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꿈속에서 마법을 훔치는 마법사-122화 (122/200)

영지전의 결말 (4)

─휘오오오!

거센 눈보라가 이 일대를 휩쓸며 모든 것을 얼려 나갔다.

그리고 나는 마치 내가 블리자드에 휘말리기라도 한 것처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조건을 달성해 능력치가 오릅니다!]

[조건을 달성해 능력치가 오릅니다!]

[조건을 달성해 능력치가 오릅니다!]

[조건을 달성해 능력치가 오릅니다!]

.......

.......

병사 하나가 얼어 죽을 때마다 메시지가 하나씩 떠올랐기 때문이다.

‘미, 미친... 적당히 해! 앞이 안 보이잖아!’

이건 심지어 눈을 감아도 보이는 것이기 때문에, 어떻게 해도 떨쳐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시스템이 트롤만 하는 건 아니었다.

메시지대로 능력치가 오르고 있었기에, 블리자드를 사용 중임에도 불구하고 마나가 별로 달지 않는, 기적과도 같은 상황이 일어나고 있었다. 시스템이 밑 빠진 독에 물을 콸콸 부어주고 있는 것이다.

어쨌거나 시간이 조금 흐르자, 메시지의 발생 빈도가 대폭 줄어들었다. 죽을 사람은 이제 거의 다 죽었기 때문이다.

‘......몇 놈 안 남았군.’

적들은 오와 열을 갖춰서 빽빽하게 도열해있었기 때문에, 블리자드의 효율이 극대화됐다. 일반 보병은 너 나 할 것 없이 싹 다 얼어있었다.

지금까지 살아있는 사람은 쉴드가 가능한 소수의 마법사들, 그리고 직접 몸으로 견뎌내거나 눈보라의 범위를 피해 달아난 다섯 명의 기사들. 마지막으로 브룩스 자작까지.

브룩스 자작은 눈보라가 닿지 않는 곳에서 몸을 덜덜 떨고 있었는데, 자력으로 거기까지 탈출했다는 건 조금 의외였다.

귀족은 혈통 때문에 웬만하면 다들 한가락씩 한다고 에드윈 체스터가 그랬었는데, 그의 말마따나 브룩스 자작도 기사에 준하는 실력 정도는 갖추고 있는 모양이었다.

아무튼 이제 더 얼어 죽을 사람도 없었고, 그로 인해 마나가 소모만 되고 있었기에 블리자드를 중단했다.

“이야, 날씨가 많이 춥다. 그죠?”

“크...으...으... 네, 네, 네노옴....”

나는 브룩스 자작에게 가벼운 안부 인사를 전했으나, 그는 몸을 사시나무 떨듯 하느라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다이아몬드 스텝을 밟는 것처럼 이상한 움직임을 보이며 주변을 왔다 갔다 거리고 있었는데, 추워서 몸을 녹이기 위해 그러는 건지 아니면 콜링 썬더를 의식해서 그런 건지는 알 수 없었다.

“말도 제대로 못 할 정도로 추운 모양인데, 내가 몸을 녹여줄게!”

나는 이성을 유혹할 때나 쓰일 법한 말을 하며 마법을 캐스팅했다.

─화르르륵!

[금일 사용 가능한 ‘플레임 오브’ - 2회]

맹렬히 회전하는 불덩어리가 브룩스 자작을 향해 날아갔다.

그러나 브룩스 자작은 제법 날렵한 몸놀림으로 그것을 피해낸 뒤, 자신의 부하들을 향해 버럭 소리쳤다.

“다들 가만히 서서 무얼 하고 있는 것이냐! 어서 나를 보호하고, 저놈을 공격해라!”

모순되는 명령이었지만 그들은 두 개의 그룹으로 나누어져 역할을 수행했다.

다섯 명의 기사는 브룩스 자작의 앞으로 가서 그를 보호하듯 진형을 갖췄고, 마법사들은 나를 향해 마법을 날리기 시작했다.

─슈우웅! 사라락! 쐐애액! 사사사삭!

제법 많은 숫자의 마법들. 개중에는 중급 마법인 오브도 하나 섞여 있었다. 나는 즉시 라이트닝 아머를 전개했다.

파직! 파직! 그들의 마법은 내 몸에 둘린 전기의 갑옷에 닿자 스파크를 일으키며 소멸했다.

한 차례의 마법 폭격을 모두 막아낸 뒤, 마법사들을 살폈다. 적 마법사의 수는 열 명이 조금 넘었는데, 그중 다섯 명은 용병이었고 나머지는 페인 자작가에서 빌려온 마법사인 듯 보였다.

나는 그들을 향해 근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용병들은 가라. 살려 보내주겠다.”

“......?”

“가, 갑자기 무, 무슨...?”

블리자드의 여운이 남아있는 모양인지, 그들은 여전히 덜덜 떨면서 어리둥절했다.

“너희들도 중부에서 활동하는 용병이라면 들어봤겠지. 눈을 마주친 상대는 반드시 잔혹하게 살해한다는 용병에 대해서.”

“......!”

“서, 설마 당신이 바로 그...?”

페인 자작가의 마법사들은 금시초문이라는 듯 아무런 반응이 없었지만, 용병 마법사들은 즉시 알아듣고 경악하며 눈을 부릅떴다.

“그렇다. 그러니 가라. 이게 마지막 기회다.”

내가 이러는 이유는 어쭙잖게 겉멋을 부리기 위해서도, 동종업계 종사자에 대한 측은지심도 아니었다.

그냥 용병은 죽여봤자 능력치를 안 줘서다.

어쨌거나 허접한 마법이라도 무방비 상태로 맞으면 위험하다. 적 마법사는 적을수록 좋고, 안 싸우고도 숫자를 줄일 수 있으면 더 좋다. 아직 기사가 다섯 명이나 남아있는 상황. 용병들은 그냥 보내주는 게 낫다.

“나, 나는 이만 빠지겠소.”

“저도 마, 마찬가지입니다.”

사색이 된 용병들이 슬금슬금 뒷걸음질 치자, 브룩스 자작이 분노하여 소리쳤다.

“이 버러지 같은 새끼들이! 전투 도중 계약을 파기하겠다는 것이냐? 너희들이 그러고도 용병이냐는 말이다!”

“저, 저는 눈알이 뽑혀서 죽기는 싫습니다.”

“계약 파기로 인한 위약금은 길드에 청구하시오. 만약 그때까지 당신이 살아있다면 말이오!”

용병들은 그대로 줄행랑을 쳐버렸다.

브룩스 자작은 허망한 얼굴로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곧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부들거렸다.

“이익...! 네놈... 세 치 혀를 놀려 농간을 부리다니. 비열하기 짝이 없구나!”

“뭔 소리야? 이거 완전 어이없는 놈이네. 네가 레이첼 하나 잡겠다고 수백 명을 이끌고 온 건 깨끗하고? 아, 물론 지금은 몇 명 안 남았지만.”

나는 여유로운 척 거만하게 말했지만, 솔직히 좀 쫄렸다.

기사가 무려 다섯이다. 거기에 기사급으로 추정되는 브룩스 자작과 마법사도 몇 명 남아있다. 분명, 쉽지만은 않은 상황.

게다가 브룩스 자작과 그의 호위 기사로 보이는 자는 계속해서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는데, 아직까지 저러는 걸 보면 콜링 썬더를 피하기 위해서가 분명해 보였다.

다만, 페인 자작가에서 파견한 기사로 보이는 자들은 움직이지 않고 서 있었다. 아마도 저들은 내 전투 스타일을 모르고 있는 듯했다.

‘기사들과 싸우며 마법사까지 상대하기는 좀 벅찬데....... 아.’

생각해보니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내 뒤에는 레이첼이 있었고, 그녀를 지키는 중년의 기사도 한 명 있었다.

“레이첼 님.”

나는 뒤를 돌아보며 그녀에게 물었다.

“적 마법사들을 맡아주실 수 있겠습니까?”

“네...! 맡겨만 주세요.”

“좋습니다. 옆에 계신 기사분은 전투에 참여하지 마시고 레이첼 님을 보호해주세요.”

“그러리다.”

괜히 도와준답시고 아군 기사가 적 기사와 뒤엉켜서 싸우면 오히려 마법을 쓰기 어려워진다. 레이첼도 상당한 실력자이니, 차라리 그녀를 지키도록 하는 게 나을 것이다.

“......그럼 시작하자고.”

스릉- 나는 검을 뽑아 들었다.

그러자 적 기사들 역시 긴장한 얼굴로 검을 고쳐잡으며 전투태세를 갖췄다.

그와 동시에 브룩스 자작이 기겁하며, 제자리에 서 있는 페인 자작가의 기사들에게 다급히 소리쳤다.

“다, 다들 속지 마라! 당장 움직여! 저놈은 검으로 싸우는 척하면서 마법을─”

─번쩍! 번쩍! 번쩍! 번쩍!

─꽈릉! 꽈릉! 꽈릉! 꽈릉!

하늘에서 벼락이 네 번 연달아 내리꽂혔다.

[금일 사용 가능한 ‘콜링 썬더’ - 2회]

“커헉!”

“끄으으....”

하지만 동시에 내리친 것은 아니었다.

제자리에 서 있는 네 명의 기사를 노리고 썼으나, 순차적으로 떨어진 벼락은 오직 두 명의 기사만을 바닥에 눕혔다.

이제 남은 적은 브룩스 자작과 그의 호위 기사, 그리고 페인가의 기사 둘. 총 네 명이다.

“벼락이 또 떨어지기 전에 모두 달려들어!”

브룩스 자작은 그렇게 외쳤으나, 정작 자신은 명령만 할 뿐 내게 달려들지 않고 기사들만 내보냈다.

세 명의 기사가 나를 향해 쏜살같이 쇄도했다. 화륵! 나는 즉시 검에 마나를 불어 넣고, 육체 강화 마법을 사용하며 그들을 향해 달려 나갔다.

“죽어라!”

“동료의 복수를 해주마!”

“흐아아압!”

그들의 고함과 함께 1:3 전투가 시작됐다.

기사가 휘두르는 세 자루의 검이 나를 향해 날아들었다. 하나같이 오러가 실린 강력한 검격. 하지만 내 검으로 그것을 전부 막아낼 수는 없었다.

─카앙! 캉! 파직! 카앙!

정신 없이 그들의 공격을 받아내는 와중에, 내가 미처 막아내지 못한 검격은 전기의 갑옷이 대신 막아냈다.

그러나 검만 가지고 기사 셋을 상대할 수는 없는 노릇. 나는 혼란한 상황 속에서도 마법을 캐스팅했다.

치지지직! 내 왼손에서 푸른 빛을 띤 전류가 뿜어져 나갔다. 그것은 정면에서 나를 공격하려던 기사에게 적중했고, 곧 좌우로 갈라지며 다른 기사에게도 뻗어나갔다.

“크으윽...!”

체인 라이트닝을 정통으로 맞은 기사가 비틀거리며 뒤로 몇 발자국 물러났다. 나는 그대로 전진해 그의 목을 노리고 검을 휘둘렀다.

“어딜!”

채앵! 내 검은 또 다른 기사가 내지른 검에 의해 막혀버렸다.

‘역시 체인 라이트닝 정도로는 역부족인가.’

빠르게 세 명 모두에게 맞힐 수 있는 마법이라 선택했지만, 그래봤자 하급 마법. 정통으로 맞은 기사만 비틀거릴 뿐, 잔 줄기에 맞은 자들은 큰 타격이 없어 보였다.

“이 자식이... 감히!”

동료들이 시간을 벌어주는 동안, 비틀거렸던 기사마저도 몸을 추스르고 다시 전투에 합류했다.

휘이잉. 격렬한 싸움 중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와 머리카락과 망토를 펄럭였다. 아마 레이첼도 마법사와의 전투를 시작한 듯했는데, 거기까지 신경 쓸 여력은 조금도 없었다.

─카앙! 챙! 파직!

기사를 동시에 셋이나 상대하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었다. 나는 그들의 매서운 공격을 막아내는 데 급급했다. 화르르륵! 간혹 내 머리 위에 마법이 생성되면, 그들은 재빠르게 흩어지며 거리를 벌렸다.

이게 전조가 있는 마법의 단점이다. 콜링 썬더처럼 갑작스럽게 떨어진다면 모를까, 이렇게 눈에 훤히 보이는 마법은 기사쯤 되는 자들이라면 즉시 반응한다.

“크하핫! 아무래도 네놈의 명성은 과대평가 된 모양이구나! 쩔쩔매고 있지 않느냐!”

뒤편에서 싸움을 관전하고 있던 브룩스 자작은, 내가 고전하는 듯 보이자 의기양양하게 소리쳤다.

“이거 나도 몸이 근질거려서 안 되겠군. 네놈의 목은 내가 직접 쳐주마!”

불리할 때는 코빼기도 안 비추더니, 유리한 상황에 놓이자 그제야 브룩스 자작도 내게 달려들었다.

얌체 같은 놈이었지만 어쨌거나 나는 죽을 맛이었다. 세 명도 벅찼는데 거기에 기사급인 브룩스 자작까지 추가되자, 내게 닿는 공격이 확연하게 늘어났다.

파직! 파직! 내 몸은 한여름의 전기 모기장처럼 쉴 새 없이 스파크를 튀며 점멸했다. 아직까지는 라이트닝 아머가 그들의 공격을 막아주고 있었지만, 언제까지고 그러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크하하! 무얼 하고 있나? 어서 내 눈알을 뽑아가지 않고?”

브룩스 자작이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이죽거렸다.

이 상태가 지속된다면 내가 당하는 건 시간문제. 뭔가 반전이 필요했다.

‘크윽...! 남아있는 콜링 썬더를 전부 써야 하나.’

눈에 빤히 보이는 마법은 피할 공산이 크다. 하지만 오늘 사용 가능한 콜링 썬더는 2회. 적은 네 명이지만, 벼락은 두 번밖에 내리칠 수 없다.

‘......잠깐. 벼락?’

문득 어떤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나에게는 또 다른 벼락이 하나 있었다.

그것도 콜링 썬더보다 훨씬 강력한 벼락이.

나는 즉시 그 마법을 캐스팅했다.

“헉.”

잠시 휘청거릴 정도로 엄청난 양의 마나가 순식간에 몸에서 빠져나갔다.

그와 동시에, 지면에 그림자가 서서히 드리우기 시작했다.

“왜? 더는 못 버티겠느냐? 크크.”

하늘에 먹구름이 몰려들고 있었으나, 브룩스 자작은 그 사실을 알아채지 못하고 나를 조롱하는 데에 여념이 없었다.

먹구름은 하나의 지점, 정확히는 내가 전투를 벌이고 있는 지면의 하늘로 몰려들었다. 이윽고 거대해진 먹구름에서 간헐적인 우렛소리가 울려 퍼졌다.

─쿠릉... 쿠르릉...

[금일 사용 가능한 ‘일렉트리컬 익스플로젼’ - 1회]

“......?”

“가, 갑자기 웬 먹구름이...?”

갑작스럽게 들려오는 하늘의 울음소리에, 브룩스 자작과 기사들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며 당황했다.

먹구름이 품은 우레는 점점 격렬해져 갔다. 쿠르릉! 꽈릉! 천둥소리는 한층 더 거세졌고, 짙은 회색빛의 구름은 방전에 의해 번쩍거렸다.

이윽고 잠시 하늘을 바라보고 있던 브룩스 자작이, 아차 싶은 얼굴로 비명을 지르듯 소리쳤다.

“모, 모두 피해라! 벼락이 떨어질─”

─꽈르르르르르르릉!!!

천지를 뒤흔드는 천둥소리와 함께, 먹구름에서 새하얀 빛줄기가 수직으로 내리꽂혔다.

그것은 벼락이라기보다는 광선에 가까웠고,

그대로 브룩스 자작에게 직격 했다.

“으아아아아악!!”

브룩스 자작이 처절한 비명을 내질렀다.

그리고 곧, 그의 몸이 하얗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윽... 그그극....”

기괴한 신음을 흘리며 비틀거리고 있는 브룩스 자작. 그의 몸에서 새어 나오는 새하얀 빛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밝아져 갔고, 이윽고 제대로 쳐다보기 힘들 정도로 눈부신 빛을 발산했다.

저러다 폭발하는 게 아닐까 싶은 순간,

진짜로 폭발했다.

─번쩍! 파츠츠츠츠츠!

섬광과 함께 그의 몸에서 폭발이 일어나며 수백, 수천 갈래의 전류 줄기가 일거에 뿜어져 나왔다.

“끄어어....”

“커헉!”

브룩스 자작을 중심으로, 마치 고슴도치의 가시처럼 사방팔방으로 뻗어나가는 무수한 전류 갈래. 이것은 도무지 피할래야 피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결국 근처에 있던 세 명의 기사마저 단숨에 감전되어 바닥에 털썩, 쓰러졌다.

[조건을 달성해 능력치가 오릅니다!]

[조건을 달성해 능력치가 오릅니다!]

.......

또 한 번 메시지가 내 눈을 어지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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