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꿈속에서 마법을 훔치는 마법사-145화 (145/200)

클로이의 꿈 (1)

나는 케른헴의 모험가 길드에서 편지를 수령한 뒤, 곧장 카트카로 돌아왔다.

“클로이를 만나려면... 역시 거기로 가야겠지.”

술집 ‘오늘의 기억’

현상금 사냥꾼을 위한 장소다.

나도 한때는 현상 수배범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그곳에 뻔질나게 들락거렸지만, 수배범 중에는 중급 마법을 다루는 녀석조차 드물기 때문에 안 가본 지 꽤 오래됐다. 잡아봤자 빨아먹을 만한 마법이 없으니까.

솔직히 클로이한테도 현상금 사냥은 사이즈가 안 맞는다. 보수가 나름대로 짭짤하긴 하지만, 그녀의 능력에 비해서는 터무니없이 적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늘 현상금 사냥을 주된 업으로 삼는다.

실전 경험을 쌓기 위해서랬나?

분명 예전에 그렇게 말했던 것 같은데, 왜 경험을 쌓는 건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고작 수배범 따위가 그녀에게 어떻게 실전 연습이 된다는 건지도.

“......내가 실전 강의 한번 해줘?”

이래 봬도 검증된 1타 강사다.

아무튼 동부로 온 김에 클로이의 마법까지 얻어내고 수도로 돌아갈 생각이다. 1왕자 알베르트가 언제 행동에 나설지 모르니 최대한 빨리 돌아가는 게 좋겠지만, 딱 일주일만 더 투자하면 되니까 뭐.

내가 클로이의 꿈속에서 노릴 마법은 둘 중 하나다.

하나는 그녀가 카트카 공방전에서 티안브리스의 불사조를 소멸시킬 때 썼었던 고유 마법. 하늘에서 얼음 송곳이 무수히 퍼부어지는 마법이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일전에 청색 마탑에서 내게 보여준 적 있는, 얼음 가시들이 솟아나는 마법이다. 뚜렷한 전조 없이 갑자기 바닥에서 튀어나와 대상을 고슴도치로 만든다.

원래는 당연히 더 강력한 선택지인 고유 마법을 얻어낼 생각이었는데, 최근 들어 생각이 바뀌었다.

‘단점이 명확한 마법이란 말이지....’

그 마법은 강력하지만 발동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고 움직이는 대상을 맞히기 어렵다. 그때도 내가 속박의 저주로 불사조를 묶어줘서 맞힐 수 있었으니까.

나는 그와 유사한 마법을 이미 가지고 있다.

바로 일렉트리컬 익스플로전.

심지어 이건 전격 마법이기에 내 속성과 일치한다. 이 마법을 배우기 전이었다면 몰라도, 이제는 굳이 이와 유사한 형태를 가진 클로이의 고유 마법을 반드시 얻을 필요는 없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마음에 걸리는 점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마법만 너무 많다!’

내가 최근에 배웠거나 주력으로 사용하는 마법의 대다수는 하늘에 의존한다. 벼락, 벼락, 또 벼락.

즉, 나는 실내 전투에서 급격히 약해진다.

하늘이 뻥 뚫려있는 야외에서 싸운다면야 아무 문제 없겠지만, 항상 밖에서만 싸울 수는 없는 노릇. 얕은 건물 정도는 괜찮겠으나 지하 감옥이나 동굴 같은 데에서는 하늘로부터 떨어지는 마법을 사용하기 어렵다.

그런 이유로, 실내에서 사용할 수 없는 클로이의 고유 마법 이외에도, 실내에서 쓸 수 있는 다른 마법까지 후보로 생각해둔 것이다.

‘뭐, 어떻게 될지는 꿈속에 들어가 봐야 알겠지만.’

그렇게 김칫국을 시원하게 들이켜며 걷다 보니, 곧 허름한 건물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나는 바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마룻바닥에 한 발짝 내딛자마자 최첨단 손님 감지 시스템이 작동하며 내 입장을 소리로써 알렸다.

─삐그덕

그 삐그덕거리는 소리에, 역시나 오늘도 한량처럼 바에 앉아서 술을 마시고 있던 클로이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응...?”

“안녕하십니까!”

“엘!! 뭐야뭐야, 언제 돌아왔어? 수도에 있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알았지? 에드윈한테 들었나?

어째 만나는 사람마다 모두 내 행적에 대해 알고 있는 느낌이다. 도린 형제 빼고.

“아, 어제 돌아왔습니다. 테드 씨도 안녕하세요.”

“그래, 오랜만이군. 한잔하겠나?”

강박적으로 술잔을 닦고 있던 바텐더 테드는 그렇게 물으며 내 대답도 듣지 않고 빈 잔에 술을 따랐다.

어쨌거나 ‘오늘의 기억’ 최대의 장점은 공짜 술이었기에, 나는 마다하지 않고 클로이의 옆자리에 앉아서 술잔을 기울였다.

“근데 여긴 무슨 일이야, 엘? 설마 수배범을 잡으러 왔... 아, 맞다. 메두사의 마안 때문에 왔구나?”

“어허, 우리 사이에 딱딱하게 그게 무슨 소리십니까? 저는 그런 사무적인 일 때문이 아니라 오랜만에 카트카에 왔으니 여러분께 인사나 드리러 온 거지만 기왕 온 김에 마안도 받아야겠네요.”

“무, 뭐라는 거야. 정말.”

클로이가 혀를 내두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리고는 로브 안쪽으로 손을 집어넣고 온몸을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

뭐지? 구애의 춤인가?

“끄응... 으응... 으그으으윽...!”

“저, 저기요 클로이 씨.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요상한 소리까지 내면서.”

“아니, 이게 잘 안 빠져서...... 아, 됐다!”

알 수 없는 움직임과 소리를 내던 클로이는, 곧 품에서 마안을 꺼내서 내게 내밀었다. 나는 얼떨결에 그것을 받으며 물었다.

“뭐야, 이걸 늘 가지고 다니셨던 겁니까? 제가 언제 올 줄 알고.”

“응, 집에다가 보관하기는 조금 불안해서. 내 물건도 아닌데 잃어버리면 곤란하잖아? 그래서 그냥 가지구 다녔어.”

“이야, 책임감이 대단하신데요? 고맙습니다.”

역시 클로이라고 해야 하나.

그녀에게서만 느껴지는 묘한 신뢰감 같은 게 있다. 내가 허접이었던 시절부터 클로이는 쭈욱 강력했고, 또 그녀한테 도움도 많이 받아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청색 마탑을 소개해주고, 블리자드를 얻기 위한 판을 깔아주고, 결투재판 공증인 섭외나 마법적 조언 등등. 가만히 생각해보면 나는 그녀를 도운 일이 별로 없는데, 받기는 잔뜩 받았다.

“뭐어, 그다지 어려운 일도 아닌걸? 나는 전달받아서 보관만 했으니까. 아 참, 스승님이 안부 전해달래.”

클로이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스승님이라면... 니콜스 님이요? 설마 니콜스 님이 직접 여기까지 마안을 가져오셨습니까?”

“응? 아아, 안부 전해달라는 말은 나한테 편지로 하신 거구 마안은 다른 사람이 가져왔어. 원래는 중요한 거라 스승님이 직접 오시려고 했는데, 얼마 전부터 마탑주가 되셔서 바쁘시거든.”

“마탑주? 이야, 이거 완전 거물이 되셨네요.”

원래부터 거물이긴 했다.

청색 마탑의 대스승이었으니까.

그래도 마탑주는 그보다 더한 거물이다. 무려 청색 마탑을 좌지우지하는 주인이라면, 모르긴 몰라도 최소 후작급은 되지 않을까 싶었다. 물론 나는 후작을 만나본 적은 없지만.

“거물은 무슨... 아무튼 마안에 대해 설명해줄게. 거기에 마법진이 그려져 있는 거 보이지? 당장이라도 사용할 수 있도록 개조가 끝난 상태야.”

마법진? 아까 클로이가 이상하게 끙끙거리는 바람에 제대로 못 봤는데, 지금 다시 보니 머리카락처럼 얇은 굵기로 마법진이 그려져 있었다.

“사용법은 간단해. 마나를 불어넣으면 되거든. 대신 마나 소모량이 많고, 한 번 사용하면 마안은 영구히 파괴될 거야.”

진짜 간단하네. 일회용이라는 건 니콜스에게 들어서 진작 알고 있었다.

어쨌거나 클로이의 설명은 계속 이어졌다.

“마안에 마나를 불어넣으면 메두사가 석화시키는 것과 동일한 효과가 발생한다는데... 그게 어느 정도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네. 아, 이건 엘이 잘 알겠구나? 메두사와 직접 싸워봤으니까.”

“예, 뭐. 싸우다가 석화도 당해봤습니다.”

“뭐어어?? 정말??”

클로이가 화들짝 놀라며 되물었다. 심지어 묵묵히 잔을 닦고 있던 바텐더 테드마저 경악하는 눈치였다.

“메두사의 눈을 응시했었다는 거야? 그런데 엘은 지금 멀쩡히 살아있잖아? 설마 해주 마법도 쓸 수 있어?”

“아, 상급 성수가 있었습니다. 운이 좋았죠. 완전히 석화되면 성수로도 못 푸는데, 저는 늦기 전에 마셨거든요.”

솔직히 메두사의 진짜 무기는 마안이 아니라 미친 연기력이 아닐까 싶다. 그 쌩쇼에 홀딱 속아 넘어가서 눈을 떴다가 석화 당했었으니까.

그 붉은 빛을 내뿜는 눈을 한 번 쳐다보게 되니 홀린 듯이 계속 바라볼 수밖에 없었는데, 아직 석화가 진행되지 않은 신체 부위도 움직여지지 않아서 정말 큰일 날 뻔했었다.

‘......그럼 내 마안도 한 번 보면 시선을 못 피하게 되나?’

그런 부수적인 효과까지도 똑같다면 생각 이상으로 유용할 수도 있다. 상대가 강자건 약자건 상관없이 마안을 딱 한 번만 보면 완전히 석화될 때까지 꼼짝도 못 할 테니까.

“그렇구나... 신기하네. 가만 보면 엘은 은근히 특이한 경험을 많이 했단 말이지. 앞으로도 또 무슨 엉뚱한 일을 벌이는 거 아니야?”

“어허, 엉뚱한 일이라뇨. 저를 대체 어떻게 생각하시는 겁니까?”

정확한 진단이었다.

나는 왕을 죽일 거니까.

“꺄하핫! 농담이야 농담. 그런데 수도로는 언제 돌아갈 거야? 세르시아 교단의 성자면 바쁜 거 아니야?”

“명예직인데요 뭐.”

“그래? 그럼 여기서 며칠만 더 있다가 가면 안 돼? 엘이 현상금 사냥을 그만둔 이후로 딱히 대화할 상대가 없어서 심심하단 말이야. 테드 씨랑 대화하는 건 벽보고 얘기하는 것 같구.”

그녀가 따분하다는 듯한 투로 말했다.

“흐음. 클로이 씨가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야... 몹시 바쁘지만 일주일 정도는 시간을 내보겠습니다.”

“와아!! 고마워!!”

물론 클로이가 그렇게 말하지 않았어도 꿈속에 들어가는 능력의 쿨타임이 돌아올 때까지는 카트카에 머물 생각이었지만.

***

“어딜 도망가!”

나는 눈앞에서 달아나고 있는 사내를 향해 몸을 날렸다.

“헉... 헉... 그, 그만 쫓아오─ 커헉!”

퍼억! 나의 드롭킥에 적중당한 사내는 그대로 바닥을 뒹굴었다. 나는 녀석의 멱살을 붙잡아 일으켜 세우며 뒤편을 향해 소리쳤다.

“클로이 씨! 잡았습니다!”

나는 며칠째 클로이와 함께 수배범을 잡으러 다니고 있었다. 뭐, 잡아봤자 딱히 얻는 건 없지만 능력의 쿨타임이 돌아올 때까지 최대한 클로이와 가까이 있는 게 좋으니까.

“드, 드디어...? 에구구... 숨차 죽겠네.”

뒤늦게 달려온 클로이는 자리에 주저앉아서 숨을 골랐다.

“운동 좀 하셔야겠네요, 클로이 씨.”

“저, 저 녀석이 너무 날쌘 거야....”

그런가? 하긴, 마법사는 평균적으로 체력이 좀 딸리는 편이다. 마법을 쓰면 이깟 잡놈쯤이야 별것도 아니지만, 그랬다가는 덜컥 죽어버릴 수 있어서 맨몸으로 추격했다.

사실 클로이의 체력을 빼놓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드디어 오늘 밤.

자정이 넘으면 꿈속으로 들어갈 수 있으니까.

그러니 그 전에 수배범 사냥을 완료하고, 클로이를 최대한 굴려서 지치게 해놔야 일이 수월해진다.

“자, 그럼 이제 너희의 본거지를 실토해보실까?”

나는 사내의 멱살을 붙잡은 손을 흔들며 말했다. 우리가 찾는 수배범은 멀쩡한 사람들을 납치해다가 인신매매하는 집단의 우두머리인데, 이 사내는 그놈의 부하다.

“이, 이 자식! 우리가 감히 누구인 줄 알고 이러는 것이냐? 네놈이 이러고도 무사할 것 같은가!”

“그러는 너는 내가 누군지 알고 이렇게 버럭버럭 대드는 건데? 세르시아 광신도들한테 붙잡혀서 화형 한번 당해볼래? 까불지 말고 묻는 말에나 대답해라.”

나는 짜증스럽게 말했다.

현상금 사냥 중에는 웬만하면 야외에서 노숙을 하기 때문에, 빨리 이 일을 끝내야 오늘 클로이의 꿈속으로 들어가기가 편하다. 노숙하면 깊이 잠들기 힘드니까.

“네놈이 누구든 간에 우리를 건드린 대가를 반드시 치르게 해주마! 저 여자는 창관에 팔아넘기고 네놈은 장기를 적출해서 흑마법사에게 재료로 넘길─”

“내가 물은 말은 그게 아니잖아!”

─짜악!

나는 녀석의 뺨을 냅다 후려갈겼다.

악당만의 매뉴얼이라도 있는 건가? 이런 놈들은 하나 같이 한 번에 대답해주는 법이 없다. 바빠죽겠는데 말이야. 역시 이럴 땐 물리력을 동원하는 게 최고다.

“퉤...! 이런다고 해서 내가 순순히 입을 열 것 같은가?”

녀석이 피를 뱉어내며 으르렁거렸다.

“그래, 그냥 입 열지 마.”

“......뭐?”

“입 열지 말랬지!”

─짜악!

“보, 본거지를 실토하라고 하더니 왜─”

“입 열지 말랬지!”

─짜악!

“크윽...! 뭐 이런 미친놈이─”

“입 열지 말랬지!”

─짜악!

“죄, 죄송합니─”

“입 열지 말랬지!”

─짜악!

“.......”

녀석은 그렇게 한참을 더 맞고 나서야 드디어 상황 파악을 완료하고 입을 다물었다. 나는 녀석의 멱살을 잡고 흔들며 물었다.

“본거지 어디야.”

“.......”

─짜악!

“대답 안 해?”

“저, 저쪽 길모퉁이에서 왼쪽으로 가면─”

“내가 입 열지 말랬잖아!! 왜 자꾸 나를 나쁜 놈으로 만드는 건데!!”

─짜악! 짜악! 짜악!

“......! ......!”

몇 대 연속으로 더 후려갈기자, 녀석은 입은 꾹 다문 채 손가락을 들어 필사적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본거지가 저쪽이라고?”

끄덕끄덕끄덕!

그는 대답 대신 열심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좋아, 네가 앞장서서 안내해. 가시죠? 클로이 씨. 빨리 끝내고 돌아가서 술이나 한잔... 어어? 왜 반대 방향으로 가십니까? 이쪽으로 오셔야죠.”

나는 슬금슬금 뒷걸음질 치는 클로이의 팔을 잡아끌고 수배범의 본거지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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