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트카 공방전 (6)
트롤의 가슴팍에서 피가 뿜어져 나온다.
─푸확!
아무리 질긴 가죽을 자랑하는 트롤이라 하더라도, 스트렝스로 육체를 강화한 내가 휘두르는 검을 맨몸으로 버텨낼 수는 없었다.
“그래도 질기긴 질기네.”
일반적인 몬스터였다면 진작 죽었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공격이었지만, 트롤은 죽지 않았다. 나는 출혈로 움직임이 둔화된 트롤에게 마법을 캐스팅해서 날렸다.
─휘오오
[금일 사용 가능한 ‘윈드 블레이드’ - 4회]
서걱! 바람의 칼날에 의해 머리와 몸통이 분리된 트롤이 바닥에 쿵, 하고 쓰러졌다.
나는 검을 허공에 휘둘러 검신에 묻어있는 피를 털어냈다. 트롤의 피는 제법 값진 것이기에 이렇게 버리는 것이 못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지금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티안브리스는 언제 나타나려고 하는 거지?’
그 방화범이 등장할 때까지 힘을 아끼며 트롤을 처치하고 있었으나, 벌써 세 마리를 잡았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주인공병을 앓고 있는 모양이다.
그래도 혹시나 해서 주변을 살펴보던 중, 시선을 강탈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클로이와 티안브리켄의 전투.
그들은 서로를 향해 무지막지하게 마법을 쏘아대고 있었다. 둘 주위로는, 마치 자석으로 밀어내기라도 한 것처럼 누구도 접근하지 못했다.
‘와... 엄청나네.’
나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수준 높은 전투를 펼치고 있어서 그런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화려했기 때문이다.
새빨간 불 속성 마법과 시퍼런 물 속성 마법이 오고 가니, 시각적 연출이 매우 탁월해 부러움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클로이가 우세해 보이는데... 다행이군.’
그녀가 진심으로 싸우는 모습을 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그야말로 굉장했다. 시종일관 여유를 잃지 않고 티안브리켄을 상대하는 모습을 보니, 과연 청색 마탑의 고위 마법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클로이 덕분에 티안브리켄 쪽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될 듯했다.
‘그럼 티안브리스가 나타날 때까지는 하던 대로 트롤을 처치... 음?’
문득 트롤과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매우 익숙한 사람이었다. 저건 반드시 도와줘야만 했다.
“저쪽으로 갈 겁니다. 잘 따라오세요!”
나는 뒤에 서 있는 앨리스와 그녀를 호위하고 있는 두 명의 병사에게 소리치고 달려 나갔다.
트롤을 둘러싸고 있는 세 명의 모험가.
그들은 트롤에 한참을 못 미치는 실력이었지만, 서로 손발이 착착 맞는 협공을 통해서 나름대로 분투하고 있었다.
“크오오오오!!”
“커헉...!”
“제길! 도저히 상처가 나지 않는군!”
“이 괴물의 회복력이 너무 높다!”
‘나름대로’ 분투하고 있었지, 사실상 세 명이서 번갈아 얻어맞으며 간신히 버티고 있는 거나 다름없었다.
나는 즉시 전기의 화살을 캐스팅했다.
ㅡ지직. 지지직.
[금일 사용 가능한 ‘차지드 볼트’ - 9회]
쏜살같이 날아간 전기의 화살은 트롤의 몸통에 적중했다. 놈은 잠시 춤추듯 경련하다가, 바닥에 누워서 춤을 마저 이어 나갔다.
그 모습을 보고 당황한 세 명의 모험가는, 곧 뒤를 돌아보더니 경악하며 소리쳤다.
“누가 이런...? 헉!”
“너, 너는...!”
“억울한 마법사!!”
그들은 나의 오랜 친구, 도린 형제였다.
상당히 오랜만에 보는 거라 매우 반가웠다.
“야, 오랜만이다. 너희들도 참전했구나? 마침 잘됐네.”
─푸욱!
나는 여전히 바닥에서 떨고 있는 트롤을 마무리한 후, 앨리스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너희들이 따라다니면서 앨리스 좀 지켜줘.”
“앨리스? 그게 누구인가? 아, 도플갱─”
“쉿! 그걸 공공연하게 말하면 어떡하냐.”
눈을 가늘게 뜨고 앨리스를 쳐다보던 테도린이 도플갱어라는 단어를 입 밖으로 꺼내려 했기에, 황급히 그를 제지했다.
아무튼, 도린 형제를 만난 건 행운이었다.
앨리스의 호위를 맡길, 믿을만한 사람이 필요하던 참이었으니까.
병사 두 명이 앨리스를 호위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불안한 감이 있었다. 도린 형제 수준이라면 트롤은 몰라도 오크 정도는 간단하게 찜쪄먹을 수 있으니, 충분히 앨리스를 지켜줄 수 있을 것이다.
“부탁 좀 하자. 나는 이따가 용족을 상대하러 가야 하거든. 내가 또 너희만큼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
“크흐흐. 틀린 말은 아니군. 알았다! 우리 형제가 도플... 아니, 앨리스를 지켜주도록 하지!”
테도린이 가슴을 탕탕 두드리며 호언했다.
“좋아, 그럼 앨리스를 보호하면서 나를 잘 따라다니라고.”
나는 그렇게 말하며 다시 전장을 살폈다.
전황에는 중대한 변화가 일어나 있었다.
클로이가 티안브리켄과의 전투에서 완전히 승기를 잡은 것이다. 티안브리켄은 꼴사납게 누나의 이름을 부르짖으며 도망 다니고 있었다.
‘그렇다면 조만간 티안브리스가....... 왔군.’
드디어 티안브리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전장 저편에서 걸어오는 티안브리스.
어메이징한 여자였다. 그녀는 패션쇼에서 런웨이라도 하는 것처럼 한 걸음 한 걸음 공들여가며 우아하게, 그리고 느릿느릿하게 걸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자신 있으시다는 거지...?’
원래 나는 그녀의 실력을 파악하기 위해서 처음부터 나서서 싸울 생각은 없었으나, 혼자서만 여유로운 저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부아가 슬쩍 치밀어 올랐다.
“앨리스. 저 여자야. 이 정도 거리에서도 가능하겠어?”
“조금만 더 가까이 오면 모습은 흉내 낼 수 있을 것 같은데... 마법은 잘 모르겠어.”
“그래, 그럼 일단 외형이라도 잘 지켜봐. 복제가 가능해지면 바로 하고.”
그렇게 말한 나는 전투를 벌이고 있는 인간과 몬스터들 사이에 몸을 숨긴 채, 티안브리스를 향해 콜링 썬더를 캐스팅했다.
─번쩍!
─꽈릉!
[금일 사용 가능한 ‘콜링 썬더’ - 5회]
마른하늘에서 한줄기 벼락이 내리꽂혔다. 그녀는 걷고 있었지만, 워낙 느린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기에 정확하게 명중시킬 수 있었다.
벼락이 닿는 순간, 불그스름한 장막이 빛을 발하며 그녀의 몸을 보호했다.
‘......미리 쉴드를 두르고 있었나.’
아무래도 그런 모양이었다. 하지만 쉴드를 늘상 최대 위력으로 전개해두고 있는 사람은 없다. 필요할 때만 출력을 올리는 법.
티안브리스는 예기치 못한 날벼락을 온전히 방어해내지는 못해 타격을 받은 듯, 잠시 휘청거렸다.
심지어 그녀는 굽이 높은 구두를 신고 있었기 때문에, 볼썽사납게 허우적거리며 꼬리까지 흔들어서 균형을 잡아 가까스로 넘어지는 것을 면했다.
“풉.”
나는 재빨리 고개를 낮추고 실소했다.
티안브리스는 눈에 쌍심지를 켜고 고개를 휙휙 돌려댔다. 자신의 우아한 걸음걸이를, 우스꽝스러운 몸개그로 바꿔버린 범인을 찾으려고 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그걸 어떻게 찾는단 말인가?
벼락은 하늘에서 떨어졌는데.
한동안 자리에 멈춰서 두리번거리던 그녀는, 결국 범인색출을 포기하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다만, 아까처럼 우아한 걸음걸이가 아닌 삐그덕 거리는 걸음이었다.
‘콜링 썬더를 맞은 충격이 남아있는 건가?’
솔직히 한 방만에 그녀를 쓰러트리거나 치명상을 입힐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완벽히 막힐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었는데, 약간의 피해는 준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한 번 더 간다.
─번쩍!
─꽈릉!
[금일 사용 가능한 ‘콜링 썬더’ - 4회]
또다시 날벼락이 티안브리스를 덮쳤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그녀의 몸을 감싸고 있는 붉은 장막이 아까보다 한층 더 밝게 빛나며, 벼락을 막아냈다.
‘역시 만반의 대비를 하고 있으면 안 먹히는군.’
비록 완벽하게 막혔으나, 아이러니하게도 피해를 전혀 주지 못한 건 아니었다. 그녀의 육체에는 데미지가 들어가지 않았지만, 정신적인 데미지는 들어갔다.
“누구냐!! 대체 누가 벼락을 쓰는 것이냐!!”
그녀는 자리에 멈춰서 날카롭게 소리쳤다. 굉장히 분노한 듯, 가시 돋친 목소리였다.
“비겁하게 숨지 말고 모습을 드러내라!!”
싫은데요.
어쨌거나 연달아 터진 두 번의 천둥소리와 그녀의 한 맺힌 목소리에, 전장의 이목이 티안브리스가 있는 장소에 잠시 집중됐다.
그녀는 쌍심지를 켠 눈을 부릅뜬 채,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노려보았다. 사뭇 무서운 기세였지만, 그렇게 쳐다본다고 해서 범인을 찾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뾰족한 방도가 없자, 티안브리스는 고개를 살짝 숙이고 뭐라 중얼거렸다. 거리가 좀 있어서 무슨 말을 하는지는 불분명했는데, 좋은 말은 아닌 게 분명했다.
그녀의 머리 위에 엄청나게 거대한 불덩어리가 생성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됐다! 모조리 죽여주마! 어차피 한 놈도 살려두지 않을 생각이었으니!”
오만하게 소리친 그녀의 자신감은 불덩어리에 있었다. 살아있는 듯 꾸물거리며 움직이던 거대한 불덩어리는, 이윽고 새의 형상을 취했다.
나는 타오르는 새, 불사조를 보며 경악했다.
‘미, 미친! 초장부터 고유 마법을 쓰다니!’
이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두 잿더미로 만들어버려!!!”
티안브리스의 악에 받친 외침과 동시에, 거대한 불사조가 날개를 펄럭이며 창공으로 비상했다.
높게 날아오른 불사조는 하늘에서 잠시 체공하는가 싶더니, 곧 전장을 향해 엄청난 속도로 활공하며 하강했다.
─화르르르르르!!
불사조가 고도를 낮추며 훑고 지나가자, 그곳에 있던 존재들은 모두 불길에 휩싸였다. 사람뿐 아니라 오크와 트롤까지도.
“끄아악...!!”
“취, 취익!”
“크오오오오!!”
피아 구분 없이 공평하게 불살라버린 불사조는 다시 하늘 높이 치솟고는, 새로운 목표 지점을 향해 추락하듯 활공했다.
─화르르르르르!!
그 패턴이 반복되자, 이 일대는 아비규환의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취익! 나, 나는 같은 편이다!”
“끼야아악! 오지마!”
“도, 도망가!”
서로 죽일 듯이 싸우던 전장이었지만 불사조가 다가오는 듯싶으면, 다들 잠시 싸움을 중단하고 불사조를 피해 다니기 바빴다.
저것은 자연재해에 가까웠다.
당장 내가 있는 쪽으로 오지는 않아 여유가 있었지만, 언제까지고 그러리란 법은 없었다. 늦기 전에 뭔가 대응책을 강구해야 했다.
나는 일단 앨리스를 향해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앨리스, 저거 보고 있어? 저게 내가 말했던 불사조야.”
“.......”
“앨리스?”
“.......”
앨리스는 내 말에 대답하지 않고, 그저 전장을 누비는 불사조를 홀린 듯이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가 어깨에 손을 올리고 상태를 확인했다.
“왜 그래? 너 괜찮... 헉.”
나는 깜짝 놀라며 헛숨을 들이켰다.
앨리스의 외모가 어느새 티안브리스의 그것으로 변해있었기 때문이다.
조금만 더 가까워지면 외형은 복제할 수 있을 거라고 했었는데, 티안브리스가 이쪽으로 얼마간 걸어온 바람에 그새 가능해졌던 모양이었다.
‘옷은 그대로인데... 일부러 육체만 복제했나? 잘 선택했군.’
좋은 판단이다. 여기서 티안브리스의 복장까지 그대로 따라했으면 모든 게 끝장이었다. 용족 고유 마법이 물건너가는 것은 물론이고, 앨리스도 죽음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좀 더 철저히 가려줘야겠군.’
앨리스는 여전히 넋이 나간 채로 불사조를 응시하고 있었다. 아마 이것도 복제를 위한 모종의 절차처럼 보였기에, 나는 그녀의 눈은 제외하고 얼굴을 가려줬다.
한 번에 바로 복제에 성공하면 좋을 텐데.
─화르르르르르!!
“흐아아아악!”
“누, 누가 저것 좀 어떻게 해봐!”
“취익! 마법을 쏴라!”
전장은 완전히 개판이었다.
인간과 오크는 계속 서로 싸우고 있었지만, 인간 마법사와 오크 마법사는 불사조라는 공동의 적을 향해 마법을 날려댔다.
─슈우웅! 사라락! 휘오오! 화르륵!
그러나 집중해서 마법을 날리던 인간 마법사는 오크에 의해, 오크 마법사는 인간에 의해 무방비하게 썰려 나갔다. 티안브리스는 또 그 모습을 바라보며 즐겁다는 듯 깔깔거렸다.
“오호호호홋! 미천한 것들! 발버둥 치는 모습이 귀엽구나!”
개판도 이런 개판이 없었다.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정신이 나가버릴 것만 같은 혼란함 속에서, 나는 도린 형제와 함께 앨리스를 지키며 그녀가 방해받지 않도록 노력했다.
그러길 잠시.
뚫어져라 불사조만 응시하던 앨리스가 시선을 거두며 넘어질 듯 비틀거렸다. 나는 황급히 그녀를 부축했다.
“왜 그래?”
“마, 마법이 너무 강해서 그런지 조금 어지럽네....”
그녀는 머리를 가볍게 좌우로 흔들었다.
“결과는? 성공했어?”
“아, 아니. 불사조는 충분히 오래 봤지만... 저 용족이 불사조를 소환하는 모습을 한 번 더 봐야 할 것 같아. 조금 더 가까이에서....”
그래, 단번에 복제하기는 어려웠겠지.
어쨌든 불사조가 여기저기에서 깽판 치고 다닌 덕에, 마법 자체는 충분하게 관찰한 모양이었다.
“티안브리스가 직접 캐스팅하는 모습을 한 번만 더 보면 될 것 같다는 거지? 후... 좋아, 알겠어.”
그건 내가 직접 유도하는 수밖에.
나는 심호흡 하며 마음의 준비를 했다.
‘......일단 저 불사조부터 처리해야겠는데.’
불사조는 빗발치는 마법에 맞아서인지, 처음보다는 크기가 작아진 상태였다.
티안브리스와 싸우기 전에 불사조를 완전히 소멸시킬 필요가 있었다. 그냥 저대로 놔둔 채 티안브리스에게 달려든다면 분명히 그녀를 돕기 위해 돌아올 테고, 그렇게 된다면 2:1로 싸우는 거나 다름없을 것이다.
‘역시 물 속성 마법을 쓰는 게 좋겠지.’
다른 속성의 마법으로도 상쇄시킬 수 있으나, 가성비를 따지면 불과 역상성인 물 속성이 좋을 듯했다.
─사사사삭!
[금일 사용 가능한 ‘프로스트 오브’ - 2회]
내 머리 위에서 생성된 회전하는 얼음덩어리가 불사조를 향해 세차게 날아갔다.
─콰앙! 치이이이익!
프로스트 오브의 본체와 충돌한 불사조는, 날개를 퍼덕이며 한 치의 물러섬 없이 얼음덩어리와 자웅을 겨뤘다.
승자는 불사조였다.
오브는 빠른 속도로 소멸했고, 녀석은 덩치가 조금 작아졌을 뿐 여전히 활활 불타오르고 있었다.
‘......역시 불사조라 이건가.’
나는 즉시 후속타를 캐스팅했다.
─사사삭. 사삭. 사사삭.
[금일 사용 가능한 ‘프로즌 더스트’ - 3회]
무수한 얼음 조각들이 마치 유릿가루가 쏟아지듯 불사조를 향해 쏟아져 나갔다.
그러나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승자는 불사조였다. 녀석은 데미지를 입을 때마다 덩치가 작아졌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거대했다.
“젠장... 이러면 곤란한데.”
아직 주력 마법들이 많이 남아있는 상태였지만, 모조리 쏟아부을 수는 없었다. 티안브리스를 상대해야 하고, 또 그녀는 불사조를 한 번 더 소환할 수 있으니까.
내가 불사조를 바라보며 입술을 깨물고 있을 때였다. 문득 익숙한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엘! 혹시 저 불사조의 움직임을 잠시 묶을 수 있겠어?”
내 뒤에는 어느새 다가온 클로이가 불사조를 응시하고 있었다.
“클로이 씨...? 티안브리켄과 싸우고 있던 거 아니었습니까? 놈은 어쩌고 여기에...?”
“죽였어.”
그녀는 여전히 시선을 불사조에게 고정한 채, 짤막하게 대답했다.
“......예?”
“죽였다구. 아무튼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빨리 저 불사조를 없애고 나머지 용족을 처리하는 게 중요하지.”
클로이는 평소에 본 적 없는 결연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녀도 불사조의 강함을 느끼고 있는 듯 보였다.
“엘이 묶어주기만 하면 내가 저걸 소멸시켜볼게.”
“가능하겠습니까?”
“내 고유 마법이면 가능할 거야. 하지만 이건 하루에 한 번밖에 못 쓰고 저렇게 하늘을 날아다니는 건 맞히기가 어려워.”
클로이가 고유 마법을 써야 할 정도인가.
무슨 마법인지는 모르겠지만, 클로이는 그만큼 불사조가 강력하다고 판단한 것 같았다.
아직 티안브리스가 멀쩡했기에 클로이의 고유 마법을 벌써 소모하는 건 아깝다는 생각도 들었으나, 달리 뾰족한 수가 없다. 당장 저 불사조를 잡지 못하면 티안브리스와 싸울 기회조차 없다.
“어때? 할 수 있겠어?”
“......알겠습니다. 한번 해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