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꿈속에서 마법을 훔치는 마법사-66화 (66/200)

던전 탐사 (2)

거대한 지하 묘지 카타콤(Catacomb).

“카하악!”

“크하악!”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좀비의 울음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온다. 검을 치켜든 도린 형제가 실망과 분노가 뒤섞인 불평을 늘어놓았다.

“이익...! 이런 거지 같은 곳이 있나!”

“좀비만 한가득 존재하는 묘지라니!”

“우린 무료 봉사를 하러 온 것이 아니다!”

모험가 길드 선정 가장 돈이 안 되는 몬스터 중 수위를 앞다투는 좀비만 가득했지만, 그래도 긍정적인 면이 하나 있었다.

“우리가 가장 먼저 2층으로 온 것 같은데?”

싱싱한 좀비들이 넘실거린다는 것은, 아직 다른 파티가 이곳에 온 적이 없음을 시사했다. 즉, 우리가 선두다.

어쨌거나 좀비의 수가 제법 많고, 지금 우리가 서 있는 곳은 광장 형태였기에 주변을 밝힐 필요가 있었다.

─화아악!

[금일 사용 가능한 ‘라이트’ - 6회]

시야가 확보되자 도린 형제가 전투를 위해 앞으로 나서려고 했다.

“잠깐. 일단은 나가지 말고 기다려봐.”

나는 그들을 제지하고 좀비가 조금 더 가까이 오기를 기다렸다. 그렇게 잠시 기다린 뒤, 마법을 캐스팅했다.

─치지지직!

내 오른손에 전류가 모여들며 스파크가 일기 시작했다.

[금일 사용 가능한 ‘체인 라이트닝’ - 4회]

이윽고 뻗어나간 한 줄기의 푸른 전류는 가장 가까이에 있던 좀비에게 직격했다. 그리고 곧 연쇄적으로 퍼져나가며, 파도가 치듯 좀비의 물결을 무너트렸다.

단 한 번의 마법에 상당수의 좀비가 사망했다.

아니, 사망이라는 표현이 맞나? 이미 죽어있던 놈들인데. 아무튼 대부분 바닥에 쓰러져서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고, 비교적 멀리 있던 녀석들은 쓰러진 채로 꿈틀거리고 있었다.

“우오오! 순식간에 이렇게나 많은 좀비를... 대단하십니다!”

“그래봤자 좀비인데 뭐. 어쨌든, 저 꿈틀거리는 놈들은 검으로 마무리하자고.”

나는 짐꾼인 올리버는 자리에 남겨두고, 도린 형제와 함께 아직 움직이고 있는 좀비들의 몸통과 머리통을 기계적으로 분리해냈다.

마무리 작업은 금세 끝이 났다.

테도린이 검에 가득 묻은 부패한 피를 털어내며 투덜거렸다.

“이거 괜히 뒤따라오는 녀석들에게만 좋은 일을 해준 것이 아닐까 싶군! 그놈들은 이곳을 편하게 통과할 것이 아닌가?”

“에이, 뭘 그렇게 까탈스럽게 굴어?”

원래 선두라는 게 다 그렇다.

남들보다 앞서나가며 장애물을 치우고 몸소 부딪혀서 공략법을 찾아낸다. 뒤따라오는 사람들은 그저 편하게 발자취나 따라가면 된다.

그렇기에 선두는 고생스럽지만, 대신 그만한 보상도 따른다. 결과물을 먼저 발견하고, 독식할 수 있으니까.

“......근데 설마 묘지가 전부는 아니겠지?”

나는 마법서 같은 귀중한 아이템을 기대하고 던전에 온 것이지, 썩어 문드러져 냄새나는 시체를 썰기 위해 온 것이 아니다.

물론 왕이나 귀족처럼 지고한 신분을 가진 자의 무덤에는 부장품으로 금은보화가 함께 묻혀있을 수도 있겠으나, 글쎄. 공동묘지처럼 보이는 이곳에 그런 무덤이 있을까 싶었다.

“어쨌든 다른 파티가 내려오기 전에 얼른 움직이자고.”

나는 일행과 함께 깊숙한 곳을 향해 나아갔다.

***

얼마간 걷다 보니 내부 구조가 바뀌었다.

2층의 초입은 탁 트인 광장 형태였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다시 미로 같은 좁은 구조가 나왔다. 1층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곳은 여전히 묘지였다는 점이다.

“......미친! 이거 전부 사람의 뼈잖아?”

“미, 밀지 마라! 소름 돋는단 말이다!”

실내에 세워져 있는 커다란 원통형 기둥.

그 기둥은 사람의 뼈를 빼곡하게 쌓아서 만들어져 있었다. 사람의 뼈라고 확신하는 이유는, 기둥 중간쯤에 두개골이 일렬로 띠처럼 나열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눈이 뻥 뚫린 수십 개의 두개골이 마치 나를 쳐다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매우 찝찝했다.

“되게 기분 나쁘네. 설마 갑자기 스켈레톤으로 변해서 움직인다거나 하지는 않겠지?”

“그, 그런 재수 없는 소리는 하지 말아줬으면 좋겠군.”

테도린이 질색하며 팔을 쓸어내리자, 올리버가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스켈레톤이 그렇게나 강한 몬스터입니까? 저는 고블린만도 못한 뼈다귀에 불과하다고 들었습니다만....”

“일반적으로 약하긴 한데, 숫자가 문제지. 이런 기둥이 몇 개 더 있다고 생각해봐. 그게 전부 스켈레톤으로 변하면 골치 아플 수밖에.”

내 설명을 들은 올리버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물론 말이 그렇다는 거지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나지는 않겠지... 아무튼 여긴 뭔가 건질만 한 게 나올 것 같기도 한데?”

그동안 별다를 것 없이 통로와 광장만 있었던 것과는 달리, 이곳부터는 작은 함이나 관처럼 보이는 상자가 드문드문 존재했다.

내가 진열대처럼 파여 있는 벽면에 놓인 함을 하나 가리키며 말하자, 테도린이 즉시 다가가서 그것을 집어 들었다.

“크흐흐. 자고로 이런 함에는 고대의 금화나 진귀한 보석 같은 것이 담겨있... 켁켁!”

함을 열어보던 테도린이 돌연 기침을 해댔다. 금화나 진귀한 보석 따위는커녕 뼛가루만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젠장! 유골함이었군!”

테도린이 짜증스럽다는 듯 유골함을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쨍그랑!

뼛가루가 자욱하게 휘날리며 우리를 덮쳤다.

“콜록콜록! 야, 이 미친놈아. 그걸 다짜고짜 집어던지면 어떡해? 가뜩이나 환기도 잘 안되는 곳인데.”

우리는 전원 코와 입을 가리며 기침을 해댔다. 단순한 먼지라면 모를까, 남의 뼛가루를 흡입했다고 생각하니 형언할 수 없는 꺼림칙함이 몰려왔다.

어쨌든 계속 이 정체불명의 칼슘 가루를 마시고 있을 순 없었기에, 서둘러서 자리를 옮겼다.

─터벅터벅.

우리는 다시 방황하듯 돌아다녔다.

왜 방황하듯 돌아다녔냐 하면, 개미집처럼 복잡한 구조를 가진 곳이라서 어느 방향이 옳은 방향인지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뭐, 안 그런 던전이 어디 있겠냐마는.

그래도 나름대로 지나간 흔적을 새기며 안 가본 방향 위주로 다녔다. 가다가 눈에 보이는 함이나 관이 있으면 싹 다 뒤져봤지만, 아직까지는 뼛가루와 유골 외에는 발견하지 못했다.

“아니, 미친. 이제는 아예 벽면 전체가 뼈다귀로 만들어져 있네.”

나는 좌우로 펼쳐져 있는 뼈의 벽을 바라보며 말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뼈는 진저리가 날 정도로 충분히 봐왔기에, 처음처럼 충격을 받지는 않았다.

다만, 두개골.

벽의 상중하단에 세 줄로 주욱 늘어서 있는 저 두개골만큼은 아무리 봐도 적응이 잘 안됐다.

“......대체 이걸 어떻게 만든 거지? 묘지를 만들기 위해 일부러 사람을 잡아다 죽이기라도 했나? 그래도 이건 너무 많은데.”

“이 정도로 많이 죽었다면... 역시 전쟁 아니겠습니까?”

내가 혼잣말하듯 중얼거리자 올리버가 그런 추측을 내놓았다.

“전쟁? 흠. 아니야. 전쟁으로 인해 죽었다고 하기에는 뼈가 너무 멀쩡해. 이 두개골들을 봐봐. 상처가 하나도 없잖아.”

나는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다.

여기까지 오면서 본 모든 두개골들은 상처 없이 온전한 형태를 가지고 있었다. 틈만 나면 서로의 골통을 부숴대는 전쟁터에서 발생한 유골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테도린이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역병 때문이 아니겠나!”

“오... 그건 그럴싸한데?”

상당히 신빙성 있는 추측이었다.

이 세계에서 흑사병 수준의 치명적인 역병이라도 돌면 떼죽음을 면치 못한다. 회복 마법사나 사제, 포션 등으로 치료할 수는 있겠지만, 누구나 그런 혜택을 누릴 수는 없으니까.

내가 자신의 의견에 동조하자, 으쓱해진 테도린이 신나서 말을 이었다.

“크흐흐. 그렇다! 역병의 저주가 분명하다. 아주 오래전, 흑마법사가 배척받지 않던 시절에는 저주가 흔했다고 하더군? 이 던전도 오래된 것 같은데... 과거에 어떤 흑마법사 하나가 지독한 역병의 저주를 뿌린 것이 아니겠나!”

“끔찍한 얘기네. 뭐, 어쨌든 계속 가보자고.”

사실 이 사람들이 어떻게 죽었는지는 크게 중요치 않다. 던전에서 무엇을 얻을지가 중요하지.

***

어느덧 지하 2층을 헤맨 지 이틀이 흘렀다.

사람의 뼈로 만들어진 통로 저편에, 검은색 천을 눌러쓴 존재가 공중에 둥실둥실 떠다니고 있었다.

실체가 없는 망령 스펙터다.

나는 지체 없이 마법을 캐스팅해 날렸다.

─화르륵!

[금일 사용 가능한 ‘파이어 애로우’ - 5회]

스펙터는 검은색 천과 함께 불타오르며 증발했다. 그것을 확인한 나는 일행을 돌아보며 말했다.

“하, 오늘은 밑으로 내려가는 길을 발견할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나도 그랬으면 좋겠군.......”

테도린이 그답지 않게 힘없이 대답했다.

“아직도 몸 상태가 별로야?”

“이 정도는 문제없다.......”

문제없다고 대답했지만, 내가 보기엔 문제가 있어 보였다.

비단 테도린 뿐만이 아니었다. 나머지 도린 형제와 올리버까지도 테도린과 똑같은 상태였다.

나를 제외한 일행 모두는 언제부터인가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뭔가 뚜렷한 증상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냥 막연하게 기운 없이 축 늘어지는 정도랄까.

“흠....”

처음에는 정신적인 피폐함을 의심해봤다.

이곳 지하 2층은 조금 특이한 장소였으니까.

넓기는 엄청나게 넓은데 어딜 봐도 온통 사람의 뼈가 가득하니, 심적으로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몬스터도 기준을 알 수 없이 다양하게 출몰했다. 좀비나 조금 전의 스펙터 같은 언데드부터, 슬라임이나 고블린 같은 일반적인 몬스터까지. 심지어 스켈레톤은 검이나 활뿐 아니라, 시퍼런 불덩이를 쏘는 녀석들도 있었다.

그런 곳을 이틀 넘게 헤매고 있으니, 정신적으로 피폐해질 수도 있다. 그런데 도린 형제와 올리버를 보면 꼭 그런 것만 같지도 않았다. 이들은 실제로 육체가 쇠약해지고 있는 듯 보였다.

“야, 아무래도 안 되겠다. 회복 마법사가 있는 파티를 찾아가 보자.”

“회복 마법사 말인가.......”

“그래! 너희 전부 무슨 병든 닭 같잖아. 회복 마법사를 찾아가서, 증상을 문의하든 치료를 받든 해보자고.”

던전을 개방한 지 이틀이 넘게 지난 상태였기 때문에, 이젠 지하 2층에도 다른 파티들이 제법 돌아다니고 있었다. 드물긴 해도 그 중엔 회복 마법사가 있는 파티도 있다.

물론 우리도 포션이 있기는 하지만, 이런 애매한 증상에 무턱대고 사용하기에는 아깝다. 포션은 한정적이므로 웬만하면 아껴뒀다가, 치명상을 입었을 때 같은 중요한 순간에 쓰는 것이 좋다.

“자자, 다들 기운 차리고 움직이자.”

나는 축 처져있는 일행들을 독려했다.

“억울한 마법사 너는 멀쩡한 것인가......?”

“나? 나는 뭐 평소랑 똑같은데.”

“이상하군.......”

테도린이 의아한 듯 물었지만, 나도 왜 나만 괜찮은 건지는 모르겠다.

그나마 내가 멀쩡해서 다행이지, 나마저 상태가 안 좋았다면 던전 탐사에 상당한 차질이 빚어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어쨌든 다른 파티를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사실 이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드넓고 복잡한 던전에서 원하는 사람을 찾는 게 어디 마음대로 되는 일인가?

그래도 확률을 높일 수는 있다. 최대한 많은 길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기다리거나, 다른 사람들이 길에 남긴 표식을 따라가면 된다.

그렇게 어느 정도 돌아다니다 보니 곧 모험가 파티 하나를 마주칠 수 있었다. 세 명의 검사와 한 명의 여자 마법사로 이루어진 파티였다.

“안녕하세요. 혹시 회복 마법사십니까?”

나는 마법사를 향해 물었다. 사실 회복 마법사는 복장만 봐도 티가 나지만, 종종 공격 마법사처럼 입는 경우도 있었다.

“어머, 엘 씨? 안녕하세요. 저는 공격 마법사예요.”

처음 보는 얼굴인 듯했는데, 나를 알아봤다.

“그러셨군요. 그럼 이 주변에서 회복 마법사를 본 적이 있으십니까?”

“아니요. 저희도 2층에 내려온 지 얼마 안 돼서....”

“음. 알겠습니다. 수고하세요.”

간단히 인사하고 다른 파티를 찾아 나섰다.

그리고 얼마 뒤, 또 하나의 파티와 마주했다.

전원이 검사로 이루어진 용병 파티가 바닥에 앉아서 쉬고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안녕하십니까. 혹시 이 주변에서 회복 마법사를 본 적이 있으십니까?”

“아까 저쪽 방향에 있는 사거리에서 봤소.......”

“...!?”

나는 순간 당황했다.

이 용병들도 도린 형제와 마찬가지로 힘이 쭉 빠진 듯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흠흠. 저쪽 방향 말씀이십니까?”

“그렇소.......”

“감사합니다.”

이 요상한 상황에 의문이 가득했지만, 어쨌든 회복 마법사의 단서를 찾았으니 즉시 발걸음을 옮겼다.

‘진짜 이상한 던전이란 말이지.’

엄청난 수의 유골, 시름시름 앓는 사람들, 밑도 끝도 없는 몬스터의 스펙트럼까지. 이렇게 이상한 던전은 처음이었다. 물론 던전이라고는 두 개밖에 못 가봤지만.

아무튼 일행들을 이끌고 한동안 걷다 보니, 곧 용병이 말했던 사거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쪽 방향으로 가면 되겠네.”

사거리 중 한 방향에만 누군가가 새겨 넣은 표식이 있었다. 우리는 그 표식을 따라서 나아갔다. 갈림길마다 같은 표식이 있었기에 그걸 이정표 삼아서 계속 따라갔다.

그렇게 노력한 끝에, 마침내 회복 마법사가 있는 모험가 파티를 발견했다.

그러나 나는 머리가 지끈거림을 느꼈다.

‘아니... 이건 또 무슨 상황인데?’

“분명히 네 녀석이 단검으로 내 동료를 찌르고 도망갔잖나!”

“대체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죠? 저는 단검을 가지고 있지도 않고, 당신들을 지금 처음 봤다구요!”

그들은 무기를 치켜들고 또 다른 모험가 파티와 대치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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