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꿈속에서 마법을 훔치는 마법사-112화 (112/200)

상급 마법서 (1)

‘아오, 진짜 끔찍하게 아프네... 습득한다.’

언제부터인가 죽음을 너무 당연하게 여기게 된 느낌이다.

아무튼, 앨리스에게서 불사조를 훔쳐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으므로 습득을 선택했다.

방금 꿈속에서 그녀의 진심을 봤으니까.

조금 유치한 내용이었지만 어쨌든 나를 지켜주려고 했으니, 충분히 믿을 만한 동료라고 할 수 있겠다.

[마법 ‘서먼 피닉스’를 습득했습니다!]

[금일 사용 가능한 ‘서먼 피닉스’ - 1회]

[동일한 대상에게서는 더 이상 마법을 습득하거나 훔칠 수 없습니다.]

‘역시 예상대로 1회만 주는군... 아 참, 이럴 때가 아니지.’

나는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침대에 누워있는 앨리스를 바라봤다.

“......헤.”

자면서도 입꼬리를 씰룩이며 이따금씩 웃는 걸 보니, 아직도 꿈을 꾸고 있는 모양이다.

자신이 캐리하고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꿈.

그 좋은 꿈을, 나 때문에 악몽으로 뒤바뀌게 할 순 없다. 혹여나 앨리스가 불사조에 의해 죽어버린 나를 발견하기 전에, 뭔가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앨리스를 붙잡고 흔들었다.

“야야, 앨리스! 일어나봐!”

행복한 꿈을 꾸고 있는데 깨운다는 사실이 조금 미안하기도 했지만, 원래 꿈은 가장 행복한 순간에 깨는 게 좋다. 그래야 기억에 오래 남으니까.

“앨리스! 일어나! 중요한 일이 있어!”

“으응...? 무슨... 일이니...?”

어깨를 붙잡고 마구 흔들며 부르자, 앨리스가 눈꺼풀을 힘겹게 들어 올리며 비몽사몽 대답했다.

“음. 나 야식 먹을 건데 너도 먹을래?”

“뭐야... 안 먹을래... 나 깨우지 마... 기분 좋은 꿈을 꾸고 있었는데....”

“아, 그래? 미안미안. 그럼 더 자라.”

앨리스는 다시 꿈을 이어나가고 싶다는 듯, 스르르 눈을 감으며 잠에 빠져들었다.

과연. 인간의 욕구 중에서 가장 궁극적인 것은 자아실현의 욕구라더니, 정말 그런 모양이다. 그 앨리스가 음식마저 거절하다니.

아무튼 나도 야식 따위는 전혀 생각이 없었으므로, 다른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다.

***

그렇게 무난한 나날들이 흘러갔다.

아마 불사조를 얻고 나서 보름쯤 지났을까.

딱히 하는 일 없이 빈둥대며 놀고먹다 보니, 날짜 감각이 무뎌진 느낌이다.

“오늘도 모험가 길드에 가볼 거니?”

“그래야지.”

나는 케른헴에 있는 내 집으로 앨리스와 함께 돌아와 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매일 아침 케른헴의 모험가 길드에 들르는 게 내 루틴이다.

의뢰를 수행하러 가는 것은 아니다. 뭔가 특별한 몬스터라도 나타난 게 아닌 이상은, 몬스터 몇 마리를 잡고 푼돈을 받기에 나는 너무 커버렸다. 그런 일을 하는 것은 고급인력 낭비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줄기차게 들르는 이유는 편지 때문이다. 나는 내게 용건이 있으면 그곳으로 편지를 보내라고 했기 때문에, 정기적으로 찾아가서 확인해야 한다.

“그럼 나도 같이 가면 안 될까? 너무 심심하단 말이야.”

“그건 안 되지. 카트카 공방전에 케른헴 출신 모험가와 용병들도 참여했었는데... 네 얼굴을 알아보는 사람이 분명히 있을걸?”

카트카보다는 덜 하겠지만, 여기도 티안브리스의 외모를 알고 있는 사람이 더러 있다. 특히나 모험가들이 득실거리는 모험가 길드라면 더욱.

“이렇게 염색까지 했는데?”

앨리스가 자신의 금발을 귀 뒤로 쓸어넘기며 물었다.

사람들이 티안브리스를 묘사할 때 가장 먼저 말하는 것이 붉은색 머리카락이기 때문에, 내가 마법 공방에서 염색약을 구해서 금색으로 염색시켜줬다.

“그래도 위험해. 얼굴은 똑같잖아.”

“나도 얼른 모험가가 되구 싶은데....”

앨리스가 테이블에 턱을 내려놓으며 시무룩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솔직히 강력한 마법들을 잔뜩 배웠는데, 집에만 갇혀서 전혀 쓸 기회가 없으니 답답하긴 할 것이다.

“조금만 더 참아봐. 중부지방에 가면 모험가 일을 하든, 용병 일을 하든 뭐든지 네 마음대로 할 수 있을 테니까.”

“......언제 갈 건데?”

“흠, 글쎄. 밀러 백작한테 편지가 오면 바로 가야지? 그 편지가 왔나 확인하러 모험가 길드에 들르는 거고.”

현재 내가 기다리고 있는 편지는 세 개다.

밀러 백작의 상급 마법서 건,

청색 마탑의 마안 감정 결과 건,

황색 마탑의 라이트닝 블래스트 처분 건.

저 세 곳 중, 먼저 편지를 보내오는 쪽으로 움직일 생각이다.

‘그러고 보니... 메두사 마안 감정은 대체 언제 끝나는 거야?’

두 개의 마안 중 하나는 내가 갖고 있다.

저주를 막는 부적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생각보다 요긴하게 잘 쓰고 있었다. 살다 보니 의외로 저주를 맞을 일이 많았다.

그런데 나머지 마안은 아직도 감감무소식이다. 메두사와 마찬가지로 석화시키는 능력이 있다고 했는데, 사용법을 알아내기까지 시간이 좀 걸릴 거라더니, 진짜로 오래 걸리고 있다.

뭐, 그건 별로 급한 건 아니다. 청색 마탑의 대스승이자, 클로이의 은사인 니콜스가 내게 사기를 칠 리도 없고.

“아무튼, 나는 나갔다 올 테니까 얌전히 있어. 심심하면 동화책이라도 읽고 있든가.”

“그래애....”

나는 축 처져서 대답하는 앨리스를 뒤로하고, 모험가 길드를 향해 집 밖으로 나섰다.

이제 본격적으로 겨울이 시작된 모양인지, 아직 어둑한 하늘에서 눈이 살포시 내리고 있었다.

“아─”

올해 첫눈이었으므로, 입을 쩍 벌리고 한 입 먹어줬다. 이 세계의 눈은 청정하다.

그렇게 동네 바보 형처럼 하늘을 향해 입을 벌리고 한동안 걸으니, 곧 모험가 길드에 가까워졌다. 이곳 모험가들에게 나는 좀 유명하므로, 이미지 관리를 위해 입을 다물고 똑바로 걸어서 입장했다.

─끼이익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모험가 길드 내부는 텅텅 비어있다시피 했다. 원래대로라면 이 시간에도 일감을 찾아온 사람들로 인해 북적거리겠지만, 겨울에는 해가 늦게 떠서 모험가들도 좀 늦게 나오는 경향이 있다.

바로 접수대로 다가갔다. 접수대에는 길드 여직원이 자리에 앉아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똑똑. 노크하듯 접수대를 두드리자, 정신을 차린 여직원이 인사하며 입이 늘어지게 하품했다.

“......으음? 아, 엘 씨. 오늘도 아침 일찍부터 나오셨네요. 하아암─.”

입에 손가락 넣어보고 싶다.

“예, 안녕하세요. 어제도 제 앞으로 온 편지는 없었습니까?”

“아, 있었어요. 그것도 두 통이나. 잠시만요.”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힘껏 기지개를 켜고는, 안쪽에 있는 서랍장에서 편지를 꺼내왔다.

“자, 여기요. 저 이런 편지는 처음 봐요. 하여간 능력도 좋으시다니깐.”

그녀가 두 통의 편지를 포개서 건넸다.

그중 위에 있는 것은, 밀러 백작이 보낸 것이었다. 편지지도 고급스러웠지만, 실링 왁스에 밀러 백작가의 인장까지 찍어서 봉인해둔 것이, 마치 받는 나까지 귀족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했다.

나는 즉시 봉인을 뜯어서 편지를 확인했다.

쫀득쫀득한 게 뜯는 맛이 있었다.

“오옷...!”

“......? 왜 그러세요?”

“아, 그럴 일이 좀 있어서요. 흐흐흐.”

편지지에는 전격 계열의 상급 마법서가 준비됐으니, 어서 와서 수령 하라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드디어 브룩스 자작과의 전면전을 끝낸 모양이다.

생각보다는 좀 빨리 끝난 감이 있었다. 승리했겠지? 뭐, 당연히 승리했으니까 마법서를 구할 여유가 있었을 것이다.

나는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거리며, 두 번째 편지를 확인했다.

‘발신인은...... 청색 마탑??’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이건 청색 마탑의 니콜스로부터 온 편지였다.

내용은 마안의 사용법을 알아냈다는 것.

하지만 그냥 사용할 수는 없고 약간의 개조가 필요하다고 하는데, 원한다면 자기가 개조까지 해줄 테니 내 의사를 알려달라는 내용이었다.

‘흠... 이건 선택의 여지가 없네.’

물론 선택은 내 몫이지만, 딱히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나는 개조를 할 줄 모르니까.

‘그럼 청색 마탑에 바로 답장을 보내고... 밀러 백작령으로 출발하면 되겠군.’

대충 동선이 그려졌다.

일단 왕국 중부에 있는 밀러 백작령으로 가야 한다. 거기서 상급 마법서도 수령하고, 앨리스의 신분도 만들어줄 생각이다.

그러다가 별일 없으면, 왕국 서부에 있는 황색 마탑으로 가보는 것도 괜찮을 듯했다. 동부지방인 여기서부터 가는 건 굉장히 멀지만, 중부에서 가는 건 그나마 덜 머니까.

그렇게 결정한 나는, 즉시 발걸음을 옮겼다.

떠나기 전에 잠깐 들러볼 데가 있다.

***

체스터 백작성의 지하 감옥 3층.

티안브리스가 수감 되어있는 방으로 다가가자, 문을 지키고 있던 기사가 반가운 기색으로 인사해왔다. 일전에도 있었던 그 수다스러운 중년의 기사였다.

“오, 엘 군. 용족을 만나러 왔나?”

“예.”

“이틀에 한 번꼴로 그녀를 만나러 오는 것 같은데... 혹시 정분이라도 난 거 아닌가? 하하하! 농담일세. 자네가 뭐가 아쉬워서 그런 오만한 학살자와 정을 통하겠나. 자, 들어가 보시게.”

나는 이번에도 ‘예’라고 한마디만 했다.

아무튼 그가 자물쇠를 풀어줬기에, 바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드르륵....

들어가자마자 눈에 들어온 것은 책상에 앉아서 끙끙대고 있는 티안브리스였다. 나는 그녀에게 다가가며 입을 열었다.

“야, 그래도 사람이 왔으면 아는 체는 해야 할 거 아니야.”

“방해하지 마라!”

머리를 부여잡고 있는 티안브리스가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어쭈? 이게 뭘 잘했다고 짜증이야? 지금 짜증 내야 할 사람은 바로 나라고. 너한테 사기당한 나 말이야.”

“내, 내가 무슨 사기를 쳤단 말이냐!”

“아니, 네가 네 입으로 불 속성 마법이면 뭐든 금방 배운다고 그랬었잖아.”

내가 이틀에 한 번꼴로 여길 찾아오는 이유가 이거였다. 티안브리스를 쪼아대기 위해서.

그녀는 자신감에 가득 차서 큰소리 빵빵 쳤던 것과는 달리, 인페르노 습득이 매우 지지부진했다. 분명 열심히 공부하고는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마법서를 들여다보고 있으니까. 그러나 아직까지 성과가 없었다.

“벌써 보름 가까이 지났는데, 이게 금방이야? 어? 이게 금방이냐고.”

“......나, 나도 노력하고 있다.”

티안브리스가 나를 올려다보며 해명했다. 거짓말은 아닌 모양인지, 늘 오만해 보이던 그녀의 눈가에 다크서클이 짙게 내려앉아 있었다.

하지만 그딴 건 상관없다. 나는 적, 그것도 나를 죽이려 했던 녀석에게 동정심 따위는 가지지 않기에, 계속해서 갈구며 그녀를 몰아세웠다.

“노력? 노력이 중요한 게 아니라 결과가 중요한 거라고. 너도 예전에 티안브.......”

티안브리켄이 불사조를 쓰기 위해 노력했지만 성과가 없다고 뺨까지 때렸잖아. 라고 말하려다가 참았다. 아무리 그래도 죽은 동생까지 들먹거리는 건 좀 너무하지 싶다.

“......아무튼. 왜 이렇게 오래 걸리는 건데? 위대한 레드 드래곤의 후예 어쩌고저쩌고하더니만... 사실 그것도 거짓말인 거 아니야?”

“이익...! 아무런 실습도 하지 못하고 책으로만 마법을 습득하는 게 어디 쉬운 일인 줄 아느냐?”

“흠... 그건 좀 일리가 있네.”

나름대로 타당한 변명이었다.

티안브리스는 마법을 공부하는 동안 그 어떤 테스트도 해볼 수 없고, 오직 머릿속에서 해결해야 한다. 복잡한 수학 문제를 눈으로만 푸는 것과 비슷하달까. 약간의 핸디캡이 있는 셈이다.

“그래, 뭐. 너의 고충은 대충 알겠고... 그럼 언제쯤 배울 수 있을 것 같은데? 오늘 안에 배우긴 어렵겠지?”

나는 오늘 밀러 백작령으로 출발할 계획이기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넌지시 물었다.

“지금 나를 놀리는 것이냐? 아직 반의반도 채 이해하지 못했는데!”

“......뭐? 반의반? 하아.”

나는 티안브리스의 솔직한 고백에 한숨을 토해냈다.

보름 동안 1/4밖에 이해하지 못했다니.

오늘 습득하기는커녕, 앞으로 한 달 반가량은 더 걸릴 듯했다.

‘그럼 인페르노는 밀러 백작령에 다녀온 다음에나 얻어낼 수 있겠군....’

내가 틱틱대며 티안브리스를 갈구긴 했지만, 솔직히 그녀의 능력은 인정하는 바다.

불 속성에 탁월한 재능을 가진 티안브리스조차 이렇게나 습득에 애를 먹는 거라면, 그건 인페르노 자체가 굉장히 어려운 마법이라는 뜻이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훨씬 더 오래 걸리겠지.

“흐음. 좀 더 시간을 앞당길 수는 없나?”

“흥, 네놈이 할 일 없는 백수처럼 수시로 들락거리며 나를 방해하지만 않는다면 훨씬 빨라지겠지.”

“와... 너는 진짜 말을 이쁘게 하는 재능이 있네. 그 재능이 학습 능력 쪽으로 갔어야 하는데 말이야.”

나는 그 표독스러운 말투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차피 밀러 백작령으로 떠나면 당분간은 갈구러 오지도 못한다.

“......아니면 네놈이 혹시 조, 조언을 좀 해준다든지...?”

티안브리스가 자존심을 버리고 은근슬쩍 나를 올려다보며 그런 제안을 해왔다. 그녀는 내가 인페르노를 다룰 수 있다고 알고 있기 때문이다.

“조언? 내 조언을 원해?”

“......그렇다.”

“똑똑히 새겨들을 거지?”

“......그, 그래. 경청하지.”

“좋아, 그럼. 내가 무려 두 배로 빨리 배울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지.”

“......그, 그런 방법이? 어, 어서 알려다오!”

“어떻게 해야 두 배로 빨리 배우냐면.......”

꿀꺽.

티안브리스가 침을 삼키며 귀를 쫑긋했다.

“두 배로 노력해!!!”

나는 그런 꼰대 같은 조언을 하고 떠났다.

─으...아아아아악!!! 악악악!!!

지하에 히스테릭한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