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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속에서 마법을 훔치는 마법사-132화 (132/200)

왕립 아카데미 (3)

나는 라이트닝 블래스트 마법서의 가격 협상을 위해, 괴짜 엘프 아스왈드와 함께 학생 회관의 카페테리아로 돌아왔다.

“마나를 다 썼더니 피곤해 죽겠네....”

“너는 판매한다, 마법서를, 피곤해 죽기 전에!”

“아오, 내가 죽으면 사인은 당신이야. 그 속 터지는 말투 때문에.”

연금술 교수이자 학장인 프레데릭 오베르가가 준 물약을 마셨지만, 그의 말마따나 가까스로 탈진만 면했을 뿐 온몸이 천근같이 무겁게 느껴졌다.

그래도 기절하지 않은 게 어디냐.

나중에 몇 개만 팔아달라고 부탁해봐야겠다.

나는 느릿느릿 머리를 쓸어넘기며 물었다.

“아무튼 피곤하니까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죠. 얼마나 주실 수 있습니까?”

“파는 사람이 부르는 것, 물건값은. 그것이 학계의 정설.”

아스왈드가 침착하게 대꾸했지만, 몸은 그렇지 못했다. 계속해서 다리의 꼬는 방향을 바꾸거나 이리저리 자세를 고치는 것이, 꽤 조바심이 나는 모양이었다.

어쨌거나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물건은 파는 사람이 가격표를 붙여놓아야 거래하기 편하긴 하다. 문제는 내가 이 마법의 가격이 얼마나 되는지를 짐작조차 못 한다는 거지만.

“흐음. 아무래도 금화로 거래하는 게 간편하겠죠? 이런 걸 묻기는 실례지만... 아스왈드 씨는 모아두신 금화가 좀 있는 편이십니까?”

“당연히 있다, 나의 사무실에, 20골드.”

“장난하냐!!”

나는 당당하게 대답하는 아스왈드의 얼굴에 주먹을 꽂아 넣고 싶은 충동을 억눌러야만 했다.

20골드?

하급 마법서 정도나 겨우 살 수 있는 돈이다.

“아니, 이 사람 농담이 지나치시네.”

“?”

“뭘 얼굴에 물음표를 띄우고 있어? 당장 모험가 길드로 달려가서 일주일만 일해도 그거보단 더 벌겠네. 교수로서 번 돈은 다 어떡하셨는데요?”

“송금하였습니다, 엘프의 숲으로, 동족을 위해.”

아, 왜 또 이럴 때는 착한 건데!

한결같이 까칠한 녀석이라면 나도 마음 편하게 똑같이 대해줄 텐데, 어떨 때는 다정하고 어떨 때는 징글징글하고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는 녀석이다.

그는 뻔뻔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당신의 마법, 감사하겠습니다, 20골드에 허락해주면.”

“......? 이보세요, 아스왈드 씨. 당신에겐 양심도 없습니까? 20골드에 팔 바에는 차라리 땔감으로 쓰겠습니다. 그 돈으로는 당신 통역기나 고쳐!”

“쳇.”

아무래도 금화로는 안 될 것 같았다.

이럴 땐 역시 현물이지. 애당초 이걸 팔아서 받은 돈으로 상급 마법서를 구매할 계획이었으니, 그걸 받을 수만 있다면 돈은 크게 상관없었다.

“그럼 혹시 전격 계열의 상급 마법서를 가지고 있다거나 구해오실 수 있습니까? 상급 마법서 플러스알파에도 팔겠습니다. 알파는 금화도 좋고 아이템도 좋고 뭐든 좋습니다만, 상급 마법서는 무조건 포함되어야 합니다.”

“나는 가지고 있지 않다, 상급 마법서.”

“하아... 왜 이렇게 성의가 없으시지? 이 마법이 필요 없으신 건가?”

“저는 필요합니다, 그 마법이, 애인보다 더.”

......이거 자기 아쉬울 때만 존댓말을 섞어 쓰는 것 같은데?

아무튼 이번에는 다른 조건을 제시해보기로 했다.

“가지고 있는 상급 마법서가 없으시다면... 다룰 수 있는 상급 마법은 있으십니까?”

아스왈드가 이미 이전에 배워둔 상급 마법이 있다면, 그의 꿈속으로 들어가서 습득을 노려볼 수도 있다.

물론 이 정도로 강력하고 지위가 높은 마법사로부터 공격을 유도해내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수배범처럼 붙잡아서 고문할 수도 없고, 꿈속에서조차 나를 죽이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현실에서 반감을 사는 것도 위험하니까.

역시 마법서를 통해서 배우는 게 편하긴 한데, 뭐 어쩔 수 없지.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라도 씹어야지, 별수 있겠는가.

“나는 배우지 않았다, 상급 마법, 아직.”

“......예?”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상급 마법을 아직 안 배웠다고?

“너의 귓구멍, 문제가 있는. 즉시 회복 마법사를 찾아가십시오. 이것은 긴급 상황.”

“아니, 이건 또 무슨 소리야. 명색이 왕립 아카데미 교수라는 사람이 상급 마법 하나 못 다룬다고? 당신 낙하산이죠?”

“강아지!! 나는 마법 교수 아닙니다! 정령학 교수입니다! 강아지! 강아지!”

딱히 상급 마법을 배울 필요가 없었다는 뜻인가? 하긴, 그런 집채만 한 정령을 소환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웬만한 일은 다 해결할 수 있었을 테지.

“듣고 보니 그건 그러네? 에잇, 나도 몰라!”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돈도 없고, 마법서도 없고, 마법도 없고.

아무것도 없으면서 계속 강아지라고 소리만 지르는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문맥상 강아지는 ‘개새끼’ 또는 ‘개자식’ 따위를 의미하는 게 분명했다.

“강아지! 강아지!”

“강아지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당신한테 안 팔아! 차라리 멀더라도 황색 마탑에 가서 제값 받고 팔고 말지.”

내가 자리를 뜨려고 하자, 신나게 강아지를 연호하던 아스왈드가 돌연 저자세로 태도를 바꿨다.

“선생님, 착석을 요청드리는, 제발.”

그는 나를 따라 일어나려다가 엉거주춤한 자세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말을 이었다.

“저는 갖고 싶습니다, 선생님의 마법! 나의 어머니도 기뻐하실 것입니다.”

“가진 거라고는 20골드뿐이라면서요? 그 가격에는 죽어도 안 팝니다. 수고하세요.”

“기다리십시오! 나는 동료 교수에게 다녀옵니다. 구해올 것입니다, 상급 마법서와 더러운 돈.”

다른 교수한테서 구해온다고?

진작 이렇게 좀 성의를 보이지.

“흐음... 그럼 그렇게 해보실래요? 저는 그동안 저쪽 학생 휴게실에서 눈 좀 붙이고 있을 테니.”

“네, 당신은 강아지 아닙니다. 취소.”

아스왈드는 그렇게 말하며 쏜살같이 달려 나갔다.

“오... 진짜 날렵하네.”

엘프라서 그런지 단순히 빠르다기보다는 바람처럼 가볍게 날렵한 느낌이 있었다. 사뿐사뿐하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나는 그가 성공적인 대출을 해오길 바라며, 학생 휴게실의 소파에 앉아서 잠시 눈을 붙였다.

***

“......보시게.”

아득하게 들려오는 목소리.

“이보게, 성자. 잠깐만 일어나보시게.”

“......?”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떠보니, 아까 내게 탈진 방지 물약을 줬던 흰 수염의 노인이 옆에서 나를 깨우고 있었다.

“아, 오베르가 학장님. 무슨 일로 저를...?”

나는 몸을 일으키고 눈을 비비며 물었다.

잠들고 나서 벌써 시간이 제법 지난 모양인지, 바깥은 어느새 해가 저물어가고 있었다.

“자고 있는데 깨워서 미안하네만, 자네 혹시 아스왈드 교수를 봤나?”

“......예? 아까 봤죠. 학장님도 같이 계셨었잖아요?”

내가 잠이 덜 깬건가?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지?

“그 이후를 말하는 걸세.”

“아... 마법을 보여준 다음이요? 저쪽 카페에서 거래에 관한 대화를 좀 하다가... 아스왈드 씨가 동료 교수에게서 뭐 좀 빌려오겠다고 뛰쳐나간 뒤로는 못 봤습니다.”

내 설명을 들은 오베르가 학장의 얼굴에 근심이 서렸다.

“허어, 그렇군.......”

“왜 그러십니까?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아무래도 그 괴짜 녀석이 무단으로 근무지를 이탈한 것 같네.”

“네? 근무지 이탈이요?”

그게 왜 문제라는 건지 선뜻 이해하기 어려웠다. 여기가 군대도 아니고, 강의가 없으면 잠시 아카데미 밖으로 나갈 수도 있는 거 아닌가.

내가 고개를 갸웃하며 되묻자, 오베르가가 넌덜머리 난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으며 제반 사정을 설명했다.

“아까 그 녀석이 갑자기 내 사무실로 쳐들어왔다네. 그리고는 대뜸 전격 계열의 상급 마법서를 내놓으라고 생떼를 부리는 것이 아니겠나?”

“.......”

“하지만 나에게 그런 마법서가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자네도 알다시피 나는 연금술사인데 말이야. 그래서 관련학과의 교수를 찾아가 보라고 일렀네만, 이미 전부 들렀다가 마지막으로 나를 찾은 거니 당장 마법서를 내놓으라고 하더군.”

“그, 그렇군요....”

이 정신 나간 엘프 같으니라고!

딱히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왠지 내가 잘못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아스왈드가 동료에게 정중하게 부탁하러 가는 줄 알았지, 이렇게 날강도 같은 짓을 할 줄은 몰랐다.

“그렇다고 해서 없는 마법서를 줄 수도 없지 않은가? 하여 거절했더니만 소리를 버럭버럭 지르더군. 강아지! 라고 말이야.”

“이, 이런 고얀 녀석을 봤나...! 감히 학장님께 그런 불량한 단어를 사용하다니?”

나는 괜히 죄책감이 느껴져서 학장의 편을 들었다. 물론 탈진 방지 물약을 얻어내기 위한 호감도 작업도 겸해서.

“허허, 그건 문제 될 것 없네. 나이로 따지면 아스왈드가 나보다 연장자거든. 문제는 그 녀석이 근무지를 이탈했다는 거지.”

“뭐, 금방 돌아오지 않겠습니까?”

“글쎄... 상급 마법서를 구하러 간다고 말하며 내 사무실에서 뛰쳐나갔는데, 언제 돌아올지는 물론이고 어디로 갔는지도 모르겠군.”

아, 그래서 문제라고 한 건가.

“만약 엘프의 숲을 향해 간 거라면 돌아오기까지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릴 터인데... 당장 내일 있을 강의가 걱정이로군. 아스왈드가 맡은 강의는 한두 개가 아닌.......”

심각한 얼굴로 말하던 오베르가는 돌연 뒷말을 흐리더니 물끄러미 나를 응시했다.

“......?”

그는 무언가 생각에 잠긴 듯 한동안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없이 나를 바라보다가, 이내 다시 입을 열었다.

“자네, 혹시 아스왈드를 대신해서 잠시만 강의를 맡아줄 수 있겠나?”

“네? 그 엘프는 정령학 교수 아닙니까? 저는 정령을 다룰 줄 모르는데요.”

“그는 그것만 담당하는 게 아니야. 실전 격투도 가르치고 있지. 몬스터나 사람과 싸우는 법 말일세.”

실전 격투 강의라면... 아까 봤던 그거?

그냥 애들을 합법적으로 두들겨 팰 뿐이던데.

“마침 자네는 노련한 모험가이자 검증된 용병이 아니던가? 몬스터나 사람 할 것 없이 두루 싸워본 경험이 많을 테니. 아주 이상적인 강사라고 생각되는데.”

“아, 근데 저는 누굴 가르칠 만한 수준이 아닙니다. 체계적으로 배운 적도 없고요. 그냥 늘 임기응변식으로 싸운 거라서....”

“허허,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실전 격투가 아니겠는가? 당장 내일 강의를 담당할 사람이 없어서 그러니 일단 하루만이라도 맡아주게나. 내 부탁 좀 함세.”

오베르가 학장이 간곡하게 요청했다.

‘흐음. 괜찮을 것 같기도 한데....’

아스왈드가 일거리를 내팽개치고 사라진 데에 내 탓이 아예 없다고 할 수는 없었다. 어차피 그 괴짜가 상급 마법서를 구해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니, 그동안 땜빵으로 강사 노릇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했다.

그 엘프가 가르치던 모습을 생각하면, 솔직히 실전 격투 강의라는 게 그렇게 어려울 것 같지도 않았다.

그리고 1왕자가 왕이 됐을 때 그에게 반기를 들기 위해서는 미리 힘 있는 자들과 친분을 쌓아둘 필요가 있었는데, 인맥을 넓히기에 이곳 왕립 아카데미만큼 적합한 장소가 또 없다.

교수진이야 뭐 말할 것도 없고, 학생들조차도 어지간하면 다 귀족 집안 출신이다. 왕국의 수도로 유학을 보낼 정도라면, 적어도 빌빌대는 가문은 아닐 것이다. 돈도 좀 있고 힘도 좀 있는 가문이겠지.

“......도와주겠나? 자네만 괜찮다면 내 당장 총장님을 찾아가서 말씀드리겠네. 명예 성자를 외부 강사로 임시 채용하겠다고 말일세.”

“예, 뭐. 며칠 정도라면야....”

오베르가 학장의 안색이 대번에 환해졌다.

“고맙네! 조교들을 풀어서 아스왈드를 찾게 시킬 것이니, 그를 찾을 때까지만 수고 좀 해주게나. 보수는 아스왈드가 받던 것과 똑같이 지급해줌세.”

“아, 보수는 아무래도 상관없습니다만... 혹시 보수 대신 아까 제게 주셨던 물약을 몇 병만 더 받을 수 있을까요?”

“탈진 방지 물약 말인가? 흠....”

그는 곤란하다는 듯 수염을 쓸어내렸다.

설마 엄청나게 비싼 물약인가?

교수의 보수로는 꿈도 못 꾸는?

“시제품으로 만든 것이라 남아있는 게 없네만... 좋아. 자네가 원한다니 내 몇 병 더 제조해보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허허, 감사는 무슨. 내가 고맙지. 아무튼 내일 오전에 서쪽에 있는 교수회관으로 오시게나. 강의를 맡는 동안 사용할 임시 사무실과 조교를 붙여주겠네.”

“네, 알겠습니다.”

사무실과 조교까지 마련해준다고 하니, 왠지 조금 긴장되는 느낌이었다.

‘실전 격투라... 대체 어떻게 가르치지?’

평소 내가 싸워왔던 대로 강의하면 되려나?

나도 잘 모르겠다. 뭐, 여차하면 아스왈드처럼 두들겨 패면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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