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역에 대한 반역 (5)
나를 바라보고 있던, 아니 정확히는 내 머리 위에서 빛을 발산하는 마안을 바라보고 있던 기사들의 얼굴에 짙은 당혹감이 서렸다.
“......?!”
“......!!”
그들은 무언가가 잘못됐음을 직감한 듯 보였지만, 이미 늦었다. 석화는 벌써 진행 중이었다.
붉게 빛나는 메두사의 마안을 일단 한번 바라보게 되면, 완전히 석화될 때까지 그저 홀린 듯이 계속 바라보게 될 수밖에 없다. 눈을 감을 수도 없고, 몸을 움직일 수도 없으며, 목소리도 나오지 않는다. 이건 내 경험담이다.
그나마 마법은 사용할 수 있기에 나는 마법으로 위험에서 빠져나갔었으나, 이놈들은 기사다. 할 수 있는 거라고는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얼굴 근육만 움찔움찔하는 것뿐. 바로 지금처럼.
나는 고압적으로 그들을 바라보며, 쩌렁쩌렁한 소리로 외쳤다.
“내가 눈을 마주치면 죽는다고 했을 텐데!!”
사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내 심장도 상당히 쫄깃쫄깃한 상태였다.
‘머, 머리 위를 쳐다보면 나도 석화된다아...!’
내가 쓰는 마법이야 나한테 면역이었지만 마안은 아니었기에, 나는 시선을 일정 고도 이상으로 올리지 않으려 부단히 노력했다.
괜히 궁금하다고 고개를 위로 올려 손을 바라봤다가는, 자기 마안에 자기가 석화된 희대의 상병신으로 역사서에 기록되어 후대에 길이길이 전해질 게 분명했다.
물론 마음속으로만 걱정했을 뿐, 겉으로는 최대한 여포처럼 굴었다.
국왕군 정예 중의 정예인 철의 기사단.
그 절반이 작살나기 직전인 지금이야말로 적들의 기세를 꺾어버리기에 가장 적합한 타이밍이었기 때문이다.
“감히 메두사와 싸우는데 눈을 똑바로 뜨고 있어? 앞으로 내게 덤빌 놈들은 전부 눈 감고 덤벼!!!”
적어도 나는 메두사와 싸울 때 그랬었다.
그렇게 주변을 노려보며 으름장을 놓던 나는, 또 한 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미친. 저것들은 또 왜 석화된 건데?’
내 머리 위에서 빛나고 있는 마안을 바라본 것은 비단 철의 기사단뿐만이 아니었다.
개조된 내 마안은 일회용이라서 그런지, 메두사가 사용했던 오리지널 마안보다 범위가 더 넓었다. 그리고 그 범위 내에 있는 자라면, 적군 아군 할 것 없이 대부분 마안을 홀린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심지어 마안이 메두사의 눈에 달려있을 땐 붉은빛이 정면으로만 퍼져나갔지만, 나는 마안만 따로 들고 있었기에 360도 전방위로 빛이 퍼져나갔다.
이 빛을 바라본 자들은 다리나 손 같은, 신체의 끝부분부터 차근차근 석화되어가고 있었다.
‘아이씨, 본의 아니게 팀킬을 해버렸─’
─푸스스....
내가 자조 섞인 자책을 하고 있을 때, 손에 들고 있던 마안이 수명을 다하고 모래처럼 바스러졌다.
그러자 홀린 듯이 마안을 바라보고 있던 자들이 비로소 다시 움직일 수 있게 됐다. 물론 석화는 멈추지 않고 계속 진행됐지만.
“다리가... 내, 내 다리가...!”
“주, 중부의 메두사는 진짜 메두사였어!”
“으아아아!! 도, 도망가!!”
“모두 눈을 감아라! 언제 또 붉은빛을 뿜어낼지 모른다!”
“메, 메두사님! 저는 같은 편인데 왜 저까지...?”
난리도 아니었다.
한쪽 다리가 석화되어 쩔뚝거리며 도망가는 사람, 양다리가 다 석화되어 바닥을 기어가는 사람, 도망치다 넘어져서 석화된 부위가 깨져버린 사람, 왜 팀킬 했냐고 따지는 사람 등. 그야말로 아비규환이 따로 없었다.
나는 도망치는 자들은 그냥 놔두기로 했다.
어차피 석화가 시작되었으니 빠른 시간 내에 해주 마법을 받지 못하면 완전히 석화될 테고, 완전히 석화되면 상급 성수로도 저주를 풀 수 없으니까.
그나마 다행인 점은 우리 군단의 주축은 세르시아 교단이라는 거다. 즉, 해주 마법이 가능한 사제가 널리고 널렸다. 아군은 완전히 석화되기 전에 충분히 해주를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다들 치료 사제를 찾아가서 석화를 해제하세요! 서두르면 충분히 가능─ 야! 너네는 도망 못 가지!”
물론 내가 도망을 허용해주는 것은 일반병들 뿐이다. 나는 눈치를 살피다가 스리슬쩍 도주를 시도하는 철의 기사단원들을 향해 양손으로 마법을 쏘아 보냈다.
─치지지직!
─치지지직!
[금일 사용 가능한 ‘체인 라이트닝’ - 8회]
“끄아아악!”
“으어! 으어어!”
어디 한 부위 이상이 석화되어 요상한 자세로 도망치던 기사단원들이 줄줄이 바닥에 쓰러졌다.
나는 조금 전까지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이죽거렸던 기사에게 다가갔다. 말하는 투나 다른 기사에게 지시를 내리던 모습을 보면, 분대장이나 그 이상의 직책을 가진 녀석으로 추정됐다.
“야, 너 아까 뭐라고 그랬어. 어!!”
“크윽...!”
녀석의 두 손은 이미 석화가 끝났고, 몸통까지 침범하고 있는 상태였다. 나는 그의 멱살을 붙잡고 흔들었다.
“왜 눈을 감고 있지? 중부의 메두사는 허명이라며?”
“그, 그게....”
“눈 떠!! 아까처럼 부라려보라고!!”
“그, 그 부분은 제가 사과드리겠습니다. 그러니 제, 제발 저 좀 보내주십쇼. 이러다가 완전히 석화되겠습니다...!”
그는 아까와는 달리 눈을 꾹 감은 채 애원했다. 그러자 다리가 굳어 바닥을 뒹굴고 있던 기사단원이 경악하며 소리쳤다.
“부, 부단장님! 지금 그게 무슨 짓이십니까! 명예로운 철의 기사단이 적에게 사과하고 목숨을 구걸하다니. 수많은 병사들이 저희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차라리 명예로운 죽음을 택─”
“닥쳐라! 죽음 앞에 명예란 부질없는 것이다!”
아니? 나와 가치관이 동일한, 지극히 합리적인 녀석이었다.
“오, 너 나랑 좀 통하네?”
“그,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저를 보내주─”
“가봐.”
“......예?”
“도망가보라고.”
“가, 감사합니다...!”
그는 부하들을 버리고 즉시 달아나기 시작했다.
“부단장님! 저희를 버리시는 겁니까!”
“닥쳐! 너희들도 살고 싶다면 구걸해라!”
부단장이라는 녀석은 체면 따위는 집어던져 버리고 열심히 움직였는데, 솔직히 이미 석화가 심각한 수준까지 진행돼서 가망이 없어 보였다.
물론 가망이 있어도 곱게 보내줄 생각은 없었다. 나는 적에게 어설프게 자비를 베푸는 사람이 아니며, 다 잡은 능력치를 놓치는 사람은 더더욱 아니다.
나는 바로 비주얼 원탑 마법을 캐스팅했다.
─휘이이
이 일대에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산들바람처럼 가볍게 시작된 바람은, 점점 거세지나 싶더니 곧 광풍으로 돌변했다.
광풍은 허공의 한 지점에 몰려들며 나선 모양으로 회전하기 시작했고, 그것은 곧 좁혀지며 거대한 창의 형태를 갖췄다.
[금일 사용 가능한 ‘토네이도 랜스’ - 2회]
사실 이것보다는 맞은 사람 몸에서 폭발이 일어나는 일렉트리컬 익스플로전이 더 충격적인 비주얼을 자랑하지만, 그건 대외적으로 공개하지 않은 상급 마법이므로 아껴뒀다.
어쨌거나 갑작스럽게 바람이 몰아치자, 도망치던 부단장은 눈을 뜨고 뒤를 돌아보며 억울하다는 듯 소리쳤다.
“이익... 도, 도망가라면서!”
“그랬지.”
“그, 그럼 그 마법은 왜...?”
“지금 또 눈을 마주쳤잖아!!”
“이런 미친─”
─쐐애액!
회전하는 바람의 창이 그의 몸을 관통했다.
퍼서석! 석화가 상당히 진행된 상태였기에, 파육음보다는 돌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잘게 부서진 돌조각들이 바람을 타고 흩날렸다.
[조건을 달성해 능력치가 오릅니다!]
기사단의 부단장이 분쇄되자, 충격에 휩싸인 듯한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마안의 작용권 바깥에 있어서 석화를 면했던 병사들이었다.
“저, 저런....”
“일부러 풀어주고 죽여 버리다니?”
“이, 이건 전쟁이 아니라 사냥이야...! 저놈은 지금 즐기듯 기사단을 사냥하고 있다고!”
“메, 메두사다운 극악무도함이로다....”
“저게... 성자...? 내가 지금껏 성자라는 단어의 의미를 잘못 알고 있었단 말인가...?”
그들이 나에 대해 하는 말 중에 좋은 말은 하나도 없었지만, 나는 칭찬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원래 전장에서는 저런 게 극찬이다. 그만큼 내가 두려우시다는 거지.
끼이익. 나는 그들을 향해 고개를 꺾으며 물었다.
“......지금 누굴 쳐다보고 말하는 거야?”
***
전투는 머지않아 끝이 났다.
물론 우리 측의 승리로.
─부우우우!
“퇴각!! 모두 퇴각하라!!”
국왕군과 동부 연합군이 싸우는 전선은 그런대로 팽팽했으나, 세르시아 교단 쪽 전선은 균형이 완전히 무너져버렸기 때문이다. 국왕군은 비교적 멀쩡한 전선마저 쌈 싸 먹히기 전에 수도로 퇴각하는 것을 선택했다.
썰물처럼 전장을 빠져나가는 국왕군을 바라보며 아군은 포효했다.
“와아아아!!!”
“찬탈자를 물리쳤다!”
“세르시아 님 만세!”
“잔혹한 메두... 아니, 그냥 메두사 만세!”
나는 제자리에 서서 만세를 부르고 있는 병사들을 지나쳐, 군단의 지휘부가 모여 있는 곳으로 향했다.
휙! 휙! 병사들은 같은 편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근처를 지나갈 때마다 황급히 고개를 내리깔았다.
“......? 아니, 이러지들 마세요 진짜.”
“히익! 죄, 죄송합니다, 메두사 님....”
아까 마안으로 팀킬을 해버린 탓에 아군도 나를 두려워하게 되는 사소한 부작용이 발생했지만, 그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눈을 마주쳤다고 아군조차 석화시켜버린 사내.
그게 나다. 나는 모두에게 이런 이미지로 각인되었다. 같은 편마저 사정을 봐주지 않는데, 적군한테는 어떻겠는가?
그래서 내가 전장에서 어딜 향하든, 적들은 진짜로 혼비백산하며 눈을 감고 달아나기 바빴었다. 물론 치열한 전쟁터에서 눈을 감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었고, 그런 자들은 아군에 의해 최후를 맞이했다.
팀킬로 인한 뜻밖의 이득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오오! 자네 왔나!”
지휘부에 도착하니 니콜스가 반색하며 다가왔다. 성녀는 부상자들을 손수 치료하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고, 앨리스는 탈진한 모양인지 잠들어있었다.
“내 살다살다 전장에서 자네만큼 활약하는 자는 본 적이 없네! 대체 얼마나 많은 적을 처치한 건가? 이건 뭐 자네 혼자서 전쟁을 치른 것 같은데.”
라고 블리자드로 천 명이나 얼려버린 니콜스가 말했다.
“에이, 무슨 그런 말씀을. 니콜스 님도 그렇고 다들 각자의 역할을 해내서 승리한 거죠.”
나는 손을 휘휘 내저었다.
내가 불사조로 수많은 적을 불태우고 적들은 나만 보면 겁에 질려 달아났다고는 하나, 솔직히 말해서 이건 승리의 직접적인 요인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국왕군은 만 단위가 넘는 대규모였으니까.
결정적인 요인은 사기였다.
자신들의 신을 위해 싸운다고 믿는 교단군은 원래부터 사기가 하늘을 찌를 듯이 높았었고, 찬탈자 혐의를 받는 국왕 휘하의 병사들은 사기가 그리 높은 편은 아니었다.
그런 상황에서 왕국 최고의 무력 집단이라고 일컬어지는 철의 기사단의 절반이 한순간에 궤멸해버렸으니, 전의를 완전히 상실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마안이 있었다지만 혼자서 철의 기사단을 상대하다니... 자칫하면 자네가 포위돼서 죽을 수도 있었잖나? 용기가 대단해. 내 소싯적에도 자네만큼 용맹하진 못했어.”
용기...라기보다는 텔레포트를 믿은 거였다.
“운이 좋았죠. 아, 맞다. 마안에 관한 건 비밀로 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이건 굳이 안 밝히는 게 나을 것 같은데.”
“그래, 그거 좋은 생각이군. 비밀로 하면 적들이 계속 자네를 두려워할 테니 말이야. 내 당장 마안의 존재를 아는 마탑원을 찾아가 입단속을 시키도록 하겠네.”
“예, 감사합니다.”
붉은빛을 내뿜던 마안이 1회용이라는 건 목격자가 많았으니 감추기 어렵겠지만, 그게 ‘마안’이라는 것과 한 개뿐이라는 사실까지는 그들로서도 알 수 없다.
이 부분을 잘 이용하면, 앞으로도 내가 석화시킬 수 있는 것처럼 뻥카를 칠 수 있을 것이다.
니콜스가 마탑원의 입단속을 위해 자리를 뜨자, 등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내 이름을 불렀다.
“엘.”
“오, 클로...이...씨?”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니 그곳에는 웬 악귀가... 아니, 클로이가 서 있었는데, 그녀는 원래부터 붉은색 로브를 입었던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피를 흠뻑 뒤집어쓰고 있었다.
“......그거 설마 클로이 씨 피는 아니죠?”
“뭐어? 당연히 아니지. 하츠펠트 왕가를 떠받드는 머저리들의 피야.”
이번 전투에서는 왕을 잡을 가능성이 거의 없었기에 클로이와는 따로 움직였었는데, 마법사인 그녀의 몸에 이렇게 피가 묻을 정도면 얼마나 미친 듯이 적을 도륙 내고 다녔을지 그림이 절로 그려졌다.
클로이는 피에 흠뻑 젖은 로브를 벗으며 말을 이었다.
“머저리들의 피밖에 못 봤지만... 그래도 조금 개운하네.”
“고작 그걸로 되겠습니까? 이제 진짜 왕가의 피를 보러 가셔야죠.”
힘겨루기는 우리가 승리했다.
이제 수도로 진격할 일만 남았다. 수도에 진입하면 나는 반왕군과 함께하지 않고, 클로이와 둘이서만 따로 움직이며 왕을 죽이러 갈 것이다.
“......그래, 그래야지. 반드시... 반드시 복수할 거야. 단 하나의 하츠펠트만 남기고 모조리 죽여 버릴 거야.”
클로이는 서글프지만 결연한 표정으로 다시 한번 복수를 다짐했다. 그리고 분위기 깨서 미안하지만, 나도 다시 한번 못을 박았다.
“근데, 아시죠? 알베르트는 제가 죽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