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꿈속에서 마법을 훔치는 마법사-121화 (121/200)

영지전의 결말 (3)

나는 조셉에게 수상한 병사의 존재에 대해 전해 듣자마자, 브룩스 자작령의 도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달그락달그락

정황상 그들은 브룩스 자작이 처가에서 빌려왔다는 병사일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였다. 그게 아니고서야 뚜렷한 이유 없이 다른 영주의 땅을 활보할 리가 없으니까.

‘병사들이 산속에서 나무를 패고 있었다고 했었나? 그럼 이미 도착한 지 시간이 좀 지났다는 소리인데....’

눈이 내릴 정도로 추운 날씨이긴 하나, 하룻밤 정도는 어렵지 않게 버틸 수 있다. 하지만 땔감을 찾고 있었다는 것은, 그보다 오랜 시간을 주둔하고 있다는 걸 의미한다.

왜일까.

왜 공격하지 않고 간만 보고 있는 걸까.

왜 들통날 위험이 있는데도 오래도록 주둔하며, 병사가 땔감을 구하러 돌아다니게 놔두는 걸까.

실제로 그러다가 조셉에게 들키지 않았는가?

브룩스 자작의 속내를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직접 만나본 적이 없으니 어떤 사람인지 짐작하기가 어렵네.’

어떤 성향을 지녔는지 알면 속내를 짐작이라도 해볼 수 있겠으나, 내가 대면해본 브룩스 가문의 사람은 말콤 뿐이었다.

말콤 브룩스는 영지전에서 기사를 용병으로 위장시켜 투입할 만큼 아주 교활하고 영악한 녀석이다. 물론 나는 그 덕에 기사를 여럿 잡아 능력치를 쏠쏠하게 먹었지만.

아무튼, 아들인 말콤이 그런 성향을 지녔다면 아버지인 브룩스 자작 또한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니까.

‘교활한 자가 즐겨 쓰는 수법이라면.......’

역시 뒤통수를 치는 거지.

이건 뭐 거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밀러 백작의 뒤통수는 무엇인가?

레이첼 밀러.

외동딸인 그녀가 백작의 뒤통수이자 약점이다.

‘......레이첼 근처에 있으면 브룩스 자작을 만날 확률이 좀 올라갈 수도 있겠는데?’

─도착했습니다요!

그런 생각을 하던 중, 도착을 알리는 마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차에서 내리니, 브룩스 자작령의 도시가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자작의 도시는 처음 와봤는데, 생각보다 규모가 작았다. 물론 카트카 같은 백작의 도시에 비해 작다는 소리지, 케른헴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거긴 도시를 지켜주는 결계조차 없다.

나는 마부에게 삯을 지불하고, 바로 도시의 성문으로 다가갔다.

“신분패를 제시해주십시오.”

“아, 여기 있습니다.”

“음?”

내 모험가패를 확인한 경비병은 눈을 가늘게 뜨며 한 번 더 살폈다.

“A급 모험가... 엘? 엘이라면... 혹시 지난 두 번의 영지전에서 밀러 백작님의 용병으로 활약하신 그분이 아니십니까?”

그가 화들짝 놀라며 내게 물었다.

이곳은 자작령이지만 실질적으로 점령하고 있는 건 밀러 백작가였기 때문에, 당연히 성문을 지키는 경비병도 백작가 소속이다. 그래서인지 내 이름을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예, 맞습니다.”

“이야! 이거 만나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저는 그 전쟁에 참여하지는 않았었지만, 엘 씨의 활약상은 귀가 따갑도록 들었습니다. 소문처럼 무자비하게 생기진 않으셨군요?”

“아하하....”

상당히 넉살이 좋은 사람이었다. 주저리주저리 떠들던 그는, 내게 모험가패를 돌려주며 길을 열어줬다.

나는 도시 안으로 들어가려다가, 잠시 멈칫하고 경비병을 돌아보며 물었다.

“아, 혹시 레이첼 님이 어디에 계신지 아십니까? 자작성에 있나요?”

“아닙니다. 아가씨는 현재 다른 곳에 나가계십니다.”

“예? 어딜 가셨는데요?”

맥이 빠지는 느낌이었다.

안전한 도시를 놔두고 어딜 돌아다니는 거야?

누군가를 만나러 먼 걸음을 했는데 이렇게 엇갈리는 것은, ‘통신수단이 발달하지 않은 이 세계에서 겪을 수 있는 매우 번거로운 일 TOP3’ 중 하나다.

“브룩스 자작가에서 자꾸 마을을 습격해 농민을 죽여대는 바람에, 마을을 지키러 나가셨습니다. 직접 그러실 것까지는 없는데... 정말 귀족의 모범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분이시지요.”

“마을의 위치가 어떻게 됩니까? 직접 찾아가야겠네요.”

내가 그리 묻자, 경비병이 난처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게... 한 군데가 아닙니다. 아마 오늘 습격당한 마을을 중심으로 그 주변까지 다 돌고 계실 터라 말로 설명해 드리기가 어려운데... 혹시 급한 일이십니까?”

“예? 아, 네. 시급을 다투는 일입니다.”

나는 짐짓 진중한 얼굴로 말했다.

안 급해도 급하다고 말해야 뭔가 방법을 찾아 주지 않을까 싶어서 그렇게 말했지만, 실제로 조금 급하기도 했다.

브룩스 자작이 이 지역 어딘가에 있으니까.

“그럼 제가 직접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오오, 그럼 저야 감사하죠. 근데 근무 중이신 거 아닙니까?”

“괜찮습니다. 이제 곧 교대할 시간... 아, 마침 저기 오는군요. 그럼 잠시만 기다려주시겠습니까? 제가 마차를 가지고 오겠습니다.”

교대 인원이 다가오자, 그는 나에게 기다려달라고 말한 뒤 도시 안으로 들어갔다.

무려 마차까지 몰고 오겠다니.

역시 급하다고 말한 건 탁월한 선택이었다.

잠시 쪼그려 앉아 작은 눈사람을 만들며 시간을 죽이고 있으니, 곧 마차 한 대가 성문을 빠져나왔다.

─달그락달그락

충격적인 비주얼을 자랑하는 마차였다.

도화지처럼 새하얀 차체에 각종 꽃무늬가 알록달록하게 그려져 있었고, 모형 꽃송이가 모빌처럼 줄에 꿰여서 주렁주렁 매달려있었는데, 움직일 때마다 흔들리며 시선을 강탈했다.

이 세계 버전의 웨딩카인가?

아니, 저딴 걸 웨딩카랍시고 들이밀면 즉석에서 파혼이다.

“엘 씨! 이겁니다! 타십시오!”

마부석에 앉아있는 경비병은 뭐가 그리 좋은지 싱글벙글하며 내게 손을 흔들었다.

“무, 뭡니까? 이 흉물스러운 마차는?”

“브룩스 자작부인의 전용 마차입니다. 버리고 도망가서 저희가 입수했죠. 꼭 한 번쯤 몰아보고 싶었는데 이렇게 기회가 생기는군요. 흐하핫!”

설마 이걸 몰고 싶어서 안내를 자처한 거냐.

“그, 그냥 걸어가면 안 됩니까? 제가 멀미를 좀 해서....”

“무슨 소리십니까. 아가씨가 계신 마을까지 걸어가려면 한세월은 걸릴 겁니다. 급한 일이라고 하셨잖습니까? 어서 타십시오!”

“.......”

어쩔 수 없이 마차에 올라탔다. 심지어 문을 열기 위해서는 커튼을 치듯 꽃송이들을 밀쳐내야 했다. 적당히 꾸며야 예쁘지, 이건 뭐 꽃에 미친 사람이 만든 마차가 분명했다.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나는 그렇게 꽃마차를 타고 마을로 향했다.

***

브룩스 자작령 남동부에 있는 작은 마을.

오늘 습격당했었던 이 마을의 축사에는, 레이첼과 중년의 기사 그리고 열 명가량의 병사들이 몸을 숨기고 있었다.

이들은 혹시 모를 브룩스 자작가의 추가 습격을 막기 위해 잠복 중이었다.

“아가씨, 이제 슬슬 도시로 돌아가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조금만 더 상황을 지켜보고 싶어요.”

“머지않아 해가 저물기 시작할 겁니다. 날도 추운데 그러다가 병이라도 나면 어쩌려고 그러십니까.”

중년의 기사가 걱정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하지만 뭔가 이상하지 않나요? 같은 마을을 두 번이나 습격해오다니. 이런 적은 처음이에요.”

레이첼은 그것이 매우 미심쩍었다.

그녀와 병사들은 아침에 이 마을에서 브룩스 자작가의 습격대를 격퇴했었다. 그런데 다른 마을들을 살피다가 이곳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 또 한 번의 습격이 있었다.

게다가 이상하게도 두 번째 습격대는 고작 다섯 명이었고, 그들을 막아내기 위해 레이첼이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곧바로 도망쳐버렸다.

“왜 다섯 명밖에 오지 않았을까요? 고작 그 정도라면 저희가 이 마을에 없었어도 습격에 실패했을 텐데... 바로 도망친 것도 그렇고, 너무 이상해요.”

“확실히 그건 그렇군요.”

중년의 기사는 레이첼의 의견에 일리가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그가 생각하기에도 이건 상당히 수상했다.

첫 번째 공격이 실패했는데 굳이 두 번째 공격을 감행할 거였다면, 당연히 이전보다 습격대의 규모를 키워야 함이 옳다.

그런데 왜 오히려 초라한 병력을 보냈을까?

곰곰이 생각에 잠겨있던 기사의 머리에, 문득 어떤 가능성 하나가 번개처럼 스쳤다.

“......설마?”

그는 레이첼을 향해 다급하게 소리쳤다.

“지금 당장 도시로 돌아가셔야 합니다!”

“네? 갑자기 그게 무슨...?”

“두 번째 습격을 왔던 놈들, 그놈들의 목적은 습격이 아니라 정찰이었습니다! 아가씨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이런 작은 마을에 정찰대를 보냈다면 그 의도는 뻔하다. 레이첼의 위치를 알아내기 위한 것.

즉, 브룩스 자작은 레이첼을 노리고 있다.

“당장 피하셔야 합니다!”

“아, 알겠어요.”

레이첼 역시 기사가 말하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했고, 이런 상황에 고집을 피울 만큼 어리석지도 않았다. 자신이 붙잡힌다면 아버지인 밀러 백작이 큰 곤경에 빠질 터.

레이첼과 기사는 즉시 각자의 말에 올라탔다.

“너희들은 말이 없으니 일단 어딘가에 숨어있거라. 내가 아가씨를 도시까지 모신 뒤, 병사를 이끌고 다시 돌아올 터이니. 아가씨, 가시죠! 이럇!”

기사는 축사에 있는 열 명의 병사들에게 지시를 내리고, 서둘러서 레이첼과 함께 마을 밖으로 향했다.

─다그닥! 다그닥!

두 필의 말은 전력으로 달려 나갔다.

하지만 마을의 입구를 채 벗어나지 못하고 멈춰 서야만 했다.

“......이미 늦은 것 같네요.”

레이첼은 마을의 입구 너머를 바라보며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곳에는 브룩스 자작이 수많은 병사들을 이끌고 서 있었다. 어림잡아 세어봐도 족히 오백 명은 넘을 듯한 규모. 거기에 풀 플레이트 아머를 갖춰 입은 기사까지 몇 섞여 있었다.

싸움은커녕 도망조차 불가능한 상황.

그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브룩스 자작이 비릿하게 웃으며 능청스럽게 운을 뗐다.

“아, 이게 누구신가. 밀러 백작의 금지옥엽 레이첼 밀러 양이 아닌가! 이런 곳에서 우연히 만나니 반가움을 금치 못하겠군!”

“.......”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나의 거처로 가서 식사나 함께하지. 어떤가, 나의 초대에 응해 주겠나?”

“......거절하겠어요.”

꽈악. 레이첼은 주먹을 움켜쥐며 대답했다.

“허허, 고민도 안 하고 거절하시는구먼. 사람 무안하게 말이야....”

멋쩍게 웃은 브룩스 자작이 돌연 손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손가락을 까딱하자, 뒤편에 도열해있던 병사들이 일사불란하게 십 보 전진했다.

─척! 척! 척! 척!

그는 그 모습을 흡족하게 바라보고는, 다시 레이첼을 향해 고개를 돌려 정색하며 으르렁거렸다.

“이 멍청한 계집년아. 내가 지금 부탁하는 걸로 보여? 까불지 말고 순순히 투항해라. 살려는 줄 터이니.”

“거절하겠어요. 살아서 당신에게 붙잡히느니, 차라리 이 자리에서 싸우다가 죽겠어요.”

자신이 브룩스 자작에게 인질로 붙잡히는 것. 여러 상황 중에서도 그것이 단연코 최악의 상황이다.

레이첼은 죽음을 불사하고 싸울 각오를 다졌다. 어차피 이 악몽 같은 현실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었다.

“뭐? 싸우겠다고? 크하하하핫!!”

브룩스 자작은 가소롭다는 듯 광소했다.

“크흐... 미치겠군. 내 뒤에 있는 병사들이 안 보이나? 자그마치 오백이 넘는다. 네 아비가 병력을 끌고 와도 쉬이 승리를 장담할 수 없을 터인데, 네년이 이걸 어떻게 해보겠다는 말이냐?”

“.......”

“그래, 좋다. 싸우는 게 소원이라면 그렇게 해주지. 여봐라! 당장 저년의 두 다리를 잘라서 내 앞으로─”

일촉즉발의 그 순간,

─달그락달그락

별안간 웬 마차 한 대가 설원을 가로지르며 이쪽을 향해 달려왔다.

“......? 부, 부인...?”

전장에 있는 모두의 시선을 강탈한 흉물스러운 꽃마차는, 브룩스 자작부인의 전용 마차였다.

느릿느릿 달려오던 마차는, 이윽고 레이첼과 브룩스 자작의 사이에서 멈춰 섰다. 그리고 곧 마차의 문을 열고 모습을 드러낸 한 남자는, 브룩스 자작군을 바라보며 투덜거렸다.

“뭐야, 삼백 명이라더니 거의 그 두 배는 되잖아? 말콤 이 새끼를 그냥 확....”

레이첼은 투덜거리는 사내를 보고 두 눈을 의심했다. 하지만 몇 번을 다시 보아도 그가 분명했다.

“엘...!!”

그녀가 목이 터져라 그의 이름을 부르자, 엘이 고개를 돌려 레이첼을 바라봤다.

“아, 레이첼 님. 오랜만입니다.”

“당신이 어떻게 여기에...?”

“브룩스 자작이 레이첼 님을 노릴 것 같아서 찾아와봤는데... 저기에 서 있는 저 남자가 브룩스 자작이 맞습니까?”

끄덕. 레이첼은 어렵사리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목이 메서 도저히 입 밖으로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흐흐흐. 그렇군요.”

엘이 웃음을 흘리자, 브룩스 자작 역시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크하하핫! 오늘은 운이 좋군? 저 계집뿐만 아니라 네놈까지 만나게 되다니 말이야.”

자신의 아들을 잡아가고 기사를 다섯이나 죽인 놈이다. 그렇지 않아도 벼르고 있었는데, 이렇게 복수할 기회가 찾아오다니. 정말 운이 좋은 날이라고 생각했다.

“운이 좋긴 뭘 좋아? 운이 없는 거겠지.”

“오만하구나! 설마 너 혼자서 이 모든 병력을 상대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건가?”

브룩스 자작은 든든하게 도열해있는 병사들을 흘끔 바라보고는 말을 이었다.

“네놈이 하늘에서 벼락을 내리친다는 것은 나도 알고 있다. 하지만 내 병사를 전부 처치하려면 벼락을 오백 번은 내리쳐야 할 터인데, 그게 가능하겠나? 크하핫!”

자작은 영지전에서 있었던 일을 상세히 보고 받아서 알고 있었다. 엘이 어떤 마법을 사용했는지, 주력으로 삼는 마법이 무엇인지를.

제법 강한 녀석이긴 했으나, 딱 거기까지다.

절대로 이 상황을 뒤집을 수는 없다.

“흐흐흐. 내가 하늘에서 벼락만 내리치게 할 수 있는 것 같아?”

“......그게 무슨 소리냐?”

브룩스 자작은 미간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시종일관 자신감 있어 보이는 엘의 얼굴이, 묘하게 그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지금 하늘에서 뭐가 내리고 있지?”

“......뭐? 눈은 원래부터 내리고 있었─”

─사아아

순간, 하늘이 새하얗게 물들었다.

“지금부터 더 심하게 내릴 거야.”

그리고 곧, 새하얀 하늘이 무너져 내렸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무수한 눈송이들은 광풍과 뒤섞여 눈보라를 만들어냈고, 사방팔방으로 거세게 휘몰아쳤다.

하얀 눈송이들이 햇빛을 가리며 하늘이 어두워졌다. 폭풍 같은 눈보라는 브룩스 자작과 병사들이 있는 곳에 집중적으로 몰아치며, 그곳에 있는 모든 존재를 꽁꽁 얼려 나가기 시작했다.

─까드득

순식간에 하반신이 잠길 정도로 눈이 쌓였고, 살을 에는 듯한 추위에 수백 명의 병사가 자리에서 그대로 얼어붙었다.

이것은 얼린 결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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