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꿈속에서 마법을 훔치는 마법사-58화 (58/200)

돌아온 카트카 (4)

체스터 백작령 남부의 이름 없는 어떤 숲.

─촤악!

“나의 실력이 어떤가!”

일격에 놀의 대가리를 베어버린 테도린이 검에 묻은 피를 털어내며 자신만만하게 외쳤다.

“이야, 너 강해졌다.”

나는 가볍게 박수를 치며 화답했다.

사실 그래봤자 ‘놀’이다. 고블린보다 조금 강한 수준의 몬스터. B급 모험가가 고작 이런 몬스터를 처치하고 칭찬받기를 원한다는 것은 양심이 없다고 할 수 있겠으나, 군더더기 없는 몸놀림을 보니 강해진 건 사실 같았다.

“일반적인 B급 보다 강할 것 같은데?”

“크흐흐. 고작 놀을 처치한 것 가지고 너무 띄워주는 것이 아닌가.”

테도린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지만, 내심 칭찬이 마음에 든 모양인지 입에는 웃음이 걸려있었다.

“띄워주는 게 아니라 진짜인데? 다른 형제들도 강해진 것 같고. 아무튼 계속 이렇게만 해주면 돼.”

수배범을 잡으러 왔지만, 우리는 몬스터를 잡고 있었다.

카트카의 모험가 길드에서 얻은 정보를 취합해 간추려낸 후보지들이 몇 있다. 이를테면 지금 우리가 돌아다니고 있는 숲.

수배범이 이 숲에 있다 하더라도, 우리가 가까이 스쳐갔다 하더라도, 그놈이 어디 땅굴이나 덩굴 같은 곳에 숨어서 작정하고 안 나온다면 찾아낼 도리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맛있는 냄새를 풍겨야한다.

지금처럼.

“문제없다! 얼마든지 처치해주지!”

“이 숲에 있는 몬스터의 씨를 말려주겠다!”

“다음은 내 차례다 형제여!”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했던가.

거듭되는 칭찬에 으쓱해진 도린 형제가 숲에 울려퍼질 정도로 쩌렁쩌렁하게 의욕을 불태우며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들은 훌륭한 미끼였다.

무슨 몬스터든 한 마리를 처치할 때마다 큰 소리로 자랑을 해대니, 어그로가 안 끌릴 수가 없었다.

우리는 그렇게 맛있는 냄새를 풍기며 숲을 돌아다녔다.

“그런데 억울한 마법사. 체스터 백작령은 원래 이렇게 몬스터가 많은 것인가?”

무지성으로 몬스터를 잡아대던 테도린이 문득 나를 바라보며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영주가 있는 땅인데도 이상하리만치 몬스터가 많군? 이래서야 케른헴보다 나을 것이 없지 않은가?”

“아, 원래 이렇지는 않지. 그 모험가 살인마 때문이야. 언제 그놈한테 골통이 분쇄될지 모르는데, 모험가들이 여기에 오고 싶겠어?”

영주가 존재한다한들 영지내의 몬스터를 처치하는 건 주로 모험가와 용병이다. 그게 더 싸게 먹히니까.

“하! 카트카의 모험가들은 순 겁쟁이로군. 세상에 안전하기만 한 일이 어디에 있나? 사나이라면 대범함을 갖고...... 안, 안녕하시오!”

팔짱을 끼고 카트카의 모험가들을 겁쟁이라고 비웃던 테도린은 돌연 내 뒤편을 향해 허리 숙여 인사했다. 그러자 즉시 나머지 형제들도 따라 인사했다.

“안녕하시오!”

“안녕하시오!”

뒤로돌아 그들이 인사하는 곳을 바라보니, 커다란 바위 위에 올려져있는 어떤 얼굴이 하나 보였다. 바위 뒤에 몸을 숨기고, 고개만 빼꼼 내밀고 있는 여자였다.

나는 그 여자에게 살짝 고개만 까닥여서 인사하고, 말까지 더듬으며 허겁지겁 인사했던 테도린을 비웃었다.

“풉, 뭐냐. 겁쟁이 어쩌고저쩌고 하더니 정작 겁은 네가 제일 많잖아?”

“이익...! 공손하게 인사하는 일이 어째서 겁이 많다는 뜻이 되는 것이지? 이건 예의라는 것이다!”

“.......”

의외로 논리적인 반박에 할 말이 없어진 나는, 다시 고개를 돌려 여자가 있는 방향을 바라봤다.

‘저기서 뭐하는 거지?’

그 여자는 여전히 바위 위로 고개만 내밀어 입을 다문 채 우리를 주시하고 있을 뿐, 별다른 움직임이나 대꾸가 없었다.

나도 조용히 그녀를 계속 바라봤다.

─휘이잉

때마침 불어온 산들바람이 그녀의 머리카락을 산뜻하게 흔들고, 나에게 까지 다가와 망토를 펄럭였다.

“우, 우웁! 이게 무슨 냄새인가!”

“좀 씻는 것이 좋겠군, 억울한 마법사!”

산들바람에 실려온 악취에, 도린 형제가 코를 틀어막고 얼굴을 찡그렸다.

“무슨 헛소리야? 나한테서 난 냄새 아니야.”

냄새의 출처는 내가 아니었지만, 어쨌거나 냄새는 굉장히 고약했다. 닭똥이 가득한 닭장에서 나는 악취와 비슷했다.

“그럼 이 냄새가 어디서 나는 것인가?”

“그거야 당연히 바람이 불어오는 쪽인.......”

우리 모두 냄새의 근원으로 추정되는 여자를 쳐다봤다.

그러자 그녀는 곧, 바위 위로 껑충 뛰어올라서 전신을 드러냈다. 바위에 감춰져있던 그녀의 몸통은 새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사람이 아니라 하피였냐!”

나는 곧장 그것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었다.

사람의 머리에 맹금류의 몸을 가진 몬스터 하피. 날카로운 발톱이 유일한 공격수단이라는 점에서 그다지 강력한 몬스터는 아니지만, 하늘을 날 수 있기 때문에 상대하기 번거롭다고 들었다.

“직접 만나본 건 처음이네.”

내가 하급 모험가였던 시절에는 상대하기 벅차서, A급이 되고 나서는 시시해서 하피와 관련된 의뢰는 수행해본 적이 없었다.

바위 위에 올라선 하피는 날개를 펼치며 힘껏 괴성을 내질렀다.

“끼이이이이이악!!!”

“미, 미친...! 거의 초음파 수준인데.”

숲을 뒤흔들 정도로 높고 큰 괴성에 나는 황급히 귀를 틀어막았다. 아마 근처에 유리가 있었다면 깨졌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잠시 후 괴성이 잦아들자 테도린이 검을 뽑아들며 말했다.

“원래 하피는 끔찍한 괴성으로 상대를 흔들어놓고 나서 덤빈다! 그나마 한 마리라서 지금은 덜 시끄러운 편이군.”

하피와의 전투경험이 있는 모양이었다.

나머지 형제들도 당황하지 않고 슬금슬금 하피에게 접근하기 시작했다. 나도 그들을 따라 움직이고 있을 때였다.

─펄럭! 펄럭!

방금 전 하피의 괴성을 들은 것인지, 어디선가 두 마리의 하피가 더 날아와 바위 위에 착지했다. 그리고 무표정한 여인의 얼굴로 똑같은 비명을 내질렀다.

“끼이이이이이악!!!”

“끼이이이이이악!!!”

“─빨──죽──!”

뼛속까지 울릴 정도의 시끄러운 소음 속에서 테도린이 뭐라뭐라 말을 했지만, 알아듣기 어려웠다. 입모양과 취하는 행동을 보아하니 빨리 죽이자는 뜻 같기도 했다.

몹시 동감하는 바였다.

나는 검을 들고 고약한 닭똥냄새를 풍기고 있는 하피에게 쇄도했다.

녀석은 소리로써 나를 제압하겠다는 듯, 내가 거의 당도할 때까지 괴성을 내지르는 것에 온 힘을 쏟아 붓고 있었다.

그리고 뒤늦게 날개를 펼쳐서 도망가려 했으나, 나는 이미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푸학!

가장자리에 있던 하피의 왼쪽 날개를 베자, 깃털이 휘날리며 피가 쏟아져 나왔다. 녀석이 고통 섞인 비명을 또 다시 내지르려 했기에, 나는 기겁하며 목을 베었다.

“끼이이이─”

─서걱

툭. 입을 벌린 채로 잘려버린 하피의 머리가 바위에 떨어져서 데구르르 굴렀다.

도린 형제들도 두 마리의 하피와 전투 중이었는데, 테도린은 혼자서 싸우고 있었다. 하피가 몸을 반쯤 공중에 띄운 채로 자전거 타듯 발을 굴러대며 테도린을 할퀴어댔다.

나는 그 하피가 테도린에게 집중하는 틈에 접근해서, 이번에도 역시 날개부터 잘라냈다. 비행할 수 있는 몬스터를 상대할 때는 날개부터 노리는 것이 좋다.

─푹! 푹!

날개를 잃고 추락한 하피를 테도린이 검으로 거침없이 쑤셔댔다.

‘이것도 끝났고.’

다른 형제들을 도우러 가려고 할 때였다.

─펄럭!

그들과 싸우고 있던 마지막 하피는 피투성이가 된 채로 날아서 도망 가버렸다.

‘괴성만 요란하지 별로 강하지는 않네.’

도주하는 녀석을 마법으로 마무리할까 잠시 고민했지만, 그만두기로 했다.

공중에 마법을 쓰는 건 신호탄을 쏘는 것과 마찬가지다. 수배범을 유혹하기 위해 일부러 검사행세까지 하고 있는 마당에 그럴 필요는 없다.

나는 도린 형제를 바라보며 물었다.

“다들 괜찮아?”

“─정도──쯤은─별─아니다.”

테도린이 하피에게 할퀸 상처에 포션을 뿌리며 대답했다. 아직도 귀가 먹먹해서 온전하게 들리진 않았지만, 큰 상처는 없는 모양이다.

“이렇게 시끄러운 몬스터는 처음이네.”

***

어두운 동굴 안.

밖에서 들려오는 날카로운 괴성에 마른 체형의 한 남자가 몸을 일으켰다.

“......하피의 비명소리?”

그는 은신처 밖으로 걸어 나가,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쳐다봤다.

산 아래에 있는 작은 숲.

비명소리는 그곳에서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하피가 괴성을 내지른다는 것은 인간과 전투를 벌이고 있다는 뜻. 그 의미를 잘 알고 있는 남자는 비릿하게 웃음을 흘렸다.

“요즘 통 찾아오는 녀석들이 없어서 무료하던 참이었는데 잘 됐군.”

자신이 모험가와 용병을 열 명쯤 죽인 이후로는, 소문이라도 난 모양인지 이 근방에 나타나는 사람들이 부쩍 뜸해졌었다.

자신보다 건장한 사람을 죽이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에 사로잡혀 사는 그로서는, 무척 아쉬운 일이었다.

이만 다른 지역으로 떠날까 고민할 정도로 갈증을 느끼고 있던 차에, 제 발로 걸어들어온 먹잇감이 있다니.

─쿠르르... 쾅!

그는 땅을 일으켜서, 자신이 은신처로 삼고 있는 동굴의 입구를 가렸다.

“어떤 겁 없는 녀석들인지 얼굴 좀 볼까.”

아무리 살인 충동에 사로잡혀있다 해도, 그는 자신보다 강한 상대에게 다짜고짜 덤벼들 만큼 어리석지 않다.

체스터 백작이 자신을 잡기위해 기사를 보냈을지도 모르는 일. 그는 상대가 사냥감인지, 사냥꾼인지 확인부터 해볼 생각이었다.

─터벅터벅

그는 숲을 향해서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숲에서 피투성이가 된 채 날아오르는 한 마리의 하피를 목격하고는, 피식 하고 웃었다.

“......사냥감이었나.”

하피조차 제대로 처치하지 못하고 놓쳐버리는 녀석들이라면, 먹잇감이 분명했다.

그는 자신의 깡마른 주먹을 쥐락펴락하며 숲으로 들어갔다. 이 주먹으로 거구의 사내들을 때려죽일 때 느껴지는 짜릿한 쾌감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숲에서 먹잇감을 찾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이번 먹잇감은 아주 시끄러운 녀석들이었기 때문에.

그는 커다란 나무 뒤에 몸을 숨겼다.

“해가 중천에 떠있군!”

“이쯤에서 점심을 먹는 것이 어떤가!”

“내가 아까 잡은 토끼를 구워주도록 하지!”

“오오, 좋아.”

덩치가 좋은 검사 셋과, 평범한 검사 하나.

최고의 먹잇감 세트였다.

***

우리는 잠시 쉬며 식사를 하기로 했다.

토끼를 구워주겠다던 테도린은 벌써 자리에 앉아서, 토끼의 내장을 빼내며 고기를 손질하고 있었다.

나는 그 옆에 앉아서, 나머지 도린 형제들을 향해 말했다.

“불은 내가 피울 테니까, 너희 둘이 땔감으로 쓸 만한 나뭇가지와 잎 좀 모아다줘.”

“그러도록 하지!”

“알았다!”

그들이 땔감을 찾으러 흩어지자마자 나는 그대로 자리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시원한 산들바람이 코를 간질이고,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가 기분 좋게 귀를 감싼다.

딱히 농땡이 피우려는 것은 아니고, 불은 ‘이그나이트’로 금방 붙일 수 있으니까. 땔감이 도착하고 나서 해도 늦지 않다.

그렇게 누워서 고기를 손질하고 있는 테도린을 구경하고 있으니, 그가 칼질을 멈추고 나에게 넌지시 물었다.

“그런데... 하피에게 당한 상처를 치료하느라 사용한 포션 값은 사례비에 포함시켜줄 것인가?”

“아, 그걸 말이라고 하냐. 당연하지.”

내 부탁을 들어주다 다친 거니까. 게다가 테도린이 사용한 포션은 최하급이라 몇 실버밖에 안 한다.

“크흐흐. 역시 A급답게 배포가 크군.”

테도린이 만족스런 웃음을 지으며 다시 칼질을 시작했다.

그렇게 누워서 빈둥대며 나머지 형제들을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돌연 저편에서 나무가 쓰러지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쩌...적... 쿵!

“......? 땔감을 구해 오랬더니 벌목이라도 하는 건가? 잔가지를 가져와야지. 그냥 내가 주워와야겠다.”

통나무는 땔감으로 쓰기도 어렵다.

땔감을 찾으러 가기 위해 몸을 일으킨 순간,

─빠악!

“커어억!!”

둔탁한 타격음과 함께 도린 형제 하나가, 나와 테도린 앞으로 날아왔다.

“쿨럭!”

“혀, 형제여!”

그는 기침과 함께 피를 한 움큼 토해냈고, 입고 있던 흉갑은 볼썽사납게 찌그러져있었다.

나는 즉시 고개를 들어서 그가 날아온 방향을 바라봤다.

거목 뒤에서, 전신이 은은하게 빛나고 있는 한 남자가 비릿하게 웃으며 모습을 드러냈다.

“......웃어?”

1