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꿈속에서 마법을 훔치는 마법사-144화 (144/200)

인페르노 (5)

[꿈속에서 마법 ‘인페르노’에 맞아 사망하여 조건을 달성했습니다.]

[습득하시겠습니까? 훔치시겠습니까?]

‘미, 미친. 온몸이 찌릿찌릿하군....’

불에 타죽는 것은 죽는 순간에도 매우 고통스럽지만, 죽고 나서 현실로 돌아왔을 때도 후유증으로 전신에 작열통 비슷한 게 느껴진다.

영원히 꺼지지 않는 업화의 불길이랬나?

그래도 특이한 불이라서 그런지 이번에는 좀 빨리 죽은 편이다. 일반적인 불에 타죽으려면 그것도 한세월이다. 그나마 다행이랄까.

게다가 예상했던 것보다는 쉽게 성공한 감이 있었다. 우리 편은 그득한데 티안브리스는 혼자였다는 점, 무엇보다 그녀가 지레 겁먹어서 불사조를 소환하지 않았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불사조를 상대하려면 라이트닝 블래스트를 써야 하는데, 그건 모든 마나를 쥐어 짜내는 올인 마법. 아무리 마법 횟수의 제한이 없는 꿈속이라 할지라도 마나까지 무한인 것은 아니기에, 그 마법만큼은 한 번밖에 쓸 수 없기 때문이다.

일례로, 예전에 레이첼의 꿈속에서 고위 기사와 싸울 때 마나가 바닥나서 곤란을 겪었던 일이 있었다. 뭐, 그 덕분에 레이첼의 토네이도 랜스를 습득하는 데 성공했지만.

아무튼.

인간에게 적대적인 티안브리스가 인페르노처럼 위험한 마법을 다루게 해서는 안 되겠지.

‘인페르노, 압수!’

물론 현실에서는 마나를 쓸 수 없는 몸이니 인페르노도 못 쓰겠지만,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야 하는 법.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

‘......? 아, 못 알아들었나? 훔친다!’

시스템은 무려 세르시아의 권능까지 막아내서 전지전능한 줄 알았더니, 꼭 그렇지만도 않은 모양이었다.

[마법 ‘인페르노’를 훔쳤습니다!]

[금일 사용 가능한 ‘인페르노’ - 1회]

[동일한 대상에게서는 더 이상 마법을 습득하거나 훔칠 수 없습니다.]

‘음... 역시 1회밖에 안 주는 건가.’

어느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던 바다.

마찬가지로 고대의 마법인 라이트닝 블래스트도 1회였으니까. 심지어 나는 불 속성도 전혀 없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결과다. 이건 크게 개의치 않는다.

내가 신경 쓰이는 건 인페르노의 위력이다.

대상을 완전히 불태워버리기 전까지 꺼지지 않는다는 점은 마음에 쏙 들었으나, 방금 꿈에서 봤을 때는 범위가 너무 좁아 보였다.

‘......설마 그게 전부는 아니겠지?’

불 속성에 탁월한 재능을 지닌 레드 드래곤의 후예 티안브리스가 전력을 다해 캐스팅해도 고작 계단 입구를 막는 정도에서 그친 거라면, 관련 속성이 없는 내가 썼을 때는 더 좁을 것이다.

하지만 고대의 마법이 그렇게 초라할 리가 없을 것 같았다. 아마 계단만 막아도 충분한 상황이었으니, 티안브리스가 일부러 그 정도 범위로 사용한 게 아닐까 싶기도 했다.

“이건... 나 혼자 고민한다고 해서 답이 나오는 문제가 아니겠군.”

그럼 티안브리스한테 물어보지 뭐.

그녀는 바로 옆방에 있으니까.

나는 즉시 죽음의 냄새가 가득한 이 비좁은 골방을 빠져나가, 티안브리스의 호화 감방으로 향했다.

깊은 밤이라서 교대한 모양인지, 그녀의 방 앞에서 보초를 서고 있는 기사가 바뀌어 있었다.

“늦은 시각에 고생 많으십니다. 안에 볼일이 있어서 그런데, 자물쇠 좀 풀어주시겠습니까?”

“알겠소.”

방금 꿈속에서 티안브리스에게 제일 먼저 죽었던 기사다. 아무튼 그는 두말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며 내 요청대로 잠금을 해제해줬다.

─드르륵....

안으로 들어서니 침대에 누워서 자고 있는 티안브리스가 눈에 들어왔다.

문을 열 때 꽤나 묵직한 소리가 났는데도 깨지 않고 얌전히 자고 있었는데, 겉으로는 평온해 보여도 아마 지금 그녀는 꿈속에서 체스터 백작가의 병사들을 신명나게 학살하는 중일 것이다.

나는 그녀에게 다가가 손가락으로 가볍게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

슬며시 눈을 뜨고 비몽사몽 한 채 나를 바라보던 그녀는, 이내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소스라치게 놀라며 몸을 일으켰다.

“네, 네놈이 어떻게...?”

“아, 자는데 깨워서 미안하다. 다름이 아니라─”

“네, 네놈은 분명 인페르노에.......”

티안브리스는 잠시 혼란스러워했다.

원래 꿈꾸는 도중에 막 깼을 때는 현실과 분간이 잘 안 된다. 악몽을 꾸다가 깼을 때 현실임을 깨닫고 안도하기까지 시간이 좀 필요하지 않은가? 그것과 같은 이치다.

그렇게 어리둥절하던 그녀는, 주변을 휙휙 둘러보더니 이내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듯 한숨을 푹 내쉬었다.

“꿈... 이었나....”

“왜. 뭐 좋은 꿈이라도 꿨나 보지?”

“.......”

내가 짐짓 시치미 떼며 묻자, 그녀는 나를 한동안 말없이 노려보았다.

뭐, 이해할 만한 반응이었다.

조금 전까지 우리는 서로 죽일 듯이 싸웠으니까.

심지어 나는 그게 꿈이라는 걸 알고 싸웠지만, 그녀는 현실이라고 믿고 전투에 임했었으니 조금 더 크게 와닿을 것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현실이라고 믿고 있는 꿈속에서 자유를 얻자마자 한 행동이 살인이라는 걸 볼 때, 티안브리스는 역시 주의를 요하는 인물이다. 현실에서도 똑같이 행동할 테니까.

“후. 그래서 이 밤중에 날 찾아온 이유가 무엇이냐?”

내 얼굴에 구멍이 뚫리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노려보던 그녀가 체념한 듯 물었다.

“아, 잠이 통 안 와서 말이야. 너와 건설적이고 학술적인 대화나 좀 나눠볼까 해서.”

“......뭐? 잠이 안 와서? 하, 살다 살다 너처럼 미친 인간은 처음 보는구나. 방금 꿈속에서도 네놈은 미친 짓을....”

티안브리스는 인상을 찌푸리며 관자놀이를 꾹꾹 눌러댔다. 하지만 지금 아쉬운 건 나였으므로, 나는 넉살 좋게 대꾸했다.

“에이, 꿈이 무슨 상관이야? 그건 너의 상상일 뿐인데. 아무튼 내가 불 속성 마법에 대해 묻고 싶은 게 좀 있어서 그래.”

“......불 속성 마법?”

“그래! 네가 불 마법은 또 기가 막히잖아?”

“크, 크흠. 무슨 그런 당연한 소릴 하는 것이냐? 나는 레드 드래곤의 피가 흐르는 용족이다.”

역시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는 부분을 칭찬해주니 기분이 조금은 좋아진 듯 보였기에,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이야, 역시. 그래서 말인데... 인페르노의 범위가 얼마나 되지?”

“범위...? 그걸 왜 나한테 묻는 것이지? 네놈은 나보다 일찍이 인페르노를 다룰 수 있지 않았었나?”

“나도 다룰 수 있지.”

네 덕분에.

“그렇다면 네놈도 잘 알 텐데?”

“아니, 그렇긴 한데 나랑 너랑은 타고난 속성이 다르니까. 불 속성의 대가인 너의 경우에는 얼마나 되나 궁금해서 그러지.”

사실 속성의 차이 때문에 티안브리스가 사용하는 인페르노를 정확한 지표로 삼기는 어렵다. 그냥 대충 참고만 할 수 있는 정도랄까.

내가 직접 인페르노를 시전해보는 게 가장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 방법이지만, 물어보는 데에 뭐 돈이 드는 것도 아니니까.

게다가 인페르노를 훔쳤으니 나는 이제 웬만해서는 이곳에 올 일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지하 감옥을 떠나기 전에 겸사겸사해서 물어보려는 것이다.

“네가 웬일로 옳은 말을 다 하는구나. 그래, 너 따위와 나는 수준이 다르지.”

“너 내 주력 속성이 전격이란 건 알고 있지? 건방 그만 떨고 그냥 묻는 말에나 대답해줄래?”

“......나도 실제로 사용해본 적이 없어서 정확하게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내 계산이 맞다면 이곳 지하 3층을 꽉 채울 정도는 되겠지.”

“오, 제법이네? 3층은 꽤 넓은데.”

꿈속에서는 인페르노로 계단만 가로막았었지만, 3층을 꽉 채울 수 있다고 말하는 걸 보면 역시 범위는 시전자가 임의로 조절할 수 있는 모양이었다.

“위력은? 불의 위력은 어때?”

“본질적으로 지옥의 업화를 소환하는 것이기 때문에 속성과는 관계없이 모두 동등한 위력을 지닌다. 속성이 좌우하는 건 범위일 뿐인....... 아니, 너는 어떻게 이런 것도 모르는 거지? 정말 인페르노를 다룰 수 있긴 한 것이냐?”

열심히 설명해주던 티안브리스는 돌연 뒷말을 흐리며 미심쩍은 눈초리로 나를 바라봤다.

“아, 뭔 소리야. 당연히 다룰 수 있지. 지금 너한테 한 번 써줘? 어!”

나는 당당하게 큰소리쳤다.

실제로 다룰 수 있는 게 맞긴 하니까.

어쨌거나 불의 위력은 꿈에서 봤던 것과 동등하다고 하니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위력만 강하다면 범위가 좁아도 얼마든지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다.

“......정말이냐? 아무리 봐도 네놈은 인페르노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어 보이는데?”

“와, 의심이 되게 많네. 그럼 내가 너는 전혀 모르는 인페르노의 비밀을 하나 알려줄까?”

“내가 모르는 비밀...? 그런 게 있을 리가. 나는 마법서를 완벽히 독파했다.”

“그래? 엄청 중요한 비밀인데, 뭐 관심 없으면 말고. 나는 이만 가볼 테니 잠이나 마저 자라.”

내가 쿨하게 등을 돌려 문으로 향하자, 티안브리스가 반신반의하는 목소리로 다급하게 말했다.

“과,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뭐. 알려달라고?”

“그, 그런 비밀이 있다면야... 궁금하기도....”

그녀는 역시 곧 죽어도 자존심은 못 굽히겠는지, 직접적으로 알려달라고는 말을 못 하고 빙빙 돌려서 말했다.

“좋아, 그럼 딱 한 번만 말해줄 테니 똑똑히 들어. 인페르노의 중대한 비밀을!!”

“무, 물론이지.”

티안브리스가 위아래로 고개를 흔들어댔고, 나는 그런 그녀를 향해 툭 던지듯 말했다.

“응, 너 인페르노 못 써.”

***

다음날.

동부지방으로 온 가장 큰 목적인 인페르노 훔치기를 달성한 나는, 편안한 마음으로 케른헴의 모험가 길드를 향해 가고 있었다.

─달그락달그락

당연히 몬스터 토벌 의뢰 따위를 하러 가는 것은 아니고, 내 앞으로 도착해있다는 편지를 찾기 위해서다. 발신인은 청색 마탑이라고 했었으니, 아마 마안과 관련된 내용일 것이라고 짐작하고 있다.

‘개조가 끝났다는 소식이었으면 좋겠는데.’

메두사를 처치하고 획득한 두 개의 마안 중 하나는, 저주를 막아주는 반영구적인 부적으로 현재 내가 사용하고 있다.

나머지 하나는 청색 마탑에서 개조 중인데, 개조가 끝난다면 일회성이긴 해도 마안을 바라보는 사람을 석화시킬 수 있다. 딱 한 번만큼은 중부의 메두사가 아니라 진짜 메두사처럼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비장의 한 수가 있다면 분명 큰 힘이 될 테니, 웬만하면 1왕자 알베르트가 왕좌에 오르기 전에 받아볼 수 있길 희망했다.

‘흐음... 근데 찾으러 가는 데만 해도 한세월이겠네.’

청색 마탑은 왕국 남부 끝자락에 있는 도시 도튼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거길 들렀다가 수도로 돌아가려면 거의 보름은 걸릴 듯했다.

고작 물건 하나를 받으러 가는 데 보름을 투자하는 것은 시간이 상당히 아깝지만, 본격적으로 ‘국왕 시해자’ 퀘스트를 시작하기 전에 최대한 스펙을 올려놔야 하는 나로서는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할 수 있겠다.

아무튼 그런 생각에 잠겨있던 중, 도착을 알리는 마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착했습니다, 손님!”

어느새 케른헴의 북쪽 성문에 도착해있었다. 나는 바로 마차에서 내려 마부에게 삯을 지불하고 도시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오랜만에 방문한 나의 고향 케른헴은 발전 중인 모양인지 전보다 사람이 조금 더 많아진 듯 보였으나, 내가 워낙 사람이 바글바글한 수도에 익숙해져서 그런지 딱히 피부에 와닿지는 않았다.

그렇게 변화한 고향을 구경하며 부지런히 걷다 보니 곧 모험가 길드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것도 좀 커졌네?”

모험가 길드의 건물이 증축되어 있었다. 본래 크기의 절반 정도가 확장된 듯했는데, 이는 내가 여기에서 4년간 개같이 구를 때는 없었던 일이다.

─끼이익

무려 확장공사까지 했으면서 출입문의 경첩에는 기름칠을 하지 않아 여전히 끼이익거리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니, 꽤나 많은 수의 모험가들이 눈에 들어왔다. 처음 보는 모험가도 제법 있었는데, 그냥 단순히 내가 얼굴을 까먹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바로 접수대로 향했다.

접수대도 두 개로 늘어나 있었지만, 한쪽에는 여전히 친숙한 여직원이 앉아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다가가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어머, 엘 씨? 오랜만이에요!”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서류를 끄적이고 있던 그녀가 반색하며 맞이했다.

“아, 예. 오랜만입니다. 근데 못 보던 사이에 길드가 좀 커졌네요?”

“네, 어때요? 널찍하니 좋죠? 이곳에서 활동을 희망하는 모험가는 날이 갈수록 늘어만 가는데 길드는 좁아터져서 큰맘 먹고 확장했어요.”

그녀는 자랑스럽다는 듯 길드 내부를 슥 훑어보고 말을 이었다.

“이게 다 엘 씨 덕분이죠.”

“......? 제가 왜요?”

“던전이나 메두사 같은 희귀 몬스터가 출현했던 지역이라 찾아오는 사람도 있지만, 엘 씨의 명성을 듣고 찾아오는 사람도 많거든요. 엘 씨는 모험가들의 우상 같은 존재니까요. 아마 모험가 중에서 가장 유명하실걸요?”

뭐지? 나는 모험가 일을 멈춘 지도 꽤 됐고 심지어 이곳에 있지도 않았는데 나 때문에 몰려든다고? 홍철 없는 홍철 팀 같은 건가?

어쨌든 나 때문에 피해를 보는 것도 아니니 그냥 그렇다고 치기로 했다.

“그렇군요. 뭐 그건 그렇고... 제 앞으로 온 편지가 있다고 하던데.”

“아, 맞다! 잠시만요.”

직원은 손뼉을 짝! 치고 안쪽으로 들어가서 편지를 하나 가져왔다.

“자, 여기요. 청색 마탑과도 연이 있으신 줄은 몰랐네요? 하여간 모험가라고는 믿기지 않는 분이라니깐.”

“오, 감사합니다.”

나는 그녀가 내민 편지를 받아서 즉시 개봉했다.

예상한 대로 편지의 내용은 마안에 관한 것이었다. 개조는 진즉 끝났고, 내게 직접 전달해주기 위해 마탑에서 케른헴까지 사람을 보냈었으나, 도통 나를 찾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렇다고 이 귀한 물품을 모험가 길드에 덜컥 맡기기도 뭐하니, 아예 카트카에 있는 클로이에게 맡겼다고 한다. 그녀는 나도, 마탑에서도 신뢰하는 인물이니까.

‘......좋은데?’

이것은 상당히 마음에 드는 일처리였다.

이러면 굳이 청색 마탑까지 찾아갈 필요가 없으니 시간을 엄청나게 단축할 수 있다. 게다가 클로이 정도의 실력자가 보관하고 있다면, 어지간한 금고보다도 훨씬 안전하다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슬슬 때가 되긴 했지.’

클로이의 마법도 습득할 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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