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꿈속에서 마법을 훔치는 마법사-105화 (105/200)

카트카 공방전 (5)

좌우에서 2인 1조로 이루어진 기병대가 흙먼지를 자욱하게 일으키며 달려 나갔다.

─다그닥 다그닥

그들은 적에게 돌격하는 게 아니었다.

좌측에서 나간 기병은 시계 방향으로,

우측에서 나간 기병은 반시계 방향으로,

반원을 그리듯 움직였다.

이윽고 기수 뒤에 타고 있던 마법사들이 적진을 향해 마법을 뿜어대기 시작했다.

─슈우웅!

─화르륵!

─사사삭!

강력한 마법사는 아닌 듯 대부분 하급 이하의 마법이었으나, 몬스터들이 워낙 빽빽하게 뭉쳐 있었기에 효과는 훌륭했다. 마법 한 방에 여러 마리의 몬스터가 픽픽 쓰러져나갔다.

오크 마법사와 궁수들이 대응 사격을 가했지만, 사정거리가 닿지 않거나 말을 따라잡지 못해 애꿎은 땅만 때릴 뿐이었다.

‘와... 카이팅 장난 아니네.’

나는 기병대의 움직임을 보며 감탄했다.

무슨 중동에 돌아다니는 무장차량 같았다.

그들은 좌우 위치가 바뀌자, 말을 돌려 다시 반대 방향으로 달리며 같은 방식으로 마법을 날려댔다.

그렇게 기병대가 야금야금 몬스터를 갉아먹으니, 용족 사내 티안브리켄이 나섰다.

“어디서 잔재주를!”

성난 외침과 함께 그의 머리 위에 타오르는 불의 화살이 생성됐다.

‘고작 파이어 애로우인가? 이거 실망... 어?’

기초 마법 파이어 애로우인 줄 알고 속으로 코웃음 치던 나는, 웃음을 지워야만 했다. 저건 파이어 애로우가 아니었다. 불의 화살이 수십 개나 생성됐기 때문이다.

─슈웅! 슈웅! 슈웅! 슈웅!

수많은 불의 화살이 순차적으로 기병대를 향해 쏘아져 나갔다. 신기전을 방불케 하는 광경이었다.

“으아아악!”

“끄아아!”

쏟아지는 화살을 피하지 못한 기수와 마법사가 바닥을 뒹굴었다.

회피에 성공한 기병대는 불타는 동료들을 내버려 둔 채, 계속해서 맡은 임무를 충실히 수행했다.

일방적으로 당하는 몬스터의 수가 늘어만 가자, 결국 티안브리켄은 명령을 내렸다.

“모두 달려들어라! 공격해!”

─드드드드드드드드

모든 몬스터가 일제히 달려오기 시작했다.

어찌나 많은지, 대지가 흔들릴 정도였다.

“뭐, 뭐야 이거....”

“너무 많잖아....”

해일처럼 몰려드는 몬스터를 목도한 아군 병사들은 공포에 질려 동요했다.

“아니, 다들 뭐하십니까? 지금이 마법을 날리기 가장 좋은 순간인데!”

나는 그렇게 외치며 마법을 캐스팅했다.

─즈즈즈즈!

내 머리 위에 실타래처럼 얽힌 전기의 구체가 생성됐다.

[금일 사용 가능한 ‘일렉트릭 오브’ - 4회]

배우고 처음으로 써보는 전격 속성의 오브.

다른 속성의 오브보다 두 배는 큰 것 같았다. 나는 마법사를 위해 비워둔 공간에 있었기에, 거리낌 없이 그것을 날려 보냈다.

전기의 구체는 조용히 전장을 가로질렀다.

그리고 곧, 몬스터무리에 맞닿았다.

─즈즈즈즈!

“저, 저게 무슨 마법이지?”

“위력이 무슨...?”

넓게 펼쳐져서 밀려드는 몬스터 해일.

일렉트릭 오브는 그 해일에 일직선으로 구멍을 뚫어버렸다. 전기의 구체가 지나간 경로에 있던 몬스터는 모조리 바닥에 쓰러졌다.

“아니, 다들 빨리 마법을 날리시라고요!”

나는 주변에 있는 얼빠진 마법사들을 재촉했다.

저렇게 다닥다닥 붙어서 달려오고 있는 지금보다 마법의 효율이 좋은 순간은 없다. 놈들이 이곳에 도달해 뒤엉켜서 싸우기 시작하면, 지금만큼의 효율이 나오지 않는다.

“아, 그, 그렇지.”

“서두르세!”

정신을 차린 마법사들이 마법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곳곳에서 마법이 쏟아져 나갔다.

─휘오오! 사라락! 치지직! 슈우웅!

수많은 마법이 하늘을 수놓았다.

B급 모험가만 돼도 마법을 다루는 자들이 꽤 있기에, 마법사의 숫자가 많은 덕이다.

‘기초 마법이 많긴 해도... 장관이네.’

어쨌거나 마법은 마법.

폭격처럼 퍼부어지는 마법에 의해, 상당수의 몬스터가 이곳에 도달하지 못하고 폭사했다.

그러나 숫자가 많아도 너무 많았다.

여전히 몬스터의 숫자는 압도적이었고, 이곳에 도착했다.

결국, 전투는 난전 양상을 띠게 되었다.

“취익! 죽어라, 나약한 인간!”

“너나 죽어라, 못생긴 오크!”

오크를 필두로 한 몬스터들과 병사, 모험가, 용병들이 뒤섞여 각자의 목숨을 담보로 사투를 벌이기 시작했다.

─채앵!

─카앙!

적은 수적으로 우세했지만,

아군은 질적으로 우세했다.

일반적인 오크는 C급 모험가보다는 강하지만, B급보다는 약하다. 전장에 있는 아군 중 대다수는 체스터 백작의 병사와 B급이었기에, 개개인의 실력은 우리가 높았다.

그렇게 팽팽하게 유지되는 전투의 균형을 깨트리는 존재들이 있었으니,

“체스터 백작님을 위하여!”

─서걱!

오러를 휘두르며 전장을 누비는 기사들과,

“크오오오오!!”

“커억....”

“사, 살려줘!”

압도적인 피지컬로 찍어누르는 트롤들,

“크하하핫! 버러지 같은 인간들!”

─화르륵!

─슈웅! 슈웅! 슈웅!

광소하며 불을 내뿜는 티안브리켄.

기사, 트롤, 티안브리켄.

이 세 존재가 나타나는 곳은 여지없이 균형이 무너졌다.

특히 티안브리켄의 존재감은 독보적이었는데, 녀석은 피아식별 없이 마법을 난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느껴지느냐? 용족의 위대함이? 크하하!”

“끄아아아!”

“취, 취익!”

놈의 근처에 있으면, 인간이건 몬스터건 할 것 없이 모조리 불길에 휩싸였다.

‘......저놈도 생각보다 강한 것 같은데.’

솔직히 대단했다. 불 속성 마법에 탁월한 재능이 있다는 게 빈말은 아닌 듯했다. 불 속성에 한해서는 중급 마법조차 순식간에 캐스팅해서 날려대고 있었다.

저 정도라면 기사가 여럿 붙어야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내가 저놈을 맡을 수는 없다.

놈의 누이, 티안브리스가 보이지 않으니까.

티안브리스는 저 녀석보다도 강한 존재.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녀와 싸우기 위해서는 굵직한 마법은 아껴둬야만 한다.

‘......어쩔 수 없군. 일단은 저놈 말고 트롤을 잡는 수밖에.’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티안브리스가 언제 나타나나 유심히 살피며, 아군의 머리통을 부숴대고 있는 트롤의 수를 줄이는 것이다.

나는 가까이에 있는 트롤을 향해 쇄도했다.

***

티안브리켄은 한껏 흥이 오른 상태였다.

“시시하구나! 나를 막을 자는 없는 거냐?”

반복되는 무차별 마법 난사에, 이미 그의 주변은 텅 비어있었다. 누구도 가까이 다가가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몬스터마저도.

“눈치만 보지 말고 내게 덤비란 말이다!”

그는 증명하고 싶었다.

뒤에서 관망하고 있는 누이에게.

그의 누이 티안브리스는, 고작 변방의 인간을 상대하는 데에 자신이 나서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라며 구경만 하고 있었다.

‘오만한 년! 수치스러운 일은 내가 하라고?’

고유 마법을 쓰지 못한다고 늘 무시당하는 티안브리켄. 그는 고유 마법 없이 인간을 쓸어버림으로써, 자신이 충분히 강한 용족이라는 것을 증명하며 빌어먹을 누이의 콧대를 꺾어버릴 생각이었다.

“겁쟁이 같은 놈들. 아무도 오지 않는다면 내가 가주지!”

그는 앞으로 달려 나가며 불덩어리를 생성해서 날렸다. 그곳에는 인간과 오크가 싸우고 있었지만, 상관없었다. 둘 다 하등한 종족인 건 마찬가지이니.

“흐아악!!”

“뜨, 뜨거워!”

한데 어우러져 불타고 있는 생명체들을 흡족하게 바라보고 있던 티안브리켄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기사 한 명이 달려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드디어 오는구나.”

그는 피식 웃으며 양팔을 벌리고 섰다.

“벨 수 있으면 와서 베어봐라.”

─화르륵!

─슈웅! 슈웅! 슈웅!

티안브리켄으로부터 여러 화염 마법이 발사됐다. 그러나 체스터 백작의 기사는 기민한 몸놀림으로 피하고, 베어내며, 티안브리켄의 지척까지 접근하는 데 성공했다.

“하아압!”

기사는 기합과 함께 오러가 실린 검을 힘껏 휘둘렀다.

하지만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 용족 사내의 몸을 보호하고 있는 붉은 화염의 장막을 뚫어내지 못한 것이다.

“내게 덤빈 용기는 가상하다만, 실력은 뒷받침되지 않는구나!”

순간, 바닥에서 불기둥이 솟아올랐다.

불기둥은 티안브리켄과 기사를 모두 집어삼켰으나, 오직 기사만이 불타올랐다.

“크아아악!”

“쯧, 재미없군. 어이, 거기 있는 오크! 네가 이놈을 마무리해라.”

그는 혀를 차며 오크에게 마무리를 맡기고는, 전장을 둘러보며 새로운 먹잇감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호오, 저놈은 뭐지?”

특이한 인간이 하나 눈에 들어왔다.

그는 몸에서 빛이 나고 있었다. 분명 검을 들었는데, 마법을 사용하며 트롤을 상대하고 있는 독특한 인간이었다. 나약하고 시시한 인간들 뿐이었는데, 저놈은 제법 강해 보였다.

“저건... 재미있군. 불태우고 싶은 놈이야.”

─화르르륵!

티안브리켄은 맹렬히 회전하는 화염의 구체를 생성했다. 그리고 즉시 특이한 인간을 향해 달려 나가며 마법을 쏘아 보냈다.

그때,

─사사사삭!

돌연 어디선가 거대한 얼음덩어리 프로스트 오브가 날아와, 플레임 오브를 정확히 요격했다.

치이이익- 불과 얼음이 서로 만나 소멸하며 자욱한 수증기를 발생시켰다.

“......뭐? 감히 누가 내 마법을...?”

달려가던 발걸음을 멈춘 티안브리켄은 당황이 뒤섞인 얼굴로 중얼거렸다. 혼잣말에 가까웠으나, 수증기 안쪽에서 의외로 대답이 들려왔다.

“어디 가려구?”

뿌연 안개 속에서 한 여자가 걸어 나오며 모습을 드러냈다. 오른손으로는 큼지막한 지팡이를 들고 있고, 왼손으로는 자신의 하늘색 머리카락을 빙빙 돌리고 있는 여자.

청색 마탑의 고위 마법사, 클로이였다.

그녀는 고개를 슬쩍 돌려, 트롤과 싸우고 있는 엘을 한 번 바라보고는 재차 물었다.

“너 설마 내 동료를 노리려고 했던 거야?”

“......네년이냐? 감히 내 마법을 막아낸 게?”

“질문은 내가 했잖아, 빨간 대가리.”

“무, 뭐?”

티안브리켄은 귀를 의심했다.

방금 이 계집이 뭐라고 한 거지?

처음이었다. 자신의 누이를 제외하고 이렇게 건방지게 구는 여자는. 그것도 인간 주제에 말이다.

“빠, 빨간 대가리? 하찮은 인간 따위가 말버릇이 지나치구나!”

“뭐래. 너도 인간이랑 똑같이 생겼는데?”

“닥쳐라! 나는 위대하고 강력한 용족이다!”

“흐응... 용족인 건 알겠는데, 강력한 건 잘 모르겠네. 머리도 새빨갛구 불을 쏴대는 것도 그렇구. 나는 불 속성은 좀... 약하다고 생각하거든.”

“이, 이, 이년이...!”

티안브리켄은 머리가 뜨거워짐을 느꼈다.

눈앞의 인간 여자는, 보기만 해도 불쾌한 하늘색 머리를 빙글빙글 돌리며 한 마디도 지지 않고 되받아치고 있었다.

“불이 왜 약하다는 것이지? 불은 최강의 속성이다!”

“불은 물을 만나면 꺼져.”

“물이 불을 만나면 증발하는 것이다!”

“꺄하핫! 그거 되게 재미있는 견해네? 아무튼, 나는 내 주변 사람을 건드리는 건 절대 못 참거든? 내가 아픈 사연이 좀 있어서 말이야... 그러니까.”

클로이는 머리카락에서 손을 떼고 지팡이를 치켜들었다.

“죽어.”

“이거 완전히 미친 여자─”

순간, 티안브리켄의 머리에 경종이 울렸다.

발밑에서 느껴지는 싸늘한 한기.

무언가가 온다!

그는 쉴드를 강화하며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파사사삭!!

순식간에 바닥에서 무수한 얼음 가시들이 솟아났다. 간발의 차이. 이 전장에서 처음으로 그의 등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과, 과연...! 비장의 한 수는 있었구나!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위대한 용족인 나, 티안브리켄을 죽일 수는 없다!”

그는 당황스러운 감정을 재빨리 수습하고, 불의 화살을 날리며 반격에 나섰다.

─슈웅! 슈웅! 슈웅! 슈웅!

수십 개가 넘는 불의 화살이 클로이를 향해 쏘아져 나갔다. 클로이는 여전히 제자리에 서 있는 채로 지팡이를 휘둘렀다.

─콰드드득!

무표정한 클로이의 앞에 무지막지한 얼음장벽이 생성되며, 수많은 불의 화살을 한 개도 빠짐없이 막아냈다.

“제, 제법이구나!”

“그래? 고마워!”

“이익...!”

건방진 계집 같으니라고.

그렇다면 나도 기습을 해주마!

티안브리켄은 조금 전 기사를 상대했을 때 사용했던 마법을 캐스팅했다. 이 마법이라면 저 알량한 얼음장벽으로는 막을 수 없을 것이다.

“......?”

클로이가 바닥을 내려다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그리고 곧, 땅에서 치솟은 불기둥이 그녀를 덮쳤다.

그 모습을 바라본 티안브리켄은 광소를 터트렸다.

“크하하핫! 멍청하군. 수상한 낌새가 느껴졌으면 바로 자리를 피했어야지. 역시 인간은 별 볼 일 없는...... 뭣?!”

그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불기둥이 가라앉은 자리에 있어야 할 불타는 클로이는 온데간데없고, 거대한 얼음덩어리 하나가 자리하고 있었다.

─쩌적. 쩍!

갈라지는 얼음덩어리 안에 있는 것은 상처 하나 없이 멀쩡한 클로이였다. 그녀는 움직여서 불기둥을 피하는 대신, 얼음으로 자신을 감싸서 버텨낸 것이다.

“.......”

티안브리켄은 자존심을 굽히고 인정했다.

그녀는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그는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쏟아붓기로 했다. 방대한 마나량과 압도적인 캐스팅 속도. 용족의 타고난 특성을 바탕으로 중급 마법을 난사하는 것이 그의 최대 강점이다.

“......경의를 표한다, 인간이여.”

“흐응, 나는 그런 거 필요 없는걸?”

클로이는 여전히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하지만 거기 까지다. 너는 결국 불타오르며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지르게 될 것이니.”

─화르르륵!

그의 머리 위에 플레임 오브가 생성됐다. 그는 그것을 시작으로, 정신없이 마법을 연사했다.

─화르르륵! 화르르륵!

─슈웅! 슈웅! 슈웅! 슈웅!

─콰아아!

회전하는 불덩어리, 불의 화살, 화염 폭풍 등 온갖 중급 마법이 클로이를 향해 쏟아져 나갔다.

너무나도 많은 마법에 가려져, 클로이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확인할 것도 없겠군.”

죽음을 확신하며 발걸음을 옮기려 할 때였다.

─사사사삭! 콰드드득! 쏴아아! 휘이익!

돌연 온갖 얼음과 물줄기가 날아들며 티안브리켄의 마법을 모조리 상쇄시켰다. 티안브리켄에게 전혀 뒤지지 않는 캐스팅 속도였다.

“이, 이건 말도 안 돼....”

“빨간 대가리, 너 좀 강하네? 어쨌든... 이젠 내 차례야.”

자신을 향해 지팡이를 겨누는 클로이의 모습을 본 티안브리켄은 공포에 잠식됐다.

강하다. 확실히 나보다 강하다.

이길 수 없다. 도망쳐야 한다.

그는 주춤주춤 뒷걸음질 치며, 절대 부르고 싶지 않았던 이름을 목이 터져라 부르짖었다.

“티, 티안브리스 누님!!! 도와주십쇼!!!”

***

전장과 그리 멀지 않은 장소.

나뭇가지에 걸터앉아서 고고하게 사태를 관망하고 있던 티안브리스는, 한숨을 내쉬며 땅으로 내려왔다.

“하아, 정말... 수치스러운 동생이라니까.”

웬만하면 나서지 않으려 했건만.

아무리 쓸모없는 녀석일지라도 동생은 동생. 유일한 혈육이 울부짖으며 꼴사납게 도망 다니고 있는 모습을 차마 못 본 척할 수는 없었다.

“흐음. 저 정도의 인간이 있을 줄은 몰랐네?”

그녀는 클로이와 티안브리켄의 싸움을 유심히 지켜봤었다.

티안브리켄은 나중에서야 깨달았지만, 티안브리스는 진작 눈치챘다. 하늘색 머리카락을 가진 여자가 동생을 압도하는 실력을 가졌다는 것을.

어째서 왕국 변방에 저런 수준 높은 마법사가 있는지는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지금 그걸 따지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어쩔 수 없이 내가 처리해줘야겠네.”

안 그래도 저 인간 여자가 마음에 들지 않던 참이었다. 하늘색 머리카락. 불과 상극인 물을 연상시켜서 매우 불쾌했기 때문이다.

티안브리스는 전장을 향해 느릿느릿 걸어가기 시작했다. 동생의 생명이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달려갈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건 품격 없는 행동이니까.

그녀는 고개를 꼿꼿이 치켜들고 도도하게,

그리고 한 걸음 한 걸음 우아하게 걸었다.

또각, 또각, 보란 듯이 걸어 나가던 그 순간.

─번쩍!

─꽈릉!

마른하늘에서 한 줄기 벼락이 그녀를 향해 내리꽂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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