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 탐사 (5)
잠시 굳어있던 테도린은 곧 얼굴이 달아올라서 도플갱어에게 소리쳤다.
“무, 뭣?! 지, 지금 나한테 뭐라고 했나!”
“미친놈이라고 했어.”
“이익...! 내가 왜 미친놈인가!”
“바보네. 네가 스스로 그렇게 말했잖아.”
“그, 그건...!”
...제법인데? 물론 테도린은 미친놈이 맞고, 자기 입으로도 그렇게 말했으니 변명의 여지가 없다.
다만 그걸 논리적으로 따지고 드는 걸 보니, 도플갱어는 단순하고 멍청할 것이라는 내 추측과 달리 어느 정도 지능이 있는 듯했다.
‘......지금까지 일부러 멍청한 척 연기했나?’
“당장 그 말을 취소하지 않으면 내가─”
“잠깐 비켜봐, 테도린.”
나는 흥분해서 날뛰고 있는 테도린을 밀어내며 도플갱어 앞에 섰다.
“너 말할 수 있었네?”
“너도 바보니? 보면 몰라?”
“흐흐흐. 그래, 말을 할 수 있단 말이지....”
그렇다면 심문의 시간이다.
“왜 그동안 말을 따라 하기만 했지?”
“왜 그동안 말을 따라 하기만 했지?”
“어쭈, 이것 봐라.”
“어쭈, 이것─”
─파지직!
[금일 사용 가능한 ‘스태틱 쇼크’ - 9회]
“끼야아악!!!”
갑작스러운 전기 충격에 도플갱어가 비명을 지르며 경련했다. 나는 자리에 쪼그려 앉아 도플갱어와 눈높이를 맞췄다.
“지금까지는 네가 말을 할 수 없는 줄 알고 가만 놔뒀을 뿐이야. 하지만 한번 말을 한 이상, 이제부터는 내 물음에 성심성의껏 대답하는 게 좋을 거다.”
“.......”
나는 적을 심문하는데 있어서 그다지 신사적인 사람이 아니다. 하물며 상대가 몬스터라면 더더욱 그렇다.
“왜 그동안 말을 따라 하기만 했지?”
“그, 그동안은 말을 할 수가 없었어.”
“그럼 지금은 어떻게 할 수 있는데?”
“그건.......”
도플갱어가 눈을 내리깔며 뒷말을 흐렸다. 내가 조용히 다시 오른손을 들어 보이자, 녀석은 황급히 말을 이었다.
“저 여자! 저 여자 때문이야!”
“저 여자라면... 리사 씨?”
“맞아! 나는 저 여자를 가까이에서 오래 볼수록 더 온전하게 흉내 낼 수 있어. 이전에는 잠깐만 본 거라 모습만 따라 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말투도 따라할 수 있어.”
역시 짜릿한 전기 맛을 본 뒤로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 술술 나왔다.
“근데 지금 네 말투는 리사 씨랑 다른데?”
“어머, 그런가요? 엘 씨가 원하신다면 이 말투를 사용할게요.”
도플갱어는 내 이름까지 부르면서 리사의 말투를 완벽하게 재연해냈다.
내 이름이야 우리의 대화를 엿들었으니 알고 있다 쳐도, 말투를 이렇게까지 흉내 낼 수 있다면 진짜 사람과 구분하는 것이 불가능해 보였다.
“......말투는 너 좋을 대로 하고. 그것보다 이 던전에 너 말고 또 다른 도플갱어가 존재하나?”
“당연하지.”
“수는 얼마나 되지?”
“많지는 않지만 자세히는 몰라. 우리도 서로를 알아볼 수 없어. 그래도 이미 인간의 형상을 취하고 있는 동족이 있을걸? 인간은 인기가 좋거든. 나도 오랫동안 고블린의 모습을 하고 있다가 최근에서야 바꾼 거야.”
도플갱어는 인간뿐 아니라 다른 몬스터의 모습도 복제할 수 있는 모양이었다.
“인간이 인기가 좋다고? 왜지? 뭐든 따라 할 수 있다면 기왕이면 강력한 몬스터를 복제하는 게 낫지 않나?”
“우리의 최종 목표는 흉내 내는 대상의 삶을 송두리째 훔치는 거야. 완벽히 따라 할 수 있게 된다면 본모습의 주인을 죽이고, 내가 그 삶을 대신 사는 거지. 하지만 몬스터의 삶은 재미가 없잖아?”
과연. 그런 것이었나.
도플갱어의 패턴이 대강 이해가 갔다.
이를테면 리사의 모습을 취하고 있는 이 도플갱어의 최종 목표는, 리사를 죽이고 그 자리를 꿰차는 것이다.
리사의 가까이에서 맴돌며 말과 행동까지 복제할 기회를 노리고, ‘진짜 리사’를 구분할 수 있는 그녀의 주변인들을 죽여 나가다가, 종장엔 ‘진짜 리사’마저 죽인다.
나는 리사를 향해 말했다.
“리사 씨. 아무래도 리사 씨는 이 도플갱어와 가까이 있으시면 안 되겠네요. 동료 몇 분과 함께 방 밖으로 나가계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도플갱어는 흉내 내는 대상을 가까이에서 관찰할수록 점점 더 비슷해진다. 이 녀석은 이미 리사의 말투까지 복제했고, 똑똑해지고 있었다. 계속 이대로 두다가는 뭘 더 복제할지 모른다.
리사가 동료들과 함께 밖으로 나가자, 도플갱어가 영문 모를 미소를 지으며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저렇게 믿고 내보내도 되는 거니? 너희들 중엔 이미 내 동족이 섞여 있을 수도 있다구?”
“이간질을 시도해봤자 소용없다. 나는 적어도 내 일행만큼은 계속 지켜봐 왔으니까.”
“정말? 아까 내가 너를 죽이려고 했을 때, 너는 혼자 있었잖아? 그 틈에 내 동족이 너의 동료를 죽이고, 자기가 진짜인 척하고 있을 수도 있는데?”
그렇게 말한 도플갱어는 도린 형제와 올리버를 바라봤다.
“거기 미친놈. 그리고 너희들. 지금 나한테 꼬치꼬치 캐묻고 있는 이 남자가 진짜 너희들의 동료인 ‘엘’이라고 확신할 수 있니?”
어디서 개수작을.
“그건 네가 신경 쓸 바가 아니다.”
나는 단호하게 도플갱어의 이간질을 잘라냈다.
일행 중에 다른 도플갱어가 섞여 있는지는, 우리끼리만 알 수 있는 질문을 하면 판별해낼 수 있다. 예를 들어 도린 형제의 여동생 이름을 묻는다거나 하는 식으로.
어쨌든 괘씸하니 한 방 먹여주도록 하자.
─파지직!
[금일 사용 가능한 ‘스태틱 쇼크’ - 8회]
“끼아아악!!”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그냥 묻는 말에만 대답해. 알겠어?”
“아, 알겠어...!”
나는 도플갱어에게 가장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네가 복제할 수 있는 요소는 어디까지 포함되지? 혹시 마법도 따라 할 수 있나?”
“가, 가까이서 본다면 흉내는 낼 수 있을 거야!”
“호오. 그래?”
이건 직접 확인해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흉내 내봐야 회복 마법이니 위험하지도 않을 테고.
나는 품에서 단검을 꺼내 손바닥에 상처를 낸 뒤, 밖에 나가 있던 리사를 불러들였다.
“무슨 일이세요?”
“죄송하지만 회복 마법을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네? 그거야 어렵진 않은데... 알겠어요.”
리사는 고개를 갸웃하고는, 이내 내 손바닥 위에 자신의 손을 가져다 대며 회복 마법을 시전 했다.
─화아아
손바닥의 상처가 빠른 속도로 아물었다. 도플갱어는 그 모습을 황홀하다는 듯 넋을 놓고 바라봤다.
치료가 끝난 후, 나는 다시 리사를 내보냈다.
“이제 너도 회복 마법을 쓸 수 있겠지?”
나는 그렇게 말하며 도플갱어의 포승줄을 풀어줬다. 그리고 녀석의 왼쪽 손바닥에 상처를 냈다.
“어디 한 번 해봐. 허튼짓할 생각은 말고.”
“아, 알겠어.”
내가 검을 겨누며 위협하자, 도플갱어는 침을 꿀꺽 삼키고 자신의 왼손 위에 오른손을 가져다 댔다.
─화아아
상처가 서서히 아물어가기 시작했다. 리사가 사용했던 그것보다는 속도도, 치유 강도도 떨어졌지만 어쨌거나 회복 마법은 맞았다.
“내, 내가 해냈어! 내가 해냈다구!”
도플갱어는 자신도 믿지 못하겠다는 듯 놀라워했다. 나는 해맑게 웃고 있는 도플갱어를 다시 포박하며 말했다.
“그래. 축하해. 너는 이제부터 힐 셔틀이야.”
***
다음 날. 우리는 리사의 파티와 헤어졌다.
딱히 같이 다닐 이유가 없었으므로, 원래 계획대로 간밤의 노숙까지만 함께 하고 갈라섰다.
마침 지난 자정이 꿈에 들어갈 수 있는 능력의 쿨타임이 돌아온 시간이었기에, 도플갱어의 꿈속으로 들어가 봤었다. 어차피 주변에 마땅한 마법사도 없었으니, 그냥 염탐 용도로 써먹었다.
굳이 마법을 얻지 못하더라도, 꿈속에 들어가면 주인의 음습한 욕망이나 성향, 과거의 편린 같은 것들을 보게 되는 경우가 있으니까.
아무튼, 내가 도플갱어의 꿈속으로 들어가 보고 느낀 게 있다.
‘이 녀석은 의외로 순수하다.’
물론 착하다는 뜻은 아니다. 나를 공격한 이력이 있고, 사람을 죽이는 것에 대해 거리낌도 없는 녀석이다. 다만, 순수한 욕망을 품고 있는 듯 보였다.
온전한 인간이 되고 싶다는 순수한 욕망.
도플갱어의 꿈은 복잡하지 않았다. 그저 리사의 형상을 한 채, 습득한 회복 마법을 하염없이 써대고 있었다. 그것도 매우 행복한 얼굴로 말이다.
“저기, 이것 좀 벗겨주면 안 될까? 앞이 하나도 안 보여서 답답해.”
우리 일행의 중간에서 걷고 있던 도플갱어가 불현듯 그런 요청을 해왔다.
나는 녀석을 포승줄로 꽁꽁 묶어두고, 마나 속박 고리를 채운 후, 시야를 차단하기 위해 두건까지 씌워 놨다.
“안 돼. 네 도움이 필요할 때에만 풀어줄 거다.”
도플갱어는 우리의 회복 마법 셔틀이다.
도린 형제와 올리버에게는 아직 저주가 남아있어서 꾸준한 케어가 필요하기 때문에, 회복 마법을 습득한 도플갱어는 아주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을 것이다.
어디 그것뿐인가?
녀석은 이 던전에서 오래 서식한 고인물.
지하 3층으로 가는 길을 알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갈림길이 나올 때마다 잠깐씩 복면을 벗겨주고 길을 안내받고 있었다.
“근데 너희들 꼭 밑으로 내려가야 해? 거긴 무섭단 말이야.”
“왜? 어차피 거기도 묘지라며?”
나는 의아한 듯 물었다.
도플갱어의 말에 의하면 지하 3층도 묘지라고 한다. 대신 이곳 2층처럼 무수한 해골들이 볼품없이 늘어서 있는 것이 아니라, 큼지막한 무덤이나 관 따위가 듬성듬성 위치해 있다고 하는데, 내 생각엔 생전에 신분이 높았던 사람들의 묘지 같았다.
“너는 겁도 없니? 저주가 무섭지도 않아?”
“저주야 뭐, 이미 다들 걸렸는데? 나 빼고. 그리고 저주라고 해봤자 별거 없더만.”
나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저주에 걸린다고 즉사하는 것도 아니고, 도플갱어한테 임시로 치료받을 수도 있다.
“이미 저주에 걸렸다고? 너희 설마 여기에 있는 망자의 뼛가루를 마셨니?”
“망자의 뼛가루...? 아.”
던전에 들어온 첫날, 테도린이 유골함을 바닥에 집어 던진 일이 있었다. 그 덕에 온 일행이 뼛가루를 실컷 들이마셨었다.
‘이제야 감이 좀 잡히는군.’
어디서 저주에 걸렸나 했더니, 그 뼛가루가 저주의 매개체였던 모양이다. 나는 메두사의 마안 덕분에 멀쩡한 거였고.
“근데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았지? 너도 뼛가루를 마셔본 적이 있나?”
“왜 없겠니. 내가 고블린이었던 시절에 그 기분 나쁜 저주에 걸려서 한참을 고생했었지 뭐야.”
“그 말은 지금은 괜찮다는 것처럼 들리는데. 혹시 시간이 지나면 자연적으로 저주가 풀리나?”
“뼛가루에도 남는 저주가 자연적으로 풀릴 리가 있겠니? 스켈레톤으로 변해서 저주를 없앴어. 나도 몰랐는데, 언데드는 저주에 걸리지 않더라구.”
스켈레톤으로 변했다고?
기가 막힌 방법으로 해주를 했군.
‘아니, 잠깐. 이거....’
문득 생각 하나가 뇌리를 스쳤다.
어쩌면 나에게 큰 도움이 될 수도 있는 생각이.
나는 우리 일행 중앙에서 걷고 있던 도플갱어를, 으슥한 곳으로 따로 끌고 갔다.
“......너 다른 모습으로 얼마나 자주 변할 수 있지?”
시도 때도 없이 휙휙 변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게 가능했다면 나와 싸웠을 때 연약한 리사가 아니라, 전투에 더 적합한 내 모습을 복제했을 테니까.
“그건 왜 묻는 거니?”
“말해.”
“한, 한 번 변하면 한 달은 지나야 다른 존재를 흉내 낼 수 있어.”
그 정도면 나쁘지 않다.
나는 꿈에서 본 도플갱어의 욕망을 바탕으로 물었다.
“너, 인간이 되고 싶지? 지금처럼 일부분만 따라 하는 게 아니라, 한 사람을 완벽하게 복제하는 거 말이다.”
“지금 나를 놀리는 거니? 네가 리사라는 여자를 나에게서 떼어 놓았잖아! 그게 얼마 만에 만난 인간인데! 자기가 방해해놓고서는!”
도플갱어는 오랜 던전 생활 끝에 간신히 만난 인간인 리사를, 온전히 복제하지 못한 채 떠나보낸 것이 못내 분한 듯 길길이 날뛰었다.
“꼭 리사일 필요는 없잖아? 다른 인간을 복제하면 되니까.”
“나는 그 여자가 마음에 들었다구! 마법사처럼 보여서 흉내 낸 거란 말이야! 그리고 네가 나를 이렇게 묶어두고 얼굴까지 가렸는데, 내가 어떻게 다른 사람을 흉내 낼 수 있겠니?”
평범한 인간이 아닌 마법사를 원한다라.
“내가 네 소원을 이룰 수 있게 도와주지.”
“......뭐?”
“마법사를 제공해주겠다는 소리다. 네가 마법도 흉내 낼 수 있도록, 충분히 가까운 거리에서 마법을 쓰는 모습까지 보게 해주겠어.”
“저, 정말? 하, 하지만 대체 왜...?”
도플갱어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고,
나는 조건을 제시했다.
“대신 너는 그 마법으로 나를 죽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