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티코어 (1)
만티코어.
사자의 몸통에 인간의 머리를 한 몬스터.
가죽은 트롤 이상으로 두껍고 질기며, 놈이 휘두르는 발톱은 갑옷조차 찢어발길 정도로 날카롭고 강력하다. 게다가 어지간한 기사의 몸놀림과 비견될 정도로 날렵하다.
나도 예전에 한 번 싸워본 경험이 있다. 기초 마법밖에 쓰지 못하던 허접 시절이었는데, 녀석은 내 마법을 모조리 피해버렸었다. 당연히 내가 당해낼 수는 없었고, 함께 있던 은퇴한 노기사 펠릭스가 처치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때와는 다르다.
은퇴한 기사가 잡을 수 있었다면, 지금의 나로서도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나는 현역 기사도 때려잡는 사람이니까.
마침 브룩스 자작령 방면에 서식한다고 하니, 겸사겸사 좋은 기회라고 할 수 있겠다.
“만티코어 토벌 의뢰로 하시겠다구요? 그럼 내일 이 시간에 다시 방문해주세요.”
“네? 왜요?”
내일 재방문하라는 길드 직원의 말에, 나는 의아한 듯 되물었다.
“만티코어 토벌의 권장 인원은 A급 모험가 네 명 이상이에요. 지금 길드에 나와계신 A급이 한 분밖에 없어서, 사람을 더 모으려면 시간이 좀 필요해요.”
“그냥 저랑 얘랑 둘이서 가겠습니다.”
내가 앨리스를 가리키며 말하자, 직원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희 길드 방침상 그럴 수는 없어요. 반드시 밀러 백작령에서 활동 경험이 있는 모험가가 동행해야 합니다.”
“아... 그럼 세 명이서 가면 안 됩니까? 지금 길드에 있는 A급이랑 같이 가면 될 것 같은데.”
“그건 가능하지만... 힘들지 않으시겠어요? 권장 인원보다 적으면 다칠 확률도 높고요.”
“괜찮습니다. 그 A급 모험가에게 의사나 물어봐 주세요.”
길드 직원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고는, 내 뒤편을 향해 큰소리로 외쳤다.
“조셉 씨! 잠시만 이쪽으로 와주시겠어요?”
그러자 아까 새치기 했던 모험가가 이쪽으로 다가왔다.
“조셉 씨, 혹시 이분들과 함께 만티코어 토벌 의뢰를 나가주실 수 있으신가요? 새로 등록하러 오신 분들인데, 남성분은 타지역에서 A급으로 활동하셨었고 여성분은 신규지만 A급으로 등록신청을 하셨어요.”
“......A급이었다고? 그렇게 강해 보이지는 않았는데.”
조셉이란 귀족 출신의 젊은 모험가는, 나와 앨리스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콧잔등을 찡그렸다.
“만티코어라... 못 갈 것도 없지만, 신입들하고만 가야 한다면 위험수당을 얹어주셔야겠는데. 성패 여부와 상관없이.”
“그럼요. 토벌 권장 인원보다 적은 세 분이 나가시는데, 당연히 더 드려야죠.”
“후후, 좋습니다. 그럼 수락하도록 하죠.”
그는 흡족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우리를 바라보며 거만하게 말을 이었다.
“너희들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의뢰수행 중에는 웬만하면 내 의견을 따라줬으면 좋겠군. 만티코어는 만만한 몬스터가 아니니까.”
“흠...? 뭐, 일단 알겠습니다.”
길드 직원에게는 존댓말을 하면서 우리에게는 꼬박꼬박 반말하는 것이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으나, 어쨌거나 녀석에게 길 안내를 받아야 하니 일단은 수긍해주기로 했다.
나는 그에게 설렁설렁 대답한 뒤, 길드 직원을 향해 다른 조건은 없는지 물었다.
“그냥 만티코어를 처치하기만 하면 됩니까? 시간제한 같은 건 없나요?”
“네, 시간은 얼마가 걸리든 상관없어요. 만티코어의 목이 보이게끔 머리를 잘라서 길드에 제출하시면 모험가 등록이 완료됩니다.”
까다로운 조건 없이 간단한 듯했다.
“오, 좋네요. 알겠습니다. 그럼 바로 가죠.”
나는 일행과 함께 만티코어가 서식한다는 서쪽 브룩스 자작령 방면을 향해 출발했다.
***
─달그락달그락
마차를 타고 달리길 한나절.
우리는 목표했던 산에 도착했다.
“와 씨, 생각보다 큰데?”
“정말이네. 저걸 언제 다 뒤지니?”
눈앞에 있는 산은 내 예상보다 컸다.
왜 의뢰에 시간제한이 없나 했더니, 이게 이유인 것 같았다. 이 산을 다 뒤지려면 상당히 오랜 시간이 필요할 듯 보였다.
나와 앨리스가 산을 쳐다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자, 조셉이 불쑥 끼어들어 상세한 설명을 늘어놓았다.
“저 산은 브룩스 자작령까지 이어져 있을 정도로 큰 산이다. 전부 다 뒤질 수는 없고, 만티코어가 자주 다니는 길 위주로 수색하는 게 좋다.”
“오, 그렇군요.”
조셉은 조금 특이한 녀석이었다.
귀족 특유의 거만함이 있고 은연중에 평민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으나, 적어도 의뢰에 관해서라면 여느 모험가와 다를 바 없이 진지하게 임했다.
짜증 나는 직장동료 같은 느낌이랄까.
어쨌거나 그의 경력과 지식은 도움이 됐다. 나는 이곳의 지리도 잘 모르거니와, 만티코어의 습성 같은 것도 잘 모른다. 우연히 만나서 싸웠을 뿐이니까.
“근데 만티코어가 자주 다니는 길이란 건 뭡니까? 그런 게 따로 있나?”
“따로 있는 건 아니고, 사람이 다니는 길과 동일하다. 놈이 가장 좋아하는 먹잇감이 인간이기 때문이지.”
과연. 인간이 애용하는 등산로를 배회하다가 인간이 보이면 잡아먹는다는 거군.
그렇다면 수색 범위를 대폭 줄일 수 있다.
우리도 등산로만 돌아다니면 되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감탄하듯 말했다.
“호오... 만티코어에 대해 되게 잘 아시네. 토벌 경험이 많으신가 보죠?”
“토벌에 나선 적은 많지만, 성공한 건 그보다 훨씬 적다.”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서둘러서 말을 덧붙였다.
“성공한 횟수가 적은 이유는... 내가 약해서가 아니다. 만티코어가 너무 빠르기 때문에 놈이 도망가면 잡을 방도가 없어서지, 내가 약해서가 아니다.”
“......? 아, 네.”
그는 자신이 약하지 않다는 말을 반복했다.
내가 자기를 약하다고 생각할까 봐 강조한 건가? 체면치레가 상당한 녀석이었다.
아무튼 우리는 바로 수색을 시작했다.
이 산에서 만티코어 토벌을 해본 경험이 있는 조셉이 앞장서고, 나와 앨리스는 조금 떨어져서 뒤따라가는 형태였다.
─저벅 저벅
등산로를 따라 올라가다 보니 조금 특이한 점이 하나 있었는데, 벌목된 나무가 상당히 많았다는 점이다. 원래 나무는 영주의 재산이라서 허가 없이 함부로 벌목해서는 안 되고, 이렇게 많이 허락해주지도 않는다.
“여긴... 벌목이 자유로운 건가?”
내가 아는 밀러 백작은 제법 너그러운 성격이니, 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잣말이었지만, 의외로 조셉이 대답했다.
“그럴 리가. 이 산은 두 개의 영지에 걸쳐있다고 했지? 산의 특성상 영지 간의 경계가 불분명하고 감시도 어려우니, 상대 쪽으로 넘어가서 무단으로 벌목하는 거다. 영주는 그걸 묵인, 아니 오히려 권장하는 거고.”
아, 그러니까 이 주변을 벌목한 건 브룩스 자작의 영지민들이었다는 소리군.
상대 영지로 넘어가서 벌목하는 걸 은근히 권장한다라. 영주 간의 암투는 지저분하구만.
“그래서 오래전부터 밀러 백작과 브룩스 자작은 사이가 좋지 않았다. 원래 산이나 강을 공유하는 영지끼리는 분쟁이 잦지. 그런데... 이건 아주 기본적인 교양인데 왜 모르지? 아, 평민이면 배우지 못했을 수도 있겠군.”
“.......”
이게 귀족의 짜증 나는 점이다.
고의로 모욕하려는 의도는 없지만 은연중에 멸시하게 되는 그런 게 있다. 이 녀석도 지금 기껏 친절하게 다 설명해놓고는, 자기도 모르게 평민을 멸시하는 발언을 하는 것이다.
내가 겪어본 바에 의하면 신분이 높은 귀족보다는 오히려 어중간한 귀족이 더 이런 경향이 강하다. 레이첼이나 에드윈 같은 백작가의 자식들은 매사 언행에 신중한 편이었다.
원래 갑질도 재벌보다는 졸부가 더 심하지 않은가? 그것과 비슷한 느낌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때, 옆에서 묵묵히 걷고 있던 앨리스가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저기, 엘. 내가 만티코어를 이길 수 있니?”
“오오, 너 목소리 되게 달콤하다.”
“무, 무, 무슨 소리니? 갑자기.”
어린 귀족과의 짜증 나는 대화 이후 앨리스의 목소리를 들으니, 무척 달콤하게 느껴져서 힐링 되는 기분이었다. 물론 티안브리스와 똑같은 목소리지만, 걔는 말투가 싸가지 없어서 하나도 안 달콤하다.
“아무튼 만티코어? 네가 당연히 이기지.”
“정말...? 길드에서는 엄청나게 강력한 몬스터라고 하던걸?”
나는 단언했지만, 앨리스는 반신반의했다.
“야, 너는 네가 얼마나 강한지 아직 잘 모르나 본데.......”
“응, 얼마나 강한데?”
“생각해보니 나도 잘 모르겠네.”
“뭐야!”
똑같은 마법을 쓴다고 해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천차만별이다.
앨리스는 마법을 쓸 줄만 알지 아직 제대로 활용할 줄은 모르기 때문에, 얼마나 강하다고 딱 잘라 말하기가 어려웠다.
“아, 어쨌든 네가 만티코어는 이길 수 있을 거야. 물론 워낙 빠른 놈이라 마법을 맞히기가 쉽지만은 않겠지만... 정 어려우면 쉴드 쓰고 불사조를 소환해버리면 되지 뭐.”
“와아, 내가 그 정도라니.”
나는 자신에게 감탄하고 있는 앨리스의 어깨에 손을 탁, 올리며 말을 이었다.
“그래, 자신감을 가져라. 그래도 이번에 찾는 만티코어는 웬만하면 내가 처리할게. 너는 아직 전투 경험이 적으니까, 처음부터 강한 몬스터와 싸우기보다는 단계적으로 높이는 게 나을 거야.”
“응, 네가 하라는 대로 할게.”
역시 말을 잘 듣는 앨리스였다.
우리의 대화가 들린 모양인지, 앞서 걸어가고 있던 조셉이 우리를 힐끔 쳐다보고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어이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뭐? 만티코어를 혼자서 처리한다고? 허풍이 심하군.”
***
어둠이 짙게 내려앉은 깊은 밤.
우리는 오롯이 횃불 하나에 의지한 채, 수색을 계속하고 있었다.
“아니... 여기 만티코어 서식지 맞나? 여태 코빼기도 안 보이는데. 만티코어는커녕 잡다한 몬스터 한 마리조차 안 나오고.”
점심부터 지금까지 뻘뻘거리며 등산로를 돌아다녔지만, 이렇다 할 소득이 없는 상태였다.
“만티코어는 최상위 포식자다. 이 산에 다른 몬스터가 없다는 건 오히려 만티코어가 서식하고 있다는 증거다.”
“흐음, 그렇군요. 그래도 흔적이 너무 없네요. 발자국이라도 있어야 추적하는 재미가 나는데.”
사막에서 데스웜을 찾을 때와 비슷했다. 뭔가 단서를 발견해가며 움직이는 게 아니라, 그냥 무작정 등산로를 따라 걷기만 했으니까.
모르긴 몰라도 우린 이미 한참 전에 브룩스 자작령의 경계를 넘었을 것이다.
“원래 만티코어는 발견하기가 어렵다. 아주 영악한 놈이거든. 스스로 흔적을 지우기도 하고, 사냥감을 덮치기 전에 시간을 들여 관찰하기도 한다.”
그렇게 말한 조셉은, 고개를 돌려 어둠에 잠긴 산등성이를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을지도 모르지.”
“헐, 소름.”
날씨도 추운데 그런 얘기까지 들으니 닭살이 절로 돋았다.
원래 몬스터 중에서도 특별히 소름 끼치는 녀석들이 있는데, 그건 바로 인간형 몬스터다.
예절 주입기 구울, 동료 회복 마법사의 모습을 복제해 날 공격했던 앨리스, 인간의 얼굴로 끔찍한 괴성을 지르던 하피. 만났을 때 내 등골을 오싹하게 했던 몬스터는 전부 인간형이었다.
만티코어 역시 얼굴은 인간과 다름없는데, 그 얼굴로 어둠 속에서 우릴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하니 몹시 찝찝했다.
‘아, 이거 생각할수록 찝찝하네. 아무래도 마법을 써야겠어.’
혹시 기습당할 수도 있으니, 마법으로 주변을 탐색해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어차피 곧 자정이 되면 사용횟수도 초기화될 테니까.
나는 아껴두었던 마법을 캐스팅했다.
[금일 사용 가능한 ‘일렉트릭 웹’ - 7회]
내 발밑으로 아무런 소리 없이 미세한 전류가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뻗어나간 전류는 이윽고 이 일대에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펼쳐졌다.
‘......흠. 이 주변엔 없는 것 같군.’
전기의 거미줄 위에서 감지되는 수상한 움직임은 없었다. 만티코어의 영역이라 다른 몬스터도 없어서 그런지, 앨리스와 조셉의 기척 이외에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 방식으로 수색을 이어나갔다.
어차피 자정이 되기 전에 횟수를 전부 소모할 생각이었으므로, 일정 거리를 이동할 때마다 일렉트릭 웹을 사용해서 주변을 탐색했다.
그렇게 다섯 번째 마법을 썼을 때였다.
‘......!’
넓게 펼쳐진 전기의 거미줄 위로, 무언가가 움직이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네 개.
분명히 네 개의 다리가 움직이고 있었다.
“횃불 끄세요. 저쪽에 뭔가가 있습니다.”
내가 입술에 검지손가락을 가져다 대며 속삭이듯 말하자, 조셉이 들고 있던 횃불을 지체 없이 꺼버렸다.
“다들 소리 내지 말고 저를 따라오세요.”
만티코어는 인간의 얼굴을 가지고 있으니 시력도 인간과 다를 바 없다. 어둠 속에서는 마법으로 기척을 감지해내고 있는 우리 쪽이 유리할 터. 충분히 기습도 노려볼 만하다.
나는 발소리를 죽인 채, 목표를 향해 살금살금 나아갔다.
그렇게 은밀하게 이동하길 잠시, 곧 기척의 주인이 눈에 들어왔다.
희미한 달빛 아래로 보이는 것은 만티코어가 아니라, 두 명의 사람이었다. 그중 한 사람은 제법 큰 상처를 입은 모양인지, 여기서도 보일 정도로 상체가 피에 물들어있었다.
나는 상처 입은 남자를 뚫어져라 응시했다.
낯이 익은 사내였기 때문이다.
‘......역시 이쪽으로 의뢰를 나오길 잘했군.’
그는 지난 두 번의 영지전에서 적군을 지휘했던, 브룩스 자작의 아들 말콤 브룩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