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트카 공방전 (3)
용족 사내 티안브리켄은 조금 전까지 미쳐 날뛰던 것과 달리, 한껏 움츠러든 기색이었다.
“티, 티안브리스 누님. 이곳에는 왜....”
“네가 그렇게 불에 타는 오크처럼 소리를 질러대서 와봤단다. 수치스러운 동생아.”
티안브리켄? 티안브리스?
뭔 이름이 이렇게 비슷해?
도린 형제를 연상케 하는 이름이었다.
어쨌거나 용족 여성 티안브리스는, 고개를 빳빳하게 치켜들고 도도하게 걸어가 남동생 앞에 섰다.
“침공이 코앞으로 다가왔는데, 아직도 그 마법을 다루지 못한다니. 너는 언제나 중요한 시기에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구나.”
‘와... 말하는 거 봐라.’
나는 고요한 밤공기를 타고 들려오는 남매간의 훈훈한 대화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저 남자도 그렇고 여자도 그렇고, 원래 용족은 성격이 좀 이상한 편인가?
“그래서야 침공 때 인간들에게 용족의 우월함을 뽐낼 수 있겠니? 뚫린 입이 있으면 대답을 해보렴, 수치스러운 동생아. 입은 쓸데없이 소리 지르는 데에만 쓰라고 있는 게 아니란다.”
“누, 누님. 저는 고유 마법 없이도 인간들을 쓸어버릴 자신이 있습니다.”
“어머, 이게 누나한테 말대꾸를 하네? 그게 자랑이니? 우리 종족의 고유 마법을 못 쓰는 게 자랑이야?”
그녀는 손가락을 들어 동생의 이마를 쿡쿡 찔러댔다.
‘뭐지? 미친 여자인가? 니가 대답해보라며?’
저런 누나가 있다면 인생이 참 피곤할 것이다. 아무튼, 대화를 엿들어보니 티안브리켄이 연습하던 마법은 용족 고유의 마법인 모양이었다.
그리고 말하는 투로 미루어보건대, 저 여자는 그 고유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듯 보였다.
만약 자기도 못 쓰면서 저딴 식으로 구는 거라면, 세상의 정의를 위해 내가 당장 벼락을 떨어트리는 것이 백번 옳겠지만 실제로 그런 멍청한 짓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꼬리만 달고 있다고 해서 다 같은 용족이 아니란다. 고유 마법을 쓸 수 있어야 진정한 용족이지.”
“저, 저도 용족입니다! 아직은 다루지 못하지만, 몇 년 정도만 시간을 더 들인다면 고유 마법을 다룰 수─”
─짜악!
그녀는 돌연 동생의 뺨을 때리며 소리쳤다.
“입 닥쳐라! 공격까지 앞으로 나흘 남았는데, 몇 년 뒤에 깨우치는 게 무슨 소용이지? 네가 부족해서 실패한 걸 시간 탓으로 돌리려 들지 마라.”
“죄, 죄송합니다... 누님.”
와, 이걸 참네.
티안브리켄은 참을성이 많은 놈인가 보다.
어쨌든 쓸만한 정보를 하나 더 얻었다.
공격은 나흘 뒤라는 것.
에드윈한테 알려주면 좋아하겠군.
“명심해라. 우리가 레드 드래곤의 피를 물려 받아 불 속성 마법에 탁월한 재능이 있다고 해도, 고유 마법이 없으면 반쪽짜리라는 것을.”
“......명심하겠습니다.”
뺨까지 맞은 티안브리켄이 끝까지 고분고분하게 굴자, 그녀는 마음이 조금 누그러진 듯 한결 차분해진 어조로 타일렀다.
‘누나한테 완전히 꼼짝도 못하는구만.’
서열 관계가 명확해 보였다.
에드윈은 용족이 티안브리켄 한 명이고 그가 우두머리라고 말했지만, 실상은 아니었다.
그놈의 고유 마법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모르겠으나, 그걸 못 쓴다고 무슨 휴가 짤린 병장처럼 갈궈대는데도 감히 대들지 못하는 걸 보면, 저 여자가 실질적인 우두머리다.
‘티안브리스라... 이것도 에드윈에게 꼭 알려줘야겠어.’
이게 제일 중요한 정보다.
어쨌든 이만하면 충분히 성공적인 정찰이었다고 할 수 있었다. 적의 본거지가 어디인지, 대략적인 숫자와 공격 날짜, 그리고 진짜 우두머리가 누구인지까지 알아냈으니까.
슬슬 만족하고 돌아가려 할 때였다.
협곡 아래에 있던 티안브리스가 한 발짝 앞으로 걸어나서며 입을 열었다.
“내가 너를 위해 특별히 보여주는 것이니.”
─번쩍!
“똑똑히 봐두거라, 수치스러운 동생아.”
화르륵! 그녀의 머리 위에 거대한 불덩어리가 생성되며, 마치 태양이 다시 뜨기라도 한 것처럼 주변이 환하게 밝아졌다.
그 불덩어리는 살아있는 듯 꾸물거리며 점차 어떤 형상을 취해갔다.
‘......저건?’
활활 불타오르는 새.
불사조였다.
“가라, 나의 아이야. 마음껏 불살라버리렴.”
티안브리스가 그렇게 말함과 동시에, 거대한 불사조가 힘차게 날갯짓하며 비상했다. 날개를 펄럭일 때 뿜어져 나오는 열기에 의해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렇게 날아오른 불사조는, 내가 있는 협곡의 언덕 반대편으로 활공했다.
─화륵! 화륵!
불사조가 지나간 경로에 있는 모든 것들이 불길에 휩싸였다. 그것은 마치 자아가 있는 것처럼 자신이 원하는 장소를 마음껏 누비며 광범위하게 불태우고는, 하늘로 치솟으며 스스로 산화했다.
‘미, 미친! 큰일 날뻔했네.’
내 맞은편 언덕은 잿더미만 가득했다.
초목에 불이 붙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새카만 잿더미로 변해버린 것이다.
만약 저 불사조가 내가 있는 언덕으로 왔다면 상당히 곤란할 뻔했다. 막고 못 막고의 여부를 떠나서, 일단 무조건 내 존재를 들켰을 테니까.
방화범은 뭐가 그렇게 좋은지, 입으로 손을 가리며 웃었다. 그리고는 자신의 적발을 쓸어넘기며 동생을 바라봤다.
“오호호홋! 잘 보았니? 수치스러운 동생아? 하루에 두 번밖에 사용하지 못하는 마법을 보여준 걸 영광으로 여겨라.”
엄청 생색내는군.
솔직히 대단한 마법이긴 했다. 위력도 위력이지만 불사조의 움직임을 보면 마법이 아니라, 말로만 듣던 정령을 소환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으니.
근데 사용횟수로 생색내는 건 좀 아니지. 어차피 밤이라 금방 초기화될 텐데. 그냥 동생한테 자랑하는 맛으로 살아가는 여자인가보다.
아니나 다를까, 꽉 쥐어진 티안브리켄의 주먹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그래, 빡치는 게 정상이지.
그러거나 말거나 그의 누이 티안브리스는, 고개를 반쯤 들어 거만한 자세로 동생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그래서, 감상평은? 어떻게 생각하지?”
저건 내가 대신 대답해주고 싶었다.
어떻게 생각하긴.
앨리스로 복제하면 딱 좋겠다는 생각했지.
***
나는 곧장 카트카로 복귀한 뒤, 황급히 마차를 빌려서 케른헴으로 향했다.
새벽이라 마차가 없어서 따따블을 불러야 했다.
─달그락달그락
‘이번 기회에 과감히 앨리스를 투자해야 한다.’
레드 드래곤의 피를 물려받은 용족의 고유 마법. 이건 탐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다만, 내가 직접 티안브리스의 꿈속으로 들어가서 습득하지 않고 앨리스를 투입하려는 이유는, 불확실성 때문이다.
티안브리스는 강하며, 적군의 우두머리다.
내가 오크들이 득실거리는 주둔지에 잠입해 그녀 곁에서 잠드는 것은, 당연히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그녀의 꿈속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그녀를 생포하는 방법밖에 없다.
하지만 전장에서 적 우두머리를 생포하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심지어 강하기까지 한데. 굳이 내가 아니더라도, 모든 아군들이 티안브리스를 상대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일 것이다.
즉, 티안브리스가 죽을 가능성이 있다.
설레발일 수도 있겠으나, 우리 쪽 멤버를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에드윈을 비롯한 체스터 백작의 기사들. 무엇보다 고위 마법사 클로이까지 있다.
‘살살 싸워달라고 부탁할 수도 없고....’
그런고로, 그녀를 생포하지 못할 경우에 대비하기 위해 앨리스를 투입하려는 것이다.
─도착했습니다요.
도착을 알리는 마부의 목소리를 듣고 마차에서 내렸다.
“와, 벌써 아침이네.”
늦은 새벽에 출발해서 그런지, 도착하고 나니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나는 마부에게 마차 삯을 지불하고 즉시 집으로 향했다.
케른헴 외곽에 있는 삼 층짜리 목조 건물.
내가 이곳에 실제로 체류한 기간은 채 일주일도 안 되지만, 어쨌든 내 집이다. 나는 바로 안으로 들어갔다.
“오, 일어나있었네?”
“왔니?”
이른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앨리스는 테이블에 앉아서 책을 읽고 있었다. 저건 심심할 때 보라고 내가 사다 준 동화책이다.
나는 그녀의 맞은편에 앉으며 말했다.
“야야, 내가 드디어 찾았어.”
“응? 뭐를?”
“마법사 말이야. 네가 복제할 만한 마법사.”
“정말? 그게 정말이야?”
앨리스는 읽고 있던 책을 탁! 내려놓으며 다급하게 되물었다.
“누군데? 강한 마법사야? 무슨 마법을 쓰는데? 남자니? 여자니? 어떻게 생겼어? 나이는 얼마나 되구? 사지는 멀쩡한 사람이니?”
“처, 천천히 좀 물어봐. 그렇게 한꺼번에 물어보면 어떻게 대답해?”
“빨리빨리빨리빨리빨리말해줘.”
그녀는 숨도 쉬지 않고 재촉했다. 이것은 거의 광기에 가까웠기에, 나는 재빨리 대답했다.
“드래곤의 피가 섞인 용족이야. 아주 강력한 마법을 사용하지.”
“와아... 용족? 어떤 마법인데?”
“거대한 불사조를 쏘는 거거든? 근데 이게 강력하기도 하지만 마치 유도 미사일 같은... 아, 너는 못 알아듣겠구나. 음... 아무튼 똑똑한 불사조야. 지가 알아서 움직이는 건지, 명령대로 움직이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우와아...!”
앨리스는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감탄을 흘렸다. 다물어질 줄 모르는 입에서는 침이 흘러내릴 기세였다.
“성별은? 멀쩡하게 생겼니?”
“여자야. 생긴 건... 밤에 멀리서 본 거라 잘은 못 봤는데 뭐, 멀쩡해. 타오르는 듯 붉은 머리색도 인상적이고. 아, 근데 꼬리가 있던데... 괜찮나?”
“꼬리? 괜찮아. 내가 엄청 오랫동안 고블린의 모습을 하고 살았다는 걸 잊었니?”
아, 그랬었지.
지하 묘지에서 고블린의 모습으로 슬라임을 잡아먹고 살았던 앨리스다. 그런 그녀에게 꼬리 따위는 별문제도 아니겠지.
아무튼 앨리스도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흥분한 기색이 역력한 그녀는, 엉덩이를 들썩이며 내게 물었다.
“그런데 그렇게 강력한 용족 마법사를 어떻게 잡은 거니?”
“아, 아직 잡은 건 아니야.”
“그럼?”
“그러니까 이게 어떻게 된 거냐면.......”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는 앨리스에게, 현재 상황과 앞으로의 계획을 간략하게 설명해줬다.
“......해서 전장에 같이 가자는 거지. 내 전담 회복 마법사라고 하고, 항상 내 옆에 붙어 다니면 가까이에서 그 용족을 볼 수 있을 테니까. 물론 너는 내가 최선을 다해서 지켜줄 거고.”
두 명의 용족을 제외하고는, 내 보호를 뚫고 앨리스에게 해를 입힐 수 있는 존재는 거의 없을 것이다.
그렇게 나와 동행하다가, 용족과의 전투가 벌어지면 앨리스는 조금 떨어진 곳으로 피신시켜서 관찰하게 하면 될 듯했다.
“어때? 가능할 것 같아?”
“응, 그 정도라면 모습을 흉내 내는 건 충분히 할 수 있어.”
“마법은? 마법이 중요하지.”
“으음....”
앨리스는 아리송한 표정을 지으며 애매하게 대답했다.
“될 것 같기도 하구....”
“뭐야, 그 자신 없는 대답은? 마법을 못 볼까 봐 그래? 내가 무조건 그 여자가 마법을 쓰게 만들어준다니까?”
나뿐만 아니라, 우리 측은 멤버가 짱짱하다. 에드윈을 위시한 기사들과 클로이까지 있는 전장에서, 티안브리스도 고유 마법을 안 쓰고는 못 버틸 것이다.
“으음... 그게 아니라... 나도 마법을 흉내 내본 건 한 번뿐이라서, 확실하게 대답할 수는 없어.”
아, 그 부분을 걱정하고 있던 거였나.
하긴, 앨리스가 지금 가지고 있는 회복 마법이 그녀의 첫 마법이었다.
앨리스는 마법 복제에 성공했을 때, 뛸 듯이 기뻐했었다. 부모나 동료 도플갱어로부터 관련 지식을 전수받은 것도 아니니, 그녀도 자신의 능력이 어디까지 가능한지는 직접 부딪혀 봐야 비로소 알 수 있는 모양이다.
“엘, 네 말대로라면 조금 멀리서 보게 될 것 같은데... 한 번만 봐서 흉내 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 두 번은 봐야 할 수도 있어.”
두 번이라.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티안브리스는 그 마법을 하루에 두 번 쓸 수 있다고 했었으니까.
나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좋아, 어디 한번 해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