 침묵했다.
거대한 폭발.
사방으로 흩어지는 살 조각.
“……우욱.”
누군가가 헛구역질을 하며 고개를 틀었고, 누군가는 멍하니 블러드 울프가 쓰러져 있던 장소를 바라봤다.
한율은 이 중 두 번째 반응에 해당했다.
“관통 후 폭발.”
자신이 배운 폭발형 마법 매직 미사일은 레스트의 손을 거쳐 개량된 마법이다.
“존나 좋군.”
좋다. 1서클 마법에 불과함에도 갓 각성한 헌터는 보일 수 없는 엄청난 파괴력을 보여 주었다.
그렇다면 2서클 마법은 어떨까? 3서클 마법은 또 어떻고?
“반드시 갚는다. 백삼십.”
***
“먹이를 찾아 떠돌아다니는 하이에나처럼 블러드 울프를 찾아 평야를 떠돌아다닌 지 어언 사흘.”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린 한율이 매직 미사일을 날렸다.
푸욱!
콰앙!
관통 후 폭발.
“클났군.”
블러드 울프를 토벌하고 마석을 회수한다. 그걸 몇 차례 반복하면 다시 안전 지역이라 불리는 게이트 입구로 돌아와 마나 호흡법을 외워 마나를 보충하고 토벌에 나선다.
적응을 마치지 못한, 그리고 실전을 경험하지 못한 갓 각성한 헌터라면 토벌 후에 휴식을 취하며 전투를 복기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너무 오래 걸려.”
하지만 한율에게는 시간이 없었다.
이름: E급 마석(5).
설명: 마나를 품은 E급 마석.
E급 마석의 가치는 5.
E급 마석을 26개로 가치를 맞출 수 있다.
“확보해야 할 건 마석이 아니라 영초.”
한율은 고개를 흔들었다.
레스트가 원하는 것은 마석이 아니라 영초였다. 그러니 확보한 마석을 판매해 벌어들인 수익으로 영초를 구입해야 한다.
레스트에게 사정사정해서 영초와 마석을 섞어 거래를 할 수도 있지만…….
“쪽팔려서 고렇겐 못하지.”
쪽팔렸다.
두 번째에도 꼼수를 써서 위기를 넘겨야 한다는 것에 자존심이 상했다.
물론 마지막 날까지 방법을 찾지 못한다면 창피함을 무릅쓰고 제안하겠지만, 마지막 날이 찾아올 때까지 한율은 어떻게든 정상적으로 빚을 갚을 생각이었다.
“어찌해야 하나.”
마석은 몬스터를 토벌하면 반드시 확보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확률상으로 봤을 땐 대략 다섯 마리당 마석 하나.
거기다 E급 마석이어서 비싼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주문을 수정, 관통 후 폭발이 아닌 관통형 매직 미사일을 사용해 몬스터 사체를 온전히 보존해 판매한다면?
헌터라면 한 번씩은 거쳐 가는 E급 게이트다. 사체 판매 행위는 시간 낭비, 체력 낭비, 마나 낭비에 불과했다.
“하아, 쓰벌.”
한율이 고개를 돌려 저 멀리 있는 거대한 숲을 바라봤다.
숲속에 서식하는 몬스터, 트리니는 매우 낮은 확률로 D급 마석을 떨어트린다.
D급 마석의 가격은 E급 마석의 세 배.
“거기다 영초도 구할 수 있고.”
트리니의 서식지는 블러드 울프와는 달리 평야가 아닌 숲이었기 때문에 운이 좋으면 영초를 구할 수 있다.
“끄으응…….”
방법은 두 가지.
첫 번째는 임시 동료를 구해 함께 토벌한다.
장점은 안전을 보장받으면서 빠른 토벌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물론 현 상황에서 최악의 문제가 될 수 있는 수익이 줄어든다는 것이 단점이다.
두 번째는 이대로 트리니 서식지로 이동해 솔플을 계속한다.
장점은 빠르게 마석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과 운이 좋으면 영초를 구할 수 있다는 것,
단점은 가끔씩 D급 마석을 뱉어내는 것처럼 블러드 울프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몬스터라는 것과 거대한 평야에 흩어져 살고 있는 블러드 울프와는 다르게 한곳에 뭉쳐서 살고 있다는 것이다.
즉, 무척이나 큰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킁.”
하지만 이미 결론은 내려진 것이나 다름없다.
5일 안에 빚을 갚아야 한다.
“이래서 빚쟁이는 안 되는 거야.”
***
트리니 서식지라 불리는 숲의 입구.
“……엥? 군인?”
“전역 마크……. 아, 억울한 군저씨다.”
던전 입구보다는 적지만 휴식을 취하고 있던 헌터들이 한율을 발견하고 수군댔다.
“허허허. 억울한 군저씨라.”
홀로 게이트로 향해서였을까, 아니면 전역복을 입고 있어서였을까.
매직 미사일이라는 ‘원거리 초능력’을 사용해 블러드 울프를 토벌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한율에게 억울한 군저씨라는 별명을 붙여 줬다.
“군저씨! 벌써 트리니 숲에서 활동하세요?”
“…….”
누군가가 손을 번쩍 들고 묻자 걸음을 멈춘 한율이 쓰윽 고개를 돌려 상대를 바라봤다.
커다란 바위 위에 앉아 활을 정비하고 있는 여성.
……예쁘다.
“예. 그렇습니다.”
“헤에. 같이 사냥하실래요?”
‘예.’라고 대답하고 싶다. 안전하게 몬스터와 싸울 수도 있고, 잘하면, 아아아주 잘하면 핸드폰 번호를 연락처에 등록…….
‘아, 팔았지.’
팔았다.
입대하기 전에 팔아버렸다.
그러니…….
‘예.’라고 대답하고 싶다. 안전하게 몬스터와 싸울 수도 있고, 잘하면, 아아아주 잘하면 매일 들고 다니는 자신의 노트에 그녀의 핸드폰 번호를 적을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그럴 수 없다.
“아, 아뇨.”
억울한 군저씨 한율은 고개를 흔들며 아쉽다는 표정을 짓는 여성에게 인사를 건네고 트리니 숲으로 향했다.
“빌어먹을 빚쟁이 인생.”
빚만 없었다면!
주먹을 불끈 쥐면서 투덜거린 한율이 깊은 한숨과 함께 다시 현실에 집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