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꿈속에서 마법을 훔치는 마법사-155화 (155/200)

반역에 대한 반역 (3)

“......진짜 무슨 그런 정신 나간 엘프가 다 있니?”

아스왈드가 돌아가고 난 뒤, 앨리스가 오만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나는 귀여운 정령의 이름을 물은 건데, 왜 자기 이름을 알려주냐는 말이야! 설마 자기가 귀엽다고 생각한 거야? 우욱.”

심지어는 헛구역질하는 시늉까지 하기에 이르렀기에, 나는 손을 휘휘 내저으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냥 기억에서 지워버려. 원래 그놈을 만나면 정신적인 타격은 불가피해. 일종의 작은 자연재해 같은 거랄까? 빨리 잊는 게 속 편해.”

“응. 으휴, 하여튼 아인종들이란....”

어쨌거나 아스왈드와는 이야기가 잘 끝났다.

강아지와 환불을 부르짖던 그는, 앨리스에게 자신의 이름을 말해준 게 실수였다는 걸 깨달은 순간부터 극도로 쪽팔려 하며 기세가 꺾였기 때문이다.

덕분에 나는 잠자코 있는 그에게, 라이트닝 블래스트의 위력이 서로 다른 이유를 차분히 설명해줄 수 있었다. 사실 설명이야 예전부터 여러 번 해줬었지만, 녀석이 끝까지 들어준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아무튼 결론을 말하자면, 조건부 환불을 해주기로 했다. 이번 전쟁에서 아스왈드는 나를 도와주고, 나는 전쟁이 끝난 후 라이트닝 블래스트 마법서와 엘프의 마법서를 다시 교환하기로.

내가 손해 보는 건 없다. 나도 어차피 엘프의 마법은 습득을 완료한 상태고, 고대의 마법서를 돌려받는 거니까. 게다가 세계수의 눈물로 만든 포션은 그냥 내가 갖기로 했으니, 오히려 이득이라고 할 수 있겠다.

“뭐, 이 부분은 잘 해결됐고... 이제 앨리스, 너의 거취를 생각해봐야겠는데. 전쟁에서 어떻게 할지 말이야.”

“응...? 나? 당연히 너와 함께 다니는 거 아니었니?”

“그건 안 돼. 위험하거든.”

나는 딱 잘라 거절했다.

왕을 직접 처단해야 하는 나로서는, 온갖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왕을 보호하는 정예 호위병과 싸워야 할 수도 있고, 적진 깊숙이 돌진해야 할 수도 있다.

단순히 내 목표만을 위해, 자칫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상황 속으로 앨리스를 데리고 들어갈 수는 없다. 이런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왕을 죽이고 싶어 하는 건, 오직 나와 클로이뿐이다.

“으음... 너 나 없는 동안 모험가 일을 하면서 실력 좀 늘었지?”

“그러엄. 내가 말했잖니. 모든 모험가들이 나랑 같이 일하고 싶어 한다구. 마나도 늘었구 마법의 속도와 정확도도 올라갔지.”

“오, 좋네. 혹시 인페르노는?”

“그, 그건 아직... 너무 어려워서....”

콧대 높여 말하던 앨리스는 급격히 위축됐다.

“됐어, 괜찮아. 그건 그렇게 금방 배울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아무튼... 너는 그럼 세르시아 교단 쪽에서 싸우는 게 좋겠다. 성녀 근처에 있으면 안전하게 보호받을 수 있겠지.”

어차피 앨리스는 티안브리스의 외모이기 때문에, 동부 연합군 쪽에는 합류할 수 없다. 거기엔 티안브리스의 얼굴을 아는 자들이 있으니까.

“성녀 근처에? 나, 나두 앞에서 멋있게 싸우고 싶은데... 카트카 공방전에서 네가 그랬었던 것처럼....”

“멋은 무슨. 네가 다치거나 죽으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이야? 그리고 너는 순수 마법사 타입이라 전방에 나서는 건 좀 어려워. 전방은 병장기를 다루는 자들이 나서는 거거든.”

“으응....”

그녀는 시무룩하게 대답했다.

“야야, 네가 위험하면 내가 마음 놓고 싸울 수나 있겠어? 그리고 진짜 마법사는 원래 후방에서 마법으로 적들을 쓸어버리는 거야. 품위 있게. 그게 진짜 멋이고.”

“그, 그런 거니?”

“그렇다니까? 마법을 쓸 재주가 없는 사람들이나 앞으로 달려가서 몸으로 부딪치는 거지, 너처럼 귀중한 인력은 후방에 있는 거야. 잃기에는 너무 귀중하니까. 그러니까 내 말대로 성녀 옆에 있어. 알았지?”

“응, 알았어! 헤헤.”

***

며칠 후. 밀러 백작성 내부의 연회장.

연회장 중앙에 있는 길쭉한 테이블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둘러앉아 있었고, 나 역시 테이블의 한편에 자리하고 있었다.

전쟁을 앞두고 질펀하게 놀고 마시는 한심한 짓을 하려고 모인 것은 아니고, 본격적인 출정에 앞서 전략회의를 하는 중이었다.

동부 연합군이 도착하고 나니 영주와 그들의 부관만 해도 수십 명이 넘어갔고, 거기에 다른 집단의 수뇌부까지 더하면 어지간한 장소로는 감당할 수 없기에 부득이하게 연회장에 모인 것이다.

“......해서 크게 두 개의 군단으로 편성해서 움직이는 게 좋겠소. 하나는 본인이 지휘하는 동부 연합군을 주축으로 하고, 다른 하나는 세르시아 교단을 주축으로 청색 마탑과.......”

회의는 거의 시즈모어 공작의 주도하에 진행되고 있었는데, 썩 괜찮았다.

지금 이 자리에는, 자기 땅에서는 왕이나 다름없이 살아온 영주들이 수두룩 빽빽하다. 이들 모두가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해대면 시장통이 따로 없을 테니, 이렇게 누구 하나가 주도적으로 진행해 주는 게 깔끔하다.

사실 자리가 자리이니만큼 발언권이 센 사람도 몇 없었다.

왕족인 프란츠, 동부 연합군의 수장인 시즈모어 공작, 세르시아 교단의 이사벨 성녀와 교황. 이들의 발언권이 가장 강했고, 다음으로는 집주인인 밀러 백작과 청색 마탑주 니콜스, 그리고 이 상황을 일으킨 장본인인 나까지. 이 외에는 목소리에 힘주기 어려웠다.

물론 나도 딱히 나서지는 않고 있었다.

나는 심지에 불을 붙이는 성냥 역할이었고, 실제로 터지는 화약은 이들이다. 이제 나는 왕만 죽이면 되니, 괜히 복잡하게 만들지 않기 위해 웬만하면 조용히 듣고 있었다.

어쨌거나 두 개의 그룹으로 나뉘어 싸우자는 쪽으로 의견이 기울어지는 중이었다.

“......하는 게 좋을 것 같소만, 세르시아 교단 쪽에서는 어떻게 생각하시오?”

설명을 마친 동부의 공작이 묻자, 성녀가 난처하다는 듯한 얼굴로 대답했다.

“공께서 본 교단을 높게 쳐주시니 감사할 따름이지만... 군단의 주축을 맡기에는 부족함이 있지 않나 싶습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시오? 교단만큼 강대한 단일 집단이 어디 있다고.”

“본 교단은... 전쟁 경험이 없습니다.”

“아, 본인이 그걸 간과했구려.”

듣고 보니 그랬다.

세르시아 교단은 강력하지만, 전쟁을 치러본 적이 없었다. 그들이 겪어본 싸움이라고 해봐야 우르르 몰려가서 흑마법사를 때려잡거나, 마물이라 규정된 언데드나 분쇄한 정도다.

힘은 충분하나, 전쟁을 지휘할 능력이 없다.

그나마 내가 소규모 영지전에 대한 경험이 조금 있지만, 이런 대규모 전쟁은 나도 처음이다. 무엇보다 나는 알베르트를 잡으러 가야 하므로, 지휘 같은 것에 발이 묶여있어서는 안 된다.

이런 일의 지휘는 진짜 전문가가 해야 한다.

“아, 니콜스 님이 있잖아요?”

생각해보니 바로 옆에 전문가가 있었다.

이 청색 마탑주는 겉보기에는 용돈을 잘 줄 것 같은 인자한 노인처럼 보여도, 실상은 남부 학살자라는 무서운 이명을 가졌고 술을 마실 때면 전쟁 얘기만 할 정도로 전쟁광이다.

“왕년에 전쟁 좀 하셨잖아요? 야만족과의 대규모 전쟁에도 참전하셨었고. 어차피 교단과 청색 마탑은 같은 군단으로 편성될 테니, 니콜스 님이 옆에서 지휘를 도와주시면 될 것 같은데요.”

내가 니콜스를 바라보며 말하자, 테이블에 앉아있던 모두의 시선이 그를 향했다.

니콜스는 멋쩍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허허. 내가 소싯적에는 혈기 왕성하여 그러긴 했었네만, 세월이 흐르며 많이 녹슬었을 터인데....”

“에이, 황금이 녹스는 거 보셨습니까? 한번 금은 영원한 금입니다.”

“자네는 무슨 연금술사처럼 말하는군?”

“예? 아, 예. 아무튼 남부 학살자도 영원한 남부 학살자라는 거죠. 어쨌든 니콜스 님도 계시고, 영지전 경험이 풍부한 밀러 백작님 같은 분도 계시니 충분히 가능할 것 같은데.”

어리숙한 사령관에게 뛰어난 부관들을 붙여주자는 것과 비슷한 소리다.

이건 사령관이 꼬장꼬장하고 자존심이 세다면 오히려 역효과만 일어나겠지만, 군단의 사령관이라고 할 수 있는 성녀는 합리적인 사람이다. 남의 말에 귀 기울일 줄 안다는 뜻이다.

교황은... 솔직히 뭐 하는 사람인지 잘 모르겠다. 일은 성녀가 하고 교황은 그저 앉아만 있달까. 그냥 자리나 채우는 허수아비 같은 사람이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될 듯했다.

“본인은 성자의 제안이 꽤 괜찮은 것 같소만... 당사자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공작이 상황을 정리하기 위해 묻자, 물망초를 하염없이 만지작거리며 고민하던 성녀를 필두로 니콜스와 밀러 백작이 대답했다.

“......좋아요.”

“이 늙은이의 도움이 필요하시다는데, 외면할 수는 없겠지요.”

“저도 좋습니다.”

누구 하나 거절하는 이 없이 모두 동의했다.

“그럼 군단 편성 문제는 일단 이렇게 마무리하는 걸로 하겠소. 용병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모여들고 있으니 출정 직전에 배분하면 될 것 같고... 아, 그래. 자네는 어느 쪽으로 합류할 생각인가?”

공작이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당연히 우리 동부 연합군에 합류하겠지? 자네는 동부 출신이니까.”

“아, 저는─”

내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성녀가 끼어들었다.

“잠시만요, 시즈모어 공. 그는 성자예요. 당연히 본 교단과 함께하실 겁니다. 그렇지 않나요, 성자님?”

“아, 저는─”

“그는 성자이기 이전에 동부인이오. 메두사로부터 케른헴을 지켜냈고, 용족한테서는 카트카를 지켜냈지. 그때의 전우들이 우리 동부 연합군에 소속되어 있는데, 그들과 함께 하는 것이 좋지 않겠소? 안 그런가, 자네?”

“아, 저는─”

이번에는 밀러 백작이 끼어들었다.

“엘 군의 전우는 동부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저의 여식인 레이첼도 그와 함께 수백에 달하는 브룩스 자작의 군대와 싸웠지요. 중부의 메두사라는 전설적인 칭호도 중부에서 만들어진─”

“하지만 엘은 저희 체스터 가문과 아주 연이 깊습니다. 오래전부터 서로 도움을 주고받아 손발이 잘 맞고, 그가 지금 사용하고 있는 불의 검도 저희 가문의 시조께서─”

결국에는 에드윈 체스터까지 가세해 쓸데없는 논쟁을 이어나갔다.

‘......그냥 한숨 잘까? 내가 뭐라고 이렇게까지 나를 데려가겠다고 난리들이야?’

솔직히 나는 좀 강해졌다.

어디 가서 꿀리지 않을 정도로.

하지만 너무나 당연하게도, 세상 모두를 씹어먹을 만큼 강력한 건 아니다. 그랬다면 진작 혼자 왕성에 쳐들어가서 왕을 잡았겠지. 나보다 강한 사람은 얼마든지 존재한다.

지금 당장 이 자리에 있는 청색 마탑주 니콜스만 해도 나보다 뛰어난 마법사다. 그의 진짜배기 블리자드에 비하면 내 블리자드는 찬 바람이 솔솔 나오는 에어컨 정도일 것이다.

물론 나는 여러 속성을 다루고 검도 쓰며 힐도 가능한 전천후 타입이지만, 어쨌든 최강자는 아니다. 그런 나를 데려가겠다고 이렇게까지 논쟁할 필요가 있나 싶다.

어쨌거나 그들은 그렇게 한참을 떠들었고, 마침내 공작이 대표로 내게 물었다.

“......그럼 본인에게 직접 물어봅시다. 자네는 어떻게 하고 싶나?”

“아, 저는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고 자유롭게 움직이고 싶습니다.”

“뭐? 별동대처럼 말인가?”

“음... 비슷하죠.”

내 목표는 순전히 ‘국왕 시해자’다.

막타를 뺏기지 않으려면 분주히 뛰어다니며 왕을 찾아다녀야 한다. 어디 한군데에 눌러앉아서 진득하게 싸울 형편이 안 된다는 뜻이다.

“아니, 그럼 진작 말을 하지 그랬나? 이거 괜히 시간 낭비만 했군.”

“예? 제가 대답을 하려고 할 때마다 여러분들이 끼어드셨잖아요?”

당신들이 내 말 다 잘라먹었잖아.

“크흠... 뭐, 그렇다면 성자는 별동대로 편성해서 불리한 쪽을 지원하든가 하는 형식으로 가지.”

공작은 민망한 듯 헛기침하며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을 이어나갔다.

“그럼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 말씀드리겠소. 전쟁이라는 게 늘 그렇듯, 아무리 철저하게 준비해도 수많은 변수가 발생하기 마련이오. 뚜껑을 열어보기 전에는 누가 우세한지 알 수 없다는 말이지.”

그건 그렇다.

숫자만 믿고 까불다가 박살 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고, 지휘관의 삽질이나 누군가의 슈퍼 캐리 등. 진짜로 까보기 전까지는 아무도 결과를 모른다.

“그런 연유로, 일단은 수도와 이곳의 중간 지점에서 양측의 군대가 맞붙게 될 거요. 일종의 힘겨루기인데, 한 번에 판가름 날 수도 있고 여러 번 붙어야 할 수도 있소. 워낙 대군이니 내 생각엔 후자일 것 같소만.”

여기까진 영지전이랑 비슷하군.

“진짜 전쟁은 그다음부터요. 우세를 점한 쪽이 밀고 나가는 거지. 만약 우리가 힘 싸움에서 이겼다면 수도로 진격해 공성전을 벌이는 것이고, 힘 싸움에서 밀렸다면 이곳 밀러 백작령에서 수성전을 하게 되오.”

공성전이라.

확실히 이 부분에 있어서는 영지전과 달랐다. 영지전은 땅이 목적이기 때문에 적당히 승기를 잡은 쪽이 땅만 먹고 빠지지만, 우리의 표면적인 목표는 부당하게 왕좌를 차지한 알베르트를 끌어내리는 것.

녀석이 전투에서 몇 번 패배했다고 순순히 왕좌를 내놓을 리가 없으니, 아예 왕성까지 쳐들어가서 끝장을 내버리기 전에는 끝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그때가 알베르트를 잡을 절호의 기회다.

‘......그렇다면 최대한 빨리 힘 싸움에서 승리해야겠군.’

***

수도와 밀러 백작령 사이 어딘가의 평원.

끝이 보이지 않는 이 광활한 평원에는 수천, 수만에 달하는 병사들이 한껏 긴장한 채 상대 진영을 바라보고 있었다.

병력들은 크게 세 개의 무리로 나뉘어 있었다.

북쪽에는 알베르트의 국왕군과 북부 연합을 비롯한 친왕 세력이 결집해 있었고,

남동쪽에는 동부 연합군이,

남서쪽에는 세르시아 교단과 청색 마탑을 비롯한 기타 반왕 세력들이 모여있었다.

그 중, 남서쪽 군단의 수뇌부에 있던 니콜스는, 북쪽에서 펄럭이는 친왕 세력의 수많은 깃발을 보며 무거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생각 이상으로 찬탈자를 따르는 자들이 많군.”

“......그렇네요. 어찌 세르시아 님의 이름을 모독해서 왕위에 오른 자를 따를 수가 있는지... 성녀인 저로서는 이해하기 어렵네요.”

“어쩌면 우리가 수세에 몰려서 수성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구려.”

한눈에 보아도 아군보다 많은 수를 자랑하는 적들.

그들을 보며 니콜스와 성녀가 부정적인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끼어드는 목소리가 있었다.

“먼저 광역 마법을 갈겨버리면 되잖아요?”

목소리의 주인공은 망토를 푹 눌러쓰고 있는 앨리스의 옆에 서 있는 엘이었다. 그는 이번 전투에서 세르시아 교단 쪽으로 참여한 상태였다.

“무슨 먹잇감에 들러붙은 개미들마냥 바글바글하게 모여있는데, 아군과 맞붙기 전에 광역 마법부터 몇 방 갈기고 시작하면 숫자는 얼추 비슷해질 것 같은데요.”

엘은 고개를 높게 쭈욱 빼 들어 적진을 살피며 말을 이었다.

“저 정도로 뭉쳐있으면 니콜스 님이 눈보라만 일으켜도 천 명이 훌쩍 넘게 얼어버릴 것 같은데? 거기에 청색 마탑의 다른 마법사들까지 광역 마법을 날리면, 훨씬 더 많이 줄일 수 있을 테고요.”

“음... 그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네.”

니콜스는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엘을 향해 난처한 듯 입을 열었다.

“네? 왜요?”

“자네 말대로 나는 그렇게 할 수 있네만... 우리 마탑원 중에는 광역 마법을 다룰 수 있는 자가 거의 없다네. 남부에서는 야만족과의 전쟁 이후로 이렇다 할 전쟁이 없었기 때문이지.”

광역 마법은 전쟁을 위한 마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즉, 전쟁이 없으면 광역 마법을 배울 필요도 없다는 뜻이다.

“아, 그렇군요. 그래도 뭐, 달리 방도가 없지 않습니까? 전투가 시작되면, 일단 가능한 사람만이라도 광역 마법을 날리는 수밖에.”

“그건 그렇네만....”

틀린 말은 아니었기에 니콜스는 씁쓸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마탑원은 광역 마법을 다루는 자가 별로 없을뿐더러, 다루는 자조차 그다지 강력한 위력으로 구사해내지는 못한다.

‘나만큼 해줄 수 있는 자가 한둘 정도만 더 있으면 좋으련만....’

만약 그렇다면 엘이 말한 것처럼 숫자를 맞출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요원한 일. 니콜스는 자신이 탈진하는 한이 있더라도 블리자드를 최대한 오랫동안 시전해서 적의 숫자를 줄여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평원에 전운이 감도는 가운데,

곧 개전을 알리는 나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뿌우우우우!!!

수적 우위에 있는 친왕 세력은 즉시 행동에 나섰다. 먼저 기병대가 앞장서서 치고 나갔고, 뒤를 이어 보병들이 달려 나갔다.

반대로 수적 열세에 있는 반왕군은, 돌진하기보다는 받아치는 전략을 택했다.

“전원 대기! 우리는 대기한다!”

그렇게 소리친 니콜스는 즉시 달려오는 적의 보병군을 향해 블리자드를 캐스팅했다.

─사아아

하늘이 새하얗게 물들며 광풍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곧 하늘이 무너져내리듯 무수한 눈송이가 떨어졌고, 그것은 광풍과 뒤섞여 거센 눈보라를 만들어냈다.

햇빛을 가려 평야의 일부분이 어두워질 정도로 몰아치는 눈보라는, 기세 좋게 달려오던 국왕군을 빠른 속도로 꽁꽁 얼려 나갔다.

─까드득

마치 세상이 얼어붙은 듯한 위력.

천 단위가 넘는 국왕군을 얼려버린 눈보라는 여전히 그칠 줄을 몰랐지만, 그럼에도 적의 수가 너무 많았다. 눈보라가 미치지 않는 지역으로 우회해서 새까맣게 밀려오는 적들을 보며 니콜스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역시 나 혼자서는 무리였─”

─화르르르르륵!

─화르르르르륵!

순간, 시뻘건 화염에 휩싸인 불사조 두 마리가 창공으로 비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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