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꿈속에서 마법을 훔치는 마법사-142화 (142/200)

인페르노 (3)

무려 열 번이 넘는 전기 충격 세례를 받은 티안브리스가 어금니를 꽉 깨물며 나를 노려봤다.

“크윽... 감히... 인간 따위가....”

머리카락이 삐죽빼죽 뻗쳐있는 걸 보니 완충 상태인 듯했다. 더 이상의 마법은 전력 낭비일 것이다.

“그놈의 인간 타령은 대체 언제까지 할 건데? 아무튼 너 또 건방지게 굴면서 하녀를 때리기만 해봐. 문밖에 있는 기사들은 아직도 너를 건드리기가 두려운 모양인데, 나는 아니야. 너의 예의가 방전될 때마다 내가 와서 충전해주겠어.”

나는 양손을 부딪쳐 탁탁 털며 말했다. 물론 그녀와 직접적인 접촉은 하지 않았기에 손에 묻은 건 없었지만, 그냥 기분 나쁘라고.

“큿... 내게 가해진 금제만 없었다면 너는 이미 한 줌의 잿더미로 변했을 것이다!”

용족이라 그런가?

티안브리스는 그동안 내가 겪었던 인간들과는 달리, 스태틱 쇼크를 연달아 맞고도 별로 기세가 꺾이지 않았다.

그녀는 고통스러워하기보다는 치욕스러워했다. 자기가 그렇게 개무시하고 학살하던 종족인 인간에게 붙잡혀, 역으로 자신이 무시당한다는 현실이 매우 치욕스러운 듯 보였다.

뭐 딱히 문제 될 건 없다. 그녀가 느끼는 감정이 고통이든 치욕이든 공포든 뭐든 간에, 나를 죽이고 싶다는 마음만 품으면 되니까.

“그래? 그거 이상하네... 너 마나를 쓸 수 있을 때도 나한테 졌잖아? 그래서 지금 이 모양 이 꼴이 된 거고.”

내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하자, 그녀는 즉각적으로 반발했다.

“그건 네놈이 협공을 가했기 때문이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인가? 비겁한 놈!”

“라고 비겁하게 수백 마리의 몬스터를 이끌고 왔던 티안브리스가 말했다.”

“......일대일 대결이었다면 네놈이 내게 상처 하나라도 냈을 성싶으냐?”

“라고 내게 상처 입고 기절했던 티안브리스가 말했다.”

“이익...! 금제만 없었다면 네놈은 내게─”

“라고 금제에 걸린 티안브리스가 말했다.”

“으...아아아아악!!! 악악악!!!”

화가 머리끝까지 난 모양인지, 그녀는 이성을 잃고 괴성을 내지르며 날뛰었다.

─우지끈! 와장창! 챙그랑!

방 안에 있는 모든 물건들을 때려 부수는 그녀의 모습을 보아하니, 이 정도면 빌드업은 충분할 것 같았다.

나는 광분하는 그녀를 뒤로하고 감옥을 빠져나왔다.

─드르륵....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니, 보초를 서고 있던 중년의 기사가 의아한 듯 물었다.

“이 광기 넘치는 비명소리는 대체 무엇인가? 소름이 절로 돋는군. 물건을 부수는 소리도 들리는 것 같은데... 용족이 왜 저러는 것이지?”

“아,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예절 주입의 사소한 부작용이라고나 할까요. 그건 그렇고, 혹시 에드윈 님이 어디 계신지 아십니까? 잠시 만나 봬야 할 일이 있는데.”

“도련님? 아마 집무실에 계실 걸세.”

“아, 감사합니다. 그럼 수고하세요.”

나는 가볍게 인사한 뒤, 바로 에드윈의 집무실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에게는 부탁할 게 있다. 내가 원거리에서도 타인의 꿈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는 하나, 성 밖이나 1층에서 지하 3층에 있는 사람의 꿈속으로 들어갈 수 있을 정도는 아니다.

그렇다고 티안브리스와 같은 방에서 잘 수도 없는 노릇이고, 지하 감옥 통로에서 자는 것도 좀 이상하다. 그래서 차라리 에드윈에게 티안브리스의 옆방을 하나 빌려달라고 할 생각이다.

─똑똑

1층에 있는 에드윈의 집무실에 도착해 방문을 두드리자, 안쪽에서 그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누구인가?”

“아, 저 엘입니다.”

“......엘? 들어와라.”

안으로 들어가니, 에드윈은 조금 의외라는 듯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수도에 있다고 들었는데, 언제 돌아온 거지? 여기에 있는 줄 알았으면 내 결혼식에 초대할 걸 그랬군.”

“예?? 결혼하셨습니까?”

“그래, 지난주에. 일단 앉지.”

평생 일만 할 것 같은 이미지였는데 할 건 다 하는군. 어쨌거나 나는 그가 권한 의자에 가서 앉으며 말했다.

“이야, 결혼이라니. 이거 축하드립니다. 연애를 하고 계신 줄은 전혀 몰랐네요.”

“네가 본 게 맞다. 정략결혼이니까.”

“.......”

남 얘기하듯 무심한 대답에 할 말을 잃었다.

“원래는 계획에 없던 일인데, 사정이 좀 생겨서 급하게 진행했다.”

“사정이요?”

“흐음... 외부에 알려져서 좋을 게 없는 얘기지만... 뭐, 카트카의 구원자인 자네한테는 해도 괜찮겠군.”

그는 얼굴을 찡그리며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나의 아버지께서 위독하시다. 그래서 동맹 강화를 위해 동부의 맹주인 시즈모어 공작의 여식과 급하게 혼인을 맺은 거지.”

“아....”

영지가 외부의 위협에 가장 취약할 때는 영주가 병상에 누워있거나 죽었을 때다.

병상에 누워있으면 제대로 정사를 돌볼 수 없으니 이건 뭐 당연한 거고.

영주가 죽었을 때는 후계자가 작위를 상속받겠으나, 잡음 없는 상속이라는 것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다른 형제가 불만을 가질 수도 있고, 내부적으로 파벌이 갈릴 수도 있다. 이런 경우에도 내부적인 결속력이 떨어지므로 외부의 위협에 취약해진다.

“자네도 아는지 모르겠지만 요즘 왕국 정세가 뒤숭숭해. 몇 달쯤 전부터 내전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은밀하게 돌고 있고, 얼마 전에는 1왕자가 시즈모어 공작을 찾아왔었다는군.”

내전? 몇 달 전부터 소문이 돈 거라면... 왕세자 자리를 두고 싸움이 벌어질 거라고들 예상한 건가?

아무튼 내전 얘기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1왕자 알베르트에 관한 얘기는 알 것 같았다.

“자신을 지지해달라고 요청하러 왔었나 보군요. 그리고 거절당했고요.”

내가 그렇게 말하니 에드윈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호오, 맞다. 속내를 밝히지 않고 두루뭉술하게 말하며 지지를 요청했다더군. 아마 왕세자로 지정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뜻이겠지.”

그거 아닌데. 그놈 역모를 일으킬 생각인데.

어쨌거나 에드윈의 정략결혼은 효과가 있는 모양이었다. 시즈모어 공작이 그런 얘기까지 술술 해준 걸 보면 말이지.

“그런데... 자네는 그걸 어떻게 알았지? 방문 목적뿐만 아니라 결과까지 짐작하다니.”

“저도 비슷한 요청을 받았었거든요.”

두 번이나 받았었다.

거짓 신탁과 지지 요청.

게다가 아카데미로 찾아와서는 동부와 남부의 공작이 자신을 지지해주지 않았다면서, 아예 지역 전체를 씹어댔었다.

“알베르트 왕자한테서? 역시 성자는 다르군그래. 동부에 와서도 공작만 찾고 돌아간 그 콧대 높은 1왕자께서 직접 부탁 다 하고.”

묘하게 가시가 돋친 듯한 말투였다.

나 말고 알베르트한테.

보아하니 에드윈은 1왕자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듯했기에, 나는 슬쩍 그를 떠보기로 했다.

“뭐, 저도 거절했습니다. 1왕자님은 좀... 아시죠? 아랫사람을 업신여기고 동부와 남부를 무시하는 경향이.......”

사실 이건 굉장히 위험한 발언이다.

무려 왕국의 왕자를 헐뜯는 거였으니까.

하지만 나는 티안브리스로부터 체스터 백작가의 도시인 카트카를 지켜내는 데에 지대한 공헌을 했고, 에드윈과도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상당한 신뢰를 구축한 사이다.

이 정도 일로 나를 고발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리고 그건 에드윈 역시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그는 미간을 좁히며 내게 동조했다.

“역시 자네도 그렇게 느끼고 있었군. 1왕자는 동부를 무슨 미개인처럼 취급한단 말이지. 국경을 수비해주고 있는 고마움도 모르고 말이야. 나의 아버지께서도 1왕자라면 치를 떠신다.”

이건 상당히 희소식이었다.

나도 1왕자에게 대적하기 위해서는 우군이 필요하던 참이었으니까. 알베르트가 왕좌를 차지하기 전에 최대한 많이 확보해둬야 한다.

“오오, 맞습니다! 어디 그것뿐입니까? 1왕자는 뭐든지 뇌물로 해결하려고 하더군요. 너무 탐욕스럽다고나 할까? 솔직히 왕의 재목으로는 조금 소심하더라도 2왕자님 쪽이 더.......”

“그렇지. 프란츠 왕자님은 성격이 유약하다는 점만 제외하면 왕으로서 큰 손색이 없어. 어차피 외세의 침입은 각 지역에서 먼저 막아내니 왕은 어진 사람이 되는 게 나아.”

좋군. 이 정도면 향후 체스터 백작가의 도움을 기대해 볼 만도 하겠어.

내가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때, 에드윈이 아차 싶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 내게 볼일이 있어 찾아온 사람을 붙들고 너무 정치적인 얘기만 했군. 그래, 날 찾아온 이유가 무엇인가?”

“흠흠, 별다른 건 아니고... 혹시 지하 감옥 한 칸을 내어주실 수 있습니까? 기왕이면 아주 깊숙한 곳으로요.”

지하 감옥은 3층이 끝이다.

즉, 3층을 달란 소리다.

“......감옥? 갑자기 거긴 왜?”

“아, 제가 최근에 공부 중인 마법이 하나 있는데, 이게 워낙 어려워서 집중이 잘 안 되네요. 그래서 쥐죽은 듯 고요한 지하 감옥이라면 좀 다를까 싶어서요.”

꿈에 관한 얘기를 사실대로 말할 수는 없으므로 대충 둘러댔다.

“공부 방식이 독특하군. 뭐, 그러도록 하지.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니까. 가장 깊은 곳은 이미 용족이 수감 되어 있으니... 그 옆방으로 괜찮겠나?”

“예, 괜찮습니다.”

“알겠다. 병사들에게 전달하도록 하지.”

***

그날 밤. 지하 감옥 3층.

나는 어둡고 비좁은 감방에서 티안브리스가 잠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진짜 으스스한 곳이군....’

티안브리스가 있는 방은 그녀의 마나 회복 속도를 높이기 위해 특급 여관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넓고 안락하게 개조되었지만, 내가 있는 곳은 진짜 날것 그대로의 감방이었다.

영혼마저 가둘 것만 같은 좁디좁은 감방의 벽면에는 누구인지 모를 죄수가 머리를 부딪혀 자해한 흔적으로 보이는 혈흔이 산재해 있었고, 송장을 치운 적이 있는 모양인지 좀비 비스무리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이러니까 지하 감옥이 던전으로 변하지.’

이딴 곳에서 죽으면 성불할 수 없을 것이 분명해 보였다.

아무튼 한시라도 빨리 떠나고 싶은 장소였기에, 나는 티안브리스가 어서 잠들길 기도했다. 자정이 다 된 시간이니, 머지않아 잠들 듯했다.

‘흐음, 오랜만인데 잘 되려나 모르겠네.’

마법을 얻어내기 위한 목적으로 누군가의 꿈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꽤 오랜만이었다. 앨리스에게서 용족의 고유 마법인 불사조를 습득할 때가 마지막이었으니까.

한때는 능력의 쿨타임이 돌 때마다 줄기차게 마법사의 꿈속으로 들어갔었지만, 어느 정도 성장을 마친 지금은 상급 이상의 마법이 아니면 별 의미가 없기에 자연스럽게 뜸해졌다.

오랜만이라 혹시 실력이 녹슬지 않았을까 하는 걱정도 들었으나, 나는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차피 마법의 습득 난이도는 꿈의 주인이 어떤 꿈을 꾸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지니까.

‘마법을 얻기 쉬운 꿈이면 좋겠는데.’

이를테면 카트카 공방전.

티안브리스가 그 당시의 꿈을 꾸고 있다면, 큰 힘을 들이지 않고도 죽을 수 있다. 꿈속에서 그녀를 찾아내기도 쉽고, 내가 그녀를 공격하는 것도, 그녀가 나를 공격하는 것에도 전혀 위화감이 없다.

반면에 티안브리스가 자기만 알고 있는 엉뚱한 장소를 배경으로 꿈을 꾸거나 어린 시절의 꿈을 꾼다면, 내 존재를 보는 것만으로도 부조화를 느끼고 꿈이 깨져버릴 수도 있다.

그리고 매우 중요한 과제가 하나 있는데,

그건 바로 ‘인페르노’를 유도해내는 것이다.

인페르노를 얻기 위해 그녀의 꿈속으로 들어가는 거니 당연한 소리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게 또 쉽지만은 않다. 내가 그동안 마법을 얻어 냈던 사람들과는 커다란 차이점이 하나 있기 때문에.

그녀는 인페르노를 실제로 써본 적이 없다.

꿈속에서 나를 만나자마자 친절하게 인페르노부터 갈겨 줄 가능성은 없다는 뜻이다. 나를 공격하려면 자신의 손에 익은 주력 마법들을 사용하지, 굳이 한 번도 써본 적 없는 마법으로 공격하지는 않을 것이다.

심지어 꿈의 배경 시기에 따라서는, 자기가 인페르노를 습득했다는 사실을 아예 자각조차 하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이 이번 일에서 당면한 가장 큰 과제라고 할 수 있겠다.

‘......? 오, 드디어 꿈을 꾸는군.’

그렇게 눈을 감고 이리저리 궁리하던 중, 벽 너머에 있는 티안브리스의 감방에서 누군가가 꿈을 꾸기 시작한 게 느껴졌다.

그 방에는 티안브리스밖에 없으니 당연히 지금 꿈을 꾸는 사람도 그녀일 터.

나는 즉시 꿈속으로 진입했다.

─화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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