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꿈속에서 마법을 훔치는 마법사-93화 (93/200)

두 번째 영지전 (4)

나는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

‘꿈의 주인에게 동일한 마법을 3회 이상 맞아도 획득 가능하다고...?’

웬만한 공격 마법은 한 번만 맞아도 죽는다.

일부러 3회 이상 맞기도 어렵다는 뜻이다.

즉, 이건 공격 마법을 위한 방법이 아니다.

‘......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회복 마법이었다.

힐이나 해주 같은 회복 계열의 마법들.

물론 나는 메두사의 마안에 의해 어지간한 저주에는 면역이니 해주 마법이 급한 건 아니지만, 있으면 당연히 좋다. 회복 마법은 말할 것도 없고.

게다가 꼭 회복에 관련된 마법이 아니더라도 습득이 가능하다. 이를테면 체크 메이트 같은 속박 마법도 3회만 맞으면 얻을 수 있을 테니까.

‘......생각할수록 좋은 것 같은데?’

나는 화력만 넘쳐흐르는 기형적인 마법사다.

보통의 마법사는 자신의 주력 속성에 관련된 공격 마법을 위주로 다루지만, 나는 속성을 넘나들며 다양한 공격 마법을 구사하니까.

마법사의 천적이라 불리는 기사와 싸울 때에도, 화력이 부족해서 곤란한 적은 없었다. 기사를 붙잡아둘 만한 CC기 혹은 메즈기라 일컫는, 군중제어기술이 부족했을 뿐.

하지만 이제는 기회가 열렸다.

공격 마법만 넘치고, 보조 마법이 부족하다는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기회가.

‘이번 전쟁을 마무리 지으면, 다시 마법을 얻으러 돌아다녀야겠어.’

어쨌든 아직 할 일이 남아있었다.

승격 퀘스트는 완료했지만, 전투는 여전히 진행 중이었으니까.

정신을 차리고 전황을 자세히 살펴봤다.

전장의 모든 사람들은 아직 당황한 채 이쪽을 보고 있는 상태. 그러나 아군이 먼저 다시 슬슬 움직이려 하고 있었다.

‘흐음. 적의 중앙군은 궤멸 상태군....’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되기 전에 내가 체인 라이트닝으로 숫자를 잔뜩 줄여놓은 게 효과가 있었던 모양인지, 중앙은 이미 결판이 나 있었다. 중앙에서 싸우던 아군 병사들은 흩어져서 좌익과 우익을 지원하고 있었다.

이 정도면 사실상 이미 승리한 거나 다름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수적 우위에 있는 아군이 더욱 압도할 테니까.

‘그래도 가서 도와줘야겠지.’

당연히 도와야 하는 이유가 있었다.

그래야 아군의 피해를 줄일 수 있고,

무엇보다, 능력치를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눈 마주치지 말라고 했지!!!”

나는 악을 쓰며 전장으로 달려 나갔다.

라이트닝 블래스트를 썼음에도 불구하고, 마나가 상당히 여유로운 상태였다. 기사를 죽여서 마나가 오른 것도 있지만, 승격 퀘스트로 받은 능력치의 상승이 어마어마했다.

“으아아! 도, 도망가!”

“눈을 마주치면 반드시 살해당한다!”

“비, 비켜! 길 막지 마!”

내가 쏜살같이 쇄도하자, 적군이 혼비백산하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물론 브룩스 자작에게 고용된 용병들만 그렇게 도망쳤고, 자작의 사병들은 그러지 못했다. 그들은 용병처럼 자유롭지 못해서 명령이 떨어지기 전까지는 후퇴할 수 없으니까.

“이 자식들... 누구 맘대로 퇴각하는 거냐! 자리를 지켜라! 이 자리에서 죽는 한이 있더라도, 자작님을 향한 너희의 의무를 다하란 말이다!”

자작 측 진영에서 그런 불호령이 터져 나왔다. 목소리의 주인은 아마 기사인 듯했는데, 그가 소리치거나 말거나 용병들은 줄행랑쳤다.

“의무는 무슨 얼어 죽을 의무!”

“내 목숨이 제일 소중해!”

“당신은 방금 기사가 번개에 바싹 튀겨지는 것도 못 봤소?”

구구절절 옳은 말이었다.

어쨌거나 용병은 잡아봤자 능력치를 주지 않으므로 그냥 도망가게 놔뒀다. 대다수의 용병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자, 안 그래도 기울어있던 전세가 더욱 기울었다.

“와아아! 포위해라!”

“한 놈도 살려두지 마라!”

“전리품! 전리품! 전리품!”

밀러 백작 병사들의 기세는 하늘을 찌를 듯했고, 아군 용병은 이 기회에 전리품을 노획하려고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었다.

나도 황급히 적진을 뚫고 들어갔다. 방금 불호령을 내린 목소리의 주인을 찾아야 했다.

“헉! 당신은...? 끄악!”

“누, 눈을... 크헛!”

나는 딱히 검을 휘두른 것도, 마법을 쓴 것도 아닌데, 적군 병사들은 내 몸이 스치는 것만으로도 감전되어 움찔했다. 전신을 둘러싸고 있는 라이트닝 아머 덕분이다.

아무튼 그렇게 적들을 비집고 깊숙이 들어가니, 두 명의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밀러 백작의 기사와 브룩스 자작의 기사.

그들은 아직 우열을 가리지 못하고 있었다.

“하아압!”

“흐럇!”

─채앵! 챙! 챙!

서로의 명예를 걸고 벌이는 일대일 결투.

‘......는 개뿔. 무조건 내가 막타친다!’

전쟁터에 일대일이 어디 있나?

아군이면 돕고, 적이면 죽이는 거지.

나는 승격 퀘스트를 완료했기 때문에, 모든 마법의 횟수가 늘어났다. 정확히 얼마나 늘어났는지는 일일이 확인해봐야 알겠지만, 일단 늘어난 건 분명하다.

‘역시 기습 공격엔 이 마법이 최고지.’

─번쩍!

─꽈릉!

마른하늘에서 굵직한 벼락이 내리꽂혔다.

[금일 사용 가능한 ‘콜링 썬더’ - 2회]

“커헉!”

적 기사는 단 한 방만에 자리에 주저앉았다.

“무, 무슨...?”

“뭐, 뭐야?”

눈 깜짝할 새에 벌어진 일에 아군 기사가 당황했고, 나도 당황했다.

‘......횟수가 이렇게나 늘어났다고? 아니, 그보다 위력이 이렇게 강해졌어?’

횟수가 3회나 늘어났다. 즉, 총 6회다.

이것만 해도 충분히 놀라울 지경인데, 위력은 더 놀라웠다.

콜링 썬더다.

기습에 특화된 만큼, 위력은 비교적 약한.

승격 이전에는 세 번을 연달아 맞춰야 기사를 빈사상태로 만들 수 있었는데, 지금은 단 한 방만에 그렇게 됐다. 상대가 조금 지쳐있다는 걸 감안하더라도, 족히 두 배는 될 것 같은 위력이었다.

“그... 아차! 막타!”

잠시 당황하고 있던 나는 이내 정신을 차렸다. 다른 사람한테 뺏기기 전에 얼른 막타를 쳐야 했다. 엄밀히 말하자면 내가 뺏는 거지만.

─번쩍!

─꽈릉!

[금일 사용 가능한 ‘콜링 썬더’ - 1회]

꿇어앉아 있던 적 기사는, 추가로 떨어지는 벼락을 맞고 바닥에 힘없이 늘어졌다.

[조건을 달성해 능력치가 오릅니다!]

“고맙소, 엘. 만만치 않은 놈이었는데.”

“기사... 다른 기사는 어디에 있습니까?”

나는 고마움을 표하는 아군 기사에게 다급히 물었다. 자잘한 병사 여럿을 처치하는 것보다, 기사 하나를 잡는 게 능력치가 더 많이 오른다.

“중앙에 있던 기사는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소만, 우익에는 아직 남아있을 거요. 혹시 기사를 상대하러 갈 생각이라면 나도 같이─”

“아니아니! 아닙니다. 경께서는 이곳에 남아 아군을 도와주십시오. 뛰어난 지휘관이 자리를 비우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 우익에는 저 혼자 가겠습니다.”

경쟁자를 달고 갈 순 없지.

“내가 잠시 본분을 망각할 뻔했군. 알겠소.”

그는 다시 검을 치켜들고 적군을 베기 시작했다. 나는 즉시 발걸음을 옮겨 우익으로 향했다.

“기사! 브룩스 자작의 기사는 어디에 있나!”

고래고래 소리 지르면서.

***

밀러 백작성 내부의 연회장.

이곳은 영지전의 승리를 기념하는 연회로 인해 시끌벅적했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이 올린 전과를 자랑하며 흥겹게 술을 마시고 있었다.

“와하하! 마셔라!”

“크으. 나는 이번에 세 놈을 처치했─”

“나는 질 좋은 검을 두 자루나 노획했─”

이번 전쟁의 결과는 대승이었다.

비록 아군의 절반가량은 연회에 참석하지 못할 정도로 다치거나 죽었지만, 그럼에도 대승이라고 부를 만했다.

왜냐하면 이번 영지전에 참여한 브룩스 자작의 기사 다섯 명을 모두 처치했기 때문이다.

“브룩스 자작 그놈은 이제 이빨이 전부 빠진 거나 다름없어. 물론 이건 다 자네 덕분이지. 크핫핫!”

밀러 백작이 호쾌하게 웃으며 내 어깨를 두드렸다.

“과찬이십니다. 제가 다 잡은 것도 아닌데요, 뭐.”

물론 내가 전부 다 한 것은 아니지만, 거의 다 했다고는 볼 수 있었다. 다섯 명의 기사 중, 네 명을 내가 처치했으니까.

용병으로 위장한 기사 둘.

그리고 돌아다니며 막타를 쳐서 둘 더 잡았다.

나머지 한 명은 아쉽게도 놓쳤다. 아니, 놓쳤다기보다는 이미 죽어있었다. 브룩스 자작의 중앙군이 워낙 열세여서, 아군에게 포위당한 뒤 밀러 백작의 기사에게 죽었다고 한다.

“그래도 다섯이야 다섯. 이번에 넷, 지난번 전쟁에서 하나. 세상에 어떤 마법사가 기사를 이렇게나 많이 잡을 수 있겠나?”

밀러 백작은 연회 내내 입이 마르고 닳도록 나를 칭찬하고 있었다. 이건 뭐 내가 백작이고, 이 사람이 평민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그는 그만큼 이번 승리를 기뻐했는데,

반대로 몹시 화도 나 있는, 특이한 상태였다.

─쾅!

“......헌데 생각할수록 화가 치밀어 오르는군. 기사를 용병으로 위장시키는 비열한 수를 쓰다니.”

백작은 돌연 테이블을 주먹으로 내리치며 낮게 중얼거렸다.

용병으로 위장시킨 게 얼마나 큰 잘못인지는 나도 모르겠으나, 귀족치고 성격이 좋은 밀러 백작이 이럴 정도면 보통 잘못은 아닌 듯했다.

“만약 자네가 그 자리에 없었다면... 어떻게 됐을지 상상하기조차 싫군.”

“아하하....”

중위 마법사부터 썰리고 뒤치기를 당했겠지.

라고 생각했지만, 분노한 백작에게 사실 그대로 말할 수는 없었기에 그냥 멋쩍게 웃었다.

아무튼 그는 한동안 씩씩거리더니, 은근하지만 결연한 어조로 내게 말했다.

“......그래서 나는 브룩스 자작에게 보복할 생각이라네.”

“보복이요...?”

“그래, 전면전을 선포할 걸세.”

“......!”

충격적인 선언이었다.

“명분도 이만하면 충분하고, 놈은 기사마저 거의 다 잃었으니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야. 아, 물론 자네에게 도와달라는 말은 아닐세. 자네는 이미 많은 것을 해주었으니.”

나도 딱히 도와줄 생각은 없었다.

승격 퀘스트를 끝냈으니까. 브룩스 자작 측에 기사가 많으면 능력치를 먹기 위해서라도 고려해봄직 한데, 이제 그쪽엔 기사가 없다.

심지어 밀러 백작은 기사를 하나도 잃지 않은 상황. 전면전에 굳이 내가 나서지 않더라도 압승을 거둘 만했다.

“그런데 그걸 왜 제게 말씀하시는...?”

나는 외부인이다. 용병이긴 하지만 내게 도움을 요청할 생각도 없다고 했는데, 전면전을 선포할 거란 사실을 왜 말해주는지 의아했다.

“전면전일세. 승리하면 브룩스 자작의 모든 영지와 도시까지 점령하게 되지. 즉, 나는 부유해진다는 뜻이네.”

그렇게 말한 밀러 백작은 웃으며 말을 이었다.

“자네도 알겠지만, 자네가 놈의 기사와 병사를 잔뜩 줄여준 덕분에 내 승리는 불 보듯 뻔하지. 그러니까....”

“......?”

“이제 원하는 보상을 말해보게. 내 딸을 구해준 것, 그리고 두 번의 영지전에서 큰 도움을 준 것에 대한 보상을.”

‘오... 그렇군.’

밀러 백작의 말대로, 그는 승리할 것이다.

이건 내가 생각해도 무조건 이긴다.

전면전에서 승리하면 비단 영지와 도시뿐만 아니라, 뭔가 부수적인 수입도 있을 것이다. 막대한 배상금이라거나 또는 브룩스 자작의 재산 같은 것들.

그러니, 원하는 보상을 불러보라는 거다.

“물론 전면전에서 승리했다고 해서 내가 즉시 부유해지는 것은 아닐세. 전쟁에는 돈이 들고, 점령지가 안정화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니까. 하지만 그건 시간문제야.”

“시간문제라... 그렇겠네요.”

“그러니까 원하는 걸 말해보게. 미리 알려줘야 나도 준비를 해둘 것이 아닌가?”

그래, 슬슬 말할 때도 됐지.

나는 백작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저는... 전격 계열의 상급 마법서를 원합니다.”

“알겠네.”

내심 조마조마하며 말했으나, 밀러 백작은 의외로 흔쾌히 대답했다.

“대신 시간을 조금 주게나. 상급 마법서는 그렇게 금방 구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내 당장 값을 치를만한 여력도 없으니.”

“예, 물론이죠. 저도 이해합니다.”

솔직하게 말한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허무맹랑한 공수표를 남발하는 것보다는 이게 낫다.

“이해해준다니 고맙군. 그리고 이건 이번 일에 대한 작은 보답일세.”

─툭

백작이 테이블 위에 돈주머니를 올려놨다.

“50골드라네. 더 챙겨주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전쟁이 끝난 후 상급 마법서와 함께 주도록 하지.”

“오, 감사합니다.”

전쟁이 끝나고 이것보다 더 준다고? 좋군.

전면전이 끝나기까지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겠으나, 팔다리가 다 잘린 브룩스 자작의 상황을 감안하면 길어도 한 달 이내일 것이다.

‘어차피 당분간 할 일도 좀 있고....’

나는 전면전에까지 참여할 생각은 없다.

일단 케른헴과 카트카로 돌아갈 생각이다.

케른헴에는 회복 마법을 얻으러.

사실 회복 마법이야 여기서도 얻을 수 있겠지만, 나는 그게 궁금했다. 사제가 쓰는 회복 마법도 얻을 수 있는지.

‘얻어도 신성력이 없어서 쓰지를 못하려나?’

뭐, 안 되면 말고. 아무튼 내가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사제는 케른헴에 있는 엘미나가 유일하다. 고대의 던전에서 구울을 통해 맺어진 인연이다.

그리고 카트카에는 마법서를 찾으러.

‘라이트닝 블래스트’ 마법서가 카트카의 귀중품 보관소에 있다. 이제 나도 상급 마법을 배울 수 있으니, 슬슬 그 마법서의 처분을 고민해볼 때가 찾아왔다. 그게 상급 마법서보단 비싸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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