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꿈속에서 마법을 훔치는 마법사-159화 (159/200)

반역에 대한 반역 (7)

일단 수도에 잠입하고 나니, 굳이 첩보 영화에 나오는 스파이처럼 은밀하게 행동할 필요는 없었다.

“그래도 피난을 안 가고 남아있는 사람들이 제법 있네요.”

“그러게. 생각보다 많네.”

평소의 수도에 비해서는 무척이나 한산했지만, 거리를 돌아다니는 사람이 더러 있었기 때문이다.

딱히 감시하는 병사도 없고, 구태여 수상한 행동을 하지 않는 이상은 들킬 염려가 없을 듯했다.

하긴, 국왕군 쪽에서도 결계를 찢고 강제로 진입하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겠지. 게다가 지금은 동쪽 성문에서 총공세가 벌어지고 있으니 더욱 정신없을 테고.

“그럼 바로 가죠. 왕성으로.”

나는 클로이와 함께 당당하게, 하지만 적당히 으슥한 길을 골라서 걷기 시작했다.

최우선 암살 대상은 일단 결계 마법사다.

왕성에 잠입해 어떻게든 알베르트를 찾아내서 죽인다고 하더라도, 결계가 멀쩡하면 아군의 도움을 기대할 수 없다. 아군도 진입해야 내가 탈출하기 수월해지니, 이번 일에서만큼은 알베르트는 2순위, 결계 마법사가 1순위다.

물론 이 기회에 알베르트도 잡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그를 죽일 기회는 아군이 수도로 진입한 후에도 있긴 할 테니 너무 무리하지는 않을 생각이다.

“흐음... 다른 건 둘째치더라도 철의 기사단이 문제인데... 클로이 씨한테도 빡세죠? 그놈들은.”

“아마도. 서너 명까지는 어떻게 해볼 수도 있겠지만 그 이상은 힘들 거야.”

“서너 명? 와, 역시 대단하시네.”

순수 마법사가 왕국 최정예 기사 서너 명과 싸울 수 있다는 건 매우 대단한 일이었으나, 그걸로는 부족했다. 기사단은 20명이나 남아있으니까.

“대단은 무슨. 스무 명을 잡은 네가 더 대단하지. 그리고... 솔직히 기사단장은 나도 자신 없어. 엘 너는 어때?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아?”

“글쎄요. 저도 그자는 좀 힘들 것 같은데.”

기사단원 다섯 명에 준하는 실력이랬나?

그런 자와 맞짱을 뜨는 것은 나로서도 자신이 없었다. 심지어 일대일 상황은 나오지도 않을 것이다. 내가 향하는 곳은 국왕군의 심장부인 왕성. 클로이 빼면 전부 적인 곳이다.

“엘도 어렵구나... 그렇다면 원래 계획대로 웬만하면 회피하는 게 좋겠네.”

“계획이야 그렇긴 한데, 어떻게 될지는 가봐야 알겠죠. 저는 살면서 뭔가가 계획대로 진행된 적이 한 번도 없거든요. 그래서 내가 억울한 마법사지.”

“부, 부정 타는 소리 하지 마.”

클로이가 눈을 찡그리며 기겁했다.

뭐, 계획은 심플하다.

왕성에 들어간 후 최대한 은밀하고 빠르게 결계 마법사만 죽이고 빠지는 것. 불필요한 싸움은 피하고 최소한의 인원만 처리하며 속전속결로 끝낸 뒤, 어디 짱박혀서 숨어있든 도망 다니든 하며 아군의 지원을 기다리는 거다.

그런데 문제는 결계실이 지하 깊숙한 곳에 있다는 점이다.

결계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니만큼, 보안을 위해 왕성의 지하 감옥 최하층에 있다고 한다. 무려 지하 5층. 백화점 지하 주차장급 깊이를 자랑하는 그곳에 결계 마법사가 있다.

“거길 찾아가는 건 별문제가 아니긴 한데....”

나는 수도에 잠입하기 전에 미리 왕성의 구조에 대해 파악해둔 상태였다. 반왕군에도 왕성에 자주 드나들었던 귀족이 많았으므로 정보를 얻는 건 어렵지 않았다. 나도 알베르트에게 가짜 예언을 할 때 한 번 가보기도 했었고.

그래서 결계실을 찾아가는 데에는 문제가 없다. 지하 감옥으로 들어가서 계속 밑으로 내려가기만 하면 되니까.

“......근데 지하 깊숙이 들어갔을 때 퇴로를 막히면 곤란하단 말이지.”

내가 걱정하는 건 이 부분이었다.

결계 마법사를 슥삭 죽여버린 뒤 가벼운 마음으로 퇴장하려 할 때, 철의 기사단이 짜잔! 하고 등장해서 출구를 막아버리면 꼼짝없이 갇히게 된다.

지하 1~2층 정도면 모르겠는데, 그 이상으로 깊은 곳에서 구멍을 뚫고 지상으로 탈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 자꾸 부정적인 소리만 하는 거야?”

“걱정돼서 그러죠. 철의 기사단만 없으면 할 만할 텐데... 뭐, 역시 자세한 건 가봐야 알겠네요. 만약 싹 다 동쪽 성문으로 지원을 나갔다면 의외로 일이 쉽게 풀릴지도...?”

***

억울한 마법사에게 그런 일은 없었다.

또 하나의 결계로 보호받고 있는 왕성. 나는 그 왕성의 성문을 바라보며 클로이에게 속삭였다.

“아니, 미친. 경계가 더 삼엄해졌는데요??”

엄밀히 말하자면 경계가 삼엄해졌다기보다는 유동 인구가 많아졌다. 반왕군의 총공세 때문인지 무언가 바빠 보이는 듯한 병사들이 쉴 새 없이 성문을 들락거리고 있었다.

“그러게... 너무 많은걸.”

“아오, 이 자식들. 전장으로 나가기 싫어서 일부러 바쁜척하면서 왕성에 붙어있는 것 같은데?”

내 생각에는 뺑끼를 치는 것 같았으나, 어쨌거나 우리에게는 악재로 작용했다.

“......아무래도 성문으로 들어가긴 힘들 것 같아. 저렇게 병사들이 계속 드나든다면 조용히 제압할 수는 없으니까.”

왕성에 도착해서인지 조금은 차가워진 듯한 표정의 클로이가 말했다.

그녀에게 이번 일은 크나큰 기회였다. 우리는 결계실로 가기 위해 지하 감옥을 내려가야 하고, 지하 감옥에는 클로이의 원수인 전대 국왕 만프레트 폰 하츠펠트가 수감되어 있으니까.

그래서 내가 제안한 이 위험천만하기 짝이 없는 임무를 아무런 거리낌 없이 승낙한 것이다. 아니, 거리낌 없는 정도를 넘어서 나 이상의 의욕을 보였다.

“수도에 진입했을 때처럼 한적한 곳에서 결계를 찢고 성벽을 넘어가는 건 어때?”

“흐음... 글쎄요. 그건 별로 의미가 없을 것 같은데.”

클로이의 말대로 하면 담장을 넘어서 왕성의 뜰로 진입할 수는 있겠으나, 어차피 지하 감옥으로 가려면 성 내부로 들어가야 한다. 계단이 거기에 있으니까.

지금 저 성문으로 들어가는 병사들은 한가롭게 뜰에서 산책이나 하려는 건 아닐 테고, 당연히 성 내부에 볼일이 있을 것이다.

즉, 우리가 은밀하게 담벼락을 넘어봤자, 성 내부에 진입하면 무조건 저들을 마주치게 된다는 소리다.

“안 되겠다. 이러나저러나 들키는 건 똑같은데, 그냥 정면 돌파하죠.”

“무, 뭐? 성문으로 들어가자구?”

클로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그게 무슨 소리야?”

“둘이 같이 들어가자는 건 아니고, 제가 먼저 들어가서 시선을 끌겠습니다. 놈들이 저를 따라오면, 그때 클로이 씨도 들어와서 재빨리 지하로 내려가세요.”

둘 다 안 들키고 결계실까지 잠입할 방법은 없다. 그렇다면 한 명이 어그로를 끌고, 그사이에 다른 한 명이 결계 마법사를 암살하는 방법뿐이다.

“하지만 그건 엘이 너무 위험하잖아. 그러다가 철의 기사단이라도 만나면 어쩌려고 그래?”

“뭔 소립니까? 철의 기사단을 유인하려고 그러는 건데. 그놈들이 지하 계단을 막아버리면 답도 없습니다.”

“그, 그치만....”

기사단만 내가 묶어두면 클로이의 적수는 없을 것이다. 그녀는 어지간한 기사 한두 명쯤은 그냥 찜쪄먹는다. 결계 마법사도 속성만 좋지 실력은 그저 그렇댔으니 상대가 안 될 테고.

그리고 기사를 상대하는 데에 있어서는 순수 마법사인 클로이보다는 검도 쓸 줄 아는 내가 낫다. 물론 그래도 스무 명과 싸워 이길 수는 없지만, 시선을 끌며 도망치는 것 정도는 가능할 것이다.

“그냥 제 말대로 하시죠. 복수 안 하실 겁니까? 지하 감옥에서 전대 국왕이 목 내밀고 클로이 씨를 기다리고 있는데?”

“.......”

“대신 결계 마법사를 먼저, 최대한 빨리 죽이세요. 제가 혹시 기사단을 떨쳐내지 못하면 반왕군 본대의 도움을 받아야 되니까.”

“......알았어.”

잠시간의 고민 끝에 클로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즉시 망토의 모자를 푹 눌러쓰고 왕성의 성문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경비병이 나를 막아서며 물었다.

“정지! 누구냐? 모자를 벗고 신분을 밝히시오.”

“엘입니다.”

“엘...? 그게 누군데?”

아니, 어떻게 국왕의 병사라는 놈이 왕을 죽이겠다고 선언한 사람의 이름을 몰라?

“세르시아 교단의 성자이자, 중부의 메두사이며, 곧 국왕 시해자가 될 사람인데요.”

“무, 뭣?! 비, 비상! 경종을 울려─”

서걱! 나는 재빠르게 검을 뽑아 경비병들을 베어버린 후, 옆에 설치되어 있는 경종으로 다가가 직접 울리며 소리쳤다.

─땡땡땡땡땡땡!!!

“와아~! 비상! 비상! 메두사가 나타났다~!”

─땡땡땡땡땡땡!!!

“빨리 와서 메두사를 잡아라~! 하지만 죽고 싶지 않다면 눈은 감고 와라~! 물론 눈을 감고 와도 죽일 거지만~!”

그렇게 열심히 외치자, 곧 병사들이 성문 안팎에서 우르르 몰려들었다.

“미, 미친 건가?”

“저, 저놈이 왜 이곳에...?”

“어떻게 들어온 거지?”

궁금한 게 참 많은 녀석들이었다.

그렇다면 답을 알려줘야겠지.

전기는 답을 알고 있다.

─치지지직!

─치지지직!

[금일 사용 가능한 ‘체인 라이트닝’ - 8회]

“끄어어억!”

“으아아!”

내 양손에서 뻗어 나온 전류가, 성문 안쪽과 바깥쪽에 있던 병사들을 줄줄이 쓰러트렸다.

나는 그대로 성 내부로 달려 들어갔다.

‘......어떻게 어그로를 끌어야 클로이가 결계 마법사를 잡을 때까지 시간을 벌 수 있을까?’

생각해보니 그건 간단했다.

결계 마법사보다 더 중요한 인물을 노리는 척하면 된다. 실제로 만날 수 있으면 더 좋고.

“알베르트는 어디에 있나!!”

내가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왕성 내부를 뛰어다니자, 여기저기서 병사들이 튀어나오며 식겁했다.

“구, 국왕 전하를 시해하러 왔다!”

“전하를 지켜야 한다! 계단을 막아라!”

“......?”

나는 녀석들의 멍청함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필사적으로 계단을 막았는데, 그건 알베르트가 위층에 있다고 광고하는 거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알려줘서 고마워!”

나는 계단을 향해 쇄도했다.

***

아래쪽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알베르트는 모골이 송연해짐을 느꼈다.

─콰콰쾅!

─알베르트 어딨어!!

“미, 미, 미친놈... 녀석은 정말 미쳤어....”

─콰앙! 쾅!

─내가 너의 눈을 뽑으러 왔다!! 나와!!

그놈이 기어코 단신으로 왕국의 심장부에 침입해 국왕인 자신을 찾아다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단순히 자신을 찾고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닥치는 대로 왕성을 때려 부수고 있는 모양인지 미세한 진동과 파괴음이 들려왔고,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질러대며 병사를 학살하고 있는 것 같았다.

─왜 인사를 하지 않았지!!

─끄아아아악!

─왜 나와 눈을 마주쳤지!!

─사, 살려... 커억!

─알베르트 어딨어!! 알베르트 데려와!!

왕국 역사상 이런 광인이 있었던가.

국왕을 암살하러 왔으면 조용히 잠입해야지, 어째서 저렇게 난동을 부리며 당당하게 국왕의 이름을 부르짖는단 말인가. 도대체 또 무슨 술수를 꾸며왔길래?

저건 진짜다. 알베르트는 불안과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목숨이 위협당한다는 사실보다, 성자에게서 느껴지는 진짜 광기가 더욱 두려웠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반왕군의 총공세 때문에, 미리 철의 기사단을 전원 소집시켜 놨다는 점이다.

“겨, 경들은 어서 내려가서 서, 성자를 제압해라. 다, 단장은 이곳에 남아서 나를 지키고.”

알현실에 도열해있는 기사단을 향해 알베르트가 떨리는 목소리로 명령하자, 기사단장이 앞으로 나서며 입을 열었다.

“전하, 저도 그자를 제압하러 가겠습니다.”

“무,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인가? 경은 나를 보호해야지!”

“그자는 단신으로 기사단원 스무 명을 제압하지 않았습니까? 이번에도 단원들만 보내면 지난번과 같은 결과가 발생할 것이옵니다.”

“그, 그건....”

같은 시도를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가 나오길 바라는 것은 허황된 욕심일 뿐.

지금 상황에서 국왕을 지키는 최고의 방법은, 왕을 지키는 게 아니라 침입자를 제거하는 것이다.

“전하께서는 바로 왕성의 최상층으로 대피하십시오. 저와 철의 기사단이 목숨 걸고 그자가 올라가지 못하도록 막겠습니다. 아니, 반드시 처치하겠습니다.”

기사단장의 굳건한 맹세에 알베르트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조, 좋다. 놈을 반드시 죽이도록.”

그렇게 알베르트는 알현실을 떠나 왕성의 꼭대기로 향했다.

***

나는 왕성을 뒤집어 놓으며 매드무비를 찍고 있었다.

“뜨거운 맛 좀 봐라!”

─화르르륵!

“와아악!”

“뜨, 뜨거워...!”

“짜릿한 맛도 봐라!”

─치지지직!

“끄아아아!”

“누, 누가 저 미친 녀석 좀 어떻게 해봐!”

“크윽... 지원이 더 필요해!”

실내였기에 비록 벼락을 내리치는 마법은 사용할 수 없었지만, 상대적으로 비좁은 공간 덕분에 대충 아무 마법이나 갈겨도 멀티킬이 가능했다.

그리고 어차피 이런 일반병 상대로 벼락 마법은 낭비다. 이따금씩 기사도 등장했지만, 평범한 수준의 기사였기에 평범한 중급 마법으로 처리가 가능했다.

“알베르트 데려오라고!!”

나는 깽판을 치는 와중에도 틈틈이 창밖을 내다보며 결계의 상태를 확인했다. 지하로 내려간 클로이가 마법사 암살에 성공하면 결계가 사라질 것이다.

“마, 막아라!”

“절대 위로 올려보내서는 안 된다!”

“어림도 없지!”

─화르르륵! 사사사삭! 쿠르르... 쾅!

보이는 모든 것을 불태우고, 얼리고, 땅을 일으켜 통로를 막아버리고.

그렇게 신명 나게 날뛰며 왕성의 위층으로 올라가다 보니, 어느 순간 팟! 하고 결계가 사라졌다.

‘드디어...!’

이제 반왕군이 수도로 진입할 것이다.

하지만 결계가 사라졌다고 해서 내가 당장 몸을 내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클로이가 지하에서 완전히 빠져나올 때까지는 시간을 벌어줘야 하니까.

게다가 이상하게도, 아직까지 철의 기사단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왜지? 설마 성문으로 지원을 나갔나?’

만약 그렇다면 이건 절호의 기회다.

놈들만 없다면 충분히 왕을 노려볼 만하다.

현재 내가 있는 곳은 왕성의 3층.

한 층만 더 올라가면 알현실이 있다.

나는 지금까지 어그로를 끌기 위해 해왔던 장난 같은 공갈 협박은 그만두고, 진짜 국왕 시해자가 되기 위해 일단 알현실로 가보기로 했다.

“여긴 못 지나간다!”

위로 향하는 계단에 빼곡히 들어선 병사들.

이제부터는 나도 진심이니, 아껴뒀던 주력 속성의 중급 마법을 사용했다.

─즈즈즈즈!

내 머리 위에 실타래처럼 얽힌 전기의 구체가 생성됐다.

[금일 사용 가능한 ‘일렉트릭 오브’ - 4회]

나는 그걸 발사하지 않고, 그대로 머리 위에 띄운 채로 계단을 향해 돌진했다. 마법을 이런 식으로 오래 유지할 수는 없지만, 알현실까지 갈 만큼은 된다.

“컥!”

“켁.”

주력 속성의 중급 마법이다 보니, 일반병들은 구체에서 뻗어 나온 전기에 닿자마자 즉사했다.

그들의 시체를 넘어서 4층으로 올라갔다.

‘......저기가 알현실이겠군.’

불이 다 꺼져있어 복도는 어두컴컴했지만, 화려하게 장식된 문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미리 파악한 내부구조상으로도 저곳이 알현실이 맞았다.

나는 그곳으로 다가가 문 앞에 섰다.

그리고 그 문을 열고 들어가려 하는 순간,

─벌컥!

─벌컥!

알현실 양옆에 있는 방문이 기습적으로 열리며 기사들이 튀어나왔다.

짙은 회색빛의 플레이트 아머를 입은 기사.

철의 기사단원들이었다.

‘......매복이었나.’

그들은 고개를 살짝 내려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은 채, 푸르스름한 오러가 맺힌 검을 겨누고 슬금슬금 다가와 나를 알현실 안쪽으로 서서히 몰아갔다.

나는 완전히 포위된 상황이었기에 별수 없이 그들의 의도대로 알현실에 들어갔다.

철컥. 나를 완전히 몰아넣은 그들은 알현실의 문을 걸어 잠갔다. 내가 굳게 잠긴 문을 바라보고 있을 때, 뒤편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문을 부수고 탈출할 생각이라면 포기하는 게 좋을 거다.”

고개를 돌려 확인해보니, 기사단장이 왕좌 옆에 서 있었다. 그는 검집에 손을 가져다 댄 채 말을 이었다.

“그 문은 특수하게 제작되었다. 아무리 너라도 단시간에 부술 수는 없다는 말이지.”

“.......”

“비단 출입문만이 아니라 알현실의 모든 벽면도 마찬가지다. 창문도 없는 이곳에서 네가 나갈 방법은 단 하나다. 우릴 모두 죽이고 열쇠를 빼앗는 것뿐.”

기사단장은 짐짓 위엄있는 목소리로 말했으나,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땅바닥을 보며 말해서 위엄이 좀 떨어졌다.

“어딜 보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제 눈을 보고 말씀하셔야죠.”

“......꼼짝없이 갇혀서 비참하게 최후를 맞이할 녀석치고는 입이 건방지구나.”

“갇힌 건 당신들도 마찬가지일 텐데요?”

“무슨 헛소리인가? 열쇠는 우리가 갖고 있는데. 물론... 네놈을 죽이기 전까지는 나갈 생각이 없지만.”

스릉- 그가 검을 뽑아 들었다.

그의 검에는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진청색 오러가 선명하게 맺혀있었다.

“아니, 당신들도 갇힌 거 맞다니까.”

“하, 죽음을 눈앞에 두니 정신이 나간 것─”

순간, 알현실 내부가 초록빛으로 물들었다.

─화르르르르륵!

한번 닿으면 대상을 완전히 태워버리기 전까지는 영원히 꺼지지 않는다는 지옥의 업화. 그 초록빛 화염이 알현실 벽면을 따라 바닥에서 치솟았다.

[금일 사용 가능한 ‘인페르노’ - 0회]

“초, 초록색 화염? 이게 무슨...?”

왕국의 기사단장조차 초록색 불은 처음 보는 모양인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리고 꼭 있다.

신기한 걸 보면 손부터 갖다 대보는 사람이.

“으아아아아아아!!!”

기사단원 하나가 인페르노에 의해 불타오르는 손을 휘저으며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질렀다.

그러나 그런다고 꺼질 업화가 아니었다. 기사의 손을 순식간에 재로 만들어버린 업화는, 몸통을 타고 번지며 그를 세상에서 지워버렸다.

“부, 불길에 절대 접근하지 마라! 떨어져!”

아연한 얼굴의 기사단장이 소리쳤다.

“맞죠? 당신들도 갇힌 거.”

“크윽... 설령 그렇다고 해도 상관없다. 네놈도 갇힌 것은 마찬가지이니. 결국 네가 이 자리에서 죽는 것은 변함이 없다!”

어금니를 깨물고 으르렁거리던 기사단장이 검을 치켜들고 내게 쇄도하려 했다. 나는 황급히 손을 들어 그를 제지했다.

“잠깐! 잠깐만요!”

“......뭐지? 이제와서 목숨을 구걸이라도 할 셈이냐?”

“아니요. 작별 인사나 좀 하려고.”

“......??”

갑자기 무슨 개소리냐? 라는 듯한 표정이었다.

“안녕히 계세요, 여러분!”

순간, 당황스러울 정도로 많은 양의 마나가 쑤욱 빠져나감과 동시에, 어디론가 빨려 들어가는 듯한 기묘한 감각과 함께 시야가 잠시 암전했다.

[금일 사용 가능한 ‘아케인 텔레포트’ - 2회]

─슈우욱

그리고 곧, 드넓은 수도의 야경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어떤 탑의 꼭대기에 서 있었다. 아케인 텔레포트를 시전할 때 떨어지는 벼락은 왕성의 지붕에 작렬했고, 나는 그곳으로 순간이동 된 것이었다.

“어우 씨, 높아서 무섭네.”

자세를 낮추고 고개를 빼꼼 내밀어 탑의 밑부분을 살펴봤다. 이 탑은 일종의 전망대 비슷한 것인 모양인지, 다행히 여러 방향으로 창문이 나 있었다.

나는 그 창문 중 하나를 통해 탑의 내부로 들어갔다.

“......네, 네, 네놈!!!”

“응?”

그리고 그곳엔 알베르트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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