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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속에서 마법을 훔치는 마법사-176화 (176/200)

꿈속의 신 (3)

“갑시다, 빨리빨리! 천둥의 신을 만나러!”

내가 떼쓰듯 재촉하자 세르시아는 한숨인지 피식거림인지 모를 숨을 하, 내쉬고는 눈을 감았다.

“근데... 제 정체가 불분명해서 온전히 신뢰할 수 없으시다면서, 이렇게 다른 신에게 막 데려가도 되는 겁니까?”

“어차피 꿈속으로 가는 건데 네가 무엇을 할 수 있겠니? 꿈속에서는 죽어도 죽지 않는다는 사실을 너도 잘 알 텐데. 그리고 집중해야 하니 말 걸지 말아주겠니?”

꼬맹이 세르시아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아마 그녀도 나와 마찬가지로 눈을 감고 집중해서 꿈꾸는 자의 위치를 파악하는 모양이었다. 물론 그녀 쪽이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범위가 더 넓겠지만.

“아, 예. 여부가 있겠습니까.”

나는 그 말을 끝으로 입을 다물었다.

‘천둥의 신이라니. 딱 나를 위한 신이잖아?’

자세한 건 직접 만나봐야 알겠지만, 일단 이름만 들어봐도 가슴이 두근거리며 없던 신앙심이 절로 샘솟는 것만 같았다. 그가 만약 내게 무언가를 줄 수만 있다면 철저한 광신도가 되어줄 의향도 있다.

“......찾았다.”

이윽고 집중하던 세르시아가 그런 말을 하며 눈을 떴다.

─우우웅

그녀가 자신의 앞을 향해 손을 뻗자 공간이 벌어지며 타원형의 게이트가 생성됐다. 새하얀 게이트였는데, 불투명해서 안쪽은 보이지 않았다.

“여기로 들어가면 돼. 내가 먼저 갈 테니 곧장 따라오렴.”

“오오, 알겠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꼬맹이 세르시아의 뒤로 가서 섰다. 그러자 그녀가 뒤를 돌아서 나를 올려다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뭐해? 더 바짝 붙어야지.”

“예? 더요? 이미 충분히 가까운 것 같은데.”

“그쪽과 이쪽은 시간관념이 달라. 이쪽에선 찰나의 순간이었을지라도 그쪽에선 훨씬 오랜 시간이 흘렀을 수도 있어. 그러니 너와 나 사이에 거의 동시에 들어가야 해.”

“아아, 알겠습니다.”

나와 세르시아 사이의 시간 간극을 최소한으로 줄여야 한다는 말이었다. 막말로 그녀가 도착하고 한 20년쯤 후에 내가 도착하면 안 되니까.

나는 그녀와 맞닿을 정도로 밀착했다. 내친김에 유치원생 소풍 가듯 어깨까지 붙잡았다. 꼬맹이 버전이라 내 허리보다 약간 높은 위치였기에, 손 받침대로서 제격이었다.

“......?”

“아, 바짝 붙으라고 하셔서.”

“에휴... 가자.”

애늙은이처럼 한숨을 내쉬는 그녀와 함께 게이트로 걸어 들어갔다.

─스으윽

안으로 들어선 순간, 새하얀 광휘가 나를 뒤덮으며 극심한 현기증이 느껴졌다.

‘어어...??’

세상이 빙글빙글 도는 것만 같았다. 마치 영혼만 따로 뽑아서 변기에 넣고 내려진 느낌이랄까.

그렇게 어디론가 빨려 들어가는 듯한 감각이 한동안 이어지다가, 어느 순간 시야가 돌아왔다.

끝없이 펼쳐진 장엄한 협곡이 보였다.

다만 그 흔한 풀 한 포기 없이 삭막한 협곡이었다. 어쩌면 화성에 온 게 아닐까 싶은 착각마저 들 정도였다. 그리고,

─끼에에에에엑!!

─캬아아악!

─우워어어어어!!

“미, 미친! 저 징그럽게 생긴 것들은 다 뭔데?”

흉측하게 생긴 괴물들이 괴성을 내지르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숫자는 많지 않았지만 종류는 다양했다. 땅속을 파고 들어가는 녀석부터 하늘을 날아다니는 놈까지.

나름대로 베테랑 모험가인 나로서도 생전 처음 보는, 아예 짐작조차 할 수 없는 몬스터들이었다.

“천둥의 신한테 데려다 달랬더니만 뭔 지옥 같은 곳으로 데려왔어? 아니, 그리고 세르시아는 또 어디 간 건데?”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설마 사기 친 건가?

그런 생각을 잠시 해봤지만 나는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굳이 나한테 그럴 이유가 없었다.

그보다는 뭔가 오차가 생긴 것 같았다. 아까 그녀가 말했었던 시간 차이 같은 게 발생했다든지.

‘그렇다면... 세르시아가 날 찾아오길 기다리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인데....’

문제는 이곳에서 가만히 서서 기다릴 수가 없다는 거다.

“크르르....”

반은 늑대, 반은 인간인 괴물이 먹잇감을 발견했다는 것마냥 침을 질질 흘리며 접근해왔다. 반인반수라는 점은 모험가 시절에 몇 번 상대해봤던 늑대인간 라이칸스로프와 비슷했으나, 이놈은 반대였다.

즉, 하반신이 늑대고 상반신이 인간인 듣도 보도 못한 정반대의 형태를 하고 있었는데, 뒷다리만 늑대라서 사족 보행이 불가능해 양팔을 앞다리처럼 사용해야 하는 매우 한심한 신체 구조였다.

“리버스 늑대인간이야 뭐야. 저기요, 혹시 말을 할 수 있습니까? 여기가 어디죠?”

“크르륵... 신선한... 인간....”

“뭐야? 너는 반쪽짜리... 인간....”

예전부터 느낀 거지만 상체나 얼굴이 인간형이어서 인간과 똑같은 발성기관을 가진 몬스터는 말을 할 수는 있는데, 정상적인 대화는 불가능하다. 그냥 뜨문뜨문 자기 하고 싶은 말만 한다. 얼굴이 노인이었던 만티코어처럼.

“크릉!”

나의 비아냥거림을 알아듣기라도 한 모양인지, 녀석은 발끈하며 달려들었다. 한심한 신체 구조였으나 정통 늑대인간보다 훨씬 날렵한 움직임이었다.

“그래봤자 잡몹이지!”

나는 육체 강화 마법을 사용한 뒤, 달려드는 녀석의 머리통을 가격했다.

뻐억! 골통을 분쇄할 목적으로 후려쳤으나, 저만치 나가떨어지기만 했을 뿐 녀석의 머리통은 건재했다.

“돌머리군.”

─휘오오

[금일 사용 가능한 ‘윈드 블레이드’ - ∞회]

나는 바람의 칼날을 메스삼아 수술을 감행했다. 샴쌍둥이를 분리하듯 녀석의 인간 부위와 늑대 부위를 분리하는 수술이었다.

서걱! 쏜살같이 쇄도한 바람의 칼날은 정확히 녀석의 허리를 절단해버렸다.

“크롸아...!”

“수술은 성공적으로 마쳤... 어어?”

놀랍게도 녀석은 반으로 갈라졌음에도 죽지 않았다. 오히려 쏟아져나왔던 검은색 피가 다시 상처 부위로 모여들며 절단된 부위를 접합시키기 시작했다.

“재생...? 트롤도 이렇게는 못 할 텐데?”

아무래도 평범한 몬스터는 아닌 듯했다.

설마 마물인가?

하지만 여긴 신의 꿈속인데 악마가 왜?

그런 의문이 치밀어 올랐으나, 어쨌든 재생이 가능한 존재라면 불로 태워버리는 게 상책이다.

나는 즉시 플레임 오브를 생성해내 녀석에게 쏘아 보냈다.

─화르르륵!

화염에 휩싸여 버둥거리던 녀석은 곧 맥없이 축 늘어졌다.

“별로 강하지는 않은데... 그래도 자리를 피하는 게 좋겠군.”

딱 봐도 이놈이 최약체였다.

저 멀리 다른 언덕배기에서 또 다른 마물들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는데, 하나같이 이 리버스 늑대인간보다는 강해 보였다. 특히 거대한 꼽등이처럼 생긴 녀석은 접혀있는 길쭉한 다리를 볼 때, 엄청난 점프력으로 내가 있는 언덕까지 단숨에 도약할 수 있을 것만 같아 보였다.

저렇게 징그럽게 생긴 마물들에게 둘러싸인 채로 세르시아가 찾아오길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기에, 나는 자리를 벗어나서 움직이기로 했다.

대체 어디로 간 건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내가 세르시아를 찾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이 꿈의 주인은 그녀가 아니라 천둥의 신이기 때문에 그녀에 관한 단서는 없어서다.

그리고 사실 천둥의 신을 만날 수만 있다면 세르시아는 찾지 못해도 별 상관없다.

“......천둥의 신을 찾아봐야겠군.”

***

─폴짝! 폴짝! 폴짝!

“으아아아! 그만 쫓아와 이 꼽등이 새끼들아!”

나는 도망치고 있었다.

고작 거대한 벌레를 이기지 못해서 도망치는 것은 아니고, 숫자가 너무 많아서 하나하나 처치해봤자 티도 안 나기 때문이다.

심지어 저놈은 죽을 위기에 처하면 스스로 몸을 터트려서 자폭하는데, 뱃속에서 뭔 연가시 같은 또 다른 벌레들이 잔뜩 기어 나온다. 진짜 토 쏠릴 정도로 개징그럽다.

물론 무작정 무기력하게 도망만 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저놈들을 박멸해버려!!”

우중충한 하늘을 누비던 불사조가 급하강하며 꼽등이 군단에게 불을 질렀다.

─화르르르르륵!

─폴짝폴짝폴짝폴짝폴짝폴짝폴짝!!

불이 붙어버린 녀석들은 한층 더 격렬하게 폴짝거렸으나, 원래 벌레는 살충제를 맞으면 잠깐은 미친 듯이 날뛰지만 곧 시름시름 앓고 죽는다.

그건 저 마물들도 마찬가지였고, 녀석들은 가망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스스로 자폭해버렸다.

─퍼엉! 퍼엉! 꾸물꾸물....

몸통이 폭발하며 뱀장어 같은 무언가가 꾸물거리며 쏟아져 나왔지만, 불사조가 일으켜둔 불길에 의해 금세 불타버렸다.

“아오, 이게 뭔 생고생이야.”

사실 고생을 사서 한 감도 없잖아 있었다.

내가 일부러 마물이 많이 나오는 방향을 향해 이동하고 있었으니까.

꿈의 세계에서 꿈의 주인을 찾는 가장 좋은 방법은 선명하게 구현된 쪽으로 가는 거다. 하지만 명색이 신이라는 존재의 꿈이라서 그런지 모든 것이 현실과 분간이 안 될 정도로 뚜렷했다. 게다가 엄청나게 넓고.

그래서 차선책으로 마물이 많은 방향을 찾아가고 있던 것이다. 아무래도 꿈의 주인은 특별한 장소에 있을 가능성이 크니까.

“일단 한번 쓸었으니까 다시 높게 날아올라라.”

나는 불사조를 창공으로 올려보냈다. 여전히 상당수의 마물들이 나를 쫓아오고 있었지만, 어차피 이동할 때마다 새로운 녀석들이 들러붙어서 완전 박멸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포위당할 정도로 개체 수가 늘어나지 않는 이상은, 차라리 하늘 높이 날려 보내서 세르시아나 천둥의 신이 불사조를 발견할 수 있게끔 하는 게 낫다.

그렇게 불사조의 호위를 받으며 한참을 달렸을 때였다.

─콰지직!

돌연 검은 번개가 바닥에 내리꽂히더니, 그곳에서 온전한 인간의 형상을 한 존재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와 동시에 나를 추격해오던 마물들은 마치 겁에 질린 듯 자리에 멈춰 섰다.

“......인간?”

그는 분명 남성이었음에도, 눈을 감고 들으면 남성인지 여성인지 구분하지 못할 만큼 중성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보잘것없는 인간이 왜 여기에 있지?”

“예? 여기가 어딘데요? 그리고 당신도 인간 아닙니까?”

“......나는 증오의 대군주님 휘하의 3군단장 벨고프다. 이곳은 그분께서 다스리는 땅이지.”

증오의 대군주가 다스리는 땅?

그렇다면 여긴 지옥이라는 말이 아닌가.

어쩐지 이상한 괴물이 득실거린다 했더니만.

지옥이라는 소리에 나는 몹시 긴장했으나, 한편으로는 안도하기도 했다. 다행히 여긴 꿈속이니까. 마법 횟수가 무한인 걸 보면 꿈이 확실하다.

그래서 당당하게 물었다.

“야, 천둥의 신 어디 있냐?”

“......뭐?”

“뭘 멍청하게 되묻고 있어? 당신의 귓구멍에 무언가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까? 천둥의 신이 어디에 있는지 아냐고. 아니면 세르시아라도.”

“크... 크하하하하핫!!”

미친 엘프 아스왈드식 비꼬기를 시전했더니, 녀석은 갑자기 광소를 터트렸다. 중성적인 목소리로 저렇게 웃으니 닭살이 절로 돋았다.

“감히 내게 이렇게 건방지게 구는 인간은 처음 보는군. 재미있어... 신들의 행방을 묻는 걸 보니 네놈도 그들과 한패인가? 신들도 절박하군그래. 미물인 인간의 손까지 빌리다니.”

“아니, 묻는 말에나 대답하지 뭘 그렇게 주절거리고 앉아있어? 너, 내 질문에 대답 안한 사람들이 어떻게 된 줄 알아?”

“크하하핫! 역시 재미있어. 그래, 네놈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은 자는 어떻게 됐─”

─번쩍!

─꽈릉!

순간, 우중충한 하늘에서 벼락이 내리쳤다.

“어떻게 되긴! 대답할 때까지 전기 맛을 봤지!”

[금일 사용 가능한 ‘콜링 썬더’ - ∞회]

“큭...!”

나의 필살기인 말 걸어놓고 기습하기는 악마 군단장에게도 먹혀들었다. 어쩌면 이건 악마보다도 더 비열한 방법이 아닐까?

어쨌든 이곳은 마법 횟수가 무제한인 꿈속.

나는 마음껏 기량을 뽐냈다.

─번쩍! 번쩍! 번쩍! 번쩍! 번쩍! 번쩍!

─꽈릉! 꽈릉! 꽈릉! 꽈릉! 꽈릉! 꽈릉!

지옥의 하늘은 금요일 밤의 클럽처럼 쉴 새 없이 번쩍거리며 점멸했다. 끝없이 떨어지는 벼락은 모두 정확하게 악마 군단장에게로 적중했다.

“대답 안 해? 이래도 안 해? 어!!”

나는 그렇게 물었지만, 사실 계속 벼락을 소환하고 있었기 때문에 녀석에겐 대답할 틈이 없었다.

“크윽... 미, 미친 자식. 감히 잔재주를...!”

촤아악! 지속적인 전기 충격에 춤추듯 몸을 이리저리 꺾어대던 그가 정신을 차리고 하늘을 향해 손을 뻗어 올리자, 원반 형태의 검은색 장막이 생성되며 벼락을 받아냈다.

하지만 나는 다음 수를 준비해뒀다.

“이게 하라는 대답은 안 하고 어디서 반항을!”

─쿠릉... 쿠르릉...

구름 한 점 없이 우중충했던 지옥의 하늘에는 어느새 새카만 먹구름이 가득 끼어 울음소리를 토해내고 있었다.

[금일 사용 가능한 ‘일렉트리컬 익스플로젼’ - ∞회]

─꽈르르르르르르릉!!!

이윽고 천지를 뒤흔드는 천둥소리와 함께, 먹구름에서 새하얀 빛줄기가 수직으로 내리꽂히며 군단장의 장막을 강타했다.

그의 장막은 잠시 버텨내는 듯 보였으나, 이내 조금씩 균열이 발생하더니 머지않아 깨져버렸다.

─쩌저... 쩌저... 쩌저적!

“끄아아아아!”

그는 상당한 충격을 받은 듯 보였지만, 이 마법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비틀거리는 그의 몸이 점점 하얗게 빛나기 시작했다.

악마가 하얗게 빛나다니.

“이건 굉장히 귀하군요.”

“네, 네놈... 감히 인간 따위가 내게....”

놈이 원통하다는 듯 말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새하얀 빛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밝아져만 갔다.

천사가 강림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광휘가 정점에 달했을 때,

─번쩍! 파츠츠츠츠츠!

눈부신 섬광과 함께 그의 몸에서 폭발이 일어나며 수백, 수천 갈래의 전류 줄기가 일거에 뿜어져 나왔다. 나는 눈을 찡그리며 중얼거렸다.

“......해치웠나?”

라는 말은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콰아앙! 새하얀 광휘 속에서 검은색을 띤 무언가가 다시 한번 폭발했다.

“재롱은 끝났나? 인간.”

폭발이 일어난 장소에는, 검붉은 피부에 날개가 달린 처음 보는 악마가 지면 위로 두둥실 떠 있었다.

“인간치고는 제법이었다. 이 몸이 본체로 현신하게 하다니.”

“.......”

망했다.

나는 망했음을 직감했다.

악마 군단장이라는 것은 그리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내가 가진 최고의 공격 마법 중 하나에 정통으로 맞고도 끄떡없다니. 이건 내가 상대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젠장... 천둥의 신도 못 만나보고 이대로 꿈에서 쫓겨나게 되는 건가.’

아직 내 궁극기인 라이트닝 블래스트가 남아있었지만, 이걸 쓰면 탈진하게 되고 이곳엔 악마가 득실거리니 이러나저러나 죽는 것은 매한가지였다.

“이, 이야... 역시 대단하시네요, 군단장님.”

나는 일단 시간이라도 벌어볼 요량으로 그리 말했으나, 군단장은 싸늘하게 대답했다.

“더 이상 네놈의 어설픈 수작질에 놀아나 줄 생각은 없다. 이만 죽어라.”

“아니, 잠시만─”

그가 나를 향해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보기만 해도 끈적거릴 것 같은 불길한 기운이 모여들었다. 순식간에 모여든 그 기운은 그의 손바닥을 중심으로 둥그렇게 응축됐다.

그리고, 곧 시커먼 광선이 쏘아져 나왔다.

─콰지지지지직!!

“에라 모르겠다! 죽으면 죽는 거지!”

나는 이판사판으로 얼마 전에 새로 얻은 마법을 캐스팅했다.

슈와악! 눈부신 빛무리와 함께 내 앞에 직사각형의 반사경이 생성됐다.

[금일 사용 가능한 ‘리플렉션’ - ∞회]

빠른 속도로 날아온 군단장의 광선은 금세 반사경에 닿았고,

─콰지지지지직!!

그대로 튕겨 나갔다.

“컥!”

똑같은 밝기, 똑같은 위력, 똑같은 속도로 고스란히 반사된 광선은 군단장의 머리통을 날려버렸다.

“......?”

허무한 최후에 당황스러워하고 있을 때, 하늘 저편에서 새하얀 운석 같은 것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이쪽을 향해 날아왔다.

가히 엄청난 속도였지만 아무런 소리 없이 조용하게 날아온 그것은, 내 앞에 떨어졌다.

“여기 있었구나? 한참 찾았네.”

날아온 그것은 꼬맹이 세르시아였다.

그녀는 나를 보며 그렇게 말하고는, 내가 바라보고 있는 사체를 확인하고 경악했다.

“이건... 벨고프? 이거 왜 이래? 설마... 네가 죽였니? 인간이? 악마 군단장을? 말도 안 돼....”

말도 안 되는 건 당신의 등장 타이밍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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