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꿈속에서 마법을 훔치는 마법사-79화 (79/200)

레이첼의 악몽 (4)

‘됐어! 성공이다!’

레이첼의 마법은 망상이 아니었다.

그녀는 실제로 그 마법들을 사용할 수 있었다. 어째서 들었던 것과는 달리 그렇게 실력이 뛰어난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덕분에 마법은 얻어냈다.

일단 내 최우선 목표는 달성한 셈이다.

‘습득한다.’

[마법 ‘토네이도 랜스’를 습득했습니다!]

[금일 사용 가능한 ‘토네이도 랜스’ - 2회]

[동일한 대상에게서는 더 이상 마법을 습득하거나 훔칠 수 없습니다.]

‘2회면... 중급인가?’

오브 이상의 위력을 보고 중급보다 높을 줄 알았는데, 횟수를 보니 중급으로 추정됐다. 하긴, 단일 타겟에 집중해서 공격하는 마법이니 위력 자체는 강하겠지.

어쨌든 조용히 주변에 귀 기울였다.

“.......”

어둡고 고요한 단체 회복실.

이곳뿐만 아니라, 치료소 전체가 조용했다.

조용한 걸 보니 레이첼은 꿈속에서 기사를 성공적으로 처치한 모양이었다. 만약 그러지 못했다면 그녀는 기사에 의해 죽었을 테고, 꿈에서 깨어났을 테니까. 그럼 옆방이 이렇게 조용할 리가 없다.

‘......생각해보니 좀 이상한데?’

마법을 습득하고 여유롭게 다시 한번 생각해보니 이상했다. 뭐, 그녀의 꿈이 석연치 않은 구석이 한두 개겠냐마는.

아무튼 지금 내 머릿속을 헤집는 의문은 이거다.

만약 내가 도와주지 않았다면,

레이첼은 정말 죽었을까?

꿈의 세계에 등장하는 모든 것들은 기본적으로 그녀에게 적대적이다. 물리법칙까지 무시해가며 끝도 없이 쏟아져 나오는 적들. 일반인이나 병사 정도는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겠으나, 기사는 다르다.

레이첼이 듣던 것보다 강하다고는 하지만, 여러 명의 기사에게 둘러싸이면 죽음을 면하기가 힘들다. 아니, 그 고위기사 한 명만 만나도 벅찰 것이다.

‘그럼 날 만나기 전에는 어떻게 살아남은 거지?’

비단 이번뿐만이 아니라, 그녀는 쭈욱 이런 헬 난이도의 꿈을 꾸고 있었을 것이다.

내가 열심히 도와줘도 살리기가 힘들 정도였는데, 그녀 혼자서 그동안 죽지 않고 버텼다고? 그건 말이 안 된다.

‘죽음의 상황에 직면하면, 죽기 직전에 꿈을 바꾸는 건가?’

그럴 가능성이 높았다.

그녀는 자신의 망상을 즉각적으로 꿈에 반영할 정도로 꿈에 대한 지배력이 높다. 그 정도라면 아마 죽기 직전에 현실을 부정하며, 꿈 자체를 다른 꿈으로 전환하는 것도 불가능하진 않을 것이다.

내가 이미 성공적으로 마법을 습득했음에도, 그녀에 대해 이런 골치 아픈 고민을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나는 그녀의 꿈에 다시 들어갈 생각이다.

‘훌륭한 마법을 선물해줬으니 보답은 해야겠지.’

반드시 그녀를 깨우겠다는 사명감 같은 게 있는 것은 아니다. 내 목적은 이미 달성했으니.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들어가서 도와줘 볼 요량이다.

깨울 수 있으면 좋고, 아니면 말고.

성공하면 사례금 30골드를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고, 무엇보다 그녀의 은인이 될 수 있는 기회다.

백작의 외동딸이며, 쿼드러플의 마법사.

그런 존재의 은인이 되면 큰 도움이 되겠지.

쿼드러플은 흔한 게 아니다.

내가 지금까지 만나본 마법사 중에 쿼드러플로 추정하는 사람이 딱 둘 있었는데, 그건 청색 마탑의 대스승 니콜스와 클로이다. 물론 레이첼이 그들에 비할 만큼 강한 것은 아니지만, 그만큼 성장할 가능성은 있다.

즉,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어차피 속성 쉴드 마법서의 작성이 완료될 때까지는 이 도시에 머물러야 한다. 거기서 며칠만 더 투자하면 레이첼의 꿈에 다시 들어갈 수 있으니, 딱히 내가 손해 보는 것도 없다.

‘좀 특이한 꿈이긴 해도 뭐, 나쁘지만은 않지. 마법 연습도 되고.’

레이첼의 꿈은 피해망상으로 점철되어 있다는 점 외에도, 특이한 특성이 하나 있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녀는 비현실적인 장면을 보고도 꿈을 의심하지 않았는데, 그 덕분에 꿈이 잘 깨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의 꿈속에서는 마음껏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처음으로 블리자드를 써볼 수 있었던 것도 그 덕택이다. 목격자도 없고, 마나 탈진에 빠져도 위험하지 않으니까.

‘다시 들어가면 무슨 마법을 써보지? 풀 컨디션으로 체크 메이트나 시험해볼까?’

그런 생각을 하는 밤이었다.

***

레이첼의 꿈속에 들어갔다 나온 지 사흘이 흘렀다.

타스모스 학파에 주문한 마법서가 완성됐을 시간이라는 뜻이다.

“야, 앨리스. 일어나봐.”

침대에 누워있는 앨리스의 어깨를 흔들자, 그녀는 눈을 비비며 몸을 일으켰다.

“우웅... 벌써 아침 식사가 왔니?”

“아니, 그런 건 아니고. 나 어디 좀 나갔다 올 건데, 너도 같이 갈래?”

“어디 가는데?”

“며칠 전에 갔었던 높은 건물 있잖아. 타스모스 학파.”

지금까지 오리아에 머물면서 앨리스를 데리고 몇 번 외출을 나간 적이 있었는데, 딱히 문제를 일으킨 적은 없었다. 그녀를 여관방에 혼자 둬도 마찬가지였다.

인간처럼 되려고 노력 중이라더니, 정말 그런 듯했다. 나름의 신뢰가 쌓이고 있다고나 할까. 그래서 웬만하면 사소한 일에는 앨리스의 의견을 묻고 반영해주고 있다.

“앗, 그 자동문이 있던 곳 말이니?”

“문으로 장난칠 생각은 접어둬. 어차피 물건만 받고 나올 거라서 오래 안 있을 거야.”

“에잇! 그럼 나는 안 갈래.”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날 바라보던 앨리스는 다시 침대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좀 더 자려는 듯 보였기에, 나는 조용히 방을 빠져나왔다.

그대로 여관 밖으로 나와서 마차를 하나 불러세웠다. 이 주변에는 고급 여관들이 잔뜩 늘어서 있기 때문에, 승객을 노리는 마차가 늘 이렇게 기웃거린다.

그렇게 마차를 타고 이동하니, 머지않아 타스모스 학파 건물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자동문을 통과해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세... 아! 마법서를 받으러 오셨죠?”

“네, 맞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입구에 서 있던 직원이 나를 알아보며 인사했다. 그녀는 곧장 위층으로 올라가더니, 지난번에 봤던 학파원과 함께 내려왔다.

“안녕하십니까, 엘 씨. 마침 잘 오셨습니다. 어젯밤에 마법서가 딱 완성됐거든요.”

“오오, 그렇군요.”

그의 품에는 노란색 마법서가 한 권 들려있었다. 아주 따끈따끈해 보였다.

“아, 잔금 드려야죠? 여기요.”

나는 미리 준비해둔 63골드가 담긴 주머니를 내밀었다. 학파원은 그것을 받으며, 자신의 품에 있던 마법서를 내게 건넸다.

“63골드가 맞네요. 좋은 거래 감사드립니다.”

주머니에서 돈을 세어본 학파원이 허리 숙여 공손하게 인사했다.

단순한 상거래에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싶었지만, 생각해보니 나는 사흘 만에 타스모스 학파에 90골드를 쓴 큰손이었다. 일렉트릭 웹에 20골드, 속성 쉴드에 70골드.

어쨌거나 나도 만족스러운 거래였기에 웃으며 화답했다.

“아하하, 저야말로 감사드립니다. 과연 타스모스 학파에는 좋은 마법이 많네요.”

“만족하셨다니 다행입니다. 혹시 또 필요하신 마법이 있으시다면 언제든지 저희 학파로 서신을 주십시오. 미리 준비해두겠습니다. 아, 그리고 새로운 마법이 출시되면 연락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오, 그럼 저야 좋죠. 케른헴의 모험가 길드로 연락하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고객 관리가 상당히 철저했다.

팜플렛까지 보내준다니. VIP가 된 느낌이다.

아무튼 거래를 끝마치고 학파 건물을 나섰다.

여기까지 타고 온 마차를 잠시 대기시켜놨기 때문에, 마차를 새로 잡는 번거로움 없이 바로 여관으로 향할 수 있었다.

─끼이익

여관에 도착해 방문을 열고 들어가자, 앨리스가 우물거리며 나를 반겼다. 그새 아침 식사가 배달된 모양이었다.

“엘, 왔니? 얼른 밥 먹어.”

“난 별로 생각 없어. 네가 내 몫까지 다 먹어.”

나는 손을 내저으며 사양했다. 새로운 마법서가 손에 들어왔는데, 한가로이 밥이나 먹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정말? 후회하기 없기!”

“그래.”

그대로 침대에 걸터앉아서 마법서를 펼쳤다.

늘 그렇듯, 앞부분에 적혀있는 마법의 개요만큼은 제대로 읽어나갔다.

[라이트닝 아머]

전격 속성의 중급 방어 마법이다.

기초 마법 쉴드와는 달리, 물리 방어와 마법 방어를 동시에 해낼 수 있는 형태라고 한다. 대신 그만큼 마나도 많이 소모되고, 사용 횟수도 비교적 적다고 적혀있었다.

약간 특이한 점은 몸에 갑옷처럼 두를 수 있다는 것이다. 계속 켜두면 평상시에도 항시 몸을 보호할 수 있다고 한다. 물론 마나소모가 심하겠지만.

‘움직임도 자유롭고, 보호 강도도 조절할 수 있군... 역시 중급 마법이야.’

뭐, 그 외엔 크게 중요한 내용은 없는 듯 보였다. 나는 나머지 책장은 대충 읽으며 넘겨버렸다.

─탁!

그렇게 마지막 페이지까지 넘기자, 메시지가 떠올랐다.

[마법 ‘라이트닝 아머’를 배웠습니다!]

[금일 사용 가능한 ‘라이트닝 아머’ - 10회]

“흐흐흐. 이제 오러를 크게 겁내지 않아도 되겠어.”

나는 도튼에서 기사에게 한 번 크게 데인 이후로, 오러를 상당히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래서 결투재판에서도 상대가 오러를 쓸 틈을 주지 않기 위해 초반에 밀어붙인 것이다.

물론 앞으로도 그런 식으로 싸울 거지만, 오러를 버텨낼 수단이 하나 추가됐다고 생각하니 몹시 든든했다.

그때 새로운 메시지가 떠올랐다.

[조건을 달성해 승격 퀘스트가 발생합니다!]

[중급 마법을 두 개 추가로 배우거나, 유니크 등급의 몬스터 한 마리, 또는 기사 이상의 작위를 가진 자를 세 명 처치하십시오.]

“어어...?”

“뭐야? 혼자 이상하게 실실 웃다가 갑자기 왜 허공을 멍하니 바라보니? 혹시 어디 아파? 치료해줄까?”

잠시 승격 퀘스트에 관한 메시지를 읽고 있던 내 모습이 이상해 보였는지, 식사 중이던 앨리스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아아,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밥 먹어.”

“그래...? 아프면 꼭 말하라구. 나도 밥값은 할 수 있으니까.”

앨리스는 그렇게 말하며 다시 식사에 열중했다. 나는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승격 퀘스트에 대해 생각해봤다.

역시나 불친절한 시스템 메시지답게 보상이 뭔지 전혀 알려주지 않았지만, 지난번의 승격 퀘스트로 미루어보면 대충 짐작은 할 수 있었다.

고급 마법의 해금, 능력치 상승, 마법 횟수의 증가. 그리고 성장 보조 특성의 강화.

성장 보조 특성이란 꿈에 들어가는 내 능력이다. 지난번 퀘스트를 완료하고 꿈속에 들어갈 수 있는 반경이 늘어났었다.

‘보상은 짐작을 할 수 있다 쳐도... 대체 유니크 등급의 몬스터가 뭔데??’

이것은 볼 때마다 나를 상당히 빡돌게 만드는 부분이었다. 나는 그 어떤 몬스터의 등급도 모른다. 아니, 하나는 알겠다. 메두사는 에픽 등급의 몬스터였다. 그걸 잡고 승격에 성공했었으니까.

그렇다면 유니크 등급의 몬스터는 메두사보다는 강하다는 소린데, 그런 몬스터가 뭔지, 어디에 있는지도 전혀 모르겠다. 애당초 메두사부터가 극도로 희귀한 몬스터였다.

‘일단 몬스터를 잡아 승격하는 건 기각!’

중급 마법을 두 개 더 배워서 승격하는 건 충분히 가능하다. 대신 시간이 엄청나게 오래 걸리겠지만.

내가 방금 구입한 마법서가 70골드였다.

중급 마법서 두 권을 사려면 못해도 150골드는 필요할 텐데, 하루 이틀 만에 마련할 수 있는 금액이 아니다. 어디서 대박을 치지 않는 이상, 평범하게 일해서 모으려면 몇 달은 걸릴 것이다.

‘음... 오래 걸리더라도 돈을 벌긴 해야겠군.’

아니면 기사를 세 명 처치해서 승격하거나.

이건 지난 승격 퀘스트에는 없던 조건인데, 아마 메인 퀘스트인 ‘국왕시해자’와 연동되며 추가된 듯했다.

꼭 기사가 아니어도 그 이상의 작위를 가진 자라면 아무나 상관없지만, 그들을 죽이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나는 남작 이상의 작위를 가진 귀족은 만나보지도 못했다.

기사는 많이 봤다.

직접 죽인 적도 두 번이나 있다.

도튼에서 한 번, 결투재판에서 한 번.

기사 셋과 동시에 싸우는 건 어렵겠으나, 일대일로 붙는다면 어지간한 기사는 충분히 이길 자신이 있다. 그렇게 한 명씩 처치하면, 생각보다 빨리 퀘스트를 완료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기사와 싸울만한 명분이 없다는 게 문제인데....’

다짜고짜 지나가는 기사 하나를 붙잡고, 목숨 걸고 맞짱 한 번 뜨자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아... 어디 기사랑 싸울만한 일 없나.”

나는 침대에 누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며칠 전에 레이첼의 꿈속에서 기사와 싸우고 죽이기도 했었지만, 능력치가 오르지 않은 걸 보니 그건 시스템이 인정해주지 않았다.

“싸우고 싶어...? 그럼 거기에 가면 되잖니?”

내 혼잣말을 들은 앨리스가 끼어들었다.

“뭐? 거기가 어딘데?”

“그 징그러운 메뚜기를 잡으러 갔을 때 봤던 곳 말이야. 거기서 인간들끼리 싸웠잖니?”

“아, 영지전이 벌어졌던 곳? 거기서 또 싸우겠냐... 이미 결판이 났는데. 그리고 그런 작은 싸움판에는 기사가 투입되지도 않는대.”

“그럼 다른 싸움에 참여하면 되는 거 아니니?”

“......그러네?”

상당히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이곳은 영지전이 빈번한 중부지역.

찾아보면 기사가 투입될 정도의 영지전도 있을 법했다.

물론 내 목숨이 위험할 정도의 대규모 전쟁은 피해야겠지만, 저번에 구경했던 것 같은 소규모 영지전도 괜찮을 것 같았다.

내가 스트렝스를 쓰고 기사처럼 싸우면, 상대 진영에서도 기사를 내보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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