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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속에서 마법을 훔치는 마법사-198화 (198/200)

최종 퀘스트 (3)

‘여긴....’

나는 어떤 산속에 있었다.

‘......어디지?’

고개를 열심히 두리번거리며 주변을 살펴봤지만, 그저 울창한 초목뿐이었기에 딱히 짐작 가는 바가 없었다.

혹시 용족의 도시가 위치해 있으며 마물 토벌이 이루어졌던 레이븐 산맥인가 싶기도 했으나, 이것 역시 막연한 추측일 뿐이었다. 내가 직접 등산한 게 아니라 산 중턱에 덜컥 소환됐는데, 어떤 산에 있는지 무슨 수로 알겠는가?

“아오, 뭔 꿈이 이렇게 심심해? 차라리 대도시 배경이 더 낫겠네.”

내가 선정한 ‘꿈의 주인을 찾기 가장 어려운 꿈’ 1위가 바로 대도시 배경의 꿈이었는데, 아무래도 순위 조정을 좀 해야 할 듯했다.

대도시는 그나마 사람들을 만나서 뭔가 물어보기라도 할 수 있지, 어딜 보아도 나무밖에 안 보이는 이 첩첩산중에서는 누구의 도움도 기대할 수 없었다. 오롯이 내 힘으로 찾는 수밖에.

‘일단 지형을 파악해봐야겠군. 혹시 여기가 레이븐 산맥이라면 의외로 쉽게 워린레이크를 찾을 수도 있으니.’

덜컥 산속에 소환됐다고 해서 여기가 어딘지 알아낼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돌아다니다가 아는 지형을 발견한다거나, 산밑으로 보이는 풍경을 통해 대충 유추해낼 수는 있다.

물론 지금 이 위치에서는 사방이 산맥으로 둘러쳐져 있어서 산 밑의 풍경이 보이지도 않았고, 설령 여기가 레이븐 산맥이라 할지라도 나는 그 산맥의 남쪽 일부분밖에 안 가봤기에 알아채지 못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지금으로서는 이 방법뿐이니 이거라도 해봐야지 뭐 어쩌겠나.

“하여튼 현실에서도 꿈에서도 영 마음에 안 드는 녀석이라니까.”

입은 툴툴거렸지만 발걸음은 몹시 경쾌했다.

무려 브레스를 훔친다고 생각하니, 너무 설레는 나머지 발이 제멋대로 움직이며 탭댄스를 추려고 했다.

사실 ‘내가 브레스를 얻는 것’은 그다지 중요한 게 아니다. 브레스가 어떤 판정을 받을지는 모르겠으나, 관련 속성이 전무한 나로서는 위력에 상당한 패널티를 받을 가능성이 크다.

그래도 강력하기야 하겠지만, 내가 사용하는 브레스와 워린레이크가 사용하는 브레스가 맞붙는다면 당연히 나의 필패다.

하지만 ‘워린레이크가 브레스를 잃게 된다는 것’에 의의가 있다. 녀석은 브레스 원툴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그것에 크게 의지하는 타입. 브레스를 잃는 것은 녀석에게 있어서 무엇보다도 치명적이다.

‘그놈이 가진 가장 강력한 무기를 못 쓰게만 만들어도 충분히 성공적인데, 내가 그 무기를 갖게 된다? 이거 완전히 사기 능력 아니냐?’

내가 마지막으로 훔쳤던 마법이 인페르노였던가.

그러고 보니 그동안은 거의 습득만 해왔지, 훔친 적은 거의 없었다. 꼬리가 밟힐 위험성이 있다거나 꿈의 주인이 아군이라거나 하는 등의 이유로 웬만해서는 습득을 선택해 왔었으니까.

‘이번에는 크게 한탕 쳐보자고. 흐흐흐.’

어쨌든 설레발은 이쯤 하기로 하고 나는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겼다.

일단은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산봉우리로 올라가서 주변을 살펴보는 게 좋을 것 같았기에 그리로 향했다.

그렇게 땀을 뻘뻘 흘리며 산을 올라가길 한참.

이곳은 꿈속이라 마법 횟수의 제한이 없어 아케인 텔레포트를 사용하면 굳이 이렇게 땀을 흘릴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았을 때, 나는 정상에 도착했다.

“아, 맨날 횟수를 아끼던 버릇 때문에 괜히 고생했네. 그건 그렇고... 어디 보자.”

나는 몸을 한 바퀴 빙 돌리며 전방위적으로 주변을 훑어봤다.

‘어라, 저건...?’

저 멀리에 있는 또 다른 산봉우리 밑으로, 누군가가 붓으로 대충 낙서한 것처럼 얼음으로 만들어진 길이 어지럽게 나 있었다.

즉, 브레스의 흔적이었다.

‘그렇다는 것은 여기가 레이븐 산맥일 가능성이 크다는 소리인데....’

저건 워린레이크가 군단장과 싸우다가 남긴 흔적이니, 저쪽이 마물이 출현했던 레이븐 산맥의 남쪽이고 내가 지금 있는 곳은 북쪽인 듯했다.

군단장과 싸운 당일인지, 아니면 하루가 지났는지 이틀이 지난 시점인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워린레이크는 악마 군단장 격퇴라는 자신의 인생 최대 업적을 달성한 이후의 꿈을 꾸고 있는 모양이었다.

뭐, 보통 최근에 커다란 사건을 겪으면 그것에 대한 꿈을 자주 꾸게 되긴 하지.

아무튼 여러모로 잘 됐다. 꿈의 배경도, 시점도 모두 내가 알고 있는 거니까. 아마 워린레이크는 지금 용족의 도시에 있을 것이다.

‘그럼 바로 거기로 가면 되겠...... 아니, 아니지.’

생각해보니 용족의 도시로 가는 것은 그리 좋은 선택이 아닌 것 같았다.

나는 워린레이크에게서 브레스를 유도해내야 하는 입장인데, 도시에 있으면 녀석이 브레스를 사용하지 않을 확률도 있다. 도시가 개박살이 날 테니까.

물론 그 포악한 놈이 용족의 재산이나 인명피해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혹시 모르지. 그래도 같은 블루 일족은 좀 특별하게 여길지도.

그 외에도 드래곤을 돕겠다고 용족이 끼어들어 나를 방해할 가능성 등을 따져보면, 내가 직접 도시로 찾아가는 것보다는 워린레이크를 한적한 곳으로 유인해내는 것이 더 좋을 듯했다.

‘일단은 그 전에 모습부터 바꾸고....’

내가 일전에 파업하겠다고 땡깡 부리며 시스템과 신경전을 벌였을 때 받은 능력 중에 이런 게 있다.

[이제부터 꿈속에서 다른 존재의 모습으로 변장할 수 있습니다.]

그동안은 딱히 쓰임새가 없어서 아직 사용해본 적은 없었지만, 이번에는 아주 유용하게 쓰일 듯했다.

악마 군단장으로 변장하면 되니까.

내가 아무리 깝죽대봤자, 워린레이크가 고작 한 명의 인간을 죽이기 위해 자신의 필살기까지 쓸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군단장에게는 브레스를 사용한다는 게 검증됐다.

‘기왕 변하는 거 덩치가 큰 놈으로 해야겠군... 근데 이거 어떻게 변하는 거지? 그냥 꿈속으로 들어갈 때처럼 집중하면 되나?’

아마 그렇겠지?

나는 눈을 감은 채 탐욕의 군단장이 어떻게 생겼었는지 떠올리고, 또 그 모습으로 변하려 부단히 애를 쓰며 집중했다.

─부우욱!

순간, 몸이 부풀어 오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눈을 뜨고 몸을 내려다보니, 잘빠진 내 육체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채 웬 뚱뚱하고 거대한 괴물이 대신 자리하고 있었다.

“으음... 이게 맞나? 뭔가 미묘하게 다르게 생긴 것 같기도 한데... 뭐, 오히려 좋지.”

내가 탐욕의 군단장의 본체를 너무 멀리서 관찰했던 탓인지 본모습과는 약간 다른 듯했는데, 완전히 똑같으면 워린레이크가 보고 위화감을 느낄 테니 차라리 이게 낫다.

대충 탐욕의 2군단장이라고 우기면 되겠지.

실제로 군단장은 하나가 아니다. 꿈속에서 천둥의 신이 ‘하늘의 분노’로 때려잡은 절망의 군단장만 해도 셋이었으니까.

“좋아, 그럼 변장은 끝났고. 이제 유인할 일만 남았는데....”

유인은 역시 깽판이지.

마법을 난사하든지 해서 소동을 피우면 될 것 같았다.

“근데 평범한 마법에는 관심을 안 보일 테니 뭔가 지옥틱한 마법이 필요한데. 나한테 그런 게 있을 리가......있네?”

있었다.

지옥에서 직수입해온 불길이.

─화르르르르륵!

한번 닿으면 대상을 완전히 태워버리기 전까지는 영원히 꺼지지 않는다는 지옥의 업화. 그 초록빛 화염이 피어오르며 주변의 나무들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금일 사용 가능한 ‘인페르노’ - ∞회]

나는 한 번에서 그치지 않고 이곳저곳에 더 방화하며 커다란 산불을 일으켰다.

─화르르르르륵!

─화르르르르륵!

이 일대가 온통 에메랄드빛으로 물들었다.

너무 심하게 불을 지른 탓에 나까지 휘말릴 것 같았다. 인페르노에 몸이 닿지 않게 하려고 진땀을 빼며 기다리길 한참.

이윽고 하늘 저편에서 분노 가득한 음성이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누구냐!! 누가 감히 나의 영토에 불을 낸 것이냐!!”

드디어 나타났군.

거대한 몸집에 어울리지 않게 민첩한 날갯짓을 선보이며 빠르게 날아온 워린레이크는, 공중에서 밑을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이 불길한 불길은 뭐지?”

래퍼인가? 라임이 살아있었다.

그렇게 인페르노를 슥 훑어보던 그는, 곧 불길 사이에 있는 나를 발견하고 흠칫했다.

“너는... 탐욕의 군단장? 네놈이 어떻게 아직 살아있는 거지? 분명히 내 브레스를 맞고 죽었을 터인데.”

“나는... 너를 처음 본다....”

나는 일전에 탐욕의 군단장과 나눴던 대화를 바탕으로, 그의 느릿느릿하고 늘어지는 말투를 흉내 내며 대답했다.

“......나를 처음 본다고? 그때의 그놈이 아닌 건가? 그러고 보니 조금 다르게 생긴 것 같기도 하군.”

다행히 녀석의 눈도 장식은 아닌 모양인지, 내가 진짜 탐욕의 군단장과는 미묘하게 다른 생김새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그럼 너는 정체가 뭐지?”

“나는... 탐욕의 두 번째 군단장... 내 이름은... 음... 테도린이다....”

욕심과 관련된 이름을 급하게 떠올리다 보니 도린 형제가 떠올랐다.

“너도 군단장이라고? 하, 미치겠군. 도대체 왜 많고 많은 땅을 놔두고 하필 나의 영토에서 난리들인 거지? 내가 우습나?”

“.......”

“아직까지 이곳에 남아 있는 걸 보니 소식을 접하지 못한 모양인데, 대악마의 강림은 수포로 돌아갔고 군단장들은 죽거나 도망쳤다. 모두 위대한 드래곤인 나, 워린레이크 님의 업적이지.”

아니, 알았으니까 빨리 브레스나 쏘라고.

일부러 브레스 쏘기 좋으라고 덩치가 큰 탐욕의 군단장으로 변장하기까지 했는데, 전에도 그랬지만 이 드래곤은 싸우기에 앞서 자신의 위대함을 뽐내며 입터는 걸 너무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니 너도 엄한 짓 하지 말고 내 땅에서 썩 꺼져라. 대악마의 강림까지 막아낸 이 몸께서는 이제 군단장 한 마리쯤으로는 성에 차지 않으니.”

워린레이크는 시시하다는 듯, 그리고 선심 쓴다는 듯 말했다.

‘아오... 이 새끼는 진짜 나랑 안 맞네.’

죽이지 말란 건 죽이고,

죽여달라는 건 안 죽이고.

마음에 드는 구석이 단 하나도 없는 놈이다.

“뭐 하고 있나? 어서 꺼지지 않고. 내 땅만 아니라면 네놈이 무슨 짓을 하든 어느 정도는 묵인해주겠다. 그러니 어딘가의 인간 왕국으로 가서 적당히 재미 좀 보다가 지옥으로 돌아가는 걸 추천─”

“금화 있어?”

“......뭐?”

워린레이크의 눈빛이 흉흉해졌다.

“방금 뭐라고 했지? 다시 한번 말해봐라.”

“내놔, 금화.”

“......말이 안 통하는 녀석이었군. 기회를 줬음에도 불구하고 감히 드래곤을 상대로 탐욕을 부리다니!”

말하면서 목소리가 점점 커지는 그라데이션 분노와 함께, 공중에 떠 있는 워린레이크의 머리 위로 거대한 얼음의 삼지창이 생성되기 시작했다.

─까드드드득!

‘이, 이게 아닌데?’

순식간에 완성된 삼지창은 당황할 틈도 없이 나를 향해 쇄도해왔다.

슈와악! 나는 반사적으로 반사경을 생성해냈다.

[금일 사용 가능한 ‘리플렉션’ - ∞회]

─텅!

반사경에 닿은 얼음의 삼지창은 비스듬하게 튕기며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향해 날아갔다.

“킥, 고드름 말고 금화 내놔.”

나는 이 녀석이 혹시 리플렉션으로 막기 어려운 형태의 마법을 사용하면 어쩌나 하는, 조마조마한 속마음을 숨긴 채 겉으로는 여유로운 척 비웃으며 말했다.

“......?! 내 마법을 간단히 튕겨냈다고? 그래도 군단장이라 이건가. 좋다, 그렇다면 네놈의 형제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마법을 보여주지!”

잠시 흠칫하던 워린레이크는 그리 말하며 입을 쩌억! 하고 찢어질 듯 크게 벌렸다.

─고오오오오!

그의 쩍 벌어진 입 주변으로 습기가 모여들며 빛을 왜곡시키기 시작했다.

이윽고 오싹한 한기가 느껴지는 동시에, 하늘이 온통 파랗게 물들었다.

─콰콰콰콰콰콰!!

워린레이크의 입에서 뿜어져 나온 가공할 만한 위력의 브레스가 나를 집어삼키며 시야가 암전했다.

아, 시원해.

[꿈속에서 마법 ‘브레스(블루 드래곤)’에 맞아 사망하여 조건을 달성했습니다.]

[습득하시겠습니까? 훔치시겠습니까?]

새까만 세상 속에서 메시지가 떠올랐다.

‘이건 뭐 두말하면 잔소리지. 훔친다.’

[마법 ‘브레스(블루 드래곤)’를 훔쳤습니다!]

[금일 사용 가능한 ‘브레스(블루 드래곤)’ - 1회]

[동일한 대상에게서는 더 이상 마법을 습득하거나 훔칠 수 없습니다.]

나는 어둑한 사무용 가구 창고에서 몸을 일으키며 웃음을 흘렸다.

“흐, 흐흐흐... 브레스 압수! 너는 이제 뒤졌다. 자, 어떻게 죽여야 잘 죽였다고 소문이 날까?”

사실 어떻게 죽이든 드래곤을 죽이기만 하면 소문은 날 테니 쓸데없는 고민이다.

길게 끌 것 없다.

드래곤은 내일 마물 잔당 토벌에 나선다.

그리고 나는 그때 드래곤 슬레이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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