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 탐사 (4)
‘......갑자기 왜 이러지?’
회복 마법사 리사는 그 어떤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방 입구에서 무표정하게 나를 바라보고 있을 뿐.
얼마 전까지 나와 웃으며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누던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무슨 일 있습니까?”
“.......”
나는 지금 방 안에 있었다. 언제까지 이 기묘한 대치를 지속하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 설마 회복 마법사가 허튼짓이야 하겠나 싶었지만, 경계를 늦추지 않은 채 그녀에게 슬그머니 다가갔다.
“왜 아무 말씀이 없으십니─”
─캉!
그녀가 돌연 단검을 꺼내서 내게 휘둘렀다.
나는 곧바로 검집에 들어있던 검을 반쯤 뽑아 들며 그것을 막아냈다.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나는 그녀에게 버럭 소리쳤다.
그녀가 풍기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기는 했었으나, 진짜로 나를 공격할 줄은 몰랐다. 그것도 고작 단검 따위를 휘두르면서.
리사는 재차 나를 향해 단검을 휘둘러댔다.
허나 그래봤자 회복 마법사가 휘두르는 검이다. 그런 연약한 육체로 행하는 어설픈 물리 공격이 내게 통할 리가 없었다. 나는 어렵지 않게 그녀의 모든 공격을 막아냈다.
─캉! 캉!
단검을 막아내는 와중에도 머릿속엔 의문이 가득했다.
‘대체 왜...?’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녀가 갑자기 나를 공격하는 이유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이유야 둘째로 치더라도, 이럴 거였으면 왜 굳이 힘을 들여 도린 형제와 올리버를 치료해줬단 말인가?
무엇보다도, 그녀는 나에 대해 알고 있다. 이런 공격이 먹히지 않을 거라는 사실은 스스로도 충분히 알고 있을 텐데, 왜 이런 무모한 방법으로 내게 덤빈단 말인가?
나는 검으로 그녀의 단검을 강하게 내리쳤다.
─채앵!
리사의 손에 들려있던 단검이 바닥에 내팽개쳐졌다. 나는 그대로 그녀의 양손을 붙잡고, 방 바깥의 통로까지 밀어붙였다.
뼈로 만들어진 벽에 몰려 움직이지 못하게 된 그녀를 향해 물었다.
“당신이 아까 그 모험가도 공격한 거였습니까?”
“.......”
처음엔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었다.
잭슨이라는 모험가의 옆구리를 단검으로 찌른 범인이, 이 회복 마법사 리사일 거라고는.
하지만 이쯤 되면 확실하다.
그 모험가 파티는 진실을 말한 것이었고, 이 여자는 거짓을 말한 것이었다. 여전히 이유는 모르겠지만, 범인은 이 여자가 맞다.
그런 결론에 도달하자, 문득 꼬리를 무는 생각이 하나 있었다.
“당신의 동료들도 한패입니까?”
“.......”
그들은 이 여자를 옹호했었다. 만약 그들도 한패라면, 내가 자리를 비운 지금 도린 형제와 올리버가 위험할 수 있다.
나는 조바심을 느끼고 그녀를 다그쳤다.
“한패냐고 묻잖아! 대답해!”
“한패냐고 묻잖아! 대답해!”
리사는 돌연 내 말을 그대로 따라 했다.
“......뭐? 지금 장난해?”
“......뭐? 지금 장난해?”
내가 당황하며 묻자, 그녀는 당황한 내 표정까지 따라 하며 앵무새처럼 말을 반복했다.
“이거 단단히 미친 여자였군. 테도린!!!”
“이거 단단히 미친 여자였군. 테도린!!!”
“넌 입 닥쳐! 테도린! 빨리 이리로 와봐!”
“넌 입 닥쳐! 테도린! 빨리 이리로─”
해골 장벽 앞에서 이 사이코 같은 여자가 내 말을 따라 하는 것만 해도 소름이 돋을 지경인데, 표정까지 따라 하니 정신이 나갈 것 같아서 아예 그녀의 입을 틀어막아 버렸다.
“도린 형제들!! 올리버!!”
나는 계속해서 일행들을 불렀다. 지금 이곳은 노숙할 장소를 찾기 위해 우리가 흩어졌었던 곳과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육성이 충분히 닿을 만했다.
그렇게 애타게 부르자, 곧 테도린과 리사의 동료 한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왜 그렇게 부르는 것인가 억울한 마법... 헙!”
“엘 씨...? 지금 리사 양에게 뭐 하시는....”
그 둘은 나를 보고 매우 당황스러워했다.
내가 리사를 벽에 몰아세우고 그녀의 입을 틀어막고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지금 상황만 봐서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법했다.
나와 리사를 멍하니 바라보던 테도린과 리사의 동료는, 곧 서로를 마주 봤다. 그리고 즉시 검을 꺼내 서로에게 겨눴다.
리사의 동료가 먼저 입을 열었다.
“엘! 당신이 이런 파렴치한 작자일 줄은 몰랐습니다! 당장 그 손 놓으십시오!”
그러자 테도린이 즉시 응수했다.
“웃기지 마라! 억울한 마법사가 괜히 저럴 리가 없다!”
“비키십시오. 저는 리사 양을 도우러 가야 합니다!”
“그럴 수는 없다! 내가 서 있는 한 너는 억울한 마법사에게 한 발짝도 갈 수 없을 것이다!”
리사의 동료는 이쪽으로 오려고 했고, 테도린은 그걸 막아서고 있었다. 나는 일단 짤막하게 상황을 전달했다.
“이 여자가 갑자기 단검으로 나를 공격했어. 동료들도 한패일지 모르니 조심해야 돼!”
“역시 그랬군!”
테도린은 바로 내 말을 믿어줬으나, 리사의 동료는 말도 안 된다는 듯 부정했다.
“하... 엘, 당신도 그 소리입니까? 리사 양이 그럴 리가 없잖습니까! 그녀는 당신의 일행을 치료해준 은인이지, 미치광이 살인마가 아닙니다!”
‘......한패가 아닌가?’
저 반응을 보면 저들은 리사에게 속고 있는 듯했다. 한패였다면 이미 일이 벌어진 지금 상황에서 애써 부정할 필요가 없으니까.
어쨌거나 완전히 신뢰할 수는 없었기에, 나는 테도린에게 계속 경계할 것을 요구했다.
“경계 풀지 마, 테도린. 다른 형제들과 올리버도 도착하면 똑같이 시켜.”
“알았다!”
머지않아 나머지 일행들이 하나둘씩 합류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뜻밖의 상황에 당황했으나, 먼저 와있던 사람들의 설명을 듣고 금세 우리 파티와 리사의 파티로 나뉘어 무기를 들고 대치했다.
“짐꾼! 당장 이쪽으로 와서 검을 꺼내라! 억울한 마법사가 공격받았다!”
“헉, 그게 정말입니까? 알겠습니다!”
그렇게 모든 일행이 모였다고 생각했을 때였다.
대치 중인 두 파티 너머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게 무슨 일이죠?”
“아, 리사 양! 위험하니 어서 저희 뒤로 오십시오. 지금 저쪽에서 엘 씨가 리사 양을 겁박하고 있......???”
순간 모두의 말문이 막혔다.
“네? 저는 여기에 있는데요?”
마지막으로 합류한 사람은 리사였기 때문이다.
***
내가 발견했던 작은 방.
우리 파티와 리사의 파티는 모두 이곳에 들어와 있었다.
“진짜 똑같이 생겼군....”
“복장까지 너무 비슷합니다!”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저마다 방구석에 포박되어 있는 리사를 바라보며 감상을 내뱉었다.
“으으... 소름끼쳐요!”
그리고 또 다른 리사가 자신의 판박이를 흘끗 쳐다보고 몸을 부르르 떨며 말했다.
그러니까, 리사가 두 명이었다.
“아무튼 죄송하게 됐습니다. 저는 진짜 리사 씨가 저를 공격한 줄 알았거든요. 다시 한번 사과드립니다.”
“아닙니다. 엘 씨가 공격받은 건 사실이었군요. 저희야말로 오해해서 죄송합니다. 잘 생각해보면 엘 씨가 그럴 리가 없는데 말입니다. 하하.”
내가 소란을 피운 것에 대해 사과하자, 리사의 동료도 따라서 사과했다. 양측 다 충분히 오해할 만한 사유가 있었기에, 조금 전의 갈등은 큰 뒤탈 없이 수습됐다.
“그래서... 저 리사, 아니, 저 여자의 정체는 뭘까요?”
나는 가짜 리사를 가리키며 말하다가 급히 호칭을 변경했다. 진짜 리사는 가짜 리사를 극도로 불쾌하게 여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 질문에 대답한 것은 테도린이었다.
“그거야 리사 양의 쌍둥이가 아니겠나!”
“네? 저는 쌍둥이가 없는걸요?”
“확실하시오? 리사 양께서 모르고 있는 것일 수도 있잖소? 갓난아기 시절에 피치 못할 사정으로 헤어졌을 수도 있고.”
리사가 부정했지만, 테도린은 자신의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흠...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옷까지 비슷한 건 이상하잖아?”
거의 똑같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리사가 신고 있는 회색 가죽 장화부터 시작해서, 회복 마법사를 나타내는 순백의 로브와 장신구까지.
자세히 보면 미묘하게 다른 부분도 있었지만, 얼핏 보면 차이점을 알아채기 어려웠다.
설령 리사의 쌍둥이가 존재하고, 일부러 복장을 흉내 내고 던전에 들어왔다고 쳐도, 혼자서 지하 2층까지 온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리고 뭐랄까... 저건 인간이라고 하기엔 너무 멍청하던데. 말도 제대로 못 하고.”
“읏...!”
내가 가짜 리사를 욕하자, 진짜 리사는 자신이 욕을 듣기라도 한 것처럼 몸을 움찔했다.
“그럼 억울한 마법사, 저게 인간이 아니라면 대체 뭐라는 말인가?”
“그거야 나도 모르지.”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그때, 짐꾼 올리버가 불쑥 끼어들었다.
“도플갱어....”
“도플갱어?”
“네. 제가 어렸을 때 마을 어르신들에게 사람을 흉내 내는 도플갱어라는 몬스터에 대한 전설을 들어본 기억이 있습니다.”
도플갱어라.
나도 게임 속에 들어오기 전에 도플갱어에 대한 괴담을 들어봤다.
세상 어딘가에는 자신과 똑같이 생긴 사람이 존재하는데, 그것이 도플갱어다. 그리고 자신의 도플갱어와 마주친다면, 자신은 죽는다고 한다.
하지만 올리버의 말을 들어보니, 이 세계의 도플갱어는 내가 알던 것과는 조금 다른 듯했다.
“그래? 사람을 흉내 내는 몬스터라고? 입고 있던 옷도 포함되는 건가?”
“그게 말씀하시는 분마다 다 내용이 달라서 뭐라고 단언하긴 어렵습니다. 어떤 분은 외모만 흉내 낼 수 있다고 하고, 어떤 분은 복장도, 또 어떤 분은 대상의 능력까지도 따라 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흠... 너무 막연한데.”
역시 마을에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답게 확실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어쨌거나 이 요상한 던전은 결국 사람을 흉내 내는 도플갱어라는 몬스터까지 출몰하기에 이르렀다.
내 생각에 이건 위험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이제부터는 던전을 돌아다니다가 만나는 사람은 도플갱어일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한다. 겉으로만 봐서는 구분하기 힘드니까.
그리고 리사처럼 나약한 육체가 아닌, 근육쟁이 검사를 흉내 낸다면 공격이 더 위협적일 것이다. 혹시 아는가? 마법사를 흉내 내면 마법을 쓸 수 있을지. 도플갱어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볼 필요가 있었다.
나는 포박되어 있는 가짜 리사에게 다가가 입에 물린 재갈을 풀어줬다.
“너 진짜 도플갱어야?”
“너 진짜 도플갱어야?”
“역시. 앵무새나 다름없네.”
“역시. 앵무새나 다름없네.”
지금 내가 뭐 하는 짓인가 싶었다.
말을 따라 하기만 하는 존재다. 어떤 질문을 던져봤자, 아무 정보도 얻을 수 없을 듯했다.
“하아... 됐다. 말을 말자.”
“하아... 됐다. 말을 말자.”
도플갱어는 한숨을 내쉬는 내 표정까지 따라 했다.
죽빵을 날려주고 싶었지만, 그래도 걱정은 덜었다. 아무리 인간과 똑같이 생겼다 한들, 대화를 잠시만 나눠 보면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금세 판별할 수 있을 테니까.
게다가 어떻게 리사의 모습을 흉내 냈는지는 몰라도, 계속 리사의 모습을 유지하는 걸 보면 그렇게 쉽게 다른 형태로 바꿀 수는 없는 모양이었다.
‘그냥 만나는 사람마다 말을 걸어보면 되겠군.’
대답을 안 하거나, 말을 따라 하는 사람은 도플갱어로 간주하면 될 것이다.
도플갱어가 말하는 걸 처음 본 다른 일행들은 굉장히 놀라워하며 몰려들었다. 특히 리사 본인이 가장 그랬다. 처음엔 불쾌해하더니, 이제는 몹시 신기해했다.
그녀는 자신의 도플갱어를 가까이에서 바라보며 말했다.
“정말 신기하네요. 말까지 따라 한다니.”
“정말 신기하네요. 말까지 따라 한다니.”
“어머, 마치 제가 말하는 것 같네요?”
“어머, 마치 제가 말하는 것 같네요?”
똑같이 생긴 두 사람이, 똑같은 목소리로 똑같은 말을 해대는 모습은 사뭇 입체적인 것이었기에 어질어질했다.
“조금 떨어지세요, 리사 씨. 그래도 사람을 죽이려 한 녀석입니다.”
나는 리사를 뒤로 잡아끌었다. 크게 위협적이진 않다고 해도 어쨌든 사람에게 적대적인 몬스터다.
리사가 빠지자 이번엔 테도린이 참가했다.
“크흐흐. 아주 예쁘게 생긴 몬스터로군!”
“크흐흐. 아주 예쁘게 생긴 몬스터로군!”
도플갱어는 테도린 특유의 멍청한 웃음까지도 따라 해냈다.
“하지만 멍청해! 다른 말은 못 하나?”
“하지만 멍청해! 다른 말은 못 하나?”
그렇게 말한 테도린은 잠시 고민하더니, 이것도 따라 해보라는 듯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이며 말했다.
“꾸에에엑!”
“꾸에에엑!”
“크흐흐. 나는 미친놈이다!”
“그래, 미친놈이네.”
뭐? 나는 극도로 당황했다.
그걸 어떻게 알았지? 가 아니라, 도플갱어가 다른 말도 할 수 있다면 진짜 사람과 구별할 수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