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꿈속에서 마법을 훔치는 마법사-200화 (완결) (200/200)

황금빛을 머금은 먹구름은 즉시 화답했다.

전에 없이 격렬하게 번쩍이며 무수한 벼락을 뿌려대기 시작했다.

─쩌저저저저적!!

─꽈르르르르르르릉!!

[금일 사용 가능한 ‘하늘의 분노’ - 0회]

세상을 멸망시킬 기세의 전기 폭풍에 제일 먼저 적중당한 것은 먹구름과 가장 가까이에 있던 워린레이크였다.

“크오오오!!”

워린레이크가 벼락에 맞아 지상으로 추락하는 와중에도 하늘은 계속 분노했다. 그는 지면으로 떨어질 때까지 끊임없이 벼락을 맞았다.

“크아아아아!”

군단장도 예외는 아니었다. 방비하지 않은 공포의 군단장은 진즉 나가떨어졌고, 장막을 생성해내 방어를 시도했던 절망의 군단장도 얼마 버티지 못하고 하늘의 분노를 맞이해야만 했다.

─꽈르르릉! 꽈릉! 꽈릉!

하늘은 쉴 새 없이 울었고,

무수한 벼락이 가격한 지축은 뒤흔들렸다.

더 이상 공중에 떠 있는 존재는 없었고,

지상에 있는 모든 생명체는 바닥에 쓰러졌다.

물론 모든 생명체라 함은 나도 포함됐다.

‘어어...?’

몸 안의 모든 마나가 엄청난 속도로 빠져나가며 아찔한 현기증이 찾아왔고, 휘청거리다가 나도 결국 넘어졌다.

내가 넘어지는 순간 하늘의 분노도 멎으며,

세상은 거짓말처럼 고요해졌다.

“.......”

그리고 곧, 메시지가 떠올랐다.

[축하합니다! 드래곤을 처치하여 최종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

“......? 뭐야, 이게 다야? 보상 없어? 최종 퀘스트를 끝낸 건데? 너도 죽여줘? 어!!”

미친놈처럼 허공을 향해 버럭버럭 소리 지르는 내 앞으로, 한 줄의 메시지가 더 떠올랐다.

[게임을 종료하시겠습니까?]

에필로그

전 대륙을 관통하는 소문이 있었다.

대륙 서쪽 어딘가의 산맥에서 대악마가 강림할 뻔했었다는 소문이.

얼핏 들어봐도 세상이 발칵 뒤집어질 만한 대사건이었으나, 목격자가 워낙 적은 탓에 정확한 내막을 아는 자 없이 소문만 무성할 뿐이었다.

그저 ‘대악마가 강림할 뻔했었다’라는 유일한 명제에 온갖 추측이 더해지며 재생산된 소문은 대륙 널리 널리 퍼졌고, 엘디니아 왕국의 동쪽 변방에 있는 작은 도시 케른헴에도 흘러 들어왔다.

“그런데 자네들, 그 소문 들었나?”

“무슨 소문 말이오?”

“한 달쯤 전인가?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대악마가 강림할 뻔했었고, 누군가가 그것을 막아냈다는 소문 말일세.”

케른헴의 어느 술집에서 술잔을 기울이고 있는 용병들의 대화 주제도 이것이었다.

“아, 그거 말이오? 그걸 모르는 사람도 있나. 물론 들어 봤소. 드래곤이 저지해냈다지?”

누군가가 그렇게 대답하자, 다른 용병들이 끼어들며 반론을 제기했다.

“무슨 소리십니까? 신께서 해결해주셨다고 하던데. 정확히는 신이 아니라 신탁을 받은 세르시아 교단군이 나서서 해결했다고 합니다.”

“아니? 내가 듣기로는 용족이 막았다고 하던데? 다들 용족이 강한 건 알지? 왜, 옆 도시인 카트카에도 티안브리스라는 용족이 쳐들어왔었잖아. 그 강력한 용족 수백이 모여서 악마 군단을 물리쳤대.”

소문은 어떤 경로로 누구를 통해 들었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었기에, 이들의 주장은 서로 엇갈렸다.

“어허, 드래곤이 저지했다니까 그러네. 고위 악마를 드래곤이 아니면 누가 상대할 수 있겠나?”

“신이요. 신성한 힘을 받은 교단군이라면─”

“아니, 내 말이 맞다니까? 용족이 마물을─”

술자리에서의 논쟁이 늘 그렇듯, 이들의 논쟁도 논리 따위는 잊어버린 채 누구의 목소리가 더 크냐의 싸움으로 변질됐다.

그러자 처음에 이 주제를 꺼냈던 중년의 용병이 동료들을 진정시키며 입을 열었다.

“자자, 진정들 하시게. 자네들이 말한 것 중에 틀린 건 없으니까. 다만 가장 중요한 인물이 하나 빠졌지.”

“가장 중요한 인물...? 그게 누구요?”

중년의 용병이 무언가 알고 있는 듯 보였기에, 술자리에 있던 모든 이들의 이목이 집중됐다.

“내가 개인적으로 좀 아는 사제님에게 들었는데 말일세... 크흠! 그러니까 그게 누구냐면... 크흠! 아, 이거 목이 칼칼해서 말이 잘 안 나오는구먼.”

“.......”

“.......”

능청스럽게 헛기침을 해댄 뒤 꾹 닫힌 그의 입은, 동료들이 돈을 모아 맥주를 한잔 사주고 나서야 다시 열렸다.

“이제 빨리 말해보시오, 형씨. 그 중요한 인물이란 게 대체 누구요?”

“크으, 시원하군! 자네들도 한 번쯤은 이름을 들어봤을 걸세. 엘 아이일 백작이라고, 백작이 되기 전에는 그냥 엘이라고 불리던 사내지.”

그의 입에서 ‘엘’이라는 이름이 나오자, 몇 명의 용병이 탄성을 내지르며 아는 체했다.

“아, 알죠! 케른헴 출신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사람 아닙니까? 케른헴에서 하급 모험가로 시작해 반역자를 처단하고 현 국왕을 왕으로 추대한 입지전적인 인물인데 말입니다.”

“성자라는 직함을 빼놓으면 섭하지. 나도 그 사람 때문에 케른헴으로 활동지를 바꾼 거 아니겠냐. 여기가 아무래도 터가 좋은 것 같아서 나도 출세 좀 해보려고.”

“......엘? 나는 처음 듣는 이름이오만... 설명을 들어보니 중부의 메두사를 말하는 것 같군.”

얼추 다 알고 있는 듯하자, 중년의 용병은 공짜 맥주를 한 모금 마신 뒤 말을 이었다.

“다들 알고 있으니 설명하기 편하겠군. 자네들의 말대로 대악마의 강림을 막아내기 위해 드래곤, 용족, 그리고 세르시아 교단군과 성자가 나섰었다고 하네.”

“뭔가 안 어울리는 조합이군요.”

“그렇긴 하지. 아무튼 대악마의 강림을 막는 데에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드래곤이라고 하네. 드래곤이 강림 의식을 치르던 고위 악마의 숨통을 끊어버렸다더군.”

그러자 드래곤 설을 주장했던 용병이 그것 보라는 듯 의기양양하게 나섰다.

“역시 내가 옳았군. 그런 일이 가능한 건 드래곤뿐이지. 그런데... 어째서 드래곤이 아니라 그 엘이라는 사내가 가장 중요한 인물이라는 거요, 형씨?”

“말은 끝까지 들어봐야지 이 사람아. 지금부터 하려던 이야기는 세르시아 교단 내에서도 아는 사람이 별로 없는 고급 정보거든.”

고급 정보라는 말에 용병들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용병에게는 정보도 경쟁력이기 때문이다. 흔치 않은 정보를 가지고 있다면, 지금 이 중년의 용병처럼 공짜 맥주 정도는 거뜬히 얻어먹을 수 있다.

“대악마의 강림을 저지한 드래곤이 무리한 요구를 했었다더군. 자기 덕분에 인간들이 살아남았으니, 인간들은 자신을 섬겨야 한다면서 말일세. 막대한 공물을 강요하고 심지어는 각 왕국의 왕족 여성을 첩으로 삼겠다고 협박했었지.”

“그, 그게 무슨... 그럼 드래곤이 대악마와 다를 게 뭐란 말이오?”

“똑같은 놈들이지. 인간 알기를 우습게 아는 것들. 그래서! 그 부당함을 참지 못하고 성자가 나선 걸세.”

테이블에서 오오오, 하는 탄성이 터져 나왔다.

“성자도 처음엔 대화로 풀어보려고 했지. 하지만 자네들도 알다시피 드래곤이 얼마나 포악한가? 그 성격에 대화 따위는 통할 리가 없었고, 결국은 싸움으로 번졌다네.”

“드, 드래곤과 싸웠다고요? 인간이?”

“어디 드래곤과 싸웠다 뿐이겠나. 칼을 뽑은 김에 아예 남아 있던 악마들까지 깡그리 정리했지. 개중에는 악마 군단장이라는 고위 악마도 둘이나 있었다더군.”

“.......”

도무지 믿기지 않는 이야기에 용병들은 반신반의하는 얼굴로 한동안 입을 다물고 있었다.

머지않아 침묵을 깨고 한 용병이 따지듯 물었다.

“......이보시오, 형씨. 지금 그걸 믿으라고 하는 소리요? 한 명의 인간이 드래곤을 잡은 것도 모자라 악마들까지 몰살시켰다고?”

“그렇다니까. 나도 믿기지 않네만, 세르시아 교단의 사제님으로부터 직접 들은 이야기라네.”

“흥, 소문이 부풀려진 거 아니겠소? 전부터 느낀 거지만, 중부의 메두사 관련된 일화들은 과장이 너무 많이 섞인 것 같단 말이지.”

“소문이 아니라 사제님에게 들은 거라니까 그러네.”

“하! 맥줏값은 돌려받지 않을 테니 적당히 우기시오, 형씨.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시오? 그럼 그 대단한 업적을 일궈낸 엘이라는 작자는 지금 대체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소?”

그의 의문은 타당한 것이었다.

정말로 그런 대단한 일을 해냈다면 소문이 좀 더 명확하게 났어야 했다. 대중들 앞에 나서서 자신이 해낸 일을 공표하면 모두가 그를 영웅으로 칭송해줄 텐데, 공표는커녕 그의 소식을 들어본 적도 없었다.

“그게... 내게 이 이야기를 해주신 사제님도 그자의 행방은 모르겠다고 하시더군. 교단군도 대악마의 강림이 저지된 현장에만 있었을 뿐, 성자와 드래곤이 싸울 땐 그 자리에 없었거든.”

“행방불명 됐다는 말이오?”

“말단 사제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한 모양이야. 드래곤과 함께 전사했다거나, 지옥으로 빨려 들어갔다거나 하면서 말일세. 뭐, 성녀님 정도의 고위관계자라면 아실지도 모르겠군.”

중년의 용병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하자, 그에게 따지듯 묻던 용병이 입맛을 쩍 다셨다.

“쩝, 드래곤을 잡았다면서 정작 그 일을 해낸 사람은 사라졌다고 하고, 그 증거인 사체에 관한 이야기도 없고... 아무래도 세르시아 교단에서 영웅을 하나 만들려고 허황된 정보를 퍼트리는 모양이군.”

“어허, 이 친구 이거 큰일 날 소리를 하는구먼? 그런 말을 함부로 했다가는 교단으로 끌려가.”

“틀린 말도 아니잖소? 아무튼 이 이야기는 그만하고 다른 이야기나 합시다. 이곳 케른헴에도 이제 통치하는 영주가 생긴다던데.”

“그래, 잘된 일이지. 케른헴도 영주 없이 굴러가기엔 너무 커져 버렸지 않은가? 어떤 귀족 나리가 영주로 오실지는 모르겠지만, 기왕이면 우리 같은 평민을 헤아릴 줄 아는 분이─”

그들은 금세 대악마와 드래곤, 엘에 관한 이야기는 잊어버린 채, 새롭게 부임해오는 영주를 주제로 떠들어댔다.

그렇게 한동안 왁자지껄하게 대화를 나누던 중, 세르시아 교단이 퍼트리는 소문에 대해 부정적이었던 용병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 볼일 좀 보고 오겠소.”

술이 제법 들어가 알딸딸한 그는, 소변을 보기 위해 비틀거리며 술집의 출입문으로 향했다.

땅바닥을 보고 걷던 그가 출입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려는 순간,

─퍽!

새롭게 술집으로 들어오는 일행 중 누군가와 어깨를 부딪쳤다.

바닥을 보고 걸은 자신이 잘못한 것이기에 사과하려던 그는, 상대의 차림새가 모험가와 유사하다는 것을 알아채고 마음을 바꿨다.

“어이, 눈 똑바로 뜨고 다녀. 모험가가 용병을 봤으면 알아서 길을 비켜줘야지.”

“.......”

부딪친 상대는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자신을 응시했다. 그리고는 곧 입꼬리를 씨익 올리며 뜬금없는 소리를 해댔다.

“왜 인사를 하지 않았지?”

“뭐? 갑자기 무슨 개소리─”

“왜 인사를 하지 않았지?”

미친놈인가? 용병은 인상을 팍 구기며 모험가를 향해 으름장을 놓았다.

“......뭐야? 네놈이 누군데 인사를 하라 마라야? 죽고 싶어?”

그러자 모험가는 피식 웃으며, 자신의 일행을 향해 말했다.

“내가 누구냐는데? 야, 테도린. 내가 누구야?”

지명 당한 사내가 앞으로 걸어 나와 고압적인 자세로 용병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똑똑히 들어라! 이 머저리 같은 용병 놈아! 이분께서는 메두사로부터 케른헴을, 용족으로부터 카트카를 지켜낸 수호자이시며, 세르시아 님과 직접적인 소통이 가능한 성자이시고, 눈을 마주친 상대는 잔혹하게 살해해버리는 무자비한 중부의 메두사이기도 하시며, 국왕을 시해하기도 하고 옹립하기도 하는 모순적인 분이신데다가, 용족의 새로운 지배자로 등극하였고, 인간을 위해 사악한 드래곤을 손수 처단하여 드래곤 슬레이어의 칭호를 획득하신, 엘 아이일 백작님이시다!”

장황한 설명이었지만, 엘은 한 가지를 지적했다.

“야, 그거 빼먹었잖아 그거.”

“뭐 말인가? 억울한 마법사라는 거?”

“아니, 미친놈아. 영주.”

“아, 그렇군.”

테도린은 머리를 긁적이고는 벙쪄있는 용병을 향해 마저 소리쳤다.

“그리고 네놈의 그 냄새 나는 발을 디디고 있는 땅인 케른헴의 영주가 될 분이기도 하시다! 나는 이분의 오른팔이고!”

“새, 새로 온다는 영주가 엘 아이일 백작...? 해, 행방불명된 게 아니었어...?”

아연한 얼굴로 중얼거리고 있는 용병에게 다가간 엘은 다시 물었다.

“왜 인사를 하지 않았지?”

***

나는 게임을 종료하지 않는 걸 선택했다.

그동안 쌓아온 명성과 업적, 힘, 권력 같은 것들이 얼마인데 이걸 어떻게 다 포기하겠는가? 심지어 이제는 퀘스트도 없으니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살 수 있는데.

‘내가 미쳤다고 이걸 다 버리고 돌아가겠냐.’

근데 퀘스트는 없지만 시스템은 남아 있었다. 여전히 마법을 쓰면 횟수를 알려주는 등 정상적으로 작동했다.

솔직히 아직도 의문투성이인 시스템이지만, 이젠 그냥 그러려니 하고 핸드폰처럼 써먹기로 했다. 핸드폰에 어떤 기술이 들어가 있는지,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지 이해하지 못해도 잘만 사용하는 것처럼 말이다.

어쨌든 그러한 시스템에 불만인 점이 하나 있다면, 최종 퀘스트를 끝내고 별도의 보상을 주지 않았다는 점이다.

‘아니, 시팔. 게임 종료를 선택하지 않는 경우도 생각해서 보상을 준비해놔야 할 거 아니야?’

하지만 뭐, 괜찮다.

내가 직접 얻어낸 보상이 따로 있었으니.

그건 바로 드래곤의 사체.

이건 진짜로 어마어마한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드래곤의 뼈와 가죽은 무구를 만드는 데에 있어서 최고의 재료였고 감히 값어치를 매기기 힘들었다. 드래곤의 모든 마나가 담겨있는 드래곤 하트는 또 어떤가? 이름만 말해줘도 연금술사들을 심장 마비로 죽일 수 있을 만한 물건이다.

무엇 하나 버릴 것이 없는 드래곤의 사체를 완전히 처분하면, 과장을 조금 보태서 어지간한 왕국을 통째로 살 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튼 이걸 처분하느라 본의 아니게 한 달이 넘도록 잠수를 타야 했었다. 용족의 도시에 틀어박혀서 거기에 있는 드워프들을 통해 사체를 분해하고 가공하느라 말이다. 물론 사체가 워낙 거대한 탓에 아직도 처분은 다 끝나지 않았다.

‘조만간 또 한 번 그 도시에 들러야 하는데... 멀어서 귀찮네. 그냥 용족들을 시켜서 케른헴으로 가져오라고 해야겠군.’

아, 맞다.

나는 용족의 지배자가 되었다.

워린레이크를 처치했으니 자연스럽게 내가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된 건데, 나는 워린레이크와는 달리 민주주의 국가에서 나고 자란 훌륭한 지성인이었으므로 용족들을 동등하게 대우해주긴 개뿔. 무력 지배 중이다. 이 새끼들도 좀 굴러봐야 한다.

아무튼.

드래곤의 사체 덕분에 나는 초반에는 유지비만 엄청나게 깨질 것이 분명해서 그 어떤 귀족도 통치하려 들지 않았던 케른헴의 영주가 될 수 있었다.

국왕이야 뭐 내가 그 땅을 달라고 하니 군말 없이 허락해줬고, 케른헴을 실질적으로 운영하고 있던 길드 연합체에서도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나는 개부자니까.

지금 이 순간에도 용족의 도시에서 드래곤의 사체가 가공되며 내 재산은 늘어나는 중이다.

“야, 테도린. 어때? 내 명품 망토가?”

케른헴의 집무실에서 빈둥거리고 있던 나는, 드래곤의 비늘로 특수 제작한 망토를 테도린에게 선보이며 물었다.

“푸른 광택이 어마어마하지? 보는 각도에 따라 빛나는 강도가 달라지니까 잘 좀 봐봐.”

“오오, 정말 그렇군? 엄청나게 고급스러워 보이지 않나! 가히 명품이라 부를 만하군!”

“드래곤의 비늘을 재료로 드워프가 만든 거니까. 나도 이제 비루한 모험가 행색은 벗어버리고 품격을 갖춰야지.”

내가 곧 케른헴의 얼굴이고 아이일 백작가의 가주인데 거지꼴로 입고 다니기는 좀 그렇다.

“드, 드래곤의 비늘? 그런 진귀한 것으로 방어구가 아니라 고작 망토나 만들었단 말인가?”

“뭐 어때? 잔뜩 있는데.”

“오옷? 그, 그렇다면 나도 하나 만들어주면 안 되겠...습니까, 백작님? 요즘 날씨가 쌀쌀해서....”

테도린은 슬쩍 말을 높이며, 팔뚝을 비벼 춥다는 시늉을 했다.

“응, 안 돼.”

“뭣?! 이런 쪼잔한 마법사를 보았나! 잔뜩 있다면서 너무한 것 아닌가? 나도 명품 망토를 갖고 싶다!”

“아무나 다 가지고 있으면 그게 명품이냐? 희귀하고 가지기 힘들어야 명품이지.”

“이익... 너무하는군! 나는 아무나가 아니잖나! 나는 억울한 마법사 네가 억울하던 시절부터 생사를 함께해온 테도린이다!”

“아니, 이놈이 감히 영주에게 말대꾸를 해? 농담이고, 망토 말고 방어구로 만들어서 줄게. 됐지?”

“충성을 다해 모시겠습니다! 백작님! 크흐흐.”

테도린이 헤벌쭉 웃고 있는 그때, 불현듯 집무실의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똑똑

─백작님. 백작님께서 초청하신 분이 찾아왔습니다.

“오, 그래? 당장 들여보내.”

내가 허락하자, 집무실의 문을 열고 한 사내가 들어왔다.

저벅저벅 걸어 들어온 사내는 내 맞은편에 앉으며 입을 열었다.

“무엇입니까, 나를 이런 먼 곳까지 부른 이유? 멀뚱멀뚱 쳐다보지 말고 즉시 설명하십시오. 이것은 긴급 상황.”

“예, 저도 반갑습니다. 아스왈드 씨.”

내가 반갑게 인사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스왈드는 또 뭐가 마음에 안 드는지 미간을 좁히며 말을 이었다.

“아직도 회복 마법사에게 치료받지 않았습니까, 강아지의 귓구멍? 당신은 부자입니다, 드래곤을 잡고 획득한 사체 때문에. 치료비는 충분한.”

“오, 아스왈드 씨도 알고 계시네요?”

딱히 어디 가서 떠벌리고 다니지는 않았는데, 아카데미에만 틀어박혀 있는 아스왈드의 귀에도 소식이 들어간 모양이었다.

“하아, 당연히 알고 있습니다, 두 달이 넘게 지났으므로. 하지만 강아지는 드래곤의 사체를 팔지 않았다. 귓구멍에 박은 것으로 추정됨.”

“오오, 알고 계시면서 말을 그렇게 하시는 거군요? 드래곤을 처치한 사람한테? 혹시 아스왈드 씨는 목숨이 두 개인가?”

“.......”

그는 잠시 흠칫하더니, 좁혔던 미간을 원위치시키면서 공손한 목소리로 말했다.

“선생님, 저를 이곳에 부르신 이유가? 저는 한달음에 달려왔습니다, 평소에 선생님을 존경하기 때문에.”

“아, 그러셨구나. 그건 몰랐네.”

나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본론을 꺼냈다.

“제가 아스왈드 씨를 부른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혹시 저를 엘프의 숲까지 안내해주실 수 있나 해서입니다.”

“......엘프의 숲? 가능합니다. 하지만 왜? 더 필요합니까, 세계수의 눈물? 그렇다면 즉시 도끼를 챙기십시오.”

아니, 이거 여전히 미친놈이잖아?

“이보세요, 제가 왜 엘프들이 신처럼 모시는 세계수에게 도끼질을 하겠습니까? 저 그런 사람 아닙니다.”

“그럼 무엇입니까, 선생님이 엘프의 숲에 가려는 이유?”

“그냥 뭐. 이제 제가 좀 자유로워졌거든요. 그래서 엘프들이랑 교류도 하고, 아케인 텔레포트 같은 신기한 마법을 다루는 엘프가 있으면 구경도 좀 해볼까 해서.”

“있습니다, 신기한 마법 다루는 엘프. 그리고 바쁜 엘프도 있습니다, 바로 여기에. 나는 바쁩니다.”

“안내해주신다면 이걸 보상으로 드리죠.”

나는 서랍에서 투명한 액체가 담겨있는 유리병을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무엇입니까, 이것은?”

“드래곤의 눈물입니다. 제가 전에 아스왈드 씨한테서 세계수의 눈물을 받았었으니 비슷한 걸로 준비해봤습니다. 이거 연금술사한테 가져다 팔면 부르는 게 값일걸요?”

그냥 맹물이다.

드래곤의 눈물 따위는 없다.

“오오!! 나는 안내합니다!!”

아스왈드는 그리 외치며 유리병을 집으려고 했지만, 내가 먼저 냉큼 낚아챘다.

“보수는 후불입니다. 괜찮죠?”

“네, 선생님. 당장 출발하는! 당장 출발하는!”

“흐흐, 좋습니다. 가시죠.”

나는 그렇게 엘프의 숲을 향해 떠났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꿈속에서 마법을 얻기 위해서. 그리고 그건 앞으로도 변함이 없을 것이다.

나는 꿈속에서 마법을 훔치는 마법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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