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이의 꿈 (2)
앞장서서 걷던 포로가 어느 건물 앞에서 멈춰 섰다.
“......! ......!”
“뭐.”
“......! ......!”
“아니, 뭐라는 거야. 말로 설명해.”
교육의 성과가 너무 컸던 탓일까?
그는 말을 하라는 나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입을 꾹 다문 채 온몸을 비틀며 마임을 시도했다.
“진짜 입 열어도 괜찮다니까?”
“.......”
“입 안 열면 또 맞는다.”
“여, 여기가 저희의 본거지입니다.”
그는 건물을 가리키며 황급히 대답했다.
“그래? 겉보기에는 그냥 푸줏간 같은데?”
“일, 일 층의 푸줏간은 피 냄새를 가리기 위한 위장입니다. 지하가 진짜입죠.”
“흐음... 그렇단 말이지....”
나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클로이를 바라봤다.
“뭐, 별거 없는 것 같은데. 바로 들어가죠?”
“응, 빨리 끝내고 돌아가자. 옷에 피 냄새 배겠어.”
그녀는 찡그린 얼굴로 로브에 코를 가져다 대며 킁킁거렸다. 긴장감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모습이었기에, 포로는 어리둥절해 하다가 슬며시 입을 열었다.
“저, 저는 이제 풀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뭔 헛소리야? 지하까지 안내해야지.”
“그, 그냥 저 안쪽에 있는 계단으로 내려가시면 됩니다. 안내 같은 건 필요 없으실 겁니다. 정말로요...!”
그는 내 바짓가랑이를 붙잡으며 애원하다시피 했다.
“제, 제가 외부인을 본거지까지 안내했다는 사실을 두목한테 들키면 저는 죽습니다...! 그러니 제발 저는 이만 보내주십쇼...!”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 그리고 어차피 네 두목은 우리가 잡아갈 거다.”
나는 그의 멱살을 잡아서 일으켜 세우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러자 그가 버둥대며 발악하듯 소리쳤다.
“저희 두목은 기사 출신입니다! 당신들이 이길 수 없다고! 당신들을 죽이고 나까지 토막 낼 거란 말이다!!”
“......기사 출신?”
아니, 뭔 놈의 범죄자 중에는 이렇게 기사 출신이 많아? 무력이 강해서 그런 건가? 뭐, 기사 출신이어도 딱히 문제될 건 없지만.
“그, 그렇습니다. 그러니 당신들도 이만 포기하고 돌아가는 게....”
“입 다물고 앞장서. 나 기사 좋아해.”
“네? 그게 무슨─ 으아악!”
나는 그를 푸줏간 쪽으로 힘껏 밀어버렸다.
꽈당! 바닥에 나자빠진 그는, 죽상이 된 얼굴로 일어나서 마지못해 안내를 시작했다. 나는 그를 따라 걸어가며 클로이에게 물었다.
“생포하실 거죠?”
“응, 산 채로 잡아 오면 돈을 조금 더 준다고 하더라구.”
“그럼 웬만하면 제가 검으로 상대하겠습니다. 마법을 잘못 썼다가는 죽어버릴 수도 있으니까요. 아, 기사 출신이랬으니 마법을 써도 좀 버티려나? 아, 몰라. 아무튼 제가 싸울게요.”
“그럴래? 그래 주면 나야 편하고 고맙지.”
기사에도 급이라는 게 있다.
1왕자 알베르트 옆에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기사단장 같은 경우는 척 보아도 최상급이고, 은퇴 후에 이렇게 범죄자 노릇이나 하는 기사는 보나 마나 최하급 허접이다.
실력이 뛰어나다면 뭐하러 더러운 일을 하며 살겠는가? 계속 기사를 하거나 어디 아카데미 같은 데에서 애들이나 가르치겠지. 이런 범죄자 놈은 검으로도 충분하다.
아무튼 푸줏간 건물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니, 바닥에 나무판자로 가려져 있는 비밀스러운 계단이 나왔다.
“뭐, 왜. 얼른 들어가.”
“......크흑.”
포로가 계단 앞에서 머뭇거리며 이제 그만 풀어달라는 듯한 눈빛을 뿜어댔지만, 이놈 역시 죽어도 싼 인신매매단의 일원이었으므로 사정을 봐줄 생각 따위는 추호도 없었다.
끼이익. 나무판자를 들어내고 계단을 내려갔다. 지하는 인민군을 동원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꽤나 깊었다. 마법 없이 이렇게 파내려면 많은 인력이 필요할 텐데, 생각해보니 인신매매단이라 인력은 넘쳐나겠군.
계단을 다 내려가니 복도가 펼쳐졌다.
복도의 양옆에는 마치 지하 감옥처럼 작은 방들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문에 창문이 없어서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는 보이지 않았다.
“저, 저쪽입니다. 두목이 계신 곳은....”
포로가 복도 끝 쪽에 있는 방을 가리켰다.
지이잉- 나는 스트렝스로 육체를 강화하며 클로이를 향해 말했다.
“음, 그럼 제가 먼저 진입할 테니, 클로이 씨는 복도에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주세요. 혹시 그 두목이라는 놈이 도망칠 수도 있으니까요.”
“맡겨만 둬!”
“미, 미친 것들... 너희들은 미쳤어... 감히 기사 출신의 두목을 동네 꼬마처럼 여기는─ 어억!”
나는 다시 한번 포로를 집어던졌다.
─우지끈!
이번에는 마법으로 육체가 강화된 상태였기에, 녀석은 나무 문을 박살 내고 안쪽까지 날아갔다.
“무, 뭐냐?”
방에서 당황한 듯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부서진 문을 향해 다가가니, 바닥에 쓰러져있던 포로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두, 두목! 현상금 사냥꾼이 습격해왔습니다! 제가 어떻게든 막아보려 필사적으로 싸워봤지만... 보시다시피... 크윽!”
이 자식, 처세술이 제법인데?
“현상금 사냥꾼? 으하하! 영주의 병사도 아니고 고작 현상금 사냥꾼한테 당한 거냐?”
“그, 그래도 강력한 녀석입니다! 물론 두목님께는 상대도 안 되겠... 저, 저놈입니다!”
내가 안으로 들어서자, 포로가 나를 삿대질하며 고자질했다.
‘......저 반나체 상태의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다 인신매매단으로 간주하면 되겠군.’
널찍한 방 안에는 반나체 상태의 성인 남녀 몇 명이 일렬로 서 있었고, 그 앞에는 장부를 든 사람이 그들의 값어치를 매기고 있는 듯 보였다.
그리고 두목으로 추정되는 험상궂게 생긴 사내 한 명과 그의 부하가 열 명 정도 더 있었다.
“너냐? 나를 잡겠다고 설치는 애송이가?”
“아니요.”
“뭐? 웃기지 마라. 여기에 너 말고 또 누가 있다고?”
“대답해도 안 믿을 거면서 왜 물어보셨죠?”
“......미친놈이었군. 죽여라.”
두목이 턱짓하며 명령하자, 그 즉시 부하들이 내게 달려들었다.
열 명이나 되는 놈들을 일일이 검으로 상대하긴 귀찮으니, 그냥 마법을 캐스팅했다.
─치지지직!
[금일 사용 가능한 ‘체인 라이트닝’ - 9회]
“크어어억!”
“끄아악!”
내 손에서 뻗어나간 한 줄기의 푸른 전류는 가장 먼저 달려오던 녀석에게 직격했고, 곧 연쇄적으로 퍼져나가며 그들 모두를 바닥에 쓰러트렸다.
그 모습을 바라본 두목이 당황하며 소리쳤다.
“네, 네놈! 마법사였나!”
“아니요.”
“......? 이, 이 개자식이 끝까지 나를 우롱해? 오냐, 사지가 잘리고도 그따위로 굴 수 있나 보자!”
그가 옆에 놓여있던 검을 집어 들고 내게 쇄도했다. 짧은 순간임에도 그의 검에 오러가 맺혔기에, 나도 즉시 검을 뽑아서 마나를 불어 넣었다.
─카앙!
시뻘건 화염에 휩싸인 검이 푸른 오러를 막아내자, 그의 눈동자가 경악으로 물들었다.
“이건...? 평범한 현상금 사냥꾼은 아니었군. 그렇다면 나도 진심으로 상대해주지!”
오러를 꺼낸 시점부터 이미 진심 아니었나?
어쨌거나 그는 그렇게 말하며 맹렬하게 검을 휘둘러댔다.
─카앙! 캉!
나는 무리 없이 그의 공격을 막아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답답함을 느꼈다.
‘......검만 가지고 제압하기는 어렵겠는데.’
고작 범죄나 저지르며 사는 놈이기에 보잘것없는 실력을 갖추고 있을 줄 알았으나, 의외로 생각보다 뛰어났다. 최하급이 아니라 평균적인 기사에 근접하는 실력이었다.
녀석의 검을 방어해내는 데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내가 검으로 공격할만한 틈은 보이지 않았다. 역시 전격 마법을 한 방 먹여줘야겠어.
그렇게 마음먹고 마법을 캐스팅하려는 순간이었다.
돌연 클로이의 화난 듯한 음성이 들려왔다.
“엘! 뒤로 물러나!”
“......?”
복도를 지키고 있으랬더니 왜 여기로 들어왔지? 목소리에는 왜 분노가 실려 있고? 그런 의아함이 들었으나, 나는 일단 그녀의 말대로 뒤로 황급히 물러났다.
그러자 바닥에서 미세한 한기가 느껴지는가 싶더니,
─파사사삭!!
눈 깜짝할 새에 수배범 밑바닥에서 무수한 얼음 가시들이 솟아났다.
고슴도치처럼 무성한 얼음 가시에 가려져 수배범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으나, 어떻게 됐는지는 안 봐도 자명했다.
주르륵.... 얼음 더미 밑에서 흘러나온 붉은 피가 바닥을 흥건하게 적셨다.
“무, 뭡니까? 생포하자더니 갑자기 죽여 버리시면 어떡해요? 살려서 데려가야 돈을 더 준다면서요?”
볼일을 보다가 중간에 끊은 듯한 찝찝함이 느껴졌다.
내가 검만 사용해서 제압하겠다고 큰소리 빵빵 쳐놓고 질질 끌어서 답답했나?
“......죽어 마땅한 녀석이었어.”
음울하게 대답한 클로이는, 아직까지 살아있는 수배범의 부하들을 향해 마법을 발사했다.
─사사삭! 푹! 푹! 푹!
얼음송곳이 정확히 머리에 박혀버린 그들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즉사했다. 우리를 이곳까지 안내해준 녀석도 화를 피할 수 없었다.
‘뭐지? 왜 다 죽이는 거지? 이놈들도 잡아가면 푼돈이라도 받을 수 있을 텐데?’
내가 몹시 의아한 듯 바라보고 있자, 클로이가 나를 붙잡고 복도로 데려갔다.
복도의 양옆으로 늘어서 있는 방들의 문이 전부 열려있었다. 분명 이곳에 들어올 땐 닫혀있었는데, 아마 클로이가 연 모양이었다.
각 방에는 납치당한 것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몇 명씩 들어있었는데, 그들은 앙상하게 말라 있었고, 여기저기 크고 작은 상처를 입고 있었다.
클로이는 그중에서도 어떤 방 앞에서 멈춰 섰다. 그 안에는 열 살도 안 될 듯한 어린 여자아이가 겁을 잔뜩 집어먹고 웅크려 앉아있었다.
“저거 봐. 발목.”
클로이가 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발목? 아이의 발목을 살펴보니 아킬레스건이 끊긴 흔적이 보였다. 아마 인신매매단에서 도망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그런 듯했다.
“으음, 이것 때문에 다 죽이신 겁니까?”
“.......”
그녀는 말없이 어린아이를 바라볼 뿐이었다.
‘충격이라도 먹은 건가...?’
솔직히 그리 충격적인 광경은 아니었다.
다른 장소였다면 충격적일 수 있어도, 여기는 인신매매단의 본거지다. 인간이 동물처럼 값어치가 매겨지고, 굶고, 맞고. 이런 것들은 수배범을 잡으러 오기 전에 이미 다 예상했던 일 아닌가?
클로이의 반응이 선뜻 이해가 가질 않았다.
‘뭐, 죽여도 딱히 상관은 없지.’
괜한 고민은 접어두기로 했다. 어차피 죽어 마땅한 놈들이었고, 나는 현상금을 목표로 이 일을 한 것도 아니니까. 이대로 마무리 짓고 돌아가서 클로이의 꿈으로 들어가면 그만이다.
“흠흠, 그럼 이만 돌아가죠.”
***
클로이가 술잔을 든 손으로 테이블을 탕탕 내리치며 꺄르르 웃었다.
“꺄하핫! 세계수를 도끼로 찍는 엘프라고?”
“그렇다니까요. 진짜 미친놈입니다.”
나는 현상금 사냥을 마치고 클로이의 집에서 그녀와 함께 술을 마시는 중이었다. 클로이는 ‘오늘의 기억’에서 마시자고 했는데, 내가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이곳으로 왔다. 거기서는 꿈속으로 들어가기가 힘드니까.
인신매매단의 본거지에서 돌아올 때만 해도 매우 음울한 분위기를 풍기던 그녀는, 언제 그랬었냐는 듯 다시 밝아진 상태였다.
술이 들어가서 그런 것도 있지만, 미친 엘프 아스왈드의 일화가 분위기를 띄우는 데에 주효했다.
나는 품에서 작은 유리병을 꺼내 그녀의 눈앞에서 흔들었다.
“이게 바로 세계수의 눈물입니다.”
“눈물...? 나무가 눈물도 흘려?”
“네, 흘린다고 하네요. 도끼로 찍으면 아파서 엉엉.”
“푸, 푸흡─”
좋은데? 빵 터져서 배를 움켜쥐고 웃는 클로이를 보니, 앞으로도 술자리에서 술안주로 아스왈드를 종종 팔아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거나 나는 계속해서 클로이에게 술을 권했다.
“자자, 한잔하시면서 숨 좀 돌리시죠. 그러다가 숨넘어가겠습니다.”
“좋지! 가득 따라줘!”
내가 술병을 들어 올리며 말하자, 그녀는 호기롭게 잔을 내밀었다. 술을 진짜 좋아한단 말이지. 가만 생각해보면 클로이가 술을 거절하는 걸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아무튼 그렇게 신입생 환영회에서 신입생에게 술을 먹이는 복학생처럼 무서운 기세로 먹여대니, 술고래 클로이도 슬슬 헤롱헤롱거리기 시작했다.
“우으... 더 줘....”
“더요? 이미 많이 취하신 것 같은데.”
라고 말하면서 냉큼 술을 따라줬다.
몇 잔을 연거푸 더 들이켠 클로이는, 마침내 테이블에 엎드려서 곯아떨어졌다.
‘어째 청색 마탑 출신 마법사의 꿈에 들어가려면 꼭 이렇게 술을 먹어야 하는 것 같단 말이지....’
블리자드를 얻기 위해 니콜스의 꿈에 들어갈 때도 술상무에 빙의해서 이틀이나 퍼마셔야 했었다.
어쨌거나 나는 혼자서 조용히 술잔을 기울이며 클로이가 꿈을 꾸길 기다렸다. 잠들자마자 바로 꿈을 꾸는 건 아니니까.
‘흐음... 아까 수배범을 죽인 마법을 유도해내는 건 그렇게까지 어렵지는 않을 것 같은데.’
확실히 괜찮은 위력의 마법이다.
기사급을 일거에 즉살했으니.
실내에서도 사용할 수 있고, 무엇보다 뚜렷한 전조가 없는 마법이라는 게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이다. 콜링 썬더나 티안브리스의 불기둥처럼 갑작스럽게 튀어나오는 마법은 기습할 때 써먹기에 아주 유용하다.
그리고 그 정도의 마법은, 유도해내기 위해서 별도의 빌드업을 할 필요가 없다. 이는 클로이에게만 한정된 조건인데, 나는 그녀와 청색 마탑에 갔었던 시절부터 착실하게 마법을 보여달라고 하며 밑밥을 깔아놨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그냥 마법을 좀 구경하고 싶으니, 옆에다 쏴달라고만 하면 될 것이다. 그녀와 나 사이에 이런 부탁쯤은 별 위화감이 없으니까. 그렇게 부탁해놓고 나는 마법으로 뛰어들기만 하면 된다.
물론 클로이의 고유 마법은 이 방법이 잘 안 통하겠지만. 그건 소모 값도 크고 너무 본격적이라서 덜컥 보여달라고 하기가 좀 어색하다. 그래도 떼쓰면 보여주려나?
뭐, 계획은 계획일 뿐.
모든 건 클로이가 어떤 꿈을 꾸냐에 달려있다.
‘......음?’
그렇게 생각에 잠겨있던 중, 클로이가 꿈을 꾸기 시작한 게 느껴졌다. 나는 지체없이 그녀의 꿈속으로 진입했다.
─화아악!
나는 어떤 마을의 한복판에 서 있었다.
‘여긴... 어디지?’
생전 처음 보는 마을이었는데, 마을치고는 규모가 꽤 컸다. 예전에 사막에서 들렀었던 도린 마을과 비견될 정도로 커 보였으나, 어쨌거나 어디인지는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역시 발품을 팔아서 찾으러 다니는 수밖에 없나... 뭐, 그래도 이 정도면 양호한 꿈 같네.’
도시가 아닌 게 어디냐. 생판 모르는 도시에서 꿈의 주인을 찾는 건 매우 어렵다. 마을이 아무리 커봤자 도시와는 비교가 안 되니, 나름대로 나쁘지 않은 출발이라고 볼 수 있었다.
나는 일단 지나가는 사람 하나를 붙잡고 물었다.
“저기요, 잠시 말씀 좀 여쭙겠습니다. 여기는 무슨 마을입니까?”
“......해줄게.”
“예?”
뭐를?
“해줄게해줄게해줄게해줄게해줄게해줄게.”
“아잇, 깜짝이야.”
아무래도 대화가 불가능하게 구현된 인물인 듯했다. 나는 그에게서 물러나며, 다른 사람들에게도 물었다.
“저기요, 혹시 여기가 무슨 마을─”
“으아이에우아?”
“저기요, 혹시 여기가 무슨 마을─”
“.......”
“저기요, 혹시 여기가 무슨 마을─”
“해줄게.”
“아오.”
주변을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여러 사람에게 질문을 해봤지만, 대화가 가능한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그리고 도대체 저 ‘해줄게’는 뭔데?
뭘 해주겠다는 건지는 모르겠는데, 저 말을 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아무튼 온 마을을 이 잡듯이 무작정 뒤지는 것보다는 뭔가 단서를 가지고 움직이는 게 효율이 더 좋았기에, 나는 포기하지 않고 또 다른 사람을 따라가서 질문했다.
“저기요, 여기가 무슨 마을입니까? 아, 해줄게라는 소리를 할 거면 그냥 대답하지 마시고.”
“.......”
아오, 이번에도 허탕이군.
장소를 옮겨보는 게 좋을 듯했다. 아무래도 이 주변에는 대화가 가능한 사람이 전혀 없는 것 같으니까.
내가 자리를 옮기려 할 때였다.
“메이필드 후작가의 마을이야.”
돌연 뒤편에서 어떤 여자의 음성이 들려왔다. 화들짝 놀라며 뒤를 돌아보니, 그곳에는 검은색 드레스를 입은 여성이 서 있었다.
“다, 당신은...?”
이 여자가 왜 여기에 있지?
나는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그녀는 ‘랜드 라이즈’를 다루는 정신이 이상한 수배범의 꿈속에서 만났었던, 욕망을 훔치는 존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