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 탐사 (1)
“......저희한테서 냄새가 난다구요?”
한 여성 모험가가 되묻자, 익숙한 낯을 가진 거구의 용병이 손가락으로 자신의 코를 움켜쥐었다.
“킁킁. 그래. 너희한테서 모험가 특유의 고약한 겁쟁이의 냄새가 나.”
“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이것은 그러니까, 몹시 흥미로운 일이었다.
일단 이 자리에 모여 있는 사람들의 반수 이상이 모험가임에도 불구하고 저렇게 시비를 건다는 점. 자칫 잘못하다가는 모험가들에게 집단 린치를 당할 수도 있는데, 배짱이 대단했다.
하지만 더욱 흥미로운 것은, 저 녀석이 여전하다는 점이다.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아직도 모험가를 무시하고 있었다. 내가 분명히 예전에 그의 축농증을 고쳐줬었는데도 말이다.
나는 조용히 팔짱을 낀 채 그를 지켜봤다.
“괜한 사람한테 시비 걸지 마시고 얌전히 기다렸다가 던전에나 들어가세요!”
“나도 얌전히 기다리고 싶은데 악취가 너무 심해서 말이야. 킁킁. 이 정도면 카트카의 겁쟁이들보다도 더 심한 것 같군?”
거구의 용병은 마치 냄새 때문에 어지럽기라도 하다는 듯, 코를 움켜쥔 채 과장스럽게 고개를 흔들었다.
모멸감에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여성 모험가가 빽 소리쳤다.
“그럼 당신들이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기면 되잖아요!”
“뭐? 으하핫! 이거 아주 웃기는 여자로군?”
거구의 용병은 동료 용병들과 함께 여성 모험가를 둘러싸고 고압적으로 내려다봤다.
“이봐, 여자 겁쟁이. 냄새를 풍기는 사람이 자리를 옮기는 게 맞는 거 아닐까? 나만 그렇게 생각하나?”
그는 주변을 둘러보며 다른 용병 파티들에게 호응을 유도했다.
“응? 그쪽들은 어떻게 생각해? 내가 자리를 옮겨야 할까, 아니면 이 여자가 자리를...... 헉!”
그렇게 주변에 호소하던 거구의 용병은, 이윽고 나와 눈을 마주쳤다. 그는 헛숨을 들이키며 슬슬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나는 그를 향해 손가락을 까딱거려 이쪽으로 오라는 신호를 보냈다.
─까딱 까딱
녀석은 시퍼렇게 질린 얼굴로 마지못해 내게 다가왔다. 그가 내 앞에 멈춰 섰을 때, 나는 입을 열었다.
“왜 인사를 하지 않았지?”
“다, 당신도 여기에 있었군...?”
“왜 인사를 하지 않았지?”
“더, 던전은 언제 개방하려나. 하하....”
“왜 인사를 하지 않았지?”
“.......”
“왜 인사를 하지 않았지?”
“오, 오랜만이군? 잘 지냈나...?”
예전에 내가 이 녀석을 교육했을 때, 나를 보면 꼭 인사하기로 했었다. 옆에 있던 도린 형제가 괜히 움찔하게 되는 부작용이 있었지만, 어쨌거나 녀석은 마침내 내게 인사했다.
나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그래. 인사하기로 약속을 했으면 지켜야지.”
“.......”
“근데 축농증이 재발했나 봐? 또 킁킁거리던데. 내가 다시 고쳐줘?”
“아, 아니다. 그... 머, 먼지! 먼지를 많이 마셔서 그렇다.”
거구의 용병이 황급히 손을 내저으며 부정했다.
배짱 좋게 막무가내로 시비를 걸던 그가 쩔쩔매자, 모험가들이 고소하다는 듯 킥킥거렸다.
“그래? 다행이네. 근데... 혹시 저 모험가 파티와 무슨 문제라도 있나? 설마 아직도 모험가를 무시하는 건 아닐 테고. 그렇지? 심지어 이 던전도 모험가가 따낸 건데 말이야.”
“다, 당연히 아니다! 아무래도 내가 사소한 오해를 한 것 같군? 그, 그럼 나는 이만... 저 여성분께 사과를 해야 해서 말이지.”
그가 슬금슬금 뒷걸음질 쳤다. 나는 그런 그의 목을 붙잡아 내 키 높이까지 자세를 낮추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또 그러면 코를 아예 잘라버릴 거야. 알지? 여기 케른헴인거. 카트카와 달리 사람을 죽여도 처벌할 영주가 없다는 거 명심해.”
“며, 며, 명심하지.”
거구의 용병이 침을 꿀꺽 삼키며 대답했다.
“좋아! 가봐. 던전에서 만나면 또 인사하고.”
내가 붙잡고 있던 목을 놓아주자, 그는 사색이 된 얼굴로 허겁지겁 도망갔다.
일련의 상황들을 목격한 테도린이 의아한 듯 물었다.
“억울한 마법사, 대체 무슨 말을 했길래 저 덩치가 저렇게 겁에 질려서 도망가는 것이지? 살해 협박이라도 한 것인가?”
“그 정도까지는 아닌데... 뭐, 비슷한 거지.”
“기사를 죽이더니 아주 난폭해졌군!”
“진짜 죽이겠냐. 그냥 겁만 준 거야.”
아무리 영주가 없는 동네라지만, 아무 이유 없이 사람을 마구 죽이기는 어렵다. 사회적인 시선도 있고, 피해자가 속해있는 집단과 지인에 의한 사적인 복수도 생각해야 하니까.
하지만 던전에서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폐쇄된 공간에, 몬스터는 많고, 미로처럼 구불거려 으슥한 장소도 많으며, 수많은 파티가 있으므로 누가 흉수인지 특정하기도 어렵다. 실제로 고대의 던전에서도 많은 살인이 일어났었고.
물론 나는 살인마가 아니므로 던전에서 누굴 죽일 생각 따윈 추호도 없다.
어쨌거나 방금 있었던 작은 소동 때문인지, 던전 입구를 통제하고 있던 길드 연합체의 직원이 이쪽을 향해 다가왔다.
“무슨 일 있습... 엘 씨? 엘 씨가 왜 여기에 줄을 서서 기다리고 계십니까?”
“네? 그야 당연히 던전에 들어가려고....”
“저와 함께 맨 앞으로 가시죠. 엘 씨가 이 던전을 지켜냈으니, 가장 먼저 들어갈 자격도 있으십니다.”
“아, 괜찮습니다.”
나는 정중히 사양했다.
우리 정도면 이미 상당히 앞쪽에 있는 편이었고, 괜히 특혜랍시고 새치기를 하고 싶지도 않았다. 무슨 이유가 됐든 간에, 누군가가 자신의 앞쪽으로 새치기를 하면 빡치는 법이다.
“그, 그래도... 엘 씨가 줄을 서서 기다렸다는 사실을 길드장님이 알게 되면 저를 야단치실 텐데....”
“제가 원해서 그랬다고 하면 되죠.”
직원이 곤란하다는 듯 말했지만, 나는 다시 한번 사양했다.
사실 던전에 제일 먼저 들어간다고 해서 딱히 좋은 것도 없다. 던전은 지하 2층, 3층 등 더 깊이 내려갈수록 그 진가가 드러나는데, 내려가는 길을 단번에 찾을 수는 없으니까.
정확한 위치를 알고 있다면야 빨리 입장해서 달려가는 게 좋겠지만, 지금처럼 위치를 모르는 경우에는 결국 헤매기 마련이다. 마루타처럼 몇 파티를 먼저 보내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다.
“그나저나 개방은 언제 합니까? 시간이 다 된 것 같은데.”
“이크, 내 정신 좀 봐. 지금 바로 개방하도록 하겠습니다.”
내가 품에서 회중시계를 꺼내 보며 묻자, 직원은 이마를 한 번 탁 치고 던전 입구를 향해 쏜살같이 달려갔다.
─던전 개방하겠습니다!
곧 한 파티씩 던전에 입장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고대의 던전에 비해 입장료가 비쌌다. 케른헴 출신은 5실버, 타지역 출신은 10실버. 가격 상승 요인은 내 인건비 때문이다. 결투에 나선 대가로 20골드를 받았으니.
물론 나는 입장료가 면제였다.
***
던전의 지하 1층 초입.
“오오... 던전은 처음 와봅니다.”
짐꾼으로 온 올리버가 신기하다는 듯, 좌우로 뻗어있는 통로를 두리번거리며 감탄을 내뱉었다.
“그래? 고대의 던전 때 안 가봤어?”
“네. 그 던전은 입장에 등급 제한이 있었잖습니까? 그래서 아쉽게도 저는 가보지 못했습니다.”
“아, 그랬지 참.”
그때는 파티에 B등급이 한 명 이상 있어야 입장할 수 있었다. 이번 던전은 등급 제한이 없었는데, 아마 케른헴의 인력 풀이 늘어나서 그런 게 아닐까 싶다. 케른헴은 계속 성장 중에 있다.
“던전이란 곳은 굉장히 어둡군요.”
“촌스러운 티내지 마라 신입!”
“지하인데 어두운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멍청한 말을 할 시간에 랜턴이나 꺼내라!”
어둡다고 말한 게 그렇게까지 잘못한 일인가 싶지마는, 도린 형제는 즉각적으로 버럭 했다.
“래, 랜턴 말씀이십니까. 알겠습니다.”
올리버가 배낭을 내려놓고 뒤적거리며 랜턴을 찾았다.
확실히 어두운 편이기는 했다. 지상으로 올라가는 입구 주변에만 횃불이 박혀있었고, 그 외엔 거의 없었다.
─치이익
우리는 랜턴을 들고 통로를 따라 이동하기 시작했다.
나와 테도린이 선두, 올리버가 중간, 나머지 도린 형제가 후미에 섰다. 원래 짐꾼이 있는 파티는 짐꾼을 보호하는 대형으로 이동해야 한다.
“흠....”
아직 초입이라 그런지 특별할 건 없었다.
통로도 정직하게 뻗어있었고, 몬스터의 낌새도 아직 없었다. 사실 던전이 발견된 첫날, 피어슨 남작이 강제로 점거하기 전에 이미 던전 을 잠깐 탐사했던 사람들이 있었으니, 초입 부근에는 별게 없을 가능성이 높았다.
심심한 탐사가 이어졌다. 나만 심심한 것은 아니었는지, 테도린은 걷는 내내 올리버를 돌아보며 이런저런 훈수를 뒀다.
“이봐, 신입! 심연과도 같은 던전에서 살아남으려면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나!”
“중요한 것 말씀이십니까? 음... 식량?”
“크흐흐. 이거 완전 애송이로군? 그렇지 않은가, 억울한 마법사?”
테도린이 올리버를 비웃으며 나에게 동조를 구했지만, 그건 나도 모르겠다.
던전에서 가장 중요한 것? 그게 뭔데?
물론 모른다고 말하면 쪽팔리니 그냥 아는 척했다.
“아아, 올리버는 아직 부족함이 많군. 던전에서 가장 중요한 그것을 모르다니 말이야. 아무래도 테도린, 네가 친절히 설명해주는 게 좋겠어.”
“크흐흐. 어쩔 수 없군. 그건 바로 인사를 잘하는 것이다. 명심해라 신입! 죽고 싶지 않다면 던전에서 마주치는 모든 사람에게 예의 바르게 인사를 하도록!”
이 새끼가?
무슨 꿀팁이라도 주는 줄 알았더니.
아니, 생각해보니 꿀팁이 맞는 것 같기도 하다. 나도 엘미나가 미리 언질을 준 덕분에 한 번 위기를 벗어난 적이 있었으니까.
“이, 인사...?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올리버가 굉장히 미심쩍다는 반응을 보이자, 테도린은 입에서 침을 튀겨가며 쏘아붙였다.
“하! 지금 내 말을 의심하는 것인가? 네 녀석은 고대의 던전에서 나왔다는 인사괴물 구울에 대해서도 못 들어봤나!”
“구울...? 아! 소문은 들어봤습니다.”
올리버가 기억났다는 듯 손뼉을 쳤다.
“내가 바로 그 구울을 처치한 파티의 일원이다!”
“네? 제가 듣기로는 엘 씨께서 혼자 처치하셨다고....”
“이익...! 파티의 일원이라고 하지 않았나! 그리고 사체는 내가 운반했다! 그런데... 언제부터 짐꾼이 말대꾸를 하게 되어있었지?”
“죄, 죄송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도린 형제는 올리버를 짐꾼으로 고용한 것이 아니라, 단순히 갈구기 위해 고용한 것 같았다.
아무튼, 그렇게 활기차게 던전을 나아갔다.
곧게 뻗어있던 통로는 깊숙이 들어갈수록 구불거리기 시작했다. 특이하게도 통로만 있을 뿐 딸려있는 방 같은 게 없었기에, 어디에 멈춰서 수색할 필요 없이 계속 이동하기만 하면 됐다.
“슬슬 갈림길이 많아지네.”
“그렇군. 이제부터는 내가 벽에 표시를 하겠다.”
테도린이 단검으로 던전의 석벽을 조금 긁어냈다.
“아니 근데 왜 이따위로 만들었지? 뭐 아무것도 없이 복잡한 통로만 있으니까, 이 던전이 어떤 용도로 만들어졌는지 감도 안 잡히네.”
“크흐흐. 길이 복잡하다는 것은 무언가 중요한 것을 감춰두었기 때문이 아니겠나. 이것은 좋은 신호다.”
“흐음. 그랬으면 좋겠네.”
우리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갈림길이 많아지고 나서부터는 가끔씩 다른 파티를 마주쳤다. 아마 미로처럼 얽히고설킨 구조인 듯했다.
그들을 만날 때마다 지하 2층으로 내려가는 길을 아냐고 물어봤지만, 당연히 모른다는 대답만이 돌아왔다.
“뭐야, 제자리로 돌아왔잖아?”
세 갈래로 나누어져 있는 갈림길 앞.
통로의 석벽 좌측 하단에는 테도린이 새겨 넣은 사선이 그어져 있었다.
“아깐 왼쪽 길로 갔었으니 이번엔 중앙으로 가보자.”
나는 중앙으로 뚫려있는 통로에 새로운 표식을 새기며 말했다. 만약 또 되돌아온다면 그땐 오른쪽으로 가면 된다.
어쨌든 걷는 속도를 좀 올리기로 했다. 지금처럼 제자리를 빙빙 도는 경우에는 최대한 빨리 벗어나는 게 중요하다. 여기서 시간을 낭비하다가는, 다른 파티가 우리보다 먼저 2층으로 갈 테니까.
그렇게 부지런히 돌아다니고 있을 때였다.
“카하악!”
통로 맞은편에서 가래가 끓는 듯한 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쩔뚝거리며 우릴 향해 다가왔다.
“......좀비?”
“첫 몬스터가 좀비라니. 이거 실망이로군!”
좀비는 진짜 허접 중에 허접인 언데드다.
자연적으로 발생한 좀비는 스켈레톤보다도 약하다. 딱히 무기랄 것도 없고, 물린다고 좀비로 변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별로 위험하지 않다.
물론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좀비는 강할 수도 있다고 들었는데, 직접 만나본 적은 없다. 어쨌든 저렇게 쩔뚝거리는 걸 보면 저놈은 약하다.
“저것은 내가 처리하겠다.”
그리 말한 테도린이 좀비에게 달려가 단숨에 목을 잘라버렸다.
“좀비가 나오다니 신기하네....”
겨울철의 공동묘지가 아닌 곳에서 좀비를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아무튼 썩어 문드러진 시체 근처에 있다가는 병에 걸릴 것 같았으므로 서둘러서 지나갔다.
그러나 좀비는 하나가 아니었다.
첫 좀비가 등장한 이후로, 꽤나 빈번하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카하악!”
─서걱!
“제길! 아무 돈도 안 되는 좀비만 계속 나오는군. 차라리 뒤로 돌아가서 다른 길로 가보는 것이 어떤가?”
선두에서 좀비를 만날 때마다 베어버리던 테도린이 툴툴거렸다. 그는 좀비가 안 나오는 길로 가길 원했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흠. 아니야. 그래도 이놈들이 나오는 방향에 뭔가 있을 가능성이 높지 않겠어? 아예 좀비가 많이 나오는 길로 골라서 다니자고.”
“우욱. 벌써부터 구역질이 날 것 같군!”
좀비가 하늘에서 뿅 하고 나타나거나, 땅에서 솟아나진 않았을 것이다. 어딘가에 근거지가 있겠지.
테도린이 토하는 시늉을 했지만, 어쨌거나 내 의견에 순순히 따랐다.
우리는 돈 안 되는 좀비를 역추적하며 나아갔다. 그렇게 인내심을 갖고 한나절쯤 더 움직였을까.
마침내 2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을 발견했다.
“크흐흐. 역시 억울한 마법사. 돈 냄새 하나는 기가 막히게 맡는군?”
“아아, 부자가 될 준비는 됐나? 바로 내려가자고.”
모두들 한껏 기대에 부풀어서 계단을 내려갔다.
─저벅저벅
긴 터널 같은 계단을 내려가서 마주한 2층은,
“카하악!”
“크하악!”
“케헤엑!”
좀비가 우글거리는 거대한 지하 묘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