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거래로 강해지는 헌터님-1화&프롤로그 (1/221)

프롤로그

드라마를 보다 보면 흔히 나오는 장면이 있다.

너무 억울한 나머지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에 쓰러지는 장면.

너무 억울한 나머지 말이 나오지 않아 입만 벙긋거리는 장면.

“미, 미친.”

“와…….”

“진짜 억울하겠다.”

균열이 일어난 공간, 게이트에 들어가 몬스터를 토벌하는 초능력자, 헌터.

몬스터와 싸우고, 각성 범죄자와 싸우는 그들에게는 다양한 혜택이 주어진다.

“시, 시바.”

그중 대한민국 남성이라면 누구나 부러워하는 혜택이 있다.

“어째서 지금이냐고!”

병역 면제.

“어째서!”

충청남도, 계룡시 신도안면에 위치한 계룡대 입구.

몬스터의 출현으로 복무 기간이 3년으로 늘어난 탓에 3년을 꽉꽉 채우고 방금 전역을 명받은 사내.

“어째서어어!”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무릎을 꿇은 한율은 그렇게 울부짖으며 각성을 맞이했다.

{차원 거래 능력을 각성했습니다.}

001 차원 거래(1)

어느 날, 이해할 수 없는 기이한 현상이 전 세계에서 일어났다.

유리에 금이 간 것처럼 하늘에 균열이 일어난 것이다.

“수많은 국가에서 세계 곳곳에서 일어난 이 현상을 파악하기 위해 조사단을 파견했다.”

달칵.

SF영화나 판타지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말도 안 되는 현상이다. 조사단은 그 어떤 것도 알아내지 못했고, 그렇게 공간 균열 현상이 일어나고 사흘째가 되었을 때.

“지구는 변했다.”

달칵.

지구에 급격한 변화가 찾아왔다.

공간 균열 현상이 발생한 장소에 타원형 검은 공간이 나타난 것이다.

물론 여기서 그치면 다행이라 할 수 있다.

직접적인 피해는 없으니까.

“문제는 30일 후.”

달칵.

검은 공간이 나타나고 30일 후에 문제가 발생했다. 갑작스레 나타난 검은 공간에서 영화, 또는 게임에서나 나올 법한 괴물들이 튀어나와 인간들을 습격한 것이다.

“물론 위기만 찾아온 것은 아니다.”

달칵.

초능력자의 등장.

“수많은 가설이 나왔지만 가장 사람들이 신뢰하는 가설은 지구가 만든 보호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검은 공간과 몬스터의 침략을 막기 위해 지구가 초능력자를 만들었다.

게임 시스템을 예로 들어 만든 것처럼 자신의 능력을 확인할 수 있는 스킬창 시스템.

물건의 효과를 알아볼 수 있는 감정 시스템.

특수한 상황이 찾아올 경우, 헌터의 이해를 돕기 위해 문자로 상황을 설명해 주는 설명창.

각성자의 눈에만 보이는 홀로그램이 각성자를 ‘지원’하기 때문에 검은 공간, 그리고 몬스터와 함께 찾아온 현상이 아닌 지구가 자체적으로 만들어 낸 현상이라고 추측한 것이었다.

충남 계룡시 의리 PC방.

마우스를 이리저리 놀리던 한율이 다시 한번 자신의 인생을 떠올리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시바아…….”

검은 공간, 일명 게이트라 불리는 공간과 몬스터의 출현으로 계속해서 짧아지던 대한민국의 군 복무 기간이 늘어났다.

육, 해, 공 모두 3년으로…….

그렇다면 그냥 복무 기간만 늘어난 것일까?

아니다. 몬스터와 게이트의 등장으로 병사들은 ‘정신 상태 검사’를 받고, 검사에 통과하면 환상 능력자가 만들어 낸 ‘현실과 같은 환상’ 속에서 훈련을 한 뒤에 실전에 투입된다.

한율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마우스를 움직여 라면과 핫바를 주문하고 다시 모니터에 시선을 집중했다.

각성자, 헌터들은 브레이크 현상, 일명 게이트 폭주 현상이 일어나면 최전방에 서서 몬스터와 싸워야 한다.

그래서 국가가 헌터들을 위해 많은 혜택을 주는 것이기도 하고.

“시바. 병역 면제…….”

생각할수록 열 받네.

복무 중에 각성하면?

그대로 전역이다. 그런데 하필 복무 중도 아닌, 전역 당일에 각성했다.

솔직히 존나 억울했다.

“그래, 이미 일어난 일이니 그러려니 하자. 하지만.”

헌터 협회 홈페이지를 둘러보던 한율이 스킬창을 열어 각성 능력을 확인했다.

이름: 차원 거래.

설명: 타 차원과 거래할 수 있습니다.(거래 대상을 찾고 있습니다.)

“상인이냐?”

전투 능력이라면 마음이 놓였을 것이다. 전투와 관련된 초능력이었다면 몬스터를 토벌하며 돈을 벌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하지만…….

“전역 당일에 각성한 능력이 거래라니.”

한숨을 내쉰 한율이 다시 마우스를 움직였다.

달칵.

“……어머, 시바?”

공지사항에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내용.

{각성자는 일주일 내로 헌터 협회에 등록해야 합니다. 불이행 시 3년 이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습니다.}

“…….”

초능력?

각성했다.

그래, 각성했지만…….

“이거 이대로 등록해도 되는 건가?”

게이트의 세계는 다른 차원이다.

이것은 각성자의 탄생과 마찬가지로 가설에 불과했다. 그러니 차원 거래라는 능력이 세상에 공개되면 게이트 연구자들은 개떼처럼 몰려들 것이다.

아니, 개떼처럼 몰려드는 것에서 그치면 다행이라 할 수 있다.

‘최악의 경우는 납치.’

과한 걱정일까?

회유로 바뀐 지 오래되었지만, 과거에만 해도 비전투 능력자를 대상으로 한 국가 납치 사건이 빈번히 일어났다.

“끄응. 감추는 것은…….”

각성했다는 사실을 숨긴다?

“어렵겠지.”

전역복을 입은 군인이 전역 당일, 군대 앞에서 각성했다.

“저 사람인가 봐.”

“진짜였어? 대박이네.”

“와, 진심 불쌍하다. 어떻게 전역 당일에 각성하냐.”

이미 퍼질 대로 퍼졌을 것이다. 몇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PC방 손님 모두가 자신의 각성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분명 면회 온 사람이 찍었겠지.’

사람들은 헌터를 부러워한다. 하지만 PC방에 있는 사람들은 한율을 보고 딱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뜰까?

집에 갈까?

아니다. 이미 인터넷을 통해 각성 사실이 널리 널리 퍼졌을 것이다. 전 세계까지는 아니어도 국내에서 자신의 각성 사실을 모르는 이는 없을 테니 대책을 세우고 움직이는 게 좋았다.

툭툭.

“음?”

헌터 협회 홈페이지를 살피던 한율이 어깨를 두들기는 누군가의 행동에 고개를 돌렸다.

“서비습니다.”

빙긋 웃는 알바생, 그가 양손으로 들고 있는 쟁반 위에는 주문한 라면과 핫바, 그리고.

“만두…….”

만두.

단무지도 있다. 그것도 많이.

김치도 있다. 그것도 많이.

“파이팅!”

“……아, 예. 파이팅…….”

***

{거래 대상, 레스트와 연결합니다.}

{상대의 수락을 기다립니다.}

{언어가 다릅니다. 목소리가 메시지로 변환되어 거래 대상에게 전해집니다.}

오랜 기다림 끝에 다시 나타난 설명창.

하지만 이번에도 너무 안 좋은 시간대에 도착했다.

대전으로 가는 버스 앞.

“아오 씹.”

작은 목소리로 욕설을 뱉은 한율이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음? 안 타십니까?”

“아, 네. 볼일이 생겨서요.”

취이익.

고개를 갸웃했던 버스 기사가 버스 문을 닫고 다시 액셀을 밟았다.

한율은 멍하니 떠나가는 버스를 바라보다 깊은 한숨을 내쉰 뒤에 벤치에 앉아 주변을 둘러봤다. 방금 버스가 떠나서 그런지 사람은 없었다.

[레스트: 이건 또 무슨…….]

설명창이라 불리는 푸른색 홀로그램 아래, 녹색 홀로그램.

“으음. 안녕하세요?”

잠시 고민하던 한율이 일단 인사를 했다.

상대가 누군진 모르지만, 적어도 예의를 갖춰 손해날 것은 없다.

[레스트: 허, 이게 무슨.]

“저는 차원 거래라는 능력을 각성한 한율이라고 합니다. 레스트 님. 저랑 거래하실래요?”

대답은 없었다.

하지만 이내 반응이 왔다.

[레스트: 각성은 뭐고, 차원 거래는 뭡니까?]

“……많이 당황할 줄 알았는데.”

[레스트: 이해할 수 없다고 해서 현실을 부정할 수는 없으니까요.]

“오, 오오.”

이성적인 사람이다. 그리고 말투부터 ‘나 똑똑함’이라고 알려 주고 있다.

차원 거래라는 능력은 일방적으로 상대와 거래를 하는 능력이 아니다.

협의하에 거래하는 능력이다.

그래서 한율은 설명했다.

지구의 상황을, 갑작스러운 위기에 찾아온 기적, 헌터의 각성을.

[레스트: 흐음, 마나도, 몬스터도 없던 세상에 몬스터가 살고 있는 게이트라는 것이 나타났고, 그에 맞춰 이능력을 사용하는 각성자가 탄생했다?]

“네.”

[레스트: 한율 님은 몬스터를 토벌하는 각성자가 되었고, 그 능력이 차원 거래다?]

“굿. 깔끔하게 정리하셨네요.”

[레스트: 굿?]

“아닙니다. 네, 맞습니다.”

설명을 마쳤다. 이제 레스트의 결정만이 남았을 뿐.

[레스트: 흐음. 한율 님.]

“네.”

[레스트: 시간 많으십니까?]

“……시간요?”

[레스트: 예. 일단 차원 거래라는 능력을 자세히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차원 거래라는 능력을 알아본 뒤에 거래를 수락하든지 거절하든지 결정하겠다?

이해한다.

레스트의 입장에서는 뜬금없이 상행로를 튼 상인이 일방적으로 거래하자고 제안하는 것이나 다름없으니까.

문제는…….

잠시 대화를 중단한 한율이 주변을 둘러봤다.

3년.

외출 또는 외박을 통해 익숙해진 도시, 계룡시.

“하아. 잠시만요.”

뭘 하든 일단 대전에서 하려고 했다.

한율은 깊은 한숨을 내쉰 후, 대화창을 닫고 모텔로 향했다.

***

{거래 대상 후보, 레스트가 거래를 수락합니다.}

3시간.

오랜 대화 끝에 나타난 설명창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한율이 묘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 레스트의 메시지가 다시 나타났다.

[레스트: 그럼 능력명처럼 거래를 해 볼까요?]

“아, 그럴까요?”

[레스트: 흐음, 일단 이걸 물어봐야겠죠. 원하시는 물건이 있으십니까?]

“그쪽 차원이 어떤 차원인지 모르는데요.”

능력 확인에 집중했다. 그래서 서로에 대해서 알고 있는 건 이름이 전부였다.

[레스트: 아, 그렇군요. 어디 보자. 일단 제가 판매할 수 있는 상품은 마법서입니다.]

“그렇…….”

몰래 장사나 하면서 살아야 하나.

그런 생각을 하던 한율이 다시 메시지창을 확인했다.

“예?”

[레스트: 예. 대화가 가능하니 마법을 가르쳐 드릴 수도 있죠.]

“……아, 아니아니. 마법? 마법이요?”

[레스트: 그렇습니다. 아직 제 소개를 하지 않았군요. 2서클 마법사, 레스트라고 합니다.]

“…….”

마법?

[레스트: 음? 한율 님? 계십니까?]

마법!

“이, 익스펙토 어쩌구?”

[레스트: 예?]

“윙가로사 저쩌구!”

[레스트: 윙가로사?]

“그게 아니면 매직 미사일, 파이어볼 같은 마법인가!”

[레스트: 익스펙토 어쩌구가 무슨 주문인지는 모르겠군요. 파이어볼이나 매직 미사일이라는 마법명이 그대로 전해지는 것을 보면 번역에는 문제가 없는 것 같은데.]

“……아뇨. 아무것도 아닙니다.”

상대가 눈앞에 있는 것도 아님에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한율이 메시지창을 바라보며 눈을 반짝였다.

차원 거래.

자신이 각성한 이 차원 거래라는 능력은 세상에 알려져서는 안 되는 능력이었다.

보물도 지킬 힘이 있어야 보물.

마찬가지로 능력도 지킬 힘이 있어야 ‘자신의 능력’이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분수에 맞지 않는 보물은 자칫 화가 될 수도 있다.

“마법을 가르쳐 주십시오!”

메시지로 변환된다. 큰 목소리로 외쳐도 상대가 알지 못하겠지만 한율은 큰 목소리로 부탁했고, 이내 거래창이라는 이름을 가진 직사각형 홀로그램이 나타나자 주먹을 불끈 쥐고 기다렸다.

“와라와라와라와라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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