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꿈속에서 마법을 훔치는 마법사-82화 (82/200)

소규모 영지전 (3)

브룩스 자작의 둘째 아들 말콤 브룩스.

그는 삼백오십 명에 달하는 용병들이 달려 나가는 모습을 편안한 마음으로 지켜보며 입을 열었다.

“저거 보이나? 밀러 백작 쪽은 감히 달려 나올 엄두도 못 내는군.”

“예, 도련님. 아마도 백작이 가까이에서 지휘를 하려는 것 같습니다.”

“큭큭, 그래. 자기가 무슨 불세출의 지휘관이라도 되는 줄 아는 모양인데, 아주 우스워.”

그는 비릿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것도 숫자가 맞을 때나 가능한 일이지. 이렇게 차이가 날 때 가만히 있으면 포위당한다는 기본적인 것도 모르나?”

“딸 때문에 정신이 이상해진 게 아니겠습니까.”

“레이첼? 크하하핫!”

기사가 밀러 백작의 딸을 언급하자, 말콤 브룩스는 광소를 터트렸다.

“얼굴 좀 반반하다고 내게 싸가지 없게 굴던 그년 말이지....”

말콤 브룩스도 레이첼을 알고 있었다.

아니, 단순히 아는 것을 넘어서 직접적인 구애까지 했었다.

레이첼은 외동딸이다.

그녀의 남편이 되면, 훗날 자연스럽게 밀러 백작의 영지와 작위를 물려받게 된다. 둘째이기에 후계자 서열에서 밀려 브룩스 자작의 영지를 받을 가능성이 낮은 말콤으로서는 너무나도 달콤한 유혹이다.

그렇기에 사교모임에서 항상 그녀에게 접근했었지만, 늘 매몰차게 거절당할 뿐이었다.

“빌어먹을 년.”

과거의 기억이 떠올라 욕설을 내뱉은 말콤은, 이내 마음을 추스르며 비웃었다.

“하지만 그년 덕분에 일이 잘 풀리고 있어. 그년이 멀쩡했다면 밀러 백작이 이렇게 약해지지 않았을 테니까. 큭큭.”

레이첼이 건재했다면 재정적인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은 물론이고, 그녀와 혼인을 맺고 싶어 하는 귀족들로 인해 밀러 백작도 우군이 많았을 것이다.

“자, 이번 전투에 승리해서 주변 영주들에게 밀러 백작을 먹잇감처럼 보이게 만들... 저놈은 뭐야??”

돌연 백작 진영에서 용병 하나가 뛰쳐나왔다. 그 모습을 지켜본 말콤은 황당하다는 듯 말했다.

“미친놈인가?”

불에 뛰어드는 불나방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불나방은 전기를 내뿜으며 자신의 병력을 갉아먹기 시작했다.

“싸움 좀 하는 미친놈이었군. 그래도 저 정도로는 대세에 아무... 뭐? 오브??”

놈은 이윽고 중급 마법인 오브까지 사용했다. 말콤이 눈을 부릅뜨고 당황하자, 기사가 황급히 입을 열었다.

“뭔가 이상합니다, 도련님. 혹시 밀러 백작이 휘하의 수준 높은 마법사를 용병으로 둔갑시켜 투입한 게 아닐까요?”

“이상하군... 그런 마법사를 잃으면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닐 텐데 왜 그런 짓을...? 아니면 정말 단순히 용병인가?”

말콤 브룩스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백작의 마법사인가? 용병인가? 함정인가?

놈은 오브를 한 번 사용한 이후로는 하급 이하의 마법만 사용하고 있었다. 그렇다는 것은 다룰 수 있는 중급 마법이 많지 않다는 뜻. 드물긴 해도 잘 찾아보면 중급 마법을 한두 개쯤 다루는 용병이 존재할 수도 있을 것이다.

밀러 백작이 희귀한 용병을 고용했다.

이것이 말콤이 내린 결론이었다.

“어디서 저런 놈을 찾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용병인 것 같군.”

“저 녀석 혼자서 너무 많은 아군을 처치하고 있습니다. 저를 내보내 주십시오, 도련님. 제가 저놈의 목을 치겠습니다.”

기사가 출전을 요청했지만, 말콤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래도 고작 용병을 잡기 위해 경을 투입한다는 것은 조금 그렇군. 위험하기도 하고, 내 체면도 있고... 저놈이 잘 싸우고 있다고는 해도 혼자서 판세를 뒤집기는 무리야. 조금 더 지켜보지.”

그렇게 말한 말콤은 미간을 좁히며 용병을 주시했다.

놈은 말 그대로 미쳐 날뛰고 있었다.

마법을 마구 난사하며 자신의 병력을 쓸어버리고 있던 놈은, 이윽고 기이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땅을 일으켜서 마치 무대처럼 만들고, 그 위에 올라서서 플레임 오브를 생성한 것이다. 게다가 놈은 불덩어리를 발사하지 않고 머리 위에 계속 띄워둔 채, 자신과 기사를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웃어? 용병 주제에 지금 나를 비웃어?”

이것은 명백한 도발.

심지어 중급 마법을 두 개나 사용하는 놈이니, 전장에 나가 있는 떨거지 병력만으로는 무리다.

“오마르 경! 당장 저 놈의 목을 잘라서 내게 가져와!!”

“예! 도련님!”

흥분한 말콤 브룩스가 빽 소리치자, 기사가 말에서 뛰어내려 전력으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

‘드디어 기사가 오는군.’

내 도발이 먹혀든 모양이었다.

물론 기사만 빡돌게 만든 것은 아니었다. 무대 위에서 불덩어리로 한껏 어그로를 끌고 있었기 때문에, 덩달아 다른 마법사들의 표적이 됐다.

“저 녀석을 공격해!”

“마법을 쏴라! 마법을!”

─슈웅!

─사라락

─화르륵!

적군 중에 섞여 있던 마법사들이 나를 향해 온갖 마법을 쏘아댔다.

나는 생성해둔 플레임 오브를 사람이 많이 모여 있는 곳에 날려버리고, 새로 배운 방어 마법을 캐스팅했다.

─치직. 치직.

전기가 내 전신을 휘감기 시작했다.

[금일 사용 가능한 ‘라이트닝 아머’ - 9회]

적들이 날린 마법이 내게 닿을 때마다, 전기의 갑옷은 스파크를 파직! 튀기며 완벽하게 방어해냈다.

‘성능 확실하구만.’

뭐, 용병들이 날린 마법이라고 해봐야 기초 또는 하급밖에 안 되지만.

뒤를 돌아서 확인해보니, 밀러 백작의 병력이 곧 이곳에 도달할 듯했다. 브룩스 자작 측의 기사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훨씬 늦게 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거의 도착한 상태였다.

‘......당장 콜링 썬더를 맞추기는 어렵겠어.’

기사 잡는 효자 마법이지만, 저렇게 빠르게 달려오고 있는 상대를 맞히기란 매우 어렵다. 횟수 제한 때문에 꿈속에서처럼 맞을 때까지 날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일단은 이거다.

─사사삭. 사삭. 사사삭.

내 주위에 날카로운 얼음 조각들이 무수히 생성되기 시작했다. 그 얼음 조각들은 마치 유릿가루가 쏟아지듯 기사를 향해 쏟아져 나갔다.

[금일 사용 가능한 ‘프로즌 더스트’ - 2회]

─푹푹푹푹!

“으아악!”

“컥!”

“미, 밀지 마!”

기사는 교활하게도, 아니 현명하게도 용병들을 방패로 삼아 내 마법을 막아냈다.

프로즌 더스트가 끝날 무렵, 아군이 도착했다.

“와아아!”

“마법사를 보호해라!”

아군 용병은 무지성으로 적과 격돌했지만, 밀러 백작의 사병들은 나를 둘러싸며 방어대형을 갖췄다.

그리고 기사 역시 도착했다.

─부욱!

“끄헉....”

그는 푸른 기운이 일렁이는 검으로, 내 앞을 막고 서 있는 병사 하나를 갑옷째로 썰어버렸다.

“비켜라! 버러지 같은 것들!”

그가 검을 한 번 휘두를 때마다 병사가 하나씩 나가떨어졌다. 오러를 다루는 기사 앞에서 일반 병사는 몇 명이 있어도 무의미했다.

그들은 오히려 내게도 방해였다.

마법을 함부로 쓰기도 어렵게 만들었고, 활동 반경에도 제약이 됐다. 이미 기사와 가까운 상태니, 차라리 내가 달려드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나는 빛을 감추기 위해 약하게 사용하고 있었던 스트렝스를 강화했다. 스트렝스로 인한 빛과, 라이트닝 아머로 인한 빛. 나는 더없이 밝게 빛나며 기사를 향해 쇄도했다.

─카앙! 끼이이익!

내 검이 오러가 맺힌 검과 맞닿자, 드라이아이스와 금속이 닿은 것 같은 거북한 소음을 발생시켰다. 두 자루의 검 사이로 힘겨루기가 오고 갔다.

‘레이첼의 꿈속에서 싸워봤던 고위기사에는 한참 못 미치는군.’

딱히 내가 밀린다는 느낌은 없었으나,

기사는 자신만만하게 웃으며 소리쳤다.

“으하하! 역시 너는 미친놈이 맞구나! 마법사 주제에 겁도 없이 검으로 덤비다니!”

“예? 제가 언제 검으로 싸운다고 했습니까?”

발을 묶어두려고 검으로 덤빈 것뿐인데.

─번쩍! 번쩍! 번쩍!

─꽈릉! 꽈릉! 꽈릉!

하늘이 세 번 점멸하며 벼락이 내리꽂혔다.

[금일 사용 가능한 ‘콜링 썬더’ - 0회]

“커...허억!”

기사는 무릎을 꿇고 자리에 반쯤 주저앉았다. 갑작스럽게 연달아 울려 퍼진 세 번의 천둥소리는 전장의 모든 이목을 이곳으로 집중시켰다.

“이, 이게 무슨...!”

“기사가 당했어...?”

꿇어앉은 기사를 보고 적들은 당황했고,

“우오오!”

“마법사가 승리했다!”

멀쩡히 서 있는 나를 보고 아군은 고양됐다.

하지만 아직 기사가 완전히 쓰러진 것은 아니었다. 꿇어앉은 기사가 휘두르는 눈먼 검도 오러가 실렸다면 위협적일 수 있다.

나는 기사에게서 몇 걸음 뒤로 물러나며 저주를 걸었다.

─츠츠츠...

바닥에 꽂은 검을 붙들고 간신히 버티고 있는 기사의 발밑에서 짙은 황색 기운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금일 사용 가능한 ‘체크 메이트’ - 2회]

“허억... 흐압...!”

자신을 잠식해오는 이질적인 기운을 느낀 기사가 저항해보려 했지만, 그는 상태가 좋지 않았고 나는 풀 컨디션이다. 황색 기운은 기사의 전신에 끈덕지게 달라붙으며 속박했다.

그는 약간의 허우적거림만 보일 뿐, 자리에서 벗어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여기서 극적인 장면을 연출해야 편하겠어.’

기사가 등장하기 전까지 내가 상당수의 적을 쓰러트렸다고는 하나, 여전히 많은 숫자가 남아있었다.

게다가 아군과 적군이 뒤엉켜서 싸움을 벌이고 있는 상황이니, 아까처럼 손쉽게 범위 마법 한 방에 수십 명씩 처치하기 어렵다. 열심히 뛰어다니며 싸우면 처리하지 못할 것도 없겠으나, 그건 번거롭다.

내게 이목이 쏠린 지금,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 적들의 기세를 완전히 꺾어줄 필요가 있다.

─휘이이

이 일대에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산들바람처럼 가볍게 시작된 바람은, 점점 거세지나 싶더니 곧 광풍으로 돌변했다.

“뭐야...?”

“가, 갑자기 웬 바람이?”

광풍은 허공의 한 지점에 몰려들며 나선 모양으로 회전하기 시작했고, 그것은 곧 좁혀지며 거대한 창의 형태를 갖췄다.

[금일 사용 가능한 ‘토네이도 랜스’ - 1회]

거대한 창이 회전하며 만들어내는 바람에 의해, 주변에 있던 사람들의 머리카락과 망토가 볼썽사납게 휘날렸다.

“세, 세상에!”

“저게 대체 뭐야!”

‘이 마법 어그로 장난 아니네.’

번쩍! 하고 순식간에 끝나버리는 전격 마법과는 달리, 지속 시간이나 주변에 미치는 영향, 시각적인 효과가 어그로 끌기에 몹시 탁월했다.

어쨌든 적들을 주눅 들게 만들어야 하니, 최대한 이상한 말을 지껄이며 마법을 발사했다.

“나는... 눈을 마주친 놈은 반드시 죽인다!”

─쐐애액!

바람의 창은 기사의 몸을 꿰뚫지 않았다.

─푸슈슉!

조각조각 분쇄해버렸다.

“.......”

“저, 저, 저런!”

“너무... 잔인해....”

“우욱!”

핏방울이 바람에 날려 흩어지며 붉은 안개처럼 퍼졌고, 그 참상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얼어붙었다. 헛구역질을 하는 사람마저 있을 정도였다.

나 역시 내심 당황했다.

‘미, 미친! 나도 레이첼의 꿈속에서 저렇게 끔찍하게 죽은 거였나? 소름 돋네.’

하지만 당황은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두 개의 메시지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조건을 달성해 능력치가 오릅니다!]

[기사 이상의 작위를 가진 자를 처치했습니다. 승격 퀘스트 완료까지 남은 수 - 2명]

전자는 왕을 섬기는 자를 처치하면 능력치가 오르는 보조 퀘스트로 인한 메시지였고, 후자는 승격 퀘스트로 인한 메시지였다.

‘개꿀이군. 동시에 두 개가 진행되다니.’

늘어난 마나량에 흡족해하며 전황을 살폈다. 아직 전투가 끝난 게 아니었으니까.

내가 주변을 둘러보자, 가까이에 있던 적들이 슬금슬금 뒷걸음질 쳤다.

“으... 으으....”

“저, 절대 눈을 마주치면 안 돼!”

내가 기사를 죽이기 전에 했던 말이 먹혀든 걸까. 그들은 하나같이 눈을 내리깔고 있었다.

이때다 싶었는지, 아군 용병과 병사들이 템포를 올리며 달려들었다.

“지금이다!”

“적을 섬멸해라!”

적어도 내 근처에서는 아군이 압도적으로 몰아붙이고 있었는데, 기세도 기세지만 내가 주변을 둘러보기만 해도 적들은 내 시선을 회피하느라 전투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메두사가 이런 기분이었을까?

어쨌든 나는 주변을 둘러보다 발견한 적 하나를 향해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달려갔다.

“너! 나랑 눈 마주쳤지!!”

“으아아! 내, 내가 언제!”

사실 안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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