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꿈속에서 마법을 훔치는 마법사-114화 (114/200)

상급 마법서 (3)

뜻밖의 질문에 나는 잠시 당황했다.

“......어?”

“저것들은 죽여도 되는 인간이 맞니? 친구를 위협하는 인간은 죽여도 된다고 했었잖아.”

앨리스는 감정이 드러나지 않는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지하 묘지에서 단검으로 사람을 찌르고 다니던 그때의 표정과 흡사한 느낌이었다.

“어어... 그렇지. 저런 건 죽여도 되는 인간이야.”

“그럼 내가 죽일게.”

의외였다. 앨리스가 스스로 나설 줄이야.

탈옥수들은 우리의 대화를 듣고 어처구니없다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나와 시비 붙었던 녀석은, 품에 감춰뒀던 단검을 꺼내 들고 앨리스 앞으로 성큼 다가와 그녀를 내리깔아보며 으르렁거렸다.

“뭐야, 이거 남자만 미친 게 아니라, 여자 쪽도 정신이 좀 이상했었군? 어이, 여자. 다시 한번 말해봐라. 누굴 죽이겠다고?”

“너.”

─콰아아아!

앨리스의 짤막한 대답과 함께, 땅바닥에서 순식간에 솟아오른 불기둥이 놈을 집어삼켰다.

털썩. 녀석은 새까맣게 타버린 채 바닥에 쓰러졌다. 앨리스는 그 모습을 덤덤하게 응시할 뿐이었다.

“어... 어어?”

“이게 무슨...?”

“마, 마법사였어! 모두 도망─”

─화르르륵! 콰아아아!

등을 돌리고 도망치는 녀석들이 앨리스의 우선적인 타겟이 됐다. 곳곳에 난무하는 불기둥과 불덩어리에, 이 일대는 대낮처럼 환히 밝아졌다.

무자비하게 탈옥수들을 불태우는 앨리스.

그 모습에, 나는 묘한 위화감에 사로잡혔다.

‘......뭐지? 화났나?’

죽어 마땅한 녀석들이었지만, 죽이는 방식이 좀 이상했다. 저들은 잘해봐야 일개 병사 수준이나 될까 한 잔챙이들이다. 그런데 앨리스는 마치 기사와 싸우기라도 하는 것처럼, 무려 중급 마법을 난사했기 때문이다.

이 일방적인 싸움은 금세 끝이 났고, 마지막으로 살아남은 탈옥수가 납작 엎드려서 목숨을 구걸하기 시작했다. 나를 죽이고 앨리스를 빼앗아 가겠다고 말한 녀석이었다.

“사, 살려주십시오!”

“사과해.”

앨리스는 고압적인 자세로 그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죄, 죄송합니다. 이렇게 강력하신 마법사이신 줄 모르고 제, 제가 주제넘은 발언을 했습니다.”

“나 말고.”

“예...? 아, 동료분께도 사과드리겠습니다. 가, 감히 살해 협박을 해서 죄송합니다.”

녀석이 내 쪽을 향해 머리를 바닥에 쿵쿵 찧으며 사과했다.

“잘못을 인정하니?”

“그, 그렇습니다! 제가 전부 잘못했습니다. 부디 너그러운 마음으로 용서를 부탁─”

“잘못했으면 죽어야지.”

─콰아아아!

앨리스의 짤막한 사형선고와 동시에, 녀석은 구차했던 삶의 종지부를 찍었다.

‘얘가 이렇게 냉정했었나...?’

적이라고 판단되면 가차 없이 죽이라고 가르친 건 나였지만, 이건 청출어람이었다.

물론 순둥순둥해서 이 사람 저 사람한테 뒤통수 맞고 다니는 것보다는 이게 낫겠지만, 너무 극심한 온도 차이 때문에 왠지 조금 오싹했다.

앨리스의 성격이 변해가는 걸까?

나는 슬쩍 눈치를 살피다가 넌지시 물었다.

“......그런데 왜 그렇게 화려하게 죽인 거야? 거의 한 명당 중급 마법을 한 개씩 날린 것 같은데.”

“응? 중급 마법? 그게 뭐니?”

앨리스는 언제 그랬었냐는 듯, 내가 알고 있던 평상시 그녀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백치미에 안도하며 말을 이어나갔다.

“아, 맞다. 너는 마법에 대한 개념이 아직 없지? 내 말은, 왜 그렇게 강력한 마법으로 적들을 죽였냐는 거야. 좀 더 약한 걸로 쓰지, 이건 너무 낭비잖아?”

“그야... 나는 그런 마법이 없는걸?”

앨리스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는데, 듣고 보니 그랬다.

그녀는 티안브리스가 직접 사용했던 마법만 복제했다. 당연히 나와 클로이를 상대로 하급 이하의 마법 따위는 통할 리가 없으니, 그 당시에 티안브리스는 중급 이상의 마법만 사용했었다.

즉, 앨리스는 중급 마법을 쓸 수 있어도, 기초 마법은 쓸 줄 모르는, 몹시 기이한 타입의 마법사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와, 이거 골때리네. 안 되겠다. 너 내가 내일 밀러 백작령에 도착하면 기초 마법서를 하나 사줄 테니까, 한번 공부해봐.”

“고, 공부? 그런 거 하기 싫은데....”

“......말대꾸?”

“해, 해볼게.”

***

다음날.

우리는 해가 뜨자마자 해괴한 이름을 자랑하는 ‘고블린의 비명’이라는 마을을 떠났다.

그렇게 아침부터 부지런히 이동한 끝에, 느지막한 오후쯤 밀러 백작령의 도시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어우, 드디어 도착했구만.”

늘 느끼는 거지만, 이 세계에서 장거리를 이동하는 것은 매우 고되고 지루하다. 마차를 오래 타면 허리가 끊어질 것처럼 아프며, 이동 중에 지루함을 달래줄 스마트폰도 없다.

아쉬운 대로 책이라도 읽어봤었는데, 지진이라도 난 듯 흔들리는 마차 안에서 그런 걸 읽으려니 눈만 아팠다.

어쨌거나 금세 성문에 도착했고, 마차는 검문을 받기 위해 멈춰 섰다.

“두 분의 신분패를 제시해주십시오.”

앳돼 보이는 경비병 하나가, 마차 문을 열고 앨리스와 나를 훑어보며 신분패를 요구했다.

원래대로라면 신분패가 없는 앨리스 때문에 아주 곤란한 상황이었겠지만, 아무 문제 없다. 나는 이름만 대면 동행한 사람까지 검문을 면제해주기로 밀러 백작과 얘기가 되어있었으니까.

“수고하십니다. 저는 엘이라고 합니다.”

“저는 브랜든입니다.”

“.......”

“.......”

우리는 잠시 서로를 어색하게 멀뚱멀뚱 쳐다봤다.

나는 통성명을 하려고 내 이름을 밝힌 게 아니라서 어색하게 바라본 건데, 저 사람은 왜 날 어색하게 바라보는지 모르겠다.

“그... 제 이름은 엘입니다.”

“네, 저는 브랜든입니다.”

“......?”

“......??”

뭐지? 언제까지 자기 이름을 말할 셈이지?

라고 생각했지만, 상대 역시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는 듯 보였다.

아무래도 이름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한 것 같아서, 용병패를 내밀며 말을 덧붙였다.

“저는 카트카와 도튼, 그리고 중부지방에서 용병 활동을 하는 사람입니다. 얼마 전에 이곳에서 밀러 백작님을 위해 영지전에도 참여했었고요.”

“좋은 일을 하셨군요. 확인했습니다. 그럼 이제 동행하신 여성분의 신분패를 제시해주십시오.”

“예? 그냥 통과시켜주는 거 아닙니까? 밀러 백작님께서 그렇게 해주시기로 약속하셨는데요.”

내가 밀러 백작의 이름을 대며 항변하자, 병사의 눈초리에 의심이 담기기 시작했다. 그때, 책임자로 보이는 경비병이 이쪽으로 다가왔다.

“검문하랬더니 왜 여태 그러고 있나?”

“이분께서 백작님의 이름을 들먹이며 동행인의 신분패 제시에 불응하고 있습니다.”

“뭐야? 저리 비켜봐.”

책임자는 부하를 밀치고 우리가 있는 마차를 들여다봤다.

“누가 감히 백작님의 이름을....... 에, 엘 님? 엘 님이 맞으십니까?”

다행히 책임자는 나를 알아보는 듯했다. 그리고 내가 미처 입을 열기도 전에, 앳된 병사가 대신 대답했다.

“맞습니다. 제가 신분패로 확인했습니다.”

“뭐? 이 멍청한 자식이! 그걸 확인했으면 당장 보내드려야지, 왜 동행하신 분의 신분패를 요구하고 앉아있어?”

“네? 저분이 누구시길래....”

“영지전에서 브룩스 자작의 기사 다섯을 처치했다는 용병 얘기 못 들어봤어? 저분이 바로 그분이시다!”

“헉! 눈을 마주치면 반드시 죽인다는 그...?”

대체 내 소문이 어떤 식으로 났는지는 모르겠지만, 앳된 병사는 헛숨을 들이켜더니 황급히 눈을 내리깔았고, 책임자는 굽신거리며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저놈이 신병이라서... 제가 호되게 교육할 테니 아가씨께는 비밀로 해주시면....”

아가씨? 왜 밀러 백작이 아니고 레이첼을?

상당히 의아한 부분이었으나, 어려운 일은 아니었므로 흔쾌히 대답했다.

“아, 괜찮습니다. 그럴 수도 있죠. 물론 비밀로 해드리겠습니다.”

“가, 감사합니다. 통과! 문을 열어드려라!”

책임자가 크게 소리치며 우리가 탄 마차를 들여보내 줬다.

─달그락달그락

“휴우, 도시 한번 들어가기 어렵네.”

내가 의자에 등을 기대고 한숨을 내쉬자, 앨리스가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물었다.

“이제 도시에 왔으니까 나 드디어 모험가 등록을 할 수 있는 거니?”

“그렇지. 근데 오늘은 좀 어려울 것 같고, 내일 하러 가자. 오늘은 백작성에 들러야 하거든.”

이곳을 찾아온 가장 큰 목적은 상급 마법서였으므로, 당연히 밀러 백작을 찾아가는 게 우선이다. 그리고 앨리스가 모험가 등록을 하려면 의뢰도 하나 수행해야 할 텐데, 지금 시간에는 의뢰가 별로 없다.

“대신 내가 백작성에 가 있는 동안, 너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도시를 구경해도 돼. 돈도 좀 줄 테니까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먹고.”

밀러 백작을 만나러 가는데 굳이 앨리스를 데리고 갈 필요는 없다. 아니, 오히려 곤란하다. 지난번과 외모가 완전히 달라진 앨리스를 데리고 가면, 나를 무슨 난봉꾼쯤으로 생각할 것이다.

“나 혼자서? 정말 그래도 되니?”

“그래, 여기서는 아무도 너를 못 알아보니까 마음껏 놀다 와.”

앨리스도 이제 어엿한 마법사가 됐으니 자유를 맛볼 때가 됐다. 아직도 부족한 게 많지만, 적어도 누군가에게 습격당해 목숨을 위협받는다거나 하는 일은 없을 테니까. 반대로, 습격한 놈의 목숨이 더 위험하지 않을까.

“아, 용족 특유의 그 꼬리는 잘 감추고.”

***

앨리스와는 여관을 잡고 헤어졌다. 이런 곳에서는 한번 헤어지면 다시 만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에, 이렇게 장소부터 미리 정해놔야 한다.

어쨌거나 나는 바로 밀러 백작성으로 왔다.

“안녕하십니까.”

“헛, 어서 오십시오! 이봐, 얼른 가서 백작님께 엘 님이 방문하셨다고 알려드려라.”

입구를 지키고 있는 경비병에게 인사를 했을 뿐인데, 알아서 전령까지 보내줬다. 물론 전령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릴 필요는 없다. 나는 프리패스니까.

“지금 바로 백작님께 가시겠습니까? 제가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아뇨, 어디 계신지만 알려주시면 저 혼자 가겠습니다.”

“백작님께서는 지금 집무실에 계실 겁니다.”

“알겠습니다. 수고하세요.”

경비병에게 인사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백작의 집무실이 어디에 있는지는 나도 알고 있지만, 바로 달려가지 않고 일부러 천천히 걸었다. 원래 손님을 맞이할 시간을 좀 주는 게 예의다. 뭔가 은밀한 사생활을 즐기고 있는 도중에 손님이 찾아오면 난감하니까.

그렇게 적당히 시간을 끌다가, 3층에 있는 집무실로 향했다.

─똑똑

─들어오게나.

문을 두드리자마자, 안쪽에서 기다렸다는 듯 대답이 흘러나왔다. 즉시 안으로 들어갔다.

“오오, 어서 오게. 이쪽으로 앉지.”

밀러 백작은 이미 업무용 테이블이 아니라, 접객용 테이블에 앉아있었다. 나는 그가 권한 자리로 가서 앉았다.

“잘 왔네. 자네가 도착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사람을 보내 마법서를 가져오라 일렀으니 잠시만 기다리게. 그건 그렇고, 잘 지냈나?”

“저야 잘 지냈습니다만... 백작님은 어떠셨습니까? 얼굴이 좋아지신 것 같은데요. 저번에 뵀을 때보다 더 젊어 보이십니다.”

입에 발린 칭찬이 아니라, 진짜로 백작의 얼굴에는 전보다 훨씬 더 활기가 감돌았다.

“허허, 그런가? 다 자네 덕분이지.”

백작은 내 칭찬이 마음에 들었는지, 흐뭇하게 웃었다. 역시 젊어 보인다는 소리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내 딸아이를 깨워주고, 브룩스 자작의 손발을 다 잘라주고. 내 모든 걱정거리를 자네가 해결해주었잖나? 요즘은 사는 게 즐겁다네.”

“아하하, 전면전이 잘 끝난 모양이군요.”

지난번에 내가 밀러 백작령을 떠날 때, 백작은 브룩스 자작에게 전면전을 선포해서 영지를 통째로 삼켜버리겠다고 선언했었다.

“전쟁 자체는 쉽게 승리했다네. 놈은 자네에게 기사를 거의 다 잃은 상태였으니까. 거기에 레이첼까지 나서니, 시시하다 싶을 정도였지.”

“예? 레이첼 님도 참전하셨었다고요?”

나는 깜짝 놀라서 되물었다. 물론 레이첼의 실력이 뛰어나기는 하나, 설마 밀러 백작이 하나뿐인 딸을 전쟁터에 내보낼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후우... 그렇다네. 내가 수백 번도 넘게 말렸지만 소용이 없었어. 자기도 도와서 전쟁을 빨리 끝내겠다고 어찌나 고집을 피우던지....”

크게 한숨 쉬며 고개를 내젓는 밀러 백작을 보고 뜨끔했다. 내가 레이첼을 떼어놓았던 명분이 바로 저거였기 때문이다.

나는 날 따라오려던 레이첼에게, 아버지가 전쟁 중이니 옆에 남아있으라고 말했었다. 그리고 나는 전쟁이 끝나면 돌아올 테니, 전쟁을 빨리 끝낼 수 있도록 최대한 열심히 보필하라는 말도.

사실 별 뜻이 있었던 건 아니고 그냥 레이첼을 떼어놓기 위해 대충 둘러댔던 말인데, 그게 그녀가 참전을 결심하게 만든 모양이었다. 역시 무서운 여자다.

“흠흠, 레이첼 님은 잘 지내고 계십니까?”

“물론일세. 딸아이는 지금 점령지에서 안정화 작업을 돕고 있다네.”

“점령지라면... 브룩스 자작령 말입니까?”

“그렇다네. 전쟁은 승리했지만 브룩스 자작은 살아 도망쳐서 골치깨나 썩고 있거든.”

밀러 백작이 인상을 구기며 말을 이었다.

“놈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아나? 용병을 고용해서 경작지를 습격하고 불태우고 있다네. 농노를 죽이고 땅을 망쳐서 내게 피해를 주겠다는 심산이지. 아무리 내게 뺏겼다지만, 어떻게 사람의 탈을 쓰고 그런 짓을 할 수 있는지 모르겠군.”

게릴라전을 펼치고 있다는 건가.

역시 이런 전면전은 패배한 가문을 깡그리 몰살시켜야 완전히 끝나는 모양이다.

한동안 그렇게 인상을 찌푸리고 있던 밀러 백작은, 곧 멋쩍게 웃었다.

“허허, 이거 너무 내 얘기만 한 것 같군. 이제 자네 얘기를 좀 해보게. 자네는 케른헴에서 무얼 하고 지냈나?”

“아, 저도 전쟁에 참여했었습니다. 카트카에 뭔 용족이 몬스터들을 잔뜩 이끌고 쳐들어왔었거든요.”

“호오, 체스터 백작이 몬스터와 전쟁을 벌였다는 소식은 나도 들었지. 그런데 자네가 몬스터와의 전쟁에 참전했을 줄은 몰랐군.”

벌써 소문이 여기까지 났구나.

하긴, 보름이 넘게 지났으니 그럴 만도 하다.

“제가 예전에 체스터 백작가의 큰 도움을 받은 적이 있거든요. 그래서 그걸 갚으려고 참전했었습니다.”

“......체스터 백작가의 도움을 받았었다고?”

“예.”

돌연 밀러 백작의 미간이 좁혀졌다.

“흐음... 도움을 받았었다는 말이지....”

“예. 결투재판에서 공증을 서주셨었거든요.”

“흐음....”

“.......?”

왜 그러는지는 모르겠지만, 밀러 백작은 턱을 쓰다듬으며 계속 흠흠거렸다. 무언가 생각에 잠긴 듯 보였다.

“......내가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그러네만, 혹시 체스터 백작에게 여식이 있었던가?”

“예?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차남인 에드윈 체스터 경하고만 인연이 있거든요.”

“오, 그런가? 하하하! 그랬군.”

밀러 백작의 안색이 대번에 환해졌다.

“다음부터는 그런 도움이 필요하면 체스터 백작가를 찾지 말고 나를 찾아오게나. 내 언제든 달려가서 도와줄 터이니.”

“......? 아, 예. 감사합니다.”

“그래그래, 꼭 날 찾아오란 말이야.”

그런 영문 모를 밀러 백작의 당부가 이어지는 가운데, 누군가가 집무실의 문을 두드렸다.

─똑똑

“오, 드디어 왔나 보군. 들어와라!”

허락이 떨어지자, 문을 열고 기사가 들어왔다.

기사의 손에는 금으로 만들어진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영롱한 황금색을 자랑하는, 두툼한 책이 한 권 들려있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