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꿈속에서 마법을 훔치는 마법사-194화 (194/200)

대악마의 강림을 방관해라! (3)

“......뭐라고?”

나와 성녀의 대화를 들은 증오의 군단장 벨고프는 황당하다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누가 누구를 이긴다고? 네가, 나를?”

“이야, 안녕하세요? 벨고프 씨. 남자인지 여자인지 분간이 안 되는 그 소름 끼치는 목소리는 여전하시네요.”

“......우리가 만난 적이 있었던가?”

그는 고개를 갸웃하며 말을 이었다.

“그럴 리가. 내가 마지막으로 인간계에 모습을 드러냈던 게 벌써 수천 년 전의 일이다. 드래곤조차도 그렇게 오랜 세월을 살 수는 없는데... 뭐지, 인간? 왜 나를 만난 적이 있는 것처럼 말하는 거지?”

“아, 그냥 자다가 본 거니까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꿈에서 봤다고? 지금 나랑 장난하나?”

나는 굳이 대답하지 않고 어깨를 으쓱했다.

가감 없이 있는 사실 그대로를 말해줬을 뿐인데 왜 화내는 건지는 나도 모르겠다.

“하, 이렇게 정신 나간 인간은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군. 그래, 방금 했던 말을 다시 해보아라.”

“아, 그냥 자다가 본 거니까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실 필요는─”

“그거 말고! 그전에 저 인간 여자에게 했던 말 말이다!”

그는 피 묻은 손가락을 들어 성녀를 가리키며 버럭했다. 핏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걸 보아하니 방금까지 살육을 즐기고 있었던 모양이다.

“예? 아아. 제가 당신은 이길 수 있다고 한 거요?”

“크, 크하하하핫!”

“......?”

갑자기 왜 웃는 거지?

이놈도 찬찬히 대화해보니 제정신은 아닌 듯했다.

“다시 들어도 웃기는 소리로군. 그래, 네가 뱉은 말을 증명할 수 있나?”

“증명? 어떻게요? 당신을 죽이면 되나?”

물론 원래부터 죽일 생각이었다.

대악마를 습격하고 무사히 빠져나오려면 그 호위병인 군단장들이 한 놈이라도 적을수록 좋으니까.

물론 나를 삥뜯은 탐욕의 군단장은 실력을 가늠할 수 없어서 굳이 싸우지 않았지만, 이 녀석은 다르다. 나는 녀석과 싸워 이긴 이력이 있고, 또 크게 힘들이지 않고도 이기는 방법을 알고 있다.

“나를 죽여? 크하하핫! 미치겠군. 죽이기 아까운 놈이야. 마음 같아서는 산 채로 잡아다가 광대로 삼고 싶군.”

“혹시 웃음의 군단장이세요? 웃음이 되게 많으시네.”

“음? 지옥에 그런 군단은 없다. 나는 증오의 군단장이다.”

“.......”

이 새끼가?

농담한 사람 뻘쭘하게.

“그러니까 너는 지금 증오의 군단장을 이길 수 있다고 선언한 거다. 자신 있나?”

그는 고개를 삐딱하게 꺾으며 여유롭게 물었다.

“글쎄요. 자신은 모르겠고 확신은 있는데.”

넌 이미 한번 죽었었다.

아직 깨닫지 못했을 뿐.

“......처음엔 재미있던 네놈의 건방진 말투도 계속 듣다 보니 심기에 거슬리는군. 곱게 죽을 수 있을 거라 생각 마라. 혓바닥부터 뽑아버릴 것이니.”

“예예, 그럼 저는 당신의 머리통을.......”

승리를 거머쥐었던 지난번과 똑같이 싸워서 똑같은 결과를 만들어내려던 나는 무언가를 깨닫고 멈칫했다.

‘......잠깐. 여긴 현실이잖아?’

생각해보니 여긴 현실이라 마법 횟수의 제한이 있었다.

물론 마법 횟수야 이놈과 싸우다가 잔뜩 소모해버린다고 하더라도 자정이 지나면 다시 회복되니 큰 문제는 아니다. 대악마가 당장 몇 시간 내로 강림하지 않는 이상은 말이지.

문제는 지난번과 똑같이 싸울 수가 없다는 것이다. 꿈속에서 싸웠을 때는 콜링 썬더를 연속으로 수십 번 갈겨서 혼을 쏙 빼놓고 시작했었는데, 현실에서는 그게 불가능했다.

“내 머리통을. 뭐?”

“아, 그게....”

어쩌지?

그때와는 다른 방식으로 싸워야 하는데.

어쨌거나 내가 이기려면 저 녀석이 본체로 현신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엔 변함이 없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데미지를 줘야 하고.

“에잇! 몰라! 일단은 선빵이다!”

─번쩍! 번쩍! 번쩍!

─꽈릉! 꽈릉! 꽈릉!

마른하늘에서 날벼락이 연달아 내리꽂혔다.

[금일 사용 가능한 ‘콜링 썬더’ - 6회]

“큭...!”

선빵은 언제나 옳다.

증오의 군단장 벨고프는 별안간 날아든 벼락을 맞고 휘청거렸다. 본체인 상태였다면 이런 것쯤은 따끔한 전자침 정도였겠지만, 인간형인 상태로도 거뜬히 버텨낼 수 있을 만큼 내 마법은 만만하지 않다.

“별거 없네, 군단장이라는 거!”

나는 도발성 짙은 멘트를 날리며 공격을 이어나갔다. 지난번처럼 콜링 썬더를 무한정 쓸 수는 없었으므로 다양한 마법을 이용했다.

─파사사삭! 즈즈즈즈! 화르르륵! 사사사삭!

[금일 사용 가능한 ‘아이스 스파이크’ - 2회]

[금일 사용 가능한 ‘일렉트릭 오브’ - 4회]

[금일 사용 가능한.......]

“컥! 크윽...!”

군단장은 새로운 마법에 적중당할 때마다 움찔거리며 짧은 신음을 토해냈다. 상대가 상대이니만큼 중급 이상의 마법만 선별해서 날렸기에 어느 하나 위력적이지 않은 것이 없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역시 공격 방법이 다르니 결과도 다른 건가.’

꿈속에서 싸웠을 때는 녀석이 수십 번의 벼락을 맞다가 결국 방어 기술을 사용했었는데, 이번에는 아니었다. 그는 그저 맨몸으로 마법을 맞으며 견디고 있었다.

즉, 아직 화력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

그럼 헬프 치면 되지 뭐.

“앨리스!! 도와줘!!”

내가 뒤를 바라보며 황급히 소리치자, 앨리스는 눈을 끔뻑거리며 당황했다.

“으, 응? 나? 나한테 말한 거니? 도와달라구?”

“그래! 모든 마법을 다 동원해서 이 새끼한테 날려! 빨리!”

내가 전투 중에 도움을 요청한 것은 난생처음 있는 일이라 그런지 무척 당황하던 앨리스는, 이내 정신을 차리고 군단장을 향해 화염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콰아아아! 화르르륵!

앨리스가 가세하며 공격이 한층 더 격렬해지자, 군단장이 분개하며 외쳤다.

“크으... 비겁한 자식! 나는 우리가 정정당당한 승부를 펼칠 줄 알았는데. 네놈은 나를 이길 수 있다고 호언하지 않았나!”

살다 보니 악마한테 비겁하다는 소리를 듣는 날도 오는군.

“내가 너랑 스포츠 하러 왔냐? 싸움에서 뭔 정정당당을 찾고 앉아있어? 안 되겠다. 너 같은 놈은 정신 좀 차려야 돼.”

더 좋은 무기가 있다면 사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듯이, 수적 우위에 있다면 그 이점을 활용하지 않을 이유도 없다.

“성녀님! 사제님들과 함께 원거리에서 지원사격 좀 해주세요!”

“......네!”

평범한 사제의 신성력 정도로는 놈에게 생채기 하나 낼 수 없겠지만 가랑비도 오래 맞으면 옷이 젖는 법이다.

─위이잉! 슈우웅! 화르르륵! 즈즈즈즈!

교단군의 신성 마법, 앨리스의 화염 마법, 그리고 나의 전격 마법이 각자의 색깔을 뽐내며 증오의 군단장을 향해 작렬했다.

“크으...윽...!”

“그토록 개무시하던 인간들에게 밟히는 느낌이 어때? 숫자 앞에 장사 없지?”

다구리의 맛이 어떠냐 이놈아!

빨리 본체로 변신하라 이 말이야!

“으으... 이 버러지 같은 놈들이 감히!!”

무수한 마법에 맞아 정신없이 몸을 이리저리 꺾어대던 군단장은, 곧 양팔을 넓게 벌리고는 포효하듯 소리쳤다.

콰아앙! 그와 동시에 그의 몸을 감싸는 검은 구체가 생성되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팽창하며 폭발했다.

폭발이 일어난 장소에는 형편없이 얻어맞던 인간이 아닌, 검붉은 피부에 날개가 달린 악마가 지면 위로 두둥실 떠 있었다.

‘오! 드디어 본체로 현신했─’

“크오오오오오!!!”

본체로 현신했음에도 여전히 분노가 가득해 보이는 그는 걸쭉하게 사자후를 토해냈다. 어지간히 열 받았던 모양이다.

“아잇, 깜짝이야. 갑자기 왜 소리는 지르고 난리야?”

“......나약한 것들이 그 알량한 숫자를 믿고 내게 도전한 죄를 묻겠다.”

그래, 기다리던 바다.

어서 나한테 그때의 검은 광선을 날려줘!

하지만 군단장의 다음 행동은 내가 기대했던 것과는 달랐다. 그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며 허공을 향해 쩌렁쩌렁하게 소리쳤다.

“증오의 군단은 들어라! 군단장인 나 벨고프가 명하노니, 지금 즉시 이곳으로 모여 내 앞에 있는 인간들을 모조리 말살해라!”

“어어...?”

......이 새끼가?

헬프를 쳐?

내가 그린 그림은 이게 아닌데?

“자, 잠깐. 설마 지금 당신의 군단을 부른 겁니까?”

“그렇다. 숫자를 믿고 까부는 녀석들은 숫자로 눌러줘야 더욱 절망하겠지. 곧 있으면 새까맣게 몰려와 너희들의 육신을 게걸스럽게 뜯어 먹을 것이다.”

“아니, 미친.”

그래도 명색이 군단장인데 가오가 있지 졸렬하게 지원군을 부르냐고 따지고 싶었지만 가만 생각해보니 먼저 다구리를 친 건 나였으므로 따져봤자 설득력은 전혀 없을 것이다.

“그, 그래서 당신이 직접 나서지 않고 수하들을 시켜 우리를 정리하겠다고요?”

“너희들쯤은 나의 군단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럴 거면 본체로 변신은 왜 했는데, 이 새끼야! 빨리 취소시키고 일대일 떠!”

녀석이 이끄는 군단의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이 넓은 산맥에 퍼져있던 증오의 군단 출신 마물들이 한 장소에 모이면 상당할 것은 분명했다.

“내가 인간형일 때조차 비겁하게 협공을 가하던 주제에 이제 와서 맞대결을 원한다고...?”

“그래, 이 새끼야! 어차피 네놈의 군단이 몰려올 때까지 할 일도 없을 텐데 시원하게 한판 붙자고!”

“크하핫! 아서라, 네놈은 나와 대결을 벌일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녀석은 다시 여유를 되찾고 크게 웃어 젖혔다.

“......하지만 뭐, 대결이 아니라 죽여줄 수는 있지.”

놈은 나 따위는 진심으로 상대할 필요도 없다는 듯 심드렁하게 대꾸하며 하늘을 향해 손을 들어 올렸다.

지루하다는 듯한 표정과는 달리 허공에는 무지막지한 힘이 몰려들며 길쭉한 무언가를 생성해냈다.

─콰지직! 콰직!

검은색 스파크를 튀기는 암흑의 창이었다.

‘저건... 그때의 그 공격이 아닌데.’

내가 리플렉션으로 튕겨내기 위해 기다리는 건 일직선의 형태로 순식간에 뻗어 나오는 검은 광선이지 저게 아니다.

‘......그렇다면 피해야 한다!’

“이만 죽어라, 인간.”

─쐐애액!

이윽고 공중에 떠 있던 불길한 암흑의 창이 나를 향해 무시무시한 속도로 내리꽂히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하늘이 번쩍 점멸하며 벼락 한줄기가 군단장의 뒤편으로 소리 없이 떨어졌다.

[금일 사용 가능한 ‘아케인 텔레포트’ - 3회]

콰콰콰쾅! 암흑의 창이 꽂힌 지면에 폭발이 일어나며 커다란 구덩이가 생겨났다. 하지만 나는 그곳에 없었다.

“지금 어디를 공격하시는 겁니까?”

나는 군단장의 뒤통수를 향해 이죽거렸다.

“그건 제 잔상입니다만.”

“......!”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본 녀석의 눈이 부릅떠졌다.

“뭐지? 분명히 창이 닿기 직전까지 저곳에 있었는데...?”

나는 굳이 대답하지 않고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자 녀석의 얼굴이 흉측하게 일그러졌다.

“이런 건방진! 두 번의 행운은 없을 것이다!”

─콰지직! 콰직!

검은색 스파크를 튀기는 암흑의 창이 재차 생성됐다.

‘아니, 왜 또 저 마법인데? 바본가?’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것은 미친 짓이라는 아인슈타인 선생님의 명언이 절로 떠오르게 하는 녀석이었다.

─쐐애액!

─번쩍!

나는 쏜살같이 쇄도해 오는 암흑의 창을 같은 방식을 이용해 회피해냈다.

[금일 사용 가능한 ‘아케인 텔레포트’ - 2회]

“느려.”

내가 첫 암흑의 창이 떨어지며 만들어졌던 구덩이 옆에서 짤막하게 말하자, 녀석은 다시 황급히 고개를 돌리며 나를 확인하고 당황했다.

“네놈...! 순간이동을 할 수 있었나!”

“글쎄요. 굳이 순간이동이 아니더라도 그런 느릿느릿한 창은 아무도 안 맞을 것 같은데. 그 창이 떨어지길 기다리다가 나이 먹는 줄 알았습니다.”

“.......”

그는 말없이 이글거리는 눈동자로 나를 응시했다. 그리고는 하늘을 향해 뻗었던 손을 거둬들이고 나를 향해 뻗었다.

그러자 놈의 손에 보기만 해도 끈적거리는 것 같은 불길한 기운이 모여들었다. 순식간에 모여든 그 기운은 그의 손바닥을 중심으로 둥그렇게 응축됐다.

‘......저거다!’

“네놈이 과연 이것도 피할 수 있을까!”

녀석의 악에 받친 듯한 외침과 함께 시커먼 광선이 쏘아져 나왔다.

─콰지지지지직!!

“그건 안 피할 건데?”

슈와악! 눈부신 빛무리와 함께 내 앞에 직사각형의 반사경이 생성됐다.

[금일 사용 가능한 ‘리플렉션’ - 0회]

암흑의 창과는 비교할 수 없이 빠른 속도로 날아온 광선은 눈 깜짝할 새에 반사경에 닿았고,

─콰지지지지직!!

“네 마법 쩔더라!”

그대로 튕겨 나갔다.

“......?! 컥!”

똑같은 밝기, 똑같은 위력, 똑같은 속도로 고스란히 반사된 광선은 이전에 그랬었던 것처럼 군단장의 머리통을 말끔히 날려버렸다.

허무하게 머리를 잃어버린 군단장의 몸통이 바닥에 털썩 쓰러지자, 우레와도 같은 함성 소리가 들려왔다.

“구, 군단장을 해치웠어?!”

“우, 우오옷!!!”

“와아아아!! 만세!!”

“키에에에에엑!”

엥? 키에엑?

세르시아 교단군의 함성이라고 하기엔 뭔가 이상한 소리가 섞여 있는 것 같은데?

바닥에 널브러진 군단장의 사체에서 눈을 떼고 주위를 살펴본 나는 당황을 금치 못했다.

‘아, 맞다. 이 새끼... 죽기 전에 자기 군단을 불러들였었지.’

─두두두두두두두두!

사방팔방에서 마물들이 괴성을 내지르며 몰려오고 있었다. 나무에 가려져 정확히는 알 수 없었지만, 숫자가 얼마나 많은지 땅이 진동하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키에에에엑!”

“크오오오!”

“끼끼끼끼끼끼!”

게다가 산속이라 그들의 흉측한 괴성이 메아리쳐서 더욱 소름 끼치게 울려 퍼졌으며, 소리로도 숫자를 가늠하기 어렵게 했다.

“무, 뭐야...?”

“대, 대체 얼마나 몰려오는 거지?”

“신이시여...!”

나는 당황하는 교단군을 향해 소리쳤다.

“다들 뭉치세요! 빨리!”

양측의 숫자가 비슷하다면 산개해서 각개전투를 펼쳐도 상관없겠으나, 이렇게 상대의 숫자가 가늠이 안 될 때는 차라리 밀집해서 대응하는 편이 낫다.

그리고 광역 마법을 사용하기에도 수월하고.

‘일단은 놈들이 접근하기 전에 광역 마법으로 최대한 쓸어버려야겠어.’

내게는 최후의 수단이 하나 있다.

천둥의 신에게서 얻은 궁극의 광역 마법 ‘하늘의 분노’가.

하지만 그걸 사용하면 마나를 쪽 빨리고 탈진할 가능성이 농후했으므로, 그건 정말 최후의 수단으로 사용해야 한다. 마나 탈진은 마법 횟수와 달리 자정이 지난다고 뚝딱 회복되는 게 아니라 상당한 시간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지금 이 자리에 나 말고도 훌륭한 광역 마법을 다룰 줄 아는 사람이 하나 더 있다는 거다.

“앨리스! 바로 불사조를 소환해서 저쪽을 다 태워버려. 그냥 아예 산에 불을 질러버리라고. 그럼 효과가 더 클 테니까.”

“응!”

나는 앨리스에게 방화를 맡긴 방향의 반대쪽을 향해 몸을 돌렸다. 이쪽은 내가 맡아야 하니.

─사아아

순간, 하늘이 새하얗게 물들었다.

그리고 곧, 새하얀 하늘이 무너져 내렸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무수한 눈송이들은 광풍과 뒤섞여 눈보라를 만들어냈고, 사방팔방으로 거세게 휘몰아쳤다.

[금일 사용 가능한 ‘블리자드’ - 1회]

숲의 일부분을 완전히 뒤덮은 눈보라는 권역 내에 있는 모든 것을 빠른 속도로 꽁꽁 얼려 나갔다. 강풍에 의해 이리저리 흔들리던 초목도, 괴성을 내지르며 달려오던 마물도.

─까드득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모든 것이 얼어가고 있던 그때.

나는 두 눈을 의심했다.

“......!”

눈보라가 뒤덮인 지역을 정면으로 가로지르며, 한 남자가 유유히 걸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블리자드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듯 여유롭게 걸어온 그는, 이윽고 내 근처까지 다가와서 물었다.

“누구지? 너인가? 이 형편없는 눈보라를 일으킨 놈이?”

“.......”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악마 군단장조차도 내 마법을 맞으면 이렇게 멀쩡할 수는 없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키며 물었고,

“당신은... 누구십니까?”

그는 거만한 어조로 대답했다.

“나는 워린레이크다.”

눈앞의 사내는 블루 드래곤 워린레이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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