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꿈속에서 마법을 훔치는 마법사-151화 (151/200)

성자의 이름으로 (2)

세르시아교의 본단.

“.......”

내 맞은편에 앉아있는 성녀는 입을 꾹 다문 채로, 자신의 머리에 꽂혀있는 물망초를 하염없이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나는 친근하게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이사벨 성녀님.”

성녀의 이름이 이사벨이라는 건 오늘에서야 알게 된 사실이었지만, 그녀는 벌써 10분이 넘도록 침묵을 유지하고 있었기에 나는 친한 척 이름을 불러대며 은근히 재촉했다.

“이사벨 성녀님, 보이십니까? 밖에 해가 떨어지려고 하네요?”

“.......”

“아닌가? 벌써 한번 떨어지고 다시 떠오른 건가?”

나는 이곳에 몸을 의탁하고 있는 2왕자 프란츠 폰 하츠펠트를 설득하러 왔으나, 그 전에 먼저 성녀를 만났다.

성녀에게 이것저것 조언을 구할 것도 있고, 혹시 가능하다면 교단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싶어서다. 물론 교단이 외부 문제에 대해 철저히 중립이라는 건 알지만, 혹시 모르니까. 내가 가진 배경 중 가장 힘 있는 집단이 세르시아 교단이다.

하지만 그녀는 뭐가 그렇게 고민이 많은 건지 한참 동안 입을 닫고 있었다.

내가 그녀에게 어려운 질문을 한 것도 아니다. 그냥 알베르트가 왕좌에 오른 작금의 사태에 대해 개인적으로 어떻게 생각하시냐고 물었을 뿐이다.

중립이다, 긍정적이다, 부정적이다.

또는 대답하기 곤란하다.

이 네 가지 선택지 중 하나를 고르는 게 그렇게 어렵나.

“뭐라고 말씀 좀 해보세요.”

“.......”

“여보세요?”

“.......”

“드르렁─ 아, 이런. 기다리다 깜빡 졸았네?”

“저는....”

내가 코 고는 시늉까지 하자 마침내 성녀가 입을 열었다.

“오오, 네. 성녀님은...?”

“......제 개인적인 의견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교단은 왕위 계승 문제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사실만이 중요하죠.”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휙 돌려 내 시선을 회피했다.

고작 그 말을 하려고 이렇게 뜸을 들였어?

10분이나 기다린 대가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나는 10분에 상응하는 성의 있는 대답을 들어야 직성이 풀릴 것 같았다.

“교단이 중립이라는 건 저도 알죠. 저는 단지 성녀님의 생각이 궁금한 겁니다. 어차피 성녀님의 의견은 중요하지도 않다면서요?”

“그건 그렇지만....”

솔직히 이 염세적이고 자기 주관이 뚜렷한 여자가 이번 사태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을 리가 없다.

내가 성자로 임명될 때도, 나더러 부패한 성직자가 되지 말라고 은근히 꼽까지 주던 사람이다. 아, 그건 꼽이 아니라 올바른 조언인가? 아무튼.

성녀는 매사에 신중할 뿐이지 생각이 없는 사람은 아니다.

“우리 둘뿐인데 왜 이렇게 눈치를 보시지? 성녀대 성자로 편하게 대화나 하자는 겁니다. 아니, 그냥 제가 먼저 말씀드리죠. 저는 알베르트 국왕이 반역자라고 생각합니다.”

“......!!”

의외의 돌직구에 성녀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제가 한동안 수도를 떠나 있던 바람에 자세한 사정까지는 잘 모르지만, 얼핏 들리는 바에 의하면 반역이라고 볼 수밖에 없겠더군요. 안 그렇습니까?”

“......적법한 계승이었다고 할 수는 없죠.”

내가 먼저 속내를 밝혀서 그런지, 그녀도 순순히 대답했다.

사실 알베르트의 아버지인 전대 국왕도 그리 깨끗한 인물은 아니었다. 탐욕으로 인해 클로이의 가문을 멸문시켰으니까. 모르긴 몰라도 그런 만행을 한 번만 저지르진 않았겠지.

하지만 그것은 꽤 오래된 과거의 일. 최근에는 별문제 없이 왕국을 다스리고 있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 그래서 내가 그를 직접적으로 노리지 않은 것이다. 그에게 반기를 들 명분이 부족하니까. 명분 없이 왕을 건드리면 내가 살아남기 힘들다.

그러나 알베르트는 다르다.

전대가 타락한 왕이었든 뭐든 간에, 그는 최근에 패륜을 저지르고 왕좌를 차지한 자. 그 점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면, 반기를 들 만한 명분으로 삼을 수 있다.

“역시 성녀님도 그렇게 생각하시는군요. 솔직히... 그런 패륜아가 왕국을 제대로 다스릴 수 있을 거라 생각되지는 않는데.”

“맞아요. 자기도 떳떳하지 않다는 걸 알고 있으니 수도의 출입 통제까지 강화했겠죠. 민중이 두려워서요.”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입을 꾹 닫고 있었던 성녀는, 한번 말문이 트이니 입에 모터라도 단 것처럼 우다다 말을 쏟아냈다.

“왕자였던 시절부터 평민을 그렇게나 배척하던 사람인데, 이제 왕이 되었으니 얼마나 더 심해질지 걱정이에요. 신께서는 인간의 신분 고하는 상관없이 모두를 평등하게 사랑하시는데....”

구구절절 옳은 말이었지만 결론이 좀 이상했다.

‘자기를 믿어주는 인간만 사랑해주겠지.’

나는 세르시아에게 마법을 회수당할 뻔한 이력이 있는 사람이다. 회수 사유는 ‘자신을 믿지 않아서’. 물론 원래 내 마법이 아니긴 했지만, 어쨌거나 그녀는 기브 앤 테이크가 확실한 신이다.

아무튼, 보아하니 성녀는 이미 예전부터 알베르트를 탐탁지 않아 했던 것처럼 보였기에 얼른 맞장구를 쳐줬다.

“오, 그렇죠. 자애로우신 세르시아 님께서는 만인을 굽어살피시는데, 알베르트 그자는 자기가 뭐라고 감히 신께서도 안 하시는 행동을 한답니까?”

“역시, 성자님다운 신실한 말씀이시네요.”

“에이, 이건 제가 신실하다기보다는 그자가 이상한 겁니다. 신의 뜻을 따르기는커녕 성직자한테 뇌물이나 찔러서 회유하려고 들고 말이야.”

순간 성녀의 얼굴이 경직됐다.

“......설마 성자님한테도 그런 제의를 하던가요? 보상을 약속하면서 자기를 따르라고?”

“예. 성녀님이 예전에 저한테 그러셨었잖아요? 성자로 임명되면 무언가 의도를 가지고 접근하는 자들이 있을 거라고. 그거 진짜더라고요. 바로 그날 찾아오던데요? 물론 거절했지만.”

“그건... 불행 중 다행이네요.”

그녀는 머리에 꽂힌 물망초를 재차 만지작거렸다. 이건 뭔가 심적으로 불안하다는 방증이다.

뭐, 그럴 만도 하다. 교단이 장악당하지는 않았어도 내부에 알베르트에게 포섭된 인물들이 몇 있긴 하니까. 대표적으로 임명식 날 알베르트와 함께 성자 대기실로 찾아와 깽판 쳤던 대주교가 있다.

성녀는 예전부터 이러한 내부적인 부패 관련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것 같았었다. 그래서 염세적인 성격이 되었는지도 모르지.

어쨌든 알베르트에 대해 말하는 성녀의 표정이 좋지 않았기에,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었다.

“흠흠, 아무래도 알베르트 그자가 만악의 근원 같은데... 더 늦기 전에 이번 왕위 계승 문제를 빌미로 교단 차원에서 뭐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아니면 성녀님만이라도요.”

나야 이름뿐인 성자라 교단을 좌지우지하지는 못하지만, 성녀는 교단의 실세다. 그녀가 움직이면 교단도 움직이는 거나 다름없다.

“그건 곤란해요. 제가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제 의견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제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오랫동안 지켜온 교단의 원칙을 깰 수는 없어요.”

그녀는 완고하게 대답했다.

공과 사는 철저한 사람이군.

“그자가 성직자를 타락시키는데도요?”

“그건 신을 버리고 유혹에 넘어간 성직자의 잘못입니다. 알베르트 국왕은 인간을 유혹한 것일 뿐이기에 그에게 죄를 물을 수는 없습니다. 그가 신을 욕보였다면 모를까.”

흐음. 아쉽군.

교단이 같이 움직여준다면 큰 힘이 될 텐데.

뭐, 이건 더 말해봤자 별 소득이 없을 것 같았기에, 나는 화제를 변경했다.

“그럼 저는 어떻습니까? 개인적으로 움직여도 되는 겁니까? 아니면 저도 성녀님처럼 교단의 원칙을 지켜야 하는 겁니까?”

내가 오늘 성녀를 찾은 목적은 이걸 묻기 위함이었다. 혹시 나도 성자라서 중립을 지켜야 한다고 하면, 직위를 내려놓을 생각이다.

지금 내게 최우선 순위는 ‘국왕 시해자’ 퀘스트니까.

“당신, 설마.......?”

성녀가 경악에 가득 찬 눈빛으로 바라보며 물었으나, 나는 굳이 대답하지 않고 어깨를 으쓱했다.

“......성자님은 정식 성자가 아니시기에, 교단의 이름이 아닌 개인적인 이름으로라면 자유롭게 행동할 권리가 있습니다. 물론, 적정선은 지키셔야겠죠.”

“적정선?”

“신탁을 받는 성자가 지켜야 할 적정선이라면, 세르시아 님의 뜻을 곡해, 왜곡, 거짓으로 전달하신다거나 그분의 이름을 파는 행위 등이 되겠네요.”

뭐야, 별거 아니네.

그런 행동은 하라고 해도 안 한다. 세르시아의 분노를 살지도 모르고, 어차피 성녀한테 금방 들킬 테니까. 실제로 알베르트에게 거짓 신탁 발표 제의를 받았을 때도 같은 이유로 거절했었다.

“뭐,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이만 2왕자님을 만나러 가보겠습니다.”

나는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등을 돌려 떠나려는 순간, 뒤에서 그녀가 나를 불렀다.

“......성자님.”

“예?”

뒤를 돌아 바라본 그녀의 얼굴엔 여러 감정이 복잡하게 뒤얽혀 있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교단은 도와드릴 수 없습니다. 그가... 신에 대한 부정을 저지르지 않는 이상은요.”

“알고 있습니다.”

***

텅 빈 알현실 중앙의 왕좌에 앉아있는 알베르트 폰 하츠펠드는 쉴 틈 없이 의자의 손잡이를 쓰다듬고 있었다.

“그래도 왕좌가 좋긴 좋군. 크크....”

늘 저만치 떨어져서 아버지가 앉아있는 모습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봐야만 했던 의자.

이제는 자신의 것이 되어버린 그 화려한 왕좌는, 적어도 앉아있을 때만큼은 아버지를 감옥에 집어넣은 죄책감도, 지금 그의 골치를 아프게 만드는 여러 문제들도 잠시 잊어버릴 수 있게 했다.

그러나 산재해 있는 문제들을 영원히 외면할 수는 없는 노릇. 그는 곧 기사단장의 보고에 의해 현실로 돌아왔다.

“전하, 민중들의 수도 이탈 현상이 심화되고 있습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수도가 위축될 것이옵니다. 그리되기 전에 평민의 입장 제한을 해제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흠....”

알베르트는 미간을 좁히며 고민에 빠져들었다.

기습적으로 철의 기사단을 동원해 왕좌를 탈취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딱 거기까지였다. 그 이후로는 좋은 일 하나 없이 온갖 머리 아픈 문제만 잔뜩 발생하고 있었다.

민심은 바닥을 치고, 은연중에 등 돌리는 귀족도 늘어나고 있고, 제거해야만 하는 위협 요소인 동생 프란츠는 세르시아 교단에 몸을 의탁하고 있어서 잡을 수가 없고.

자신의 무리하고 부당한 왕위 계승으로 인해 언제 반란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으나, 그나마 대놓고 이빨을 드러내는 이가 아직 없다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평민들의 입장 제한은 계속 유지하겠다. 다른 지역으로 떠난다고 한들 어차피 나를 섬겨야 하는 건 변함이 없으니까.”

“하지만 평민이 줄어들면 수도도 줄어듭니다.”

“됐다. 그 천한 것들이 수도에 너무 많이 있는 것도 위험해. 배운 게 없어서 남에게 쉽게 휩쓸리거든. 그것들은 프란츠한테 껌뻑 죽지 않나? 괜히 프란츠가 선동이라도 하면 매우 곤란해진다.”

알베르트는 손을 내저으며 기사단장의 걱정을 일축했다.

평민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는 프란츠가 살아있는 한, 평민은 잠재적인 적으로 간주해야 한다. 물론 기사단장의 말대로 평민이 줄어들면 수도의 경제도 위축되겠지만, 그렇다고 망하는 것은 아니다.

이 기회에 평민의 비중을 점진적으로 줄여서, 안전하고 품격있는 도시로 탈바꿈하는 것도 괜찮겠지.

“전하, 그리 쉽게 생각하실 일이 아닙니다. 평민뿐만 아니라 귀족들도 빠져나가고 있습니다. 수많은 귀족 자제들이 모여 있는 왕립 아카데미는 아예 무기한 휴교까지 결정했다는군요.”

“......뭐? 이것들이 누구 마음대로...!”

이것은 곤란했다. 아카데미에 있는 귀족 자제들은 볼모로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을 손아귀에 쥐고 있으면 그들의 부모도 붙잡은 거나 다름없다.

“당장 취소하라 일러라! 어딜 감히 왕실의 허락 없이 그런 중대사를 독단적으로 결정해?”

“분부대로 거행하겠습니다만, 이런 조치는 미봉책일 뿐 아니겠습니까? 좀 더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만....”

기사단장의 조심스러운 조언에, 알베르트는 왕좌의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턱을 쓰다듬었다.

“근본적인 해결책이라....”

당장 떠오르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었다.

성난 민심을 달래는 것과

성난 민심을 아예 찍어 눌러버리는 것.

마음 같아서는 왕국군을 동원해 자신의 왕위 계승에 대해 입을 뻥끗하는 자라면, 평민이든 귀족이든 모조리 잡아들여 처형하고 싶었다. 공포로써 통치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니까.

하지만 그것은 결국 제 살 깎아 먹기일 뿐.

무력을 동원해 강제적으로 제압한다면 자신도 피를 흘릴 수밖에 없을뿐더러, 공포에 굴복한 거짓 충성심은 오래가지 않는다.

알베르트는 그것을 모를 만큼 어리석지 않았다. 내전은 최후의 수단이다.

“역시 민심을 달래는 쪽이 좋겠군.”

“......왕위 계승의 정당성에 대한 의문이 사그라들기 전까지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만... 뭔가 묘안이라도 있으십니까?”

“흐음, 이건 어떻겠나? 아버지를 협박해서 자발적인 왕권 이양이었다고 발표하게 하는─”

─벌컥!

알베르트의 뒷말은, 돌연 알현실의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온 한 기사에 의해 중단됐다.

“전하!”

“뭔가? 내가 기사단장과 단둘이 할 얘기가 있으니 아무도 들어오지 말라고 분명히 말했을 터인데?”

“소, 송구하옵니다, 전하. 다만 워낙 중요한 사안인지라....”

불호령을 내리려던 알베르트는, 중요한 사안이라는 소리에 분노를 억눌렀다.

“......쯧, 말해보아라.”

“성자가 전하께 알현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뭣? 성자가?”

알베르트는 반색하며 왕좌에서 벌떡 일어났다.

“동부로 떠났다고 들었는데 그새 돌아온 건가? 당장 들라 해라!”

“예, 전하.”

그렇게 대답한 기사가 물러나고 머지않아 엘이 알현실로 걸어 들어왔다.

“안녕하십니까, 알베르트 국왕 전하.”

“오, 자네 왔군. 이리 가까이 와라.”

엘은 알베르트가 지시한 대로 그를 향해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자 기사단장이 엘의 앞을 막아섰다.

“......?”

“전하께 가까이 가기 전에 무장을 해제하시오.”

“어허, 경은 사람이 어찌 그리 융통성이 없나? 성자일세 성자. 내가 왕이 된다는 예언을 해준 장본인 말이다! 괜찮으니 그냥 놔두도록.”

무한한 신뢰가 담긴 알베르트의 말에, 엘을 막아섰던 기사단장은 조용히 길을 비켜줬다.

이윽고 엘이 가까이에 서자, 알베르트는 왕좌에 거만하게 앉아 손잡이를 툭툭 치며 입을 열었다.

“오랜만에 보니 아주 반갑군. 별일 없었나? 나는 별일 있었는데. 이 왕좌가 내 것이 되었거든.”

“경축드립니다, 전하. 저는 전하께서 당연히 그리되실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크크, 그래. 내가 왕이 될 거라는 사실은 나보다도 자네가 더 굳게 믿었겠지. 신의 계시를 받은 건 내가 아니라 자네니까 말이야.”

“.......”

알베르트는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있는 엘을 향해 말을 이었다.

“하지만 막상 왕이 되고 나니 골치가 아프군그래. 예언만 믿고 무리하게 달려왔더니 부작용이 많아. 민심도 흉흉하고.”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알현을 요청드렸습니다.”

엘은 고개를 들어 왕좌에 앉아있는 알베르트를 바라봤다.

“전하, 일전에 제가 약속드렸던 것을 기억하십니까?”

“물론이다. 내가 왕위에 오르면, 나에 대한 지지를 발표해서 민심 수습을 돕겠다고 했었잖나?”

“예, 그 약속을 지키러 왔습니다.”

엘은 결연하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자리를 마련해주십시오. 왕국 전역에 있는 귀족들도 초청해서 최대한 크게 말입니다. 어차피 전하께서도 제대로 된 즉위식을 올리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제가 그 자리에서 공식적으로 발표하겠습니다. 예언에 대한 것까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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