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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속에서 마법을 훔치는 마법사-138화 (138/200)

거래 (1)

나는 거만하게 고개를 치켜들고 구울을 향해 눈을 부라리며 그녀의 곁을 스쳐 지나갔다.

─저벅. 저벅.

─사박. 사박.

서로의 위치가 교차할 때까지도 그녀는 내게 눈길을 주지 않았다. 그저 탁 풀린 눈으로 허공을 응시하며 걸어갈 뿐.

왜 나를 쳐다보지 않는 거지?

설마... 내 기세에 겁먹어서?

내게서 구울도 압도할 정도의 아우라가 풍겨 나오는 거야?

그런 과대망상을 하며 계속 걸어 나가고 있을 때, 문득 뒤에서 느껴지던 기척이 잠잠해졌다. 아마 구울이 걸음을 멈춘 것 같았다.

그리고 들려오는 싸늘한 목소리.

“왜 인사를 하지 않았지?”

아아, 정말 오랜만에 듣는 질문이었다.

과거에 구울 스승님께 강제로 예절을 주입받을 때는 저 소리가 너무나도 소름 끼쳤었으나, 이제 와서 다시 들어보니 정겨운 느낌이 드는 것 같기도 했다.

처음 이 질문을 받은 지로부터 상당히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나는 아직도 그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왜 인사를 하지 않았을까.

나는 그 이유에 대해 해명도 해보고,

사과도 해보고, 뒤늦게 인사도 해봤다.

하지만 그 어떤 해답을 제시해도, 엄격한 예절 스승 구울 님께서는 절대 정답으로 인정해주지 않으셨었다. 종국에는 극대노하여 나를 찢어 죽이려고 하셨었지.

그렇다면 또다시 나를 찾아온 이 난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

여전히 모르겠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것은,

“왜 나랑 눈을 마주쳤지?”

맞불.

맞불을 놓았다.

“......??”

구울의 얼굴이 미묘하게 꿈틀거림과 동시에, 저편에서 학부생들의 탄성이 터져 나왔다.

─오오...?!

─이, 이건 설마...?

구울은 얼굴에 떠올랐던 당황이라는 감정을 지우고 다시 질문했다.

“왜 인사를 하지 않았지?”

“왜 나랑 눈을 마주쳤지?”

나는 물러서지 않고 받아쳤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질문에는 질문이다.

이번에도 역시 학부생들이 마구 소리 지르며 호들갑을 떨었다.

─구, 구울과 메두사의 신경전이다!

─인사를 하지 않은 상대를 갈기갈기 찢어서 잡아먹는 구울과, 눈을 마주친 상대의 눈을 뽑아 잔혹하게 살해하는 메두사의 대결...!

─강사님은 인사를 하지 않았고, 구울은 눈을 마주쳤어! 그, 그럼 도대체 어떻게 되는 거지? 이건 양립할 수 없는 모순이야!

학부생들이 꽥꽥 내지르는 소리 때문에 정신이 사나웠으나, 그 소란스러움 속에서도 나와 구울은 서로를 빤히 응시하며 두 마리의 앵무새처럼 같은 말만 반복했다.

“왜 인사를 하지 않았지?”

“왜 나랑 눈을 마주쳤지?”

─서로 한 치의 물러섬이 없어!

─수, 숨이...! 숨이 안 쉬어져...!

─지켜보기 벅찬 애송이는 빠져있어!

손에 땀을 쥐고 구경하는 저 관중들 때문일까.

나와 구울의 대화는 알게 모르게 자존심 싸움으로 번지면서, 서로의 턴으로 넘어갈수록 목소리가 높아지는 기현상이 발생했다.

“왜 인사를 하지 않았지?”

“왜 나랑 눈을 마주쳤지??”

“왜 인사를 하지 않았지???”

“왜 나랑 눈을 마주쳤지????”

“왜 인사를 마주치지 않았지?????”

“왜 나랑 눈을... 엥?”

뭔가 이상한데?

“이봐요. 방금 대사 틀린 거 아닙니까?”

“.......”

놀랍게도 구울은 입을 꽉 다물며 침묵했다.

개체마다 성격이 다른 건가? 굉장히 신선한 반응이었다.

어쨌거나 병맛 자존심 배틀에서 승리한 나는, 신이 나서 그녀를 향해 이죽거렸다.

“내가 잘못 들었나? 말이 꼬이신 것 같은데. 원래 이쪽 말이 좀 서투른 편이신가?”

“.......”

“도대체 인사를 마주치지 않았다는 게 뭔 소리지? 이상하네. 혹시 구울도 고장이 나나요?”

“......적당히 하지? 죽여버리기 전에.”

“뭐, 뭐야. 미친.”

나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갑작스러운 살해 협박에 당황한 것은 아니고, 구울은 인사와 관련된 말과 죽기 직전에 배를 갈라달라고 하는 말 이외에는 할 수 없는 줄 알았기 때문에 당황한 거지만 사실 살해 협박도 당황스러웠다.

“이거 완전 어이없는 여자네. 어차피 저를 죽일 생각 아니었습니까?”

“내가 왜 인간을 죽이지?”

“왜냐니? 그놈의 인사 때문에 죽이겠지. 제가 오기 전까지만 해도 저기에 있는 학생들을 죽이려고 했었잖아요?”

나는 손가락으로 수강생들을 가리켰다.

“그리고 저놈. 저 갑옷 찌그러진 것 좀 보세요. 당신이 그런 거 아닙니까? 뭐, 저놈은 죽여도 딱히 상관없지만.”

“이익...! 다, 당신이 그러고도 강사야? 당연히 나도 구해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내 말이 들렸는지 빅터가 사색이 되어 소리쳤다.

물론 나도 저 녀석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모를까, 이렇게 같은 장소에 있는데 그냥 죽게 놔둘 생각까지는 없었다.

원래는 녀석의 스승인 길버트가 구하러 왔어야 훈훈한 그림이 나오겠지만, 길버트는 내기에서 패배하고 충격을 받은 모양인지 던전 입장을 거부했다.

아무튼 나는 빅터를 향해 턱짓한 뒤, 구울에게 따져 물었다.

“저거 보세요. 기겁하면서 살려달라고 하는 거 보이죠? 당신이 죽이려고 했으니까 저러는 거 아니야!”

“죽일 생각은 없었다.”

구울은 감정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뭔 소리야 진짜. 죽일 생각이 없는데 왜 저렇게 두들겨 팬 건데?”

“인사를 받아야 한다. 저 인간한테도, 너한테도.”

“와, 미치겠네.”

고구마를 스무 개는 집어먹은 듯한 답답함이 느껴졌다. 대화가 좀 통하나 싶었더니, 금세 또 인사 얘기로 되돌아왔다.

“그래, 그렇게나 원하신다면 한번 해드려야지. 안녕하세요!!! 이제 됐습니까?”

“너는 살려주지.”

“......뭐? 살려준다고? 당신이? 나를?”

좋은데?

나는 당연히 구울과 싸우면 이길 자신이 있었지만, 그렇다고 부득부득 싸울 필요는 없다. 이렇게 간단한 말 한마디로 갈등을 해결할 수 있다면 상당히 남는 장사라고 할 수 있겠다.

“뭐, 그럼 저도 당신의 눈을 안 뽑겠습니다.”

원래부터 그딴 잔혹한 짓까지 할 생각은 전혀 없었지만, 아무튼 봐준다는 뜻이다. 나와 학부생들을 건드리지 않는다면 굳이 죽이지 않아도 되니까.

어차피 저건 귀족도 아니라서 잡아봤자 능력치도 안 준다.

“야! 너희들도 빨리 인사해라! 왜 내가 가르쳐준 대로 안 해서 사람을 이렇게 번거롭게 만들어?”

내가 학부생들에게 인사를 종용하자, 그들은 억울해하며 항변했다.

“저, 저희는 이미 인사를 했는데요...?”

“뭐야? 그럼 왜 공격받은 건데?”

“이 녀석이 인사를 안 해서요!”

여섯 명의 마법학부생이 동시에 빅터를 지목했다.

“아오, 네 스승 길버트는 던전에서 살아남는 방법도 안 가르쳐주던? 뭘 멀뚱멀뚱 쳐다만 보고 있어? 빨리 인사해 인마!”

“내, 내가 왜 저런 정신 나간 여자에게 인사를 해야 합니까? 싫습니다!”

빅터는 목에 핏대를 세우며 바락바락 대들었다. 쓸데없이 자존심을 내세우는군.

그렇다면 저 녀석이 죽든 말든 나는 더 도와줄 생각이 없었다. 내가 죽이는 것도 아니고, 살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줬는데도 거절한 건 저놈이니까.

“그래? 그럼 뭐, 잘해봐라. 나는 내 수강생들을 데리고 나갈 테니까, 너는 여기에 남아서 오붓하게 예절을─”

“안녕하십니까!”

“......이놈이?”

목숨이 아깝긴 한 모양인지, 빅터는 다급하게 허리 숙여 인사했다.

어쨌거나 인사를 하긴 했으니, 나는 구울을 바라보며 제안했다.

“저놈도 이제 인사했으니까 웬만하면 보내주시죠? 뭐, 그래도 죽이겠다면 저도 가만히 있지는 않겠습니다.”

“인사했는데, 내가 왜 저 인간을 죽이지?”

그녀는 오히려 내게 반문했다.

그 모습을 보아하니, 죽일 의도 없이 단순히 인사를 받기 위해서 빅터를 공격했다는 그녀의 말은 사실인 모양이었다.

‘이걸 착하다고 해야 할지 싸이코 같다고 해야 할지....’

고대의 던전에서 만났던 구울에 비하면 확실히 유순한 편이었다. 그 구울은 딱 한 번만 인사 타이밍을 놓쳐도 사람을 갈기갈기 찢어버렸는데, 이 구울은 살생을 즐기지 않는 듯 보였다.

물론 인사에 미쳐있다는 점은 똑같았지만.

“죽이지 않겠다니 다행이긴 한데... 근데 왜 그렇게 인사에 광적으로 집착하는 겁니까? 생각할수록 이상하네.”

“네가 더 이상하다, 인간.”

“제가 뭐요?”

“너는 왜 눈에 집착하지?”

“아, 그거?”

별다른 이유가 있는 건 아니었다. 아니, 애당초 나는 눈에 집착하지도 않는다. 그냥 시빗거리 삼기에 그만한 소재가 없어서 자주 애용할 뿐.

눈을 왜 그렇게 떠? 눈 안 깔아? 눈빛이 음흉하네? 등등, 아무 근거 없이 생트집 잡기에 최적화된 소재가 바로 눈이다.

“그냥 제 마음입니다.”

“......너는 정말 내게 인사하지 않았다면 잡아먹었을 거다.”

구울이 이를 악물며 싸늘하게 말했지만, 나는 코웃음 치며 그녀의 곁을 지나갔다.

“뭔 소리야? 당신이야말로 장님이 될 뻔했어. 운 좋은 줄 알아. 얘들아! 가자!”

“.......”

왜인지 뒤통수가 따가운 듯한 느낌이었다.

***

나는 던전에 들어간 지 한나절도 지나지 않아 수강생들을 데리고 밖으로 빠져나왔다.

나오는 길에 지하 2층과 1층에서 길버트의 수강생 파티도 하나씩 만나서 다 데리고 나왔는데, 뿔뿔이 흩어졌다는 빅터의 파티원들은 찾지 못했다. 뭐, 그건 다른 교수들이 알아서 찾겠지.

아무튼 원래는 이 정도 규모의 던전이라면 최소 이틀 이상은 걸리는 게 일반적이겠지만, 피들스턴이 꼼꼼히 새겨둔 표식 덕분에 시간을 엄청나게 단축할 수 있었다.

“헛, 강사님!”

던전 입구 주변에서 서성이고 있던 오우 피들스턴이 우리를 발견하고 허겁지겁 달려왔다.

“벌써 구출해오신 겁니까?”

“아아, 그래. 네 표식 덕분이다.”

나는 그렇게 대답하며 주변을 둘러봤다.

회복 마법사를 포함한 아카데미 관계자 몇 명이 학생들이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었고, 길버트 채트먼은 근처에 있는 아름드리나무 밑동에 얼이 빠진 듯한 표정으로 멍하니 앉아있었다.

“그럼 그 인사받는 여자... 구울도 처치하신 겁니까?”

“아, 딱히 싸우지는 않았다. 이 녀석들도 너처럼 인사를 잘해서 별문제 없었거든.”

그러자 마법학부생 파티가 피들스턴을 둘러싸고는 자랑하듯 말했다.

“너는 못 봤지, 피들스턴?”

“메두사와 구울의 신경전을!”

“결국 구울이 기 싸움에서 밀려서 말이 꼬이더라니까? 고개를 빳빳하게 치켜든 강사님이 구울을 똑바로 노려보면서 왜 나랑 눈을 마주쳤냐고 따지시는데─”

“헛! 제, 젠장! 나도 그걸 봤어야 하는데!”

나는 별것도 아닌 일을 대단한 일인 것처럼 포장해서 떠들어대는 학부생들을 뒤로하고, 저편에 앉아있는 길버트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이봐요, 길버트 씨. 당신은 제자들이 돌아왔는데 쳐다도 안 봅니까?”

“......?”

멍하니 앉아있던 그는, 이내 정신을 차리고는 고개를 휙 돌리며 쌀쌀맞게 대답했다.

“저런 무능한 녀석들 따위는 꼴도 보기 싫소.”

“당신한테 배운 학생들인데요?”

“......지금 내가 무능하다고 말하고 싶은 거요? 내 가르침에는 문제가 없소! 저 녀석들의 그릇이 작아서 온전히 담지 못했을 뿐이지!”

“아, 예예. 그러시구나.”

자신의 제자를 구출하러 가지도 않았던 주제에 뭘 잘했다고 저렇게 큰소리를 쳐대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쨌거나 그들의 사제 관계가 어떤지는 내 관심사가 아니었으므로 그냥 어깨를 으쓱하며 대충 대답해줬다.

내 관심사는 이거다.

“어쨌든, 내기에서 졌으니 약속을 지키셔야죠?”

“.......”

길버트는 입을 꽉 다문 채 묵묵부답했다.

“어어? 뭐지? 고자가 되고 싶으신 건가?”

“그, 그건 아니오! 알겠소. 약속을 지키겠소.”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황급히 부정했다. 그리고는 치욕스러운 얼굴을 하며 무릎을 꿇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설마 한 번만 봐달라고 무릎 꿇고 사정하려는 건가? 어림도 없지.

“크윽...! 지금 나를 놀리는 거요? 당신의 가랑이 사이를 기어가려고 하고 있잖소!”

“미친! 내가 언제 그딴 추잡스러운 짓을 받고 싶다고 했습니까?”

“이, 이걸 원하는 게 아니었소?”

“전혀 아닙니다. 헛짓 말고 일어나세요.”

길버트는 당황과 의문이 뒤섞인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그럼 내게 무엇을 원하시오...?”

총알받이가 되어줘.

“아직은 때가 아니니 나중에 말씀드리겠습니다. 흐흐흐....”

***

내기에서 승리하고 열흘 후.

나는 사무실에 앉아서 머리를 쥐어뜯으며 고뇌하고 있었다.

“하아... 오늘은 대체 뭘 가르치지? 이제 더 알려줄 것도 없는데.”

벌써 강의를 맡은 지 보름이 넘었다.

전문적인 교육을 받지 못한 나로서는 밑천이 다 떨어졌다는 뜻이다. 실전 압축 강의도 하루 이틀이지, 이렇게 오랫동안 지속할 수는 없었다. 이제는 마땅히 더 가르칠 만한 게 남아있지 않은 상태였다.

“아오. 도대체 언제 돌아오는 거야? 이 미친 엘프 샊─”

─벌컥!

짜증스럽게 투덜대던 중, 사무실 문이 벌컥 열리며 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맞는 인간! 나는 가지고 왔다, 상급 마법서!”

“아, 아스왈드 씨?!”

그는 어깨에 보따리를 메고 있는 아스왈드였다.

나는 방금까지 아스왈드를 욕하고 있었기 때문에 뜨끔하며 자리에서 엉거주춤 일어났다.

“네, 나는 아스왈드입니다. 보고도 알 수 없습니까? 너의 막혀있는 귓구멍, 전이되었습니다, 눈구멍으로. 즉시 회복 마법사를 찾아가십시오. 이것은 긴급 상황.”

“아니, 이 사람이 오자마자 또 뭔 회복 마법사 타령이야.”

“나는 이해할 수 없다, 당신이 회복 마법사를 찾아가지 않는 이유. 머리에도 문제가 있습니까? 그렇다면 회복 마법사를 찾아가십시오. 이것도 긴급 상황.”

혹시 회복 마법사 바이럴 마케팅인가?

자꾸 권유하는 걸 보면, 커미션을 받아먹는 게 아닐까 싶기도 했다.

내가 눈을 가늘게 뜨고 의심스럽게 아스왈드를 쳐다보자, 그 역시 한쪽 눈썹을 치켜올리며 입을 열었다.

“맞는 인간! 멍청하게 쳐다보는 것을 중지하고 내용물을 꺼내십시오. 선택받은 자의 마법서, 꺼내는! 꺼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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