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꿈속에서 마법을 훔치는 마법사-91화 (91/200)

두 번째 영지전 (2)

“와아아!!”

“돌격하라!”

공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함성을 내지르며 전장으로 달려가는 전사들,

그리고 목숨을 건 전투를 앞둔 긴장감.

때문이라기보다는 그냥 내 머리 위에서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는 플레임 오브 때문이었다.

나는 이 전장에서 누구보다 빠르게 마법을 캐스팅해냈지만, 그것을 쏘아 보내지 않고 한동안 머리 위에 띄워두고 있을 뿐이었다.

‘......대체 어디로 쏴야 효율이 좋지?’

상대편도 우리와 대형은 비슷했다.

후방에 마법사를 두고, 병사는 기사를 따라 움직이고, 용병은 그냥 제멋대로 달려오고.

굳이 고르자면 생각 없이 뭉쳐서 달려오고 있는 용병에게 쏘는 게 그나마 효율이 좋아 보였으나, 그들은 적의 주력이 아니다.

그렇다고 적 마법사에게 쏘자니, 마법의 최대 사거리에 위치해 있는 그들이 얌전히 맞아줄 리가 없었다. 이 정도 거리라면 날아오는 마법을 보고 나서 물구나무를 서서 움직여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마법을 허망하게 소비하고 싶지는 않은데....’

평소 같았으면 별 고민 없이 뿜뿜 난사했겠으나, 기사를 잡기 위해 마법을 아껴놔야 하는 나로서는 한 방 한 방을 효율 좋게 사용하고 싶었다.

그런 고민을 하고 있던 찰나, 아군 마법사가 마법의 캐스팅을 끝마쳤다.

─쿠콰콰콰!

그의 앞쪽 땅은 마치 구멍이 뚫린 것처럼 움푹 파여 있었고, 허공에는 바위처럼 뭉친 거대한 흙덩어리가 두둥실 떠 있었다.

‘땅 속성의 중급 마법인가? 처음 보는 건데.’

나는 그 마법사와 마법을 유심히 살펴봤다. 전쟁 경험이 많은 마법사는 이런 상황에서 어디를 공격할지 궁금했다.

그는 이윽고 거대한 흙덩어리를, 마치 투석기가 돌을 날리는 것처럼 쏘아 보냈다.

─후우웅!

흙덩어리는 적군의 우익을 향해 날아갔다.

아군과 마찬가지로, 기사를 따라 달려오는 한 무리의 병사들이 있는 장소였다.

“산개! 산개해라!”

선두에 있던 적 기사가 큰 소리로 지휘하자, 병사들이 좌우로 크게 찢어지며 공간을 만들어냈다.

─콰아앙!

대포알처럼 날아가던 흙덩어리는 빈 땅을 가격했다.

‘역시... 이 정도 거리에서 훈련받은 병사들을 맞추기는 어렵겠어.’

하지만 내 생각과는 달리, 또 다른 아군 마법사도 완성된 마법을 방금과 같은 장소로 날려 보냈다.

─휘이이익!

바람 속성의 오브였다. 기세 좋게 회전하며 날아간 바람의 구체는, 역시나 기사의 지휘를 받는 병사들에게 별다른 피해를 주지 못했다.

나는 옆에서 재차 마법을 캐스팅하고 있는 마법사에게 의아한 듯 물었다.

“왜 계속 저쪽에 쏘시는 겁니까? 다 피하고 있잖아요?”

이 상태로 유의미한 피해를 주긴 어려워 보였다. 좀 더 가까이 다가온다면 모를까.

“아군과 적군이 부딪히기 전에, 최대한 적들의 대열을 무너뜨리려는 겁니다.”

마법사는 황급히 대답하고는 다시 캐스팅에 집중했다.

그렇군. 그냥 마법을 낭비하는 게 아니었다.

꼭 마법으로 적을 잔뜩 죽이는 것만이 마법사의 역할은 아니니까.

아직은 양측의 병력이 부딪히지 않았지만, 서로를 향해 달려 나가고 있으니 그들은 곧 만나게 된다. 그때 아군은 제대로 된 진형을 갖추고 있고, 적군만 흐트러진 상태라면 당연히 우리 쪽이 유리하다.

그리고 서로 섞여서 전투를 시작하면 마법을 함부로 날리기 힘드니, 중위 마법사들이 이렇게 서두르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나도...... 음? 저건?’

나도 적군의 진형을 무너뜨리기 위해 마법을 쏘아 보내려고 할 때였다.

저편에서 거대한 얼음덩어리가 아군의 좌익을 향해 막 날아오기 시작한 것이 눈에 들어왔다.

“마법이다! 모두 피할 준비를 해라!”

좌익을 지휘하던 아군 기사가 소리쳤다.

‘잘됐군. 이쪽이 더 효율이 좋겠어.’

극한의 효율충인 나로서는 반가운 일이었다.

저 마법은 프로스트 오브.

내 플레임 오브가 상성 우위에 있다.

─화르르륵!

나는 프로스트 오브를 요격하기 위해, 내 머리 위에 있는 불덩어리를 날려 보냈다.

─치이이이익!

아군에게 채 도달하기도 전에 내 불덩어리를 마주한 프로스트 오브는, 중간 지점에서 자욱한 수증기를 내뿜으며 서서히 소멸해갔다.

“......?! 아군 마법사가 적의 마법을 요격했다! 흩어지지 마라! 대열을 유지하고 돌격해!”

좌익을 지휘하던 기사는 자신들을 노리고 날아오던 적의 마법이 도중에 요격당하자 잠시 당황하는 듯했으나, 금세 냉정을 되찾고 침착하게 대열을 유지시켰다.

‘확실히 다르군... 이게 진짜 전쟁인가.’

기사의 지휘와 훈련받은 병사, 그리고 수준 높은 마법사의 지원까지. 이것에 비하면 용병끼리 싸우던 영지전은 소꿉장난이었다.

아무튼 나는 약간의 조바심을 느꼈다.

양측의 병사가 마주치기 전인 지금, 최대한 많이 적들을 때리고 흩트려놔야 하는데,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이 제한적이었기 때문이다.

아군이 앞쪽에 쫙 깔려있는 상황.

즉, 오브나 돌덩어리처럼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는 투사체 형태의 마법 외에는 사용할 수 없었다. 여기서 일직선으로 뻗어 나가는 체인 라이트닝을 쏘면 아군이 맞을 테니까.

‘랜드 라이즈로 언덕을 만들어버려...?’

아니, 그건 위험하다.

상대편에도 중급 마법을 다루는 마법사가 있다. 내가 마법을 쓰기 위해 높은 지형을 만들어서 올라간다면, 오히려 나를 공격해달라고 광고하는 것과 다름없다.

“하지만... 점프는 괜찮겠지.”

나는 일단 스트렝스를 사용해 육체를 강화했다. 그리고,

─쿠르르... 쾅!!

[금일 사용 가능한 ‘랜드 라이즈’ - 4회]

내 발밑의 땅을 최대한 빠른 속도로 일으키며, 그 반탄력을 이용해 공중으로 높게 뛰어올랐다.

“하압!”

전황이 한눈에 들어올 정도로 높게 날아오른 나는, 내 장기인 전격 마법을 캐스팅했다.

─치지지직!

[금일 사용 가능한 ‘체인 라이트닝’ - 4회]

나는 비교적 대열을 잘 유지하고 있는, 적의 중앙군을 향해 푸른 전류를 내뿜었다.

“이것도 피해 보시지!”

전기는 빠르다.

그것도 매우.

눈으로 봤다면 이미 늦은 거다.

“끄어어어!”

“으아악!”

“케헥....”

그간 마법 견제를 받지 않아 오밀조밀하게 모여 있던 중앙의 병사들은, 연쇄적으로 번져나가는 전기에 의해 줄줄이 쓰러져나갔다.

[조건을 달성해 능력치가 오릅니다!]

[조건을 달성해 능력치가 오릅니다!]

.......

.......

‘오, 맞다. 영주의 사병도 왕을 섬기는 자로 인정해줬었지?’

분명 마법을 썼음에도 마나가 닳지 않는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물론 고작 사병을 처치한 걸로 많은 능력치가 오르는 건 아니었지만, 체인 라이트닝으로 소모한 마나 정도는 메꿀만한 양이었다.

어쨌든 나는 중력에 의해 바닥으로 떨어졌다.

─타악!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곤죽이 될 만한 높이였지만, 나는 스트렝스로 육체를 강화해둔 덕에 별다른 문제 없이 착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다시 땅을 일으키며 뛰어올랐다.

─쿠르르... 쾅!!

나는 한 놈, 아니 한 쪽만 패기로 마음먹었다.

즉, 중앙에 있는 병사들을 궤멸시킬 것이다.

좌익, 중앙, 우익. 이 셋 중 어느 한군데만 확실하게 우위를 점해도, 전체적인 전황은 유리하게 돌아갈 테니까.

그렇게 만든 다음, 기사를 찾으면 되겠지.

─치지지직!

“흐흐흐. 피해 보라니까!”

나는 재차 중앙을 향해 전류를 뿜어냈다.

***

전장 바깥에서 노심초사하며 전황을 지켜보고 있던 밀러 백작은 경탄을 금치 못했다.

“허어... 역시....”

엘. 그가 뭔가 해줄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이렇게 빨리 활약할 줄은 몰랐다.

멀어서 자세히 보이지는 않았지만, 사실 그는 그리 대단한 마법을 사용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체인 라이트닝과 랜드 라이즈. 모두 하급 마법이다.

하지만 하급이면 또 어떤가?

적에게 충분히 치명적인 타격을 입히고 있는데. 반드시 강력한 마법을 사용해야만 강력한 마법사가 아니다. 등급이 낮은 마법이더라도 적재적소에 활용할 줄 아는 자가 진정 강력한 마법사다.

“그런데 어찌 저 높이에서 떨어지고도 무사할 수 있는 거지?”

밀러 백작은 엘이 육체 강화 마법을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엘이 정체를 숨기기 위해 의도적으로 빛을 감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언가 또 다른 마법을 쓴 것인가? 도무지 끝을 알 수 없는 사내로다... 게다가 현명하기까지 하군.”

그는 중앙을 집중적으로 공략하고 있었다.

어설프게 여기저기 찔러보는 것보다는, 저렇게 한곳에 집중하는 게 훨씬 효율적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듯했다.

“별 탈 없이 이대로만 진행된다면 승리는 불 보듯 뻔하겠어.”

밀러 백작은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전황을 지켜보고 있던 말콤 브룩스는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이런 제기랄! 저놈은 또 뭐야? 어떻게 저렇게 높게 뛰어오른 거지?”

웬 로브를 입은 마법사가, 개구리처럼 폴짝폴짝 점프하며 중앙에 있는 자신의 병사들을 쓸어버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폴짝 뛰어오르고,

냉큼 마법을 쏘고,

다시 쏙 들어가고.

온몸이 간질간질해질 정도로 보는 사람을 열 받게 했다. 녀석은 방정맞게 뛰어오른다는 점도 그렇지만, 고작 하급 마법밖에 못 쓰는 허접이라는 점에서 더욱 얄밉게 느껴졌다.

“쏴!! 헛짓거리하지 말고 저놈을 노리란 말이야!!”

분개한 말콤 브룩스는 저 멀리에 있는 아군 마법사를 향해 빽 소리쳤지만, 거기까지 목소리가 온전히 닿을 리가 없었다.

그나마 자작가의 마법사들도 바보는 아니었기에 녀석을 향해 마법을 날려 보냈으나, 전부 허무하게 허공을 가를 뿐이었다.

“이익...! 조금만... 조금만 더 기다리면 된다.”

이제 곧 양측의 병력이 서로 부딪히게 될 것이다. 그렇게 서로 얽혀서 싸운다면, 정밀한 조준이 어려운 전격 마법의 특성상 저놈도 지금처럼 얌체같이 날뛰지는 못할 것이었다.

말콤은 애써 마음을 다스리며 심호흡을 했다.

“후우... 지난번의 용병 놈도 그렇고, 저놈도 그렇고. 밀러 백작은 미친놈이 취향인가...? 오, 드디어 맞붙는군.”

드디어 각 기사가 이끄는 병사들끼리 전투를 벌이기 시작했다.

이미 개구리 마법사에 의해 중앙 부대의 절반 이상이 쓰러진 상태. 예상 밖의 피해를 입어 중앙 쪽의 힘 싸움에서는 밀리겠지만, 그럼에도 말콤은 승리를 자신했다.

용병으로 둔갑시킨 기사가 있었으니까.

“이제 나의 전략이 빛을 발하겠군. 큭큭.”

밀러 백작의 기사 셋은 모두 바쁘다.

자신의 기사 셋과 싸우는 중이니까.

즉, 용병으로 위장시킨 두 명의 기사를 막아낼 만한 존재가 없다는 뜻이다. 이제 그들이 우회하기만 하면 밀러 백작의 마법사는 전부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다.

“저, 저 미친 개구리 놈이 또...?”

여유롭게 전장을 지켜보던 말콤은 잠시 당황했다. 개구리 마법사가 다시 뛰어오르며 전격 마법을 구사했기 때문이다. 가히 놀라운 마법 적중률이었다.

하지만 당황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드디어 위장 기사가 움직이기 시작했기에.

“큭큭. 잘 가라, 개구리.”

***

─치지지직!

[금일 사용 가능한 ‘체인 라이트닝’ - 0회]

마지막 전류가 적들을 향해 뻗어 나간다.

“끄아악!”

“컥....”

[조건을 달성해 능력치가 오릅니다!]

[조건을 달성해 능력치가 오릅니다!]

.......

.......

‘후, 이제 이 정도면 중앙은 압도하겠지.’

다섯 번의 체인 라이트닝을 통해 중앙의 균형은 완전히 무너트려 놨다. 도중에 놈들이 아군과 섞여서 난전을 벌이는 바람에 싹 다 처치하지는 못했으나, 그래도 4~50명은 잡은 듯했다.

“대, 대단하시군요. 마법을 그렇게 활용하시다니....”

옆에 있던 중위 마법사가 놀랍다는 듯 말을 더듬었다.

이제 이들도 조금 여유로워진 상태였다.

아이러니하지만 가장 치열한 형태의 전투라고 할 수 있는 난전이 벌어지면, 마법사는 할 수 있는 일이 줄어들어서 그렇다.

“그럼 이제 저는 자리를 비워도 되겠죠?”

슬슬 기사를 잡으러 가볼 생각이었다.

원래는 적 기사가 아군 마법사를 잡으러 올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해서 여기에 붙어있었는데, 방금 점프했을 때 보니 그들은 모두 전투 중이었다. 아무래도 내가 직접 찾아가야 할 것 같았다.

“예. 이제 여기는 저희 둘만으로도 충분하니, 엘 님은 원하시는 대로 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검을 뽑아 들었다.

그렇게 중앙으로 가려고 할 때였다.

돌연, 우리를 호위하던 병사들이 어딘가를 바라보며 다급하게 소리쳤다.

“적이다!”

“좌측에 적 출현!”

“마법사를 보호해라!”

고개를 돌려 확인해보니, 낡아빠진 망토로 전신을 가린 용병 두 명이 무서운 기세로 달려오고 있었다.

‘......?’

나는 몹시 의아했다.

설령 저들이 A급 용병이라 할지라도, 중위 마법사 둘과 스무 명의 호위 병력을 당해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고작 두 명이서 뭘 어쩌겠다는 거지?

아니, 그것보다 여기까지 어떻게 뚫고 왔지?

그 의문에 대한 답은, 그들의 검에 있었다.

그들의 검에 푸른 기운이 맺히기 시작했다.

‘이 자식들... 정체를 숨긴 기사였어?’

그럼 나도 숨겨야지.

나는 잽싸게 검을 로브 안으로 숨겼다.

지난번의 영지전 때문에, 검을 쓰는 마법사를 보면 분명히 나라고 생각할 테니까.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