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스러운 꿈 (2)
“......근데 왜 다른 모험가에게는 말하지 말라는 겁니까?”
정말로 네크로맨서가 나타났다면, 모두에게 알리고 토벌에 나서야 하는 게 아닐까 싶어서 물었다.
“길드장님이 대외비로 하라고 하셨어요. 아직 확실한 것도 아닌데 소문만 먼저 나버리면 괜히 싱숭생숭해지잖아요? 겁먹어서 언데드 처치 의뢰를 기피하게 될 수도 있고, 반대로 무모하게 도전하다가 피해가 발생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건 그렇다.
메두사 때도 대대적인 레이드 팀이 꾸려지기 이전에, 섣불리 먼저 나섰다가 당해버린 모험가 파티들이 좀 있다고 들었다.
“대외비인데 저한테 말해도 되는 겁니까?”
“에이, 엘 씨잖아요. 케른헴에서 가장 강력한 마법사. 기사보다도 강한 엘 씨가 당할 리가 있겠어요? 네크로맨서가 당하면 당했지.”
이 여자.......
안목이 있군.
네크로맨서.
죽은 자를 부리는 강령술사.
기본 베이스는 흑마법이다. 시체를 되살리는 불길하기 짝이 없는 마법이 흑마법이 아니면 뭐겠는가.
얼마나 강한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흑마법의 주 무기 중 하나인 ‘저주’에 대해서는 상당한 내성이 있다. 메두사의 마안 덕분이다. 적어도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시름시름 앓다가 고꾸라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흠흠. 저를 굉장히 높게 평가해주시는군요. 그럼 제가 별도로 팀을 꾸려서 네크로맨서를 찾으러 가 봐도 되겠습니까?”
“그래 주신다면 저희야 감사할 따름이죠! 엘 씨도 아시겠지만... 좀비 같은 언데드는... 아시죠?”
그래, 알지.
길드 입장에서 돈이 안 된다는 거.
좀비를 아무리 잡아봐야 썩어 문드러진 살덩이 외에는 얻을 수 없다. 당연히 먹을 수도 없다. 그딴 걸 먹으면 병 걸린다. 아무런 부산물이 없으니, 의뢰도 잘 안 들어온다.
하지만 모험가 길드는 케른헴을 운영하는 길드 연합체의 구성원이다. 더러운 언데드 따위가 케른헴 주변에서 활개 치고 다니게 놔둘 수는 없는 노릇이니, 모험가 길드가 제 돈을 지출해가며 처치하고 있는 것이다.
“알겠습니다. 제가 한 번 찾아보죠.”
“혹시 네크로맨서를 발견하거나 처치하신다면 길드에 알려주세요. 정식 의뢰는 아니지만,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드릴게요.”
그렇게 말한 길드 직원은 다시 접수대에 앉았다. 놀랍게도 지금까지의 모든 대화는 귓속말이었다.
나는 축축해진 귀를 후비며 말했다.
“예, 뭐. 근데 너무 기대하지는 마세요.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찾아볼 생각이거든요.”
내 이번 목표는 네크로맨서가 아니라, 치료 사제 엘미나의 신성 마법이다. 네크로맨서는 그저 그녀와 함께 행동하기 위한 명분일 뿐이다.
“에이~, 그렇게 말씀하셔도 열심히 하실 거 다 알아요. 엘 씨는 한번 시작한 일은 반드시 책임지고 완수하시잖아요?”
......? 내가? 언제부터?
전혀 근거 없는 말이었지만, 나는 남이 나를 좋게 평가해주는 걸 굳이 따지며 부정할 만큼 미련한 사람이 아니었으므로, 그냥 고개를 까딱여 인사하고 길드를 빠져나왔다.
─끼이익
케른헴 중앙 광장에 있는 시계탑을 지나 서쪽으로 걷다 보니, 곧 세르시아 교단의 교회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제 보니 확실히 작긴 하네.’
케른헴에만 처박혀서 살던 시절에는 이 구조물이 아주 크고 고급스럽다고 생각했었는데, 나름대로 견문이 넓어진 지금 보니 그렇게 크게 느껴지진 않았다.
하긴. 버려진 도시에 있는 지부니까.
레이첼이 잠들어 있던 오리아의 세르시아 교회에는 무려 ‘주교’라는 고위직이 있었지만, 여기는 ‘목사’라는 친숙한 직책이 교회를 관리한다.
아무튼 나는 가슴에 달려있는 은인의 증표를, 최대한 잘 보이게끔 위치를 조정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은인께서는 어떤 일로 본 교회를 방문하셨습니까?”
내부로 들어서자마자 젊은 남자가 다가와 그렇게 물었다. 복장을 보아하니 사제는 아닌 듯하고, 그냥 교인인 것 같았다. 이곳은 규모가 작아서 사제도 흔치 않다.
“아, 엘미나 님을 뵈러 왔습니다.”
“사제님께서는 지금 치료소에 계십니다. 저를 따라오시지요.”
나는 그를 따라 치료소로 향했다. 원래 치료소는 교회 옆에 별도의 건물로써 자리하고 있는데, 서로 이어지는 통로가 있는 모양이었다.
그는 나를 치료소에 있는 어떤 방 앞까지 안내하고는, 문을 두드렸다.
─똑똑
“사제님, 은인께서 찾아오셨습니다.”
“......네? 네? 드, 들어오세요.”
치료실 안쪽에서 왜인지 당황한 듯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들어가시면 됩니다.”
“예, 감사합니다.”
나를 안내해준 교인은 꾸벅 인사하고 떠났다. 나는 문을 열고 치료실 안으로 들어갔다.
“누구... 에, 엘 님?!”
황급히 머리카락을 정리하고 있던 엘미나는, 내 등장이 의외라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안녕하십니까, 엘미나 님. 그... 이쪽에 침이....”
“앗.”
내가 손가락으로 그녀의 왼쪽 볼을 가리키자, 그녀는 당황하며 볼에 묻어있던 침을 슥슥 닦아냈다.
그러니까, 이 여자는 방금까지 졸고 있었다.
“차, 찾아오는 환자분이 안 계셔서 그만....”
“......? 그렇군요.”
엘미나는 머쓱한 모양인지, 묻지도 않았는데 자신이 졸았던 이유에 대해 해명했다. 뭐, 손님이 없으면 그럴 수도 있는 거 아닌가?
“그, 그런데 무슨 일로 저를 찾아오셨나요? 혹시 어디 다치셨어요?”
“아뇨, 그런 건 아닌데.......”
나는 엘미나 앞에 놓여있는 의자에 앉은 뒤, 의자를 바짝 당겨서 그녀에게 가까이 붙였다.
“......제가 마물의 정보를 가져왔습니다.”
“마물이요?”
“예. 아주아주 사악하고 음침한 녀석입니다. 사실 마물은 아닐 수도 있는데, 마물보다 더 위험한 존재죠. 그리고 그게 케른헴에 나타났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어, 어, 어떤 존재죠?”
“그 이름 하여.......”
꿀꺽. 엘미나가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네크로맨─”
“꺄아악!!!”
“......?”
“세, 세상에나...! 그게 정말인가요? 그런 부정한 존재가 케른헴에...!!”
엘미나는 돌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자신의 목걸이에 달려있는 세르시아 교단의 상징을 두 손으로 집어 들고 기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만인의 희망 속에 늘 자리하고 계시는 세르시아 님이시여... 저희를 굽어살펴주시옵고 부정한 것들로부터 지켜주시.......”
아, 그래. 엘미나는 광신도에 가까웠지.
예전에 내가 리자드맨에게 맞아 부상당했을 때, 상처가 깊지 않은 이유가 세르시아 덕분이라고 말하던 여자다. 그런 엘미나가 이렇게 호들갑을 떠는 걸 보니, 세르시아 교단에서 네크로맨서를 어떻게 취급하는지 알법했다.
나는 그녀의 기도가 끝날 때까지 한참을 기다린 뒤에나 다시 말을 걸 수 있었다.
“......네크로맨서가 그렇게나 부정한 존재입니까?”
“당연하죠! 삶과 죽음은 자연의 섭리예요. 그걸 뒤집을 권한이 있는 건 오직 신뿐. 인간이 감히 침범해서는 안 되는 영역입니다. 그건 신성 모독이에요!!!”
흥분한 엘미나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렇군. 그래서 지난번 고대의 던전에 엘미나와 수습 성기사를 파견했던 거였나 보다. 언데드는 죽음이라는 자연의 섭리를 어긴 존재니까.
언데드조차 마물로 규정하고 처단할진대, 하물며 그 언데드를 만들어내는 네크로맨서는 어떻겠는가? 이렇게 눈이 뒤집힐 만하다.
아무튼 잘 됐다. 이러면 꾀어내기가 쉬울 테니. 나는 흥분한 엘미나를 더욱 부추기기 위해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저런...! 신성 모독이라니! 그런 일이, 그런 존재가 가까이에 있어서야 되겠습니까? 이건 도저히 용납할 수 없습니다, 엘미나 님! 그래서 말인데, 저와 함께 네크로맨서를 처단하러 가지 않으시겠습니까!”
“역시 엘 님...! 세르시아 교단의 은인다운 말씀이시네요! 좋아요! 제가 당장 본단에 서신을 보내서 고위 사제와 성기사를 잔뜩 요청하겠어요!”
“오오! 그거 좋은─”
아니. 그건 아니지.
“─좋은 선택은 아닙니다. 본단이 어디에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럼 너무 늦지 않겠습니까? 그 사이에 네크로맨서가 도망칠 염려가 있습니다.”
나는 급격히 차분해져서 그녀를 설득했다.
고위 사제와 성기사가 잔뜩 따라온다면 엘미나의 꿈에 들어가기 쉽지 않을 것이다. 아니, 그것보다 애당초 네크로맨서가 진짜로 있는지조차 확실하지 않다.
괜히 일이 커지면 나만 곤란해진다.
“으음... 그러네요. 엘 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본단의 지원을 기다리는 건 너무 오래 걸리겠네요.”
엘미나는 목걸이를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느릿하게 끄덕였다.
“예예, 서둘러야 하니 저희끼리 가시죠.”
“좋아요.”
***
다음 날.
언데드가 출몰한다는 케른헴 동쪽 숲지대.
서두르자고 말했지만, 엘미나가 준비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기에 하루가 지난 뒤에야 이곳에 올 수 있었다.
“캬하아악!”
“......사악한 마물! 형제여, 저 마물은 내가 정화하겠네!”
“아, 예. 그러시죠.”
물론 두 명의 수습 성기사도 함께.
화악! 수습 성기사 코헨의 검에서 백색 광휘가 은은하게 새어 나왔다. 그는 그대로 좀비에게 달려 나가며 검을 휘둘렀다.
─서걱! 파스스....
“오....”
나는 나지막하게 감탄을 내뱉었다.
솔직히 검술은 그저 그런 수준이었으나, 검에 오러처럼 맺힌 백색의 기운만큼은 상당히 훌륭했다. 단순히 좀비의 목을 절단한 것에 그치지 않고, 절단면이 불에 타듯 타들어 갔기 때문이다.
신성력을 이용해서 오러처럼 사용하는 거라고 하는데, 직접 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수습 성기사라고 해도 B급 모험가보단 훨씬 강해 보이네. A급에 살짝 못 미치는 정도려나?’
아무튼 이번 일에는 두 명의 수습 성기사가 함께 한다. 아까 교회를 찾아가니, 내 실력은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엘미나의 호위가 필요하다며 목사가 붙여준 인력이다.
이건 뭐, 잘된 일이다.
원래 모험가를 몇 명 데려갈 생각이었다.
엘미나와 단둘이서 나오면, 밖에서 노숙할 경우 서로 번갈아 가며 불침번을 서야 해서 그녀의 꿈으로 들어가기 어려울 테니까.
“낮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마물이 나타나다니... 역시 자네가 말한 대로 네크로맨서가 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군, 형제여.”
좀비를 썰어버리고 돌아온 수습 성기사 코헨이 검을 집어넣으며 말했다. 그가 말하는 ‘형제’란 나를 의미한다. 은인의 증표를 가지고 있으니 형제나 다름없다나 뭐라나.
“그렇죠. 며칠이 걸리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찾아내야 합니다!”
“오오, 이 얼마나 경건한 형제란 말인가...!”
나는 노숙을 암시하려는 목적으로 말했으나, 코헨은 감동했다는 듯 나를 쳐다봤다.
그는 ‘수습’ 성기사지만 중년에 가까운 사내였다. 이게 사제나 성기사의 특이한 점이다. 꼭 수습이라고 해서 젊지도 않고, 정식이라고 해서 나이가 많지도 않다.
이는 이들이 사용하는 힘이 신성력이라는 점에서 기인한 것인데, 신성력은 ‘신앙심’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나이와는 관계가 없다고 한다.
‘내가 보기엔 코헨도 신앙심이 충만한 사람 같은데... 왜 수습 성기사지?’
신앙심이라는 것은 지극히 주관적인 기준이므로, 타인인 나로서는 도대체 알 겨를이 없었다.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해답이 없는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수습 성기사 코헨이 엘미나를 향해 공손하게 물었다.
“어디로 가는 것이 좋겠습니까, 수석 사제님?”
“그건... 노련한 모험가이신 엘 님의 판단을 따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이쪽 지리도 가장 잘 아실 테구요. 그렇죠, 엘 님?”
“예? 아, 네. 이 근처는 제가 좀 알긴 하는데... 아니, 그것보다 수석 사제셨습니까?”
엘미나가 사제인 것만 알았지, 수석 사제인 줄은 몰랐다. 아무리 세르시아 교단의 케른헴 지부가 작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거기에 있는 사제 중에서는 으뜸이라는 소리가 아닌가.
내가 당황하며 되묻자, 엘미나는 부끄럽다는 듯 얼굴을 붉히며 대답했다.
“네에... 얼마 전에 진급을....”
“형제여, 수석 사제님의 신앙심은 감히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깊다네. 이미 본단에서도 몇 번이나 모셔가려고 했었지. 물론 수석 사제님이 거절하셨지만 말이야.”
뭐? 그 정도라고? 치료소에서 졸고 있던데?
하여튼 이쪽 세계는 참 특이하다니까.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입을 열었다.
“그렇군요... 뭐, 아무튼. 혹시 네크로맨서에 대해 아시는 게 있습니까? 습성 같은 걸 알아야 방향을 정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내 질문에 답한 것은 역시나 엘미나였다.
그녀는 이런 지식이 많다. 메두사에 대해 내게 설명해준 것도 그녀였으니까.
“망자를 되살려내는 네크로맨서는 춥고 어두운 곳을 좋아한다고 해요. 어쨌거나 마물도 부패하니까요.”
그건 그렇다. 뼈밖에 없는 스켈레톤은 모르겠지만, 좀비 같은 건 햇빛을 받으면 부패가 가속화될 것이다. 기껏 만들어낸 꼭두각시들이 금방 썩어버리면 안 되니, 어디 음습한 곳에 처박혀있겠지.
“그럼 동굴 같은 데로 가보면 되겠군요.”
“아는 장소가 있으세요?”
“아, 물론이죠. 제가 또 케른헴에서 내로라하는 모험가가 아니겠습니까? 저만 믿고 따라오시죠.”
“역시...!”
나는 일행들의 전폭적인 신뢰를 받으며,
동굴이 없는 방향으로 성큼성큼 나아갔다.
네크로맨서는 하룻밤 후에 찾아야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