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등하거나, 그 이상 (4)
‘인페르노’는 불 속성 고대의 마법이다.
등급이 세분화 되기 이전 시대의 마법이기에 정확한 등급은 알 수 없지만, ‘라이트닝 블래스트’와 동급이 아닐까 싶다.
그래도 등급을 어림잡아 추측할 수는 있다.
‘라이트닝 블래스트’는 용족의 고유 마법인 불사조를 이겨냈으니, 고유 마법에 준하는 수준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당연히 ‘인페르노’도 그 정도 수준은 될 것이다.
즉, 아무나 배울 수는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마침, ‘아무나’가 아닌 존재가 내 눈앞에 있다. 레드 드래곤의 피를 물려받아 불 속성에 대한 탁월한 재능이 있으며, 고유 마법까지 다룰 수 있을 정도로 수준 높은 마법사가.
“진짜? 진짜로 아무리 어려운 마법이더라도 불 속성이면 빠른 시일 내에 습득할 자신이 있다고?”
“흥, 같은 말을 반복하게 하지 마라.”
“앗따거. 이 까칠한 자신감 좀 봐. 흐흐흐.”
“......?”
내가 실실 웃음을 흘리자, 티안브리스가 의문과 경멸이 뒤섞인 표정으로 날 흘겨봤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곰곰이 생각에 빠져들었다.
‘모든 조건에 딱 들어맞는단 말이지....’
티안브리스만큼 적합한 인물이 또 있을까.
어쩌면 앨리스도 가능할 수도 있겠으나, 그녀는 모든 면에서 티안브리스보다 한 수 아래다. 마법의 위력도, 마나량도 부족하니, 마법을 배우는 것 역시 마찬가지일 터. 굳이 원조를 제쳐두고 하위 버전인 앨리스를 통할 필요는 없다.
‘나한테 적대적이지만... 그건 딱히 상관없을 것 같고.’
나에게 적대적인 존재에게 강력한 고대의 마법을 넘겨준다는 것은, 일반적으로는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하지만 지금은 일반적인 상황이 아니다.
자기가 어쩔 텐가? 평생 이곳에 갇혀서 마나를 뽑힐 운명인데. 마나를 사용하지 못하는 티안브리스는 내게 아무런 위협이 되지 못한다. 눈 감고도 이길 수 있다.
오히려 나를 향한 적개심 덕분에, 꿈속에서 마법에 맞아 죽기가 더 수월하기만 할 것이다.
‘뭐, 맞아 죽으면 습득이 아니라, 훔쳐서 마법을 회수하면 되니까.’
충분히 시도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
나는 그녀를 음흉하게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내가 마법 하나 가르쳐줄까?”
“마법? 네 녀석은 전격 마법사였을 텐데? 나는 전격 마법에는 흥미가 없다.”
“불 속성 마법인데?”
“......불 속성? 아니, 됐다. 어차피 나는 이곳을 벗어날 수 없는 몸. 새로운 마법을 배워봤자 무의미하겠지.”
티안브리스는 불 속성이라는 말에 잠시 흥미가 동하는 듯 보였으나, 이내 체념해버렸다.
계속 인간을 낮잡아보며 하대하는 말투를 쓰면서, 인간에게 붙잡힌 자신의 처지는 또 순순히 받아들이는, 오묘한 미스매치가 있었다.
“어허, 그래도 희망을 가지고 살아야지. 혹시 알아? 열심히 마나를 제공해주다 보면, 언젠가는 체스터 백작가에서 풀어줄지.”
“흥, 치워라. 인간이라는 속 좁은 종족이 그럴 리는 없으니. 나는 내 상황을 잘 이해하고 있고, 쓸 수도 없는 마법은 배울 생각이 없다.”
그녀는 콧방귀를 뀌며 내 말을 일축했다.
솔직히 틀린 말은 아니다.
티안브리스는 지은 죄도 크고, 여전히 강력하다. 지금이야 마법진과 구속 고리에 의해 마법을 쓰지 못하는 상태지만, 저것만 사라지면 예전의 힘을 되찾는데 뭘 믿고 풀어주겠는가?
내가 봐도 그녀가 풀려날 가능성은 없었다.
“그래? 그럼 어쩔 수 없지. 뭐... 다시 생각해보니까 어차피 가르쳐줬어도 너에겐 무리였을 것 같네. 이게 고대의 마법이라 아무나 배울 수 있는 게 아니라서.”
“......고대의 마법?”
“그래. 아무튼, 관심이 없다고 하니 난 이만 가봐야겠어. 푹 쉬면서 마나나 열심히 생산해라.”
그렇게 말하며 의자에서 일어나 문을 향해 걸어가니, 등 뒤에서 급박한 티안브리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 잠깐!”
“......? 뭐?”
“그 고대의 마법이란 것에 대해서 이야기를 좀 들어보고 싶구나.”
거만한 자세로 소파에 앉아있던 그녀는,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나 엉거주춤한 자세로 서 있었다.
“쓸 수도 없는 마법은 필요 없다며?”
“그, 그건 일반적인 마법을 말한 것이지, 고대의 마법이라면─”
“됐어. 말했잖아? 너한테는 무리야.”
“내가 배울 수 없는 불 속성 마법은 없다!!!”
“......지금 소리 지른 거?”
“내, 내가 배울 수 없는 불 속성 마법은 없다.”
티안브리스는 치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작은 목소리로 다시 말했다.
“흠... 그럼 이야기는 좀 해볼까? 일단, 물.”
“물?”
“물 한잔 가져오라고.”
“.......”
***
앨리스가 있는 여관으로 돌아가는 길.
티안브리스와의 이야기는 그럭저럭 잘 끝났다. 그녀는 고대의 마법에 대해 믿을 수 없을 정도의 흥미를 보였다. 심지어 내 물심부름까지 해줄 정도로 말이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마법사는 마법사인 모양이다. 나는 아직까지 ‘고대의 마법’이라는 단어에 흥분하지 않는 마법사를 본 적이 없다.
아무튼, 고대의 마법을 향한 그 엄청난 열정과 성의를 보면, 인페르노를 맡겨봐도 괜찮을 것 같았다. 매일매일 밤을 새워서라도 공부할 기세였다.
‘......어차피 할 일도 없는 여자니까.’
하지만 당장 넘길 수는 없었다.
만에 하나 앨리스의 꿈속에서 불사조를 습득하는 데에 실패할 가능성도 상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럴 경우 불사조는 티안브리스의 꿈속에서 얻어내야 하는데, 그럼 굳이 인페르노를 넘길 필요가 없다.
그리고 어차피 지금은 밤이라서, 마법서를 맡겨놓은 귀중품 보관소도 문을 닫았다.
‘시간이... 거의 자정이 다 됐군.’
품에서 회중시계를 꺼내 시간을 확인해보니 벌써 자정에 가까워져 있었다. 나는 한시라도 빨리 앨리스의 꿈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렇게 경보하듯 걷다 보니 머지않아 여관에 도착할 수 있었다.
─끼이익
문을 열고 들어간 방 안에는, 여전히 앨리스가 침대에 누워서 새근새근 자고 있었다. 하긴, 앨리스로서도 첫 마나 탈진이었으니, 아마 꼬박 하루 정도는 잘 것이다.
‘......어쩐지 기분이 좀 이상하네.’
지금까지 티안브리스를 만나다가 돌아왔는데, 또 티안브리스가 침대에 누워서 자고 있는 것 같아서 상당히 묘한 기분이었다. 염색을 시켜야 하나?
‘아무튼... 무슨 꿈을 꾸고 있으려나. 간단한 꿈이면 좋겠는데.’
앨리스는 인간이 된 지 얼마 안 됐지만, 그렇기에 아직 때 묻지 않아서 보통의 인간보다는 순수한 면이 있다. 솔직 단순하다고 해야 할까.
이는 꿈에서도 나타난다.
지난번에 회복 마법을 복제했을 때 앨리스가 꾼 꿈은, 무척 기쁜 얼굴로 회복 마법을 하염없이 사용할 뿐인 꿈이었다.
물론 지하 묘지에서 슬라임이나 잡아먹고 살았던 초라한 삶에서, 강력한 용족 마법사의 인생으로 탈바꿈했으니 앞으로 성격이 어떻게 변할지는 모를 일이다.
어쨌든 간에 이번 꿈도 지난번처럼, 새로 얻은 마법을 얌전히 써대는 내용이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하며 그녀의 꿈속으로 들어갔다.
─화아악!
“크헉...?”
난데없이 무언가가 내 복부를 강타했다.
“뭐, 뭐야?”
“취익! 너, 나약하다!”
예고 없이 날 공격한 것은 오크였다.
도대체 이게 어찌 된 영문인지 채 파악하기도 전에, 놈이 거대한 전투 도끼를 머리 위로 치켜들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마법을 캐스팅해 반격에 나섰다.
─파지직!
[금일 사용 가능한 ‘스태틱 쇼크’ - ∞회]
“꾸에엑!”
녀석이 바닥에 쓰러졌을 때, 비로소 주변의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이곳은 전쟁터였다. 수많은 인간과 오크가 뒤엉켜서 싸우고 있는 전쟁터.
앨리스가 카트카 공방전 당시의 꿈을 꾸고 있는 건가 싶었는데, 그건 또 아닌 듯했다. 지형이나 병력의 종류와 규모 등등, 여러 요소가 미묘하게 달랐다.
‘이상하네. 왜 이런 꿈을 꾸고 있...... 윽.’
주변을 살피기 위해 발걸음을 옮기려는 순간, 다리에서 묵직한 통증이 몰려왔다.
아니, 다리뿐 아니라 온몸이 쑤셨다.
고개를 내려 몸을 살펴보니, 여기저기에 자잘한 상처와 핏자국이 그득했다.
나는 분명히 방금 꿈속으로 들어왔는데 이렇게 상처가 있는 걸 보면, 아마 앨리스의 꿈속에 이미 존재하고 있던 ‘엘’에게 내가 덧씌워진 것 같았다. 빙의 자체는 이상한 일이 아니다. 전에도 이런 적이 몇 번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
‘......왜 내가 오크 따위한테 처맞은 건데?’
이것은 상당한 미스테리였다.
나는 혼자서도 이 전장에 있는 모든 오크를 처치하고도 품이 남는 사람이다. 그 정도로 나와 오크 사이에는 어마어마한 수준 차이가 있는데, 어떻게 내 전신에 이런 복합적인 상처를 입힌 걸까.
앨리스는 내 실력을 알고 있다. 내가 정확히 얼마만큼 강한지는 알지 못해도, 오크한테 처맞을 실력이 아니란 것 정도는 분명하게 알고 있다.
그런데도 이렇게 됐다?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다.
앨리스는 ‘약한 엘’이 존재하는 세계관의 꿈을 꾸고 있었던 것이다. 거기에 진짜 내가 덧씌워지며 다시 강해진 거고.
“취익! 죽어라, 인간!”
“아잇, 좀 귀찮게 굴지 마. 바빠 죽겠는데.”
“바빠, 죽지 말고, 나한테, 죽어라, 취익!”
나는 이미 맛집이라고 소문이라도 난 모양인지, 가까이에 있던 오크들이 하나둘씩 내게 달려들었다.
“이것들이? 내 당장 블리자드로 너희들을 한꺼번에... 아니, 그건 안 되겠군.”
앨리스는 내가 블리자드를 쓸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그리고 그렇게 눈에 띄는 마법을 함부로 사용하다가는, 앨리스가 위화감을 느껴서 꿈이 깨질 염려가 있다.
─파지직! 파지직!
“취이이엑!”
“꾸으윽...!”
내게 덤벼들던 오크들이 다양한 신음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흠... 이거 강한 마법은 쓰지 말아야겠네.”
앨리스가 의식적으로 그런 건지, 무의식적으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오크한테도 처맞는 엘’이 존재하는 꿈을 꾸고 있다. 그러니 일단은 내가 너무 나대지 않는 편이 좋을 듯했다.
‘......대체 왜 나를 그런 허접으로 만든 거지? 아무튼 얼른 앨리스를 찾아봐야겠군.’
뭐, 불사조만 얻을 수 있다면 나를 머리가 두 개인 ‘트윈 헤드 엘’로 만들어도 개의치 않는다.
어쨌든, 나는 비교적 은밀하게 사용할 수 있는 스태틱 쇼크로 오크를 처치해가며 앨리스를 찾아 나섰다.
파지직! 짜릿한 전기에 감전되어 바닥에서 몸을 비틀고 있는 오크의 멱살을 붙잡았다.
“혹시 이 근처에서 붉은 머리의 여자를 본 적 있나?”
“주, 죽어라, 인간, 취익!”
“아니, 본 적 있냐고.”
“취, 취익! 오크는, 인간을, 죽인다.”
“......역시 말이 안 통하는 건가?”
역시 ‘인간과 싸우는 오크’ 정도로만 구현돼서 그런지 인간에 대한 적대감을 표출하는 것 외에 정상적인 대화는 불가능한 듯 보였는데, 원래 오크는 이렇게 대화가 통하는 듯 안 통하는 듯 멍청한 말투를 사용하기 때문에 좀 헷갈렸다.
어쩔 수 없지. 직접 발로 뛰는 수밖에.
나는 멱살을 붙잡고 있던 오크를 마무리하고, 다시 전장을 헤집으며 돌아다녔다. 힘을 감춘 채 일부러 살살 싸우려니 온몸이 근질근질했지만, 별 어려움은 없었다. 오크 따위는 맨손으로도 충분하니까.
그때, 저편에 밸런스 파괴자가 등장했다.
“크오오오오!!”
돌연 모습을 드러낸 트롤이. 육중한 방망이를 휘두르며 인간을 때려잡기 시작한 것이다.
“커허억!”
“사, 살려....”
퍽! 원샷 원킬이었다. 트롤이 방망이를 한 번 휘두를 때마다, 인간은 저 멀리 날아가거나 어딘가가 부서져서 죽었다.
트롤이야 원래 인간을 압도하는 체급을 자랑하지만, 저건 좀 이상했다.
‘......? 저 모험가들은 또 왜 저렇게 약하지?’
트롤은 내가 알고 있는 그대로의 수준이었는데, 트롤과 싸우고 있는 모험가들이 너무 약했기 때문이다. B급 모험가 정도만 되면, 이기지는 못해도 저리 무기력하게 당하진 않는다.
내가 의아하게 그들을 바라보고 있던 순간,
─화르르륵!
회전하는 불덩어리, 플레임 오브가 날아와 트롤에게 적중했다.
“크오! 크오! 크오오...!”
순식간에 몸이 불타올라 울부짖던 트롤은, 이리저리 날뛰다가 이내 바닥에 쿵, 하고 쓰러졌다.
곧, 쓰러진 트롤을 향해 누군가가 다가왔다.
마법을 쏜 장본인이자 꿈의 주인인 앨리스였다. 그녀는 살짝 고개를 치켜들어 콧대를 세우고, 트롤을 내려다보는 듯한 자세로 여유롭게 걸어오고 있었다.
나는 반가운 마음으로 앨리스를 불렀다.
“오, 앨리─”
“대, 대단하십니다! 마법사님!”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평생 이렇게 훌륭한 마법은 처음 봅니다!”
나의 부름은 갑작스럽게 앨리스에게 몰려든 사람들에 의해 묻혀버렸다. 그들은 호들갑을 떨며, 입에 침이 마르도록 그녀를 칭찬했다.
“이렇게 강력한 트롤을 마법 한 번에....”
“당신은 제 생명의 은인입니다!”
칭찬이 거듭될수록 앨리스의 콧대는 점점 더 높아져만 갔다. 저러면 밑이 보일까 싶을 정도로 고개가 올라가던 앨리스는, 곧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가슴을 쭈욱 내밀고, 여전히 깁스라도 한 것처럼 고개를 꼿꼿하게 세운 채 나를 향해 다가왔다.
“엘, 몸에 그 상처들은 뭐야? 너도 몬스터에게 당한 거니?”
“어? 아마 그럴걸?”
“으이구, 역시 내가 지켜줄 수밖에 없겠네.”
“......?”
앨리스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을 이었다.
“내 뒤에 꼭 붙어있어. 몬스터는 내가 강력한 불 마법으로 다 처리해줄 테니까 말이야.”
아.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왜 내가 오크한테 처맞고 있었는지, 왜 다른 사람들이 이상하리만치 약했는지를.
앨리스는 자신이 캐리하는 꿈을 꾸고 있었다.
몬스터에게 고전하는 사람들을 구해주고, 몬스터를 처치해서 승리의 주역이 되는 꿈을.
카트카 공방전에서의 내 행보를 그대로 답습했다고 볼 수 있었다. 방금 앨리스가 나에게 지켜줄 테니 가까이에 붙어있으라고 한 것도, 카트카 공방전에서 내가 앨리스에게 했던 말이다.
‘앨리스 이녀석... 너도 주인공이 되고 싶었구나?’
나는 그녀의 귀여운 장단에 맞춰주기로 했다.
“그래, 앨리스...! 나 좀 지켜줘. 너는 나와 대등, 아니 그 이상이야! 이 상황을 타개해낼 수 있는 건 오직 너뿐이라고!”
“그, 그러니? 그럼 내, 내가 없으면 안 되겠네.”
앨리스는 내 반응이 마음에 들었는지, 얼굴을 붉히고 입술을 씰룩였다. 나는 그런 그녀의 어깨를 붙잡고 흔들며 재촉했다.
“어서 네가 가진 가장 강력한 마법으로 이 전장에 있는 오크들을 모조리 해치워줘...! 나를, 그리고 이곳에 있는 모두를 구원해줘!!”
“그,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알겠어.”
이제는 귀까지 빨개진 앨리스가 고개를 끄덕거리며 앞으로 몇 발자국 걸어 나갔다.
─번쩍!
화르륵! 앨리스의 머리 위에 커다란 불덩어리가 생성되며 주변을 환히 밝혔다.
“오오오!!”
“저, 저 불덩어리는?! 대단해!”
“마법사님이 강력한 마법을 쓰신다!”
역시나 꿈속의 인물들은 앨리스를 향해 무한한 찬사를 보냈다.
점성 높은 용암처럼 꿀렁거리며 움직이던 불덩어리는 서서히 새의 형태를 갖춰갔다. 이윽고 완성된 불사조는, 날개를 세차게 펄럭이며 전장을 가로질렀다.
─화르르르르륵!
“저건... 불사조다! 불사조야!”
“마법사님이 오크를 끝장내실 생각인가 봐!”
“모두 걸리적거리지 말고 마법사님 곁으로 모여!”
순식간에 추종자들이 앨리스의 주위로 몰려들었다. 그들이 쏟아내는 칭찬 어택에, 앨리스는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우쭐하고 있었다.
‘잘됐군. 지금 불사조에게 달려들면 되겠어.’
앨리스에게 트라우마를 남겨주고 싶지 않았는데, 마침 사람들이 몰려들어 시야를 가려준 덕분에 내가 죽는 모습은 보이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즉시 전장을 누비고 있는 불사조를 향해 달려들었다.
─화르르르르륵!
‘끄으...아아악!!!’
전신이 불길에 휩싸이며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이 엄습했고, 나는 그렇게 불에 타죽었다.
[꿈속에서 마법 ‘서먼 피닉스’에 맞아 사망하여 조건을 달성했습니다.]
[습득하시겠습니까? 훔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