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 차원 거래(2)
차원 거래라는 능력은 사실 그대로 밝히기에는 너무 위험한 능력이다.
‘그래서 능력을 숨길 방법을 고민하고 있었는데!’
각성 능력을 확인하는 스킬창은 자기 자신만 확인할 수 있다. 그러니 차원 거래 능력을 각성했다고 신고하는 것이 아니라 마법이라는 능력을 각성했다고 신고한다.
“컴온. 익스펙토 어쩌구. 윙가로우 저쩌구. 레비오사 요쩌구…….”
한율이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유명한 주문을 중얼거리고 있을 때, 마법서로 추측되는 낡은 서적이 거래창에 올라왔다.
“아자!”
한율이 환호하며 확인란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일방적인 거래는 불가합니다.}
“아?”
[레스트: 호오. 능력명처럼 거래. 일방적으로 물건을 건네주는 후원 같은 것은 불가능하군요.]
“…….”
한율이 멍하니 거래창을 바라보다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둘러봤다.
레스트의 말처럼 일방적으로 물건을 받는다면, 그건 거래가 아닌 후원이다.
“……될라나?”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린 한율이 지갑에서 꺼낸 세종대왕님을 거래창에 올렸다.
{감정을 시작합니다. 거래 대상, 레스트의 물건 가치가 월등히 높습니다. 원활한 거래를 위해 가치를 표시합니다.}
이름: 매직 미사일 마법서(30).
설명: 1서클 매직 미사일 설명서.
레스트가 올린 매직 미사일 마법서의 가치는 30.
이름: 일만 원권(1).
설명: 대한민국 화폐.
한율이 올린 세종대왕님의 가치는 1.
[레스트: 정말 정밀한 그림이 그려진 종이군요.]
“아하.”
세종대왕님의 가치는 대한민국에서나 있다. 한율이 일만 원권을 회수하고 주변을 둘러봤다.
“니미 썅.”
갓 전역한 전직 군인.
제대 직전에 택배로 짐을 부친 전직 군인이 지갑 말고 가진 게 뭐가 있겠는가.
그때였다. 한숨을 내쉬며 거래를 뒤로 미루려던 한율이 손가락에 계속 부딪히던 동전을 꺼내 눈앞으로 가져왔다.
“…….”
한율이 조심스럽게 오백 원을 거래창에 올렸다.
이름: 오백 원(5).
설명: 대한민국 화폐.
“오, 오오.”
[레스트: 예. 5의 가치를 지니고 있는 금속이군요.]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삼천 원 주고 매직 미사일을 구입한다. 한율이 환전을 위해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그가 침대에서 멀어지기 전에 레스트가 먼저 메시지를 보냈다.
[레스트: 하지만 필요 없습니다.]
“……에?”
[레스트: 저에게 필요한 물건이 아닙니다. 저 오백 원이라는 화폐는.]
필요 없는 물건이니 바꿔 달라?
[레스트: 이것은 거래이지 않습니까.]
그래, 맞다.
정당한 요구다.
맞지만…….
뭔가 사람의 기대감을 한층 높였다가 확 떨어트리니…….
“쩝. 원하는 게 뭡니까?”
[레스트: 영초가 필요합니다.]
“영초?”
[레스트: 예. 영초가 필요합니다.]
신체 능력을 강화시켜 주는 신비로운 약초.
“돈 없어요. 나중에는 가능해도 지금은 못 구해요.”
[레스트: 각성자들은 스킬창과 감정이라는 시스템을 지원받는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
한율이 멍하니 메시지창을 바라봤다.
스킬창과 각성자를 지원하는 시스템, 감정을 언급한 이유가 뭘까.
모를 수가 없다.
직접 찾아라.
“저기요. 레스트 님.”
[레스트: 예. 한율 님.]
“차원 거래라는 능력은 공격용이 아닌데요.”
[레스트: 꼭 게이트에서 찾을 필요가 있을까요? 헌터들이 게이트 밖에서도 마나를 소모해 초능력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평범하게 휴식을 취하는 것만으로도 마나를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은 지구 전역에 마나가 퍼졌다는 것. 그렇다면 게이트 밖에서도 영초가 자랄 거라고 생각합니다.]
찾아라. 꼭 게이트일 필요가 있느냐, 지구 어딘가에서도 마나를 양분 삼아 성장하는 영초를 구할 수 있지 않느냐.
‘귀신이네. 귀신이야.’
레스트의 예상대로 영초는 게이트 내부에서만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게이트 밖에서도 영초를 구할 수 있었다.
“아니, 그래도…….”
계룡산 전역을 뒤지면 하나 정도는 구할 수 있겠지만, 걸리는 시간을 예상할 수가 없었다.
운이 좋으면 일주일, 운이 나쁘면 평생.
“레스트 님.”
[레스트: 예. 한율 님.]
“한 번…….”
그래서 첫 거래이니 좀 도와달라는 말을 하려고 할 때, 한율의 시선이 건빵 주머니로 향했다.
그러고 보니…….
장기간 몬스터를 토벌하지 않으면 몬스터가 게이트를 빠져나오는 브레이크 현상.
항적산 게이트에서 브레이크 현상이 발생했을 때 배급받은 환약.
“감정.”
이름: 혁주의 환약(20).
설명: 각성자, 혁주가 조제한 환약.
효과: 체력 회복(10%), 무통증 효과(5분).
5분간 통증을 느끼지 않도록 해 주고, 아주 미량이지만 체력을 회복시켜 주는 환약.
“그래도 회복 포션 같은 거라서 나중에 팔아먹으려고 했는데…….”
짧고 미량이다. 하지만 포션은 포션이라고 가격이 꽤 나갈 것이라 판단해 챙겨 두었던 혁주의 환약이다.
“레스트 님.”
[레스트: 예. 한율 님.]
“제가 가진 게 이거밖에 없어서 그런데, 요거랑 오백 원으로 해 주시면 안 될까요?”
[레스트: 상관없습니다.]
“……어? 정말요?”
[레스트: 예. 대신 저도 딱 한 번, 같은 방식을 사용하겠습니다.]
“…….”
어떻게 보면 꼼수다. 하지만 서로가 이해하고 합의하는 것이라면 그 꼼수도 엄연히 거래라고 할 수 있다.
“좋습니다.”
거래를 수락한 한율이 다시 한번 확인란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툭.
사라지는 거래창, 그리고 침대 위에 떨어지는 낡은 서적.
“오, 오오.”
한율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전역 당일에 각성한 억울함도, 전역을 했음에도 군 인근에 머무르고 있다는 것도 이 순간만큼은 잊었다.
[레스트: 대화를 나눌 수 있으니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예! 스승님!”
***
한율은 오늘 아침에 일어난 사건 때문에 그런 생각을 했다.
만약 상태창이라는 것이 존재하고, 사람의 신체 능력을 수치로 표시한다면 자신의 ‘운’ 스탯은 마이너스가 아닐까.
물론 한율은 그 생각을 하고 몇 초도 채 지나지 않아 바로 실소를 터트렸다. 전 세계에서 20%에 불과한 헌터가 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지만…….
레스트의 도움을 받아 마나 호흡법, 그리고 매직 미사일을 습득했을 때, 한율은 그 생각이 사실이 아닐까 하고 심각하게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거래 대상, 레스트와 각성자, 한율의 기술 거래를 확인했습니다. 일방적인 거래입니다.}
[레스트: 호오.]
“이런 씹.”
{기술, 매직 미사일 및 마나 호흡법은 가치 40, 60에 해당됩니다.}
[레스트: 호오, 호오.]
“시벌, 마법서보다 가치가 높네. 아, 높은 게 맞나? 맞겠네.”
{3일 동안 일방적인 거래가 유지될 경우, 30일간 거래를 할 수 없으며, 총 3번에 일방적인 거래가 확인될 경우, 레스트와의 거래가 종료됩니다.}
[레스트: 저도 이유가 있어 차원 거래라는 능력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방법이 있겠습니까?]
3번이라는 기회가 있다. 하지만 거래 종료라는 최악의 상황까지 맞이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인지 감탄을 하던 레스트는 바로 해결 방법에 관해 물었다.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닌데요.”
[레스트: 다행이군요.]
“그런데 레스트 님.”
[레스트: 예, 말씀하시죠.]
“원래 이렇게 비싸요?”
[레스트: 매직 미사일과 마나 호흡법 말입니까?]
“네.”
[레스트: 일반적인 마나 호흡법, 그리고 매직 미사일이 아닙니다.]
일반적인 게 아니면 뭔가 문제점이라도 있는 건가?
한율이 인상을 살짝 찌푸린 채로 바라볼 때, 안심할 수 있는 메시지가 나타났다.
[레스트: 마나 호흡법은 일반적인 마나 호흡법보다 3할 더 흡수할 수 있는 개량한 마나 호흡법이며, 매직 미사일은 시전 속도를 3할 낮추고, 위력을 2할 높인 개량한 매직 미사일입니다.]
“오, 좋은 쪽이군요.”
그때였다.
안 좋은 쪽이 아니라는 것에 안심을 한 한율이 부드러운 미소로 대답하던 바로 그때였다.
{거래 대상, 레스트의 차원을 확인합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개량된 마나 호흡법, 개량된 매직 미사일인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가치를 정정합니다.}
“……어?”
[레스트: 음?]
{기술, 레스트의 매직 미사일의 가치가 40에서 50으로 정정됩니다.}
{기술, 레스트의 마나 호흡법의 가치가 60에서 80으로 정정됩니다.}
{5일 안에 각성자, 한율은 가치 130에 해당되는 물건을 각성자, 레스트에게 지급하기 바랍니다.}
“시벌?”
[레스트: 호오?]
40에 해당되는 매직 미사일의 가치는 50으로 올라갔고, 60에 해당되던 마나 호흡법의 가치는 80으로 올라갔다.
[레스트: 몰랐으면 정정될 일이 없었겠군요. 하하하하하.]
“허, 허허, 허허허.”
즉, 물어본 내 탓이다. 물어보지 않았다면 30을 추가로 지급해야 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레스트: 한율 님. 다시 한번 묻겠습니다. 가능합니까?]
“방법은 있어요. 있는데……. 시벌. 아오!”
있다. 땅이 꺼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고 방법은 있다.
“……레스트 님. 닷새 동안 연락이 없을 겁니다.”
[레스트: 이해합니다.]
“뭐, 시스템이 알려 주겠지만 한 달 뒤에 볼 수도 있습니다.”
[레스트: 그것도 이해합니다. 고생하십시오.]
자신을 배려해 준 것일까.
한율은 먼저 작별 인사를 건네는 레스트에게 똑같이 작별 인사를 건네고 바로 마나 호흡법을 외웠다.
***
“끄으응!”
기지개를 켠 한율이 고개를 돌려 벽에 걸린 시계를 확인했다. 침대에 누워 잠을 자는 대신, 화장대 앞에 앉아 노트 위에 펜을 끄적였다.
5시 30분.
“좋아. 씻기 전에 한 번.”
30분이면 씻는다. 그래서 한율은 테이블 앞에 앉아 작은 노트에 작성한 글을 확인했다.
1. 헌터 등록 시 각성 능력을 차원 거래가 아닌 마법으로 신고한다.
2-1. 헌터가 성장하면, 초능력도 헌터의 성장에 맞춰 강해진다.
2-2. 마법이 강해지는 것이 아닌, 차원 거래 능력이 강해진다.
3. 전투 능력자는 브레이크 현상 발발 시 강제 참석이니 힘을 기른다.
헌터, 한율이 각성한 능력은 마법이 아닌 차원 거래.
게이트를 밥 먹듯이 드나들어도, 몬스터를 토벌하며 하루하루를 보내도, 성장에 맞춰 강해지는 능력은 마법이 아니라 차원 거래였다.
‘내가 각성한 능력은 차원 거래다. 마법이 아니다.’
자연스럽게 스킬창을 열어 각성 능력을 확인한 한율이 다시 작성한 내용을 확인했다.
4. 레스트와 거래해 마법을 습득한다.
5. 마법을 배우기 위해서는 영초, 영약이 필요하다.
6. 영초, 영약을 구입하고, 구입한 영초, 영약을 판매해 마법을 습득한다.
“즉, 해야 할 일은 헌터 등록 시 마법사로 등록하고, 마법사로서 성장하기 위해 돈을 벌어 영초 영약을 구입하고, 구입한 영초 영약을 판매해 마법을 습득한다.”
뭐,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은 빚을 갚는 것이지만…….
“허허허.”
전역 당일에 각성한 것도 모자라 빚쟁이가 되어 버렸다.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린 한율이 노트를 덮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몸을 씻기 위해 움직이는 대신 천천히 손을 뻗어 노트 마지막 장을 펼쳤다.
첫 장을 펼치는 대신 마지막 장을 펼쳐 가장 먼저 작성한 글.
헌터가 아님에도 실전을 경험한 한율이었기에 가장 먼저 작성한 글.
노트를 꺼내 글을 적을 일이 생기면, 해야 할 일을 잊어서 노트를 꺼내면 한 번씩 읽기로 마음먹은 글.
☆. 지구는 몬스터와 게이트의 침략으로 위험한 상황이다.
한율은 마지막 장에 적힌 글을 읽고 샤워실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