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악마의 강림을 방관해라! (4)
‘아... 그래서 그런 거였나.’
그의 정체를 알고 나니, 어째서 내가 시전한 블리자드 속을 유유히 걸어올 수 있었는지 대충 짐작이 갔다.
무려 블루 드래곤이니 뭐, 그쪽 속성에 대해 뛰어난 저항력을 가지고 있든가 하겠지.
‘난 또 내 마법이 고장 나기라도 한 줄 알았네.’
그렇게 안도하고 있을 때, 워린레이크가 나를 향해 짤막하게 말했다.
“대답.”
“......?”
뭘?
아, 블리자드?
“맞습니다. 제가 일으킨 눈보라입니다.”
“얼굴이 두꺼운 건가? 저런 형편없는 걸 두고 잘도 눈보라라 칭하는군.”
그는 과연 물 속성 마법의 최고 권위자인 블루 드래곤답게 나의 블리자드를 바라보며 가혹한 평가를 내렸다.
“그런데... 형편없는 눈보라에 속절없이 얼어붙은 마물들은 더 형편없어. 지옥의 마물은 원래 저렇게 약한 건가? 어머니가 해주셨던 설명과는 다르군.”
그거야 강한 놈은 내가 방금 잡았으니까 그렇지.
군단장이 있을 땐 코빼기도 안 보이던 놈이 잔챙이만 남았을 때 뒤늦게 나타나서는 센 척하며 무게 잡는 모습이 퍽 아니꼬웠으나, 실제로도 센 게 맞을 테니 굳이 내색하지는 않기로 했다.
어쨌거나 나는 시전 중인 블리자드를 중단하며 그에게 넌지시 물었다.
“아, 워린레이크 님께서는 마물을 처음 보셨나 봅니다?”
사실 이 녀석이 마물을 처음 보든, 같이 동거를 해왔든 나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고 관심도 없다.
하지만 이 사내는 드래곤이다.
최근에는 대악마 때문에 후순위로 밀려났지만, 원래는 최종 퀘스트의 최우선 순위였었던 드래곤. 지금 그 존재가 내 눈앞에 있다.
솔직히 도대체 이 산맥에 뭐 볼 게 있다고 개나 소나 모여들어 이런 헬파티가 열렸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당장 내 앞에 드래곤이 나타났으니 견적을 내 볼 필요는 있다.
과연 내가 이 녀석을 잡을 각이 나오는지.
그래서 일단 대충 아무 말이나 던져본 것이다. 만약 이 녀석이 허접이라는 판단이 선다면 나의 약자멸시를 발동해서 즉결 처형해버릴 것이다.
“그렇다. 흑마법사가 만들어낸 마물은 본 적이 있다만, 저런 지옥의 마물은 처음 보는군. 그런데 왜 저런 역겨운 존재들이 내 산맥에 있는 거지?”
당연하다는 듯 이 거대한 산맥의 소유권을 주장한 그는 주변을 한번 슥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마물의 숫자는 또 왜 저렇게 많고? 나의 산맥이 이 지경이 될 때까지 용족 놈들은 무얼 하고 있던 거지? 아무래도 안 되겠군. 내 이 버러지 같은 용족 놈들을 몇 처형해서 기강을 바로잡아야겠어.”
“......??”
가히 놀라운 사고의 흐름이었다.
이런 상황이라면 보통 마물을 처리할 생각을 하는 게 맞지 않나? 하지만 이 녀석은 애꿎은 용족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렸다.
‘뭐, 용족이 털리든 말든 내 알 바는 아니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화르르르르륵!
앨리스가 소환했던 불사조가 내 위쪽을 지나가며 마물들을 향해 활강했다. 나는 블리자드를 갈긴 후 드래곤과 대화하느라 잠시 농땡이 피우고 있었지만, 앨리스는 여전히 열심히 싸우고 있었다.
“음? 보는 내 눈이 썩어버릴 것만 같은 저 끔찍한 불사조는...? 여기에도 용족이 있었나 보군.”
블루 드래곤 워린레이크가 불사조를 바라보며 미간을 좁혔다. 드래곤이라서 그런지 용족의 고유 마법을 알아보는 모양이었다.
“마침 잘 됐어. 나의 산맥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책임을 물어야겠다. 저 불사조를 소환한 용족은 어디에 있지?”
“아, 그 용족은 이 산맥의 도시에 기거하지 않는 외부인입니다.”
도대체 먼 친척뻘인 용족을 왜 이렇게 혐오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앨리스가 위험에 빠지게 놔둘 수는 없었으므로 나는 그녀에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음을 피력했다.
“어디에 사는지, 죄의 유무 따위는 관심 없다. 역겨운 마물이 내 기분을 잡쳤으니, 나는 당장 용족 몇 놈을 처벌하고 싶을 뿐이다.”
아니, 그러니까 마물이 기분을 잡쳤는데 왜 용족한테 화풀이를 하냐고. 이거 완전 사이코패스잖아?
왜 용족의 부족장들이 호들갑 떨며 마물을 청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는지 비로소 이해가 됐다.
“워린레이크 님이 찾으시는 용족은 저쪽 방향에 따로 있습니다. 그들도 토벌대를 구성해서 마물을 토벌 중이거든요.”
“호오, 그래? 그래도 마냥 빈둥대기만 한 것은 아니었나 보군. 그럼 어서 안내해라.”
“......?”
“대답.”
뭔 대답, 이 미친놈아.
“대답.”
“아니... 저기 죄송한데요. 지금 그럴 만한 상황이 아니라서 말입니다.”
전투는 여전히 진행 중이었다.
내가 드래곤과 대화를 한다고 해서 마물들이 자리에 멈춰서 얌전히 기다려 주는 것은 아니니까. 오히려 부지런히 달려온 마물과 교단군의 근접전도 벌어진 참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드래곤의 길잡이 노릇을 하기 위해 나만 쏙 빠질 수는 없는 일이다.
“저는 아군을 도와야 합니다. 저쪽 방향으로 가시다 보면 아마 용족을 만나게 되실 겁니다.”
“네 사정 따위는 상관없다. 당장 나를 안내─”
“키에에에에엑!!”
이건 열받아서 내가 지른 소리는 아니었다.
우리는 지금 전장의 한복판에 서 있다.
마물이 그냥 지나칠 리가 없다는 뜻.
결국 팔이 네 개 달린 불쌍한 마물 하나가 괴성을 내지르며 달려왔다. 불쌍하다고 표현한 이유는 팔이 좌우뿐 아니라 등과 가슴에도 하나씩 달려 있었기 때문인데, 저러면 누울 수가 없을 텐데 잠은 어떻게 자는 걸까 몹시 걱정됐다.
“......감히 내 말을 끊다니.”
마물의 괴성에 의해 말이 끊긴 워린레이크는, 불쾌하다는 듯 지그시 눈을 감은 채 미간을 좁혔다.
─푸슉!
‘뭐, 뭐야. 쳐다도 안 보고?’
눈을 감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정확히 마물의 밑바닥에서 유리창 정도 두께의 얼음이 솟아나며 놈을 반으로 갈라버렸다.
“여러모로 짜증 나는 날이군. 아무래도 일단 저것들부터 치워버려야겠어.”
이제야 그런 생각이 든 거냐.
너무나도 당연한 결론인데 참 오래도 걸리네.
─타앗!
지면을 박찬 워린레이크가 높이 도약했다.
번쩍! 공중으로 도약한 그의 몸에서 눈부신 푸른 섬광이 터져 나오더니, 곧 시퍼런 드래곤이 그 자태를 드러냈다.
‘저게... 저 녀석의 본체...?’
본체로 현신한 드래곤은 보기만 해도 위압감이 느껴지는 덩치를 자랑했지만,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는 조금 작은 감이 있었다.
농구장 정도의 크기라고 해야 하나?
물론 이것도 충분히 크다고 할 수 있겠지만 나는 이보다는 더 클 줄 알았다. 헤츨링이라 아직 성장이 끝나지 않아서 그런 모양이다.
어쨌거나 본체로 현신한 워린레이크는 지상을 향해 포효했다.
“크오오오오오!!!”
마물의 그것과 다를 바 없는 듣기 거북한 괴성이었으나, 목소리에 담긴 무게감은 남달랐다.
“크, 크륵...?!”
“우와아악! 이, 이게 무슨...!”
“흐어어....”
드래곤의 포효 한 번에 이 일대에 있던 모든 생명체는 잠시 싸움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대다수의 교단군은 다리가 풀린 듯 엉거주춤한 자세로 서 있었고, 마물들은 겁먹은 강아지처럼 꼬리를 말고 드래곤의 눈치를 살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 역시 영향을 받았다.
‘와 씨, 장난 아니네. 그냥 단순한 포효가 아니라 뭔가 마법 비슷한 효과가 있는 것 같은데...?’
교단군처럼 다리가 풀리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이 포효를 내뱉은 존재는 이길 수 없다’라는 메시지가 억지로 머릿속으로 주입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내 땅을 더럽힌 대가를 치르게 해주마!!”
공중에서 지상을 내려다보며 쩌렁쩌렁하게 외치는 드래곤. 그리고 곧 그의 입 주변으로 무언가가 모여들기 시작했다.
─고오오오오!
모여드는 것은 습기였다.
원래 습기라는 게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은 아니지만, 어찌나 많이 모여들었는지 빛이 왜곡되어 드래곤의 얼굴이 찌그러져 보여서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지금 드래곤이 준비하는 것은....’
양치하려는 게 아닌 이상 브레스가 분명했다.
나는 그 사실을 깨닫고 다급히 소리쳤다.
“앨리스! 당장 이쪽으로 와! 다른 분들도 빨리 드래곤의 밑쪽으로 모이세요!!”
브레스의 범위가 얼마나 되는지, 또 어느 방향으로 내뿜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나마 안전한 장소가 있다면 그건 드래곤의 바로 밑쪽일 것이다.
언제나 귀를 열고 내 말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 앨리스는 망설임 없이 내 옆으로 달려왔다. 교단군도 하나둘씩 이쪽으로 모여들었지만, 마물과 근접전을 펼치고 있던 사람들은 쉽사리 다가오지 못하고 있었다.
그 순간, 오싹한 한기가 느껴지며 세상이 파랗게 물들었다.
─콰콰콰콰콰콰!!
드래곤의 브레스가 지면을 향해 뿜어져 나왔다.
시작점에서는 그다지 폭이 넓어 보이지 않았던 브레스지만, 원뿔 형태로 퍼져간 탓에 지상에 닿을 때는 매우 광범위해져 있었다.
─까드득
─퍼석! 퍼석!
극저온을 자랑하는 브레스에 닿은 모든 것은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눈 깜짝할 새에 얼어붙었고, 이내 냉동창고의 전구가 깨지듯 펑펑 바스러졌다.
‘얼리는 데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니....’
싸늘한 한기에 몸을 덜덜 떠는 나는 유릿가루처럼 잘게 부스러지는 마물들을 보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피 한 방울 튀기지 않고도 이렇게 잔혹한 결과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니.
하지만 브레스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공중에 떠 있는 워린레이크는 한 번에 모조리 처리해버리기로 마음먹은 모양인지, 원을 그리듯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당연히 브레스의 방향도 따라서 변했다.
압도적인 위력과 범위.
거기에 더해 자유로운 방향 전환까지.
무엇 하나 흠잡을 데가 없었다. 왜 브레스가 마법의 끝이라고 불리는지 알 법했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혼이 쏙 빠지는 것 같은 광경이었으나, 그저 멍하니 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왜냐하면 이놈은 피아식별을 전혀 하지 않고, 아직 안전지대로 피하지 못한 인간까지 싸그리 공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고개를 들어 워린레이크를 향해 말했다.
“저, 저기요! 마물도 거의 다 죽었는데 이제 그만하시는 게─”
─콰콰콰콰콰콰!!
하지만 나의 목소리는 광폭한 브레스음에 그대로 묻혀 워린레이크에게까지 전달되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듣고도 신경 쓰지 않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애당초 녀석에게는 피아식별할 이유가 없으니. 그냥 걸리적거리는 건 뭐든지 쓸어버리면 그만인 거다.
외곽에 있던 마물은 진작에 전멸했다. 이제는 마물보다 교단군이 더 많이 죽고 있는 상황. 나는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 뭐라도 해보기로 했다.
“야, 앨리스. 아무래도 안 되겠다. 일단 불사조로 몸빵이라도 시켜서 위력을 경감시켜보자. 지금 바로 네 불사조를 교단군이 뭉쳐있는 쪽으로 보내. 나도 소환해서 거들 테니까.”
“알겠어!”
앨리스는 즉답하며 창공을 누비고 있던 불사조를 브레스를 향해 날려 보냈다.
─화르르르르륵!
용맹하게 쇄도한 불사조였으나,
─콰콰콰콰콰콰!!
─푸스스스....
“미, 미친! 이렇게 빨리 소멸한다고?”
내가 마법을 캐스팅할 틈도 없이 브레스에 닿자마자 소멸해버렸다. 이건 뭐 불사조가 아니라 그냥 마물1이나 다름없었다.
어쨌거나 앨리스의 불사조가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소멸했다면 내 불사조도 마찬가지일 것이었기에, 나는 캐스팅을 그만두고 그저 브레스가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진짜 존나 쎄네.’
지상 최강의 생명체라더니 명불허전이었다.
역시 드래곤이 아니라 갓 강림한 대악마를 노리기로 한 것은 몹시 현명한 선택 같았다.
어쨌거나 워린레이크의 브레스는 곧 끝이 났다.
마치 공기가 얼어붙은 것처럼 고요함만이 가득한 가운데, 다시 한번 푸른 빛이 번쩍이며 인간형으로 돌아온 워린레이크가 지면으로 착지했다.
“너희들은 감사 인사도 할 줄 모르는 것인가? 내가 몸소 마물들을 처리해줬는데 말이야. 쯧.”
팀킬을 오지게 해놓고 지금 그딴 소리가 나오냐고 따지고 싶었지만 그만두기로 했다.
지금 이 녀석과 대립각을 세우는 것은 현명하지 못한 처사다. 오히려 같은 편으로 꼬드겨서 이용해먹는 것이 백배 나을 것이다.
“그럼 이제 나를 용족들이 있는 곳으로 안내해라. 아니, 나 혼자 가는 편이 빠르겠군. 저쪽 방향이랬나?”
“예, 맞습니다.”
아니다. 사실 나도 모른다.
용족들도 마물을 토벌하느라 계속 움직이고 있을 텐데, 내가 위치를 알 리가 있나?
뭐, 본체로 현신하면 하늘을 날아다닐 수 있는 녀석이니 대충 아무렇게나 알려줘도 알아서 잘 찾아가겠지.
“그렇군. 그런데... 너는 이 역겨운 마물들이 왜 이곳에 나타났는지 이유를 알고 있나?”
“아, 그게 말이죠....”
나는 어떻게 대답해야 좋을지 궁리했다.
대악마가 강림하려 한다는 정보는 알려주지 않는 게 좋겠지?
알려주면 이 녀석이 그걸 막으려 들 수도 있고, 아니면 나처럼 강림을 방관한 후 대악마를 처치해서 대악마 슬레이어라는 멋들어진 타이틀을 따내려고 들 수도 있다. 내 몹 스틸하지 말라고!
“이유는 저도 잘 모릅니다만... 어떤 마물이 있는지는 알고 있습니다.”
“......? 마물이야 하나같이 다 열등한 놈들 뿐인데, 어떤 종류가 있든 그게 뭐가 중요한가?”
그는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군단장이 있습니다.”
“뭐? 악마 군단장?”
“그것도 무려 셋이나 있습죠. 절망, 공포, 탐욕의 군단장이 현재 이 산맥에 있습니다.”
원래는 다섯이지만 증오의 군단장은 내가 이미 처리했고, 욕망의 군단장은 대악마의 강림 의식에 필요한 존재이니 의도적으로 제외하고 말했다.
“호오... 그런 놈들이 와 있었어? 이건 상당히 흥미롭군.”
워린레이크는 흥미롭다는 듯 턱을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너는 그걸 어떻게 아는 거지? 만나본 적이 있나?”
“예, 아까 탐욕의 군단장이라는 녀석을 만났었습니다.”
“그래? 어떤 녀석이었지? 강한가? 아니, 아니지. 네가 놈을 만나고도 살아있는 걸 보니 그다지 강한 녀석은 아니겠군.”
이 새끼가?
“아닙니다, 무척 강력한 녀석입니다. 저는 녀석이 그냥 보내줘서 무사한 거고요. 금화만 주면 조용히 보내주는 특이한 성격이거든요.”
“......금화? 내 영토에서 금화를 갈취한다는 건가, 감히?”
그의 한쪽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이거 잘만 하면 이이제이를 노려볼 수도 있겠는데? 나는 이때다 싶어 냉큼 그를 부추겼다.
“예예, 제가 분명히 이곳은 드래곤의 영토라고 설명했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요구하더군요. 남의 땅에서 그런 파렴치한 짓을 일삼다니. 상도덕이 없는 놈 아닙니까? 하긴, 악마 놈들이 다 그렇죠 뭐.”
“......그놈은 어디에 있지?”
나는 아까 탐욕의 군단장을 만났던 방향을 가리켰다.
“저쪽에서 만났었습니다. 아, 그리고 ‘놈’이 아니라 ‘놈들’입니다. 절망, 공포, 탐욕. 셋이니까요.”
“건방진 놈들... 감히 내 땅을 더럽힌 것으로도 모자라서 약탈까지 해? 이건 용서할 수 없다.”
“역시! 이제 절망, 공포, 탐욕의 군단장은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겠네요.”
나는 주입식 교육을 하듯 계속해서 세 개의 키워드를 반복해서 말했다.
“그럼 이제 절망, 공포, 탐욕의 군단장을 찾으러 가시는 겁니까?”
“그렇다. 내 당장 절망, 공포, 탐욕의 군단장을 찾아내서 죗값을 치르게 할 것이다!”
좋아, 좋아. 효과가 있군.
“오오! 그렇다면 저는 이곳에서 워린레이크 님을 응원하고 있겠─”
그때였다.
─콰아아아아!
돌연, 산맥 저편에서 검은색 빛기둥이 하늘을 향해 치솟아 올랐다.
그와 동시에, 이 일대에 보이지 않는 어떠한 기운이 퍼지며 끈적끈적한 듯한 느낌을 주기 시작했다.
‘무, 뭐지? 이 불쾌한 느낌은?’
내가 알 수 없는 기운을 털어내려 몸서리치고 있을 때, 절규하는 듯한 성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안 돼! 대악마의 강림이 시작됐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