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꿈속에서 마법을 훔치는 마법사-117화 (117/200)

만티코어 (2)

내가 자세를 낮춘 채 말콤 브룩스를 바라보고 있자, 조셉이 내 옆으로 와서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브룩스 자작의 패잔병인가 보군. 마을을 무차별적으로 습격하고 방화한다던데... 괜히 눈에 띄어서 좋을 거 없으니 만티코어나 마저 찾으러 가지. 저들은 우리를 발견하면 분명히 죽이려 들 거다.”

그럴 수는 없지.

어떻게 굴러들어온 호박인데.

“저놈을 잡아야겠습니다.”

“......뭐?”

부러지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조셉의 고개가 휙 꺾였다.

“차림새를 보면 기사가 분명하다. 모험가가 넘볼 수 있는 상대가 아니야. 우리 셋이 모두 덤벼들어도 승산이 없다는 말이다...!”

“쉿! 그건 제가 알아서 할 테니, 앨리스와 함께 여기서 조용히 기다리세요. 앨리스, 내 배낭 좀 맡아줘.”

“그, 그게 무슨─”

나는 앨리스에게 배낭을 맡긴 뒤, 당황하는 조셉을 뒤로 하고 말콤 브룩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갔다.

발소리를 죽이고 최대한 가까이 접근하자, 그들이 나누는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도련님, 이쯤이면 안전할 것 같습니다.”

“그래, 여기서 잠시 쉬도록 하지. 밀러 백작의 병사도 설마 여기까지 쫓아오지는 않겠지.”

그들은 근처에 있던 커다란 바위로 가서 등을 기대고 앉았다. 앉은 방향이 내 쪽을 향하고 있었기에, 나는 황급히 나무 뒤로 몸을 숨겼다.

“상처는 좀 어떠십니까?”

“포션으로 다 치료하긴 했지만 왠지 아직도 좀 쑤시는 것 같군.... 아무래도 한 병 더 마셔야겠어. 포션을 하나 꺼내 봐라.”

“저, 저도 없습니다. 아까 상처를 치료하느라 마셨습니다.”

“뭐야? 이 병신 같은 자식이! 포션이 있었으면 당연히 아껴뒀다가 나를 위해 써야 하는 것 아닌가? 네놈의 몸뚱이와 내 몸은 가치가 다르다!”

“죄, 죄송합니다.”

말콤 브룩스.

저놈도 상당한 성격파탄자였군.

영지전 당시에는 멀리서 본 게 전부라 외모만 알 뿐, 어떤 사람인지는 잘 몰랐었다. 그런데 지금 이렇게 말하는 걸 들어보니, 제정신인 놈은 아닌 듯 보였다.

“제길.... 습격했던 마을에 레이첼 그 빌어먹을 계집이 숨어있었을 줄이야.”

“저, 정말 무서운 여자였습니다.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병사들을 도륙하는 그 모습은 정말이지....”

말콤 옆에 앉아있는 병사가 부르르 몸서리쳤다.

“그래, 이상하더군. 성격도 달라졌고, 무엇보다 갑자기 너무 강해졌어. 오랫동안 잠만 처잤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 거지? 어떻게 나를 압도할 수가 있냐는 말이다. 이 말콤 브룩스를!!”

아하, 레이첼한테 얻어맞고 도망친 거였군.

말하는 투로 미루어보건대, 저 녀석의 몸에 상처를 입힌 장본인은 레이첼인 듯했다. 놈들은 어떤 마을을 습격했었으나, 그걸 예상하고 미리 숨어있던 레이첼에 의해 격퇴당한 모양이었다.

즉, 머리로도 발리고 힘으로도 발렸다고 할 수 있겠다.

‘흐음. 저 녀석을 어떻게 해야 좋을까....’

나는 고민에 빠졌다.

말콤 브룩스를 처치할지, 생포할지.

어쨌거나 저 녀석은 기사이므로 처치하면 능력치를 얻을 수 있겠지만, 생포해서 인질로 잡아두면 더 큰 먹잇감인 브룩스 자작을 꾀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의 고민은 깊어만 가는 가운데, 병사가 말콤 브룩스를 향해 슬그머니 물었다.

“저... 외람된 말씀입니다만, 이렇게 계속 마을을 습격하기는 어렵지 않겠습니까? 백작 영애가 버티고 있는 한, 농노와 경작지를 불태우기는커녕 저희가 먼저 다 죽게 생겼습니다.”

“......지금 내게 충고하는 것인가? 감히 일개 병사 따위가?”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고 드러낸 말콤 브룩스는, 병사를 한동안 죽일 듯이 노려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주제넘은 걱정은 치워둬라. 나의 아버지께서 뭔가 계획이 있다고 하셨으니까.”

‘......계획? 뭔가 꿍꿍이가 있는 모양인데?’

말콤 브룩스의 말을 들으니 결심이 섰다.

저 녀석을 생포해서 데려가기로.

스릉- 나는 검을 뽑으며 나무 바깥으로 몸을 드러냈다.

“그 계획이 뭔데? 되게 궁금하네.”

“누구냐!”

말콤이 반사적으로 튕기듯 자리에서 일어나 검을 겨누며 외쳤다. 과연 기사다운 반응속도였다.

“네, 네놈은...! 주, 중부의 메두사!!”

녀석은 거의 비명을 지르듯 소리쳤다. 이건 별로 기사답지 않았다.

“오, 나를 알고 있나 보네?”

“......당연히 알고 있다! 눈을 마주쳤다는 이유로 우리 가문의 기사 다섯을 죽인 네놈을 어떻게 모를 수가 있겠나! 나는 그 만행을 직접 목격한 사람이다!”

하긴. 나도 그때 말콤을 봤었는데 말콤이라고 나를 못 봤을 리가 없다.

“그래? 근데 왜 나와 눈을 마주치고 있지?”

“그, 그건....”

말콤이 움찔하며 한 발짝 뒷걸음질 쳤다.

눈동자가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흔들리는 걸 보니, 눈을 피할까 말까 심히 고뇌하고 있는 듯 보였다.

“됐어. 시선은 피하지 않아도 되니까, 대신 방금 얘기한 그 계획이란 게 뭔지 말해봐.”

“......자세한 건 나도 모른다. 그리고 설령 알고 있다 하더라도 네놈에게 말해줄 생각은 없다.”

“그럼 눈을 마주친 대가를 받아야겠네.”

화륵! 검에 마나를 불어넣자, 검신이 화염에 휩싸이며 주변을 환히 밝혔다.

“그, 그 검은...? 설마 마력검인가?”

말콤 브룩스는 당황하며 뒤로 몇 걸음 더 물러나더니, 이내 무언가 결심한 듯 검을 고쳐잡았다.

그리고 곧, 그의 검에도 푸른색 기운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네놈이 어디서 그런 검을 얻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나 말콤 브룩스의 오러도 만만치만은 않을 것이다!”

녀석이 투지를 불태우며 비장하게 말했다.

“와라! 네놈의 목을 잘라 아버지께─ 커헉!”

─번쩍!

─꽈릉!

칠흑같이 어두운 밤하늘이 일순간 번쩍이며 한줄기 벼락이 내리꽂혔다.

[금일 사용 가능한 ‘콜링 썬더’ - 5회]

말콤은 그대로 검을 떨어트리고 바닥에 쓰러져서 숨을 헐떡였다.

‘역시 승격 이후로 웬만한 기사는 한 방이면 충분하군.’

티안브리스가 워낙 강해서 안 통했던 거지, 어지간한 기사는 콜링 썬더 한 방이면 전투 불능이다.

“끄으...윽... 비겁...하게... 마법을....”

바닥에서 몸을 간헐적으로 움찔거리는 말콤 브룩스가 그리 말했는데, 솔직히 나는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니, 뭔 소리야 진짜. 나는 마법사라고. 마법사가 마법을 쓰는 게 비겁해?”

“.......”

“비겁한 건 너희들이 마을을 습격해서 무고한 농노들을 죽이는 게 비겁한 거고. 아무튼... 앨리스!! 내 배낭 좀 가져다줘!”

─알았어!

내가 앨리스가 있는 곳을 바라보며 크게 소리치자, 어둠 속에서 즉시 대답이 들려왔다.

다시 말콤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함께 있던 병사가 슬금슬금 뒷걸음질 치며 도망가려 하고 있었다.

“거기 너. 잠깐 멈춰봐.”

“히, 히익! 사, 살려주십시오.”

병사가 화들짝 놀라더니, 황급히 눈을 땅바닥으로 향하게 하며 목숨을 구걸했다.

“......? 누굴 무슨 살인마로 아나.... 브룩스 자작한테 가서 전해. 말콤 브룩스는 포로로 잡혔다고.”

말콤을 사로잡았어도, 그 사실을 브룩스 자작이 모르면 말짱 꽝이다. 병사는 살려 보내서 전령으로 쓰는 게 낫다.

“옛! 알겠습니다!”

내가 가보라고 손짓하자, 병사는 황급히 달아났다. 그가 떠남과 동시에 앨리스가 도착했다.

“여기, 배낭 가져왔어.”

“고마워.”

나는 수배범을 잡으러 다녔던 버릇 때문에, 배낭에 늘 대량의 포승줄을 챙겨 다닌다. 바로 포승줄을 꺼내서 말콤 브룩스를 포박했다. 아예 바닥에 굴릴 수 있을 정도로 칭칭 감아버렸다.

그리고 예전에 앨리스를 못 믿었던 시절에 그녀에게 채웠었던 마나 속박 고리도 꺼내서 채웠다.

‘흐음... 기사를 잡아본 건 처음이라 이걸로 충분한 건지 모르겠네.’

기사도 마나를 사용하는 건 매한가지지만, 중급 속박 고리로 억제할 수 있는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물론 이 정도로 포박해뒀으면 마나를 쓸 수 있어도 풀기 어렵겠지만, 혹시 모르니 확실히 해둘 필요가 있었다.

“앨리스, 혹시 이 녀석이 수상하게 굴거나 도망치려고 하면 그냥 마법을 쏴버려.”

“응? 살려두려고 한 거 아니었니? 내가 마법을 쓰면 크게 다칠 텐데... 나는 이제 회복 마법이 없어서 치료해줄 수 없는걸.”

“괜찮아. 죽이지만 마.”

회복 마법은 내가 있으니까.

***

우리는 반강제적으로 잠시 쉬어야만 했다.

말콤 브룩스가 제 발로 걸어 다닐 수 있을 만큼 회복할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녀석을 업고 다니면서 만티코어 수색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회복 마법을 써줄까도 싶었는데, 적한테 힐을 해준다는 게 영 내키지 않아서 그만뒀다.

이쯤에서 노숙을 하고 날이 밝으면 수색을 재개하는 선택지도 있었지만, 포로까지 달고 있으니 최대한 서둘러서 끝내는 게 나을 듯했다. 앨리스의 신분도 하루빨리 만들어주는 게 좋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입을 열었다.

“이제 슬슬 다시 움직이자고.”

“응.”

“예, 알겠습니다. 엘 씨.”

앨리스와 조셉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사인 말콤 브룩스를 쓰러트린 순간부터, 조셉이 나를 대하는 태도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꼬박꼬박 존칭을 쓰기 시작했고, 매우 공손해졌으며, 아첨쟁이처럼 변했다. 갑작스러운 태세전환에 적응이 잘 안 됐으나, 그래도 아까처럼 거만한 것보다는 이게 낫다.

어쨌거나 우리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선두는 말콤 브룩스였다. 원래 포로와 함께 이동할 때는, 포승줄로 연결해서 개를 산책시키듯 앞쪽에 세우는 게 감시하기 편하다.

─저벅 저벅

그렇게 고요하고 어두운 산을 나아가던 중이었다. 문득 서늘한 밤바람에 실린 비릿한 냄새가 코를 간질였다.

“킁킁, 피 냄새가 나는 것 같은데...? 어디서 나는 거지?”

내가 킁킁거리면서 고개를 두리번거리자, 조셉이 말콤을 가리켰다.

“저놈에게서 나는 것 같습니다. 아까 엘 씨께서 저놈에게 본때를 보여주셨을 때, 기존에 있었던 상처가 터진 게 아닐까 싶습니다.”

“아,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럼... 지혈 정도는 해줘야겠네.”

그러자 조셉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마을을 습격하고 방화하는 놈에게 그런 친절을 베푸실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냥 저대로 두시죠. 만티코어는 사람의 피 냄새를 좋아하니, 오히려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흐음....”

말콤 브룩스는 아직 죽어서는 안 된다. 그의 아버지인 브룩스 자작을 꾀어낼 카드이기도 하고, 아까 언급했던 ‘아버지의 계획’이 뭔지도 더 심문해봐야 한다.

자기도 자세한 내용은 모른다고 말했지만, 나는 적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이 아니다.

“그래도 죽으면 곤란하니, 조금만 더 저대로 뒀다가 지혈해줘야겠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조셉은 군소리 없이 고개를 끄덕거리고는, 슬며시 내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 그런데... 아까 저놈이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만... 정말 엘 씨가 눈을 마주쳤다는 이유로 브룩스 자작의 기사 다섯을 토막 내고 눈을 뽑았다는, 그 중부의 메두사가 맞으십니까...?”

“예에??”

몹시 당황스러웠다.

내가 언제 토막 내고 눈을 뽑았어?

“기사 다섯을 죽인 건 맞는데, 그따위 잔혹한 짓은 안 했는데요.”

“그, 그렇군요. 기분이 상하셨다면 제가 사과드리겠습니다.”

조셉이 황급히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아, 괜찮습니다. 근데 벌써 소문이 났나 보네요. 그것도 이상하게 와전돼서.”

“최근 중부지방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일화입니다. 그때 함께 참전했던 사람들은 그 이야기를 팔고 다니며 술을 공짜로 얻어먹을 정도죠.”

어쩐지.

소문이 이상하게 났다 싶었더니마는, 술을 얻어먹기 위해 이야기를 자극적으로 각색해서 푼 모양이었다.

“그런데 저는 중부의 메두사가 우락부락한 체구의 용병이라고 들었습니다만... 역시 소문은 믿을 게 못 되는군요.”

“아, 그건 맞습니다. 용병도 병행하고 있─”

─파사사사사삭!

순간, 무언가가 풀숲을 헤치며 엄청난 속도로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나는 그것을 느끼자마자, 말콤 브룩스에게 연결되어 있는 포승줄을 힘껏 잡아당겼다.

“어억...!”

그가 뒤로 끌려오며 벌러덩 넘어졌다.

그와 동시에, 말콤이 방금까지 서 있었던 자리로 무언가가 쏜살같이 쇄도하며 빈 땅을 가격했다.

─퍼석!

흙이 비산한 자리에서, 입이 귀까지 찢어진 노인이 우릴 바라보며 웃음 지었다.

나도 그 노인에게 마주 웃어주며 인사했다.

“흐흐흐. 안녕하세요, 만티코어 어르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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