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속의 신 (2)
기껏 불러서 성녀의 꿈속으로 왔더니만, 만나자마자 은근슬쩍 마법 회수를 시도하다니. 그래놓고서는 뻔뻔하게 축복을 내리려고 했다는 거짓말까지 덧붙였다.
“......축복이요?”
“그렇단다.”
꼬맹이 세르시아는 능청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는데, 날 속였다고 믿고 있는 그 모습이 가증스러우면서도 퍽 귀여웠다.
그녀는 자신의 권능 중 일부가 내게 미치지 않는다는 걸 이전에 겪어봐서 알고 있으나, 그녀가 내게서 마법을 회수하려 할 때마다 시스템 메시지가 뜬다는 사실까지는 알지 못한다.
그냥 아예 시스템의 존재 자체를 모른다.
“아, 그러셨구나. 저한테 축복을 내리려던 참이셨었구나.”
“그렇다니까.”
끝까지 잡아뗀다 이거지.
나는 양팔을 활짝 펼치고 그녀를 바라봤다.
그리고는 종용하듯 고개를 끄덕거리자, 세르시아가 의아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뭐 하는 거니?”
나는 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대꾸했다.
“예? 세르시아 님이야 말로 왜 가만히 서 계신 겁니까? 축복을 내려주신다면서요. 설마... 거짓말이셨습니까? 저한테 축복을 내리려던 게 아니라 뭔가 다른 짓을 하려고 하셨었다거나...?”
“그, 그럴 리가. 그렇지 않단다.”
그럼 해주든가. 축복.
“역시, 그렇죠? 하긴... 위대하신 희망의 여신 세르시아 님께서 거짓말을 하실 리가 없지. 이야, 착하게 살다 보니 신의 축복을 받는 영광스러운 날도 오네요.”
“.......”
“세르시아 님?”
내가 재촉하듯 말하자, 그녀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쓸어 올렸다.
“하아... 알겠으니 그만 재촉하렴.”
꼬맹이 세르시아는 머리를 쓸어 올린 손을 내게로 뻗었다.
─우우웅
‘뭐야, 설마 진짜 주나?’
자꾸 거짓말하는 게 부아가 치밀어서 그냥 해본 소리였는데, 그녀의 손에서 성스러워 보이는 백색 광휘가 뿜어져 나오는 걸 보아하니 진짜로 뭔가 하긴 하는 모양이었다.
─샤르르르....
이윽고 백색 광휘로부터 반짝거리는 가루 같은 것들이 생성되어 나를 향해 날아왔다.
흠칫.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날아온다는 사실에 나는 반사적으로 피할 뻔했으나, 억지로 발에 힘을 주며 버텼다. 그리고 그 반짝거리는 무언가가 내 몸에 닿은 순간,
[세르시아의 가호를 받았습니다!]
[희망의 여신 세르시아의 가호 (1회) - 극한의 공포와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도록 해줍니다. 가호는 자동으로 발동됩니다.]
“오오...?”
나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가호의 효과 때문에 감탄한 것은 아니고, 시스템이 이렇게 친절하게 상세히 설명해준 적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가호의 효과는 글쎄. 그저 그래 보였다.
희망을 잃지 않게 해준다니. 이게 실효성이 있나? 그냥 내가 멘탈 관리를 잘하면 되는 거 아닌가? 그리고 줄 거면 좀 넉넉하게 주지 1회는 또 뭔데?
물론 없는 것보다는 당연히 나을 것이다. 게다가 공짜로 얻었으니 철없이 불평하는 짓은 그만두도록 하자.
“희망의 불씨가 꺼지지 않게끔 해주는 축복을 내렸단다. 이제 만족하니?”
“예? 아, 예예. 감사합니다.”
만족하지 못했지만 고개 숙여 인사했다.
원래 ‘밥 먹었어?’라는 질문은 그냥 인사치레로 하는 말이지, 진짜로 상대가 밥을 먹었는지 궁금해서 물어보는 게 아니다. 그딴 건 쥐뿔도 관심 없고, 안 먹었다고 대답해봤자 밥을 챙겨주지도 않는다.
세르시아의 만족했냐는 질문 역시 같은 맥락이었기에, 그냥 대충 만족했다고 대답하고 마무리 지었다.
“그런데 말이야....”
여유를 되찾은 그녀는 팔짱을 끼고 고개를 삐딱하게 들며 나를 응시했다. 꼬맹이의 모습으로 저런 자세를 취하니 꿀밤마려웠다.
“재미있는 일을 벌였더구나? 흥미로운 인간아.”
“......재미있는 일이요?”
“네가 속해있는 왕국의 왕을 죽인 일을 말하는 거란다. 그것도 나를 이용해서 말이지.”
그렇게 말한 꼬맹이 세르시아의 미간이 좁혀졌다.
한낱 인간의 왕을 죽였다고 그녀가 미간을 좁힐 리는 없을 테니, 아마 후자 때문에 그러는 듯했다.
“아, 제가 왕을 죽이긴 했습니다만, 그 과정에서 세르시아 님의 이름을 들먹이며 명분으로 삼은 적은 없습니다. 진짜로요.”
나는 당당하게 변명했다.
사실이 그랬으니까. 알베르트를 속이기 위해 뉘앙스만 살짝 풍겼을 뿐이지, 세르시아의 이름을 직접적으로 꺼낸 적은 없다. 그놈이 혼자서 예언이라고 단정 짓고 호들갑을 떤 거다.
“그래, 내 이름을 들먹이진 않았지. 의도적으로 내 이름을 언급하는 걸 회피하면서도 교묘하게 나를 이용하였더구나. 상대가 자연스럽게 착각할 수 있도록.”
“아, 그게...... 근데 그걸 다 어떻게 아십니까?”
“그자의 꿈속으로 들어갔었으니까.”
“예? 외람된 말씀이지만... 왜 하필 그놈의 꿈을? 그거 완전 불경한 놈인데요?”
교단의 성직자들을 돈으로 매수하고, 심지어 내게는 신탁을 거짓으로 발표해달라고 요청하기까지 했었다.
뼛속까지 신성 모독적인 녀석이었는데, 뭐 볼 게 있다고 세르시아가 그놈의 꿈속으로 들어갔었던 건지 의아했다.
“그 인간이 품었던 희망의 크기가 무척 거대해졌던 적이 있단다. 질이 떨어지는 허황된 희망이었지만... 너도 잘 알고 있지 않니? 네가 키운 희망이었으니.”
“아.”
내가 뽐뿌질을 해버린 탓에, 알베르트는 자신이 왕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잔뜩 품었다는 소리였다.
‘......설마 이걸 추궁하려고 부른 건가?’
세르시아는 알베르트의 꿈속에 들어갔다 나와서인지,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꽤나 상세히 알고 있는 듯했다. 그녀의 말마따나 이름만 팔아먹지 않았을 뿐이지 간접적으로 그녀를 이용한 게 맞긴 하다.
그걸 깨닫자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만나자마자 반갑다고 마법을 회수하려 했던 괴팍한 신이다. 축복을 내려준 걸 보면 크게 문제 삼지 않는 듯했지만, 혹시나 나를 벌하려 들면 또 무슨 요상한 짓을 할지 감도 안 잡혔다.
‘혹시 저주 같은 걸 내리면 어쩌지?’
죽는 건 딱히 상관없다. 여긴 꿈속이니까.
다만 현실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저주 같은 것에 걸릴까 봐 두려웠다.
축복이 가능했으니 저주도 가능하겠지? 그러고 보니 메두사도 세르시아가 자신을 질투해 저주를 걸어서 괴물로 만들었다고 하지 않았었나? 설마 그게 진짜였나? 아니, 이거 완전 못된 신이잖아...!
나는 제멋대로 그런 결론에 도달했다.
‘안 되겠다. 수상한 낌새가 보이면 바로 자살해서 런해야겠어. 어차피 내 꿈속으로는 못 들어온다고 했으니까 내가 도망치면 자기가 어쩌겠어?’
내가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바싹 경계하자, 꼬맹이 세르시아는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렇게 긴장하지 않아도 된단다. 나는 그 일로 너를 문책하려고 부른 것이 아니니.”
“예? 오오... 역시.”
역시 신은 자비롭다!
나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말을 이었다.
“그럼 무슨 일 때문에 저를 부르신 겁니까?”
“네게 물어보고 싶은 게 있단다.”
뭐야, 별거 아니었군.
얼마든지 물어봐라.
“너는.......”
이번에는 그녀의 눈빛이 묘하게 빛났다.
“이 세계의 존재가 맞느냐?”
뭐?
“답해 보아라. 너는 이 세계에서 나고 자란 존재가 맞냐고 물었다.”
그녀는 여전히 꼬맹이의 형상을 취하고 있었지만, 말투에는 거역하기 힘든 위엄이 담겨있었다.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어떻게 그 사실을 알아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잡아뗐다. 순순히 인정하면 어딘가로 붙잡혀 끌려가서 인체실험이라도 당할지도 모르잖아.
세르시아는 잠시 나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너는 평범한 인간이 아니야. 아니, 인간이 맞는지조차도 확신할 수 없구나. 너는 인간이 맞느냐?”
“네? 당연히 인간입니다만... 왜 그런 질문을 하시는지...?”
“얼마 전에 차원의 틈들을 발견했다. 인간계 곳곳에 균열이 있었지. 그중 대부분은 지옥과 정령계 같은, 내가 알고 있는 차원과 이어져 있었지만... 정체를 알 수 없는 세계와 연결된 틈도 있더구나.”
그녀는 재차 질문했다.
“혹 너는, 다른 세계에서 흘러들어온 존재가 아니더냐?”
하지만 지금 질문을 해야 할 사람은 그녀가 아니라 나였다.
“아니, 잠깐. 차원의 틈? 그거 어디에 있는 겁니까?”
“......? 그것은 위치가 존재하지 않는다. 정신을 통해 넘나드는 것이지. 이걸 모르다니... 너는 차원의 틈을 통해 넘어온 게 아니었나...? 아니면 자각하지 못한 채 넘어온 건가...?”
세르시아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중얼거렸으나, 나 역시 세르시아의 말이 이해가 안 되기는 마찬가지였다.
정신을 통해 넘나드는 거라니? 그게 뭔 뚱딴지같은 소리야? 그냥 어딘가에 구멍이 뻥 뚫려있고 거길 통과하면 되는 게 아니었어?
우리는 그렇게 한동안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혼란스러워했다.
그래도 신이라고, 세르시아가 먼저 정신을 차리고 입을 열었다.
“나의 권능이 온전히 닿지 않는 걸 보면 평범한 존재가 아닌 것은 분명한데... 너는 아무래도 스스로 이 세계로 넘어온 게 아닌 것 같구나. 하지만 외부 세계에서 온 존재는 맞아. 그렇지 않니?”
“예, 뭐. 맞습니다.”
나는 쿨하게 인정했다.
원래는 웬만하면 감추려 했지만, 그 차원의 틈이라는 게 등장하면서 얘기가 달라졌다. 그것에 대해 물어보려면 내가 게임 바깥에서 왔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편이 좋을 테니까.
“역시...! 그랬구나! 너는 외부의 존재였어!”
소리치는 그녀의 눈빛에는 광기가 번득였다.
나쁜 의미의 광기가 아니라, 주체할 수 없는 호기심 말이다.
“나는 늘 그런 의문을 품어왔단다. 과연 내가 알고 있는 세상이 세상의 전부일까 하는. 어떤 곳이지? 네가 넘어온 그 세계는?”
게임 속의 존재가 게임 바깥세상을 궁금해 해왔다라. 인공지능의 반란, 뭐 그런 건가?
“글쎄요... 저는 대답을 한번 해드렸으니, 이번에는 제가 질문을 하고 싶은데.”
“......조, 좋다. 물어보거라.”
세르시아는 손바닥을 쥐었다 폈다 하며 안절부절못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 차원의 틈이란 건 어떻게 넘나드는 겁니까? 정신을 통해서 넘나드는 거라고 하셨었는데... 그걸 어떻게 하는 거죠?”
“그건 대답해줄 수 없겠구나. 인간이 숨 쉬는 것과 비슷하단다. 누군가가 가르쳐줄 수 있는 유형의 문제가 아니라, 스스로 깨닫는 거지.”
“아.”
젠장. 뭔가 단서를 찾을 수 있나 했더니만.
역시 최종 퀘스트를 수행하는 수밖에 없나.
“아, 맞다. 인간계에 지옥과 연결된 차원의 틈도 있다고 하셨었죠? 그럼 대악마가 넘어올 수도 있겠네요?”
“가능성은 있지. 왜, 넘어오면 네가 처치하기라도 할 생각이니?”
“넘어온다면 그래야죠.”
피식. 세르시아는 실소를 흘렸다.
“그런 말을 하는 걸 보니 너는 대악마를 만나본 적이 없구나? 그들은 교활하고 영악하며 또한 강력하지. 네가 비록 특이한 존재라고는 하나, 그 정도의 힘으로는 상대할 수 없단다.”
약간 자존심 상하네.
물론 틀린 말은 아니겠지만.
“흐음, 대악마인지는 모르겠지만 서큐버스의 어머니인가 뭔가 하는 악마를 만나본 적은 있습니다.”
“......뭐? 릴리스를?”
“예? 아, 예. 이름이 릴리스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욕망이 그득한 꿈속에서 몇 번 만나봤습니다만... 겉으로 보기에는 그렇게 강력해 보이지 않던데요?”
그냥 나긋나긋한 여자처럼 보였었다.
“그것 역시 네가 몰라서 하는 소리란다. 그녀는 욕망과 꿈을 관장하는 대악마. 희망과 꿈을 관장하는 나와는 대척점에 있는 존재이지. 꿈속에서 만났기에 약해 보였을 뿐, 그녀 본신의 힘은 무척이나 강력해. 인간계에서는... 드래곤을 제외하면 감히 범접할 수조차 없을 거야.”
“아니, 미친. 세르시아 님과 동급이라고요?”
내가 황당하다는 듯 되묻자 꼬맹이 세르시아가 발끈했다.
“무슨! 대척점에 있다고 해서 동급이라는 소리는 아니다! 과거에 내가 그녀의 자식들을 모조리 소멸시켜버렸지. 그때 표정이 참 볼만했는데 말이야. 훗.”
어쨌거나 대악마 릴리스는 소멸시키지 못했으면서 뭘 그렇게 자랑스럽게 얘기하는 건지는 모르겠다.
“아, 예. 역시 대단하시네요. 근데 대악마가 인간계로 넘어와도 세르시아 님은 못 오시는 거 아닙니까? 세르시아 님이 계신 곳과 연결된 차원의 틈은 없잖아요.”
“......그렇긴 하지.”
“그럼 누가 그 대악마를 막습니까? 드래곤도 가까스로 비빌 정도만 된다면서요. 그래서 말인데... 저한테 힘 좀 팍팍 밀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넘어오면 저도 한 손 거들 테니.”
나는 은근슬쩍 그렇게 제안했지만,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외부 세계에서 온 인간아.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온전히 너를 신뢰할 수 없단다. 정체가 불분명한데다가 릴리스와도 여러 번 접촉했는데, 내가 어찌 너를 믿고 힘을 나눠줄 수 있겠니? 악마가 넘어올 낌새가 보인다면 내가 신자들을 통해서 개입할 것이니 너는 신경 쓸 것 없다.”
쩝. 아쉽군.
신성력이야 내가 신을 믿는 만큼만 따라오는 거니 그렇다 쳐도, ‘홀리 리커버리’ 같은 신성 마법은 그녀가 부여해줄 수 있다. 그래서 혹시나 하고 물어봤는데, 역시나 거절당했다.
그냥 원래 계획대로 드래곤이나 노려야겠군.
“그럼 뭐, 저는 악마 쪽은 관심 끄겠습니다. 세르시아 님이 나서준다고 하시니... 그래도 인간을 아끼긴 아끼시나 보네요.”
“당연한 일 아니니? 인간의 믿음이 있어야 내가 강해지거늘. 나의 소중한 동력원들을 그냥 죽게 놔둘 수는 없지.”
“.......”
그 책이 옳았다.
이 세계의 신은 인간에게 무조건적으로 베풀어주는 존재가 아니었다. 그저 신앙을 받은 만큼 돌려주는 쌍무적인 관계에 놓였을 뿐인, 그저 ‘다른 종족’이었다.
그럼 악마와 딱히 다를 바도 없지 않나?
악마도 대가를 받은 만큼 힘을 주니 말이다.
‘뭐, 기브앤 테이크가 나쁜 건 아니지.’
내가 잠시 생각하느라 입을 다물고 있자, 세르시아는 기다렸다는 듯 물었다.
“네 질문은 끝났니? 그럼 내가 다시 묻고 싶구나. 네가 속해있던 세계는 어떤 곳이었지?”
그게 그렇게 궁금한가? 별거 없는데.
세르시아는 희망의 여신이 아니라, 마치 호기심의 신이라도 된 것처럼 재촉하며 물었다.
“어서 대답해주지 않겠니?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구나. 그곳에도 신이 존재하니? 존재한다면 유일신이니? 아니면 이곳처럼 여러 신이 존재하니?”
“아, 그건...... 아니, 잠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고민하던 중, 문득 어떤 생각이 치밀어 올랐다.
“이 세계에 여러 신이 존재한다면... 혹시 번개의 신 같은 것도 있습니까?”
“있지. 천둥의 신 오베른이.”
“오옷? 그럼 그 신도 뭐 믿음 같은 걸 주면 보답으로 천둥과 관련된 힘을 줍니까?”
“질문은 내가 했잖아. 왜 다시 네가 질문하는 거니?”
그녀는 못마땅하다는 듯 얼굴을 찡그렸다.
“아니, 이것까지만 알려주시면 저도 성실하게 대답해드리겠습니다.”
“......좋아, 약속 지키렴.”
여전히 못마땅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 세르시아가 말을 이었다.
“네가 말한 대로 천둥의 신 오베른도 자신을 믿는 신자에게는 힘을 내려주곤 했었지.”
“......했었지? 왜 과거형이죠?”
“신화시대가 종식된 이후 대부분의 신은 극도로 약화된 상태이기 때문이지. 동력원이 끊겨버렸으니까. 그리고 그건 오베른도 마찬가지일 거야.”
“......마찬가지일 거야? 세르시아 님도 확신하지는 못하시는 모양이죠?”
내가 꼬치꼬치 캐묻자, 그녀는 피곤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하아, 너 말꼬리 잡는 데에 굉장한 소질이 있구나?”
“그거야 세르시아 님이 두루뭉술하게 말씀하시니까 그렇죠.”
“나도 그를 안 만난 지 오래돼서 그래. 그럼... 직접 만나보러 갈래?”
“예? 그게 가능한 겁니까? 차원이 막혀있다면서요?”
“꿈은 차원의 제약을 받지 않는단다. 그의 꿈속으로 들어가서 만나면 돼. 어때, 내가 문을 열어줄 테니 같이 가보겠니?”
아니, 그걸 질문이라고 하나.
“당연하죠. 갑시다! 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