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공행상 (1)
황제, 드래곤, 대악마, 신.
최종 퀘스트를 위해 내게 주어진 선택지다.
시스템은 마치 선심 쓰듯 저들 중 하나를 자유롭게 잡으면 된다고 했지만, 시스템과 대화할 수만 있다면 그럼 네가 한번 잡아보라고 꼭 말해주고 싶다.
일단 신은 선택지에서 제외하는 게 좋을 것이다.
나는 꼴랑 왕 하나 잡았다고 기고만장해져서 감히 신에게 도전하는, 그런 어리석은 부류의 인간은 아니다. 애당초 신에게 인간의 공격이나 마법이 통할지부터가 의문이다.
‘......그리고 신이라고 해봐야 세르시아밖에 없잖아?’
뭔가 좀 허접한 신, 그러니까 이를테면 돌멩이의 신이나 콧털의 신 같은 거라도 존재한다면 어떻게 해보겠는데, 신화시대가 끝나고 세르시아를 제외한 신들은 싹 사라졌다. 뭐, 그녀의 말에 의하면 아직 존재한다고는 하는데, 딱히 만날 방법은 없는 것 같았다.
아무튼 여러모로 실현 가능성도 거의 없고, 혹시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괜히 신을 죽였다가 인간 세상에 이상한 여파가 미칠지도 모르니 일단 신은 제외다.
그다음은 대악마.
‘이것도 좀 힘들 것 같은데...?’
기왕 무언가를 죽이는 거, 사악한 존재인 대악마를 죽이면 그림이 참 정의롭고 좋겠으나 이기는 건 둘째치고 만날 방법이 없다.
나는 사실 대악마가 뭔지도 잘 모른다.
전에 꿈속에서 만났던 서큐버스의 어머니인가 뭔가 하는 여자도 대악마인가? 일반 악마보다는 급이 높아 보였는데, 대악마인지는 모르겠다.
어쨌거나 악마 역시 신과 마찬가지로 다른 차원에 살고 있으므로, 동네 친구 만나듯 내가 원할 때마다 만날 수는 없다.
‘흐음... 이것도 일단은 보류.’
다음은 드래곤.
여기부터는 비교적 현실적인 영역이다.
물론 드래곤이야 웬만한 게임, 소설, 영화에서 공통적으로 묘사하다시피 인간계 최강의 생명체다. ‘크롸롸!’ 또는 ‘크아아!’ 울부짖으며 뿜어내는 브레스는 9서클 마법보다 한 수 위인 것이 국룰이다.
그리고 이 세계에도 그 국룰이 적용된 듯했다. 드래곤의 머나먼 후손인 용족 티안브리스조차 굉장히 강했으니, 드래곤도 강할 것이라는 건 매우 자명한 일이다.
그래도 어쨌거나 드래곤은 인간계에 있다.
신이나 대악마와는 달리 마음만 먹으면 만날 수는 있다는 뜻이다. 죽이는 건 별개의 문제지만.
마지막으로 황제.
가장 현실성 있으면서도, 현실성 없는 모순적인 선택지다. 제국이 없는 세계에서 황제를 잡으라니. 홍철 없는 홍철팀에서 홍철을 잡으라는 것과 비슷하달까.
‘......은근히 열받는단 말이지.’
솔직히 황제가 존재한다고 가정하면 이보다 쉬운 선택지는 없다. 나머지 셋과는 아예 급이 다르다.
그런데 황제가 없네? 어이도 없고.
제국을 건설하거나 왕국을 업그레이드해서 황제를 옹립하는 게 완전히 불가능하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간단한 일은 아니다.
그렇게 쉽게 제국이 탄생하고 황제가 탄생할 수 있다면, 누가 왕을 하겠는가? 죄다 황제 하지. 그게 가능했다면 이 세계에는 진즉부터 왕국 하나 없이 제국만 그득했을 것이다.
황제란 기본적으로 왕을 거느리는 군주다.
제국을 건설하고 황제를 옹립하려면 주변 왕국을 복속시켜야 한다는 말이다. 명분을 찾는 것은 둘째치고 이게 쉬울 리가 없다.
‘......제국을 만드는 과정이 쉽지 않아서 이 선택지도 넣어준 건가?’
문득 그런 깨달음이 찾아왔다.
드래곤, 대악마, 신에 비해서 황제는 너무 급이 떨어지고 쉬워 보인다 했더니, 이건 제국 건설까지 포함된 풀 패키지라 그런 모양이었다.
아무튼, 무엇 하나 쉬운 게 없다.
“심시티까지... 아, 몰라. 그냥 다 해.”
진짜로 다 하는 건 아니고, 투 트랙으로 갈 생각이다. 그나마 현실성 있는 황제와 드래곤을 둘 다 준비하면서, 먼저 상황이 만들어지는 쪽을 노리면 되지 않을까.
물론 ‘그나마’ 현실성 있는 것이기에 쉽지는 않겠지만, 준비하다 보면 뭔가 윤곽이 보이겠지.
서두를 필요 없다.
하루아침에 해결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
천천히 가보자. 나는 중간 퀘스트인 ‘국왕 시해자’를 달성하기 위해, 무려 군대를 두 번 다녀오고도 남을 만한 시간인 4년이라는 세월을 투자한 사람이다. 당연히 최종 퀘스트도 시간이 꽤 걸리겠지.
“아오... 괜히 중간 퀘스트를 제일 어려운 걸로 골라서, 뭔 말도 안 되는 최종 퀘가 생성됐잖아.”
뭐, 누굴 탓하겠나. 내가 선택한 건데.
그래도 덕분에 짭짤한 보상을 받지 않았는가?
꿈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반경이 ‘대폭’ 증가하고 쿨타임도 줄고. 그 외에도 이것저것 잔뜩 받았지만, 지금 당장 가장 크게 체감되는 건 마나였다. 국왕을 죽여서인지 퀘스트를 완료해서인지 마나가 끓어 넘치는 게 느껴졌다.
“마나, 쌓여있잖아.”
기사단을 가둬두기 위해 사용한 인페르노가 아직 유지되고 있어서 마나가 꾸준히 소모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아돌았다.
“일단은... 이 전쟁을 끝내야겠군.”
전망대 밖을 내다보니 반왕군은 여전히 왕성을 향해 진격해오고 있었다. 그들로서는 알베르트가 죽었다는 사실을 아직 모르니까.
국왕군과 반왕군 모두에게 왕이 사망했다는 사실을 알려서 이 싸움을 끝낼 필요가 있었다.
알베르트의 시체는 속박의 저주 때문에, 무슨 인체의 신비전에 전시된 것처럼 이상한 포즈로 서 있었다. 나는 바로 저주를 해제했다.
─츠츠츠....
그리고 그의 목덜미를 잡아서 질질 끌며 전망대의 출입문으로 향했다.
“아니지. 굳이 걸어 내려갈 필요 있나? 마나도 남아도는데 고급지게 텔레포트로 내려가야겠네. 근데... 동반자도 순간이동이 되려나?”
되겠지?
나만 이동되는 거였다면, 나는 순간이동을 할 때마다 벌거숭이가 되었을 것이다. 옷이나 무기는 내가 아니니까.
뭐, 직접 써보면 알겠지. 나는 전망대의 창가로 다가가 밑을 내려다보며, 왕성을 둘러싸고 있는 성벽 바깥을 향해 마법을 캐스팅했다.
─번쩍!
어두운 밤하늘이 점멸하며 한줄기 번개가 소리 없이 내리꽂혔다.
[금일 사용 가능한 ‘아케인 텔레포트’ - 2회]
어디론가 빨려 들어가는 듯한 기묘한 감각과 함께 시야가 잠시 암전했다.
─슈우욱
성벽 앞으로 순간이동 한 나는, 손부터 확인해봤다.
“오, 되네? 개좋은데?”
알베르트도 함께 이동된 상태였다.
마나가 두 배 이상 소모된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퀘스트를 완료하고 보상 세례를 받은 나로서 감당하지 못할 수준은 아니었다. 아, 그러고 보니 횟수도 늘어났군.
아무튼 반왕군은 왕성의 성문 쪽을 향해 오고 있으니, 나도 그쪽 방향으로 걸어갔다.
성문에 가까워지자 싸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콰드드득! 파사사삭! 콰앙!
“으아악!”
“이 괴, 괴물 같은 계집이...!”
계집? 더 가까이 다가가 성문 안쪽을 들여다보니, 안뜰에서 클로이가 국왕군과 싸우고 있었다. 개중에는 기사도 하나 포함되어 있었다.
‘......음? 왜 안 도망가고 아직도 여기에 남아서 싸우고 있는 거지?’
지하 감옥에서 결계 마법사를 암살하고 전대 국왕에게 복수했으면 얼른 튀어야지, 왜 굳이 남아서 싸우고 있는 걸까. 게다가 그녀는 그녀답지 않게 의도적으로 내성을 부숴가며 요란하게 싸우고 있었다.
뭐, 일단 도와줘야겠지.
나는 기사를 향해 마법을 캐스팅했다.
─번쩍!
─꽈릉!
[금일 사용 가능한 ‘콜링 썬더’ - 6회]
텔레포트와는 다르게 천둥소리를 동반한 벼락은 정확히 기사에게 적중했다.
“컥.”
[조건을 달성해 능력치가 오릅니다!]
“뭐, 뭐야?”
내가 쓴 마법이었지만 내가 제일 먼저 당황했다. 마법의 위력도 강해져서 그런가, 한 방에 기사가 즉사해버렸기 때문이다.
뒤늦게 다른 사람들도 당황하기 시작했다.
“......엘?”
“가, 갑자기 웬 날벼락이...?”
“누가 이 마법을... 헉! 메, 메두사?”
다른 사람들이야 놀라든 말든 내 알 바 아니고, 나는 클로이에게 다가가며 입을 열었다.
“목표를 달성하셨으면 지원군이 올 때까지 숨어있으셔야지, 왜 여태 여기서 싸우고 계신 겁니까? 클로이 씨.”
“아, 나는 엘이 아직 성안에 있는 줄 알았어. 그래서 네가 도망칠 시간을 벌어주려구.......”
그런 기특한 생각이었어?
어쨌거나 뒷말을 흐린 클로이는 내 손에 끌려온 시체를 바라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그건 설마...?”
“맞습니다, 알베르트 폰 하츠펠트. 확인해보시죠.”
나는 시체를 클로이의 앞에 던지듯 툭 내려놓았다.
“......맞네.”
그녀는 담담하게 대답했으나, 근처에 있는 국왕군은 아니었다. 그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저, 저, 전하!!!”
“이럴 수가!!”
“철의 기사단에게 철통같은 보호를 받고 계셨을 터인데 어찌...?”
“서, 설마 중부의 메두사가 기사단을 포함한 모두를 해치웠다는 말인가? 그것도 단신으로?”
“그, 그렇다면.......”
경악하던 그들은 자리에 얼어붙은 듯이 멈춰서 조용히 눈알을 굴려댔다. 나를 흘끔거리기도 하고, 자기들끼리 시선을 교환하기도 하고.
“.......”
“.......”
“.......”
그렇게 한동안 눈치를 살피던 그들은, 이윽고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동시에 입을 열었다.
“와아아아!”
“비열한 찬탈자가 죽었다!!”
“드디어 해방이다!!”
“잘 뒤졌다, 패륜아 새끼!”
아니, 이놈들이?
지혜로운 녀석들이었다.
스스로 승리를 일구어낼 수 없다면, 승리한 쪽에 재빨리 빌붙는 것도 괜찮은 생존 전략이다.
“만세!! 성자가 정의를 실현했다!!”
“모두 무기를 버려라! 더는 싸울 필요가 없어졌다!”
“그는 예언자 맞았어! 찬탈자가 죽을 거라고 당당히 예고했는데, 그게 실현되었으니!”
“왕국을 위해 힘써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성자님...!”
불과 1분 전까지만 해도 클로이와 싸우고 있었던 녀석들이 갑자기 태세 전환을 하는 게 살짝 괘씸하기도 했으나, 뭐 이것도 투항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겠지.
어차피 ‘국왕 시해자’는 이미 달성했으니, 굳이 투항한 자들까지 죽일 필요는 없다.
나는 클로이를 바라보며 물었다.
“어떡하실래요? 저는 피를 더 볼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현 국왕과 전대 국왕이 사망함으로써 이제 하츠펠트 왕가는 2왕자였던 프란츠 한 명밖에 남지 않았다. 내 목표뿐만 아니라 클로이의 목표도 달성됐다는 뜻이다.
“......응. 그러네.”
복수는 허무한 것이라고 했던가.
누가 그런 말을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건 틀렸다. 클로이는 무표정으로 담담하게 대답했지만, 입만큼은 활짝 웃고 있었다. 거의 만티코어를 연상케 할 만큼 입이 귀에 걸려있어서 소름이 절로 돋았다.
원래 무표정으로 입만 웃는 게 사람의 표정 중에서 제일 기괴하다.
“아무튼... 이쪽에서 볼일은 다 끝냈으니, 이제 마지막 하츠펠트를 만나러 가죠.”
내가 닭살을 진정시키기 위해 팔을 문지르며 말하자, 클로이가 여전히 소름 돋는 표정을 한 채 고개를 갸웃했다.
“프란츠? 왜? 내가 말했잖아. 하츠펠트는 딱 한 명만 남겨서 나와 똑같은 고통 속에서 살게 해주겠다고. 프란츠까지 죽일 생각은 없는데.”
“무, 뭔 소릴 하는 거야, 이 여자가. 하나 남은 왕족을 죽이긴 왜 죽입니까? 그거까지 죽이면 진짜 수습도 안 됩니다.”
“응? 그럼 왜 만나러 가자고 하는 거야?”
“......왜냐니? 이보세요, 클로이 메이필드 씨. 정신 좀 차리세요. 당연히 보상을 내놓으라고 하러 가야죠.”
우리는 개선장군이다.
목숨 걸고 수도와 왕성에 잠입해, 클로이는 결계 마법사를 나는 국왕을 암살했다. 이 전쟁을 승리로 견인한 건 우리인데, 당연히 보상을 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시스템이 보상을 해줬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얼른 갑시다. 차기 왕이 될 허수아비에게.”
***
수도에 있는 어느 고급 여관.
나는 이곳에서 클로이와 함께 마지막 남은 왕족인 프란츠 폰 하츠펠트를 면담하고 있었다. 왕성을 워낙 개판으로 뒤집어놔 버려서 어쩔 수 없이 여관에서 만났다.
“......메이필드 가문을 복위시켜달라는 말씀이십니까?”
맞은편에 앉아있는 프란츠가 클로이를 향해 그리 물었으나, 내가 대신 대답했다.
“네. 기존에 메이필드 가문이 가지고 있었던 후작의 작위와 영지까지 전부요. 프란츠 님이 왕위에 오르는 즉시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만.”
왜 내가 대신 대답했냐 하면, 클로이는 프란츠를 아주 싫어해서다. 자신과 똑같은 고통을 맛보게 해주려고 살려준 것일 뿐, 좋아서 살려준 건 아니니까.
프란츠가 성격이 유순하다고는 해도 어쨌거나 클로이의 입장에서는 원수의 자식. 말도 섞기 싫을 만큼 고까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알겠습니다. 당연히 그리 해드려야지요.”
프란츠는 흔쾌히 수락했으나, 사실 그에게는 선택권이 없다. 그는 이번 전쟁에서 딱히 한 것 없이 거저로 왕좌에 오르게 생겼다. 내 덕분에.
반쯤은 꼭두각시나 다름없는 그가, 어찌 감히 킹메이커이자 킹슬레이어의 합당하고 정당한 요구를 거절할 수 있겠는가?
자신도 알베르트 꼴이 나지 말란 법은 없으니 처신을 잘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오, 고맙습니다. 결단이 빠르시네요.”
“하하, 아닙니다. 아, 그리고 엘 공께도 작위를 내어드릴까 합니다.”
“......저도요?”
“그렇습니다. 이번 일의 시작과 마무리를 전부 엘 공께서 지으셨는데, 제가 어찌 맨입으로 넘어갈 수 있겠습니까?”
좋은데?
그래, 이래야지. 그동안 평민이라고 얼마나 무시당했던가? 나도 귀족 한번 돼보자.
“작위와 성은 영지에 따라 달라집니다. 이번에 찬탈자 세력으로 참전했던 북부의 많은 귀족들이 숙청될 터이니, 그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는 게 어떠신지요.”
“아, 근데 제가 북부 쪽은 잘 몰라서요.”
“그러셨군요. 그럼 제가 몇 개 추천해드리겠습니다. 플랫 백작령은 어떠십니까? 척박한 북부답지 않게 비옥한 토지의 비율이 높은 곳입니다. 경작지가 많아서 세입도 많은.......”
그는 그렇게 몇 개를 선별해서 내게 추천해줬다.
“오클리 후작령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 될 겁니다. 북부 중에서도 북부라 경작지는 적지만 그만큼 방대한 영토를 자랑하며 영주성에서 내려다보는 설경이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운.......”
프란츠가 열심히 설명해줬으나 별로 내키지는 않았다.
뭐, 영지가 있으면 좋긴 하겠지만 반드시 필요한 건 아니다. 관리하기 귀찮기도 하고. 무엇보다 영지에 따라 성이 결정된다는 게 마음에 안 들었다.
이를테면 내가 플랫 백작령을 받는다면, 나는 엘 플랫 백작이 되는 식이다. 근데 남의 성을 그대로 물려받는다는 게 뭔가 영 찝찝했다.
“흐음... 새로운 성을 받을 수는 없는 겁니까? 영지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는데.”
“영지 없이 수도에서 기거하는 중앙 귀족이 되신다면 가능은 합니다만... 괜찮으시겠습니까? 중앙 귀족도 장원을 받는다고는 하지만, 제가 추천해드린 영지에 비할 바는 못 됩니다.”
괜찮은 것 같은데?
춥기만 한 북부에 처박혀서 사는 것보다는, 소박한 장원을 운영하며 수도에 사는 게 나을 듯했다. 게다가 앞으로 최종 퀘스트를 진행하려면 수도에 있는 게 좋다.
“좋네요. 저는 그게 마음에 듭니다.”
“아,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작위는 영지 없이 가질 수 있는 최대치인 백작으로 임명해 드리겠습니다. 성은... 혹시 원하시는 성이 있으십니까?”
“성? 딱히 생각해둔 건 없는데... 뭐, 그냥 아이일로 하겠습니다.”
내가 그리 말하자, 지금껏 입을 다물고 있었던 클로이가 의아한 듯 입을 열었다.
“아이일? 특이하네. 엘한테 어떤 의미라도 있는 거야?”
“의미? 있긴 하죠.”
그동안 잊고 살아왔던 내 캐릭터 명은,
‘lI1llIlll’이다.
굳이 소리 내어 읽자면 ‘엘아이일엘엘아이엘엘엘’.
‘엘’이라는 내 이름은 저기에서 첫 글자를 따온 것이다. 그러니 대충 그 뒤의 세 글자를 따서 성을 지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