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꿈속에서 마법을 훔치는 마법사-178화 (178/200)

꿈속의 신 (5)

우중충한 지옥의 하늘에 먹구름이 끼었다.

─쿠릉... 쿠르릉...

사실 먹구름이야 아까 천둥의 신이 싸울 때부터 계속 끼어있었지만, 추가적인 구름이 생성되며 더 광범위해졌고 몰려오는 악마 군단을 향해 서서히 이동해갔다.

“저기, 죄송한데 혹시 구름의 신이십니까? 너무 구름만 만들어내고 계신 거 아닙니까.”

꾸릉거리는 먹구름만 생성해냈을 뿐 아직까지 마법은 보이지 않아 내가 그리 말하자, 천둥의 신이 버럭 화내며 소리쳤다.

“이런 한심한 인간을 보았나! 네놈이 그러고도 전격 마법사라 할 수 있단 말이냐? 먹구름을 미리 불러두어야 무슨 전격 마법을 쓰든지 간에 수월할 것 아니더냐!”

“음... 그건 그렇지만... 저는 그래도 천둥의 신쯤 되는 분이시라면 그런 환경과 관계없이 벼락을 뿜뿜 내리칠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이놈이? 수월하다고 말하지 않았느냐! 나는 당연히 구름 없이도 천둥을 부를 수 있다. 구름이 있으면 효율이 더 높기에 그리할 뿐!”

뭐,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기에 나는 그만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원래 따질 생각은 아니었고, 그냥 재촉하는 의미에서 한번 찔러본 거다.

그렇게 한동안 얌전히 기다리고 있으니, 곧 흘러가던 먹구름이 악마 군단 위쪽에 위치하며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다.

“크헤에엑!”

“끼끼끼끼끼끼.”

“쿠워어!”

그러거나 말거나 괴성을 내지르며 무지성으로 돌격해오는 마물들.

놈들은 대체로 검붉은색을 띠고 있었는데, 하늘마저 어두워지니 형체는 잘 보이지 않고 붉은 안광만이 흉흉하게 뿜어져 나왔다.

어둠 속에서 수천수만 개의 시뻘건 눈동자가 둥둥 떠다니니 몹시 괴기스러웠지만, 사실 놈들의 대부분은 징그럽게 못생겨서 밝을 때도 괴기스럽긴 마찬가지였었다.

아무튼 지면에서 못생긴 마물들의 못생긴 울음소리가 쏟아지고 있다면, 하늘에서는 먹구름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번쩍!

─꽈르릉!

간헐적으로 우렛소리를 토해내던 구름이 이윽고 점멸하며 번개 한줄기가 내리쳤다.

한줄기였을 뿐이지만 상당히 굵었기에 번개가 내리친 부근에는 마치 짓밟힌 잔디처럼 마물 군단이 한 뭉텅이로 쓰러졌다.

“이 마법은......”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던 내가 뒷말을 흐리자, 천둥의 신이 의기양양하게 물었다.

“어떠냐? 원조를 본 소감이?”

“실망스럽네요.”

“뭣?!”

내게 자신의 콜링 썬더가 더 강하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던 모양인데, 나는 고작 콜링 썬더 따위를 보고자 이곳에 온 것이 아니다. 물론 내가 쓰는 것보다 더 강하긴 했지만, 이건 아까도 실컷 봤다.

“아니, 뭡니까? 그렇게 한참이나 공들여서 먹구름을 만드시더니, 고작 콜링 썬더입니까? 뭐 좀 더 화끈한 거 없어요?”

“마법의 진가를 전혀 알아보지 못하는 놈이군. 그렇다면 이건 어떠한가!”

천둥의 신이 하늘을 향해 망치를 들어 올렸다.

그러자 먹구름이 하얗게 방전되더니, 곧 새하얀 빛줄기가 땅을 향해 내리꽂혔다.

─솨아아아아아!

“......!”

이건 좀 특이했다.

기존의 벼락처럼 일시적으로 공격하는 형태가 아니라, 빛이 지속적으로 꽂히는 형태였다. 마치 기둥처럼 유지되는 빛이 닿은 지면에서는, 무수한 전류 갈래가 생성되어 주변으로 퍼져나갔다.

─즈즈즈즈즈즈즈즈!

‘......일렉트리컬 익스플로젼이 폭발했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군.’

물론 범위는 훨씬 넓었다. 동력원인 빛기둥이 멀쩡히 유지되고 있으므로, 추가적인 전류 갈래가 계속해서 생성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근방에 있는 마물은, 하늘을 날아다니는 녀석을 제외하고는 감전을 피할 수 없었다.

“흐음....”

“어떠냐? 이것은 인간 세상에서 본 적이 없을 터. 이제 신에 대한 경외심이 느껴지느냐?”

“예, 뭐. 대단하긴 하네요.”

나는 솔직하게 인정하며 말을 덧붙였다.

“근데... 이 정도로는 좀 부족하지 않나?”

“뭣? 인간 주제에 쓸데없이 눈만 높군. 대체 이 마법의 어디가 부족하다는 말이더냐?”

“아니, 뭐랄까... 악마는 아직도 저렇게나 많이 남아있는데, 이걸로 되겠습니까?”

이곳은 지옥이다.

모든 악마들의 본거지.

저 빛기둥이 꽂힌 곳을 중심으로 제법 넓은 반경의 악마들을 쓸어버렸으나, 여전히 끝도 없이 몰려오고 있다는 뜻이다. 솔직히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고작 이 정도로는 티도 안 난다고 할 수 있었다.

“이래서야 악마들에게 포위당하는 건 시간문제 같은데... 아, 이 전투에서 패배하셨댔지? 이래서 패배하셨나 보다.”

“무엄하다!! 어차피 꿈인데 포위당하면 어떻더냐? 그리고 나를 패배시킨 것은 절망과 증오의 협공이었지, 저따위 미물들이 아니었다!”

꿈이라 건성건성 한다 이건가?

그래서 나도 건성건성 대답했다.

“예예, 그러셨구나. 그나저나 세르시아 님이 나서주셔야겠는데요? 세르시아 님이라면 저것들을 다 쓸어버릴 수 있으시죠? 아, 전격 마법사 괜히 했네. 아, 나도 그냥 사제나 할 걸 그랬네.”

“.......”

천둥의 신은 입을 꽉 다문 채 나를 노려보았다. 지금껏 내내 버럭버럭하던 단순무식한 타입이 갑자기 조용히 하니 왠지 한 대 칠 것만 같아 조마조마했다.

“......너는 세르시아가 나보다 우월한 존재라고 생각하느냐.”

“예? 인간인 제가 어찌 감히 신의 높고 낮음을 평가하겠습니까마는... 세르시아 님은 손 한번 휘저으시면 광역으로 다 태워버리시니... 음.”

“......그렇군. 인간들은 늘 그랬지. 눈에 보이는 것만 믿으려 하는 한심한 종족이었어. 인간을 너무 오랜만에 만났다 보니 내가 잠시 망각하고 있었군.”

그렇게 말한 그는 자신의 우람한 팔뚝만큼이나 우람한 망치를 고쳐 들었다.

“네 몸은 네가 건사하거라. 나는 그것까지 신경 써 줄 생각은 추호도 없으니.”

─지이잉

천둥의 신이 노랗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러자 꼬맹이 세르시아가 내게 바짝 가까이 다가오며 작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진짜 단순하다니까. 이런 뻔한 도발에 넘어가서 고작 꿈속에서 진심을 다 하다니. 그리고 너는 안 그러던 인간이 왜 오베른한테는 무례하게 구는 거니?”

“아니, 그거야... 저분께서 먼저 인간을 무시하셔서....”

“그러면 좀 어떠니? 인간이 무시당하는 게 하루 이틀 일도 아니고. 인간은 심지어 동족끼리도 무시하는 종족이잖아? 아무튼, 내 곁에서 떨어지지 마. 그랬다가는 죽을 테니까.”

내 옆에 멈춰 선 꼬맹이 세르시아는 반투명한 백색 장막을 생성해내 나와 그녀를 감쌌다.

‘......쉴드인가?’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도 그럴 것이, 새까맣게 몰려오는 악마 군단은 아직 저 멀리에 있었기 때문이다.

─파직! 파지직! 파직!

어쨌거나 노랗게 달아오른 천둥의 신 오베른에게서 스파크가 튀기 시작했다.

하늘에 드넓게 자리하고 있는 먹구름 역시 주인과 공명하듯, 천둥의 신에게서 스파크가 튈 때마다 방전되며 번쩍거렸다.

─쿠릉... 쿠르릉... 쿠릉....

확실히 이전과는 달라도 뭔가 달랐다.

천둥의 신은 이미 스스로가 하나의 거대한 전류 덩어리나 다름없는 상태로 보였다. 아마 세르시아의 쉴드가 없었다면 근처에 있는 것만으로도 감전되지 않았을까.

변화는 악마 군단 쪽에도 있었다. 그들도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낀 모양인지, 군단장급 개체로 보이는 악마 세 마리가 공중으로 날아올라 삼각형을 그리듯 체공했다. 그들이 하늘을 향해 손을 뻗자, 삼각형 형태의 검은 장막이 생성되며 지면에 있는 악마들을 보호했다.

“흥, 하찮은 것들이 하찮은 재주를.”

내가 보기엔 아까 나와 싸웠던 군단장이 혼자서 만들었던 장막보다 훨씬 견고해 보였으나, 천둥의 신은 코웃음 치며 망치를 드높이 들어 올렸다.

“하늘의 분노를 받아라!!”

꽈앙!! 그가 망치로 지면을 힘껏 내려치자, 그를 감싸고 있던 노란빛이 일순간에 먹구름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쿠르르르... 쾅! 쾅!

노란빛을 머금은 먹구름은 즉시 화답했다.

전에 없이 격렬하게 번쩍이며 무수한 벼락을 뿌려댔다. 지옥을 멸망시킬 기세의 전기 폭풍이었다.

─쩌저저저저적!!

─꽈르르르르르르릉!!

“와악! 미, 미친.”

나는 황급히 귀를 틀어막았다.

세 명의 군단장이 만들어낸 장막을 유리창 깨듯 금세 부숴버린 위력도 위력이지만, 무수한 벼락이 쏟아지며 발생시키는 소리조차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귀, 귀에서 피가 날 지경이군. 이건 소리로만 공격해도 쓸만할 정도겠어....’

고막을 넘어서 뼛속까지 울리는 듯한 천둥소리였다.

─꽈르르릉! 꽈릉! 꽈릉!

벼락은 미친 듯이 점멸하는 먹구름으로부터 수직으로만 떨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구름과 전혀 다른 방향에 있는 우리가 있는 쪽까지도 대각선으로 수많은 벼락이 내리꽂혔다.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것은 전기 폭풍의 영향권이었다. 새까맣게 몰려오던 악마들은 벼락에 맞아 속절없이 터져나갔고, 운 좋게 피한 녀석들도 잠시 시간을 벌었을 뿐 결국엔 끝없이 떨어지는 벼락에 맞을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캬아아악!”

“꾸에에에엑!”

하늘은 쉴 새 없이 울었고,

무수한 벼락이 가격한 지축은 뒤흔들렸다.

그야말로 경천동지할 위력의 천지스톰은 지옥의 메마른 대지를 악마들의 피로 흥건하게 적시고 있었다.

“이, 이건....”

맞아야 해.

당장 저 마법에 맞아 죽어야 한다.

나는 홀린 듯이 앞으로 걸어 나갔으나,

텅! 세르시아가 생성해둔 장막에 의해 가로막혔다.

“......? 아... 이, 이것 좀 없애주세요. 빠, 빨리요....”

내가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말하자, 꼬맹이 세르시아는 눈을 찡그리며 대답했다.

“이 상황에 어딜 가려고? 밖으로 나가면 죽어.”

“그, 그러니까 없애달라고요!!”

죽고 싶다고!

“그게 무슨 소리니? 천둥소리에 귀가 먹었니? 나가면 죽는다니까.”

“으아아아! 빨리 이거 없애!!”

쾅쾅! 나는 백색 장막을 두들겨대며 아우성쳤다.

“열어!! 문 열어!! 으아아아!!”

“얘, 얘가 왜 이래...? 미쳐버린 거니?”

“당신 때문에 미치겠어요! 빨리 없애달라고!”

이러다가 저 마법 끝나버린다고!

콰앙! 쾅! 나는 스트렝스로 강화된 주먹으로 열심히 장막을 때려댔지만, 이게 또 명색이 신이라는 존재가 만든 쉴드라 그런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가, 갑자기 왜 그래? 죽는 게 소원이라도 되는 사람처럼.”

“그래요! 소원입니다! 저는 주기적으로 자살 충동을 느끼는 이상한 인간입니다! 그러니까 방해하지 마세요, 좀!”

“그, 그럴 수는 없어. 너는 천둥의 신을 만나게 해주면 내게 외부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기로 했잖니.”

“그건 나중에 다시 만나서 얘기하거나 성녀를 통해 전달해드려도 되잖아요! 빨리 이거 없애!!”

나는 절박하게 소리쳤지만, 세르시아는 자신의 쉴드만큼이나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저 미친 인간의 돌발행동쯤으로 여기는 모양인지, 기겁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고개를 가로저을 뿐.

─쿠릉... 쿠르릉... 꽈릉!

내가 그녀와 씨름하고 있는 사이, 맹렬했던 전기 폭풍은 점차 사그라들고 있었다. 아직 악마 군단을 케찹처럼 터트려대고 있었지만, 이제 우리가 있는 곳까지는 벼락이 거의 떨어지지 않았다.

“아, 안 돼...!”

나는 몹시 초조함을 느꼈다.

‘어쩌지? 이 쉴드를 부술 방법이 없나? 라이트닝 블래스트를 쓰면 부술 수 있으려...... 아!’

한 가지 묘책이 떠오른 나는, 저 멀리에 있는 악마 군단을 향해 마법을 캐스팅했다.

─번쩍!

순간, 휘청거릴 정도로 많은 양의 마나가 쑤욱 빠져나감과 동시에, 천둥의 신이 생성해둔 먹구름에서 다른 종류의 번개 한줄기가 소리 없이 내리꽂혔다.

[금일 사용 가능한 ‘아케인 텔레포트’ - ∞회]

“뭐야! 너 무슨 짓─”

경악에 찬 꼬맹이 세르시아의 목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어디론가 빨려 들어가는 듯한 기묘한 감각과 함께 시야가 잠시 암전했다.

─슈우욱

그리고 곧, 나는 피비린내와 타는 냄새가 진동하는 악마 군단의 한가운데로 이동되었다.

“크르륵...?!”

“캬악?”

갑작스러운 인간의 등장에, 아직까지 운 좋게 살아 남아있던 악마들은 자신이 죽을 위기에 놓여있다는 사실조차 잠시 잊고 당황했다.

“그래, 나도 반가워.”

─꽈르르르르르르릉!!

눈부신 벼락이 나를 덮치며 시야가 다시 한번 암전했다.

[꿈속에서 마법 ‘하늘의 분노’에 맞아 사망하여 조건을 달성했습니다.]

[습득하시겠습니까? 훔치시겠습니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