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퀘스트 (4)
여관의 창문 너머로 아침 해가 떠오른다.
창가로 다가가 바깥을 내다본 나는, 눈 부신 햇살에 눈을 찡그리며 중얼거렸다.
“......드디어 결전의 날이 밝았나.”
라고 무게 잡으며 비장한 어조로 말했지만 사실 과연 오늘이 결전의 날이 될지는 나도 잘 모르겠고, 그냥 기분이나 한번 내보려고 해본 소리다.
물론 오늘 드래곤을 잡을 생각이긴 한데, 잡을 만한 각이 영 안 보인다거나 예기치 못한 변수가 발생한다거나 하면 며칠 미룰 수도 있는 거니까.
일단 칼을 한번 뽑으면 돌이킬 수 없다.
워린레이크와 신나게 싸우는 도중에 ‘아, 오늘은 좀 힘드네. 다음에 죽여줄 테니 나중에 다시 봅시다.’라고 해봤자 곱게 보내줄 리가 없지 않은가? 즉, 중도 포기가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그런고로 결단은 신중하게 내려야 한다.
“흠, 그래도 웬만하면 오늘 끝내고 싶은데.”
“우움... 끝내다니? 뭘 끝낸다는 거니?”
막 잠에서 깨어난 모양인지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 앨리스가 눈을 비비적거리며 물었다.
“어? 아아, 드래곤의 목숨을 끝장낸다는 소리지.”
원래는 최종 퀘스트를 끝낸다는 걸 의미했지만, 앨리스는 내가 워린레이크를 노리고 있다는 건 알고 있어도 시스템이나 퀘스트 등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었기에 대충 둘러댔다.
뭐, 드래곤의 목숨을 끝장낸다는 것도 딱히 틀린 말은 아니고.
“오늘?? 오늘 그 포악한 드래곤과 끝을 보겠다구??”
앨리스가 화들짝 놀라며 되물었다.
“뭘 그렇게 놀라? 내가 몇 번이나 얘기했잖아. 나는 드래곤을 잡을 거라고.”
“그, 그치만 그게 오늘일 줄은 몰랐지. 그럼 나두 빨리 준비해야겠네.”
“......? 무슨 준비?”
“응? 오늘 드래곤을 잡는다며? 나두 도와줄게.”
“아, 괜찮아. 마음만 고맙게 받겠어.”
나는 손을 휘휘 내저으며 사양했다.
“뭐어? 왜? 상대는 드래곤이라구! 힘을 최대한 모아야지! 저번에 봤던 무시무시한 브레스 기억 안 나니? 나는 그 브레스 생각만 하면 아직도 자다가도 깬단 말이야.”
“그래, 브레스는 엄청나지. 흐흐흐....”
근데 그거 내가 압수했어.
“무, 뭐야. 네가 갑자기 그렇게 음흉하게 웃는 걸 보니... 뭔가 계획이 있나 봐?”
“오, 역시 앨리스! 나를 아주 잘 알고 있군! 맞아, 일단은 계획이 있으니까 나 혼자 갈게.”
나는 잔존해있는 마물 토벌에 동참한다는 명목으로 워린레이크와 용족을 따라갈 생각이다. 그리고 거기서 녀석과의 싸움이 어떤 식으로 벌어질지 확실히는 모르겠으나, 녀석이 얌전히 목을 내밀어 주지 않을 거라는 것만큼은 확실하다.
분명히 주변까지 싸움의 여파가 미칠 텐데, 그런 위험한 싸움판으로 앨리스를 데려갈 수는 없다. 그곳에는 나랑은 아무 관계가 없는, 그러니까 죽어도 상관없는 녀석들만 있어야 한다.
“앨리스, 너는 그냥 도시에 머물면서 드래곤 슬레이어의 귀환을 기다리고 있으면 돼. 기왕 기다리는 김에 용족들의 추가 토벌대 파견을 방해해주면 더 좋고.”
“방해? 그거야 할 수 있을 것 같긴 하지만... 근데 그건 왜? 용족을 더 내보내서 마물을 빨리 청소하면 더 좋은 거 아니니?”
앨리스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내가 워린레이크와 싸울 때 그놈들이 끼어들 수도 있잖아. 그래도 명색이 드래곤의 후예인데, 인간인 나보다는 드래곤인 워린레이크의 편을 들어줄 가능성이 크겠지.”
내가 최근에 용족의 도시에 머물며 자주 부대껴서 무뎌진 거지, 용족은 원래 인간에게 적대적인 종족이다.
“앗, 그렇겠네. 알겠어! 족장 회의에서 그 얘기가 나오면 내가 불을 질러서라도 반드시 방해할게!”
“좋아! 너만 믿겠다, 앨리스! 그럼 나는 마음 놓고 드래곤을 잡을 준비나 해야겠어.”
나는 최후의 결전을 위해 풀 무장을 하기 시작했다.
근데 장비를 다 갖춰 입고 보니 평소와 다를 바가 전혀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원래부터 항상 풀 무장 상태로 돌아다니던 준비된 남자였기 때문이다.
허리춤에는 검 한 자루와 각종 주머니.
몸통엔 모험가 시절부터 입었던 체인 메일.
등에는 돌돌 말면 베개로 쓸 수 있고 펼치면 이불이나 시트로도 사용할 수 있는 다용도 망토.
어떻게 봐도 허접한 검사처럼 보였지만 아무튼 이게 나의 풀 무장이다.
나는 그렇게 평소대로의 모습으로, 마물 토벌을 빙자한 드래곤 사냥을 나섰다.
***
레이븐 산맥의 어딘가.
나는 용족과 함께 마물을 토벌하고 있었다.
“키에에에엑!”
─촤악!
괴성을 내지르며 달려오는 마물에게 화염이 맺힌 검을 휘두르자, 시커먼 액체가 사방으로 튀며 녀석의 머리와 몸통이 분리됐다.
‘흐음... 마물이 좀 많은 것 같은데?’
용족의 도시로부터 그리 멀리 나오지도 않은 것 같은데,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마물이 많이 나오고 있었다.
아마 또 다른 토벌대인 세르시아 교단군이 용족의 도시와 정반대 방향에서 활동하고 있어서 그런 게 아닐까 싶었다. 교단군은 신성한 사명감을 가지고 열심히 토벌하지만, 용족은 설렁설렁해대니 이쪽에는 아직 마물이 꽤 남아 있는 모양이었다.
‘뭐, 이깟 마물이 얼마나 남아 있든 내 알 바는 아니지.’
나에게 있어서 마물 토벌은 그저 요식행위에 불과했다.
내 목표는 오직 드래곤.
마물을 만나면 기계적으로 검을 휘두를 뿐, 내 시선은 항상 워린레이크에게로 향하며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저 녀석은 이번에도 구경만 하고 있군.’
뭐가 불만인 건지는 모르겠지만, 워린레이크는 토벌이 시작된 이후부터 지금까지 팔짱을 끼고 미간을 좁힌 채 상황을 방관하고만 있었다. 이럴 거면 왜 토벌에 나서겠다고 한 건지 원.
물론 일반적인 마물 따위야 워린레이크에게는 벌레나 다름없으니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할 수도 있겠으나, 거사를 치르기 전에 조금이라도 녀석의 힘을 빼놓고 싶은 나로서는 퍽 아쉬운 일이었다.
“이번에는 저쪽으로 가보지.”
여전히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워린레이크가 어딘가를 가리키며 말하자, 옆에 있던 블루 부족장이 의아한 듯 되물었다.
“외람된 말씀입니다만... 그쪽 방향은 아까 지나오며 청소를 마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어찌하여 다시 그쪽을...?”
“......냄새가 난다.”
“예? 냄새라 하심은 어떤...?”
“내가 네깟 놈에게 모든 걸 일일이 설명해줘야 하나?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라.”
“죄, 죄송합니다.”
부족장의 얼굴에는 비위 맞춰주기 더럽게 어렵네, 라는 듯한 표정이 슬쩍 떠올랐으나 그는 이내 표정을 감추고 용족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저쪽으로 다시 간다!”
저놈도 드래곤 등쌀에 피곤하게 사는군.
아무래도 내가 워린레이크를 잡는 데에 성공한다면, 용족을 고통에서 해방시켜준 대가로 사례금을 두둑이 청구해도 되겠지 싶었다.
어쨌거나 토벌대는 이미 한번 지나온 방향으로 되돌아갔다.
그렇게 얼마간 움직였을까.
저기압을 풀풀 풍기며 앞장서서 걷고 있던 워린레이크가 돌연 자리에 멈춰 섰다. 그를 뒤따르던 토벌대도 덩달아 멈춰 섰다.
“......나와라.”
워린레이크가 뜬금없이 말했다.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신─”
블루 부족장이 고개를 갸웃하며 묻는 순간, 근처에 있던 아름드리나무 뒤편에서 번쩍! 번쩍! 하고 검은 섬광이 두 번 터져 나왔다.
“이런이런, 들켜버렸군?”
“눈치가 제법 빠른 녀석이로군. 크크크.”
‘......저놈들은?’
모습을 드러낸 것은 놀랍게도 절망의 군단장과 공포의 군단장이었다.
물론 일전의 전투에서 살아서 도망쳤다고 했으니 다시 등장하는 게 그리 놀라울 일은 아니겠으나, 무슨 삼류 악당 같은 싸구려 대사와 함께 등장한다는 것은 놀라웠다.
아무튼 워린레이크가 말했던 ‘냄새’라는 건 저 녀석들을 의미한 모양이었다.
“감히 내 영토에 제 발로 다시 찾아오다니. 설마 내게 재차 도전하려는 건가?”
워린레이크가 묻자, 군단장들은 이죽거리며 대답했다.
“그렇다. 너에게 절망을 안겨주지. 크크.”
“공포도.”
오오?
딱 봐도 한판 뜨러 온 게 분명해 보였기에 나는 기대감에 부풀었다. 저번에 이미 한 번 발린 놈들이 무슨 자신감으로 이러는지는 모르겠지만, 서로 싸우느라 힘을 소모해준다면 나야 고맙지.
“......셋이서 덤벼놓고도 패배한 주제에 둘이서 다시 덤비겠다고? 명색이 군단장이라는 녀석들이 이리도 사리 분별을 못 할 줄이야. 브레스를 또 맞아봐야 정신을 차리겠나?”
“브레스? 그걸 사용하면 저놈들도 다 죽게 될 텐데? 네놈이 아끼는 수하들 말이다. 큭큭큭큭큭큭!”
아, 그걸 믿고 까부는 거였나.
아무래도 군단장들은 이 자리에 용족이 많으니, 워린레이크가 전력으로 싸우지 못할 거라고 생각해서 까부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건 오판이다.
“우습군. 내가 이 녀석들이 어떻게 되든 눈썹 하나 까딱할 것 같은가?”
번쩍! 코웃음 치며 말한 워린레이크는 본체로 현신했다.
“걸리적거린다면 내 손으로 죽일 수도 있다!”
과연 그 말이 허언은 아니었는지, 그는 순식간에 거대한 얼음덩어리들을 생성해내서 마구잡이로 발사했다.
군단장이 그것을 피하기 위해 용족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몸을 날렸지만, 워린레이크는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고 공격을 지속했다.
─콰앙! 콰앙! 콰앙!
“이, 이런 미친 드래곤을 봤나! 네놈은 우리 악마보다도 더 지독하구나!”
거대한 얼음덩어리에 맞아 곤죽이 되어 나가는 용족을 바라보며 군단장이 아연하게 외쳤다.
인질극이 통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그들은 즉시 작전을 변경해 공중으로 날아오르며 소리쳤다.
“인간계에 남아 있는 절망의 군단이여! 지금 즉시 나의 부름에 응하라!”
“공포도!”
단답충 공포의 군단장까지 지원 요청을 마치자, 곧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됐다.
─콰드드드드득! 콰앙! 콰앙! 쿠지지직!
온갖 파괴적인 마법이 난무했다. 심지어 이 세 놈들은 공중에서 싸우고 있었기 때문에, 공격 중 상당수는 지면을 향해 떨어졌다.
“커억!”
“끄아아악!”
“사, 살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고, 강력한 세 존재의 싸움에 죽어 나가는 것은 바로 밑에 있는 용족들이었다.
얼어붙고, 터지고, 녹아버리고, 말라붙고.
지상에서는 용족들이 일방적이고 다채로운 죽음을 맞이하며 아비규환이 따로 없었으나, 공중에서 싸우고 있는 당사자들은 상당히 팽팽했다.
브레스 없이 마법만으로 군단장 셋과 싸웠을 때는 약간 밀렸던 워린레이크였으나, 이번에는 군단장이 둘 뿐인 탓에 비등비등했기 때문이다.
‘좋아, 이대로 조금만 더 시간을 끌다가 끼어들어야겠어.’
어느 쪽도 우세를 점하지 못하는 팽팽한 싸움이 오래 지속된다면 양측 모두 지칠 터. 그 순간이 내가 개입하기에 적합한 타이밍이다.
물론 말은 쉽게 했지만, 나도 마냥 한가한 건 아니었다. 저 위에서 싸우는 놈들의 마법이 나만 피해갈 리는 없지 않은가?
나는 육체 강화 마법과 쉴드로 풀 도핑을 한 채, 하늘을 주시하며 떨어지는 마법을 피하거나 막느라 몹시 분주했다.
“헛!”
정체불명의 검은 구체가 내가 있는 곳을 향해 날아들었다. 뭔지 모르는 건 피하는 게 상책이므로 회피를 택했다.
─치이이이익!
구체에 닿은 땅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며 부식하는 걸 보니 역시 피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흐아아악!”
“이, 이렇게 죽을 수는 없어!”
“모두 도망쳐라!”
나는 그런대로 잘 버티고 있었으나 대다수의 용족은 아니었다. 속절없이 죽어 나가던 그들은 결국 도주를 택했다.
“키에에에엑!”
“꾸룩... 꾸루룩....”
“캬오오오!”
하지만 그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군단장이 불렀던 마물들이 속속들이 나타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익...! 이놈들이!”
“너, 너무 많아....”
“싸, 싸우는 수밖에 없다!”
산맥에 남아 있던 마물들이 한 장소로 모이니 숫자가 상당했다. 용족 전체를 포위하기에 모자람이 없었고, 결국 용족이 울며 겨자 먹기로 싸우기 시작하며 역대급 난장판이 벌어졌다.
─쏴아아
워린레이크가 물 속성 마법을 사용하기 위해 먹구름을 불러들인 탓에, 이 일대에는 장대비가 쏟아지며 혼란을 가중시켰다.
하늘에서는 비와 함께 불가항력적인 공격이 떨어지고 사방에서는 마물이 달려드니, 정신없이 싸우느라 용족이 용족을 죽여버리는 팀킬도 부지기수로 일어났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살아남은 용족의 숫자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을 무렵, 공중에서 싸우고 있는 워린레이크와 군단장에게서 지친 기색이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를 금방 해치울 수 있을 것처럼 말하더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 드래곤!”
“지난번보다 약해진 것 같지 않은가! 역시 일전의 싸움에서 무리했었나 보군? 크크.”
사실 겉으로만 봐서는 잘 모르겠는데, 마법보다는 입으로 싸우는 빈도가 늘어난 걸 보면 지친 게 맞는 듯했다.
“......건방 떨지 마라. 내가 아직 브레스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모르는가?”
브레스라는 말에 잠시 흠칫하던 군단장은 미심쩍다는 듯 물었다.
“아직까지 쓰지 않은 걸 보면... 브레스는 네놈에게도 부담이 큰 기술인 듯한데?”
“흥, 전혀 그렇지 않다. 단지 너희들과 잠시 놀아주기 위해 사용하지 않았을 뿐. 하지만 이제는 질리는군. 슬슬 끝을 내도록 하지.”
“뭣?! 그, 그렇다면 브레스를 사용하기 전에 죽여주겠─”
─번쩍! 번쩍!
─꽈릉! 꽈릉!
순간, 먹구름 가득한 하늘에서 두 줄기의 벼락이 군단장들을 향해 내리꽂혔다.
[금일 사용 가능한 ‘콜링 썬더’ - 7회]
나는 고개를 들어, 갑작스럽게 떨어진 벼락을 맞고 당황하고 있는 군단장을 향해 말했다.
“이것들이 큰일 날 소릴 하네. 누가 누굴 죽여? 그렇게는 안 되지.”
“......? 인간?”
“미친 건가? 방금 네놈이 벼락을 쓴 것이냐?”
두 마리의 군단장은 나를 내려다보며 어이없다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그래, 내가 썼다. 너희들이 드래곤을 죽이게 놔둘 수는 없거든.”
“크, 크하하하핫!!”
“놔둘 수 없으면? 네가 막아보기라도 하겠다는 건가? 인간 주제에?”
비웃는 그들을 향해 내가 어깨를 으쓱할 때, 돌연 사람 몸통만 한 얼음송곳이 나를 향해 날아들었다.
콰앙! 황급히 몸을 옆으로 날려 그것을 피하자, 분노한 워린레이크의 음성이 들려왔다.
“죽여버리기 전에 꺼져라! 인간 따위의 도움은 필요 없다!”
“와....”
말이 안 나오는군.
도와주겠다는 사람을 공격해? 물론 도와줄 생각은 없었지만 아무튼 괘씸했다.
“도와줄 생각 없는데?”
“......? 그럼 왜 끼어든 거지?”
왜긴.
“너는 내가 죽일 거니까. 아니, 너희 전부 다 죽일 거야.”
“.......”
“.......”
“.......”
나의 뜬금포 선언에 녀석들은 모두 말을 잇지 못했다.
그렇게 잠시간의 어색한 침묵이 흐르고, 곧 하나둘씩 입을 열기 시작했다.
“이해할 수가 없군.”
“왜?”
“왜 우리 모두를 죽이겠다는 거지?”
그들은 너무나도 황당한 나머지, 분노보다는 의문이 앞서는 듯했다.
“이유? 글쎄... 나와 눈을 마주쳐서?”
내가 누군가를 죽이기에 앞서 늘 내세웠던 명분. 이 명분을 들은 녀석들의 반응은 한결같았고, 그건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미친놈.”
“정신이 나간 인간이었군.”
두 마리의 군단장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상대할 가치가 없다는 듯 잘라 말했다.
하지만 워린레이크의 반응은 조금 달랐다.
“......짜증 나는군.”
그는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듯 말을 이었다.
“겁 없이 덤벼대는 악마도... 밑에서 걸리적거리는 용족도... 미친 소리를 지껄여대는 인간도... 전부 짜증 난다. 그냥... 모조리 죽어라.”
그렇게 말한 워린레이크는 세차게 날갯짓하며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먹구름 가득한 하늘 밑에서 흉포한 기세로 아래를 내려다보는 드래곤이 주는 위압감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드래곤의 분노를 받아라!!!”
분노한 워린레이크가 입을 쩌억 벌렸다.
마치 온 세상을 집어삼킬 것만 같은 기세로,
그렇게,
그냥 쩍 벌리고만 있었다.
“저기요, 졸리세요?”
“......?! 무, 뭐지?”
한동안 입을 벌리고 있던 그는, 곧 극도로 당황하기 시작했다.
“왜, 왜 브레스를 사용할 수 없는 거지?”
“아, 브레스를 쓰려고 하신 거였어요? 난 또 하품하는 줄 알았지.”
“이,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어째서... 어째서 드래곤의 권능인 브레스가...?”
늘 오만하고 자만심 가득하던 녀석이 극도로 당황하는 모습은 퍽 볼만한 것이었기에 조금 더 구경하고 싶었으나, 또 다른 경쟁자인 군단장이 멀쩡히 살아있는 상황에서 여유 부릴 틈은 없었다.
‘드래곤과 군단장, 그리고 마물까지 일거에 처치할 수 있는 마법은....’
브레스? 아니다.
내게는 그보다 뛰어난 광역 마법이 있다.
내 전신이 황금빛으로 물들며 빛나기 시작했다.
─파직! 파지직! 파직!
눈부시게 빛나는 내 몸에서 쉴 새 없이 스파크가 튀었고, 그때마다 하늘의 먹구름이 나와 공명하듯 방전되며 번쩍거렸다.
─쿠릉... 쿠르릉... 쿠릉....
“이, 이건 또 무슨...? 먹구름이 왜...?”
브레스를 쓸 수 없어 당황하던 워린레이크는 하늘을 바라보며 당황을 이어나갔다. 그도 그럴 것이, 저 먹구름은 내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워린레이크가 자신의 물 속성 마법을 위해 생성해둔 것이었기 때문이다.
개이득.
“저, 저 마법은!!!”
쿠릉거리며 울음을 토해내고 있는 하늘을 바라본 절망의 군단장이 비명을 지르듯 외치고는, 황급히 검은 장막을 생성해냈다.
천둥의 신의 꿈속에서 봤던 장면과 유사했다. 그때도 절망의 군단장 셋이 저런 장막을 생성해 방어하려고 했었으니.
‘천둥의 신은 이때 망치로 바닥을 내리쳤었는데... 나는 망치가 없는데? 에라, 모르겠다!’
이가 없으면 잇몸이지.
나는 주먹으로 지면을 힘껏 내려쳤다.
꽈앙!! 주먹으로 쳤다고는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육중한 소리와 함께, 나를 감싸고 있던 황금빛 광휘가 먹구름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쿠르르르... 쾅! 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