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스러운 꿈 (3)
‘아니... 이거 왜 이래?’
나는 초조했다.
“캬하아악!”
“자연으로 돌아가라! 사악한 마물이여!”
“세르시아 님의 은총으로 정화하나니...!”
분명 시간을 끌 목적으로 동굴이 없는 엉뚱한 방향으로 일행을 이끌고 갔으나, 어째서인지 언데드가 더 많이 출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는 것은 네크로맨서가 가까워지고 있다는 뜻. 실재하는지도 확실치 않았던 네크로맨서가, 그냥 막무가내로 나아가다 보니 얻어걸리고 있는 것이다.
“역시... 노련한 모험가이신 엘 님에게 안내를 부탁드리길 잘했네요. 이렇게나 빨리 부정한 존재에게 가까워지고 있다니...!”
“아하하... 제, 제가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저만 믿으시라고 했죠...?”
엘미나가 사뭇 믿음직스럽다는 듯 나를 바라보며 감탄했다. 나는 그런 그녀에게 속마음과 달리 어색하게 웃어 보일 뿐이었다.
‘젠장. 진짜 이러다가 오늘 발견하는 건 아니겠지?’
네크로맨서. 잡으면 당연히 좋다.
자연의 섭리를 깨트리는 부정한 존재니 뭐니 하는 건 잘 모르겠고, 잡으면 보상을 받는다. 모험가 길드에서 약속한 것도 있고, 딱 봐도 흐름상 세르시아 교회에서도 뭔가 줄 것 같은 분위기다.
그와 별개로, 네크로맨서의 소지품 중에 뭔가 돈이 될 만한 물건이 있을 수도 있다. 어쩌면 녀석이 괜찮은 공격 마법을 다룰지도 모르지.
여러모로 잡으면 이득인 것은 맞다.
물론 엘미나의 꿈에 들어간 뒤에 말이지.
“흠흠. 저... 생각해보니 아까 깜빡하고 그냥 지나쳐온 장소가 있는 것 같은데... 잠시 되돌아가서 거길 살펴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이 신실한 교인들을 속여 가며 트롤링 하는 내 모습에 살짝 자괴감도 들었으나, 어쩔 수 없다. 사제를 외부로 꾀어내서 노숙까지 시킬 기회가 어디 흔한가? 심지어 수석 사제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또 언제 찾아올지 모른다.
나의 은근한 제안에도, 엘미나는 수습 성기사와 싸우고 있는 언데드들을 결의에 찬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잠시만요, 엘 님. 눈에 보이는 저 마물들은 모두 정화하고 가야 해요!”
“예? 저걸 다요?”
귀찮은데.
수십 마리의 좀비와 스켈레톤.
아직까지 딱히 강한 개체는 없었으나, 언데드라는 특성상 처치하는 방법이 좀 번거롭다.
대충 아무 부위나 노리고 마법을 쏘면 즉사하거나 과다출혈로 죽는, 살아있는 생명체와는 다르다. 좀비는 머리를 잘라내야 하며, 스켈레톤은 조각조각 분쇄해야 한다.
물론 예외도 있다.
신성력을 사용하거나 불 속성의 마법으로 태워버리면, 굳이 저렇게 번거롭게 처치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나는 불 속성 마법이 그리 많지도 않을뿐더러, 저딴 허접 언데드에게 플레임 오브를 쓰고 싶지도 않다. 일일이 파이어 애로우를 먹이긴 더 귀찮고.
“저런 조무래기는 그냥 무시하고 네크로맨서만 처치하면 되는 거 아닙니까? 저것들은 그저 꼭두각시에 불과하잖아요?”
“아니요...! 네크로맨서가 사라진다고 해서 마물들도 즉시 사라지는 건 아니에요. 천천히 힘을 잃어가죠.”
그렇게 말한 엘미나는 돌연 서 있는 자세를 고쳤다. 언데드를 보니 몸이 달아오른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저도 거들어야겠어요!”
“엘미나 님은 치료 사제시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가능한 거예요!”
“......?”
─위이잉
엘미나의 손에서 하이얀 빛이 뿜어져 나왔다. 이건 나도 꽤 많이 봤고, 직접 맞아본 적도 있는 유형의 빛이었다. 즉, 회복 마법이다.
그녀의 손에서부터 뻗어 나간 빛은, 언데드와 싸우고 있는 수습 성기사를 중점으로 원을 그리듯 퍼져나갔다.
“오옷?! 이 따뜻하고 성스러운 기운은?!”
“수, 수석 사제님의 은총...!”
‘광역 힐인가...?’
다친 곳도 없는데 회복 마법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마는, 어쨌거나 수습 성기사들은 감격스러워하며 전의를 불태웠다.
그리고, 언데드 역시 불태웠다.
“카하아아이엑!”
“.......”
엘미나의 회복 마법에 닿은 좀비는 전에 없던 이상한 비명과 함께 전신이 타들어 갔고, 스켈레톤은 소리를 못 내므로 그냥 타들어 갔다.
‘오... 그래. 언데드에게 힐을 쓰면 죽는 게 국룰이었지.’
이미 죽어있는 언데드에게, 생명력을 불어넣는 힐은 극상성이다. 심지어 그냥 회복 마법도 아닌, 신성력을 이용한 회복 마법. 언데드들이 기쁨의 탭댄스를 추는 것도 이해가 됐다.
나는 잊고 있었던 힐의 또 다른 활용 방법에 감탄하며 엘미나를 바라봤다.
“이야, 과연 수석 사제답네요. 혼자서 그냥 다 쓸어버리셨는데요? 그건 광역 회복 마법입니까? 못 보던 건데.”
그녀의 회복 마법 한 방에, 수십 마리가 넘는 언데드가 잿더미로 산화했다. 언데드 한정으로는 중급 범위 마법인 오브보다도 훨씬 효율이 좋아 보였다.
“예전에 엘 님을 치료해드렸던 회복 마법과 같은 거예요. 단지 넓게 전개했을 뿐이죠.”
“오, 그런 것도 됩니까? 그럼 뭐, 혼자서 수백 수천 마리의 언데드도 잡을 수 있겠는데요? 이거 보면 볼수록 대단한 분이시네.”
내가 손뼉을 치며 칭찬하자, 그녀는 부끄럽다는 듯 얼굴을 붉혔다. 가만 보면 수줍음을 참 잘 타는 여자다.
“그, 그렇게 대단하지는 않아요... 넓게 시전하려면 너무나 많은 신성력이 소모되거든요. 사람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늘 신성력을 아껴둬야 하니, 공격용으로 자주 쓸 수는 없어요....”
‘신성력은 마나랑 비슷한 개념인가?’
들어보니 비슷한 것 같긴 한데, 아직도 정확한 개념은 모르겠다.
내가 엘미나의 회복 마법을 얻어내면, 나는 그 마법을 사용하기 위해 신성력이 필요할까? 아니면 마나로 대체가 될까?
“그럼 방금도 신성력을 많이 소모하셨겠네요? 그건 어떻게 회복합니까? 마나처럼 잘 먹고 잘 쉬면 회복이 빨라지나?”
“세르시아 님께 기도를 올려야죠.”
“아.”
기가 막힌 방법이로군. 그래서 그렇게 틈만 나면 기도를 하는 거였나. 딱히 세르시아를 믿지 않는 나로서는 사용하기도, 이해하기도 어려운 방법이었다.
***
이를 악물고 엉뚱한 곳으로만 돌아다닌 덕에, 드디어 해가 완전히 저물었다.
“이런... 날이 너무 어두워져 버렸군. 아, 이거 캄캄해서 주변이 잘 안 보이네. 아, 이거 곤란하네.”
나는 과장되게 두리번거리며 곤란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정말 그러네요. 그럼 제가 신성 마법으로 주변을 밝힐─”
“어허! 엘미나 님!”
“네, 네?”
“네크로맨서에게 널 잡으러 왔다고 광고라도 하실 셈입니까! 이렇게 탁 트인 공간에서 그런 마법을 쓰면, 오히려 적에게 들키기 쉽습니다!”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라 사실 이건 진짜다.
단순한 몬스터 토벌이 목적이라면 상관없겠지만, 지금처럼 상대가 인격체인 경우에는 역효과를 불러일으킨다. 마법으로 만들어낸 빛을 보고 경계할 테니까.
“앗, 그렇겠네요... 그럼 횃불을 만들어서 들고 다닐까요?”
“그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횃불을 든 우리는 멀리까지 볼 수 없지만, 네크로맨서는 멀리서도 우리의 횃불을 볼 수 있을 테니까요.”
“그, 그럼 어떡하죠?”
“후우. 아쉽지만... 오늘의 수색은 여기까지만 하고 노숙을 하는 게 좋겠습니다.”
나는 몹시 아쉽다는 듯 크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네? 하, 하지만 하루라도 빨리 사악한─”
“제길!! 오늘은 방법이 없어서 넘어가지만, 내일은 기필코 찾아내서 정의를 구현해주마! 이 부정한 네크로맨서 녀석!”
엘미나가 보채려는 것 같았기에, 황급히 말을 끊고 화난 척했다. 원래 이럴 땐 먼저 화내는 놈이 장땡이다.
─팍팍!
내가 길길이 날뛰며 애꿎은 땅을 팍팍 짓밟고 있자, 엘미나가 황급히 붙잡으며 만류했다.
“지, 진정하세요!”
“이거 놓으세요, 엘미나 님. 당장 녀석을 찾아내고 싶지만, 어쩔 수 없이 하루를 기다려야만 한다니... 원통해서 참을 수가 없습니다. 에잇!”
“역시... 엘 님은 참 정의로운 분이세요.”
“.......”
그런 소릴 들으니 양심에 찔려서 도저히 계속 화난 척 연기할 수가 없었다. 나는 진정하고 마법을 캐스팅했다.
─쿠르르...
─쿠르르...
─쿠르르...
[금일 사용 가능한 ‘랜드 라이즈’ - 4회]
“흠흠. 여기서 하룻밤 머물면 될 것 같습니다.”
나는 삼면을 일으켜서 만들어낸 ‘ㄷ’모양의 쉼터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건 바람을 막기 위한 목적도 있었지만, 혹시 모를 언데드의 공격을 막기 위해 만들었다.
“알겠어요.”
“알겠네, 형제여.”
“예, 그럼 불침번을.......”
바로 불침번 순서를 정했다.
내가 초번이고, 그다음이 성기사 둘, 그리고 엘미나가 말번이다. 원래는 엘미나 몫까지 내가 서려고 했는데, 그녀가 극구 거절하는 바람에 초번만 서게 됐다.
“그럼 먼저 자보겠네, 형제여.”
“부탁하지.”
“고생하세요, 엘 님.”
일행들은 곧바로 쉼터 안으로 들어갔다.
온종일 돌아다녔으니 바로 곯아떨어질 줄 알았는데, 셋이 모여서 무릎 꿇고 한참동안이나 기도를 올리다가 잠들었다.
‘......보기만 해도 내가 다 피곤하네.’
아무튼 내 계획은 문제없이 진행되고 있다.
사실 이쯤 됐으면 거의 성공한 거나 다름없다. 공격 마법과 달리, 회복 마법은 얻기 수월할 테니까.
공격 마법을 얻으려면, 마법에 맞아 죽기 위해 상당한 빌드업이 필요하다. 나에 대한 적개심도 만들어둬야 하고, 내가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을 연출하는 등.
하지만 회복 마법은 굳이 그럴 필요가 없으니, 습득하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저 습득한 마법을 쓰기 위해 필요할지도 모르는 신성력이 마음에 걸릴 뿐이다.
‘만약 안 되면... 회복 마법사의 마법을 얻어내야지 뭐.’
어쨌든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금세 교대 시간이 다가왔다. 체감상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아마 일행들이 기도하느라 늦게 잠들어서 그런 것 같다.
나는 쉼터로 들어가서 성기사를 깨웠다.
“코헨 씨. 교대할 시간입니다.”
“......음? 아, 그렇군. 수고했네, 형제여.”
그는 별 불만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쉼터 밖으로 나갔다.
“.......”
엘미나는 가장 구석에서 다소곳이 잠들어있었다. 나는 대충 빈자리에 누운 뒤, 그녀의 꿈속으로 진입했다.
─화아악!
나는 어떤 광장 한복판에 서 있었다.
“와아....”
보통은 꿈에 들어오자마자 섣불리 입을 열지 않는 편이었지만, 이번에는 나도 모르게 육성으로 감탄을 내뱉었다.
무슨 로마에 있는 바티칸 시티 같았다.
정면에는 장엄한 신전이 위용을 드러내고 있었고, 거기서부터 이어진 구조물이 내가 서 있는 광장을 빙 둘러싸고 있었다.
‘여기는... 일종의 성지인가?’
처음에는 세르시아 교의 본단이 아닐까 싶었지만, 그것보다는 성지에 가까워 보였다. 왜냐하면 정면에 있는 신전에, 순례자로 보이는 사람들이 무릎 꿇고 기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본단이었다면 뭔가 좀 더 행정적인 업무를 위한 건물들이 많았을 텐데, 이곳은 대부분 개방되어 있어 외부인의 출입이 얼마든지 가능한 형태였다.
나는 보다 자세한 정보를 얻기 위해, 광장을 돌아다니고 있는 사람 하나를 붙잡아서 말을 걸어봤다.
“안녕하세요. 혹시 여기가 세르시아 교의 성지, 뭐 그런 곳입니까?”
“어아으어에아우으?”
“아, 예. 수고하세요.”
그래, 이게 정상이지. 이게 보편적인 꿈이지.
내가 최근에 들어갔었던 레이첼의 꿈이 특이한 거였지, 원래 꿈속의 인물들은 이렇게 제대로 된 말을 못 하는 경우가 많다. 그저 ‘지나가는 순례자’ 정도로만 구현된 인물일 테니까.
나는 엘미나의 꿈이 지극히 평범하다는 것에 만족하며, 정면에 있는 신전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성지 순례 하는 꿈을 꾸는 모양인데... 그럼 신전에서 기도하고 있겠지.’
솔직히 대단하긴 했다. 꿈에서조차 성지를 찾아 기도를 올린다니. 진짜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믿음이 있지 않고서야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괜히 수석 사제가 아닌 듯했다.
아무튼 도시처럼 넓은 장소는 아니었기에, 얼마 걷지 않아 신전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신전으로 향하는 계단을 올라가려고 할 때, 문득 옆에 있는 석판이 눈에 들어왔다. 거기엔 신전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 적혀 있었다.
[본 신전은 희망의 여신 세르시아 님께서 세상에 마지막으로 현현하셨던 장소입니다.]
[희망을 품은 존재라면 누구나 자유롭게 출입하여 기도를 올릴 수 있으나, 반드시 정숙해주실 것을.......]
‘인간 세상에 세르시아가 마지막으로 모습을 드러낸 장소라....’
과연. 성지로 삼을 만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계단을 밟았다.
그렇게 계단을 막 올라가기 시작할 무렵,
─탁탁탁탁!
“......?”
웬 여자아이가 계단 옆 난간 위를 뛰어다니고 있었다.
‘이거 아주 불량한 꼬맹이구만?’
절대 정숙을 요하는 성스러운 신전에서 뛰어다니다니? 그것도 난간 위에서? 게다가 저 불량한 머리색은 또 뭐고? 저게 은발이야 백발이야?
나는 점잖게 타이르기로 했다.
“꼬마야. 여기서 그렇게 뛰어다니면 위험─”
─탁탁탁탁!
난간 위를 달리던 여자아이는 긴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내 옆을 휙- 지나쳐서 신전 아래로 내려갔다.
어른이 말하는데 무시하고 지나가...?
그럼 나도 그냥 지나가야지.
생각해보니 내가 타일러도 어차피 못 알아들을 것 같았다. 엘미나가 특별히 신경 써서 창조해낸 인물이 아니라면 대화가 불가능하니까.
그렇게 야트막한 계단을 올라가니, 널찍한 터가 나왔다. 그곳에서는 많은 순례자들이 중앙에 있는 석상을 향해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저게 세르시아를 본뜬 석상인가.’
자애롭게 웃고 있는 성숙한 여인이, 양손을 포개어 기도하고 있는 모습의 석상.
왜인지 낯이 익은 느낌이었다.
꼭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착각인가? 하긴. 교회에 가면 저렇게 정교하진 않아도 비슷하게 만들어진 석상이 있다. 그걸 봐서 낯이 익은 거겠지.
나는 석상을 바라보는 것을 그만두고, 순례자들 사이를 걸어 다니며 그들을 하나하나 살폈다.
그러자 곧, 새하얀 법복을 입고 경건한 자세로 기도를 올리고 있는 엘미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다가가 어깨를 톡톡 두드리며 작은 목소리로 아는 체했다.
“오, 이거 엘미나 님이 아니십니까?”
“......엘 님? 엘 님이 왜 여기에?”
엘미나가 사뭇 놀란 듯한 얼굴로 되물었다. 그녀가 위화감을 느끼면 꿈이 깨질 염려가 있으니, 나는 재빨리 대답했다.
“아아, 모르셨구나? 저도 종종 옵니다. 성지 순례.”
내 가슴팍에 달린 세르시아 교단의 증표를 보란 듯이 만지작거리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