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꿈속에서 마법을 훔치는 마법사-174화 (174/200)

꿈속의 신 (1)

나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짜, 짜릿해!!”

이것은 마법을 성공적으로 얻었다는 자축의 의미가 담긴 감정적인 표현이 아니다. 실제로 온몸이 저릿저릿한 느낌이었다.

내가 사용하는 전격 마법은 얼마나 아플까?

나는 그게 항상 궁금했다.

그리고 이번 기회에 직접 맞아보니 알겠다.

개아프다.

왜 사람들이 내가 전기 맛을 보여주며 질문하면 자신의 은밀한 비밀까지 술술 실토했는지 비로소 이해됐다.

“신체 내부에서 화상을 입은 듯한 이 고통... 이건 마치 전자레인지에서 돌려진 듯한 느낌이군....”

물론 전자레인지 안에 들어가 본 적은 없지만.

“아무튼 습득한다.”

[마법 ‘리플렉션’을 습득했습니다!]

[금일 사용 가능한 ‘리플렉션’ - 1회]

[동일한 대상에게서는 더 이상 마법을 습득하거나 훔칠 수 없습니다.]

1회의 사용횟수라.

존재할 수 있는 횟수 중 가장 적은 숫자였지만, 어느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던 바다. 왜냐하면 이 마법의 창조자인 파블로 로필조차 1회밖에 못 쓴다고 했으니까. 당연히 나도 1회겠지.

‘뭐, 이 정도면 만족할 만하지. 그나저나 요즘 유틸리티 계열의 마법 복이 터진 것 같은데?’

왕실 서고에서 습득한 염동력 비슷한 마법과 은신 마법인 클로킹, 그리고 이 반사 마법까지. 하나 같이 활용도가 높은 유틸 마법들이다.

심지어 저 세 개의 마법을 얻기까지는 시간이 얼마 걸리지도 않았다. 과거 모험가 시절에는 마법 하나를 얻으려면 오랜 시간을 투자하며 온갖 생쇼를 해야 했는데, 이제는 신분과 명성이 높아진 덕분이다.

‘메두사 백작. 이게 은근히 잘 먹힌단 말이지... 흐흐흐.’

눈을 마주치면 죽여버리는 잔혹한 메두사.

왕국의 고위 귀족인 백작.

따로따로 놓고 봐도 훌륭한 타이틀일진대, 그 두 개가 합쳐지니 시너지 효과가 대단했다.

평민은 쩔쩔매고,

귀족은 눈치보고,

왕족은 전전긍긍.

이게 내 현주소다. 악명 때문에 좀 피곤하긴 해도 웬만한 일은 프리패스다. 아까도 백작이라는 직위 덕분에 참가자 숙소에 제한 없이 들어가고 명부까지 볼 수 있었잖은가?

게다가 악명이 높다는 게 꼭 나쁘지만은 않았다.

의외의 활용방안이 있었다.

꿈속에서 상대를 공격할 때 위화감이 거의 없는, 매우 타당한 명분이 돼주었기 때문이다.

‘아, 나랑 눈 마주쳐서 죽이겠다는데 어쩔 거냐고.’

왜, 뭐. 너도 알고 있었잖아? 라고 말하며 공격하면 그만인 것이다. 방금 파블로 로필에게 그랬던 것처럼 말이지.

물론 당사자와 데면데면해지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도 있겠으나, 파블로 로필과 나는 딱히 접점이 없으므로 생까도 별 상관없다. 마법에 미친 사람인 나로서는 마법을 얻을 수만 있다면 감내할 수 있는 부분이다.

아무튼 마법 뷔페의 마지막 음식이었던 리플렉션까지 얻어냈으니 초기에 세웠던 목표는 얼추 달성했다고 볼 수 있었다.

일부러 반사하기 쉬운 마법을 날린 보람이 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벼락 류의 마법을 날리면 엉뚱한 데로 튕겨낼까 봐 투사체 형태인 ‘오브’를 골랐는데, 아주 탁월한 선택이었다.

‘그럼 이제... 쿨타임이 돌아오는 대로 성녀의 꿈으로 들어가면 되겠군.’

***

또다시 무난하게 3일이 흘러 축제는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아직 완전히 끝난 건 아니기에 여전히 진행 중이었지만, 나는 더 이상 축제와 대회를 관람하러 가지 않고 저택에 틀어박혀 한가로이 독서나 즐기고 있었다.

어차피 얻을 마법은 다 얻었기 때문이다.

아직 쓸만한 마법을 다루는 자들이 남아있을 수도 있겠으나, 오늘 밤 성녀의 꿈에 들어가야 하는 나로서는 그림의 떡을 바라보듯 바라봐야만 한다. 그럼 괜히 배만 아플 테니, 아예 안 보고 내 할 일이나 하고 있는 것이다.

탁! 나는 읽고 있던 신학 서적을 덮고 소리쳤다.

“오우!!”

그러자 문밖에서 철컥거리는 소리가 아득하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 소리는 점점 커지더니, 이윽고 내 방문을 열고 풀 플레이트 아머와 마법사 모자라는 끔찍한 패션 감각을 지닌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부르셨습니까, 강사... 아니, 백작님?”

그렇다. 나는 오우 피들스턴을 등용했다.

안 그래도 마음 놓고 이것저것 시킬 수 있는 실력자가 필요한 참이었기에, 그냥 피들스턴을 고용해서 기사로 서임해줬다. 그는 미약하지만 오러를 다루는 경지라 기사가 될 최소한의 자격은 있었다.

물론 피들스턴은 왕립 아카데미 기사학부의 저학년이었지만, 그건 당연히 기사가 되기 위해 입학한 거다. 내가 기사로 서임해주겠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는 뜻이다. 아카데미는 조기 졸업했다고 보면 되겠다.

“가서 이 책들 좀 왕실 서고에 반납하고 와라.”

이런 잔심부름을 시키기에 정말 딱이었다.

심부름이라면 또 도린 형제가 빠질 수 없지만, 걔네는 실력이 딸려서 시킬 수 있는 일이 제한적이다. 그럴 가능성은 별로 없지만 혹시 왕실 서고에서 빌려온 책을 깡패 집단에 뺏기기라도 하면 곤란하니, 안전하게 피들스턴에게 시키는 것이다.

“옛, 지금 당장 가면 되겠습니까?”

“그래, 나머지 한 권은 아직 못 읽었으니까 나중에 반납한다고 전해.”

“알겠습니다.”

내게서 책을 받아든 피들스턴은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하고 즉시 자리를 벗어났다.

빠릿빠릿해서 좋군.

아무튼 나는 왕실 서고에서 빌려온 나머지 책을 펼쳤다. 이것 역시 신학 관련 서적이다.

나는 신을 만나러 가야하고, 능력의 쿨타임이 돌아올 때까지 딱히 할 일도 없어서 신과 관련된 책들을 읽고 있었다. 혹시 뭔가 도움이 될만한 정보라도 있나 싶어서 읽어본 건데, 솔직히 도움 되는 정보는 별로 없었다.

‘뭔 놈의 책이 죄다 신을 찬양하는 내용밖에 없냐.’

신은 얼마나 위대하고 고결한지, 인간들에게 어떤 자비와 은혜를 베풀었는지 등 별로 궁금하지도 않고 유익하지도 않고 공감도 되지 않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아마 정말로 신이 이렇다기보다는, 신성 모독적인 내용이 담긴 서적들은 검열당해서 역사 속으로 사라진 듯했다. 그래도 외부에서 개입하기 어려운 왕실 서고였기에 나름대로 신에 대해 객관적으로 서술한 책도 있긴 했다.

『신, 그 결점 많은 존재에 관한 고찰』

일전에 마법서를 찾기 위해 왕실 서고를 뒤지다가 발견한 책이다. 이 책에서는 신을 무조건적으로 숭배해야만 하는 전지전능한 존재가 아니라, ‘다른 종족’으로 봐야 함이 옳다고 주장했다.

이를테면 정령이나 드래곤, 악마처럼 인간보다 강하긴 하지만 분명히 한계가 존재하는 ‘종족’이라는 것이다.

그 근거로 신화시대 이후로 신이 이 땅에서 자취를 감춘 일을 들었다. 모종의 이유로 차원 간의 이동이 막혀버렸고, 신은 그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어서 인간 세상에 현현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인간과 신의 관계는 그저 신앙을 주고 보답으로 신성력을 받는 기브앤 테이크일 뿐이니, 신이라고 맹목적으로 믿기만 할 필요가 없다는 게 그 책의 요지였다.

‘뭐, 나야 아무래도 상관없긴 하지만... 신이 이 땅에 현현할 수 없다면 역시 신을 죽이는 건 불가능하겠네.’

원래부터 최종 퀘스트의 후보 중에서 신은 제외한 상태였지만, 이렇게 관련 서적들을 읽어보니 진짜로 일말의 가능성조차 없어 보였다.

강함은 둘째치고, 일단 만날 방법이 없지 않은가?

물론 세르시아는 만날 수 있지만 그건 꿈속에서 만나는 것이므로 실체가 아니다. 내가 꿈속에서 마법에 맞아 죽어도 현실에서는 멀쩡히 살아있듯, 세르시아도 마찬가지라는 뜻이다.

‘흐음... 그나마 달성 가능성이 가장 높은 건 역시 드래곤 쪽인가.’

현재 시점에서 보자면 1순위는 드래곤, 2순위가 황제였다. 황제가 가장 약하긴 하지만 아직 제국을 건설하긴 요원해서 2순위고, 드래곤은 헤츨링 때문에 직접적인 가시권에 있다.

세르시아를 만난 뒤, 별다른 특이사항이 없으면 슬슬 본격적으로 움직여야겠다.

***

그날 밤. 세르시아교의 본단.

나는 성녀의 방에서 그녀가 잠들 때까지 말동무나 해주고 있었다.

“......그럴 리가 없어요. 신께서는 완전무결한 존재이십니다.”

침대에 걸터앉아 있는 성녀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신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면 타락의 길을 걷게 될 뿐이에요. 악마는 의심에 기생하는 존재. 악마의 유혹에 빠지지 않으려면 언제나 굳건한 믿음을 지니고 있어야만 합니다.”

“음, 그렇군요.”

별로 공감은 안 됐지만 대충 고개를 끄덕여줬다.

솔직히 나의 신앙은 불량하기 짝이 없지 않은가? 성녀의 말대로라면 나는 진작 악마의 무수한 러브콜을 받았어야 했는데, 그런 낌새조차 없었다.

하지만 나는 성녀와 논쟁하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 아니었으므로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간 것이다.

“근데 그럼 성녀님은 이 땅에 신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신께서 다 뜻이 있으시겠죠.”

“아니, 그 악마라는 것들을 신이 직접 찾아가서 처단하면 좋잖아요? 그럼 인간이 악마의 유혹에 빠질 일도 없을 텐데. 흑마법사 같은 것도 사라지고. 근데 왜 안 그러는 겁니까?”

만약 그렇게만 해준다면 참 좋을 것이다.

나도 꼽사리 껴서 대악마 처치에 관여할 수 있을 테니까.

“그것 또한 신의 뜻이겠죠.”

“오.”

성녀도 반사 마법을 사용할 수 있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든, 그건 다 신의 뜻이라고 반사해버리는 마법을.

“와, 이건 뭐 벽 보고 얘기하는 것 같네요.”

“......저는 감히 신의 뜻을 앞서나가지도, 짐작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믿고 따를 뿐이죠.”

“그게 정말 신의 뜻이 맞을까요? 어쩌면 그냥 단순히 그럴 만한 능력이 없는 게... 아, 아니. 아닙니다.”

나는 신이라는 존재의 힘이 부족해서 악마를 방관하고만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지극히 합리적인 추론을 늘어놓으려다가 그만뒀다.

성녀는 신의 충실한 종일 뿐이고, 괜히 감정을 자극했다가는 그녀가 잠드는 시간만 늦어질 뿐이니까.

“.......”

하지만 이미 자극해버렸는지, 성녀는 머리에 꽂혀있는 물망초를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아니, 근데 저건 잘 때도 끼고 자나?

궁금하기도 했고, 화제를 돌릴 필요도 있었기에 나는 그것에 대해 물었다.

“그건 잘 때도 끼고 계시나 보죠?”

“......네?”

“그 꽃이요. 진짜 항상 머리에 꽂고 다니시던데. 혹시... 무슨 성물 같은 겁니까?”

그런 거라면 나도 하나 달라고 해야겠다.

“아니요. 그냥 예뻐서요.”

“아, 예... 그러셨구나.”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관상용인 모양이었지만, 성녀는 배시시 웃으며 말을 이었다.

“예쁘지 않나요? 수수한 외관도, 애틋한 꽃말도.”

“꽃말...? 물망초도 꽃말이 있었군요?”

아, 꽃이라면 다 가지고 있는 건가?

그런 쪽은 전혀 관심이 없어서 모르겠다.

“......나를 잊지 말아요.”

“예?”

뭐야. 갑자기 분위기 고백?

“물망초의 꽃말이에요.”

“아.”

뭐, 애틋하긴 하군.

아무튼 자신이 아끼는 꽃에 관해 얘기해서 그런지 성녀의 표정이 한결 편안해졌다. 나는 이제 영양가 없는 대화는 그만하고 잠들기를 종용했다.

“이제 슬슬 잠자리에 드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하지만 아직 잠이 오지 않는걸요.”

“그래도 누워서 눈 감고 노력이라도 해보세요. 세르시아 님을 계속 기다리게 할 겁니까? 그거 신성 모독입니다.”

내가 신성 모독이라는 치트키를 사용하자, 성녀는 곧장 고개를 끄덕이고는 침대에 누웠다.

“그럼 저는 이만 옆방으로 가볼 테니 좋은 꿈 꾸시길.”

외간 남자가 같은 방에 있으면 쉽사리 잠이 올 리가 없으므로, 나는 그녀의 침대맡에 놓여있는 촛불을 끄고 옆방으로 이동했다.

‘신은 완전무결하다라....’

성녀는 내가 아까 읽었던 책과는 정반대의 주장을 했다. 정말 그렇게 믿고 있는 걸까? 아니면 그렇게 믿고 싶은 걸까.

뭐, 그녀의 믿음이 어떤 형태든지 간에 그건 내게 중요하지 않다. 내가 그녀에게 바라는 점이 하나 있다면, 그건 빨리 잠들기나 했으면 좋겠다는 거다.

원래 억지로 잠을 청하면 더 안 오는 법.

그래서인지 무려 두 시간을 넘게 기다리고 나서야 성녀가 꿈을 꾸기 시작한 게 느껴졌다.

나는 바로 그녀의 꿈속으로 진입했다.

─화아악!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끝없이 펼쳐져 있는 물망초 밭이었다.

그다음으로 눈에 들어온 건 갑자기 떠오르는 시스템 메시지였다.

[금일 사용 가능한 ‘홀리 리커버리’ - 4회]

[금일 사용 가능한 ‘홀리 리커버리’ - 4회]

[금일 사용 가능한 ‘홀리 리커버리’ - 4회]

“......?!”

황급히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니, 무언가 용쓰는 듯 얼굴을 찡그린 꼬맹이 세르시아가 나를 향해 한쪽 팔을 뻗고 서 있었다.

“저기요, 세르시아 님. 지금 뭐 하시는...?”

내가 그리 묻자, 그녀는 찡그렸던 표정을 황급히 지우고 자애로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응? 아아, 너에게 축복을 내리려던 참이었단다.”

와, 소름. 아닌 척하는 것 좀 봐라.

방금 내 마법 회수하려고 했잖아!

이게 어딜 봐서 완전무결하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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