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카트카 (5)
“내 친구를 이렇게 만들어놓고 웃음이 나와 지금?”
깡마른 수배범의 입꼬리는 여전히 올라가있었다. 그의 전신은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지만, 팔과 주먹 쪽이 특히 더 밝았다.
“소문을 접하지 못했나? 지금쯤이면 나에 대한 소문이 돌고 있을 줄 알았는데.”
그는 내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고, 자신의 할 말만 늘어놓았다.
“아니면... 소문을 들었음에도 푼돈에 눈이 멀어 하피를 잡으러 온 건가. 그런 거라면 어리석기 짝이 없군.”
“어리석은 건 너 아닐까?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다니. 덕분에 찾는 수고를 덜었어.”
수배범은 우리가 자신을 잡으러왔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 않고 있는 듯했다. 그는 내 말이 의외였는지 어깨를 들썩이며 광소를 터트렸다.
“나를 찾고 있었다고? 크하핫!”
“.......”
웃음이 참 많은 녀석이었다. 왜소한 몸집에 비해 과할 정도로 호탕한 웃음이었는데, 일부러 그렇게 보이도록 노력하는 것 같기도 했다.
“하피조차 제대로 잡지 못하고 놓치는 녀석들이 나를 찾아...? 역시 칼잡이답게 어리석고 오만하군. 그게 몸뚱이만 믿고 까부는 녀석들의 한계지.”
웃음뿐 아니라 말도 많은 녀석이었다.
내가 한 마디를 하면 놈은 몇 배로 되갚았다.
“그리고 나는 그런 녀석들을 죽이는 것을 즐긴다. 마법사에게 맞아죽는 녀석들의 표정은 정말이지... 볼만하거든.”
이놈도 제정신은 아닌 것 같았다.
‘......확 콜링 썬더를 써버려?’
저렇게 말 많은 녀석을 기습하기엔 콜링 썬더가 제격이지만, 그러다 덜컥 죽어버릴 가능성이 있었다. 오러를 다루는 헥스조차 한 방에 기절시킨 마법이다.
놈이 육체 강화 마법을 쓰고 있는 상태라고는 하나, 그건 힘을 올려주는 것이지 방어력을 올려주는 게 아니다. 저런 왜소한 마법사가 쉴드도 없이 콜링 썬더를 정통으로 맞으면 정말 죽을지도 모른다.
‘죽으면 말짱 꽝이니 시작은 조금 약한 걸로....’
“네 녀석의 표정은 어떨지 궁금하군. 작은 체구의 마법사가 너를... 때려죽일 때 말이다!!”
그가 땅을 박차고 내게 달려오기 시작했다.
땅을 딛는 다리도 강화돼서 그런지, 마법사 치고는 상당히 빠른 속도였다.
나는 도린 형제가 싸움에 휘말리지 않도록 옆으로 달려 나가며 마법을 캐스팅했다.
─치직. 지지직.
[금일 사용 가능한 ‘차지드 볼트’ - 4회]
내 머리위에 스파크를 튀기는 전기의 화살이 생성되자, 녀석의 얼굴에 일순 당혹감이 서렸다.
“마, 마법사였나...! 그런데 왜 검을...?”
“너도 마법사인데 주먹을 쓰잖아!”
나는 그렇게 외치며 화살을 쏘아 보냈다.
그와 동시에 녀석도 달려오는 속도를 낮추며, 침착하게 무언가를 준비했다.
─쿠르르... 쾅!
갑작스레 땅이 솟아오르며 만들어낸 흙의 장벽이 차지드 볼트를 가로막았다.
‘......랜드 라이즈?’
땅 속성의 중급 마법을 다루는 마법사답게, 하급 마법의 캐스팅 속도는 제법 빨랐다.
놈은 자신이 일으킨 키 높이 이상의 장벽위로 풀쩍 뛰어오른 뒤, 그것을 디딤돌로 이용해 내게 도약했다.
“히야아압!”
나는 공중에서 내리꽂히는 녀석의 주먹을 피하기 위해 몸을 뒤로 내뺐다.
허공에서는 방향전환을 할 수 없었기에, 놈의 주먹이 애꿎은 지면을 강타했다.
─쾅!!
묵직한 소리와 함께 땅이 움푹 파였다.
그는 재차 내게 쇄도하며 마구잡이로 주먹을 휘둘러댔다.
“하압! 합!”
한 번만 걸리라는 식의 기교 없는 주먹질.
오로지 힘에만 의존하며 한 방 한 방 큰 동작으로 내지르는 전투 방식이었기에 회피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다만 정말 한 대만 맞아도 큰일 날 것 같았다.
─퍼석!
온 힘을 다해 크게 휘두른 그의 주먹이 커다란 바위에 틀어박혔다.
‘......위력만큼은 상당하군.’
피해자들의 머리통이 완전히 박살나있었다는 말이 이해가 되는 위력이었다.
어쨌거나 탐색은 이 정도면 충분했다. 나는 놈이 팔을 빼내는 틈에 거리를 벌려서 다음 마법을 준비했다.
─휘오오
[금일 사용 가능한 ‘윈드 블레이드’ - 2회]
내게 바람이 몰려들며 망토가 펄럭이자, 녀석의 눈에 경계심이 맴돌았다.
“...바람 속성?”
나는 저 혼잣말인지 질문인지 모를 말에 대꾸해주지 않고, 즉시 바람의 칼날을 날려 보냈다.
놈은 현명하게도 상성에서 밀리는 랜드 라이즈가 아닌, 마법 방어 쉴드를 전개하며 대응했다.
─까가각!
윈드 블레이드는 쉴드를 긁어 기분 나쁜 소음을 만들어내며 서서히 소멸해갔다.
“제법 머리를 굴린 것 같다만... 내가 고작 하급 마법에 당할 것처럼 보였나?”
내 마법이 쉴드에 상처만 냈을 뿐 결국 뚫어내지는 못하자, 그는 다시 여유를 되찾은 얼굴로 이죽거렸다.
“그 쉴드 풀지 마라.”
“......뭐?”
상대가 쉴드를 쓰도록 유도했으니, 이젠 이걸 날려도 괜찮겠지.
[금일 사용 가능한 ‘콜링 썬더’ - 2회]
─번쩍!
─꽈릉!
청명한 하늘에서 한줄기 벼락이 내리꽂혔다.
그 벼락은 쉴드를 뚫고 놈의 몸통에 직격했다.
“커헉!”
놈이 무릎을 꿇으며 풀썩 주저앉고는, 서서히 뒤로 쓰러졌다. 그나마 쉴드가 데미지를 경감시켜준 모양인지 정신을 잃지는 않았다.
나는 바닥에 쓰러져 힘없이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수배범에게 다가가서, 마나 속박 고리를 채웠다.
“너 아까 뭐라고 그랬었지? 내가 맞아 죽을 때의 표정이 기대가 된다고 했었나?”
─파지직!
[금일 사용 가능한 ‘스태틱 쇼크’ - 9회]
“끄아아악!!”
나는 녀석의 꿈에 들어가기 전에 반감을 더 살 겸, 그리고 도린 형제의 복수를 겸해서 스태틱 쇼크를 몇 방 먹여줬다.
“끄으.......”
육체 강화 마법이 풀린 수배범은 상당한 약골이었기에, 머지않아 미약한 신음만 흘리게 되었다.
나는 그를 끌고 도린 형제가 있는 곳으로 갔다.
“이 자식! 감히 내 형제를!”
“죽여 버리겠다!”
바닥에 누워있는 둘째를 제외한 나머지 형제들이 분개하며 수배범에게 달려들으려 했기에, 나는 황급히 그들을 제지했다.
“진정해. 지금 더 손대면 진짜 죽을지도 몰라.”
나는 품에서 중급 포션을 꺼내서 테도린에게 건넸다.
“일단 둘째한테 이거라도 먹여. 나는 이 녀석을 포박할 테니까.”
“후우... 후우... 알았다.”
테도린은 격분으로 인해 거칠어진 호흡을 가다듬으며 형제에게 돌아갔고, 나는 배낭에서 포승줄을 꺼내 수배범을 꽁꽁 묶었다.
***
나는 수배범과 함께 숲 근처에 있는 어떤 산을 올라가고 있었다.
“여기로 가는 거 맞아?”
“.......”
이 산에 수배범이 은신처로 삼고 있는 동굴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그리로 향하고 있는 중이다.
“대답 안 해? 또 전기 맛 좀 볼래?”
“마, 맞다. 이 방향이 맞다.”
그가 허겁지겁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이번에는 도시 밖에서 수배범을 붙잡은 것이기 때문에, 도시로 들어갈 경우 검문에 걸려서 성문을 지키고 있는 경비병에게 수배범을 넘겨줘야 한다.
물론 그렇게 해도 현상금은 제대로 지급받지만, 이 녀석의 꿈에 들어갈 틈이 없어진다. 나는 마법을 얻고 난 뒤에 도시로 돌아갈 생각이다.
“똑바로 안내해. 허튼수작 부리면 그냥 죽여 버릴 거니까.”
도린 형제와는 숲에서 헤어졌다.
수배범에게 얻어맞은 둘째는 포션을 마시고 걸을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됐지만, 혹시 모르니 치료 사제에게 데려가라고 내가 등을 떠밀었다.
그리고 나 혼자 있어야 꿈에 들어가기도 편하고.
아무튼 그렇게 한동안 산을 올라가니, 어느 장소에서 수배범이 걸음을 멈췄다.
“......여기가 내 은신처다.”
“흠... 막혀있네.”
그의 앞에는 동굴이 하나 있었는데, 입구가 흙벽으로 막혀있었다. 내가 가까이 다가가서 살펴보고 있자, 놈이 은근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이걸 직접 파내려면 어려울 텐데... 마나 속박 고리를 잠시 풀어주면 내가 마법으로 흙벽을 없애줄 수 있다.”
“오, 그래?”
내가 관심을 보이는 듯하자, 녀석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렇다. 잠시만 풀어주면 된다. 어차피 너는 나보다 강하지 않나? 그러니 이걸 풀어줘도─”
─푸스스
[금일 사용 가능한 ‘랜드 라이즈’ - 4회]
동굴을 막고 있던 흙벽이 옆으로 무너져 내렸다.
“어디서 개수작이야?”
“......!”
따악! 나는 경악하고 있는 수배범의 뒤통수를 한 대 갈겨주고, 그와 함께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은신처는 나름 알차게 꾸려져있었다. 식량과 식수가 넉넉하게 비축되어 있었고, 망토를 깔아 만든 잠자리도 있었다.
나는 일단 랜드 라이즈를 한 번 더 사용해서 동굴 내부에 작은 기둥을 하나 만들어냈다.
─쿠르르... 쾅!
그리고 기둥밑동에 수배범을 앉힌 뒤, 여분의 포승줄로 기둥과 함께 그를 둘둘 감아버렸다.
“너는... 대단하군. 다양한 속성의 마법에 검까지 사용하다니....”
꼼짝없이 묶여있는 그가 나를 향해 말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대꾸하지 않고 동굴 벽면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피땀 흘려 노력한 결과인가...?”
내가 계속 무시하자, 그는 고개를 돌려 동굴 밖으로 보이는 푸른 하늘을 우수에 젖은 눈빛으로 바라봤다.
“나도 한때는 노력하면 불가능한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지... 선천적으로 타고난 이 나약한 몸뚱이도... 단련하면 언젠가는 강해질 수 있을─”
“닥쳐! 이게 어디서 사연 팔이를 하고 있어? 연쇄살인마 주제에. 그딴 사연 하나도 안 궁금하니까 잠이나 쳐 자!”
나는 즉시 동굴 입구를 완전히 막아버렸다.
─쿠르르...
[금일 사용 가능한 ‘랜드 라이즈’ - 2회]
칠흑같이 어두워진 동굴.
‘.......’
기세 좋게 입구를 막아버리긴 했지만, 왠지 나까지 질식사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슬금슬금 입구로 다가가 작은 구멍을 뚫었다.
그리고 빛 한줄기만이 희미하게 들어오는 동굴에서, 수배범이 잠들기만을 조용히 기다렸다.
그렇게 한나절쯤 지났을까.
놈이 꿈을 꾸기 시작한 것이 느껴졌다.
나는 지체할 것 없이 바로 꿈으로 들어갔다.
─화아악!
나는 누워있었다.
‘......내가 왜 누워있지?’
즉시 몸을 일으켜서 주변을 둘러봤다.
익숙한 풍경의 숲.
그리고 옆에선 테도린이 바닥에 앉아 토끼를 손질하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질문을 하나 던졌다.
“야. 네 귀여운 여동생 이름이 뭐야?”
“.......”
꿈이군.
나는 내친김에 바닥에 기초 마법을 써봤다.
─치이익
[금일 사용 가능한 ‘이그나이트’ - ∞회]
꿈이 확실했다.
이건 일전에 청색 마탑에서 파이톤의 꿈에 들어갔을 때와 같은 현상이었다. 이미 꿈속에 누워서 존재하는 내가 있었고, ‘진짜 나’는 그 위에 덧씌워진 듯했다.
즉, 수배범은 우리를 습격할 당시의 꿈을 다시 꾸고 있었다.
‘잘됐군. 파이톤 때처럼 쉽게 갈 수 있겠어.’
굳이 꿈의 주인을 찾으러 나설 필요도 없었다. 곧 놈이 우리를 습격하기 위해 직접 모습을 드러낼 테니까.
나는 다시 자리에 드러누워서 기다렸다.
아니나 다를까, 머지않아 나무 쓰러지는 소리가 들려왔고, 도린 형제 하나가 수배범에게 얻어맞고 이쪽으로 날아왔다.
“커어억!!”
나는 몸을 일으켜 수배범을 바라봤다.
그는 현실에서는 이 타이밍에 비릿하게 웃고 있었지만, 꿈속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이건 그의 실현되지 못한 욕망이 반영된 꿈.
그는 찢어죽일 듯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흠. 그래도 적당히 저항은 해줘야겠지?’
현실에서 그랬던 것처럼 선공은 내가 한다.
─치직. 지지직.
[금일 사용 가능한 ‘차지드 볼트’ - ∞회]
나는 전기의 화살을 생성해서 날렸다.
─쿠르르... 쾅!
놈은 랜드 라이즈로 방어해내며, 그것을 뛰어넘어 나에게 쇄도했다.
이것 역시 현실과는 조금 다르게 진행됐다. 그때는 흙벽을 디딤돌로 썼지만, 그 공격은 실패로 돌아갔으니 무의식적으로 변화를 준 것 같았다.
‘뭐, 딱히 상관없겠지. 어쨌든 나는 죽기만 하면 되니까.’
나는 적당히 주춤주춤 물러나는 시늉을 하다가 놈의 주먹을 허용했다.
─퍼억!!
“크헉!”
내 복부를 강타한 녀석의 주먹은, 온 내장을 뒤집어 놓는 것 같은 고통을 선사하며 나를 저 멀리로 날려 보냈다.
‘미, 미친... 너무 아프잖아....’
바닥에 쓰러져 피를 토하고 있는 나를 향해, 놈이 무심한 표정으로 터벅터벅 걸어왔다. 놈은 내 머리를 부술 생각인지, 주먹을 높게 치켜들었다.
그리고 그 주먹을 내려치려는 순간,
“아니. 아니지. 그 표정이 아니야.”
그는 고개를 저으며 팔을 거둬들였다.
“쿨럭...! 뭐...?”
“너는 나를 더 즐겁게 해줄 수 있는 표정을 지어야해.”
놈은 그렇게 말하며 발로 내 다리를 밟았다.
─콰직!
“으아아아!!!”
나는 뼈가 으스러지는 고통을 참지 못하고 비명을 내질렀다. 그제서야 비로소 놈이 웃기 시작했다.
“고통스러운가? 아직 멀었는데.”
─콰직! 콰직!
“끄아악!! 미, 미친놈아 얼른 죽여!!”
맞아죽는 것은 고통스러울 거라고 어느 정도 각오하긴 했었지만, 이건 정신이 나갈 지경이었다.
놈은 웃으며 내 팔다리를 전부 부러뜨리고 있었다. 그 광기어린 모습에 그만 반사적으로 라이트닝 블래스트를 날릴 뻔했다.
“슬슬 마음에 드는 표정을 짓는군. 하지만 아직 부족해.”
─퍽! 퍽! 퍽!
내가 움직이지 못하게 되자, 놈은 아예 옆에 무릎 꿇고 앉아서 내 복부를 두들겨댔다. 그것도 죽지 않을 정도로만 힘 조절을 해서.
“미...친...새....”
이건 꿈이야. 이건 꿈이야.
나는 극심한 고통을 견디기 위해 계속 같은 생각을 되뇌었다. 하지만 그런다고 통증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빨...리...죽... 컥!”
폐가 손상됐는지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내가 호흡곤란에 켁켁대자, 놈이 드디어 빛나는 주먹을 높게 치켜들었다.
너 이 새끼 현실에서 보자.
“그래. 바로 그 표정이야.”
─뻐걱!
주먹이 얼굴에 가까워지며 시야가 암전했다.
[꿈속에서 마법 ‘스트렝스’에 맞아 사망하여 조건을 달성했습니다.]
[습득하시겠습니까? 훔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