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깨! (3)
레이첼은 자리에 주저앉은 채로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그래요... 저는 꿈을....”
그녀는 꿈을 꾸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해냈다.
무인도에서처럼 강하게 개입했다가는 실패할까 봐 딱히 ‘꿈’이라는 단어를 언급하지도 않았는데, 레이첼이 스스로 깨우치니 왠지 날로 먹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앉아있는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제 아시겠습니까. 레이첼 님.”
“......아니요.”
레이첼은 내 손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당신을 보고 나서 깨달았어요. 사실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고.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현실이라고 하기에는 이상한 점이 너무 많았거든요. 제가 애써 외면하고 있었을 뿐이었죠....”
나는 그녀가 뜻대로 할 수 없는 외부의 존재다.
그녀가 감당하기 어려운 사실을 기억에서 지워버리듯 나에 대한 기억을 지울 수는 있어도, 내가 계속 그녀 앞에 나타나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다.
결국 나라는 꿈 바깥의 존재가, 그녀에게 있어서 깨달음의 계기가 된 것이었다.
‘레이첼이 꿈을 자각한 것까지는 좋은데... 깨지지는 않는군.’
보통은 꿈임을 깨닫는 순간 꿈이 깨지지만, 레이첼의 꿈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었다.
“어쨌든 다행입니다. 꿈이라는 걸 아셨으니, 이제 현실로 돌아가셔야죠.”
“현실... 말인가요.”
그녀는 눈가에 맺혀있던 눈물을 훔치고, 짧게 한숨을 후, 내뱉었다. 그리고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저와... 잠시 걷지 않으실래요?”
“그러죠.”
마음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던 걸까.
레이첼은 산책을 제안했고, 나는 흔쾌히 수락했다. 어차피 나도 ‘당신은 죽어야 한다’고 설득해야 하기 때문에, 레이첼이 조금 진정할 때까지 기다릴 생각이었다.
그녀와 함께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저벅저벅
한참을 묵묵히 걷기만 하던 레이첼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는 행복한 사람이었어요.”
“.......”
나는 대꾸하지 않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여줬다.
“영주의 외동딸로 태어나 모두에게 사랑받으며 살았어요. 거기에 바람 속성까지 타고나서 정말 남부러울 것 하나 없는 삶이었죠.”
무슨 임종을 앞둔 노인이 인생을 회상하는 것처럼 말하는군.
“너무 즐거웠어요. 주변의 기대를 받는다는 사실이. 그리고 제가 그 기대를 충분히 충족시킬 수 있다는 사실이. 바람 속성의 마법이라면 무엇이든 금방 배워버렸거든요.”
뭐, 쿼드러플이니까.
나는 시스템의 보정 덕분에 마법서를 읽기만 해도 배워져서 해당이 안 되지만, 관련 속성이 많을수록 마법을 익히는 속도가 빠르다고 한다.
“하지만 엘. 그거 아세요? 속성만이 마법적 재능의 전부는 아니라는 거. 기억력, 이해력, 상상력, 응용력 등등... 재능의 범주에는 너무나도 많은 요소가 있었어요. 그리고.......”
레이첼은 뒷말을 잇기가 어렵다는 듯, 잠시 말을 멈추고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저는 재능이 없었어요. 무엇이 부족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중급 마법부터는 도저히 익힐 수가 없었거든요. 마법서를 외울 만큼 노력해 봐도 겨우 한 개의 중급 마법만 배울 수 있었어요.”
이는 백작을 비롯한 주변인의 증언과 일치했다. 중급 마법은 트위스터 하나만 다룰 수 있다고 했었으니까.
“제게 재능이 없다는 사실이 드러났어도 사람들은 여전히 친절했어요. 저는 그런 사람들이 너무 고맙다가도, 마음 한편으로는 의구심이 싹트기 시작했어요.”
“의구심...?”
“겉으로는 웃으며 저를 응원하지만, 속으로는 실망한 게 아닐까 하는. 실망이 점점 커져서 결국엔 저를 무시하고, 혐오하고, 증오하게 되는 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요.”
과연. 이게 피해망상의 시발점이었나.
아니, 근데 비약이 너무 심한 거 아닌가?
고작 그런 일로 누가 백작 영애를 혐오하고 증오하겠나. 그냥 실망하는 선에서 그치지.
“저는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저에게 실망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아니, 제가 좋아하는 만큼 저를 좋아해 줬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그런 의구심이 싹트고 나니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죠.”
이건... 좀 그쪽 기질이 있는 것 같았다.
좋아하는 대상에게 잘 보이려 집착하는 그런.
“그래서 저는 미친 듯이 노력했어요. 매일 밤을 새워가며, 꿈에도 나올 정도로 마법을 공부했죠. 물론 성과는 없었지만....”
그렇게 말한 레이첼은 돌연 걸음을 멈췄다.
“그러니까... 엘.”
그리고 부서질 듯이 웃으며 내게 말했다.
“저는 꿈에서 깨고 싶지 않아요.”
“.......”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현실이 불만족스럽다면 꿈으로 도피하고 싶어질 테니까.
레이첼의 불만족은 마법에서 기인한다.
현실에서는 중급 마법을 다루지 못한다는 생각이 그녀를 꿈에 붙잡아두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마법은 진짜다.
무려 시스템도 인정해준 마법이란 말이다.
“마법 때문에 그러시는 거라면, 그 문제는 이미 해결됐잖습니까? 레이첼 님은 다양한 중급 마법을 쓸 수 있으신데.”
“그건... 현실이 아니잖아요. 꿈이니까... 꿈이니까 가능한 거잖아요.”
레이첼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부정했다.
난감하군. 이걸 어떻게 설득하지? 나야 시스템을 근거로 판단했지만, 레이첼의 입장에서는 저렇게 생각하는 게 맞긴 했다.
“으음... 아, 맞다. 레이첼 님은 꿈에도 나올 정도로 마법을 공부했다고 하셨죠?”
“네.”
“그리고 마법서를 달달 외우기까지 하셨고?”
“네. 정말 열심히 했거든요.”
그녀는 자신 있게 대답했다.
“그럼 꿈에서 공부한 마법서는 진짜 마법서와 내용이 똑같을 거 아닙니까?”
“......!”
“제가 보기에는 긴 꿈을 꾸시는 동안 마법을 공부한 게 결실이 맺어진 듯한데요. 꿈속에서 마법을 배운 거죠. 처음 꿈을 꿨을 때는 마법을 못 썼죠? 그러다 공부한 뒤에는 쓸 수 있게 됐고.”
“그, 그렇긴 하지만....”
레이첼은 어느 정도 납득한 것 같았으나, 확신하지는 못하는 눈치였다. 뭔가 증거가 필요했다.
“흐음... 레이첼 님은 혹시 잠들기 전에, 현실에서 토네이도 랜스를 직접 본 적이 있습니까?”
“네? 아니요. 마법서로만 접해봐서....”
“실물을 본 적이 없다는 거네요. 좋습니다.”
나는 잠시 고민한 끝에, 마법을 캐스팅했다.
“잘 보세요.”
─휘이이
일대에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산들바람처럼 가볍게 시작된 바람은, 점점 거세지며 광풍으로 돌변했고, 나선 형태로 모여들며 바람의 창을 생성해냈다.
[금일 사용 가능한 ‘토네이도 랜스’ - ∞회]
“이, 이 마법은?!”
레이첼의 눈이 경악으로 부릅떠졌다.
“토네이도 랜스입니다. 저는 현실에서도 이 마법을 다룰 수 있습니다. 즉, 제가 만들어낸 바람의 창은 진짜라는 뜻이죠.”
그녀가 현실에서 이 마법을 본 적이 없다면, 바람의 창이 정확히 어떤 생김새를 가졌는지 모를 것이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레이첼 님이 만들어냈던 것과 똑같이 생겼죠? 레이첼 님은 이게 어떻게 생겼는지도 몰랐을 텐데 왜 똑같을까요? 사용하신 마법이 진짜이기 때문입니다.”
“제 마법이... 진짜...?”
“예. 레이첼 님은 꿈속에서 마법을 배운 게 확실하고, 현실에서도 쓸 수 있으십니다.”
내 설명이 먹혀든 모양인지, 그녀의 눈동자에 묘한 활기가 감돌기 시작했다.
“제가 현실에서도 마법을...? 아니, 잠깐. 잠깐만요. 그럼 엘, 당신은 뭐죠?”
“예??”
“말씀하시는 게 꼭 현실에서 제 꿈으로 들어왔다는 것처럼 들리는데... 당신은 정체가 뭐죠? 실존 인물인가요? 아니면 당신도 제 상상의 일부인가요?”
레이첼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아, 그래. 나라는 존재에 대해 설명을 안 해줬었구나.
“저는... 음. 실존 인물입니다. 정신계 마법을 좀 다뤄서, 낮은 확률로 근처에 있는 사람의 꿈을 들여다 볼 수 있고요. 그런데 레이첼 님의 꿈은 워낙 강력해서 그런지 아예 들어와져 버렸네요.”
내 능력에 대해 아예 다 밝힐 수는 없으니, 적당히 둘러댔다.
꿈에 들어가는 내 능력도 특이하지만, 일 년이 넘게 지속되고 있는 레이첼의 꿈도 특이하긴 매한가지다. 그래서 그냥 그녀의 꿈이 이상해서 들어와진 거라고 둘러댔다.
“근처에 있는 사람의 꿈을 볼 수 있다구요...? 그럼 저는 대체 어디에서 자고 있는 거죠? 아버지의 성에 있는 게 아닌가요?”
“아, 모르시겠구나. 오리아에 있는 세르시아 교단의 치료소에서 주무시고 계십니다. 저도 치료를 받으러 왔다가 우연히 레이첼 님의 꿈속으로 들어오게 된 거고요.”
“두 번이나...?”
“지난번에는 우연히 들어왔었죠. 그런데 레이첼 님이 꿈속에서 너무 고통받고 계시길래, 꿈의 특성에 대해 조사를 좀 하고 다시 찾아온 겁니다. 꼭 깨워드리려고요.”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거짓말을 술술 내뱉으며 나를 포장했다.
솔직히 이 정도로 고생했으면 포장 좀 해도 되는 게 아닐까? 무려 보름이나 투자했으니까. 심지어 블리자드를 얻어낼 때도 이렇게 시간을 투자하지는 않았었다.
“저를 깨우기 위해서 이렇게 까지나... 분명 지난번에 제 마법에 맞아 굉장히 고통스럽게 죽으셨을 텐데도....”
레이첼은 감격했다는 듯 나를 바라봤다.
“아아, 고통스러웠지만 레이첼 님을 깨우겠다는 신념 하나로 돌아왔습니다. 저보다 레이첼 님이 더 고통받고 계셨으니까요.”
사실 하나도 안 아팠었다. 너무 순식간에 온몸이 찢겨버리는 바람에, 고통을 느낄 틈도 없었다.
어쨌든 나는 기세를 몰아서 계속 설득했다.
“레이첼 님은 마법에 재능이 없는 것도 아니셨고, 그동안의 노력과 기나긴 꿈도 헛된 게 아니었습니다. 이제 그만 현실로 돌아가시지요.”
“제 노력이... 헛되지 않은....”
“예. 당신의 노력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노력한 사람이 제일 듣기 좋아하는 말이다.
그러니 이제 제발 꿈에서 좀 깨주라!
“밀러 백작님께서도 걱정이 많으십니다. 레이첼 님이 잠들어 계셔서 막대한 치료비가 드는 건 물론이고, 주변 영지에서 쳐들어와서 전쟁도 벌이고 계십니다.”
“그, 그게 정말인가요?”
“그렇다니까요? 심지어 용병을 제대로 고용할 돈도 없어서 곤란을 겪고 계십니다! 이럴 때일수록 사랑스러운 딸의 응원이 절실하지 않겠습니까!”
내가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열변을 토하자, 레이첼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고마워요, 엘.”
그리고는 결의에 찬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현실로 돌아가겠어요.”
“오!! 아주 탁월하신 선택입니다.”
이 말을 얼마나 기다렸던가.
나는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우리는 서로를 마주 봤다.
“.......”
“.......”
“......?”
“......?”
내가 그녀를 빤히 바라보듯 그녀도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는데, 이게 뭐 하자는 건가 싶었다. 나는 그녀를 재촉했다.
“뭐 하십니까? 빨리 꿈을 깨트리세요.”
“네...? 어, 어떻게 하는 건데요, 그거?”
레이첼은 당황스럽다는 듯 내게 되물었지만, 그건 나도 모른다. 나는 언제나 마법을 훔치기 위해 꿈을 깨트리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쪽이었기 때문에, 이런 경험 자체가 생소했다.
“흐음. 글쎄요. 레이첼 님이 꿈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강하게 염원하면 되지 않을까요?”
자신의 망상마저 즉각적으로 반영할 만큼 꿈에 대한 지배력이 강한 사람이니까.
“해, 해볼게요...!”
그녀는 눈을 감고 미간을 좁히며 집중했다.
그렇게 한동안 끙끙거리며 애썼지만,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 안 돼요... 이제 어떡하죠? 저는 현실로 돌아가고 싶단 말이에요...!”
‘......대체 언제부터 그랬다고?’
아무튼 이 방법으로는 안 될 것 같았다.
그렇다면 최후의 방법만이 남아있다.
“레이첼 님. 제가 꿈에서 벗어나는 확실한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그게 뭐죠...? 그럼 왜 진작 알려주시지 않고...?”
“쉽사리 받아들이지 못하실 수도 있거든요.”
[레이첼 님이 죽으셔야 합니다.]
라는 말은, 레이첼의 꿈속에서 모든 적들이 그녀를 향해 했던 말이다. 괜히 그들과 똑같은 말을 했다가, 그녀의 피해망상이 도지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들었다.
어쨌든 이대로 있을 수는 없는 노릇.
나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꿈속에서 레이첼 님이 죽으시면 현실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의심스러우시겠지만, 제 말을 한 번만 믿고─”
“알겠어요.”
“예...?”
너무나 쿨한 반응에 내가 다 당황스러웠다.
“당신이 죽으라고 한다면 죽겠어요. 저는 당신을 믿어요. 그동안 제게 보여준 행동들. 그리고 고통스럽게 죽고 나서도 저를 깨우기 위해 다시 들어온 당신을 믿지 못한다면, 대체 누구를 믿을 수 있겠어요?”
레이첼은 단호하게 말했다.
‘이렇게나 나를 신뢰한다니... 아주 좋은데?’
이러면 보상은 따 놓은 당상이나 다름없다.
뭘 달라고 해도 줄 듯했다.
“흠. 좋습니다. 그럼 자살을... 하시면 됩니다.”
“아니요. 엘, 당신이 저를 죽여주세요.”
“예에? 왜 그런....”
그런 끔찍한 일을 부탁하냐고.
나도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살인을 할 수 있지만, 그건 적에 국한된 얘기다. 무고한 사람을 슥삭 썰어버리는 취미 따위는 없다.
“저는 죽어야 한다면 당신에게 죽고 싶어요.”
“으음.”
그래, 뭐. 꿈이니까.
그리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도 쉽지만은 않겠지. 차라리 내가 해주는 게 나을 수도 있다. 번지 점프도 누가 뒤에서 밀어주면 편한 것처럼.
“......알겠습니다. 그럼 뒤로 돌아서세요.”
나는 그렇게 말하며 마법을 캐스팅했다.
─휘오오
[금일 사용 가능한 ‘윈드 블레이드’ - ∞회]
깔끔하고 고통 없이 죽는 것에는 이만한 마법이 없다. 이것은 직접 다양한 마법에 죽어보며 쌓은 나의 빅데이터에 의거한 결론이다.
“뭐 하십니까? 뒤로 돌지 않으시고.”
마법이 준비됐음에도 레이첼은 여전히 내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는 당신을 바라보며 죽을 건데요?”
“아, 아니. 그건 좀....”
“어서 저를 죽여주세요.”
그녀는 단호하게, 하지만 살포시 미소 지으며 말했다.
역시 어딘가 조금 이상한 구석이 있는 여자다. 깨어나면 밀러 백작이 고생 좀 하겠군.
“에휴... 알겠습니다. 그럼 갑니다!”
“네!”
나는 바람의 칼날을 그녀의 목으로 날려 보내며 눈을 질끈 감았다. 차마 눈 뜨고는 볼 수 없어서다.
─서걱!
무언가가 베이는 소리와 함께, 눈을 감았음에도 느껴질 정도로 강렬한 빛무리가 세상을 덮었다.
‘......성공한 건가?’
새하얀 빛은 사라졌지만, 나는 계속 눈을 감고 있었다.
그때,
─우당탕!
불현듯 옆방에서 작은 소란이 일었기에, 나는 슬며시 눈을 떴다.
어둠 속에 보이는 익숙한 풍경.
세르시아 교단의 회복실이었다.
그렇다. 나는 성공한 것이다.
─우당탕탕!
─아가씨!!
옆방, 그러니까 집중 회복실에서의 소란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아마 레이첼이 깨어나서 호위 기사가 야단법석을 떠는 모양이었다.
‘뭐, 그럴 만도 하지.’
나는 조용히 누워서 소란이 잦아들길 기다렸다. 분명 나도 자다가 일어난 건데, 심력 소모가 커서 그런지 상당히 피로했다.
─철컥!
“아가씨!!”
그런데 어쩐지 소란은 더 커져만 갔다.
─우당탕!
“아가씨! 대체 왜 이러시는 겁니까!”
이젠 아예 복도로 장소가 옮겨진 듯했다.
나는 무슨 문제라도 생겼나 싶어, 몸을 일으켜서 복도를 쳐다봤다.
─꽈당!
“이, 이런. 괜찮으십니까? 그 몸으로 어딜 그렇게 가려고 하시는 겁니까!”
어두운 복도에는 작은 인영이 비틀거리며 움직이고 있었고, 그 뒤에는 커다란 인영이 어쩔 줄 몰라 하며 따라가고 있었다.
그들은 내가 있는 회복실 문 앞에서 멈춰 섰다.
─끼익
회복실의 문이 열렸다.
“아가씨! 갑자기 여긴 왜─”
“역시... 여기에 있었어.”
비틀비틀. 레이첼은 오랫동안 쓰지 않아 굳어버린 다리를 억지로 움직이며 나를 향해 다가왔다.
당장이라도 넘어질 것 같았기에, 나는 얼른 달려가서 그녀를 부축했다. 그녀는 내 팔을 부술 듯이 꽉 붙잡으며 말했다.
“고마워요, 엘. 당신은 영원한 잠에서 저를 깨워준 생명의 은인이에요. 이걸 어떻게 다 갚아야 할지....”
백작의 외동딸이 나를 생명의 은인으로 여긴다?
내 생각에 이건 고급 마법서를 불러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