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로 (3)
“크윽....”
느닷없이 날아온 돌에 맞은 사내가 바닥에 쓰러져서 머리를 감싸 맸다.
피들스턴은 그 광경을 바라보며 당황하고 있었고, 나는 그런 그를 향해 말했다.
“야, 너는 삥 뜯겠다는 놈한테 뭘 그렇게 일일이 대꾸해주고 있어?”
“그, 그게... 저는 대화로 해결을 하려고....”
“대화? 저게 대화가 통하는 상대야? 뭔 10골드를 달래. 그건 나한테도 큰 금액인데.”
그때, 쓰러졌던 사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버럭 소리쳤다.
“누구야! 너냐? 나한테 돌을 던진 녀석이?”
“그래, 네가 불만 있으면 던지라며?”
“죽고 싶어 환장했구나! 감히 우리가 누군 줄 알고!”
피식. 나도 모르게 실소가 새어 나왔다.
저런 소리 하는 놈치고 대단한 놈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보나 마나 동네 건달쯤 되겠지.
“형님, 이 새끼 웃는데요?”
“냅둬. 동행한 기사를 믿고 까부나 보지.”
형님이라 불린 철제 흉갑을 입고 있는 사내가 롱소드를 한쪽 어깨에 걸친 채 느긋하게 다가왔다.
“오우, 이 새끼 느긋한데?”
“.......”
“이건 감탄사가 아니라 너에게 한 말이다, 오우 피들스턴.”
아, 쿵짝 안 맞네 진짜.
“......예? 아, 옛! 분수를 모르는 녀석이군요. 제가 상대하겠습니다, 백작님.”
화들짝 놀란 피들스턴이 그리 대답하며 검을 뽑아 들고 내 앞에 섰다.
피들스턴이 전투태세를 갖췄음에도 형님 건달은 여전히 여유를 잃지 않고 있었다. 그 여유로움의 근원은 곧 드러났다.
─삐이익!
내게 돌을 맞았던 녀석이 호각을 불자, 열 명가량의 건장한 남성들이 도시 안쪽에서 달려 나왔다.
대부분은 별 볼 일 없는 녀석들이었지만, 개중에 두 명은 형님 건달과 마찬가지로 철제 흉갑과 잘 손질되어 광택이 나는 롱소드를 들고 있었다.
‘흐음, 저 세 놈들을 믿고 까분 건가?’
동네 건달치고는 제법 괜찮아 보였다. 하긴, 그러니까 모험가와 용병들이 설설 기었겠지.
물론 그래봤자 별거 아니다. 끽해봐야 A급 모험가 수준이거나 그보다 조금 더 강한 정도일 듯했는데, 수많은 기사를 골로 보내고 한 나라의 왕마저 시해한 나와 비비기엔 클라스가 한참 부족했다.
“너 혼자서 상대할 수 있지? 내가 나서기엔 너무 시시하잖아.”
“옛! 물론입니다!”
피들스턴이 호기롭게 대답하자, 호각을 불었던 건달이 코웃음 치며 입을 열었다.
“하! 새파랗게 어린 기사 놈이 혼자서 우리 형님들을 상대하겠다고? 웃기지도 않는군. 우리 형님들은 한 분 한 분이 기사급 실력을 자랑하신다!”
대변인인가? 저놈은 자기가 강한 것도 아니면서 왜 자꾸 나대는지 모르겠다. 그것도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면서 말이지.
하지만 피들스턴은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며 작은 목소리로 초조한 듯 말했다.
“저... 백작님. 기사급이 셋이나 된다는데 말입니다...? 그렇다면 저 혼자서는 조금 무리가 아닐지....”
아니, 너는 또 그걸 믿냐.
전투에서 적이 하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것만큼 한심한 짓은 자기소개밖에 없다.
“뭔 소리야? 저놈들이 기사급이었으면 기사를 했겠지. 걱정하지 마라.”
“아, 그건 그렇겠군요.”
피들스턴이 한결 가벼워진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때였다.
“이 벌레만도 못한 인간 놈들아!”
마차의 창문이 열리며 앨리스가 얼굴을 빼꼼 내밀었다. 그녀는 표독스럽게 건달 무리를 쏘아보며 말을 이었다.
“언제까지 시시하게 입으로만 싸우고 있을 거지? 피곤하니까 덤빌 거면 빨리 덤비란 말이야! 아니면 위대한 용족인 내가 직접 뜨거운 맛을 보여─ 우웁!”
나는 앨리스의 얼굴을 다시 마차 안으로 밀어 넣으며 창문을 닫아버렸다.
건달들은 어이없다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뭐야? 저 미친 여자는?”
“누가 누구한테 뜨거운 맛을 보여준다고?”
“스스로를 백작이라 칭하는 놈에, 애송이 기사에, 미친 여자까지. 이거이거 우리보다 더한 녀석들이었군? 크크크.”
“낄낄낄.”
놈들은 자기들끼리 대화하며 폭소를 터트렸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피들스턴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저런 잔챙이들하고 계속 이러고 있으려니 시간 아깝네. 얼른 가서 처리해라. 나는 여기서 지켜보고 있을 테니, 네 실력을 한번 증명해봐.”
“옛! 알겠습니다!”
피들스턴이 그들을 향해 걸어 나가자, 그들 역시 기사급이라는 세 놈을 필두로 우리를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아이고, 우리 백작 나리는 겁이 많으신 건가 아니면 상황 파악이 안 되시는 건가? 뭐, 아무래도 상관없지. 거기서 딱 기다리고 계쇼. 이놈을 금방 토막 내고 댁도 똑같이 해드릴 테니.”
세 명의 건달이 피들스턴을 포위하듯 에워쌌다. 실력이 떨어지는 나머지는 조금 뒤에 물러나 있는 걸 보니, 그래도 진짜 기사인 피들스턴을 경계하는 듯했다.
“오랜만이군. 기사를 죽이는 것도. 큭큭.”
“낄낄. 이보게 젊은이, 아직 죽음을 경험하기에는 너무 이른 나이가 아닌─”
─번쩍! 번쩍! 번쩍!
─꽈릉! 꽈릉! 꽈릉!
밤하늘이 세 번 깜빡이며 벼락이 내리꽂혔다.
[금일 사용 가능한 ‘콜링 썬더’ - 6회]
털썩. 자칭 기사급이라던 세 명의 사내는 비명 한번 내지르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즉사해버렸다.
“......??”
“!!”
“형님...?!”
찰나의 순간에 믿었던 형님들이 쓰러지자 쩌리 건달들은 얼음장처럼 굳어서 경악했지만, 그들보다 더 놀란 것은 피들스턴이었다.
“배, 백작님? 저보고 혼자서 상대하라고 말씀하시더니 왜 갑자기 공격을...?”
“당연히 거짓말이었다. 내가 예전에 말했을 텐데? 적을 눈앞에 두고 쓸데없이 여유 부리는 건 멍청한 짓이라고.”
사자가 토끼를 잡을 때 최선을 다하는 것처럼, 아무리 저런 잔챙이들이라 하더라도 속임수까지 써가며 최선을 다해 족치자는 게 나의 행동 강령이다.
“아... 그, 그러셨군요. 저까지 깜빡 속았습니다.”
“그래! 바로 그거야. 아군인 너도 속았는데 적이 어떻게 안 속겠냐고.”
“지, 지당하신 말씀입니다만... 그럼 왜 처음부터 나서지 않으시고 이렇게 번거롭게...?”
피들스턴이 조심스럽지만 타당한 질문을 던졌다.
“왜냐니? 재밌잖아.”
“......예?”
“그냥 잡는 것보다는 기왕이면 속이고 잡는 편이 더 재밌잖아. 봐봐, 저놈들 표정.”
이게 내가 원래 있던 엘디니아 왕국에 사는 사람들은 웬만하면 내 얼굴을 알거나, 적어도 메두사 백작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알고 있었기에 속일 수가 없었는데, 이렇게 다른 왕국으로 나오니 소소한 재미가 있었다.
“야! 너희 다 이리 와봐.”
나는 건달들을 향해 손짓하며 말했지만, 녀석들은 자리에서 덜덜 떨고 있을 뿐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다.
“어쭈, 안 와? 나 세르시아 교단의 성자야. 이단으로 찍혀서 사냥 한번 당해 볼래? 대륙 끝까지 도망 다니게 해줘? 어!!”
“세, 세르시아 교단?”
“저, 저게 성자라고...?”
세르시아교는 대륙 곳곳에 널리 퍼져있기 때문에, 타국에서는 백작이라는 작위보다 성자라는 직함이 더 잘 먹힌다고 한다.
그게 정말인 모양인지, 결국 잔존한 건달들은 쭈뼛거리며 이쪽으로 걸어왔다.
“세르시아교 성자의 이름으로 말하노니....”
나는 그들을 향해 거룩하게 말했다.
“가진 거 다 내놔. 돈, 장비 싹 다.”
***
─달그락달그락
르메이 왕국을 벗어난 지도 일주일이 흘러, 어느덧 목적지인 레이븐 산맥에 가까워져 가고 있었다.
“아, 여행 재밌네.”
일단 지금까지는 아주 즐거운 여정이었다.
“돌아다닐수록 돈이 쌓이는 여행이 있다?”
현재, 수도를 떠났을 때의 시점보다 오히려 돈이 더 많아진 상태였다.
변방의 도시 펩톤에서의 첫 약탈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오며 들렀던 도시에서 만나는 모든 깡패에게서 금품을 갈취해왔기 때문이다.
어느 도시를 가든 그런 양아치 집단은 항상 존재했고, 부유해 보이는 타국의 여행자인 우리를 등쳐먹으려 들었다. 물론 그들은 우리의 훌륭한 여비 공급원이 되어 주었지만.
“레이븐 산맥에 들어가기 전에도 자유 도시가 하나 있다던데, 그곳에도 깡패들이 많이 있었으면 좋겠군요, 백작님. 크크.”
놀랍게도 이건 피들스턴이 한 말이다.
처음에는 상대가 아무리 깡패라 하더라도 폭력을 동원해 돈을 뺏는 것을 영 내키지 않아 했던 녀석이었지만, 몇 번의 경험을 거치고 맛을 들려버려서 이제는 아예 베테랑 깡패 슬레이어가 되었다.
앨리스가 나서면 전리품이 모두 불타버리기 때문에 주로 피들스턴이 나섰는데, 그 탓에 깡패 없이는 못 사는 몸이 되어버렸으며, 심지어는 웃을 때도 그들처럼 웃는다.
“아니, 그렇게 좀 웃지 마라. 그리고 그 자유 도시에는 안 들를 거야. 일단 나랑 앨리스는 바로 용족의 도시로 갈 거니까, 근처에서 우리를 내려준 뒤에 너랑 마부만 자유 도시로 가서 기다려.”
“정말 두 분만 가셔도 괜찮으시겠습니까? 역시 제가 옆에서 보필하는 게....”
피들스턴이 근심 어린 얼굴로 그리 말했지만 나는 손을 내저었다.
“됐어. 거긴 네가 갈 만한 곳이 아니야. 위험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노예 행세를 해야 하거든.”
“백작님처럼 고귀하신 분께서 노예 행세를...? 그게 가능하시겠습니까?”
“당연하지. 내가 또 하급 모험가 출신이잖아. 그거나 노예나 거기서 거기야. 노숙이 일상인 직업이니까.”
밑바닥에서 굴러먹던 나로서는 그럴싸한 노예처럼 굴 수도 있고 견딜 수도 있지만, 후작가에서 오냐오냐하며 키워준 도련님인 피들스턴에게는 무리가 아닐까 싶었다.
게다가 어지간한 용족은 기사보다 강할 텐데, 그런 용족이 득실거리는 장소에서 피들스턴이 죽지 않도록 일일이 신경 써주는 것도 번거로운 일이다.
그냥 깔끔하게 나와 앨리스만 가는 게 낫다.
“그럼 용족의 도시에서는 얼마나 머무를 계획이십니까?”
“글쎄...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아마 꽤 오래 있게 될 것 같은데.”
내가 그곳에 가는 목적은 일단 워린레이크라 불리는 헤츨링에 대한 단서를 찾기 위해서다.
기왕이면 단서에서만 그치지 않고 직접 만나서 얼마나 강력한지 눈대중이라도 좀 해보고 싶은데, 녀석이 용족의 도시에 늘 상주하고 있는 게 아니라고 하니 얼마나 걸릴지는 미지수다. 짧은 기간은 아닐 거라고 막연하게 짐작만 할 뿐.
“오래 걸리신다라... 그럼 자유 도시의 깡패들은 한 번에 갈취할 게 아니라, 주기적으로 상납을 받는 편이 더 낫겠군요? 크크....”
피들스턴은 입맛을 다시며 비릿하게 웃었다.
“......이놈이?”
왜 내 주변에는 이렇게 이상한 녀석들밖에 없는 거야?
라고 하기에는 내 탓도 좀 있지 않을까.
“뭐, 그래. 약탈을 하든 상납을 받든 그건 네 맘대로 하고... 준비만 철저하게 해두라고. 언제든 떠날 수 있게끔 말이야. 알겠어?”
일이 틀어져서 긴급하게 튀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고, 고된 노예 생활에 지쳐서 잠시 쉬러 가게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피들스턴의 고약한 취미 생활도 좋지만, 언제든 만반의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
“옛! 맡겨만 주십시오! 수도로 돌아가는 길에 사용할 여비까지 제가 전부 마련해두겠습니다! 크크.”
나는 가볍게 찾아오는 현기증에 고개를 털어내듯 흔들며 앨리스를 향해 입을 열었다.
“어휴....... 앨리스 너도 이제부터는 연습했던 대로 나를 노예 취급하면서 함부로 대해.”
“지금부터 말이니?”
“그래, 곧 용족의 도시에 도착할 테니 너도 미리 적응해둬야지.”
“응, 알겠어.”
─짜악!
“님.”
돌연 앨리스가 내 뺨을 때리고는 짤막하게 말했다.
“......??”
“‘너’가 아니라 ‘님’이라고 불러야지, 이 노예 녀석아? 그리고 나는 앨리스가 아니라 티안브리스 님이시다!”
아.
나는 대체 무엇을 만들어낸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