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트카 공방전 (7)
나는 고개를 들어 하늘 높이 날아오른 불사조를 응시했다.
‘저걸 묶기 위해서는.......’
하늘을 날아다니는 존재를 붙잡아두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높게 날고 있을 때는 마법을 맞히기조차 어렵다. 녀석이 전장을 불태우기 위해 저공비행을 할 때나 가능할 뿐.
‘......가까이 붙을 각오를 해야겠군.’
일단 불사조를 유인해서 한 번은 부딪혀야 했다. 파직! 나는 즉시 라이트닝 아머를 캐스팅해 몸을 감쌌다.
이윽고 불사조가 활공하며 내려오기 시작했다. 방향은 내가 서 있는 곳과 멀지 않은 쪽. 조금 전에 마법을 몇 번 날렸던 것이 녀석을 자극한 모양이었다.
“바로 가겠습니다! 준비하세요!”
나는 클로이에게 그렇게 외치며, 불사조가 지나갈 것으로 예상되는 경로로 달려 나갔다.
곧, 정면에서 불사조가 날아오기 시작했다.
─화르르르르르!!
스쳐 지나가는 모든 것들을 불태우면서.
“흐아악!”
“살려.......”
“피, 피해!”
운 좋게 화를 피한 인간과 몬스터가 한마음 한뜻으로 달아났지만, 불사조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녀석의 이글거리는 두 눈은 오롯이 나를 향하고 있었다.
‘......온다!’
불사조가 가까워지자 얼굴에 화끈거리는 열기가 느껴진다.
나는 나를 보호하고 있는 전기의 갑옷을 최대 위력으로 끌어올림과 동시에, 얼음덩어리를 생성해냈다.
─사사사삭!
[금일 사용 가능한 ‘프로스트 오브’ - 1회]
회전하는 얼음덩어리를 본 불사조는 가소롭다는 듯, 오히려 속도를 올리며 날아들었다. 마치 그 마법 따위로는 자신을 막을 수 없다고 말하는 것처럼.
프로스트 오브와 불사조는 내 지척 거리에서 충돌했다.
─콰앙! 치이이이익!
아까와 같은 힘겨루기가 벌어졌다.
녀석은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전보다 더욱 격렬하게 날개를 퍼덕이며 얼음덩어리를 서서히 밀어냈다.
─후웅! 후웅!
불사조가 날갯짓을 할 때마다 엄청난 열풍이 불어닥쳤다. 거기에 얼음덩어리가 증발하며 잔뜩 발생하는 수증기까지 겹쳐지니, 습식 사우나가 따로 없었다.
‘쉴드가 있는데도 열기가 느껴질 정도라니....’
프로스트 오브는 오래 버티지 못한다. 아까도 불사조에게 금세 소멸당했으니까. 이건 그저 잠깐의 시간을 버는 용도에 불과했다. 불사조를 묶을 마법은 이게 아니었다.
나는 속박의 저주를 사용했다.
─츠츠츠...
[금일 사용 가능한 ‘체크 메이트’ - 3회]
오브를 밀어내고 있는 불사조 주위에서, 짙은 황색을 띤 기운이 소리 없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그 기운은 곧, 녀석의 전신을 감싸며 옥죄기 시작했다.
녀석은 이질적인 기운에 저항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날개를 움직였다.
─후웅! 후웅! 후웅!
살갗이 익어버릴 듯한 열기가 휘몰아쳤다.
“크윽...!”
녀석은 놀랍게도 승격 이후 더 강력해진 속박의 저주를 견뎌내고 있었다.
“......너는 내가 꼭 습득한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몰라 횟수를 아껴두려 했지만, 불가피하게 체크 메이트를 한 번 더 시전했다.
─츠츠츠...
새롭게 피어오르며 한층 더 짙어진 황색 기운이 불사조를 잠식해나갔다.
─후웅! 후웅... 후웅......
날갯짓이 눈에 띄게 느려지기 시작했다.
불사조가 내뿜는 열기는 그대로였기에 프로스트 오브는 완전히 소멸해버렸지만, 이윽고 녀석의 움직임도 완전히 멎었다.
그것을 확인한 나는 즉시 뒤로 물러나며 목이 터져라 소리쳤다.
“클로이!!!”
순간, 대기가 메마르는 듯한 느낌이 들더니,
지면에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했다.
‘......?’
고개를 들어 위를 살펴보니, 구름 한 점 없이 청명했던 하늘에 비구름이 온통 끼어있었다. 그 비구름은 마치 의지를 가진 것처럼 내 위쪽으로, 아니 정확히는 불사조 위쪽으로 뭉게뭉게 모여들었다.
비구름은 더 뭉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극한까지 응축된 뒤 움직임을 멈췄다.
얼음이 몇 조각 투둑, 하고 떨어졌다.
‘저건... 우박인가?’
고작 저걸로 뭘 어쩌겠다는 건가 싶은 찰나,
─후두두두두둑!!!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듯, 어마어마한 수의 얼음송곳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미, 미친...!”
나는 눈앞의 불사조에게 푹푹 내리꽂히는 팔뚝 만한 얼음송곳을 보고, 더욱 뒤로 물러나야만 했다.
─푹! 푹! 푹! 푹!
말 그대로 끝도 없이 쏟아졌다.
불사조의 몸에 틀어박힌 얼음송곳은 빠른 속도로 녹아내렸으나, 떨어지는 숫자가 너무 많았다. 미처 다 녹기도 전에 새로운 얼음송곳이 틀어박혔다.
불사조의 전신에 빈틈이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클로이의 고유 마법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불사조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됐음에도 불구하고 하염없이 쏟아지는 송곳은, 기어코 작은 빙산을 만들어내고 나서야 끝이 났다.
─주르륵
빙산 밑바닥에서 액체가 흘러나왔다.
“이건... 불사조의 피?”
는 아니고, 그냥 불사조 때문에 얼음이 녹아서 생긴 물이다.
“불사조는 소멸한......게 맞군.”
얼음 때문에 내부가 잘 안 보여서 잠시 긴가민가했으나, 나는 곧 불사조가 소멸했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저편에 보이는 티안브리스.
그녀가 구두를 벗고 이쪽을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내 경험상 여자가 신고 있던 구두를 벗고 맨발로 걷는 경우는 발이 너무 아프거나, 또는 정신이 나갈 정도로 빡돌아서다.
티안브리스는 당연히 후자로 보였다.
푸들푸들 떨리는 어깨가 그것을 방증한다.
‘저건... 내가 맡아야겠지.’
클로이는 티안브리켄을 죽였으며 고유 마법까지 쓴 상태다. 충분히 많은 일을 해주었고, 또한 지쳐있을 것이다.
스릉- 나는 불사조를 붙잡기 위해 잠시 넣어두었던 검을 다시 뽑아 들었다. 그리고 스트렝스와 라이트닝 아머를 새롭게 캐스팅했다.
─지이잉
─치직. 치직.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발걸음을 옮기려 할 때였다. 클로이가 나를 불러세웠다.
“엘, 용족이랑 싸우러 가는 거지? 같이 가.”
“괜찮으시겠습니까? 지치셨을 텐데요.”
마나 소모가 컸던 탓인지, 그녀의 얼굴은 조금 수척해져 있었다.
“아직은 괜찮아. 못 싸울 정도는 아니야.”
“......그럼 제가 전면에 나설 테니, 클로이 씨는 저를 지원하는 형식으로 가죠.”
“응, 그렇게 할게.”
지친 클로이가 직접 티안브리스를 상대하는 것은 무리다. 내가 메인으로 나서야 한다.
나는 클로이가 대답하자마자 즉시 티안브리스를 향해 달려 나갔다.
그녀도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기에, 얼마 달리지 않아서 그녀를 마주할 수 있었다. 나는 섣불리 달려들지 않고, 일단 잠시 멈춰 섰다.
“너는... 뭐지?”
티안브리스가 싸늘하게 노려보며 물었다.
“저, 저는 목숨을 구걸하러 왔습니다.”
“흥, 벌레 같은 것. 썩 꺼져라. 나는 하늘색 머리카락을 지닌 여자 마법사를 찾아서 죽여야 하니.”
그녀는 코웃음 치며, 나 따위는 관심 없다는 듯 손사래 쳤다. 자신의 불사조를 소멸시킨 클로이를 찾고 있는 모양이었다.
“하늘색 머리카락을 지닌 마법사요? 제, 제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습니다. 저를 살려주신다면 알려드리겠습니다!”
“어디에 있지? 당장 말해라. 올바르게 일러준다면 너를 살려줄 수도 있다.”
나는 손가락을 들어 티안브리스의 뒤쪽을 가리키며 경악했다.
“뒤, 뒤! 뒤에 있습니다!”
“뭣이?! 그게 정말이─”
그녀가 황급히 고개를 뒤로 돌린 순간,
─번쩍!
─꽈릉!
[금일 사용 가능한 ‘콜링 썬더’ - 3회]
하늘에서 날벼락이 떨어졌다. 티안브리스의 몸을 감싸고 있는 장막이 붉게 빛나며 벼락을 받아냈지만, 방심하고 있던 탓에 데미지는 들어갔다.
“크읏!”
티안브리스의 몸이 살짝 굽어지며 휘청거리는 사이, 나는 즉시 그녀에게 쇄도해 검을 휘둘렀다.
─탁!
‘......쉴드가 아니라 손으로 막는다고?’
의외의 대응이었다. 찰나의 순간이었음에도 순식간에 그녀의 손에 불이 붙더니, 내 검을 맨손으로 잡아냈다.
“......너였구나?”
돌연, 그녀의 입꼬리가 씨익 올라갔다.
“너였구나! 너였구나! 내게 벼락을 썼던 게!”
티안브리스는 눈은 부릅뜨고 입은 웃고 있는, 보기만 해도 소름이 오소소 돋는 표정을 지으며 불길에 휩싸여있는 주먹을 내게 휘둘러댔다.
‘미, 미친... 불주먹 뭔데!’
마법사인 그녀가 육체적인 능력이 떨어질 거라 여기고 근접전을 택했는데, 막상 붙어보니 그렇지만도 않았다.
불붙은 손으로 검을 막아낸 것이나, 휘둘러지는 주먹의 속도와 위력으로 미루어보면 그녀 역시 불로써 육체를 강화하는 수단이 있는 듯했다.
다만 육탄전을 벌인 경험은 별로 없는 모양인지, 공격이 단순해서 피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나는 그녀의 주먹을 요리조리 피해내며, 빈틈을 노려 다시 한번 검을 휘둘렀다.
─탁!
“하! 이따위 날붙이로 이 몸을 해할 수 없다는 걸 아직도 깨닫지 못했다니. 역시, 인간이란.”
맨손으로 내 검을 붙잡은 티안브리스가 가소롭다는 듯 이죽거렸다.
“너야말로 날붙이는 전기가 통한다는 걸 모르나? 역시, 잡종이란.”
“자, 잡종? 지금 뭐라고...... 끄으으읏!”
─치지지직!
내 손에서 뻗어나간 체인 라이트닝이 검신을 타고 그녀의 손으로 들어갔다. 즉발 타입이라 고른 마법이었지만, 고작 이걸로 큰 데미지를 줄 수는 없었다.
‘묶어두고 좀 더 강력한 마법을 써야겠어.’
─츠츠츠...
─츠츠츠...
[금일 사용 가능한 ‘체크 메이트’ - 0회]
나는 그녀에게 오늘 남아있는 속박의 저주를 모조리 걸어버렸다.
티안브리스는 별안간 피어오른 황색 기운이 끈덕지게 달라붙기 시작하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 네, 네 녀석! 내게 무슨 짓을?”
“절대 안 알려주지.”
적이 묻는다고 자신이 쓴 기술이 무엇인지 설명해주는 것은 멍청하기 짝이 없는 행동이다.
두 번 중첩된 체크 메이트는 절반의 성공을 거둔 듯 보였다. 티안브리스의 움직임이 현저하게 저하됐지만, 완전히 속박하지는 못한 상태였다.
나는 몇 발자국 뒤로 물러나며 거리를 벌렸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티안브리스를 향해 마법이 쏜살같이 날아들었다. 클로이의 지원사격이었다.
나 역시 지체 없이 마법을 캐스팅해 날리면서 협공했다.
─즈즈즈즈!
[금일 사용 가능한 ‘일렉트릭 오브’ - 3회]
“이, 이 하등한 것들이 감히...!”
약간의 문제가 있었다. 체크 메이트에 의해 티안브리스의 움직임이 제법 제한됐다지만, 마법은 멀쩡하게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녀는 순식간에 화염으로 이루어진 칼날을 날려 보내 클로이의 마법을 중간에서 잘라버리고, 불의 방패를 생성해서 내 오브를 막아냈다.
‘......완벽하게 대응하는군.’
아니, 차라리 잘 됐다. 어차피 불사조를 한 번 더 소환하도록 유도해야 했는데, 마법을 못 쓰게 됐으면 그것도 불가능했을 테니.
티안브리스는 여전히 황색 기운과 씨름하며 짜증스럽게 외쳤다.
“인간! 어서 나를 감싸고 있는 이 끈적거리는 기운을 치워라! 당장!”
“그게 부탁하는 사람의 태도?”
“나는 사람이 아니라 용족... 아니, 됐다. 술자인 널 죽이면 이 기운도 자연스럽게 소멸하겠지.”
마음만 먹으면 나 따위는 언제든지 죽일 수 있다는 듯한, 가벼운 사형선고.
나는 그 소리를 듣자마자 티안브리스에게 마법을 연달아 쏘아 보내기 시작했다.
─화르르륵! 사사사삭! 즈즈즈즈!
불, 물, 전기 속성의 오브 3종 세트.
나를 무시해서 화가 나서 그런 것은 아니고, 그녀가 막기 벅찰 정도로 마법을 무차별 난사하다 보면 결국 불사조를 소환하지 않을까 싶어서 그랬지만 사실 무시당해서 화도 좀 나긴 했다.
“감히 힘으로 나를 찍어누르겠다는 것이냐!”
티안브리스가 일갈하며 불을 뿜어냈다.
내가 날린 것과 같은, 중급 마법 오브였다.
─화르르륵! 화르르륵!
그녀가 사용하는 플레임 오브는 내가 쓰는 것보다 훨씬 강력했다. 전격 속성의 보정을 받은 일렉트릭 오브는 그녀에게 한 치도 밀리지 않았으나, 물과 불 속성의 오브는 확연히 밀렸다.
‘역시 레드 드래곤의 피가 흐른다 이건가.’
오랜 세대를 거치며 레드 드래곤의 잔재가 희미하게 남아있다고는 하나, 그것만으로도 불 속성 마법에 대한 재능은 탁월했다.
나는 어설프게 다양한 속성으로 공격해서는 마나를 낭비할 뿐이라는 걸 느꼈다. 블리자드도 안 쓰고 모은 마나다. 클로이 앞에서 쓰기 곤란해서 그런 것도 있었지만, 마나를 아끼기 위해서가 가장 큰 이유였다.
그렇게 모은 마나를 허투루 소모할 순 없다.
티안브리스에게 밀리지 않는, 전격 속성으로만 간다.
─번쩍!
─꽈릉!
“크읏, 또! 또! 또! 또 벼락을! 으아아악!!! 죽여 버릴 거야!!!”
콜링 썬더가 발작 버튼이었는지 티안브리스가 광분해서 소리쳤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계속해서 전격 마법을 쏘아 보냈다.
─파지직! 치지지직! 즈즈즈즈!
내 손에서 쉴 새 없이 전류가 뿜어져 나갔다.
티안브리스 역시 쉬지 않고 불을 쏘아댔고,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클로이마저 물과 얼음을 퍼부어댔다.
지독하리만치 고약한 화력전이 펼쳐졌다.
불, 물, 전격. 각 속성의 대가들이 내뿜는 마법의 여파는 어마어마했다. 곳곳에 불기둥이 치솟고 벼락이 내리꽂히며, 얼어붙었다. 이 일대는 완전히 초토화되어 갔다.
“대, 대체 저게 무슨 싸움이야...?”
“다들 피해! 저기에 휘말리면 죽는다!”
“취, 취익!”
마법을 난사하는 와중에 흘끔 쳐다보니, 앨리스 일행을 제외한 인간과 몬스터는 모두 과하다 싶을 정도로 멀리 떨어져서 이 싸움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도 알고 있는 듯 보였다.
이 전쟁의 승패는 여기서 갈릴 것이라는 걸.
─번쩍! 꽈릉! 화르르륵! 콰지직!
그러나 나는 무지막지한 기세로 전기를 쏟아내고 있는 겉보기와 달리, 속마음은 사뭇 당황스러웠다.
‘우리가...... 밀린다.’
나와 클로이가 미친 듯이 마법을 퍼부으며 협공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티안브리스는 혼자서 모든 마법을 막아내고 있었다. 오히려 이따금씩 반격을 시도할 정도였다.
─콰아아아!
발밑에서 위화감이 느껴져 뒤로 물러나자, 그 자리에서 불기둥이 치솟아 올랐다.
‘대체 저 여자는 마나가 얼마나 많은 거야?’
“오호호홋! 당황스러워 보이는구나!”
자신이 우위를 점했다는 걸 느낀 모양인지, 티안브리스가 간만에 깔깔거렸다.
나는 입술을 잘근 깨물고 그녀를 응시했다.
‘화력이 조금만 더 있으면 될 것 같은데....’
웃고 있지만 티안브리스도 분명 마나가 여유로운 상태는 아닐 것이다. 마나가 넉넉했다면 진작에 불사조를 한 번 더 소환해서 우리를 공격했을 테니까.
불사조를 소환하는 데에 엄청난 마나가 소모되니 아끼고 있는 듯했는데, 조금만 더 몰아붙이면 될 것도 같았다.
“힘의 차이가 느껴지느냐?”
“.......”
상급 마법을 아직 배우지 못한 게 아쉬웠다.
중급 마법으로는 그녀를 몰아세우기가 어려웠다. 클로이라도 멀쩡했으면 모를까, 지금 우리 둘만으로는 불사조를 유도해내기에 부족한 감이 있어 보였다.
그때였다.
기사 하나가 엄청난 속도로 나를 지나쳐가며 티안브리스에게 쇄도했다.
적발의 기사, 에드윈 체스터였다.
“나는 신경 쓰지 말고 마법을 날려라!”
그는 그렇게 외치며 티안브리스에게 검을 휘둘렀다. 그의 검에는 특이하게도 푸른 오러가 아닌 붉은 오러가 일렁였다.
‘아, 그래! 에드윈이 있었지!’
에드윈은 무서운 기세로 티안브리스를 압박했다. 그의 붉은 오러는 티안브리스가 우리를 향해 날리는 마법을 베어냈다.
나와 클로이는 에드윈이 요청한 대로 계속해서 마법을 쏟아냈다.
─즈즈즈즈! 파지직! 사사사삭! 콰드득!
지금까지 티안브리스는 우리가 날린 마법을 마법으로써 상쇄시켰지만, 이제는 빈틈이 생겼다. 에드윈이 종종 그녀의 마법을 중간에서 베어버렸기 때문이다.
결국 마법이 하나둘씩 그녀에게 적중했다.
“크읏! 끄으윽...!”
검을 피하랴, 마법을 막으랴, 마법을 날리랴 정신없던 티안브리스에게 데미지가 차츰 누적되기 시작했다.
나는 기쁘면서도 걱정도 되는,
이율배반적인 감정이 들었다.
‘......이러다가 그냥 죽어버리는 거 아니야?’
그건 절대 용납할 수 없다. 앨리스의 마법 복제를 위해서, 그녀는 무조건 불사조를 한 번 더 소환해야만 했다. 나는 서둘러 그녀를 도발했다.
“하하! 힘의 차이가 느껴지냐?”
“이, 이런 비겁한...! 세 명이서 덤비고도 수치스럽지 않느냐!”
“비겁하긴 누가 비겁해? 너는 천 마리가 넘는 몬스터를 끌고 왔잖아?”
“이익...! 티, 티안브리켄!! 어디에 있느냐!! 어서 나를 도와다오! 티안브리켄!!!”
지친 기색이 역력한 티안브리스는 혼자서는 더 버티기 힘들었는지, 평소에는 그토록 개무시했던 남동생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짖었다.
“그렇게 외쳐도 그는 오지 않을 거야.”
티안브리스의 외침을 들은 클로이가 나섰다.
“뭐? 그게 무슨 소리지?”
“내가 죽였거든. 네 동생.”
“그, 그럴 리가... 나약하긴 해도 고작 인간에게 당할 녀석이 아닌데...?”
그녀는 서서히 고개를 가로저으며 현실을 부정했다. 나는 그런 그녀에게 현실을 일깨워줬다.
“그게 뭔 헛소리야? 지금 너도 인간에게 죽게 생겼는데.”
“.......”
잠시 침묵하던 티안브리스는, 곧 어깨를 들썩이며 실소했다.
“큭... 내가... 위대한 종족의 피가 흐르고 있는 내가... 인간 따위에게 죽을 것 같아? 죽을 것 같냐고!!!”
─번쩍!!
화르륵! 그녀의 머리 위에 거대한 불덩어리가 생성되었다. 그것은 마치 살아있는 듯 꾸물거리며, 불사조의 형상을 취해갔다.
‘......드디어 왔군.’
나는 슬쩍 고개를 돌려 앨리스를 찾았다.
그녀는 홀린 듯 불사조를 응시하고 있었다.
이제 모든 절차는 끝났다. 지금부터는 최선을 다해 티안브리스를 해치우는 일만 남았다.
“죽는 건 너희들이다!!”
분기탱천한 티안브리스의 외침과 동시에, 불사조가 즉시 일직선으로 날아오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불사조를 마주한 것은 에드윈이었다. 그는 붉은 오러가 실린 검을 불사조를 향해 수직으로 휘둘렀다.
─화륵! 화르르르르륵!
“크헉...!”
불사조가 반으로 갈라지는가 싶더니, 금세 형태를 되찾았다. 녀석은 에드윈을 불태우며 나를 향해 쇄도했다.
“엘!! 조심해!!”
클로이가 경악하며 소리쳤다. 그녀는 혼신의 힘을 다해 내게 날아드는 불사조에게 마법을 퍼부었다.
─콰드드득! 쏴아아! 사사사삭!
그러나 턱없이 부족했다.
─화르르르르륵!
불사조는 역시나 크기만 작아졌을 뿐, 여전히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엘!!!”
“피해라!”
어느새 몸에 붙은 불을 끈 에드윈과 클로이가 애타게 부르짖었다.
‘저 둘이 있으니... 뒷일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지.’
나는 남아있는 모든 힘을 쥐어 짜내기로 했다.
─파직. 파직.
모든 마나가 오른손에 몰려들며, 샛노란 스파크가 일기 시작했다. 승격 이후로 늘어난 마나가 전부 한 지점에 몰려들자, 눈을 뜨기 어려울 정도의 빛을 발산했다.
[금일 사용 가능한 ‘라이트닝 블래스트’ - 0회]
─화르르르르륵!
나는 정면에서 쇄도해오는 불사조를 향해 손을 뻗었다.
─쩌저저적!!
─꽈르릉!!
귀청이 떨어질 듯한 굉음과 함께, 새하얀 번개 줄기가 불사조의 몸에 직격했다.
잠시 불사조에게 막혔던 라이트닝 블래스트는, 이윽고 녀석의 몸을 뚫고 뻗어나가 티안브리스에게까지 도달했다.
파스스- 몸에 큼지막한 구멍이 뚫린 불사조는 곧장 산화해버렸고, 티안브리스는 날카로운 비명을 내질렀다.
“끼야아아아악!!!”
털썩. 마침내 그녀가 힘없이 바닥에 쓰러졌다.
죽은 건가? 기절한 건가?
매우 궁금했지만, 진짜 궁금한 건 따로 있었다.
앨리스. 앨리스가 복제에 성공했을까.
나는 탈진하기 전에 앨리스를 향해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