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꿈속에서 마법을 훔치는 마법사-171화 (171/200)

마법 뷔페 (4)

“???”

자신만만하던 아스왈드의 얼굴에 황당함이 깃들었다.

“0점? 0점? 0점?? 아!”

고개를 이리저리 갸웃거리며 한동안 같은 말을 반복하던 그는, 이윽고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듯 손뼉을 치며 말했다.

“나의 통역기, 이제는 완전히 고장 나버린!”

“제대로 들으신 거 맞으니까 이상한 합리화 하지 마세요, 아스왈드 씨. 당신은 빵점입니다.”

내가 상석에서 내려다보며 거만하게 말하자, 그의 눈썹이 역으로 휘었다.

“강아지!!”

“......강아지?”

“가 아닌 심사위원님. 무엇입니까, 나의 마법이 0점인 이유?”

그거야 심사위원 마음이지.

“이유가 필요합니까? 제가 보기에는 0점이라서 그렇습니다.”

아니, 그리고 굉장히 괘씸했다.

아스왈드는 라이트닝 블래스트를 배운 뒤, 내가 쓰는 마법과 자기가 쓰는 마법의 위력이 다르다며 온갖 진상을 피워댔었다. 그래서 결국 마법서를 환불해줬고.

근데 환불받은 마법으로 대회를 나와?

그것도 우승 상금을 노리고? 양심 있냐?

이건 못 참지.

물론 환불해줬어도 내가 이득을 본 거래였었지만, 아무튼 괘씸했다.

“0점? 0점입니까, 당신이 보기에는?”

“그렇습니다. 아, 아니다. 1점이 최저 점수였지? 와~ 축하드려요, 아스왈드 씨. 당신은 1점을 획득하셨습니다!”

“오, 어머니!”

아스왈드는 이상한 감탄사를 내뱉고는, 관중들을 둘러보며 소리쳤다.

“회복 마법사! 있습니까, 회복 마법사? 당신들 중 회복 마법사가 있다면 즉시 단상으로 올라가서 저자의 눈에 걸려있는 끔찍한 저주를 해제하십시오. 이것은 긴급상황.”

그리고는 다시 나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이유를 말하십시오! 납득할 수 없습니다! 부서져 버린 저 벽이 보이지 않습니까? 산산이 조각났다, 당신의 양심처럼. 나의 라이트닝 블래스트는 강력하다! 상금은 나의 것이 분명합니다!”

흥분한 아스왈드가 와다다 말을 쏟아냈는데,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아스왈드는 전격 쿼드러플이다. 내가 사용하는 것보다는 약하지만, 어쨌거나 그의 라이트닝 블래스트도 굉장히 강하다는 뜻이다.

실제로 지금껏 등장한 마법 중에서 가장 강력했고, 앞으로 대회가 끝날 때까지도 저것보다 강한 마법이 나올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관중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저런 마법에 최하점을 준다고...?”

“그러게. 왜 저렇게 혹평하는 거지?”

“엄청나게 강하잖아. 마법은 강한 게 최고 아니야?”

“맞아. 아까 봤던 투명 마법보다 이게 훨씬 더 대단한 것 같은데...? 이 정도면 우승 후보지.”

다들 라이트닝 블래스트가 감명 깊었던 모양이다. 뭐, 마법사가 아닌 자들이 마법의 가치를 판단하는 척도는 위력이니 그럴 만도 하다.

어쨌거나 또 다른 심사위원인 성녀와 프란츠 국왕 역시 나의 행동이 이상해 보였는지,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나를 부르며 말했다.

“갑자기 왜 그러시는 겁니까, 엘 공...? 제가 보기에는 놀라운 마법 같은데 말입니다.”

“맞아요. 성자님이 대회 내내 평가에 엄격하긴 하셨어도 이건 조금 의아하네요. 성자님은 암살 임무를 수행하느라 못 보셨겠지만, 저 마법은 내전 당시의 총공세 때 수도의 결계를 잠시나마 깨트렸던 대단한 마법이에요.”

그건 나도 알지.

내가 그렇게 하라고 시켰던 거니까.

알베르트를 암살하려고 수도에 잠입할 때, 시선 분산을 위해 아스왈드에게 나와 반대 방향에서 라이트닝 블래스트를 써 달라고 부탁했었다. 그게 내가 마법서를 환불해주는 조건 중 하나였다.

아무튼 프란츠 국왕이야 전쟁에서 아무것도 안 했으니 그렇다 치고, 그래도 성녀는 늘 전장에 있었기에 저 마법의 존재를 아는 모양이었다.

물론 내가 원조라는 건 모르는 듯했다.

나는 내전에서 그 마법을 사용한 적이 없었으니까.

“아니, 저도 저게 무슨 마법인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아주 훌륭한 마법이죠.”

“그런데 왜 그렇게 박한 평가를...? 혹시 무슨 이유라도 있으신가요?”

성녀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있죠. 마법 자체는 흠잡을 데가 없는데, 시전자가 문제입니다. 방금 저 엘프가 시전한 건 본래의 위력에 한참을 못 미칩니다.”

“......원래는 저것보다도 더 강하다구요?”

“예. 자고로 마법 경연 대회란 해당 마법의 효율을 극한까지 끌어올려서 선보이는 건데, 저 엘프는 아니잖습니까? 그래서 1점을 준 겁니다.”

사실 이건 핑계고, 그냥 아스왈드한테 한 방 먹여주고 싶어서다. 그동안 녀석에게 받은 정신적인 데미지는 이루 다 말할 수가 없다.

게다가 저 마법은 나도 가지고 있으므로, 아스왈드는 탈락시키고 다른 마법을 다루는 참가자를 합격시키는 편이 좋다.

“무슨 말씀인지 이해했어요, 성자님. 하지만 저 참가자와 관중들은 그 이유를 모르니, 점수 산출의 근거를 설명해주시는 게 어떨까요? 자칫하면 맹목적인 비난으로 비칠 수 있습니다.”

“예, 뭐. 안 그래도 그러려던 참이었습니다.”

나는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아스왈드를 향해 입을 열었다.

“참가자 아스왈드 씨. 1점의 이유를 물으셨습니까.”

“하아, 또 입니까? 같은 말을 두 번 하게 하는 것? 그것은 당신이 가진 재주이다, 사람을 번거롭게 만드는 놀라운 재주!”

그는 나를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는데, 심사 권한을 가진 사람에게 이렇게 구는 것이야 말로 놀라운 일이 아닐까 싶었다.

“뭐야, 별로 안 궁금하신가 보네. 그럼 관두세요. 당신의 우승 상금, 1점으로 대체되었다. 제 평가는 이대로 마무리 하겠습─”

“궁금합니다!! 선생님!!”

아스왈드는 황급히 대답했다.

참고로 아스왈드의 입에서 ‘선생님’ 소리가 나오면 그가 굉장히 아쉬운 상황에 놓여있다는 뜻이다. 평소에는 나를 ‘맞는 인간’ 또는 ‘강아지’로 부르니까.

“궁금합니다 나는, 최하점을 받은 이유, 저 벽을 완전히 부쉈음에도. 해명하시오!”

“좋습니다. 설명해드리죠. 그건 바로... 당신의 마법이 짝퉁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손가락을 들어 아스왈드를 가리켰다.

“당신은 라이트닝 블래스트를 사용한 게 아닙니다. 어설프게 흉내만 냈을 뿐이지. 신성한 마법 경연 대회에 아류작을 들고 오다니. 부끄럽지도 않습니까?”

“무엇? 스튜를 먹다가 혓바닥을 데었습니까, 인간? 당신은 말이 헛나왔다. 내 마법은 가품 아닙니다. 나는 정품 마법서를 통해 습득했다, 이 마법!”

아스왈드가 항변했지만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그건 가짜입니다. 그 마법이 가진 위력을 제대로 살리지도 못했고, 소리도 좀 이상하더군요? 번개가 나갈 때 ‘쩌저적!’이 아니라 ‘쩌저저적!’ 하는 소리가 나야 합니다. 번개의 색깔도 좀 흐릿한 것 같고... 아무튼 죄다 허술해!”

“.......”

내가 생트집 잡는 것처럼 보여도, 실제로 아스왈드의 마법과 나의 그것에는 차이가 좀 있긴 하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아스왈드는 그 사실을 알고 있기에, 딱히 뭐라 반박하지 못했다.

한동안 잠자코 눈알만 굴리던 그는, 이윽고 관중들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종족 차별입니다! 당신들의 눈에는 가짜로 보였습니까, 나의 마법? 저자는 약자인 엘프를 혐오하는 비열한 종족 차별주의자이다! 그래서 폄하하는 것, 나의 훌륭한 마법을!”

그는 한껏 억울한 표정을 지어가며 ‘차별’이라는 치트키를 사용했고, 관중은 이에 흔들렸다.

“메두사 백작이 차별주의자라고...?”

“에이, 설마.”

“진짜인 것 같은데...? 그렇지 않고서야 저렇게 훌륭한 마법을 가짜라고 비난할 리가 없잖아?”

“그건 그래. 저 정도로 강력한 마법이 가짜라니. 말도 안 되지. 개인적인 원한이 있나 본데 심사위원이 저래도 되는 건가?”

관중들의 야유 섞인 웅성거림을 들은 아스왈드의 입꼬리가 씨익 말려 올라갔다. 닥치고 상금이나 내놓으라는 듯한 그 표정에 슬며시 부아가 치밀었다.

아오, 귀찮게.

원래는 이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었지만, 자존심 싸움으로 번진 이상 끝장을 보기로 했다.

‘이런 일에 세계수의 눈물을 쓰기는 아깝고... 그냥 이걸 마셔야겠군.’

나는 주머니에서 탈진 방지 물약을 한 병 꺼내 들고 단상 밑으로 내려갔다.

“다들 잘 보세요. 제가 왜 이 참가자의 마법이 1점짜리라고 했는지 보여드리겠습니다.”

─파직. 파직.

모든 마나가 오른손에 몰려들며, 샛노란 스파크가 일기 시작했다.

[금일 사용 가능한 ‘라이트닝 블래스트’ - 0회]

“무, 뭐야. 아이일 백작도 저 마법을 사용할 수 있었어...?”

“엘프가 사용했던 것보다 색이 진한데?”

“그럼... 저게 원조?”

관중들은 당황하며 술렁였고, 내 옆에 있던 아스왈드의 얼굴에는 낭패감이 서렸다. 나는 그런 그를 향해 조용히 속삭였다.

“정품은 소리가 달라, 소리가.”

마법의 위력을 시험하기 위해 특수 제작된 벽은 이미 아스왈드가 부숴버렸기 때문에, 나는 하늘을 향해 손을 뻗었다.

─쩌저저적!!

─꽈르릉!!

번쩍! 수도 전체에 울려 퍼질 듯한 굉음과 함께, 새하얀 번개 줄기가 하늘로 뻗어나갔다.

그런데 사소한 문제가 하나 있었다.

푸른 하늘과 비슷한 색이라 쉽게 눈에 띄지는 않았지만, 수도는 반구형의 결계로 뒤덮여 있다는 점이다.

─끼기기긱....

하늘을 향해 솟아오르던 번개는 수도의 결계에 맞닿았고,

─챙그랑!!

박살 내버렸다.

“아니, 미친.”

닿은 부위에 구멍만 뚫린 그런 게 아니라, 그냥 통째로 깨져버렸다.

“......뭔데? 왜 이렇게 약해?”

예전과는 달리 트리플 속성의 마법사가 생성해낸 결계라 그런가? 너무 쉽게 깨진 느낌이 좀 있었다.

장내에 잠시간의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곧 여기저기에서 경악에 찬 외침이 터져 나왔다.

“우오오오오오!!!”

“내, 내가 지금 뭘 본 거지? 수도의 결계를 단신으로 깨트리다니? 그래놓고 하는 말이 ‘약해’라니?”

“이게 가능한 일이냐고...!”

“여, 역시 원조는 다르군! 1점을 줄 만해!”

“짝퉁 엘프는 무대에서 내려와라! 우우우.”

그렇게 짝퉁 엘프로 낙인찍혀버린 아스왈드는 1점, 1점, 1점. 도합 3점이라는 기적 같은 점수를 받고 탈락했다.

***

그날 밤.

─화아악!

꿈속에서 빠져나온 나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흐흐흐. 쉽다, 쉬워.”

은신 마법을 고안해낸 노인의 꿈속으로 들어갔었는데, 그 마법을 아주 쉽게 얻어냈기 때문이다.

[꿈속에서 마법 ‘클로킹’을 3회 목격하여 조건을 달성했습니다.]

[습득하시겠습니까? 훔치시겠습니까?]

진짜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쉽게 얻었다.

그냥 내 모습 그대로 노인에게 접근해서 마법을 보여달라고 요구하기만 하면 됐다. 마법 경연 대회는 아직 진행 중이고, 나는 심사위원이니 아무런 위화감이 없었다.

심지어 이 마법에 대한 자세한 설명까지 들을 수 있었다. 보다 세밀한 심사를 위해 정보가 필요하다고 하니 그가 술술 말해준 덕분이다.

‘습득한다.’

[마법 ‘클로킹’을 습득했습니다!]

[금일 사용 가능한 ‘클로킹’ - 3회]

[동일한 대상에게서는 더 이상 마법을 습득하거나 훔칠 수 없습니다.]

이 마법은 시전자 주변의 공기를 변화시키는 바람 속성의 마법이다. 빛이 통과하는 매질인 공기를 왜곡시켜서 난반사를 제한해 시전자를 안 보이게끔 하는 거라고 하는데, 사실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나는 마법의 원리를 이해하고 사용하는 사람이 아니니까. 어떻게 작용하는지 쥐뿔도 몰라도 아무런 문제 없이 쓸 수 있다는 게 내가 가진 특권이다.

아무튼 모습만 보이지 않게 될 뿐 소리나 냄새 같은 것들은 그대로이기에, 주의하지 않으면 감각이 예민한 사람에게는 들킬 수도 있다고 한다.

‘그래도 이 정도면 엄청 유용하겠어. 어디 암살할 사람 없나? 누구 하나 암살하고 싶네.’

이 마법을 진작 배웠더라면 ‘국왕 시해자’를 훨씬 빠르고 쉽게 달성했을 텐데. 다크 템플러처럼 은밀하게 접근해서 슥삭 죽여버리고 도망치면 되니까.

뭐, 앞으로도 비슷한 상황이 나오겠지.

최종 퀘스트가 남아있으니.

‘어쨌든... 앞으로 3일간은 꿈속에 들어갈 수 없으니 내일은 검술 대회나 보러 가볼까? 괜찮은 기사가 있으면 고용해도 괜찮을 것 같은데.’

원래는 이렇게까지 서둘러서 마법을 얻어낼 생각은 없었다. 천천히, 더 다양한 마법을 살펴보고 난 뒤에 신중하게 선택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변수가 발생했다.

희망의 여신 세르시아가 나를 만나길 원하고 있어서다. 딱히 정해진 기한은 없다지만 그래도 신을 오래 기다리게 한다는 게 좀 꺼림칙하지 않은가?

그래서 그냥 능력의 쿨타임을 빠릿빠릿하게 돌리기로 했다. 앞으로 마법을 한두 개 정도만 더 얻어내고, 성녀의 꿈으로 들어가 세르시아를 만날 생각이다.

‘......흐음. 근데 도대체 뭘까? 나를 만나고 싶어 하는 이유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모르겠다.

만나서 물어보지 뭐. 물어보는 김에 대악마나 또 다른 신에 대해서도 좀 물어보고. 어쩌면 지지부진하게 진행되고 있는 이 최종 퀘스트를 향한 새로운 길이 열릴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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